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구한말 · 일제강점기에 만든 태극기 3건 지정 예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인 데니 태극기.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만든 태극기와 광복군 유물 등 항일독립운동사 유산들이 대거 국가보물과 근대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12일 열린 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 회의 결정에 따라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인 1880년대의 ‘데니 태극기’와 1919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서울 진관사 태극기’, 1941년 애국지사 백범 김구가 독립의지를 담은 글귀를 적은 ‘김구 서명문 태극기’를 국가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또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에서 열린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의 ‘서명문’과 ‘축하문’ , 광복군 기관지 <광복> (光復) , 광복군 훈련교재 <정훈대강> , ‘김좌진 장군 사회장 약력서’를 근대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데니 태극기’는 1886~1891년 조선 정부의 외교·내부 고문을 지낸 미국 외교관 오웬 니커슨 데니 (1838~1900)가 1891년 1월 귀국하면서 가져갔다가 1981년 후손이 한국에 기증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세로 182.5㎝, 가로 262 ㎝로 현재 국내에 전하는 옛 태극기 가운데 가장 크다. 데니가 조선에 머무른 마지막 해인 1890년이 제작 하한연대로 추정되는데, 현재 실물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여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문화재청 쪽은 “1882년 국기를 제정해 독립국임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조선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증명하는 유물이자 , 일제강점기 독립 열망의 상징이 된 태극기의 기원을 보여준다는 점과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큰 태극기라는 점 등에서 역사적 의의가 매우 높아 보물로 지정할 사유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세로 44.3㎝, 가로 62㎝ 크기의 작은 태극기다. 1 941년 3월 16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의 김구 주석이 독립의지를 담은 묵서 글귀 143자를 적어 현지에 전도사로 와있던 벨기에 신부 샤를 메우스에게 준 유물이다. 미국으로 건너간 메우스 신부는 독립지사 안창호의 부인 이혜련에게 태극기를 전했고 , 이를 후손들이 보관하다 ‘안창호 유품 ’ 중 하나로 1985년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19세기 ~20세기 초 제작 태극기 중 정확한 제작 시기와 전래 경위가 알려진 유일한 유물이며, 1942년 6월 임시정부가 제작 규정을 통일하기 직전에 제작되어 태극기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데 귀중한 정보를 주는 자료로도 평가된다.

 

               서울 진관사에서 발견된 태극기.

 

‘진관사 태극기’는 지난 2009년 5월 서울 은평구 진관사 칠성각 내부 벽체를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국내 사찰에서 처음 발견된 일제강점기의 태극기로 , 불교 사찰이 독립운동의 배후에서 주요 거점 구실을 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유일하고 가장 오래된 사례란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큰 유물로 꼽힌다.

 

문화재청은 지정 예고된 3건의 태극기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 의견을 듣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보물로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이밖에 지난 6월 근대문화재 등록이 예고됐던 ‘서윤복 제 51회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 메달’과 ‘공군사관학교 제 1기 졸업생 첫 출격 서명문 태극기’는 이날 문화재 등록이 확정됐다 . 노형석 기자

“이제와서 조국 묻어두자면 뭐하러 촛불광장 나왔나”

“안중근 사형집행으로 끝났다며 일본에 협조할 수 있나”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예비후보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분열은 곧 패배"라며 정권 재창출을 위한 내부 통합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을 ‘안중근 의사’에 비유해 옹호하며 개혁 저항세력을 강하게 비판했다.

 

추 전 장관은 15일 보도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조 전 장관의 배우자인 정경심씨의 항소심 판결과 관련해 “이제 와서 조국을 묻어두자고 하면 뭐하러 정치하고 촛불 광장에 나왔던 것이냐”고 했다. 그러면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일본 재판관의 재판을 받아 테러리스트가 돼 사형집행을 당했는데, 그렇게 끝났으니 일본의 지배를 받아들이고 협조하자는 얘기나 똑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또한 “(이번 수사는) 개혁 저항 세력의 의도와 셈법으로 이뤄진 것으로, 모두 개혁해야 할 과제”라고 검찰 개혁을 강하게 옹호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정부의 가석방 결정을 비판해온 추 전 장관은 이날 인터뷰에서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추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가 반부패 의지, 적폐 청산 노력을 인정받아 국제투명성기구로부터 역대 최고 성적을 받았다”며 “특히 경제 사범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보여서 점수를 딴 건데 그것을 되돌리니까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 부회장 가석방은 문 대통령과 관련 없는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문 대통령의 뜻이 가석방 결정에 반영되지 않았겠냐는 데 대해 “내가 장관을 해보니 대통령께 물어볼 필요가 없는 일들이 많다. 나 같으면 보고를 안 했을 것 같다”며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책임이 “당연하다”고 했다.

 

추 전 장관은 이날 인터뷰에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에게 날을 세웠다. 그는 이 전 대표가 지난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국회 표결 당시 자신은 반대표를 던졌다고 주장하는 것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추 전 장관은 “(이 전 대표가) 병풍 뒤에 숨어있다가 툭 튀어나와 반대했다고 한다”며 “당시 마지막까지 유일하게 말린 사람은 저뿐이었다. 그때 입 싹 닫고 눈치 보고 있다가 뒤늦게 반대했다고 하면 말이 되는 거냐. 그렇게 정치하면 안 된다”라고 쏘아붙였다. 이 지사의 서울공항 이전 공약에 대해선 “투기 세력에 먹잇감을 던져주는 셈이다. 경제를 눈곱만큼이라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또 국가 안보상 성남기지는 수도권 방어에 대단히 중요한 곳”이라고 했다.

 

추 전 장관은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와 힘을 합치고 있다는 이른바 ‘명추연대’ 논란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모함”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누구를 편들어서가 아니라 원칙 중심의 발언을 해온 것뿐”이라고 했다.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사

 

"통일에 더 많은 시간 걸려도"…광복절 경축사서 '한반도 모델' 제시

"일본과 대화의 문 항상 열어둬…역사문제, 국제사회 기준 맞게"

"10월 국민 70% 2차접종 완료…백신허브국 도약"

'선진국으로서의 꿈' 밝혀…글로벌공급망 역할강화·저탄소경제전환 포함

 

광복절 경축사 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한반도 평화를 공고하게 제도화하는 것이야말로 남과 북 모두에게 큰 이익"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경축사를 통해 남북이 올해로 유엔에 동시 가입한 지 30년을 맞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의 공고한 제도화'를 위한 '한반도 모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분단은 성장과 번영, 항구적 평화를 가로막은 강고한 장벽으로, 우리도 이 장벽을 걷어낼 수 있다"며 "비록 통일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한반도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한반도 모델은 통일에 이르기 전이라도 남북 공존, 한반도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이를 통한 동북아 번영에의 기여를 뜻한다.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떨쳐내고 사실상 섬나라에서 벗어나 대륙으로 연결될 때 누릴 수 있는 이익은 막대하다"며 "화해와 협력의 노력을 그치지 않으면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새로운 희망과 번영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이 약 9개월의 남은 임기 동안 정상회담을 비롯해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행보에 나설지 주목된다.

