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 전 학원 침탈에 항의한 교수

고문치사 뒤 간첩죄 덮어씌웠던 중정

그 후예가 진실화해위 조사국장이라니

마스크 쓰고 국회 출석해 "매국노 잡았다"

 

고상만 인권운동가(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

 

2024년 국회 국정감사 중 인기 유튜브 방송의 실시간 동접수는 ‘속된 말로’ 죽을 쒔다고 한다. 법사위나 과방위 등 국민 관심사가 집중된 상임위 중계가 재미있어서 관심이 온통 그쪽으로 쏠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국감에서는 앞으로 여의도 정치권에 전설처럼 남을 이야기가 많이 생산되었다.

마스크로 변장한 국정원 출신 진실화해위 조사 책임자

나도 그 중에 하나를 꼽자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감에 출석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조사1국장 황인수 사례다. 그는 28년 간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 업무를 했으며 마지막 직위는 대공수사처장(3급)이었다. 윤석열 정권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피해자의 진실을 밝히는 진실화해위 조사 책임자로 ‘그런 사람’을 임명한 것이다.

그러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가 조사국장으로 온 후 내부의 혼란은 극심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기행은 국회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국회 행안위에서 진실화해위 위원장 등을 불렀는데 기관 증인으로 함께 출석하면서 얼굴을 마스크로 변장한 채 나타난 것이다.

야당은 물론이고 국힘당 소속 여당의원까지 마스크를 벗으라고 요구했지만 그는 끝까지 버티며 퇴장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6월에도 국회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출석했다. 의도적 도발이다. 논쟁이 되자 그는 “28년간 매국노를 찾아내 처벌하는 대공업무에 매진해 왔기 때문에 얼굴 공개 시 타인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마스크를 고수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의원들이 납득할 리 없었다.

방송을 통해 그 장면을 본 나 역시 어처구니 없었다. ‘매국노’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그의 정신세계가 너무나 특이했다. 국어사전에서 ‘매국노’는 ‘사리사욕을 위하여 남의 나라 앞잡이가 되어 자기 나라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국가정보원은 정말 그런 매국노만 찾아 엄격히 처벌해 온 곳인가?

 

'얼굴 비공개'로 논란을 빚어온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황인수 조사 1국장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얼굴 공개 요구를 거부하며 주민등록증을 들어 보이고 있다(왼쪽 사진).이에 신정훈 위원장이 인터넷 등에 공개된 황 국장의 사진을 들어 보이며 마스크를 벗지 않는 것은 국회를 무시하는 태도라고 지적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 2024.10.10. 연합
 

매국노 찾아낸 것 아니라 고문으로 간첩 조작했던 중정

그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국정원의 원조는 ‘중앙정보부’다. 박정희가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중앙정보부를 만든 것이었다. 이를 통해 자신의 독재에 반대하는 세력을 고문으로 조작하여 간첩을 만들었고, 감옥으로 보냈으며 때로는 죽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희생자가 1974년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8인이었다. 결국 재심을 통해 이 모든 것이 중정의 고문으로 철저히 조작된 사건임이 밝혀졌다. 또한 박정희, 전두환 치하에서 숱하게 발표된 1970, 80년대 대부분의 간첩사건이 중정과 안기부의 고문으로 조작되었음이 과거사위 조사와 재심으로 드러났다.

그중에 정말 잊지 말아야 할 사람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만 51년 전, 중앙정보부에서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된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다. 그는 1973년 10월 16일 스스로 걸어서 당시 서울 남산에 위치한 중앙정보부에 출두했다. 중정으로부터 ‘협조’ 요청을 받고 간단한 조사후 금방 나올 줄 알고 간 길이 마지막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가 출두하고 사흘 후인 19일 새벽, 중정은 조사 중 자신이 간첩임을 자백한 최 교수가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7층 화장실 창문 밖으로 뛰어 내려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사망 당시 마흔 세 살. 스위스 취리히대학 유학파 출신에 독일 쾰른대학에서 채 서른이 되기 전 법학박사를 취득한 촉망받던 서울 법대 정교수였다. 그런 최 교수가 무엇이 부족해서 간첩 행위를 하였을까.

