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월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
“아직도 위에서 억누르는 힘이 있다. 그 힘에 정치권력, 사법부, 언론 등 정의를 위해 일하고 제대로 감시해야 할 기구들이 다 ‘녹아웃’(knock out)돼 있는 것이 현재 한국의 상황이다.” (전성인 전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관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대법원 무죄 확정 판결을 놓고 언론이 제대로 된 감시자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삼성에 대한 비판 칼럼이나 토론회가 잘 기사화되지 않는 등 아직 언론이 삼성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경제개혁연대,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노총, 참여연대, 한국노총 주최로 ‘삼성 불법합병 판결 의의와 후속 과제 진단 좌담회’가 열렸다. 앞서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지난 17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회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핵심적 문제 제대로 지적하는 보도 극히 드물어”
2019년 대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판결에서 이재용 회장이 승계 작업을 위해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최서원(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줬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정작 이재용 회장이 기소된 사건에선 1심과 항소심, 대법원이 모두 무죄를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의 비판 기능이 사라졌다는 지적이다.
▲ 지난 25일 참여연대 주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신미희 민언련 처장. 사진=참여연대
신미희 민언련 사무처장은 “언론이 삼성 권력에 대해 제대로 감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나왔다”며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 2017년 장충기 문자 사건, 2021년 삼성 상속세 관련 보도 그리고 이번 대법원 판결에 있어 삼성에 대한 언론의 비판 기능은 상실됐고 실종됐다”고 말했다.
신미희 처장은 “주요 언론사들은 1심 판결을 단순 전달하는 중계 보도에 그쳤다. 재벌 총수의 엄연한 범죄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어떻게 왜곡됐는지, 특히 2019년 대법원 판결과 충돌하는 핵심적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는 보도는 극히 드물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8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이 인정된다는 서울행정법원 판결도 나왔다. 이에 검찰이 판결 취지를 반영해 예비적 공소사실을 추가했는데 이재용 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2015년 회계 처리에 문제가 있지만 범죄의 고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신미희 처장은 “쟁점이 추가됐음에도 언론이 지속적으로 외면한다”며 “이재용 변호인의 입장은 충실히 반영했지만 시민사회 비판을 담은 언론사는 1심 8개에서 2심(항소심) 4개로 줄었다”고 했다.
신 처장은 “열심히 경영하고 실적을 내는 기업에 대해 언론이 조명하는 것을 누가 뭐라고 하진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렇게 편법으로 재벌 총수 일가가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불법을 자행하는데도 오히려 면죄부를 내려주는 문제는 민주주의를 흔드는 위험적인 요소다. 언론이 제대로 감시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비판 토론회가 기사화되지 않는 이유
삼성에 대한 비판적 내용의 토론회는 기사화 되는 경우가 드물다. 이날 참여연대에서 열린 토론회도 한겨레를 제외하면 주요 일간지에서 다뤄지지 않았다. 전성인 전 홍익대 교수는 지난 16일 한국회계기준원이 주최한 ‘보험회사 관계사(계열사) 주식 회계 처리의 문제점 검토’ 토론회를 예로 들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논란과 유사한 삼성생명의 회계 처리 문제를 지적하는 토론회였는데, 중요성에 비해 보도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다.
▲ 지난 25일 참여연대 주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전성인 전 교수. 사진=참여연대
전성인 전 교수는 “좌석이 꽉 찼다고 한다. 카메라도 엄청 많았다고 하는데, 칼럼을 쓸 때 (토론회) 사진을 달라고 하니 사진이 아무에게도 없었다. 통신사에게도, 칼럼이 나가는 언론사에게도 사진이 없었다”며 “나중에 보니 기사화도 거의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주요 일간지 중 지면에서 해당 토론회를 다룬 언론사는 경향신문과 한겨레뿐이었다. 전성인 전 교수는 “17일(토론회 다음날)이 대법원에서 (이재용 회장) 무죄를 선고하는 잔칫날인데 ‘전날 토론회 사진을 조간에 실으면 어떡하냐’는 문제제기가 현장에서 있었다고 들었다”고 했다.
