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청문회 나와 "학살 판단할 수 없다"

"애국 현장에서는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다"
'사과하라'는 말에 끝까지 대답 회피할 뿐

본인이 '마녀사냥'당한 언론의 피해자인 양 
손 대표 추천자 "검증할 위치도 아니었다"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리박스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가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5.7.10. 연합
 

"저희가 하고 있는 역사 교육은 이승만과 전두환을 바로 알리는 것입니다. 최근 전두환 명예 회복을 하는 교육을 하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론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기술을 공유하는 그런 공부가 계속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리박스쿨에서 스마트폰 교육을 무료로 제공할 테니 여러분은 언제든지 오셔서 공부하길 부탁드립니다."

 

2022년 11월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극우 단체 '자유와 연대' 출범식에서 리박스쿨 손효숙 대표가 한 발언이다.

 

10일 국회 교육위원회 '리박스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손 대표는 그가 옹호한 전두환이 '학살자'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연히 자신의 행위에 대해 사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언론으로부터 마녀사냥을 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준혁 의원은 손 대표에게 "손효숙 대표가 한 발언이 역사 정의가 맞냐"며 "지금 이 자리에 (손 대표가) 있는 것은 역사 정의에 맞지 않고 헌법적 가치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전두환을 바로 알리겠다는 것인가. (전두환이) 5·18광주민주화운동 학살과 관련해서 잘했다는 거냐"고 물었다.

 

손 대표는 "애국 현장에서는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다"며 "대통령마다 공과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김 의원은 "수많은 국민을 학살하는 것을 용인하는 게 애국이냐"며 "(전두환) 대통령이 공과가 있다고 했는데 무고한 국민을 학살한 게 애국이냐. 그것이 공이냐"고 몰아붙였다.

 

손 대표는 이런 상황에서도 전두환이 '학살했는지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신은 '공직자, 교육자도 아닌 일개 시민'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이에 "일개 시민이 전두환 옹호 운동을 하냐"며 "이승만 정부 거창양민학살사건을 아냐, 박정희가 한 사법살인을 아냐. 손 대표는 '여론전'을 해야 된다, 스마트폰 교육시켜야 된다고 하는데 그 돈은 어떤 애국 세력이 주는 거냐"고 지적했다. 손 대표는 여론전을 두고도 '스마트폰 이용법을 알려주는 것 뿐'이라며 비껴갔다. 

 

김 의원은 '대한민국 사회 교과서'라는 책을 들고 보여줬다. 해당 책은 '뉴라이트 사관'에 입각해 일제 식민 지배를 미화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 책은 한국학 중앙연구원 김주성 이사장이 추천서를 쓰고 손 대표와 가까운 대한민국교원조합에서 만든 책"이라며 "김주성 씨는 리박스쿨 임원으로 있으면서 정치학교장"이라며 "이런 책이 보급되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 헌법과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영호 위원장은 손 대표의 발언을 듣고 "공감능력이 너무 떨어진다"며 "나도 희생자 가족인데, 이렇게 무렴치한 발언을 했으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하지 않냐. 기회를 줄테니 지금 같은 극우적 생각으로 파장을 일으킨 거에 대해 5·18광주민주화 유족들과 민주화 진영 사람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가 10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리박스쿨 청문회에 참석해 극우 역사교육과 관련한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7.10. 연합
 

손 대표는 "'내 발언에 문제가 있다면' 사과를 해야겠지만…"이라고 자신의 잘못이 없는 듯처럼 말끝을 흐렸다. 2022년 자유와 연대 출범식에서 한 발언을 두고 '오래된 일'이라고 둘러댔다. 그는 자신의 극우적 발언에 대한 반성은커녕 "(리박스쿨 관련 첫 언론 보도가 나온) 지난 5월 30일 이후 마녀사냥을 당해 심신미약자가 됐다"며 피해자 행세를 했다. 