학생 탄압 항의한 서울대 법대 교수를 간첩 만들려던 중정

최 교수가 중정으로 연행된 진실은 따로 있었다. 모범적인 학자이자 자상한 가장이었던 최 교수의 비극이 시작된 날은 1973년 10월 2일이었다. 이날 서울대 학생들은 박정희 유신독재 선포 이후 처음으로 유신 반대 시위를 격렬하게 벌였다. 이 시위로 학생과 교직원 등이 대거 경찰에 연행되어 고문과 구타를 당한다.

이에 최 교수는 중정2국 소속의 김 아무개 서울대 담당관에게 “학원에 기관원이 출입하고 학생 교수들을 연행해서 고문하고 핍박하는 것은 나치 히틀러의 게슈타포나 하는 짓”이라고 항의했다. 이어 교수회의에서는 “총장이 부당한 공권력의 최고 수장인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가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도 했다.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유신독재가 서슬퍼런 그 시절에 서울대 학생과장이었던 최 교수가 박정희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발언을 한 것이 중정에게는 용납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유럽 거점 대규모 간첩단 사건’에 최 교수를 간첩으로 엮고자 고문을 하다가 그만 죽음에 이르도록 한 것이다. 그러자 중정은 이런 잘못을 덮고자 ‘죽기 전 스스로 자백했다’며 최 교수를 간첩단 일원에 포함시켜 발표한다.

결국 촉망받던 법학자이며 정의로운 스승이었던 최 교수가 중정에 의해 간첩이라는 ‘매국노’로 전락했으니, 남은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이 땅에서의 잔인한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 늦게나마 진실이 밝혀진 것은 지난 2002년이었다.

2002년 뒤늦게 밝혀진 진실, 끝까지 부인한 가해 요원들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최 교수의 유족이 낸 진정을 받아 조사한 결과, ‘최 교수는 중정의 고문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간첩 자백을 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구나 최 교수가 간첩의 일원이었다고 중정이 발표한 ‘유럽 거점 간첩단 사건’ 역시 별도로 조사한 결과, 완전 조작된 사건이었음이 밝혀졌다. 하지만 중정의 가해자들은 사실을 강력 부인했다.

“제 생명을 걸고 천지신명께 맹세코, 잠 안 재운 것 빼고는 최 교수를 고문도 죽이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어머니가 ‘남의 눈에 눈물 나오게 하면 너는 피눈물 흘리게 되니 악행하지 말라’ 했다며 “빰 한 대 때린 적 없다”고 어머니까지 팔았다고 한다. 하지만 거짓말이었다. 그들은 양심도, 천지신명도, 심지어 자기 어머니도 필요하면 팔아먹는 자들인 것이다.

가해자를 제외한 다른 중정 직원의 진술은 명확했다. 최 교수가 무자비한 구타 고문으로 온 몸에 멍이 들어 제대로 걷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가해자들이 야전 침대용 각목으로 최 교수의 엉덩이를 때리는 걸 직접 봤다는 목격 증언도 있었다. 그런 몸으로 가해자들이 밀착 감시하는 짧은 상황에 7층 창문에서 뛰어 내렸다는 진술은 진실에 부합하지 않았다.

2006년 2월 16일, 마침내 법원도 ‘법의 이름으로’ 최 교수의 사인 조작을 인정하고 유족에 대한 거액의 국가 배상을 선고한다. 서울고법 민사5부(조용호 부장판사)는 이날 “최종길은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의 고문 등 가혹행위로 인해 사망했거나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이를 피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사망했거나, 또는 의식불명 상태의 그를 사망한 것으로 오인한 수사관들이 건물 밖으로 던짐으로써 사망한 사실이 인정되고 중앙정보부가 이를 은폐하기 위해 허위 발표했다”고 판결했다.

 

대규모 간첩단 적발했다는 중정의 발표를 기사화한 1973년 10월 25일치 신문. 최종길 교수 사진에 '사망'이라고 표기돼 있다. 
 

매국노가 ‘가짜 애국자’를 자처하는 불행한 시대

지난 10월 19일은 최종길 교수의 기일이었다. 그날 경기도 마석모란공원 최 교수 묘역에서는 70여 명의 각계 인사가 그의 51주기를 추모했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함세웅 신부가 미사를 집전했고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이 고인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담아 회고했다. 엄혹했던 당시 시대상을 느낄 수 있는 고백이었다.

