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검토 문건
박근혜 탄핵 부결시 ‘야당 의원 체포’ 내용 담겨

한동훈 “불체포 특권 포기” 준비된 발언에
이재명, ‘야당 의원 선택적 체포’ 가능성 짚어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2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

 

대통령실에 이어 국민의힘 지도부가 ‘계엄령 준비 의혹’을 거론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국기 문란”이라며 전면 공세를 시작했다. 이 대표와의 비공개 회담으로 용산을 긴장시켰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악수하고 헤어진 지 하루 만에 ‘이재명 때리기’ 선봉에 서며 대통령실과 보폭을 맞췄다.

하루 만에 공세 전환한 한동훈

한 대표는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와 민주당을 향해 “대통령이 저희 모르게 계엄을 준비한다는 것인가. (그 말이) 맞는다면 심각한 일 아닌가. 근거를 제시해달라. 이 정도 거짓말이면 국기 문란”이라고 맹공했다. 전날 여야 대표회담 머리발언에서 이 대표는 “최근 계엄 이야기가 자꾸 나온다”고 했지만, 한 대표는 회담이 끝난 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다. 반면 대통령실은 여야 대표회담이 끝나기도 전에 “상식적이지 않은 거짓 정치 공세”라며 이 대표를 비난했다.

그랬던 한 대표가 이재명 때리기에 나서자 추경호 원내대표, 김재원·김민전 최고위원까지 이 대표의 계엄 발언을 줄줄이 비판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이런 움직임은 이 대표 발언을 신호탄으로 민주당이 ‘윤석열 탄핵소추-군부 친위 계엄 의혹’을 공식화하려 한다는 의심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의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김 후보자가 군내 ‘충암파’ 라인을 통해 계엄을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의가 이어졌다.

앞서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달 21일 “차지철 스타일의 ‘야당 입틀막’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으로 갑작스럽게 교체하고, 대통령은 뜬금없는 반국가세력 발언을 했다. 이런 정권의 흐름은 국지전과 북풍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작전이라는 것이 근거 있는 확신”이라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저는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계엄령 준비설 정보를 입수해 제보했던 사람 중 하나다. 박근혜 정권이 강력히 부인했지만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 탄핵 국면에 대비한 계엄령 준비 시도를 반드시 무산시키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접견실에서 여야 대표 회담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계엄 발언 왜 나왔나

한동훈 대표는 이재명 대표의 계엄 발언을 비판하며 “이런 차원에서 제가 면책특권 남용 제한 문제를 법률로써 하자는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했다. 한 대표는 전날 여야 대표회담에서 “남용되고 있는 (국회의원) 면책특권 범위를 (판례가 아닌) 법률로 제한하는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전날 여야 대표회담을 복기해 보면, 이 대표가 계엄을 언급한 맥락은 한 대표의 ‘준비된 발언’에 대한 ‘돌발적 대응’ 성격이 짙다. 한 대표는 미리 써온 머리발언 자료를 보며 국회의원 불체포·면책특권 포기 등을 정치개혁안으로 제안한 뒤 갑자기 이 대표의 재판 불복 가능성을 언급했다. ‘준비된 도발’인 셈이다.

반면 사전에 준비한 자료 없이 머리발언을 한 이 대표는 “국회의원 특권에 상응하는 대통령 소추권에 대해서도 같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행정적 독재국가로 흘러갈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한 대표 도발을 맞받았다. 검찰을 앞세운 차별적 법 적용 논란이 빈발하는 상황에서 국회의원 특권만 내려놓으면 야당에 대한 선택적 표적 수사와 체포·구속으로 대통령에 대한 국회 견제가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며 이 대표는 “종전 만들어진 계엄안을 보면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국회를 막기 위해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하겠다는 계획을 꾸몄다. 완벽한 독재 국가 아니냐”고 덧붙였다.

