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제막식…“일 정부 이익, 여성 존엄보다 중요할 수 없어”

 
28일(현지시각) 독일 본 세계여성박물관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동마이’의 제막식 현장. 사진 장예지 특파원 
 

“죽음 건너서, 죽어 살아서 온다. 죽어 죽어 살아서 온다. 살아 살아 죽어서 살아 죽음 건너 살아서 온다. 죽어 살아서 온다.”

 

햇볕 사이로 두 마리 나비가 날아드는데, 보랏빛 장막에 둘러싸여 있던 평화의 소녀상 ‘동마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녀상 뒷편에 누운 나비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환생과 자유, 해방을 상징한다. 독일 본 지역 여성박물관에 영구 설치된 소녀상의 제막식이 열린 28일(현지시각), 행사에 참여한 이들은 구슬픈 노래 가사에 몸을 맡기고 ‘길베’ 의식을 펼쳤다. 흰 무명천을 길게 펼쳐 그 사이를 뚫고 사람들은 손짓하며 행진했다.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망자를 좋은 곳으로 보내는 의식이다. 지난 5월 이옥선 할머니가 97살 일기로 별세한 뒤, 한국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 수는 이제 6명이다. 제막식에 참가한 50여명의 독일 시민과 교포들은 이들을 기억하며 강강술래를 췄다.

독일 본 지역 여성박물관에 영구 설치된 소녀상의 제막식이 열린 28일(현지시각), 행사에 참여한 이들은 구슬픈 노래 가사에 몸을 맡기고 ‘길베’ 의식을 펼쳤다. 흰 무명천을 길게 펼쳐 그 사이를 뚫고 사람들은 손짓하며 행진했다.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망자를 좋은 곳으로 보내는 의식이다. 사진 장예지 특파원

 

본 여성박물관 오른쪽 한 켠에 세워진 소녀상은 쾰른 지역에서 건너왔다. 지난 3월 쾰른 나치기록박물관의 기획 전시 기간 임시로 설치됐던 소녀상이 전시가 끝난 뒤 갈 곳을 잃자 여성박물관의 마리아네 피첸(77) 관장이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피첸 관장은 이날 한겨레에 “중요한 건 행동하는 것”이라며 “우리 박물관의 핵심 주제가 여성을 향한 폭력, 그것에 대항해 싸우는 여성이다. 과거 서독의 수도였던 본은 국제적인 도시다. 이곳의 소녀상은 ‘위안부’ 문제를 세계에 보다 알린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28일(현지시각) 독일 본 세계여성박물관에서 한겨레와 만난 마리아네 피첸(77) 박물관 관장. 사진 장예지 특파원

 

‘동마이’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매화’를 뜻하는 말로, 코리아협의회의 베트남 활동가가 지은 이름이다. 역경에도 포기하지 않는 인내와 용기를 상징하는 매화처럼, 오랜 시간 떠돌던 동마이도 이내 제 자리를 찾은 것이다. 지난 2021년 드레스덴 박물관에 처음 설치된 뒤엔 3년 넘게 창고에 방치되다가 쾰른에서 약 3개월간 사람들을 만난 게 전부였다. 이날 제막식으로 동마이는 여성박물관에 영원히 자리를 잡게 됐다.

 

세계 최초로 1981년 본에 여성박물관을 설립한 피첸 관장은 2017년에도 소녀상을 전시하려 했지만 당시엔 일본 총영사관 등의 방해로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소녀상이 놓인 부지를 박물관이 매입하면서, 사유지가 된 자리에 안전하게 동상을 놓게 됐다.

 

그럼에도 전날인 27일 일본 외무상은 “지극히 유감스럽다”며 “정부는 다양한 관계자에게 접근해 입장을 설명하고 강한 우려를 전달했다. 앞으로도 적절한 대응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첸 관장은 “일본 정부의 이익이 여성의 권리와 존엄만큼 중요한 건 아니”라며 “해당 부지는 사유지이기 때문에 일본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제막식을 통해 처음 소녀상 관련 역사를 알게 된 시리아인 술레이만은 “시리아에선 지금 이 순간도 여성들이 납치되고, 성노예가 되고 있다. 그들은 불만을 제기할 권리조차 없는 상황이다. 시리아 내전은 끝난 게 아니”라고 말했다. 술레이만은 지난 3월 아사드 정권 지지 세력과 과도정부 충돌로 1300명가량의 민간인이 사망한 사건을 들며 소녀상이 상징하는 전쟁의 비참함이 시리아에선 현재 진행 중임을 강조했다.