 

다만 문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북한에 새로운 제안을 내놓지는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여러 차례 제안한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와 관련해서도 "동아시아 생명공동체의 일원인 북한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만 했다.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북한의 강도 높은 반발 등 녹록지 않은 한반도 여건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광복절 경축사 하는 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한일관계와 관련해서는 거듭 대화 의지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일 양국이 함께 가야 할 방향으로 분업과 협력을 통한 경제성장을 꼽은 뒤 "양국 현안은 물론 코로나와 기후위기 등 세계가 직면한 위협에 공동대응하기 위한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두고 있다"며 "이웃 나라다운 협력의 모범을 보여주게 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또 "바로잡아야 할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와 기준에 맞는 행동과 실천으로 해결해 나갈 것"이라며 한일 간 협력·과거사 과제를 '투트랙'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델타 변이 확산으로 인한 4차 유행을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며 "10월이면 전 국민의 70%가 2차 접종까지 완료할 것이며 목표 접종률을 더욱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한국이 개발도상국 중 최초로 선진국으로 격상된 점을 거론, "이제 선진국이 된 우리는 다시 꿈꾼다"며 백신 허브 국가 도약,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역할 강화, 선도적 저탄소 경제 전환 추진 등을 제시했다.

 

문대통령, 마지막 8·15 경축사…대북·대일 새 제안 없었다

엄중한 외교안보 여건 고려…동북아 평화·번영 '한반도모델' 제시

'평화의 제도화' 언급 주목…남북정상회담 등 불씨 살릴까

'꿈' 20번, '세계' 20번, 미래비전에 초점…방역·경제 이슈도 집중

 

광복절 경축사 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선도국가 도약', '한반도 모델 구축'을 핵심으로 하는 국가 비전을 제시했다.

 

관심을 모았던 대북·대일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새 제안을 내놓는 대신 임기 마지막 광복절 경축사인 만큼 국정 전반의 장기적인 청사진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경축사하는 문재인 대통령

 

경축사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 새 대북 제안 없이 '한반도모델' 비전만…남북정상회담 반전 주목

 

이날 경축사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동북아시아 전체의 번영에 기여하는 '한반도 모델'을 언급한 부분이다.

 

이는 한반도의 평화는 남북은 물론 국제사회의 번영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는 문 대통령의 생각을 드러나는 대목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를 공고하게 제도화하는 것이야말로 남과 북 모두에게 큰 이익이 된다"며 북한에 대화의 장으로 나와 한반도 모델 실현에 동참하라는 우회적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이제까지 언급해 오던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남북 철도연결이나 이산가족 상봉 등 구체적인 남북 협력사업에 대해서도 연설문에 담지 않았다.

 

여기에는 최근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원 2주 만에 다시 가동 중단되는 등 최근 남북관계가 엄중한 시기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섣부르게 새 제안을 내놓을 경우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엿보인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남북 협력에 대한 변함없는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남북 정상회담 등의 '깜짝카드'를 통한 상황 반전 여부도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연합훈련이 지나가고 나면 내달 예정된 유엔총회 등을 계기로 반전의 불씨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경축사 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 한일문제 '투트랙' 속 극일·반일 메시지 없어…"대화의 문" 거듭 강조

 

한일관계에 있어서도 구체적 제안은 나오지 않았다.

 

이 역시 한일 양국이 좀처럼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기본적으로는 미래지향적 협력과 과거사 문제 해결을 별도로 풀어가자는 '투트랙' 전략을 유지했다.

 

다만 이제까지 광복절 경축사와 비교해 보면 이날 연설은 대화의 가능성에 무게를 둔 유화적 메시지로 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일본 수출규제 직후인 2019년 광복절에는 일본을 향해 "이웃 나라에 불행을 줬던 과거를 성찰해야 한다"며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지향점으로 제시했다.

 

지난해에는 강제징용 판결을 거론하며 "대법원의 판결은 대한민국의 영토 내에서 최고의 법적 권위와 집행력을 가진다"며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압박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올해는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 나아가 "양국은 분업과 협력으로 경제성장을 함께 이뤘다"며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안재홍 선생의 연설을 예로 들며 "우리 선조들은 해방 공간에서 일본인들에 대한 복수 대신 포용을 선택했다"고 언급한 점도 주목된다.

 

 '길이 보전하세'=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길이 보전하세'라고 인쇄된 마스크를 쓰고 참석해 있다.

 

◇ 꿈 20번, 세계 20번, 경제 18번…포스트코로나 선도국가 도약 초점

 

문 대통령은 대북 메시지나 대일 메시지의 비중을 줄인 대신 방역과 경제를 두 축으로 하는 코로나 극복 전략에 연설문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우리는 지난날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새로운 꿈을 꿀 차례"라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선도국가로 한 단계 도약하는 데 국민들이 힘을 모아달라고 당부했다.

 

이런 생각을 반영하듯 이날 연설문에 '꿈'이라는 단어와 '세계'라는 단어가 각각 20번씩 가장 많이 사용됐다.

 

'경제'라는 단어는 18번, '코로나'라는 단어는 10번씩 쓰였고, '선진'(9번), '선도'(7번) 라는 말도 많이 등장했다.

 

반대로 '일본'이라는 단어는 지난해 8번에서 올해 3번으로 줄었다.

 

또 지난해에는 '남북'이라는 단어가 8번 쓰였으나 올해는 '남북', '남과 북', '북한'이라는 단어를 모두 합쳐 4번 등장했다.

