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모든 노동자”라고만 표현
한국외교부 “한국인 노동자”로 변형
일본에 유리한 자료로 둔갑시켜

 
 
일본 사도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광·은광에서 메이지시대 이후 건설된 갱도. 구불구불하고 좁은 에도시대 갱도와 달리 비교적 넓고 매끈하게 뚫려 있다. 사도광산에는 2천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조선인이 태평양전쟁 기간 일제에 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연합]
 

외교부가 지난달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개최를 앞두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사도광산 전시물과 관련한 일본 대표의 발언을 사실과 다르게 소개한 사실이 확인됐다. 일본 대표가 언급한 “모든 노동자”란 표현을 “한국인 노동자”로 바꿔 전달한 것이다.

지난달 27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의에서 일본 수석대표로 나선 카노 타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사도광산에서 일한 “모든 노동자”를 위한 전시물을 설치했다는 사실을 소개하며 등재 찬성을 설득했다. 하지만 우리 외교부가 낸 보도자료에는 일본 대표 발언에 등장한 “모든”이란 형용사가 “한국인”이란 명사로 바뀌어 있었다. 외교부는 “긴 발언문을 줄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긴 표현 줄이려다 생긴 일”이라 변명하는 외교부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일본 수석대표 발언문(국회 사무처 번역본)을 보면 “일본은 모든 노동자가 처했던 가혹한 노동 환경을 설명하고 이들의 고난을 기억하기 위해 모든 노동자와 관련된 새로운 전시물을 이미 현장의 설명∙전시 시설에 설치했다”고 돼 있다.

그런데 외교부가 회의 하루 전인 26일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같은 내용이 “일본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처했던 가혹한 노동환경과 그들의 고난을 기리기 위한 새로운 전시물을 사도광산 현장에 이미 설치했다”로 바뀌어있다. 

외교부는 이런 지적에 수긍하면서도 ‘일본 대표의 발언문을 옮기며 너무 긴 표현을 줄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취지로 한겨레에 해명했다.

굴종외교 숨기려는 국민 기만 시도

그러나 외교부 설명과 달리 문제의 보도자료는 일본 대표의 발언문을 ‘축약’한 것이 아니라 발언의 주요 부분을 뽑아내 소개한 것이다. 단어의 의미뿐 아니라 뉘앙스까지도 중요하게 취급하는 외교가에서 상대국 대표의 발언 일부를 자의적으로 축약·변형해 보도자료에 소개했다는 것 역시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논란이 되자 외교부는 문제가 된 발언이 한국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양국 사이에 이뤄진 합의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고 진화에 나섰다.

조정식 의원은 ”이 사건은 단순 단어 왜곡을 뛰어넘어 대일 굴종외교를 감추고자 벌인 국민 기만이자 우롱“이라며 ”외교부 보도자료가 배포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수정이 됐고, 용산 대통령실과도 소통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 전문가인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도 “한국노동자를 모든 노동자라고 말하면서 물타기 하는 것을 한국 외교부가 그대로 묵과하는 것 자체가 한국이 일본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 신형철 기자 >

8일 서울행정법원 결정, 현 이사진 26일까지 계속 업무

 
 
공영방송 3사 이사들이 지난달 5일 서울 마포구 문화방송(MBC) 경영센터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방통위의 위법한 공영방송 이사 선임 절차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

 

법원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서 임명한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문화방송 대주주) 이사 6명에 대한 임명 효력을 오는 26일까지 정지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재판장 강재원)는 8일 “피신청인(방통위)이 김동률, 손정미, 윤길용, 이우용, 임무영, 허익범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로 임명한 처분은 26일까지 그 효력을 정지한다”고 결정했다. 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지난달 31일 방통위가 임명한 방문진 새 이사진의 임기 시작일은 애초에 정해진 13일에서 최소 2주간 늦춰지게 됐다.

앞서 권태선·김기중·박선아 등 현 방문진 이사 세 명은 방통위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새 이사 6명의 임명처분 집행정지를 신청하고 임명 취소를 구하는 본안소송을 지난 5일 제기했다. 대통령이 지명한 위원장·부위원장 ‘2인 체제’에서 이뤄진 새 이사 임명 처분은 법적 정당성이 없을 뿐 아니라 합의제 행정기관의 의사결정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심의’도 거치지 않은 만큼 위법성이 크다는 것이 이들의 신청 이유다.