 

또한,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안나 소심(42)은 “2차 세계대전 때 구조적 성폭력을 가한 건 일본 뿐만이 아니었다. 독일도 나치 희생자들에 대해 이런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며 “독일은 현재도 이스라엘과 같은 전쟁하는 국가의 편을 들고 있는데, 우리의 역사에 대한 책임을 직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8일(현지시각) 독일 본 세계여성박물관 앞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동마이’의 제막식 현장에 모인 사람들. 사진 장예지 특파원

 

제막식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산창원진해(마창진) 시민모임도 함께했다. 이곳의 이경희 대표는 “여러 나라에 설치된 소녀상은 훼손되거나 철거되는 등 압박을 받고 있고, 국내에선 소녀상을 향한 테러도 벌어지고 있다”며 “90대 후반의 생존자가 살아계신 상황에서, 이제 피해 생존자가 없는 ‘포스트 피해자’의 시대가 올 것을 예고하고 있다. 소녀상을 더욱 귀중하게 평화의 상징으로 지켜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 대표 설명대로 소녀상은 국내 안팎에서 힘겹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소녀상을 비롯해 각지의 소녀상 설치에 힘썼던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는 최근 재정난으로 활동가 7명의 급여를 주지 못해 인원을 줄인 상황이다.

 

특히 코리아협의회가 베를린시 정부에 신청했던 소녀상 교육 프로그램 기금 사업(약 1억3000만원 규모) 지원에 탈락하면서, 재정 상황은 악화됐다. 당시 일본 대사관이 코리아협의회의 활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카이 베그너 베를린 시장도 이 단체를 지원해선 안 된다며 신청을 거절하도록 요구했다는 주장이 언론 보도로 전해졌다. 단체를 이끄는 한정화 대표는 “베를린에 있는 소녀상 박물관 임대료도 연말까지만 낼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독일 본 세계여성박물관에선 한국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사진과 그림 작품도 함께 전시됐다. 문필기, 김순덕, 배춘희, 이용녀, 이옥선, 이용수 할머니의 사진이 소개됐다. 이중 현재 생존한 할머니는 인권운동가인 이용수(97) 할머니 뿐이다. 사진 장예지 특파원
 

한편, 마창진 시민모임이 초대한 한국의 예술가 그룹 ‘다섯번째 목소리(The Fifth Voice)’의 일인극과 춤, 행위예술도 더해졌다. 아시아1인극협회를 이끄는 한대수 회장이 쑥향을 피우며 드린 정화 의식을 시작으로, 돌아가신 이의 넋을 기리는 ‘넋춤’을 추며 ‘위안부’와 강제동원 피해자 등의 고통을 표현했다.

 

장순향 한국민족춤협회 초대 이사장은 스스로 조선의 소녀가 되어 나, 너의 구분 없이 아픔을 상처하고 치유하는 춤을 선보였다. 행위예술가인 배달래 작가는 커다란 흰 천 위에 목탄을 흩뿌리고 두 발로 짓이기며 고통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저항의 몸짓을 형상화했다. 이들은 27일부터 프랑크푸르트와 본, 카셀, 베를린을 차례로 돌며 다음달 3일까지 소녀상 앞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 본/장예지 특파원 >

행위예술가인 배달래 작가가 28일(현지시각) 제막식이 열린 ‘평화의 소녀상’ 동마이 앞에서 공연하는 모습. 커다란 흰 천 위에 목탄을 흩뿌리고 두 발로 짓이기며 고통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저항의 몸짓을 형상화했다. 사진 장예지 특파원

 

 

“한미 간에는 관세 문제와 정치적 문제 두 가지 분야에 큰 현안이 있어”

 
 
조셉 윤 주한 미국 대사대리가 지난 2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재단이 한ㆍ미 외교 관계 전망과 과제를 주제로 개최한 KPF 초청 세미나에 참석해 패널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미국 정부가 조만간 이재명 대통령을 미국으로 초청해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조셉 윤 미국 대사대리가 27일 밝혔다. 윤 대사대리는 그동안 한미 정상회담의 조속한 개최 필요성을 강조하며 자신의 임기 중 회담이 반드시 성사될 것이라고 밝히긴 했으나, 정상회담의 시기나 방식에 대해 이처럼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었다.