 

문대통령,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사 전문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이제 선진국이 된 우리는 다시 꿈꾼다. 평화롭고 품격 있는 선진국이 되고 싶은 꿈, 국제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는 나라가 되고자 하는 꿈"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경축사를 통해 "지난 6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만장일치로 개발도상국 중 최초로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격상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열어왔다. 식민지와 제3세계 국가에서 시작해 개발도상국의 '새로운 성공 모델'을 만들어냈다"며 "우리는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문 대통령은 "우리는 지난날의 대한민국이 아니다"라며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새로운 꿈을 꿀 차례다. 그 꿈을 향해 국민 모두가 함께 나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다음은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전문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광복 76주년을 맞은 오늘, 마침내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고국에 도착합니다. 홍범도 장군은 역사적인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대한 독립군 사령관이었으며, 뒷날 카자흐스탄 고려인 동포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물심양면으로 협력해주신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고려인 동포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윤봉길 의사와 이봉창 의사를 시작으로 오늘 홍범도 장군까지 애국지사 백마흔네 분의 유해가 고향산천으로 돌아왔습니다. 독립 영웅들을 조국으로 모시는 일을 국가와 후대들이 마땅히 해야 할 책무이자 영광으로 여기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선열들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주독립의 꿈을 잃지 않았고, 어디서든 삶의 터전을 일구며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그 강인한 의지가 후대에 이어져 지금도 국난극복의 힘이 되고 있습니다. 선열들과 독립유공자, 유가족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오늘 기념식이 열리는 '문화역서울284'는 일제강점기, 아픔과 눈물의 장소였습니다. 우리 땅에서 생산된 물자들이 수탈되어 이곳에서 실려 나갔습니다. 고난의 길을 떠나는 독립지사들과 땅을 잃은 농민들이 이곳에서 조국과 이별했고, 꽃다운 젊음을 뒤로 하고 전쟁터로 끌려가는 학도병들과 가족들이 이곳에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광복과 함께 역과 광장은 꿈과 희망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만주와 연해주에서 출발한 기차에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부산, 인천, 군산을 비롯한 항구도시들도 희망에 찬 귀향민으로 북적였습니다.

 

광복의 감격과 그날의 희망은 지금도 우리의 미래입니다. 모두가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는 꿈으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는 자식들을 가르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전국 145만 명이었던 초·중·고 학생이 해방 후 불과 2년 만에 235만 명으로 60% 이상 증가했습니다. 뜨거운 교육열로 의무교육이 시작되었고, 우수한 인재들이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이 되었습니다.

 

농산물 생산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일제의 수탈로 억눌렸던 작물 생산량이 농지개혁 이후 급증했습니다. 1970년대에 이르러 식민지 시절의 세 배로 늘었고, 마침내 보릿고개를 넘어섰습니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는 국민들의 의지는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계획부터 경제·사회개발계획, 신경제 계획과 IT산업 육성, 녹색성장과 창조경제로 이어지며,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올라서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2017년 3만 불을 넘어선 1인당 GDP도 지난해 G7 국가를 넘어섰습니다.

 

자주국방은 지난 100년간 우리의 절실한 꿈이었습니다. 육군은 독립군과 광복군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 최고 수준의 K2전차, K9자주포, K21장갑차를 운용하는 '첨단 강군'으로 성장했습니다.

 

일본군이 버리고 간 경비정과 녹슨 전함으로 창설한 해군은 이지스함을 포함한 구축함 아홉 척, 잠수함 열아홉 척 등 모두 150여 척의 함정을 운용하는 대양해군이 되었습니다.

 

1949년, 스무대의 경비행기밖에 갖추지 못했던 공군은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첨단 초음속전투기 KF-21을 자체 개발하고, 강력한 우주공군으로 비상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종합군사력 세계 6위에 오른 군사강국입니다. 4차 산업혁명과 우주 시대의 새로운 안보환경에 대비하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방위력을 이뤄가고 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를 꿈꿨습니다. 오늘 우리 문화예술은 세계를 무대로 그 소망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BTS는 신곡을 이어가며 빌보드 순위 1위를 지키는 최초의 기록을 세우고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은 칸 영화제와 아카데미를 석권했고, 윤여정 배우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K-팝과 영화뿐만 아니라 게임, 드라마, 웹툰,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가 전 세계에서 사랑받으며, 지난해 수출액이 사상 처음 100억 불을 돌파했습니다.

 

우리 문화·예술의 높은 역량은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분야에 그치지 않습니다. 클래식 음악과 발레 같은 전통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우리 문화예술인들의 성취는 탁월합니다.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수용한 우리 문화예술인들이 창의성과 열정으로 이룬 것입니다.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우리 민족의 저력입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새로운 꿈을 꾸었습니다. 꿈을 잃지 않았기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독립과 자유, 인간다운 삶을 향한 꿈이 해방을 가져왔습니다.

 

지난 6월 유엔무역개발회의는 만장일치로, 개발도상국 중 최초로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격상했습니다.

 

이제 선진국이 된 우리는 다시 꿈꿉니다. 평화롭고 품격 있는 선진국이 되고 싶은 꿈입니다. 국제사회에서 제 몫을 다하는 나라가 되고자 하는 꿈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열어왔습니다. 식민지와 제3세계 국가에서 시작해 개발도상국의 '새로운 성공 모델'을 만들어냈습니다. 우리의 성장 경험을 개도국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만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이 되었습니다.

 

코로나의 거센 도전에 맞서며 우리 국민이 가진 높은 공동체 의식의 힘을 보여주었고, 인류가 위기를 극복하는 모범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선조들에게서 물려받은 강인한 '상생과 협력의 힘'이 있습니다. 식민지배의 굴욕과 차별, 폭력과 착취를 겪고서도 우리 선조들은 해방 공간에서 일본인들에 대한 복수 대신 포용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꿈을 이루기 위해 마음을 모았습니다. 위기 앞에서는 더욱 뭉쳤습니다. 서로에게 힘이 되며 숱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켰습니다. 상생 협력의 힘이 있기에 우리는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하게 될 것입니다.

 

촛불혁명으로 국민 모두가 함께 꾼 꿈은 '나라다운 나라', '함께 잘 사는 나라'였습니다. 우리는 주52시간제와 최저임금 인상,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노동기본권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고용보험 확대와 기초연금 인상,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치매국가책임제로 우리 사회의 포용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코로나 위기 역시 어느 선진국보다 안정적으로 극복하고 있습니다. 델타 변이 확산으로 인한 4차 유행도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백신 접종도 목표에 다가가고 있습니다. 10월이면 전 국민의 70%가 2차 접종까지 완료할 것이며, 목표 접종률을 더욱 높일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회복하고, 함께 도약할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소상공인의 피해를 두텁게 보상하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취약계층의 고용기회를 늘리는데 있는 힘을 다하겠습니다. 저소득층 생계지원을 확대하여 격차를 줄이는 포용적 회복을 이루겠습니다.