“(…) 지금으로부터 51년 전인 1973년 10월 19일, 지금은 ‘대학로’로 불리는 동숭동에 자리했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최종길 교수께서, 당시에 국민이 이름만 들어도 공포에 전율하던 중앙정보부의 모진 고문을 받고 목숨을 잃었습니다. 정부기관은 최 교수가 ‘간첩’ 혐의로 수사 받다 죄상이 드러나자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거짓에 대들지 못했습니다. 당시 대학원생이던 저는 그 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학교는 온통 어두운 침묵 속에 무력했습니다. 스승을 잃은 학생들은 황망한 분노를 행동으로 결집할 수 없었고, 동료를 잃은 교수들은 굳은 표정과 비탄의 침묵으로 추도의식을 치렀습니다.

그런 중에서도 ‘간첩’과 ‘자살’ 이라는 치명적인 낙인을 거부하며 진짜 사인을 규명하자며 용감하게 나섰던 몇몇 젊은 교수들이 그 일로 인해 차례차례 정보기관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습니다. 유족의 접촉도, 죽음을 애도하는 사적 모임조차도 당국의 엄중한 감시 대상이 되었습니다.

도서관 앞에 ‘정의의 종’을 내걸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탐구 연마하던 대학이 독재정부가 휘두른 무도한 폭력 앞에 교수를 희생양으로 바쳤다는 양심의 가책을 안은 채 모두가 침묵의 공모자로 살도록 강요 당했습니다. (…)”

이런 중정에서,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국정원에서 종사하던 자를 ‘다른 곳도 아닌’ 진실화해위 조사국장으로 채용한 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진짜 매국노는 죄 없는 이를 간첩으로 만들어 죽임으로서, 국민이 국가를 불신하게 만든 자들이다. 그래서 나는 독재 권력의 손과 발 역할을 하던 정보기관의 수구들을 ‘매국노’라 부르겠다. 그런 매국노가 ‘가짜 애국자를 자처하는’ 불행한 윤석열 시대다.     < 민들레 고상만 인권운동가 >

 

"TK가 싼 똥, TK가 치우자" 대구 도심 촛불집회

● COREA 2024. 11. 3. 01:38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대구촛불행동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윤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열어

 
 

 

2일 오후 대구 중구 2.28민주공원 옆 국채보상로에서 열린 윤석열정권 탄핵 집회에 참석한 한 참가자가 'TK가 싸지른 똥, TK가 치우자'라고 쓴 종이 박스를 두르고 있다. 
 


대구에서도 윤석열 정권에 대한 촛불이 피어오르고 있다.

대구촛불행동은 진보당 대구시당과 함께 2일 오후 대구 중구 동성로 2.28기념중앙공원 옆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김건희 여사 구속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외쳤다.

국채보상로 1개 차로에서 진행된 집회에는 차규근 조국혁신당 대구시당위원장을 비롯해 황순규 진보당 대구시당위원장 등 시민 100여 명이 참석해 '추악한 비리왕국, 윤건희 일당 타도하자' 등이 새겨진 피켓을 들었다. 한 참석자는 "TK가 싸지른 똥, TK가 치우자"라고 쓴 대형 몸팻말을 몸에 둘렀다.

                                   ▲2일 오후 대구시 중구 2.28민주공원 옆 국채보상로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대구집회. 


이들은 '윤석열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국민 명령서'를 통해 "윤석열 정권의 추악한 범죄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비선들이 국정을 운영하는 천인공노할 행각도 발각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은 김건희 방탄과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공권력을 총동원하고 있다"며 "심지어 자신의 통치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전쟁을 추구하고 계엄을 선포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우리 국민들은 총선 압승을 통해 탄핵국회를 건설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고 143만의 윤석열 탄핵 청원으로 탄핵을 대세로 만들었다"면서 "이제 국회가 나설 차례이다. 국회는 민심을 받들어 윤석열 탄핵소추안을 즉각 발의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대구지역 국회의원들을 향해 "대구지역 유권자들은 대한민국 주권자로서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를 명한다"며 "민심을 외면한다면 국회의원들도 심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강조했다.