 

'본인이 교육부 정책자문위원으로 있던 지난 2월 초 교육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에게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반대하지 말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마치 학부모인 것처럼 보낸 것이 사실이냐'는 질의에 "그렇다"면서 "자문위원으로서 보낸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당시 손 대표는 교육부 교육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리박스쿨 역사관 논란이 불거지자 교육부는 지난달 1일 자로 손 대표를 해촉했다. 원래 임기는 6월 12일까지다.

 

손 대표를 교육정책자문위원으로 추천한 이수정 전 교육부 자문관도 청문회에 나왔다. 이 전 자문관은 "정책자문위를 구성한다고 해서 학계 교수님들께, 현장 의견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분들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며 "여러분이 손 대표를 추천했고, 저는 특별한 의견 없이 해당 부서에 그 추천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자문관은 "리박스쿨 활동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고, 기사를 통해 보고 많이 놀랐다"며 "손 대표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검증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손 대표가 이사로 있는 한국늘봄교육연합회와 교육부의 업무협약(MOU) 체결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고 MOU를 맺으라는 말을 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다만 그는 "행복교육공사단이라는 단체의 장이 교육부 해당 부서에 MOU를 맺고 싶다고 민원을 넣었는데 (교육부가) 답이 없다고 해서, 해당 부서에 검토를 한 번 더 해보고 확인해 달라고 했다"며 "해당 부서는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준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이 전 자문관은 "이런 의혹들로 염려를 끼친 부분에 대해서는 대단히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하지만 리박스쿨과 관련해 제게 제기된 의혹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김민주 기자 >

 

'리박스쿨'은 역사 왜곡 실험실... 시대착오적 인물숭배

피로 얼룩진 권력욕을 리더십으로 포장

이·박 독재는 신화가 아니라 비판의 대상

청년세대에 민주 감각 교육 필요한 시기
'리박스쿨' 퇴학 조치 내려야 마땅하다

 

보수 성향 단체 '리박스쿨'의 댓글 여론 조작 관련 보도가 나온 가운데 2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한 빌딩에 리박스쿨 사무실 간판이 붙어 있다.2025.6.2. 연합

 

‘교육’이라는 이름의 독재 세탁소

 

최근 공개된 콘텐츠 ‘리박스쿨’은 제목부터 낯설고 불길하다. 이승만과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이름에서 성을 따온 이 프로그램은 이들을 마치 학교의 ‘교장’처럼 설정해 ‘리더십’을 배우는 형식이다. 그러나 그 실체는 교육의 외피를 입은 정치 콘텐츠이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냉소와 역사왜곡, 그리고 시대착오적 인물숭배에 다름 아니다.

 

‘역사를 재조명한다’는 명분 아래 리박스쿨이 선택한 방식은 지나치게 편파적이다. 이 콘텐츠는 두 독재자의 업적만을 과장하고, 그들의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침묵하거나 가볍게 넘긴다. 예능이라는 형식을 빌려 역사적 균형을 잃은 해석을 시청자에게 쉽게 주입시키는 이 프로그램은 교육이 아니라 ‘정치적 세뇌 실험실’이다.

 

이승만: 독립운동가였지만, 민주주의자였나?

 

이승만의 삶은 분명 복잡하다. 일제강점기에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점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록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유산은 해방 이후 철저히 민주주의와 배치된다. 그가 1948년 정부 수립 직후부터 보여준 통치는 민의를 존중하기보다는 억누르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전쟁 전후의 ‘보도연맹 학살’이다. 좌익계열 인사 혹은 그와 연루되었다고 추정된 수십만 명이 국가 권력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학살됐다. 이는 전쟁기 혼란이라는 변명으로 용납될 수 없다. 명백한 국가 주도 반인륜 범죄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최소 10만 명 이상이 이승만 정부에 의해 처형되었고, 이 과정은 비공개·비법적 절차로 진행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1952년에는 대통령 직선제를 밀어붙이기 위해 군을 동원해 국회를 포위했고, 1954년에는 ‘사사오입 개헌’이라는 전무후무한 숫자 장난으로 3분의 2 찬성을 끌어낸 척 헌법을 개정했다. 이런 인물이 ‘건국의 아버지’라 불릴 자격이 있는가? 민주주의가 그의 손으로 시작되었다는 주장은 피로 얼룩진 권력욕을 ‘리더십’으로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박정희: 산업화 신화의 그늘은 민주주의의 붕괴였다