용산은 왜 발끈했을까

이 대표가 말한 “종전 계엄안”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7년 2월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비밀리에 만든 계엄령 검토 문건이다. 지난 2월 검찰은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을 지시한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의 내란 예비·음모 혐의 등을 무혐의 처분했다. 국민의힘 등 여권에서는 이를 근거로 민주당이 또다시 터무니없는 ‘계엄 준비설’을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 작성된 계엄령 검토 문건 내용은 △계엄 선포 △단계별 조치 △계엄 시행 준비 착수일까지 자세히 담고 있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이 기각될 경우 군이 탱크 등을 동원해 서울 광화문 촛불시위 등을 진압하고, 국회가 계엄 해제를 시도할 경우 의결정족수를 미달시키기 위해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하는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담았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7년 2월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비밀리에 만든 계엄령 검토 문건 일부 내용.

· 현 국회는 여소야대 정국으로 의결 정족수 충족, 계엄 해제 가능.

- 국회의원 총 299명 중 진보성향 의원 160여명, 보수성향 의원 130여명

· 국회의원 대상 현행범 사법처리로 의결 정족수 미달 유도

- 계엄사령부, 집회·시위 금지 및 반정부 정치 활동 금지 포고령을 선포하고,                                                        위반시 구속수사 등 엄중처리 관련 경고문 발표

- 합수단, 불법시위 참석 및 반정부 정치활동 의원 집중점거 후 사법처리

 

군이 치안유지 등을 담당하는 계엄은 중대한 기본권 침해를 수반한다. 따라서 헌법과 법률 등으로 선포 요건과 절차, 해제 등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 당시 국군기무사령부는 야당 국회의원을 각종 계엄령 위반으로 구속해 계엄 해제 의결을 못 하도록 막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 문건 작성을 지시했던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은 관련 수사가 시작되자 2017년 12월 미국으로 도피했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듬해인 2023년 3월, 조 전 사령관은 5년여 만에 갑자기 귀국했다. 야권은 귀국 배경을 두고 정권교체 뒤 사법처리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 기대한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2월 조 전 사령관의 내란예비·음모 등은 무혐의 처분하고 직권남용 혐의만 기소했다.

두 차례의 경비계엄, 모두 비상계엄으로 이어져

정치권에선 이 대표가 군이 치안을 맡는 ‘경비계엄’ 정도를 언급했을 것으로 본다. 계엄법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을 규정하고 있는데, 경비계엄은 ‘국가비상사태 시 사회질서가 교란되어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에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다’고 돼 있다. 박정희 유신정권 말기인 1979년 10월 부마항쟁 당시 부산지역에 9일간, 10·26 사건 이튿날인 1979년 10월27일부터 1981년 1월24일까지 439일간 전국(제주 제외)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게 마지막이었다. 경비계엄은 1960년 4·19혁명 때와 1961년 5·16 군사반란 때 선포됐는데, 두 차례 모두 비상계엄 선포로 이어졌다. 즉 경비계엄만 독자적으로 발동된 경우는 없는 셈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청와대와 달리 사방이 트여있어 경찰력만으로는 대규모 시위·소요 등을 막기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군이 내부적으로 경비계엄 수준의 계엄 계획을 짜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인 셈이다. 경비계엄이 비상계엄으로 확대되면 치안 외에도 행정·사법 전 영역을 군이 관장하게 된다. 2017년 기무사가 작성했던 계엄령 검토 문건 역시 ‘위수령→경비계엄→비상계엄’ 순으로 격상한다.

지난달 윤 대통령은 국방·안보라인을 전격 교체했다.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인 김용현 경호처장이 국방부 장관에 지명됐다. 보수언론에서도 그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인사였다. 앞서 지난해 11월 국군방첩사령관에 임명된 여인형 사령관도 충암고 출신이다. 박근혜 정부 때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국군기무사령부는 해체 뒤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재편됐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국군방첩사령부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 김남일 기자 >

한동훈 ‘제3자 추천’ 방식 수용하되 야당이 비토권 행사할 수 있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
 

더불어민주당은 3일 대법원장이 특검 후보를 추천하되 야당에 ‘비토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을 발의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3자 추천 특검법 발의를 미루자 ‘민주당판’ 법안을 발의해 다른 야당들과 함께 추진하겠다며 압박에 나선 것이다.