 

세계 질서가 새롭게 형성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에 서서 선도국가로 나아갈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선도형 경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핵심 경쟁력으로 삼는 경제이며, 사람을 중심으로 성장하는 경제입니다. 지난해까지 유니콘 기업이 열다섯 개로 늘었고, 올해 상반기 벤처투자가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는 등 제2벤처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조선 수주 세계 1위, 자동차 세계 5강,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와 배터리, 바이오에서도 선전하며 역대 최대 수출 기록을 새롭게 쓰고 있습니다. 정부는 경제에 혁신과 상생과 포용의 가치를 심어 더욱 강하게 만들 것입니다.

 

2025년까지 총 220조 원을 투자하는 한국판 뉴딜은 '사람' 중심의 '혁신적 포용국가'를 향한 로드맵이자, 새로운 도약을 이룰 국가발전 전략입니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에 디지털 뉴딜, 그린 뉴딜과 함께 휴먼 뉴딜을 또 하나의 축으로 세웠습니다.

 

전 국민 고용보험, 생계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전면 폐지 등 사회안전망을 더 촘촘히 구축하고, 사람에 대한 투자로 디지털과 그린 전환을 이끌겠습니다.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을 비롯한 미래 인력양성을 통해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할 것입니다. 디지털과 그린 전환의 과정에서 뒤처지는 국민이 없도록 공정한 전환에도 힘쓰겠습니다.

 

우리 정부가 추구해온 국가균형발전의 꿈은 지역균형 뉴딜을 통해 이뤄질 것입니다. 지방 재정 분권을 더욱 강화하고, '동남권 메가시티'와 같은 초광역 협력모델의 성공과 확산을 통해 수도권 집중 추세를 반전시켜야 합니다.

 

경기가 빠르고 강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그 온기가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습니다. 경제회복의 혜택을 모두에게 나누어 '함께 잘 사는 나라'의 꿈을 반드시 체감할 수 있는 현실로 만들겠습니다.

 

품격있는 선진국이 되는 첫 출발은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입니다. 차별과 배제가 아닌 포용과 관용의 사회로 한 발 더 전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서로의 처지와 생각이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우리 사회는 품격 있는 나라, 존경받는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국경을 넘어 상생과 협력을 실천해왔습니다. 개방과 통상국가의 길을 걸으며 7대 수출 대국으로 성장했고, 세계 경제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우리 정부 들어서도 RCEP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이스라엘과 FTA를 타결하며 협력의 폭을 넓혔습니다. 세계가 함께 대응하지 않으면 코로나를 이길 수 없고,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선진국과 개도국의 상생협력을 이끄는 가교 국가 역할을 해나갈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G7정상회의에 2년 연속 초청된 것은 새로운 세계질서의 태동을 의미합니다. 개방과 협력으로 키운 우리의 역량을 바탕으로 코로나 위기 극복과 함께 코로나 이후 세계 경제 재건과 평화질서에 적극 이바지할 것입니다.

 

특히,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한 우리의 성장 경험과 한류 문화, K-방역을 통해 쌓은 소프트파워를 토대로 새로운 시대의 가치와 질서 형성에 앞장설 것입니다.

 

첫째, '백신 허브 국가'로 도약하겠습니다. 우리는 세계 2위의 바이오 의약품 생산능력, 한미 백신 파트너십 등에 기반해 인류 공동의 감염병 위기극복에 앞장설 것입니다.

 

지난 5일 출범한 '글로벌 백신 허브 추진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백신 원부자재 개발부터 수급까지 집중 지원하겠습니다. 내년 상반기까지 국산 1호 백신을 상용화하는데 정부가 기업과 함께 하겠습니다.

 

둘째, 글로벌 공급망에서 우리의 역할을 더욱 높이겠습니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은 우리가 글로벌 공급망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기술격차를 더욱 벌려 글로벌 선도기지의 위상을 공고히 하겠습니다.

 

셋째, 기후위기 대응에 우리가 해야 할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는 지난해, '2050 탄소중립 선언'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환경을 위해 자발적으로 실천해 온 우리 국민들과, ESG 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선 기업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세울 수 있었던 이정표입니다.

 

정부는 지난 5일 발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토대로 국민 여론을 폭넓게 수렴하고 올해 안에, 실현가능한 2030년 감축목표를 공약하여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2050 탄소중립'은 결코 쉽지 않은 목표지만 그렇다고 부담으로만 인식할 필요는 없습니다. 탄소중립을 위한 전 세계적인 사회·경제적 대전환은 지금까지 유례가 없었던 새로운 혁신을 일으키고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우리가 선도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정부는 친환경차와 배터리, 수소경제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워왔고 석탄 발전을 줄이면서 태양광, 해상풍력과 같은 신재생에너지를 확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서가고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선도적으로 저탄소 경제 전환을 추진해갈 것입니다.

 

국제적인 연대와 협력의 폭도 넓혀나가겠습니다. 특히 석탄화력발전 의존도가 큰 개발도상국들의 에너지 전환을 돕고, 우리의 '그린뉴딜' 경험과 녹색 기술을 공유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방 다음 날인 1945년 8월 16일, 민족의 지도자 안재홍 선생은 삼천만 동포에게 드리는 방송 연설을 했습니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선생은 패전한 일본과 해방된 한국이 동등하고 호혜적인 관계로 나아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식민지 민족의 피해의식을 뛰어넘는 참으로 담대하고 포용적인 역사의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방으로 민족의식이 최고로 고양된 때였지만, 우리는 폐쇄적이거나 적대적인 민족주의로 흐르지 않았습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3·1독립운동의 정신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해방된 국민들이 실천해 온 위대한 건국의 정신입니다. 대한민국은 한결같이 그 정신을 지켜왔습니다.

 

한일 양국은, 국교 정상화 이후 오랫동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통의 가치를 기반으로 분업과 협력을 통한 경제성장을 함께 이룰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양국이 함께 가야 할 방향입니다.

 

우리 정부는 양국 현안은 물론 코로나와 기후위기 등 세계가 직면한 위협에 공동대응하기 위한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두고 있습니다.

 

바로잡아야 할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와 기준에 맞는 행동과 실천으로 해결해 나갈 것입니다.

 

한일 양국이 지혜를 모아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나가며, 이웃 나라다운 협력의 모범을 보여주게 되길 기대합니다.

 

올해는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지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 1년 전인 1990년, 동독과 서독은 45년의 분단을 끝내고 통일을 이뤘습니다. 동독과 서독은 신의와 선의를 주고받으며 신뢰를 쌓았고, 보편주의, 다원주의, 공존공영을 추구하는 '독일모델'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과거에 대한 진정성 있는 반성으로 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우려를 극복하며, 세계의 보편적 가치와 기준을 이끌어가는 EU의 선도국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분단은 성장과 번영의 가장 큰 걸림돌인 동시에 항구적 평화를 가로막는 강고한 장벽입니다. 우리도 이 장벽을 걷어낼 수 있습니다.