 

박정희를 이야기할 때 반복되는 문구가 있다. “그래도 경제는 살렸잖아.” 이 말은 사실상 정치적 무책임의 상징이다. 물론 그의 정권 아래서 산업화가 추진됐고, 수출이 증가했으며, 국가 인프라가 성장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체주의적 동원체계’의 결과였으며, 그 체계 하에서는 국민의 권리와 자유가 지속적으로 침해받았다.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그는 처음엔 ‘과도정부’를 자처했지만, 결과적으로는 18년에 걸친 장기집권으로 나아갔다. 1972년 유신헌법은 그 정점이었다. 이 헌법은 행정부의 권력을 극대화하고, 국회의 기능을 약화시키며, 대통령에게 입법·사법·행정 전반에 절대권력을 부여했다. 형식만 남은 헌정질서 아래에서, 박정희는 비판을 불허하는 절대 권력자가 되었다.

 

그 시절, 노동자는 인간이 아니라 부품으로 취급받았다. 노동 3권은 부정당했고, 언론은 통제당했으며, 학생들은 감시와 사상 검열 속에서 생활했다. 인혁당 사건, 긴급조치 시대, 정치적 고문과 실종. 이 모든 고통을 단지 '산업화의 대가'로 치부할 수 있는가? '고속도로'와 '수출 증가'가 박정희 정권의 실적이라면, '표현의 자유 압살'과 ‘공포 정치의 일상화'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뉴스타파는 '리박스쿨' 잠입 취재를 통해 이번 대선을 앞두고 '자손군'이라는 댓글팀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띄우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비방하는 활동을 체계적으로 벌여왔다고 30일 보도했다. 뉴스타파 홈페이지

 

예능이란 포장지 속 역사 왜곡, 더 위험하다

 

리박스쿨은 예능 형식을 빌려 이 모든 과거를 ‘가볍게’, ‘웃기게’ 포장한다. 그러나 역사 왜곡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웃음 뒤에 감춰진 의도야말로 더 치명적이다. 대중문화는 반복과 익숙함을 통해 정당성을 형성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결국 예능을 통한 역사 왜곡은 무의식적 동의를 불러일으키고, 정치적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청년 세대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업률, 주거 불안, 정치 혐오 속에서 자란 청년들에게 '과거의 강한 리더십'을 낭만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일은, 무책임한 마취다. '그때는 잘 나갔다'는 말이 반복될수록, 청년의 미래는 과거 회귀적 정치에 갇히고 만다.

 

우리가 배워야 할 ‘교장’은 누구인가

 

리박스쿨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교장처럼 그린다. 그러나 이들이 진정 교육자적 리더였던가? 그들이 국민에게 가르친 것은 복종, 침묵, 그리고 무조건적 충성뿐이다. 그건 ‘교육’이 아니라 ‘군기’다.

 

진정한 교장은 국민이다. 우리는 4.19 혁명으로 부정선거를 심판했고, 5.18 광주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켰으며, 6월 항쟁으로 다시 헌법을 되찾았다. 그런 국민적 수업이 있었기에 오늘의 민주주의가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교장으로 모신 순간, 대한민국은 학교가 아니라 병영으로 전환된다.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방과후강사분과 조합원들이 보수 성향 교육단체 '리박스쿨'이 서울 일부 초등학교에 늘봄 강사를 공급한 것을 규탄하며 방과후수업 외주 위탁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 2025.6.10. 연합

 

지금 필요한 건 ‘리박’이 아니라 ‘디박’이다

 