김재현 대구촛불행동 공동대표는 "설마설마 했는데 김건희가 대통령 노릇을 할 줄은 몰랐다"며 "시간이 지나면 2024년을 우리 교과서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과 김건희·윤석열이 교도소에 갔다는 것이 실리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대구시당위원장은 먼저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사건을 불기소 처분한 검찰에 대해 "정치검찰 해체하라"는 구호로 말문을 열었다. 차 위원장은 대통령실 불법 증축 의혹,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지방선거 공천 개입 의혹, 대통령선거와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 조작 의혹 등을 들며 "도대체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윤석열이냐 아니면 김건희냐"고 따졌다.

지난 1일 발표한 갤럽 여론조사를 거론하며 "서울의 국정 지지율이 22%로 조사되었고 전국 평균이 19%인데, 대구경북의 지지율은 그보다 낮은 18%"라며 "대구시민과 경북 도민들이 윤석열 정권의 퇴행에 대해 더 강력한 경고를 주기 시작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를 탄핵한 헌법재판소가 "피청구인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게 된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함으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인정했다"며 "윤석열 대통령을 파면하는 것이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라고 주장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대구시당위원장(비례대표)이 2일 오후 대구 중구 2.28민주공원 옆 국채보상로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황순규 진보당 대구시당위원장은 "벌써부터 명예로운 퇴진을 위한 임기단축 개헌 카드 이야기가 들린다"며 "국정농단을 덮어주고 면죄부를 부여하는 시도는 용납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보당은 이미 지난 8월 당론으로 탄핵을 정했다"라며 "광장에서는 퇴진 여론을 모아내고 원내에서는 탄핵에 동참하는 의원들을 모아 실질적인 탄핵이 가능하도록 온 힘을 모으겠다"라고 말했다.

앞서 이날 오후 1시부터는 중구 현대백화점 앞에서 조국혁신당이 '탄핵다방 1호점'을 열고 대구시민이 먼저 나서 윤석열 정권을 탄핵하자고 강조했다.

조국 대표는 "보수의 가치는 애국과 품위"라며 "일본 정부의 이익을 위해 우리 돈 써가면서 옹호하고, 품위도 품격도 없는 윤석열·김건희 공동정권은 조기 종식되어야 한다"며 "전국의 국민들이 두 사람을 보고 부끄러워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시민사회도 나서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을 떼고 국정농단과 헌정파괴에 대한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는 전날인 지난 1일 성명서를 통해 "윤석열 정권의 추악한 민낯, 공천거래 선거법 위반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라며 "거짓 해명과 물타기로 국민을 속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입만 열면 법치를 강조하더니 윤석열 대통령과 가족 앞에서 법치는 멈춰 있다"며 "지금 당장 윤석열 대통령은 직무를 정지하고 대통령직에서 내려오라"고 주장했다.                 < 오마이 조정훈 기자 >


대구촛불행동과 진보당 대구시당은 2일 오후 대구 중구 2.28민주공원 옆 국채보상로에서 윤석열정권 탄핵 집회를 열었다

 

촛불행동 쪽, 2만여명 참여 추산


“비리 계속 드러나는데 가만히 있는 검찰 불만”
“이권에 김건희 연결…권력이 감싸는 게 부당”

 

 
 
2일 저녁 촛불행동이 서울 도심에서 연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113차 촛불대행진’에서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촛불행동 제공.
 

윤석열 대통령의 공천 개입 정황이 담긴 명태균씨와의 통화 녹취가 공개된 뒤 첫 주말인 2일 저녁 서울 중구 시청역 7번 출구 앞에서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113차 촛불대행진’이 열렸다. 숭례문 방향 4차선 도로 300m가량을 메운 시민들은 김건희 여사 수사와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갑갑함을 토로했다. 집회를 주최한 촛불행동 쪽은 이날 집회에 연인원 2만여명이 참여한 걸로 추산한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30만명(주최 쪽 추산)이 참여한 더불어민주당의 ‘김건희 윤석열 국정농단 규탄·특검 촉구 국민행동의 날’에 이어, 저녁까지 서울 도심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대규모 시민 행동이 이어진 셈이다.