 

비록 통일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라도 남북이 공존하며,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통해 동북아시아 전체의 번영에 기여하는 '한반도 모델'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는 지금 정보공유와 의료방역 물품 공동비축, 코로나 대응인력 공동 훈련 등 협력사업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코로나의 위협이 결코 일시적이지 않다는 것이 분명해진 지금 그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협력을 확대해 나가면서 동아시아 생명공동체의 일원인 북한도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공고하게 제도화하는 것이야말로 남과 북 모두에게 큰 이익이 됩니다.

 

특히 대한민국이,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떨쳐내고, 사실상의 섬나라에서 벗어나 대륙으로 연결될 때 누릴 수 있는 이익은 막대합니다. 우리가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한반도 평화를 꿈꾼다면, 우리의 상상력은 한반도를 넘어 유라시아를 넘나들 것입니다.

 

화해와 협력의 노력을 그치지 않는다면, 강고한 장벽은 마침내 허물어지고,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새로운 희망과 번영이 시작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우리는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열정과 꿈을 간직했습니다. 보란 듯이 발전한 나라, 나와 이웃이 함께 잘 사는 나라,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나라를 향해 걸어왔습니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느끼게 되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국제 사회는, 경제와 방역, 민주주의와 문화예술을 비롯한 많은 분야에서 대한민국이 보여주는 역량과 성취에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날의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새로운 꿈을 꿀 차례입니다. 그 꿈을 향해 국민 모두가 함께 나아가길 바랍니다. 자유와 평화를 향한 강인한 의지와 공동체를 위한 헌신, 연대와 협력의 위대한 유산을 물려주신 선열들께 마음을 다해 존경을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북한, 광복절 맞아 일본에 "과거범죄 끝까지 계산할 것"

조선 일본군 성노예 및 강제 연행 피해자 문제 대책위원회 성명

 

북한 단체는 15일 광복절을 맞아 일본군 위안부 및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 문제 등 일본의 과거 범죄를 비난하며 사죄를 촉구했다.

 

'조선 일본군 성노예 및 강제 연행 피해자 문제 대책위원회'는 이날 '일본의 과거범죄를 끝까지 계산할 것이다' 제목의 성명을 내고 "일본이 지난 세기 40여 년간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헤아릴 수 없는 인적·물적·정신적 피해를 준 데 대해, 그리고 패망 후 수십 년 동안 우리 공화국을 적대시하고 재일 동포들을 박해한 데 대해 끝까지 계산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단체는 성명에서 일제 강점기 위안부와 한국인 강제노역의 참상을 언급하면서 "가해 당사자인 일본이 패망 후 오늘까지도 우리 인민 앞에 지은 죄를 씻기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비난했다.

 

특히 일본이 "사죄와 반성은커녕 우리 공화국에 대해 비열하기 그지없는 적대시 정책을 취하면서 반공화국 제재 조치를 해마다 연장하고, 총련과 재일 조선인들에게 부당한 정치적 탄압과 차별을 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일본이 꼬물만 한(아주 조금의) 죄의식도 가지고 있지 않다"며 "오히려 '아시아의 맹주'로 자처하던 옛 지위를 되찾기 위해 더욱 무분별하게 날뛰고 있다"고 밝혔다.

 

단체는 "(일본의) 침략행위와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올바로 반성하고 깨끗이 청산하는 것은 회피할 수도, 모면할 수도 없는 일본의 법적 책임이고 도덕적 의무"라며 "피의 대가를 기어이 받아내고야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일본당국은 우리의 모든 피해자와 유가족들, 우리 인민의 굳은 의지를 똑똑히 새겨두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 탓 사전제작 영상 온라인 중계 …다채로운 기념행사 마련

위안부 문제연, 영어 웹진 '결' 개간…각종 역사자료 영어로 번역 공개

 

소녀상과 김학순 할머니= 지난해 8월14일 시민단체들이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자회견을 연 전북 전주 풍남문 광장에 김학순 할머니 손팻말과 소녀상이 나란히 놓여 있는 모습.

 

여성가족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14일 오전 11시 정부기념식을 온라인으로 개최한다고 13일 밝혔다.

 

1991년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날이다.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2017년 기림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매년 기념하고 있다.

 

올해 기념식은 '김학순 할머니 증언 30주년'의 의미를 살려 '함께 지켜온 30년, 세상을 변화시킬 당신과 함께'를 주제로 진행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영상메시지를 통해 "과거의 아픔에 머물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신 할머님들의 헌신에 경의를 표하며, 정부는 피해자 중심의 문제해결이 이뤄질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할 예정이다.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미리 배포한 기념사에서 "지난 30년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과 전쟁 중 성폭력과 같은 여성인권 침해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왔음에도 최근 국내외에서 위안부 피해의 역사를 부정·왜곡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이러한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고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연구와 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전 제작한 기념식 영상을 송출하는 온라인 행사로 진행되며, 여가부와 KTV국민방송 유튜브 채널을 통해 중계된다.

 

기념식은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 이후 현재까지 30년간 이어진 연대와 실천, 미래를 위한 희망을 표현한 기획 영상과 기념 공연 등으로 구성된다.

 

또 기림의 날을 전후로 여가부의 '청소년 작품 공모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소의 교육용 콘텐츠 공개·전시 등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연구소는 영어 웹진 '결'(www.kyeol.kr/en)을 선보인다.

 

'결'에서는 그동안 한국어로 제공하던 위안부 관련 자료 해설과 논평, 좌담, 에세이 등을 영어로 번역해 제공한다.

 

또 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는 일본군, 정부, 유엔(UN)의 공문서 등 주요 역사자료 총 150여건을 교육용 영어 콘텐츠로 제작해 13일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공개할 계획이다.

 

아울러 피해자의 증언을 영상으로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대화형 콘텐츠도 대구 중구 희움 역사관과 서울 마포구 서강대 곤자가프라자에서 오는 11월까지 만나볼 수 있다.

 

이밖에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 등도 기관별로 특색 있는 기념식과 강연회, 공연, 전시회 등 다채로운 시민 참여 행사를 연다.