우리는 지금 ‘디박스쿨’이 필요한 시점이다. 디코딩하고(Decode), 디컨스트럭션하며(Deconstruct),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민주주의 감수성을 확장하는 교육. 독재의 유산을 신화가 아닌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청년 세대가 주체적으로 역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민주적 감각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결코 한 번의 선거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는 경계, 참여, 그리고 교육을 통해 재구성되어야 하는 시스템이다. 과거를 회피하거나, 편리하게 포장할수록 민주주의는 퇴행한다. 지금 우리가 리박스쿨에 ‘퇴학 조치’를 내려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를 잊은 사회, 미래를 저당 잡힌다

 

오늘날 리더십의 위기를 독재 미화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다. 강한 리더는 필요하지만, 그것은 국민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 강함이어야 한다. 독재는 강함이 아니라 비겁함이다. 비판을 두려워하고, 권력을 독점하며, 국민을 수단화하는 통치는 결코 리더십이 아니다.

 

리박스쿨은 말한다. “과거를 통해 배워라.” 맞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배워야 한다. 그러나 배워야 할 것은 독재자의 리더십의 신화가 아니라, 그것이 남긴 상처와 폐해다.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그 어두운 순간들을 직시해야 한다.

 

기억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묻느냐가 앞으로 이 사회가 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갈지를 결정짓는다. ‘리박스쿨’은 과거로의 회귀를 상징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다.  < 김성수 기자 >

 
호우피해 실종자 수색작전 중 발생한 해병대 고 채상병 사망사고를 수사하다가 항명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지난 6월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박정훈 대령이 원래 보직인 해병대 수사단장으로 복귀한다.

해병대는 10일 "순직 해병 특검의 항소 취하로 무죄가 확정된 박 대령을 11일부로 해병대 수사단장으로 재보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조치는 순직 해병 수사 외압 사건을 수사 중인 '순직해병 특검'이 박 대령에 대한 항소를 취하한 데 따른 것이다.

박 대령의 원직 복귀는 군 검찰에 입건되어 보직해임된 지 1년 11개월 만이다. 앞서 국방부는 지난 2023년 8월 채 해병 순직 조사 결과를 경찰로 이첩하지 말라는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박 대령을 항명 및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입건하고 보직해임한 바 있다.

박 대령은 수사단장직에서 해임된 이후 사령부 소속 영외 인근 부대에서 무보직 상태로 지내왔다.

박 대령은 2023년 10월 기소된 후 지난 2월 9일 중앙지역군사법원의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이후 해병대는 지난 3월 7일 박 대령을 정규 직위가 아닌 인사근무차장으로 보직했다.

하지만 박 대령은 원래 직무인 수사단장 복귀를 희망했고, 지난 9일 순직해병 수사 방해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해병특검이 항소를 취하하면서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해병특검은 1심 판결과 객관적 증거, 군 검찰의 항소 이유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항소 취하를 결정했다며 박 대령이 해병대 수사단장으로서 초동수사하고 기록을 이첩한 것은 적법한 행위라고 봤다. 반면 군 검찰이 박 대령을 기소한 행위는 공소권 남용이라고 판단했다.

박 대령 변호인단은 이날 "박 대령이 현직 군인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고 특검이 밝혀야 할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 진상규명 과제 역시 진행 중"이라며 "박 대령과 변호인단 역시 남은 과제의 해결에 앞으로도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김도균 기자 >

 

박정훈 대령 무죄 확정에 군인권센터 “정의를 회복한 날”

“양심 지켜낸 이들에 합당한 대우와 명예회복 이뤄져야”

 
해병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이 2023년 12월7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첫번째 공판에 출석하기 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특별검사팀의 항소 취하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무죄가 확정되자 군인권센터가 “정의를 회복한 날”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박 대령을 지원해온 군인권센터는 9일 ‘박정훈 대령 무죄 확정, 특검 항소 취하 환영 성명’을 내어 “마침내 박 대령의 항명죄 재판이 무죄 확정판결로 종결됐다”며 “이날은 대한민국 공직사회에서 진실과 양심을 지켜내고, 정의를 회복한 날로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박 대령 원직 복직을 시작으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은 물론, 권력의 횡포에 맞서 진실과 양심을 지켜낸 이들에 대한 합당한 대우와 명예회복도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군 검찰로부터 공소권을 넘겨받은 이명현 특별검사팀(채상병 특검)은 이날 박 대령 항명 사건 항소심 재판에 대한 항소 취하를 결정하고 항소취하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에 따라 박 대령이 1심 법원에서 받은 무죄가 그대로 확정됐다.