법원은 9일 양쪽에 대한 첫 심문기일을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피신청인인 방통위 쪽에서 기일 연기를 요청하자 이를 받아들여 19일로 기일을 늦추되 법적 다툼 대상인 새 이사진의 임명 효력도 함께 정지했다. 현 이사진 임기는 12일까지로 만약 그 이후 첫 기일이 잡히면 당사자 간 “불필요한 분쟁”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새 이사진의 취임도 26일까지 정지시켰다는 게 법원 설명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집행정지 사건에서 처분 등 효력발생일이 매우 근접해 심문을 진행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경우, 심리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최종 결정에 앞서 직권으로 단기간 집행정지 결정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법원의 이날 결정과 방송문화진흥회법(6조) 등에 따라 현 이사진은 26일까지 직무를 계속 수행하게 됐다.

이와 별도로 조능희 전 엠비시플러스 사장 등 3명의 방문진 이사 지원자가 방통위를 상대로 낸 임명처분 집행정지 건도 같은 이유로 기일이 연기됐다.   < 박강수 오연서 기자 >

한국기자협회 창립 60주년 맞아 현직 기자 1133명 대상 여론조사
부정 평가 높은 언론탄압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 기자 압수수색·기소’

 
 
▲2024년 5월9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국민보고를 취재진 없는 집무실에서 촬영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업무보고가 끝난 뒤 브리핑룸으로 이동해 기자회견을 가졌다. [대통령실]
 
 

현직 기자 대상 조사에서 응답자 77%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합의제 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를 대통령 추천 2인 만으로 운영하는 것도 “잘못됐다”는 평가가 82%에 달했다.

기자협회보는 한국기자협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마크로밀엠브레인에 의뢰해 이달 19~28일 기자 1133명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6일 공개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현재(7월12일 기준)까지 총 15개 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라는 질문에 77.1%가 부정 평가해 긍정 평가(15.8%)를 확연히 앞섰다. 부정 평가 중 ‘매우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자도 50.2%로 과반이다.

대통령 거부권에 대한 부정 평가는 ‘서울소재 지상파 방송사’(90.9%), ‘지역소재 지상파 방송사’(85.1%)에서 높았다. ‘전국종합일간지’(72.9%), ‘종편채널/보도채널’(73.0%) 기자들의 부정 평가도 70%대에 이른다. 기자들이 스스로 밝힌 정치성향별 부정 평가는 진보 96.5%, 중도 79.6%, 보수 36.5% 등이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잘못됐다고 평가한 이유(873명, 중복응답)는 △거부권의 과도한 남용(61.5%) △대통령의 독재적 행보(41.9%) △대통령이 삼권분립 취지를 위배(27.7%) △총선 민심을 반영 못함(21.3%) △정치권 갈등 심화(10.5%) 순이다.

거부권 행사를 긍정 평가한 이유(179명)는 △일방적 입법에 대한 방어(55.9%) △야당이 삼권분립 취지를 위배(41.3%) △대통령의 적법한 권한(33.5%) △논란이 많은 법안(29.1%) △총선 후 거대야당 견제가 필요(14.0%) 순으로 꼽혔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 소통에 대해선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87.3%, 이 중에서 ‘매우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만 과반(51.5%)이다. 긍정평가는 7.9%,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4.9%다. 기자협회보는 “2023년 여론조사 당시 동일한 질문에서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85.1%, 잘하고 있다는 비율은 9.9%였다. 지난 1년 사이 윤석열 정부의 언론 소통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1일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이동하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연합]
 

방통위 ‘2인 체제’에 대한 평가도 응답자의 82.2%가 잘못하고 있다고 밝힌 반면, 잘 하고 있다는 평가는 7.5%에 불과하다. ‘윤석열 정부 방통위는 지난해 8월부터 2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부정 평가 이유(931명)는 △대통령 지명 2인이 일방적으로 주요 정책 심의 의결(47.0%) △5인 합의제 기구 입법 취지 훼손(45.5%) 순이다. 긍정 평가한 기자들(85명) 중 60%는 ‘국회 몫 방통위원 추천 표결을 거부한 민주당이 원인제공’을 했다고 봤다.

윤 대통령 취임 후 ‘언론탄압’ 논란 중 가장 잘못하고 있다고 꼽힌 사안은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자 압수수색·기소’로,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85.7%로 나타났다. ‘언론탄압’ ‘언론장악’ 비판을 받은 사안을 두고 매우 잘못하고 있다(1점)에서 매우 잘하고 있다(5점)까지 5점 척도로 평가한 점수는 1.57점이 나왔다.

부정 평가가 70% 이상인 사안은 △MBC 전용기 탑승배제 및 바이든-날리면 사태(1.73점, 79%) △방심위 등 징계남발 및 청부심의 논란(1.81점, 부정 78%) △공영방송 이사 및 사장 교체 시도(1.97점, 부정 73%) 등이다.