 

정영애 장관은 "이번 기림의 날 행사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한 피해 할머니들의 용기와 노력을 현세대와 미래 세대가 함께 기억하고 이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여가부도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위안부 문제를 여성 인권과 평화의 가치로서 국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2020년 8월 14일 충남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행사에 참석한 이용수 할머니.

 

"김학순의 용기가 위안부 둘러싼 세계의 침묵 깨뜨려"

   고 김학순 할머니 공개증언 30주년 기념 학술대회

   "역사 부정주의 발호…할머니 위해 기억 이어가야"

 

'김학순 공개증언 30주년 국제학술대회'=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에서 '김학순 공개증언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온ㆍ오프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다.

 

"나는 부끄럽지 않다. 이 순간을 내 평생 기다려왔다."

 

1991년 8월 14일 한국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로서 처음 피해 사실을 공개한 김학순(1924∼1997) 할머니의 증언 3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대회가 13일 서울 서대문구 청년문화공간 JU동교동에서 열렸다.

 

세계 각지에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치유를 위해 활동해온 참석자들은 김 할머니가 낸 용기를 회고하면서 역사 부정에 맞서 피해자들의 기억을 계승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김학순 공개증언 30주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고 공개적으로 증언한 김학순(왼쪽 세번째)할머니가 1991년 12월 7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일본 최초의 증언집회에 참석하고 있다.[김혜원 기증,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제공]

 

◇ "김학순 증언, 세계 성폭력 여성 피해 경험 공유의 계기"

 

엘리자베스 손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김학순 할머니는 전 세계 여러 세대의 여성들이 본인들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며 "살아있는 증인으로서 세상에 당신의 전쟁 경험을 전하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 주어진 의무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라고 말했다.

 

양현아 서울대 교수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이 "힘없고 이름 없었던 지역의 기층민에 의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아시아, 세계의 깊은 침묵이 깨졌던 계기"라고 평가했다.

 

김 할머니가 일으킨 파장으로 한옥선(1919∼2009), 안법순(1925∼2003), 김화선(1926∼2012), 최갑순(1919∼2012) 등 다른 피해자들 역시 고통스럽게 자신의 아픔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해외에서도 네덜란드의 얀 루프 오헨 할머니(1923∼2019) 할머니 등이 이런 증언을 보고 용기를 냈다.

 

이런 피해 생존자 100여명의 목소리는 1993년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을 시작으로 2004년까지 나온 총 8권의 증언집 시리즈에 담겼다. 지역 단체들이 출간한 증언집을 더하면 기록은 모두 17권에 이른다.

 

나눔의집 위안부 피해 할머니 흉상

 

◇ 김학순과 함께해온 일 활동가들 "일본 돌아보게 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일본 사회도 술렁였다. 김 할머니는 1991년 12월 일본 도쿄와 간사이(關西) 각지에서 자신의 증언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집회에 참석했고,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양징자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전국행동 공동대표는 이런 집회가 이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 중이던 일본 여성들에게 힘을 주고 운동의 후속세대를 만들어낸 원동력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공격도 만만치 않았다. 당장 김 할머니는 일본 집회에서 "어째서 전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야기하기로 결심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기억이 진실이 아니라거나 '일본은 책임이 없다'는 주장은 일본 총리에게서까지 나왔다.

 

양 공동대표는 "당시 일본 사회는 그녀들(피해자들)이 50년 동안 사실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왔다는 사실에 대해 상상력을 갖지 못했다"며 "운동을 위해 일어선 여성들조차 한국의 운동으로부터의 물음이 있었기에 비로소 우리들이 놓쳐 온 일본의 과거 죄악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필요성에 눈 뜨게 된 것"이라고 했다.

 

아사히신문 기자이던 우에무라 다카시 '주간금요일' 발행인은 1991년 김 할머니의 사연을 일본에 처음 보도한 일로 일본 우익들로부터 극심한 공격을 당하면서도 꿋꿋이 싸워왔다고 술회했다.

 

그는 "김학순 씨가 일본 변호인단에 호소한 세 가지 바람인 일본 정부의 사과, 젊은 세대로의 기억 계승, 비석 건립이 거의 실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기억 계승에 대한 공격을 일본 정부가 저지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램지어 사태

 

◇ "일 '역사전쟁'은 진행 중…기억 지속하는 것은 모두의 의무"

 

전문가들은 최근 '램지어 사태' 등으로 대표되는 역사부정주의에 대한 경계와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야마구치 도모미 미국 몬타나주립대 교수는 현재의 '역사전쟁'을 "일본 우익이 '중국·한국이 일본을 깎아내리기 위해 싸움을 걸고 있으며 그 주전장(주된 싸움터)은 미국'이라는 인식에 근거한 일본군과 정부의 전쟁 책임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이라고 정의했다.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이런 역사 부정이 왜곡된 통계 수치를 나열하면서 학문적 모양새를 취하거나 피해자들의 증언을 자의적으로 절취하는 방식, 궤변임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확신에 찬 지속적인 주장을 하는 방식 등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일부 지식인까지 가세한 '램지어 사태'는 이를 요약해 보여주는 현상이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알렉시스 더든 미국 코네티컷대 교수는 "3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오늘 이 모든 여성이 거짓말쟁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은 일본의 현 정부"라며 "김학순은 20세기 가장 용감한 사람 중 한 명으로 남아 있고 그의 몸에 각인된 공포를 영원히 끝내기 위해 유산을 21세기에 지속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라고 덧붙였다.

 

부재의 무게, 현재의 책임…고 김복동 할머니를 되새기다

 

고 김복동 할머니의 유품으로 되새기는 202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여성인권운동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명함. 김복동 할머니는 피해자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피해 사실을 용기있게 증언함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높이고, 국가를 초월한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연대를 이끌어낸 활동가의 삶을 살았다.

 

“본인이, 증거가 살아있는데 증거가 없다니 말이 됩니까?”

 

일본군 위안부 강제 연행 사실을 부정하는 역사수정주의를 지지하는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발언이 잇따랐던 2012년 7월, ‘국가가 소신을 가지고 국가의 의지와 소신을 가지고 여성을 납치해 인신매매했다는 사실은 없다는 게 일본의 많은 역사가들의 의견’이라는 하시모토 도루 일본 오사카시 시장 집무실 앞에서 면담을 요청하며 당당히 꾸짖던 날에 김복동 할머니는 연보라색 원피스를 차려입고 있었다. 이듬해 일본 각 지역을 순회하는 증언대회에 나섰을 때에도, 서울의 수요시위에서도 할머니는 단정한 이 원피스를 즐겨 입었다.