 

2023년 7월 집중호우로 인한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 채 상병이 순직한 뒤 사건 경위 등을 조사한 박 대령은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 등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경찰에 이첩하겠다고 보고했다.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돌연 이첩 보류를 김계환 당시 해병대 사령관에게 지시했고, 박 대령은 이런 상부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항명) 등으로 기소됐다.

 

군인권센터는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을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이들은 “항명 무죄는 곧 외압 유죄”라며 “한 군인의 죽음 앞에서 국민과 법을 우롱하던 외압 수괴 윤석열과 부역자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박 대령이 앉았던 피고인석으로 보내 단죄할 때”라고 강조했다.            < 박고은 기자 >

 

‘박정훈 무죄’ 확정된 날, 기소한 국방부 검찰단장 직무정지

 

 
 
지난해 12월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군복 차림) 등 증인들이 현안질의를 받으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신소영 기자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의 직무를 정지했다. 국방부 검찰단은 군내 검찰 구실을 하는 기관이고, 검찰단장은 소속 군검사를 지휘 감독한다.

 

국방부는 9일 “순직 해병 특검 수사와 관련해 7월10일부로 국방부 검찰단장인 김동혁 육군 준장의 직무 정지를 위한 분리 파견을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8일 채 상병 사건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특별검사팀은 ‘김 단장이 특검의 수사 대상인 만큼 직무에서 배제해달라’고 국방부에 요청했다. 김 단장은 육군사관학교 54기로 서울대 법대 위탁교육을 거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김 단장은 2023년 8월2일 오전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경북경찰청에 넘긴 순직 해병 초동조사 기록을 반나절 만에 회수하고, 이후 박 대령을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해 수사하는 데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다. 김 단장이 책임자인 국방부 검찰단은 박 대령을 처음에 집단항명수괴 혐의로 입건했다가 과도한 혐의 적용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항명 혐의로 바꿔 기소했다.

 

지난해 11월21일 군 검찰은 박정훈 대령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고, 지난 1월9일 1심 군사법원은 박 대령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특검이 이날 항소를 취하하면서 박 대령은 무죄가 확정됐다.

 

특검의 수사 대상인 이종섭 전 국방장관 쪽은 “김 단장은 국방장관 지시에 따라 정당하게 업무를 수행했다”며 “항명죄 수사와 기소를 문제 삼아 직무배제를 요청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 권혁철 기자 >

 



작년 정부광고 수주 10위권 '친윤'신문 싹쓸이

내란 노골적 옹호 지역매체 매일신문이 4위?
나라 망하게 한 언론사에 국민세금 몰아준 꼴

정부광고 집행 기준 바꾸고 미디어바우처 실시도

 

윤석열 내란을 조장·동조·선동했던 언론사들에게 지난해 수백억 원의 국민 세금이 정부광고를 통해 지급된 것으로 확인됐다. 윤석열 정부를 미화·옹호하던 이른바 ‘보수’ 신문들이 정부 광고를 싹쓸이한 반면, 비판적 보도를 해온 신문들은 상대적으로 정부 광고를 적게 받은 것도 여전했다.

 

미디어 분야 전문매체인 <미디어스>의 7일 ‘단독’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로부터 가장 많은 광고를 받은 일간신문 10개사는 동아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매일신문, 문화일보, 한국경제, 매일경제, 서울신문, 한국일보, 세계일보 순이었다. 최상위인 1~3위의 동아, 중앙, 조선일보(이른바 ‘조중동’)가 작년 한 해 받아간 ‘혈세’ 광고 금액은 총 268억 원이었다. 4위인 대구지역 매체 매일신문은 약 66억 원, 5위인 문화일보는 약 62억 원이다. 정부 비판적 언론사인 경향·한겨레가 받은 정부광고 금액은 각각 약 43억8천만 원, 41억5천만 원으로 금액 기준 16위와 17위였다.