이날 촛불대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은 거리에 나온 이유로 윤 대통령과 명씨의 통화 녹취록을 주로 언급했다. 대전에서 온 김무성(46)씨는 “녹취록까지 공개되고 김 여사의 국정 개입이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고 있는데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행태를 보고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강주영(47)씨도 “이전에는 김 여사가 국정 개입을 하는 것에 대해 긴가민가 했는데 최근 녹취록을 듣고 확신하고 집회에 나왔다”며 “김 여사에 대해서는 주가조작 의혹 등 비리가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않는 검찰에 대해서도 불만이 크다”고 했다.

2일 저녁 서울 도심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113차 촛불대행진’에서 시민들이 정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촛불행동 제공.
 

정부의 우크라이나 전쟁 전황분석팀 파견 검토와 관련해서도, 사실상 파병 수순이라는 불안감이 컸다. 남편과 강릉에서 왔다는 안아무개(52)씨는 “아들이 곧 입대할 나이인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북한과의 관계도 악화되고, 최근 우크라이나 파견까지 언급하는 걸 보고 불안해서 집회에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젊은 층 참여도 눈에 띄었다. 서울 서초구에서 온 홍가영(30)씨는 “국민이 뽑은 건 윤 대통령인데 부인이 모든 이권에 연결돼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며 “모든 권력기관이 윤 대통령과 김 여사를 감싸는 것도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약속이 있어 나왔다가 집회에 참여하게 됐다는 박아무개(24)씨도 “대통령이 법을 자신과 부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는 것 같아 평소 불만스러웠는데 마침 집회가 열려 친구와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날 촛불집회 무대 발언에 나선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명태균-윤석열 게이트가 대한민국을 완전히 집어삼키고 있다”며 “윤 대통령은 스스로 내려오든지, 국민에 의해 끌려 내려오든지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바로 8년전 윤석열 검사는 국정농단을 수사하겠다며 청와대 압수수색을 벌이면서 공정과 상식을 말하고, 정의로운 검사로 떠올랐다”며 “그런데 지금 각종 비리에 휩싸인 부인과 처가 지키기에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촛불행동은 이날 시청역을 시작으로 청계광장, 을지로 일대를 거쳐 다시 본 행사장으로 돌아오는 도심 행진을 펼쳤다. 이들은 “우크라참전 한반도전쟁 윤석열을 타도하자”, “공천개입 국정농단 김건희를 몰아내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 한겨레 박고은 기자 >

촛불행동이 2일 저녁 서울 도심에서 연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113차 촛불대행진’에서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시민 제공.

 

 

도둑맞은 가난, 도둑맞은 민주주의

● COREA 2024. 11. 2. 11:26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사람 바꾸고 시스템 바꾸면 될 줄 알았더니...

검찰 출신 대통령이 가족 위한 비즈니스

게다가 선출과정 여론조작 정황까지 속속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전 마을이장

 

박완서(1931~2011) 작가의 1975년 단편소설에 ‘도둑맞은 가난’이 있다. 가난을 도둑맞다니? 어떻게 된 일인가? 가난이 사라졌다면 차라리 잘 된 일 아닌가?

부자의 ‘가난 체험 활동’에 상처받은 박완서 소설의 여주인공

가난을 도둑맞은 주인공은 공장에서 일하는 앳된 여성이다. 원래 중산층이었는데 아버지의 실직과 허영심 많은 엄마 탓에 집안이 몰락했다. 차라리 죽기보다 빈민촌 가난의 냄새를 더 싫어한 어머니가 느닷없이 아버지와 오빠랑 동반자살 하는 바람에 고아가 됐다.

‘여공’이 되어 밑바닥 생활을 하는 주인공은 “그들이 죽기를 무릅쓰고 거부한 가난을 내가 지금 얼마나 친근하게 동반하고 있나에 나는 뭉클하니 뜨거운 쾌감을 느꼈다.” 이렇게 가난한 삶을 기꺼이 사랑하며 성실히 살던 주인공은 우연히 “5원짜리 풀빵 구루마 앞에서” 남성 상훈을 만나 동거를 시작한다. 연탄이나 월세 등 돈을 아낄 수 있어 좋지만, 실은 상훈에게도 끌렸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상훈이 먼저 사랑을 고백하길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상훈이 아픈 동료를 돕는답시고 그간 둘이서 동거하며 함께 모은 저금을 다 써버렸다 하는 게 아닌가? 주인공이 버럭 화를 내자 상훈이 사라진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면서 속이 타고 분해서 눈물이 난다. 걱정과 울화가 범벅이다. 한참 뒤 상훈이 돌아왔는데, 멋진 옷을 입고 말끔해졌다.