전 전 교수는 “이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며 “아직도 위에서 억누르는 힘이 있다. 그 힘에 정치권력, 사법부, 언론 등 정의를 위해 일하고 제대로 감시해야 할 기구들이 다 ‘녹아웃’(knock out)돼 있는 것이 현재 한국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경제개혁연대,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민주언론시민연합, 민주노총, 참여연대, 한국노총 주최로 ‘삼성 불법합병 판결 의의와 후속 과제 진단 좌담회’가 열렸다. 사진=참여연대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의혹은 언론이 제대로 분석해야 하는 주요한 사건이다.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삼성 합병은 단순한 기업 결합이 아니었다. 이재용 회장이 최소한의 자금으로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기획하고 실행한 승계 작업의 핵심 보루”라며 “국민연금은 내부 전문가들의 반대 의견이나 비판 여론에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국민연금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면서 이뤄진 결정”이라고 말했다.
김 처장은 “그 결과 이익은 총수 일가에게 돌아갔고 손해는 투자자, 특히 국민연금이라는 공적 자산에 고스란히 전가됐다. 참여연대 추산에 따르면 이재용 일가는 3조 원에서 4조 원의 부당한 이익을 얻었고 국민연금은 최대 6750억 원에 달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법원은 관련 판결에서 ‘사업상 목적이 존재하는 이상 지배력 강화 목적에 합병이 수반됐다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논리를 반복했다. 이를 바탕으로 재벌들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김종보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는 “(이재용 회장 기소 이후) 다른 기업들이 다 눈치를 봤다. ‘잘못하면 큰 일 나겠다’고 주춤하고 있었는데 이제 다시 본격적으로 합병 추진이 이뤄질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세습 자본주의가 더 고착화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 박재령 기자 >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의 보존처리 작업 모습. 겉 지면의 오염물을 붓질하며 걷어내는 장면이다. 국가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일제강점기인 1920~40년대 중국에서 활동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이 광복 뒤 나라 기틀을 어떻게 세우려했는지 보여주는 `건국강령 초안’이 내달 선보인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는 최근 보존처리 작업을 마친 국가등록문화유산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의 주요 면면을 최근 언론에 공개했다. 초안 실물은 내달 12일부터 10월12일까지 서울 덕수궁 돈덕전에서 열리는 특별전 ‘빛을 담은 항일유산’에 내보일 계획이라고 센터 쪽은 밝혔다.
건국강령 초안은 모두 10장으로 이뤄졌다.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독립지사 조소앙(1887∼1958)이 ‘삼균주의(三均主義:개인, 민족, 국가와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통해 이상 사회를 만들자는 정치이론)’에 바탕해 항일 독립운동과 광복 뒤 나라의 건설 방향을 친필로 갈무리한 문서다. 1941년 11월 28일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일부를 수정한 원안을 채택했고, 해방 뒤 1948년 반포한 대한민국 제헌헌법 바탕이 됐다. 조소앙이 먹글씨로 내용을 썼고, 고심하면서 고친 자취도 그대로 남아 역사적 가치가 높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 일부의 보존처리 전 지면(왼쪽)과 처리 뒤 지면(오른쪽).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제공
초안은 세월이 지나면서 지면 곳곳이 접히거나 찢어져 셀로판테이프를 붙였고, 잉크도 번지는 등 손상이 심화됐다. 이에 센터가 지난해 12월부터 보존 처리 작업에 들어갔다. 찢긴 부분 테이프를 떼고, 눌러붙은 과거 접착물을 제거했다. 오리나무 열매를 끓여 만든 염액으로 초안과 유사한 재질의 종이까지 만들면서 지면 손상 부위를 보강했다.