 

상위 10위에 든 언론사들은 언뜻 봐도 대부분이 ‘친윤’ 매체들이고 지난 12.3 비상계엄 이후 내란세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등 교묘하게 내란에 동조하는 보도를 했던 신문들이다. 윤석열의 ‘반국가세력 척결’이라는 망상을 지지함으로써 12.3 비상계엄을 일으키도록 분위기를 띄워주고 비상계엄 이후에도 내란세력의 입장을 옹호하는 보도를 해온 매체들이다. 

 

'윤 대통령 복귀가 국익이다'란 제목의 매일신문 칼럼을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월 자신의 SNS에 게시했다. 이 칼럼은 현재 매일신문 홈페이지에서 삭제된 상태다. 

 

이 가운데 특히 매일신문은 아주 노골적으로 내란을 옹호·지지한 지역 일간지로 유명하다. 이 신문은 지난 2월28일 ‘윤 대통령 복귀가 국익이다’ 제목의 칼럼에서 윤석열 내란세력이 주장하는 ‘계몽령’을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등 극우적 논조로 악명이 높은 데다 전국단위 종합일간지도 아닌 지역신문인데도 정부 광고 수주 4위에 해당하는 거액의 세금을 받아간 것이 놀랍기만 하다.

 

12.3 비상계엄 직후 ‘부정선거론’ ‘중국인 선거개입’ 등 황당무계하고 악의적인 가짜뉴스로 윤석열의 망상 쿠데타를 조장하고 극우세력의 사법부 침탈 난동을 선동한 ‘스카이데일리’ 같은 극우 매체에도 정부광고가 집행된 사실이 밝혀져 비난이 일었다.

 

윤석열 일당의 망국적인 쿠데타 내란에 충격을 받은 국민들은 나라를 파멸로 몰고간 이들 극우 매체들의 밥줄이 자신이 낸 세금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정부는 오랜 동안 정부광고를 통해 조중동, 매일신문, 문화일보 같은 여러 내란 동조 신문에 수백, 수천억 원의 국민세금을 몰아줘 온 것이다. 일제 시대 백성들에게 돈을 걷어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들 먹여살린 것과 무엇이 다른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중앙정부, 지방정부, 공기업·공공기관을 포함한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신문·방송·인터넷·옥외광고 등에 사용하는 광고 금액은 연간 1조 원이 넘는다. 정부는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언론진흥재단을 통해 각종 홍보성 광고를 내는데, 그동안 광고효과를 제대로 따지지 않을 뿐 아니라 가짜뉴스·혐오보도를 일삼는 나쁜 매체를 가리지 않고 광고를 해왔다. 열독률이 10% 미만으로 광고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판명된 종이신문에 거액의 광고비를 지출하는가 하면, 정치적·상업적 이득을 위해 악의적 왜곡보도·선정적 보도를 해온 거대 족벌언론과 재벌 편향적인 경제신문들에 광고를 몰아줘 왔다. 정부 광고가 언론의 정부 비판 보도를 줄이거나 피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료’ 구실을 해온 것이다.

 

무능하고 비리가 많은 정부에게 정부 광고는 언론에게 주는 일종의 ‘당근’이기도 했을 것이다.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유지하려 한 윤석열 정부는 극우세력을 선동하고 내란에 동조하는 언론을 길들이기 위해 정부광고를 몰아주었던 것이다. 가짜뉴스의 공장이자 극우 내란세력의 스피커 노릇을 해온 ‘스카이데일리’나 조중동, 매일신문, 문화일보, 한국경제신문, 서울신문 등에 지난해 수백억 원 국민세금이 흘러들어간 이유다. 