박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2일 국회에서 ‘민주당판’ 제3자 추천 특검법 발의 계획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애초 오늘 법안을 발의하려고 했으나 손을 더 보고 내일(3일) 아침에 하려 한다”고 밝혔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29일 의원 워크숍에서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을 직접 발의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이날 원내대표단 쪽에서 논의해 결론을 내리기로 한 바 있다.

민주당판 제3자 추천 특검법은 한동훈 대표의 ‘제3자 추천’ 방식을 수용하되, 추천된 특검 후보에 대해 야당이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다.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법원장이 특검 후보 4명을 추천하면 비교섭단체를 포함한 야당이 이 가운데 2명을 추천하고 이 가운데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길 것이다. 대신 대법원장이 추천한 후보 4명 모두가 부적격하다고 판단될 경우 야당이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 대표는 야당에 특검 후보 추천권을 부여하고 있는 기존 민주당의 특검법안은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며 ‘대법원장 등 제3자 추천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한 바 있는데, 당내 의견 수렴 등을 이유로 법안 발의를 미루고 있다. 민주당은 이에 야권이 함께 제3자 특검법을 발의하는 방식으로, 한 대표와 국민의힘에 수용을 압박하려고 준비를 해왔다.

민주당은 이와 관련해 그동안 7가지 제3자 특검법안을 고민해왔다고 한다. 대법원장의 추천권까지만 규정한 한 대표 안의 경우, 민주당뿐 아니라 야권에서도 반대가 많아 사실상 추진이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회의장에게 비토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으나, 자칫 국회의장의 중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대법원장의 추천권을 부여하되 야당이 특검 후보 추천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놓은 법안을 내놓게 된 것이다. 박 원내수석부대표는 “(대법원장이) 영 아닌 사람들을 추천했을 경우에 대한 마지막 조치로 비토권을 준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기민도 엄지원 기자 >

22대 국회, 95일 만에 개원... 윤석열 대통령 '비정상'주장 외면

 
 
제22대 국회의원들이 2일 국회에서 개원식을 마치고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
 

임기 시작 95일 만인 2일, 1987년 개헌 이후 가장 늦게 개원식을 치른 제22대 국회는 정기국회 들어서도 날카로운 여야 대치가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주당식 ‘특검 후보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을 3일 발의하겠다며 국민의힘 압박 강도를 올리는 등 양보 없는 공세를 예고했다. 국민의힘은 채 상병 특검법을 둘러싼 당내 의견이 정리되지 않은 가운데, 민주당에 끌려다니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두 당은 전날 대표 회담으로 대화의 물꼬를 터보려고 시도했지만, 이견을 좁히기 어려운 쟁점이 산적해 강 대 강 국면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역대 최장 ‘지각 개원’에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유일하게 불참한 이날 ‘반쪽 개원식’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를 대표하는 의장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애초 개원식은 지난 7월5일로 예정됐었으나, 야당이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면서 무산돼, 이전까지 가장 늦었던 21대 국회 개원식(7월16일)보다 48일 더 밀렸다. 이날 개원식은 정기국회 개회식을 겸해 열렸다.

어렵게 개원식은 열었지만, 100일간의 정기국회 레이스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우선 채 상병 특검법을 고리로 정부·여당을 겨냥한 공세를 강화할 계획이다. 민주당은 대법원장이 특검 후보 4명을 추천하고 야당이 그중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최종 1명을 지명하는 채 상병 특검법을 3일 발의한다. 대법원장의 추천에 야당이 동의·재추천할 수 있는 권한도 포함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게 권한이 없어, (한 대표가 공언한 방식의) 특검법을 발의하라는 더 이상의 설득도 불가하다는 점이 어제 두 당 대표 회담으로 확실해졌다. 민주당 시계대로 가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일단 발의된 법안을 본 뒤 판단하겠다면서도, 내부적으론 이 법안은 받기 어렵다는 기류다. 친한동훈계 한 의원은 “그건 야당이 추천하는 특검 아니냐”고 했다. 다만 국민의힘 지도부의 한 의원은 “한 대표는 기존 입장과 달라진 게 없다”고 강조했다. 야당이 아닌 대법원장 등 제3자가 특검 후보를 추천하는 채 상병 특검법이 필요하며, 당내 의견을 수렴해 적절한 시기에 추진하겠다는 생각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친윤석열계의 특검법 거부 의사가 완강해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은 이 밖에 ‘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4국조(채 상병 사건, 방송 장악, 양평고속도로 의혹, 동해 유전 개발 관련 국정조사) 카드도 여전히 손에 쥐고 있다. 오는 26일 본회의에서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과 방송 4법, 노란봉투법 등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6개 법안 재표결도 추진할 예정이다.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은 전날 여야 대표 회담에서 채 상병 특검법과 함께 논의됐으나 합의에 실패했다.