무슨 일인가 물었다. 상훈은 자기가 원래 부잣집 아들이고 대학생인데, 아버지가 좀 별나 방학 때 고생 좀 하며 돈 귀한 줄 알고 오라 해서 공장에 취업한 것이라 했다. 이 고백은 주인공에게 멘붕을 주었다. 이 배신감!

절망과 수치심으로 변한 가난 초월의 소명감

바로 그 때 주인공 여성의 심장엔 ‘가난을 도둑맞았다!’는 느낌이 치밀었다. “가난을 정면으로 억척스럽게 사는 사람들의 이런 특이한 발랄함-가난의 냄새에 기꺼이 길들여지는 것-을 우리 어머니는 얼마나 치를 떨며 경멸했던가.” 그래서 주인공에겐, 가난하고 힘들지만 악착같이 살아내 마침내 가난을 초월하고야 말겠다던 소명감 같은 게 있었다. 하지만 부자들의 장난질 때문에 그 소명감이 갑자기 절망감과 수치심으로 변했다. “내 가난을, 내 가난의 의미를 무슨 수로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인가.”

설사 부잣집 상훈의 아버지가 깊은 뜻을 가졌다 해도, 부자의 “가난 체험 활동”에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건 절대 용서 불가였다.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곰곰 생각해보니 주인공이 맨 처음 상훈을 풀빵 구루마에서 봤을 때, 그가 풀빵을 손으로 잡지 않고 “어디서 났는지 오톨도톨한 꽃무늬가 있는 하얀 종이 냅킨으로 싸서 집어먹던” 것부터 꼴사나웠다. “다 먹고 나서는 그 냅킨으로 입 언저리를 자못 점잖게 꾹꾹 눌러 닦는” 것도 꼴불견이었다. “같은 5원짜리 풀빵을 먹으면서 그까짓 종이 한 장으로 이곳에서 풀빵을 먹고 있는 배고프고 피곤한 저녁나절의 직공들 사이에서 우월감 같은 걸 누리고 있는 게 몹시 꼴사나워” 보일 때부터 주인공이 알아 봤어야 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상훈과 내가 근본부터 다르다는 걸! “얼마나 떳떳하고 용감하게 내 가난을 지켰는지 스스로 뽐내던” 주인공, “내 방에서 기적이 일어나게 하기 위해 매일 방을 비워야 했던” 주인공, 그 주인공에게 도대체 부자가 ‘가난을 체험 삼아 살아 본다’는 게 말인가 방군가? 그래서 가난을 도둑맞았다!

 

2022년 5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명태균 씨(녹색 원)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를 받는 권오수 회장의 아들 권혁민 대표(왼쪽 빨간 원), 지난해 별세한 윤 대통령의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오른쪽 빨간 원) 등과 함께 '주요 인사' 석에 앉아있는 모습. 사진=국방홍보원
 

자본-권력의 보수동맹, 여론조사 조작에 도둑맞은 민주주의

그런데 요즘 나는 그와 비슷하게 ‘도둑맞은 민주주의’란 느낌을 너무도 강렬하게, 그것도 거의 매일 반복 경험한다. 곰곰 따져 보니, 민주주의가 도둑맞아온 역사가 꽤 길다.

첫째, 1981년에 대학생이 된 뒤로 나는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자는 대의에 공감해 피라미지만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3학년 때는 단과대 학생 대표를 맡아 한편으로는 독재 세력들과, 다른 편으로는 깡보수 교수들과 싸웠다. 옥살이는 안 했지만 군경 테러에 목숨을 잃을 뻔 했다. 매일 긴장감 속에 살았다. 군사독재 종식을 내세운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고 뒤를 이어 김대중,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나마 민주주의가 쟁취됐다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새 자본이 그 민주주의를 새로운 형태로 포섭했다. 우리가 민주주의라 믿은 것은 단지 ‘자본주의의 권위주의적 형태’가 ‘자본주의의 자유주의적 형태’로 바뀐 것에 불과했다.