 

연간 1조 원이 넘는 정부광고를 집행하는 한국언론진흥재단.

 

‘빛의 혁명’으로 태어난 이재명 정부는 이런 세금 낭비, 아니 세금 오용(誤用)을 멈춰야 한다.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려 했던 윤석열 일당의 내란에 동조·선동한 언론사에 국민의 세금이 흘러가지 못하도록 정부광고를 중단해야 한다. 나쁜 언론에 국민의 세금이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무슨 정치적 목적의 언론탄압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며 국민을 이롭게 하는 일이다. 이런 작업이 내란을 진압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왜곡·혐오보도 같은 나쁜 보도를 많이 하는 언론이나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언론에게 정부광고가 집행되지 않도록 광고집행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좋은 보도, 신뢰할 수 있는 보도를 많이 하는 언론사에 높은 점수를 부여해 정부 광고가 더 많이 집행되도록 하는 것이다.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조중동 중심의 ABC협회가 내놓는 가짜 발행부수 대신 ‘사회적 지표’를 반영한 광고집행 기준을 마련한 바 있다.

 

둘째는, 정부광고 대신 ‘미디어바우처’를 실시하는 것이다. 미디어바우처 제도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언론을 구독할 수 있도록 바우처(교환권)를 지급하는 것이다. 국민은 자기가 낸 세금을 돌려받아 좋은 언론,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을 골라 볼 수 있다. 정권 홍보와 보험료로 전락한 정부광고 대신 차라리 국민의 세금을 국민에게 돌려줘 신뢰받는 언론매체를 지원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내란을 이겨낸 민주 시민들은 왜곡보도·오보·내란동조 보도를 하는 언론에 결코 돈을 주지 않을 것이다.   < 김성재 기자 >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군함도 문제' 일본 주장 채택

7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제47차 회의가 열리고 있다. 유네스코
 


한국이 강제징용 현장인 군함도에 관한 표 대결에서 일본에 패했다. 제47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군함도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주장이 채택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7일 자 <교도통신>은 "파리에서 개최 중인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부(負)의 역사에 관한 일본의 대처법을 위원회에서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한국 측의 주장을 물리쳤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군함도가 강제노동 현장이었음을 알리지 않고 있다. 이는 한국을 농락하는 일이자 세계인들을 기만하는 일이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그곳에서 벌어진 어두운 역사, 부(負)의 역사를 시인하는 후속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이런 입장을 지지해 왔던 세계유산위원회가 이번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위원회는 '일본은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이후의 후속 조치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으며, 한국이 제기한 문제는 유네스코가 아닌 한일 양국 간에 논의돼야 한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채택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관한 문제를 유네스코가 아닌 한일 간에 처리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수용한 것이다.

세계유산위원회가 한국의 주장을 배척하고 일본의 주장을 채택한 것은 표 대결의 결과다. 위원회에 속한 21개 국가 중에서 7개국이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고 3개국은 반대했다. 무효는 3표, 기권은 8표다.

사흘 만에 말 바꾼 일본 정부

군함도.위키미디어 공용


한국은 피해자 국가다. 명분을 보유한 피해자 측이 패했다는 것은 한일 역사문제에 관한 한국의 외교력에 결함이 있음을 드러낸다. 지난 3년간 일방적인 양보만 해온 한국의 대처법에 결함이 있다는 적색 신호다.

잔혹한 노예노동으로 인해 '지옥의 섬'으로 불리는 군함도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곳이 아니었다. 제국주의 범죄유산을 등재하는 국제기구가 있다면 그곳에서 다뤄야 할 장소다. 그런 군함도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가 독일 본에서 열린 2015년 7월 5일이다.