 

윤 대사대리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헌정회(헌정회)와 한 오찬간담회에서 “조만간 미국 본국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워싱턴으로 초청해 한미 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안다”며 “양국 정상이 직접 만나야 두 나라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헌정회가 이날 전했다.

 

헌정회에 따르면, 윤 대사대리는 이날 간담회에서 “한미 간에는 관세 문제와 정치적 문제 두 가지 분야에 큰 현안이 있다”며 “정치적 문제로는 주한미군의 역할 문제와 방위비 분담 문제 등이 있는데 두 정상이 만나면 잘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윤 대사대리는 이어 한국은 주한미군의 구실을 대북억지력으로 보지만, 미국은 중국 억지력을 더 중요하게 본다는 점을 언급한 뒤 상호 시각차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윤 대사대리는 “최근 이란사태 등으로 오히려 북한핵 비핵화는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라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다시 정상회담을 하려고 할 가능성이 있지만, 김 위원장이 미국으로부터 특별히 무언가를 약속받지 못한 상황에서 회담에 나올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헌정회는 전했다.  < 고한솔 기자 >

 

국힘당은 상임위원장 일괄 선출에 반발하며 표결에 불참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예결위원장으로 선출된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이 당선인사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국회가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법제사법위원장 등 공석이었던 5개 상임위원장 가운데 4명을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선출했다. 민주당은 추가경정예산안(추경) 처리를 비롯한 ‘입법 드라이브’에 본격적으로 나설 채비를 마쳤다. 국민의힘은 상임위원장 일괄 선출에 반발하며 표결에 불참했다.

 

27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국회 예결위원장에 한병도 의원, 법사위원장에 이춘석 의원, 문체위원장에 김교흥 의원, 운영위원장에 김병기 의원을 선출했다. 국민의힘은 본회의장에 민주당의 상임위원장 표결 강행을 비판하는 손팻말을 붙여두고 표결 직전 본회의장을 퇴장했다. 앞서 국민의힘은 이날 오전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예결위원장 선출에 협조하는 대신 나머지 상임위원장 선출 안건 상정을 미뤄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날 4개 상임위원장 선출 안건을 본회의에 상정하기에 앞서 “상임위원장을 비워두면 국회의 상임위 운영이 어려워진다”며 “경제 민생의 시급한 법안이 한둘이 아닌데 국민들 보기에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되도록 여야 협의를 통해 사안을 매듭짓기 위해 협의를 독려하고 재촉해왔지만 현재로써는 며칠의 말미를 더 둔다고 해도 협상이 진척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의장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국회 관행과 협치 정신을 어겼다며 국회 로텐더홀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대선후보 토론 때 당시 이재명 후보는 ‘소통과 대화, 협치를 복원하겠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취임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지금 이 말이 전부 새빨간 거짓말임이 드러났다”며 “정권 출범 한 달 만에 정치와 협치가 무너진 모든 책임은 바로 민주당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으로 책임을 돌렸다. 백승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민의를 거스르고 묻지마식 폭주하는 것은 국민의힘”이라며 “법사위원장을 이용해 국정을 발목 잡으려는 속셈을 국민께서 모르실 것 같은가”라고 반격했다.

 

공석이었던 예결위원장과 법사위원장을 선출하며 진용을 재정비한 민주당은 추경안 처리와 개혁 입법에 속도를 낼 태세다.

 

민주당은 6월 임시국회가 끝나는 다음달 4일까지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안을 처리하고, 상법 개정안과 양곡관리법,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을 포함한 40여개 중점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민주당은 일단 김민석 총리 후보자 인준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를 30일에 열어달라고 우원식 의장에게 요청해둔 상태다.

국민의힘은 이날 김 후보자 검증을 위한 ‘국민청문회’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박 원내대변인은 “국회 청문회에서 소명되지 못한 부분들을 국민청문회를 통해 제대로 검증할 예정”이라며 “다양한 전문가를 불러 김 후보자 해명이 과연 적절한지 국민 여러분이 소상하게 판단할 장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 고한솔  전광준 기자 >

 

민주당 “수사 핑계 총리 인사에 개입한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25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김희정 국민의힘 의원이 제기한 주소지 문제에 대해 모니터를 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검찰이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정치자금법 위반 등 고발 사건을 경찰로 이송했다.