 

김복동 할머니가 생전에 즐겨 착용한 연보라빛 원피스와 나비 스카프

연보라빛 원피스를 입은 김복동 할머니(가운데)가 2013년 5월 25일 오후 일본 오사카 동센터에서 열린 일본 순회 증언집회에서 길원옥 할머니(왼쪽)와 증언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 내리쬐는 햇볕을 막아주던 모자와 선글라스도 수요시위의 필수품이었다. 수요시위 현장에서 ‘할머니에게 명예와 인권을’이라 쓴 노란 조끼를 입고 찍은 사진과 함께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이라 스스로를 소개한 명함은 그의 온 삶을 통한 발걸음이 어디로 향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이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참석을 위해 사용했던 유엔 출입증과 각국의 출입국 도장이 찍혀 있는 여권은 세계 곳곳을 누비며 피해 사실을 용기 있게 증언함으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높이고, 국가를 초월한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연대를 이끌어낸 그의 발자취를 담고 있다.

 

2019년 1월28일 김복동 할머니가 영면에 든 뒤로도 피해자들의 별세는 이어져, 이제 남은 생존자는 14명. 역사의 진실을 알리고 바로잡으려던 이들이 떠나고 난 뒤 빈자리는, 치열했던 그 삶의 무게를 더해 남은 이들에게 무거운 책임이 되었다. 올해 다시 맞이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에 먼저 떠난 이의 부재를 되새겨줄 유품들을 톺아보는 까닭이다.

 

2012년 10월 3일 낮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1042차 수요시위’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안경에 참석자들이 비치고 있다.

필요할 경우에 대비해 과거에 썼던 의료보험증, 수첩 등과 함께 오래된 가방에 보관했던 할머니의 증명사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인권이사회 참석을 위해 사용했던 유엔 출입증과 각국의 출입국 도장이 찍혀 있는 여권.

아흔세번째이자 마지막 생신이었던 2018년 4월 26일 오전 김복동 할머니가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 2층 자신의 방에서 축하하러 온 이들과 대화하고 있다.

 2019년 5월 4일 기록한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 2층 김복동 할머니의 빈 방. 이순덕·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하고 길원옥 할머니도 아들집으로 거처를 옮기며 평화의 우리집은 2020년 10월 말 문을 닫았다.  이정아 기자

 

위안부 피해 증언 첫 보도 우에무라 "용기 낸 증언에 떨렸다"

김학순 증언 30주년…"日정치 지도자 진심어린 사죄 안했다"

'날조' 비방에 맞서 싸워…위안부 문제 해결책은 "사죄 · 기억 · 비석"

 

위안부 목소리 세상에 알린 우에무라= 2015년 4월 27일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 전 아사히(朝日)신문 기자가 일본 도쿄도(東京都) 지요다(千代田)구 소재 사법 기자클럽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씨의 증언을 실은 1991년 8월 11일자 아사히신문 오사카본사판 조간의 사본을 보여주고 있다.

 

"'용기를 내서 그런 증언을 했겠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떨렸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고 공개적으로 증언한 김학순(金學順·1924∼1997) 씨의 목소리를 처음 보도한 일본 저널리스트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는 녹음테이프로 김씨의 발언을 처음 들었던 30년 전의 느낌을 이렇게 회고했다.

 

기자회견하는 김학순=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씨가 1991년 8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을 성적으로 상대하는 일을 강요당했다고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김씨는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서 기폭제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1991년 8월 14일 얼굴과 이름을 공개한 상태로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제 강점기 전쟁터에서 일본군을 성적으로 상대하는 일을 강요당했다고 증언했다.

 

성적 피해를 공개하기 쉽지 않은 시절에 이뤄진 김씨의 회견은 다른 피해자가 용기를 내 증언하는 계기가 됐다.

 

김학순 증언 첫 보도=1991년 8월 11일 발행된 아사히(朝日)신문 오사카(大阪)본사판 조간 사회면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金學順·1924∼1997) 씨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서 말한 내용이 실려 있다. 사진은 해당 신문의 사본. [우에무라 다카시 제공]

 

당시 아사히(朝日)신문 기자였던 우에무라는 기자회견 사흘 전인 1991년 8월 11일 "감금돼 달아나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잊고 지내고 싶지만 잊히지 않는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화가 나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는 김씨의 발언을 지면에 실었다.

 

김씨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찾아가 말한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를 듣고 기사를 쓴 것이다.

 

전쟁 중 동원됐던 '조선인 종군 위안부' 중 한 명이 서울에 생존해 있으며 "체험을 그저 숨겨오기만 했던 그녀들의 무거운 입이 전후 반세기 가까이 지나서 어렵게 열리기 시작했다"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피해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보도였다.

 

우에무라는 피해 당사자가 지원 단체의 조사에 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뉴스라고 생각했다면서 "'피해자가 간신히 그렇게 말하기 시작했구나'하는 느낌이었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하는 김학순 [연합뉴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모르는 상태로 보도했고 피해자의 정체는 기자회견을 계기로 확인됐다.

 

30년 전 우에무라의 기사는 한국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지원 단체에 정식으로 피해 사실을 진술한 것을 처음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씨는 결과적으로 위안부 운동에서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

 

물론 이보다 앞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가 보도된 사례도 있다.

 

예를 들면 일본 오키나와(沖繩) 머물다 불법 체류자로 분류돼 추방 위기에 몰렸던 배봉기(1914∼1991) 씨가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밝혀서 1975년 복수의 현지 언론에 소개됐다.

 

김씨의 기자회견 30주년을 앞두고 11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 응한 우에무라 '슈칸킨요비'(週刊金曜日) 사장 겸 발행인은 "총리 등 일본의 정치 지도자가 진심 어린 사죄를 피해자에게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라고 여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를 꼽았다.

 

 위안부 문제 공개 증언한 김학순과 소녀상= 7월 24일 일본 교토부(京都府) 교토시의 한 시설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된 가운데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공개 증언한 김학순(金學順·1924∼1997) 씨의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책을 묻자 "김학순 씨가 30년 전에 어떻게 해결 가능한지 말해줬다"며 "나는 정말 그 말을 잊을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에무라는 첫 기사를 쓰고 3개월여가 지난 1991년 11월 25일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김씨가 "돈을 얼마를 받아도 버려진 이 몸을 되돌릴 수 없다. 일본 정부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 젊은 사람이 이 문제를 알도록 하면 좋겠다.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비석을 세워주면 좋겠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보도=1991년 12월 25일 발행된 아사히(朝日)신문 오사카(大阪)본사판 조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金學順·1924∼1997) 씨의 발언과 사진이 실려 있다. 사진은 해당 신문의 사본. [우에무라 다카시 제공]

 

일본군 위안부나 군인·군속(군무원)으로 동원된 피해자와 유족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에 앞서 일본 측 변호사로 구성된 대리인들이 서울에서 피해자 청취 조사를 했는데 당시 우에무라가 허락을 받아 동석했다.