뒤이어 △방송3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2.08점, 부정 68%) △공영언론 YTN 민영화(2.15점, 부정 66%) △TBS 예산 삭감(2.41점, 부정 57%) △KBS, EBS 수신료 분리징수(2.73점, 부정 45%) 순으로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윤석열 정부와 22대 국회가 우선 처리해야 할 미디어 정책(중복응답)도 △방통위‧방심위 독립성 강화(55.7%) △공영방송사 정치적 독립 보장(53.8%) 등 응답률이 높아 독립성 강화에 방점이 찍혔다. 뒤이어 △신문산업 지원(32.1%) △지역언론 지원(31.2%) △디지털뉴스 시장 포털종속 해소(27.8%) △AI 기업 규제 및 뉴스 콘텐츠 저작권 보호(18.7%) △시장상황 변화 따른 방송산업 규제 완화(15.7%) △글로벌 OTT, 유튜브 규제(14.0%) 순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한국기자협회 소속 회원 1만1496명 가운데 문자 발송에 성공한 1만1447명 대상의 모바일 설문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응답률은 9.9%(응답자 1133명),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오차범위 ±2.9%p다. 회원들 소속 언론사 유형, 지역별 비중 등에 대해 기자협회 데이터를 반영해 응답자가 고르게 분포될 수 있도록 고려했고, 회원별 집계가 어려운 성별, 직위 항목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2023 한국의 언론인’을 참고했다.           < 노지민 기자 >

 

김태규 권익위 부위원장, 지난달 31일 퇴임 후 방통위 부위원장 직행
김홍일 권익위원장은 방통위원장 후보 지명에도 사퇴 안 하고 16일 버텨
두 인물, 공영방송 이사·방심위원 ‘속전속결’ 법 위반 판단으로 해임 도와

 
 
 
 
▲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전 권익위원장)과 김태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전 권익위 부위원장). [연합]
 

김태규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부위원장이 지난달 30일까지 권익위 부위원장 신분이었다가 다음 날인 지난달 31일 오전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부위원장으로 출근했다. 권익위에서 방통위로 넘어온 인사는 김태규 부위원장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6월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계획안을 기습 의결하고 자진 사퇴한 김홍일 전 방통위원장은 지난해 12월6일 권익위원장 신분으로 방통위원장 후보에 지명됐다. 김 전 위원장은 후보로 지명된 이후에도 권익위로 출근했으며 권익위원장 신분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했는데, 16일이 지나서야 기자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기습적으로 이임식을 진행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같은 달 29일 김 위원장 임명안을 재가했다.

김 전 위원장에 이어 김태규 직무대행이 방통위로 오게 되자,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권익위는 방통위 인큐베이터인가? 권익위 김홍일, 김태규 두 사람을 방통위로 보냈으니”라고 주장했다. 

김 전 위원장은 2023년 7월3일부터 권익위원장을, 김 직무대행은 2022년 10월22일부터 권익위 부위원장 임기를 시작했다. 김 전 위원장과 김 직무대행 재임 도중 권익위는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남영진 KBS 이사장 청탁금지법 위반, 정민영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심의위원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권태선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장·김기중 이사 청탁금지법 위반 등을 조사했다. 이들에 대한 조사는 각각 40일, 10일, 62일 만에 끝났고, 모두 해임으로 이어졌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추천인 정민영 심의위원에 대해선 신고 10일 만에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결론을 내려 방심위 구성이 여권 다수로 바뀌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박민 KBS 사장에 대한 청탁금지법 위반 여부는 84일 만에 판단했는데, 위법하지 않다고 봤다. 지난해 1월8일 정승윤 권익위원장 직무대행은 박 사장이 문화일보에 재직할 당시 자문료 명목으로 매월 500만 원씩 3개월간 총 1500만 원을 수수했다는 사건에 대해 “청탁금지법상 수수 금지 예외 상황인 ‘정당한 권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권익위는 ‘방송장악’을 위한 정치적 판단을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일례로 지난해 12월 류희림 방심위원장의 ‘민원사주’ 의혹에 대해 신고가 들어왔지만 결론 내기를 차일피일 미루다 약 7개월 뒤인 7월 8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권익위는 류 위원장의 법률 위반을 판단하지 않고 방심위로 송부 결정했고 외부에선 권익위가 ‘면죄부를 준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사실상 ‘류희림의 문제를 류희림이 판단하라’는 권익위 결정 속에 류희림 위원장은 지난달 23일 방심위원장 연임에 성공했다.

잇따른 방송사 중징계로 ‘입틀막’ 비판이 나온 22대 총선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여권 성향 위원(최철호·권재홍)에 대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신고(2월19일)는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여권 분류 인사에 대한 신고는 미온적으로, 야권 분류 인사에 대한 신고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양상이 반복되는 가운데, 권익위에 대한 신뢰는 추락하고 있다.    < 박서연 박재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