오는 4~5일 교섭단체 연설, 9~12일 대정부 질문, 다음달 7~25일 국정감사와 이후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에서도 여야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검찰의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사건 무혐의 처리와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혐의 직접 수사 등 뇌관이 산재한 탓이다. 연금개혁이나 금융투자소득세 의제와 관련해서도 여야의 치열한 주도권 싸움이 전망된다.

한편, 우원식 의장은 이날 개원식에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세월호·이태원·오송 등 사회적 참사 유가족,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고 김상덕 위원장의 아들 김정륙씨,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응급의학 종사자 등 외빈 148명을 초청했다. 이들은 개원식이 진행되는 동안 본회의장 2층 방청석을 지켰다.  < 고한솔  고경주  전광준 기자 >

도쿄도지사, 올해도 조선인 희생자 추도 외면
아베 신조식 회피 “학살 여부 규명은 역사가 몫”

추가로 발굴되고 있는 다수의 학살 증거자료들
조선인 학살과 지진 피해자 구분없이 얼버무려

“일본정부와 도쿄도지사, 학살 역사 말소 행위”
한일 정부, 과거사 왜곡·날조 속에 ‘준동맹’ 유착

 

재일교포 음악가인 양방언이 1일 일본 도쿄 신주쿠구 주일한국문화원에서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도쿄본부 주최로 열린 '제101주년 관동(간토)대지진 한국인 순난자 추념식'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다. 2024.9.1. [연합]
 

일본 ‘관동(간토) 대지진’이 일어난 지 101년이 된 1일, 지진 당시 도쿄에서 일본 군경과 민간인 자경단원들 손에 희생당한 6000여 명의 무고한 조선인 학살에 대해 일본 정부와 도쿄도는 여전히 학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침묵했다.

도쿄도지사 올해도 조선인 희생자 추도 외면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는 올해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았다. 2017년부터 8년째다. 이전의 역대 도쿄도지사들은 학살당한 사람들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냈으며, 우익 이시하라 신타로도 지사 재임 시절 추도문을 보냈다. 2016년에 단 한 번 추도문을 보냈을 때 고이케 지사는 추도사에서 “불행한 일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말고, 누구나 안전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세대를 넘어 계속 얘기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그 이후 조선인 학살에 관한 새로운 증거 문서들이 다수 발굴돼 공표됐음에도 고이케 지사가 추도문을 보내지 않는 것은, 이른바 ‘우경화’한 일본에서 그것이 표를 얻는데 유리했기 때문일까. 그는 지난 7월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3연임에 성공했다.

 

1일 간토대지진 101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이 열린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 인근 료고쿠역에 조선인 희생자 추도문 송부를 거부하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를 비판하는 글이 게시돼 있다. 이 종이에는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역사를 말살하지 말라"는 글이 적혔다. 2024.9.1. [연합]
 