당시 일본 정부는 부산 남쪽인 규슈섬 서쪽 군함도에서 벌어진 한국인 강제노역을 공식 인정하겠다고 서약했다. 이에 따라 21개 위원국 만장일치로 군함도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날 일본 정부는 "과거 1940년대에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했다"라며 "해당 시설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안내 센터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위원회에서 서약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사상 최초로 노동자 강제동원을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군함도 같은 범죄 현장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일본 정부도 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는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한미일 안보협력을 추진하는 가운데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을 때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일본은 '정보센터를 통해 강제징용 사실을 인정하겠다'고 약속하는 방법으로 한국의 반대를 누그러트리며 군함도의 세계유산 등재를 관철시켰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사흘 만에 말을 바꿨다. 그달 8일 한국 언론과 인터뷰한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징용을 강제노동으로 볼 수 없다'며 이런 관점으로 군함도에 관한 정보를 세계인들에게 제공하겠다고 발언했다. 한국인들이 군함도에서 노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강제노동은 아니었다는 발언이 이처럼 외무성 관계자발로 한국 언론에 전해졌다.

그 뒤 일본은 군함도 산업유산정보센터 설치를 차일피일 미뤘다. 2018년에는 유네스코가 일본의 후속조치가 미흡하다는 결정문을 채택했다. 계속해서 재촉을 받던 일본은 군함도와 동떨어진 도쿄 신주쿠에 정보센터를 설치한 뒤 2020년 6월 15일에 공개했다. 군함도에서 100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정보센터를 설치한 일본은 애초 약속과 달리 '강제노역은 없었다'는 취지의 자료들을 전시했다.

유네스코는 그 뒤에도 후속조치 이행을 거듭 촉구했다. 2021년 7월 22일에는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는 결정문을, 2023년 9월 14일에는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을 또다시 채택했다.

사도광산에 대한 입장 바꾼 한국 정부

2024년 7월 25일 윤덕민(왼쪽) 주일 한국대사가 이임 인사차 도쿄 총리관저를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주일 한국대사관


이처럼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한국의 입장에 섰던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일본을 지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이렇게 된 데는 비슷한 사안인 사도광산 문제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강제징용 현장인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작년 7월 27일이다. 사도광산에 관한 한국 정부의 애초 입장은 당연히 비판적이었다. 2021년 12월 28일, 외교부는 대변인 논평을 통해 군함도에 관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일본이 또 다른 강제징용 현장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매우 개탄스러우며 이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표명했다.

그랬던 한국 정부의 입장이 바뀌고 있다는 보도가 작년 5월 일본에서 나왔다. 그달 11일 자 <산케이신문>은 "2022년 5월 한일관계 개선에 전향적인 윤석열 정권이 출범하면서 한국 측 태도에 변화의 조짐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산케이신문>은 윤덕민 당시 주일한국대사의 발언을 근거로 제시했다. "절대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전체 역사를 표시할 수 있는 형태로 할 필요가 있다"는 등등의 발언이었다.

그달 24일 JTBC 보도에 따르면, 윤덕민 대사는 그 전달에 사도광산 지역을 찾아가 "상세한 안내가 없다"라며 "예전에 했던 걸 이어서 하면 된다"는 알쏭달쏭한 발언을 했다. 안내문을 언급하면서 나온 윤 대사의 발언을 일본 언론은 '군함도 사례를 참고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주일한국대사관 측은 부인했지만, 일본 측은 군함도 때 했던 대로 하면 된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사도광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 변화는 일본이 세계유산 등재를 성사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일본이 자신감 있게 밀어붙인 것은 주일대사를 통한 한국 정부의 이상야릇한 입장 표명들이 일종의 지지 표시로 이해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광산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는 비슷한 사안인 군함도 문제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가 사도광산 문제에서 일본을 편들면, 제3국들은 한국 정부가 군함도 문제에 대해서도 그런 입장을 갖게 됐으리라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강제징용 현장에 대한 기존 입장을 견고하게 유지했다면,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들이 일본 편을 드는 초유의 사태는 벌어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한일 역사전쟁에 관한 한국 외교력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노출시켰다. 중립적인 제3자들이 피해국이 아닌 가해국을 편든 것은 일본 정부뿐 아니라 한국 정부에도 문제점이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 김종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