둘째, 흔히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선 사람만 바꿀 일이 아니라 ‘시스템’을 제대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대통령 직선제 헌법도 고치고 노동법도 개정하고 헌법재판소나 방통위원회, 특별검사제, 상설특검,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부패방지위), 공수처도 만들었다. 그런데 민주주의 고양을 위한 이 제도나 시스템을 교묘히 우회하거나 쓸모없게 만드는 반민주 세력들이 있다. 자본과 권력 주도의 보수동맹이 문제다. 우민호 감독의 영화 <내부자들>에도 나오듯, ‘재벌-금융-언론-정치-검찰-법원-조폭’의 연합체가 카르텔을 만든다. 심지어 과거 박근혜-최순실 사태나 최근 김건희-명태균 사태에서 보듯, 비선 실세 내지 문고리 O인방 같은 어둠의 세력들이 농단을 한다. 이들이 민주주의 시스템을 마치 소리 없는 지뢰로 파괴하듯 허물고 있다.

셋째, 지자체 선거, 총선, 보선,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여태 나는 조직적 댓글부대나 개표 부정이 문제라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충격적으로 드러난 바, 선거 국면에서 유권자를 대상으로 여러 차례 실시된 ‘여론조사’ 자체가 멋대로 조작되었다!

‘엿장수 맘대로’ 조작된 여론조사는 동요하는 표심에 영향을 줘 특정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또 그 보상으로 특정인 공천이 된 것도 폭로됐다. ‘여사’의 입김은 넓고도 세다.

쏟아지는 ‘도둑맞은 대선’의 증거들

10월 국정감사에서 양심적 검사 출신의 박은정 의원은 “공천헌금-대가성 여론조사가 사실이면, 뇌물죄 중 가장 죄질 나쁜, 수뢰 후 부정 처사 죄”가 성립한다고 역설했다. 박 의원은 “명태균을 대선 경선 이후 만난 적 없다는 윤 대통령의 해명과 달리 명태균 ‘박사’발 국정개입 의혹들로, 지난 대선이 무효화 될 수도 있는 ‘도둑맞은 대선’의 증거들이 쏟아지고 있다”며 개탄했다. 게다가 “대선 당일에도 핵심 참모진들과 ‘명태균 보고서’가 공유됐고, 이를 토대로 전략회의도 했다”는 내부고발(신용한 전 서원대 교수)까지 나왔다.

초등생 아이들도 익히 들었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뒤엔 이른바 ‘선수’들이 작전세력이 되어 열심히 뛰었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도 특정 회사의 주가를 풍선처럼 부풀게 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뛰었다. 실속이 거의 없는, 체코 원전 수출 계약이나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 사업 약속 같은 걸 받아내려 한 것이 그 증거다. 대통령 취임 전부터 원전 부활을 외쳤는데, 원전 사업이 국내외에서 왕성하면 원전 부품 관련 기업인 ‘우리기술(주)’ 주가가 급등할 것이고,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끝나면 복구 및 재건 사업에 ‘삼부토건(주)’ 같은 회사의 주가가 급등할 것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군수물자를 생산하는 기업들의 주가 역시 치솟을 것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관련된 선수들이나 작전세력, 그리고 ‘여사’를 포함한 쩐주들이 여기에도 다 걸쳐 있었다. 불법 투자자문사인 블랙펄인베스트먼트(BP) 대표 이종호로 상징되는 작전세력들은 도이치모터스, 삼부토건, 쌍방울 주가조작에 종횡으로 연결돼 있다. 그런 인연들이 채 상병 사망 사건의 진실도 교묘히 가렸다. (희토류 사업과 관련해) 북한과 접촉을 했던 ‘쌍방울’의 경우, 극히 고약하게도 자기들의 주가조작 사실을 숨기려고 오히려 이재명 민주당 대표(당시 경기도지사)에게 뇌물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공작을 강행하다가 오지게 들킨 상태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부산역 인근의 전통시장, 초량시장을 방문해 시민과 상인을 응원하고 격려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2024.10.22. [대통령실] 시민언론 민들레 
 