조선인 학살과 지진 피해자 구분없이 얼버무려

고이케 지사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추도문을 보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추도식과 같은 날에 열리는 지진 희생자들 추도 대법요식에서 “모든 분들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는 이제까지의 설명을 되풀이했다. 지진이라는 자연재해의 희생자와 ‘우물에 독을 넣었다더라’는 등의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가운데 현장의 조선인들이 일본인들 손에 학살당한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임에도 도쿄도 지사와 일본정부는 그 둘을 구분하지 않고 희생자 일반에 대한 추도로 책임을 얼버무려 왔다. 군함도와 사도광산 유네스코 자연문화유산 등재 때도 일본 정부와 관할 지자체 당국은 일제 때 동원당해 차별받다 희생당한 조선인들과 일본인 피해자들을 구분해서 기록, 전시하라는 한국정부와 유네스코의 요구를 무시하고 희생자 일반에 대해서만 언급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피해갔다.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101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한국인 무용가 김순자 씨가 하얀 한복을 입고 진혼무를 추고 있다. 이날 행사는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을 추도하기 위해 열렸다. 2024.9.1. [연합]스

 

후쿠다 야스오 전 일본 총리가 1일 일본 도쿄 신주쿠구 주일한국문화원에서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도쿄본부 주최로 열린 '제101주년 관동(간토)대지진 한국인 순난자 추념식'에 참석해 헌화하고 있다. 2024.9.1. [연합]
 

아베 신조식 회피 “학살 여부 규명은 역사가의 몫”

학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고이케 지사는 “무엇이 사실인지는 역사가가 살필 것”이라고 말해 왔으나, 그날도 “여러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는 말만 했다.

이는 지난 2015년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문’에서 군국 일본의 이웃나라 침략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침략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역사가의 논의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일제의 침략 사실을 사실상 부정한 아베 신조 당시 총리의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아베는 그때 일본의 야만적인 아시아 침략과 식민 수탈을, 서양 제국주의 침탈로부터 아시아 민족을 구출하기 위한 ‘민족해방투쟁’인양 자화자찬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학살에 대해 “정부 내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을 찾지 못했다”며 ‘관동계엄사령부 상보’나 도쿄도의 ‘도쿄 백년사’ 등 당시의 조신인 학살 사실을 기록한 증거 문서들을 외면해 왔다. 지난해 여름에도 마쓰노 히로카즈 당시 관방장관이 같은 말을 되풀이 해 문제가 된 적이 있으며, 하야시 요시마사 현 관방장관도 30일의 기자회견에서 “(그와 같은) 인식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101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미야가와 야스히코 추도식 실행위원장이 조선인 희생자를 위해 별도 추도문을 보내지 않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를 비판하고 있다. 이날 행사는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을 추도하기 위해 열렸다. 2024.9.1. [연합]
 

추가로 발굴되고 있는 다수의 학살 증거자료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중앙방재회의가 2009년에 작성한 보고서는 “관헌이나 주변 주민들에 의한 살상행위가 다수 발생했다. 학살이라는 표현이 타당한 예들이 많았다”거나 “대상은 조선인들이 가장 많았다”는 기록들을 담고 있다. 거기에는 233명의 조선인들이 살해당했으며, 367명이 기소된 사건의 상세한 내용을 기록한 사법성의 당시 기록 등을 근거 자료로 제시한 사실들이 정리돼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런 사실에 대해서도 “보고서는 유식자가 집필한 것”이라는 이상한 이유를 대면서, 2015년 2월에 “조사를 해 본 결과 정부 내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을 찾지 못했다”는 답변서를 각의(국무회의) 결정으로 재확인했다. 일본정부 각료들은 이런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학살에 관한 문서가 국립공문서관이나 방위연구소 전사연구센터 사료실 등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마음먹고 확인하면 금방 드러날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 확인 자체를 피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는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생존자나 희생자 유족들의 증언도 여러 가지 이유로 부정하거나, 적극적인 발굴 노력을 하지 않다가, 그들이 사망할 경우 입증할 증거나 사실이 없다고 발뺌하는 식의 뻔한 왜곡과 날조를 해왔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점점 더 목청을 높이고 있는 ‘다케시마(독도)는 일본 고유 영토’ 주장에서 보듯, 윤석열 정부 이후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그런 대응은 더욱 노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101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한국인 무용가 김순자 씨가 하얀 한복을 입고 진혼무를 추고 있다. 이날 행사는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을 추도하기 위해 열렸다. 2024.9.1. [연합]
 