센터 쪽은 특제 보관상자에 안치한 초안을 돈덕전 전시 때 꺼내어 내보이게 된다. 앞서 내달 16∼21일 덕수궁 덕홍전에서 보존처리 과정을 조명한 전시도 마련한다. < 노형석 기자 >
미국 하와이에 있는 주호놀룰루 대한민국 총영사관(호놀룰루 영사관)에서 관저 요리사에 대한 총영사 부인의 갑질이 있었다는 신고가 접수돼 외교부가 감찰 조사에 나섰다. 특히 이 과정에서 영사관 책임자들은 되레 피해자에게 경위서 작성을 요구하는 등 ‘2차 가해’에 나섰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외교부는 최근 호놀룰루 영사관에 대한 내부 감찰에 착수했다. 지난해 8월부터 호놀룰루 영사관 관저 요리사로 일했던 ㄱ(28)씨는 30일 한겨레에 “총영사 부인으로부터 과도한 감시와 간섭과 폭언 등 갑질을 당했고, 공식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자 영사관 쪽은 ‘업무를 잘 이행하고 권리를 주장하는지 확인하겠다’며 오히려 내 잘못에 대한 진술서와 경위서 작성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관저 요리사는 각 외교 공관 소속 행정 직원이지만, 관저 식사 행사를 주관하는 공관장 부인에게 업무 지휘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1년 단위 계약 갱신을 위해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어 ‘갑질’에 노출되기도 쉬운 환경이다.
ㄱ씨 설명을 들어보면, 육군 소장 출신으로 2023년 5월 부임한 이서영 주호놀룰루 총영사의 부인 ㄴ씨는 주방에 들어와 바짝 붙어 요리를 지시하는 등 지속해서 ㄱ씨의 요리 과정에 간섭했다고 한다. 파스타 삶기, 스테이크 굽기까지 쉴 새 없이 지시하는 ㄴ씨 말을 따르다가 ㄱ씨는 화구에 데어 10㎝ 크기의 상처가 남은 화상을 입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지난 4월11일 만찬 준비 당시 ㄴ씨의 간섭과 감시는 도를 넘었다는 게 ㄱ씨 설명이다. 만찬 재료를 준비하는 동안 ㄴ씨는 50㎝ 곁까지 다가와 관찰했고, 조리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주방 여닫이문 사이로 고개만 내밀고 5분 이상 조리 과정을 빤히 쳐다보기까지 했다고 한다. ㄱ씨는 “내 동선을 계속 지켜봤고, 촬영한 영상에 신체 일부도 찍혀 있어 수치심을 느꼈다”고 했다. 참다못한 ㄱ씨는 영사관에 ‘고충 상담 보고서’를 제출해 피해 상황을 공식 보고했다.
문제는 이후 더욱 커졌다. 보고 사흘 만인 4월17일 ㄴ씨는 고충 상담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고, ㄱ씨를 향해 1시간 이상 폭언을 이어갔다. 당시 상황이 담긴 녹음을 들어 보면, ㄴ씨는 ㄱ씨의 ‘인사성’에 문제가 있다며 “어디 가서 그렇게 하면 사람 취급도 못 받아. 가만 안 둘 거야”라고 했다. ㄴ씨의 문제 제기를 두고는 “개무시한다고 생각하고, 나를”이라며 분노를 드러냈고 “노동법에 걸려요? 아니 노동자가 그런 것도 모르고요?”라며 비꼬기도 했다. 갑질 피해 신고 내용이 가해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된 것이다.
영사관의 총무영사·부총영사와의 고충 상담 과정에서는 ㄱ씨의 잘못을 들춰내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이들은 ㄱ씨에게 △점심시간 1시간 준수 여부 △냉장고에 여유분이 있는데도 소고기를 추가 구매한 이유 등에 대한 진술서 작성을 요구했다고 한다. ㄱ씨는 결국 지난 5월 관저 요리 업무에서 배제됐고, 재계약도 이뤄지지 않았다. ㄱ씨는 8월 한국에 돌아올 예정으로, 과호흡과 우울 증세로 약물 치료와 심리 상담을 병행하고 있다.
갑질 의혹에 대해 ㄴ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만찬 관리 감독을 위해 보거나 돌아다닌 것뿐으로, 5분 동안 요리사를 쳐다봤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동영상이나 사진은 음식 기록용으로 찍었다”고 했다. ㄱ씨를 향한 폭언에 대해서는 “인사성에 대해 지적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겠기에 마지막으로 딱 한번 말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교부는 감찰을 벌이고 있다면서도 ‘퇴직’이 예정돼 있다는 이유로 이서영 총영사와 부인 ㄴ씨 조사는 중단한 상태라고 ㄱ씨에게 알렸다. 외교부는 ㄱ씨에게 “공관 내 여타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별도 진행 중”이라고 했고, 한겨레에는 “현재 감찰조사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