 

서울중앙지검은 27일 “김민석 후보자에 대한 고발사건을 관련 사건이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으로 이송”했다며 “검찰은 향후에도 직접수사 개시를 자제하면서 민생사건 수사에 집중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 최근 몇년동안 수입을 수억여원 초과한 지출로 논란이 됐다. 이에 국민의힘 소속 이종배 서울시의원은 김 후보자가 부정한 방법으로 금품을 수수했거나 소득세를 탈세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뇌물수수, 정치자금법 위반, 조세 포탈 등 혐의로 지난 19일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20일 이 사건을 형사1부에 배당했다.

 

그러자 여당은 검찰을 압박하고 나섰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검찰에 미리 경고한다”라며 “수사를 핑계로 총리 인사에 개입한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라고 발언했다.              < 정환봉 기자 > 

 

‘김민석 총리’ 여론 왜 나쁘지 않을까…한덕수와 비교하면 답 있다

새 정부 발목잡기 비판에 주진우 ‘병역 셀프검증’ 헛발
민주, 2022년 한덕수 총리 임명 때는 ‘찬성 당론’ 협치

 
 
 

더불어민주당의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 강행 움직임에도 여론 흐름이 나쁘지 않다. 왜일까.

 

국민의힘은 “이미 국민 검증에서 탈락했다” “지명을 철회하지 않으면 국민은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깔끔하게 해명되지 않은 재산 관련 의혹, 자료 미제출 버티기, 사라진 증인과 참고인, 여당의 묻지마 엄호, 부처 보고와 현장 방문 등 이미 총리가 된 듯한 행보까지 ‘악성 소재’는 많았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김 후보자의 ‘혐오 발언’도 진보층의 반발을 샀다.

 

여론조사 결과는 다르다. 24∼25일 진행된 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는 막판 국민의힘 청문위원들이 “재산 관련 자료를 제출하면 복귀하겠다”며 퇴장한 뒤 흐지부지 끝났다. 이틀째 오후 4시30분에 정회한 청문회는 자정을 넘긴 뒤 자동 산회했다. 26일 오전 전국지표조사(NBS) 결과가 나왔다. 김 후보자 인선에 대한 평가를 물었는데 ‘잘한 인선’이라는 응답이 45%, ‘잘못한 인선’이라는 응답이 31%였다. 아주 높지는 않지만 김 후보자의 답답한 방어에 비하면 나쁘지 않은 수치다. 국민의힘은 조국 전 의원 자녀 사건 프레임까지 끌어다 김 후보자를 공격했다. 문재인 정부를 휘청이게 했던 ‘조국 사태’처럼 이번에도 ‘김민석 사태’로 불붙기를 바란 것인데 반응이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 시정연설을 위해 본회의장에 입장하며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

 

한덕수는 82억원, 김민석은 2억원

 

김 후보자에 대한 공격은 지난 11일 인사청문 요청안이 국회에 제출된 직후부터 시작됐다. 국민의힘은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데도 자금 출처를 소명하지 못한다며 과거 불법 정치자금 제공자와의 채무 관계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문제는 이런 논란에도 김 후보자 재산이 너무 적다는 점이다. 김 후보자가 신고한 재산은 본인과 배우자, 모친, 장남 재산을 합쳐 2억1504만원이었다. 3년 전 윤석열 정부 첫 국무총리로 지명된 한덕수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때도 재산 관련 의혹, 자료 미제출 버티기, 여당의 묻지마 엄호는 그대로였다. 당시 한덕수는 본인과 배우자 재산으로 82억5937만원을 신고했다. 예금만 51억원이 넘었다. 2012년 공직에서 물러난 뒤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등으로 있을 때 재산이 40억원 가까이 늘었다.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내는 등 여야 정권을 가리지 않고 중용됐던 한덕수는 ‘회전문 인사’ 비판에도 무난한 통과가 예상됐지만, 전관예우·재산 증식 논란 등이 커지며 여론이 급격히 나빠졌다. 인사청문회가 끝나고 이틀 뒤인 2022년 5월5일 나온 전국지표조사 여론조사 결과는 ‘잘못한 인선’(45%)이라는 응답이 ‘잘한 인선’(33%)이라는 응답보다 많았다. 이보다 일주일 전 나온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도 ‘적합하지 않다’(37%)는 의견이 ‘적합하다’(30%)는 의견보다 많았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26일 이재명 대통령의 첫 시정연설이 끝난 직후 서울 여의도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지명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새 정부 발목잡기 ‘괘씸죄’…주진우 ‘병역 셀프검증’ 헛발질

