군수품 금수·홍콩인 이민 장려·홍콩 여행제한 검토
트뤼도 "일국양제 신봉"…반중국 연대에 적극 가담
캐나다가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에 맞서 사실상 대중제재 조치에 착수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3일 기자들과 만나 "캐나다-홍콩 범죄인 인도조약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나선 이후 홍콩과의 사법적 관계를 단절한 것은 캐나다가 처음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홍콩은 세계 30여개국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고 있다.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는 일국양제의 굳건한 신봉자"라면서 "캐나다는 중국 본토와 마찬가지로 홍콩에도 민감한 군사 물자 수출을 허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우리는 이민에 관한 것을 포함해 다른 조치도 살펴보고 있다"며 홍콩인들의 캐나다 이민을 장려할 추가 조치를 내놓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은 캐나다가 다른 동맹국들의 대중제재 노력에 동참했다고 평가하면서 군사물자 수출 금지와 이민 장려 외에 추가 여행경보를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트뤼도 총리의 이날 발표는 영국과 독일 정상이 잇따라 홍콩보안법 사태에 대한 우려를 공개 표명한 직후에 나왔다.
캐나다에서는 트뤼도 총리뿐 아니라 프랑수아-필립 샴페인 외무장관도 성명을 내 "이런 절차(홍콩보안법)는 홍콩의 기본법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캐나다로서는 현존하는 합의에 대해 재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달 신화통신 인터뷰 당시 테레사 청 홍콩 법무장관
반면 홍콩 고위관리들은 캐나다의 이번 조치에 강하게 반발했다.
존 리 홍콩 보안장관은 4일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캐나다 정부가 법치보다 정치를 우선시한다면, 어떤 근거로 도주범의 처벌을 면제해주려 하는지 전 세계에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콩과 캐나다 간에는 매년 1~2건의 범죄인 인도가 이뤄지며, 이들은 모두 중범죄자라고 지적했다.
테레사 청 홍콩 법무장관은 "캐나다 정부가 중국의 국가안보 체계에 영향을 끼치고 싶다면, 이는 중국 내정에 개입하려는 것"이라면서 "부적절한 행위이며 법치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홍콩보안법의 역외 관할 가능성을 규정한 조문과 관련해 "미국 등 많은 나라가 비슷하거나 더 엄격한 법을 갖고 있다"면서 "국가안보를 위험에 빠뜨리는 외국인을 처벌할 법이 없다는 건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청 법무장관은 이날 홍콩보안법 위반자의 피선거권 제한과 관련해 "법 조문에 기한이 명시돼있지 않으며, 이는 평생 박탈될 수 있다. 이 범죄들은 모두 매우 심각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해 비판받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 비판하면 홍콩공항 갈 때 위험하다"
CNN "홍콩보안법 38조에 외국인 처벌 근거"
홍콩의 한 식당 외벽에 3일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포스트잇이 가득하게 부착돼 있다. 홍콩 경찰은 식당 벽에 손님들이 정부를 비판하는 포스트잇을 붙이는 것도 홍콩보안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반체제 인사들에게 있어서 홍콩은 한때 안전한 곳으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공항에서 환승조차 맘 편히 못 할 곳이 됐다.
미국 CNN 방송은 4일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발효로 중국 공산당에 비판적인 활동가, 예술가, 학자들이 홍콩에 발을 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전했다.
외국인일지라도 전 세계 어디에서든 중국 정부를 비판한다면 홍콩을 거쳐 다른 나라로 향하는 중에도 중국 당국에 체포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예일대 법학대학원 폴차이중국센터 제러미 다음 선임 연구원은 홍콩보안법이 "순수하게 말에 관한 것"을 문제 삼고 있다며 홍콩 밖에서 중국을 비판했을지라도 관할 구역에 들어가는 순간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달 30일 밤부터 발효된 홍콩보안법은 홍콩에서 국가 분열,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에 최고 무기징역 형까지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홍콩보안법 38조는 소급적용은 하지 않지만, 홍콩 영주권자가 아닌 사람도 홍콩 밖에서 해당 법을 위반했다고 판단되면 처벌할 수 있도록 명시해 중국 역외 지역에서 외국인이 중국을 비난했을 때도 처벌할 근거가 마련됐다.
미국 활동가들이 1일 워싱턴DC의 연방의회 앞에서 중국의 홍콩보안법 통과를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호주로 망명한 중국계 반체제 예술가 바듀차오는 1년 전만 해도 홍콩에서 전시회를 개최할 장소를 물색해왔는데 이제는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될까 두려워 홍콩 공항을 거쳐 가지도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1989년 6월 4일 중국 (北京)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요구하던 대학생들과 시민들을 중국 정부가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해 유혈진압 했을 때 살아남은 저우펑쒀(周鋒鎖)의 생각도 같다.
미국으로 망명한 저우씨는 올해를 제외하고 1990년부터 매년 홍콩에서 열려온 톈안먼 시위 희생자 추모 집회에 참석해왔고 2014년 우산 혁명 때도 힘을 보탰지만, 이제는 홍콩행을 주저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서구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미국 뉴저지주 시튼홀 대학교에서 현대 중국법을 가르치는 매기 루이스 교수는 "홍콩에 들어가기 전 홍콩 밖에서 한 일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에 비판적인 인사들이 홍콩에 발을 들였을 때 중국 당국이 홍콩보안법을 적용할는지 알 없지만, 법 조항 자체가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 법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전적으로 중국의 마음에 달렸다고 루이스 교수는 설명했다.
바듀차오는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홍콩보안법 조항을 모호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레드라인이 어디에 그어져 있는지 모른다는 것은 중국이 원하는 만큼 권력을 확장하겠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영국에 '홍콩 망명의회' 생기나…민주화 진영 구상
홍콩 보안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
홍콩 민주화 운동 진영이 최근 통과된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에 저항하기 위해 '망명 의회'를 구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통해 중국 공산당에 민주주의를 굴복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목표라고 민주화 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이먼 정을 인용해 영국 일간 가디언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주홍콩 영국 영사관에 2년간 근무하던 사이먼 정은 홍콩 경찰로부터 영국 스파이로서 시위를 주동했다는 의심을 받아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주화 운동가로서 영국에 정치적 망명을 신청해 승인을 받았다.
사이먼 정은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망명 의회를 구성하면 중국 본토와 홍콩 정부에 민주주의가 희생될 수 없다는 명확한 신호를 보내게 될 것"이라며 "홍콩 시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비공식적 민간단체를 결성하겠다"고 말했다.
사이먼 정
그는 "망명 의회 구상은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홍콩시민과 홍콩에서 민주화 운동을 지원할 것"이라며 "중국이 공권력 사용을 강화하는 만큼 민주화 운동은 정교하고 기민하게 전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망명 의회를 어디에 설립할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삼갔다.
이어 사이먼 정은 홍콩을 대표하는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홍콩보안법을 지지한 데 대해서는 "영국 정부가 영국 고위직 임원들을 통해 HSBC에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답했다.
사이먼 정은 영국이 홍콩에 시민권 부여를 확대키로 한 것과 관련, "영국이 매우 긍정적인 신호를 보낸 것"이라며 "최소 수십 만명이 시민권을 받으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홍콩보안법 통과 이후 시위가 격화되자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으로 진압에 나섰고, 300명 이상이 체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