가족 위한 비즈니스에 열중하는 검사 출신 대통령

이렇게 대통령 부부는 ‘작전세력’들과 사실상의 표리관계를 이루면서 ‘비즈니스’를 위해 수 억, 수십 억 혈세를 쓰면서 지구촌을 여행한다.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검찰이 아닌, ‘비즈니스 맨’이 된 검찰 출신 대통령! 그것도 대한민국 아닌, 가족을 위한 비즈니스! 이게 자본주의요, 현 한국 자본주의 정치의 실상이다.

약 50년 전 박완서 작가의 소설 속 여성이 ‘도둑맞은 가난’을 치욕적으로 느꼈듯, 오늘의 우리 역시 ‘도둑맞은 민주’를 뼈저리게 체험한다. 이 사태, 이 배신감을 어찌해야 할까?

그런데, 흥미롭게도 1975년 1인당 국민소득이 약 600달러였고 2023년엔 3만 달러를 훌쩍 넘었으니 50년 만에 평균 50배 이상 잘 살게 되었다. 물론, 불평등과 양극화는 심각하다. 아직도 쪼들리게 어려운 이가 많지만 평균 수준은 많이 올랐다. 50년 전 시내버스비가 15원이었는데, 지금은 1500원 가까우니 단순 물가로 100배 뛰었다. 이제 예전의 그런 가난은 민속박물관에서나 볼까 좀체 찾기 어렵다. 어렵다고들 하지만,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가면 사람이 많다. 심지어 ‘명품’을 사려고 새벽부터 몰려들기도 한단다.

잘 생각해 보니, 오히려 당시 내가 자라던 가난한 달동네에서는 수돗물을 하루에 한두 시간씩만 받았고, 세숫물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이웃사촌 개념이 살아 있어서 부침개 하나를 부쳐도 이웃과 오순도순 나눠 먹었다. 봄, 가을 농번기엔 학교에서 대대적으로 농촌 봉사활동을 나갔다. 옆집에 대소사, 경조사가 생기면 서로 나서서 일손을 거들었다. 당시만 해도 두레나 품앗이 문화가 살아 있었다. ‘똥물 튀는’ 변소조차 그 똥오줌을 밭에 거름으로 씀으로써 수질오염은커녕 생태순환에 기여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다투고 와도 어른들이 변호사까지 붙여 소송을 제기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가난 조금만 되찾아도 우리 삶과 민주주의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후위기와 6차 대멸종이 경고되는 현 시점에서 불과 50년 전만 돌아봐도, 오히려 저 고단하고 가난했던 삶의 방식을 조금만 고치면 지구촌을 위해 지속 가능한 ‘오래된 미래’가 아닐까 싶다. 소설 속 주인공이 “그들은 겉으론 가난을 경멸하는 척 했지만 실상은 두려워했다는 걸 나는 안다.”고 했을 때 어쩌면 ‘그들’이 바로 우리가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도 우리는 도시화, 산업화, 세계화, 상업화의 과정, 즉 자본주의 발전과 더불어 역설적이게도 가난도 도둑맞고 절약도 도둑맞고 마을도 도둑맞고 자연도 도둑맞았다. 그리고 이제는 대명천지에 선거도, 민주도, 혈세도, 행복도 도둑맞고 있다. 가난을 도둑맞게 된 그 흐름들(부자 중독증, 출세 중독증) 탓에 이제는 민주까지 도둑맞고 있는지 모른다. 역으로, ‘도둑맞은 가난’을 우리가 얼마나 어떻게 되찾을 수 있는지에 따라 ‘도둑맞은 민주’ 역시 딱 그만큼 회복될 것 같다는 특별한 느낌도 든다.

그러기 위해선 민주주의를 두려워해선 안 되듯 가난을 두려워 않아야 한다. 궁핍은 면하되, 검소하게 살며 서로 나누고 보살피며 사는 게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피터 모린(1877~1949)의 역설처럼, “아무도 부자가 되려 하지 않는다면 모두 부자가 될 것이요, 모두 가난해지려 하면 아무도 가난해지지 않을 것”이니!                <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