 

김민석 후보자 임명에 우호적인 여론 흐름에는 윤석열 정부 3년간 엉망이 된 경제, 비상계엄 선포·내란 사태에 명확한 사과와 반성의 뜻을 보이지 않는 국민의힘에 대한 반감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경제 회복’ ‘내란 청산’을 내세운 새 정부의 발목을 시작부터 잡으려 한다는 ‘괘씸죄’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전국지표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평가는 2주 전보다 9%포인트(53%→62%) 증가했다. 6·3 대선 이후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이 45%를 유지한 반면, 국민의힘은 20%로 3%포인트 떨어졌다.

 

인사청문 과정에서 나온 국민의힘의 헛발질과 자충수가 오히려 김 후보자를 도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화운동으로 복역한 탓에 병역면제가 된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문제 삼았다가, 오히려 같은 당 주진우 의원의 간염 병역면제 의혹을 검증 당하는 처지에 놓였다. 또 김 후보자의 이혼한 전 배우자까지 증인으로 채택하려는 무리수를 뒀는데, 이 역시 ‘이러니 인사청문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논의로 흘러 버렸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2일 여야 지도부 회동에서 “가족 신상까지 문제 삼는 분위기에 능력 있는 분들이 입각을 꺼린다”고 말했다.

 

3년 전 민주당은 ‘한덕수 찬성 당론’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 심사 경과보고서 채택에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9일까지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으면, 국회의장 직권으로 임명동의안이 본회의에 상정될 가능성이 크다.

 

3년 전인 2022년 5월 민주당도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 심사 경과보고서 채택을 거부했다. 국민의힘은 당시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임명동의안 본회의 직권상정을 요구했다. 국무총리 임명에는 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과반 동의가 필요하다. 당시 167석 거대 야당이던 민주당 협조 없이는 한덕수 국무총리 임명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국민의힘은 표결을 앞두고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고액연봉 문제 등에 일부 공감한다. 하지만 내각을 총괄할 국무총리가 아직 선임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미완성 상태다. 정상적으로 출범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호소했다.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한덕수 찬성 당론’을 정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 정부 발목을 잡는다’는 국민의힘 프레임을 우려한 탓이다. ‘여당의 읍소’와 ‘야당의 협치’ 끝에 한덕수는 지명 47일 만에 윤석열 정부 첫 국무총리가 됐다.

 

※ 전국지표조사 :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23∼25일 만 18살 이상 1천명 전화면접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 김남일 기자 >

2022년 5월21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공수처, ‘주진우 아들 증여세 탈루 의혹 사건’ 수사2부 배당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질의하는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 연합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시민단체가 고발한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의 아들 증여세 탈루 의혹 사건을 수사2부(부장 김수환)에 배당했다고 27일 밝혔다.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은 지난 23일 “주 의원이 자신의 고교생 아들에게 할아버지가 준 7억4천만원의 증여로 발생한 증여세를 납부할 목적으로 증여세 상당의 돈을 고교생 아들에게 추가로 제공했다면 별개의 증여라서 별도 증여세가 발생한다”며 “억대의 증여세를 납부해야 하는 고교생 아들에게 증여세 상당의 별도 증여를 했음에도 이에 대한 증여세는 납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주 의원을 고발했다.

 

증여세는 증여를 받은 사람에게 납세 의무가 생긴다. 주 의원 아들의 경우 7억4천만원을 할아버지에게 증여받았다면 2억여원의 증여세를 납부해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주 의원이 대신 내줬다면 이에 대한 증여세 납부 의무가 또다시 주 의원 아들에게 생긴다. 사세행은 이런 ‘증여세의 증여세’를 주 의원 쪽이 납부했는지를 문제 삼고 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주 의원이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으로 재직하던 2022년, 2005년생 아들 명의로 7억4천만원의 예금을 신고했는데 증여한 과정에 탈세가 의심된다며 “세무신고 자료를 공개하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주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들 재산은 전액을 증여세 완납하고 할아버지로부터 받아 예금했을 뿐이고 나머지 재산 형성에 문제가 없는데 아무런 객관적 근거 없이 허위 의혹을 제기했다”고 반박했다.

 

사세행은 “주 의원은 증여세를 납부했다고 했지만, 정작 억대의 증여세를 고교생 아들이 어떻게 마련했는지는 전혀 해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곽진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