 

우에무라 사장은 "간단히 말하면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죄, 젊은 세대로의 기억 계승, 기억하기 위한 비석의 건립, 이렇게 세 가지"가 핵심이라면서 현재 일본 상황은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위안부 할머니들이 체험한 괴로운 역사의 기억을 일본 정부와 일본 교육 당국이 젊은 세대에게 제대로 전하지 않고 있다"고 한국과 일본의 인식 차가 커지는 이유를 지적했다.

 

아울러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는 이들을 우익세력이 공격해도 일본 정부가 제지하지 않고 있으며 일본 사회가 우경화하면서 '반복해 사죄할 필요는 없다'는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어 더욱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위안부 문제 한일 합의…아베 사죄는 어디로=2015년 12월 28일 윤병세 당시 한국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당시 일본 외무상이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합의 결과를 발표한 후 악수하고 있다. 기시다는 당시 회견에서 "아베 (신조)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말했으나 이후 아베가 실제 사죄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그는 일본의 '이중 잣대'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일본 정부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에 관해서는 속아서 간 사람도 납치라고 표현하면서 유독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는 강제 연행을 보여주는 증거가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 "그렇다면 위안부도 다 납치된 셈"이라며 일본 측의 태도가 "더블 스탠더드"(이중적인 기준)라고 지적했다.

 

김씨의 목소리를 처음 소개한 우에무라의 기사는 일본과 한국 양쪽에서 당시에는 그리 주목받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려는 시도가 확산하면서 우에무라가 우익 세력의 표적이 됐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가담했다는 저술을 남겼던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1913∼2000)와 관련한 일련의 기사를 아사히신문이 2014년 8월 취소한 것이 이른바 '우에무라 때리기'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됐다.

 

위안부 문제 보도 취소한 아사히신문= 2014년 8월 5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배달된 아사히(朝日)신문 조간에 2차대전 때 제주도에서 다수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갔다고 밝힌 일본인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판단하고 이에 기반을 둔 1980∼90년대 자사 기사를 취소한다는 설명이 실려 있다. 아사히신문의 기사 취소는 '우에무라 때리기'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됐다.

 

아사히신문은 "요시다가 제주도에서 군 위안부를 강제 연행했다고 증언한 것은 거짓이라고 판단"했다고 기사를 취소한 이유를 밝혔다.

 

이를 계기로 김씨의 증언을 처음 보도한 우에무라가 '날조 기자'라는 비난이 들끓었다.

 

우에무라는 요시다에 관한 기사를 한 건도 쓰지 않았고 요시다 관련 기사는 다른 기자가 쓴 것인데 우에무라를 비방하는 재료가 돼 버린 것이다.

 

기사 취소 후 더 강한 공격에 직면한 아사히는 우에무라가 김씨의 목소리를 처음 다룬 기사에서 "'여자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전장에 연행됐다"고 쓴 것이 잘못됐다며 2014년 12월 정정 보도했다.

 

위안부와 정신대를 혼동해 표기했으며 속아서 따라간 것에 대해 '연행'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잘못됐다는 취지였다. 이로 인해 우에무라 때리기는 더욱 심해졌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연구가 충분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한국과 일본 모두 위안부를 정신대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흔했다.

 

딸 죽이겠다고 협박까지=아사히(朝日)신문 기자로 재직하던 시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씨의 증언을 보도한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 씨의 딸을 죽이겠다는 내용의 협박문. 우에무라를 역적으로 규정하고 딸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우에무라 다카시 제공]

 

우에무라는 "당시에는 다 그렇게 썼다. 정신대는 위안부라는 의미로 썼다"면서 지엽적인 부분을 빌미로 유독 자신만 공격한 것은 "위안부 문제를 뭉개기 위한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공격은 도를 넘은 수준에 달했다.

 

2014년 3월 아사히신문을 조기 퇴직한 우에무라는 홋카이도(北海道)의 호쿠세이가쿠엔(北星學園)대학 비상근 강사를 맡고 있었는데 우익세력의 협박으로 인해 2년 후 대학을 떠나야 했다.

 

인터넷에서 고교생 딸에 대한 비방이 난무했고 살해 협박문까지 날아들어 등교할 때 경찰차가 출동해야 할 정도였다.

 

조선학교 보조금 중단 시위 속 '한국 비하 팻말'= 2016년 3월 6일 일본 도쿄도(東京都) 주오(中央)구 긴자(銀座) 거리에서 열린 시위 참가자가 든 팻말에 '사기, 위선, 명예훼손, 선전으로 사는 이들을 저주한다'(Curse on those who live on deception and hypocrisy, defamation and propaganda.)는 글과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일본 중의원 의장, 박근혜 당시 대통령, 평화의 소녀상,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 전 아사히(朝日)신문 기자 등의 얼굴 사진이 담겨 있다. 또 매국노, 사기꾼, 걸식, 매춘부 등의 단어가 함께 적혀 있다. 우에무라가 우익 세력의 표적이 됐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우에무라는 굴하지 않았다.

 

위협과 비방에 맞서 소송을 제기했고 '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는 책을 쓰며 반박했다.

 

딸이 제기한 소송에서는 배상 판결이 내려져 우익 세력의 공격에 브레이크를 거는 효과가 있었다.

 

다만 우에무라가 '기사 날조'라는 비방에 맞서 제기한 소송은 패소했다.

 

하지만 그는 "언론인 우에무라가 날조하지 않았다는 것은 멀쩡한 사람은 다 알게 됐다"며 소송 자체가 주목받으면서 판결만으로 전하기 어려운 진실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기자회견하는 우에무라 다카시= 2015년 8월 13일 우에무라 다카시 당시 일본 호쿠세이가쿠엔대학 비상근 강사가 서울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씨의 증언을 보도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또 "내가 굴복하지 않고 싸워서 동료가 점점 늘었다. 우에무라 때리기 덕분에 인연이 확산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우에무라는 폭력적 위협에 굴하지 않고 역사의 진실을 지키기 위한 투쟁한 노력을 인정받아 2019년 리영희 상을 받기도 했다.

 

김학순 씨의 발언을 처음 보도한 기자로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자 "(김학순 씨가 30년 전에 제시한) 세 가지를 실현하기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