“일본정부와 고이케 지사의 자세는 학살 역사 말소 행위”

이것이 일본정부나 관할 당국이 감추려는 범죄사실을 오히려 더 드러내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본의 학살 부정론을 검증하는 논픽션 작가 가토 나오키는 “(일본) 정부는 지난 10년 정도 꼭같은 답변을 계속해 왔으나, 최근 1년 그 모순이 드러났다.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역설적이게도 일반적으로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던 조선인 학살이 주목을 받게 된 면도 있다”고 했다.(<아사히신문> 8월 31일)

새로운 증거 자료들도 다수 발굴됐다.

“(조선인들이) 밤이 되면 모두 살기 등등해지는 군중들 때문에 모조리 죽임을 당한다.” 이는 일본 육군의 지방조직인 사이타마 현 구마가야 연대구 사령부가 작성한 ‘관동지방 지진관계 업무 상보’에 나오는 기술 내용이다. 육군성이 지진 활동내용을 보고하도록 요구해 지진이 일어난 지 3개월 여가 지난 1923 12월 15일에 제출된 보고서다. 여기에는 지진 발생 사흘 뒤 밤에 군중의 학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송 중이던 조선인 40여 명이 지금의 구마가야 시내에서 학살당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방위성 방위연구소 사료실에 소장돼 있는 <관동 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이라는 저서의 저자인 저널리스트 와타나베 노부유키는 이런 내용을 확인해서 지난해 가을에 발표했다.

소학교(초등학교) 교사로 조선인 희생자 조사와 추도회를 요코하마 시에서 계속해 온 야마모토 스미코(85) 등은 지난해 9월 가나카와 현에서 작성한 기록물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가나카와 현 지사가 내무성 경보국장에게 보낸 1923년 11월 보고서인데, 거기에 현 내에서 살해당한 조선인 14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현 내에서 일어난 조선인 살상사건 59건의 범죄사실과 살해당한 145명 중 14명의 성명’) 야마모토 씨 등은 자료에 나오는 살해 현장을 고지도로 확인하고 직접 현장을 찾아가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1923년 11월에 작성된 가나카와 현의 ‘지진에 따른 조선인 및 지나인(중국인)에 관한 범죄 및 보호상황 기타 조사의 건’도 남아 있다.

“정부와 고이케 도쿄도 지사의 자세는 학살 사실을 역사에서 말소하는 행위와 같다.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살았고 어디에서 일을 했는지 역사에 새겨 놓아야 한다.” 이들은 올해 추도식에서는 새로 확인된 희생자들 이름을 하나 하나 낭독했다.

 

1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 요코아미초공원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101주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서 한 참가자가 영어로 '간토대학살 잊지 말라'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다. 이날 행사는 간토대지진 당시 학살된 조선인을 추도하기 위해 열렸다. 2024.9.1. [연합]
 

망각의 담합 위에서 진행되는 한일 유착

<역사 수정주의>라는 책을 쓴 가쿠슈인여자대학 다케이 아야카 교수는 말했다.

“학살 등의 중대한 인권침해가 일어난 뒤 세월이 지나 생존자가 사망하면 발생 당시는 당연한 듯 공유되고 있던 사실에 대해서도 ‘충분한 사실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언설들이 생겨나기 쉽다. 역사적 사실은 의식적으로 계승하지 않으면 간단히 매몰된다. 홀로코스트조차 부정론이 나오고 있을 정도여서 유럽 여러 나라들에서는 전쟁범죄나 제노사이드(집단 학살)에 대한 부정을 금지하는 것을 법제화하고 있다. 법규제의 타당성에는 논의가 필요하지만, 일본은 최소한의 사실 공유도 불충분해 그런 논의 이전 단계에 있다.”

‘준동맹’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급속한 ‘한일 유착’은 진실 규명을 토대로 한 제대로 된 청산이 아니라 이처럼 과거사 왜곡과 날조를 통한 망각의 담합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 민들레한승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