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 박정 위원장(가운데)과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회색 재킷)이 회의 시작을 앞두고 있다. 연합
정부가 제출한 원안에서 감액한 내역만 반영된 내년도 예산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검찰 특수활동비(특활비) 등이 전액 삭감됐는데, 국민의힘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분풀이 예산”이라고 반발하며 의결 전 퇴장했다. 예산안이 야당 일방만으로 처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회 예결위는 29일 오후 전체회의를 열어, 민주당이 예산안조정소위원회에서 단독 처리한 내년도 예산안을 의결했다. 총수입은 정부안 대비 3천억원 줄인 631조원, 총지출은 정부안 대비 4조1천억원 줄인 673조3천억원이다. 정부 동의가 필요한 예산 증액과 달리, 감액은 국회의 결정만으로 할 수 있다. 감액 수정안을 처리하려고, 민주당은 ‘이재명표 예산’으로 불리는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예산 2조원 증액을 포기했다.
이에 따라 국회 각 상임위원회에서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합의 없이 삭감한 예산안이 새달 2일 본회의에 오르게 됐다. 여기에는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 특활비 82억5100만원 △검찰 특활비 80억900만원·특정업무경비(특경비) 506억9100만원 △감사원 특활비 15억1900만원·특경비 45억1900만원 △경찰청 특활비 31억6700만원·특경비 506억9100만원 전액 삭감이 포함돼있다. 민주당은 정부 예비비도 정부 원안의 절반인 2조4천억원을, 국고채 이자 상환 예산은 5천억원을 깎았다.
예결위에 소속된 국민의힘 의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곽규택 의원은 “(검찰 수사를 받는) 이재명 대표의 분풀이를 위해 일방적인 특활비 삭감, 특경비 삭감을 하면 속이 시원한가”라며 “예산안을 갖고 국가·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국민께 필요한 예산을 검토하자는 약속을 헌신짝처처럼 버렸다”고 말했다. 예결위 여당 간사인 구자근 의원도 “윗선의 압박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반면 장경태 민주당 의원은 “지속적으로 검찰 특활비를 ‘깜깜이 쌈짓돈이냐’고 지적했지만 (검찰의) 소명 노력이 없었다”며 “특활비를 제외한 수사 지원비가 1267억원이나 된다”고 했다. 민주당 소속 박정 예결위원장은 “2014년 예산안 자동부의제도가 시행된 이래 작년까지 단 한 차례도 예외 없이 예결위에서 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하고 정부 원안이 본회의로 자동 부의되는 문제를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모두 본회의 처리 전 추가 협상의 여지를 열어두고 있어 이 예산안이 2일 본회의에서 그대로 처리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주말 사이 합의가 이뤄진다면 본회의엔 이를 반영한 수정안이 올라가게 된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 없는 예산안을 본회의 상정할지도 변수다.
한편,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퇴장한 채 예산안이 전체회의를 통과한 뒤 박 위원장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정부 쪽 인사말’을 요청했다. 최 부총리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 앉아 정면만 응시했다. 이에 박 위원장은 “침묵으로 대신한 걸로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회의 뒤 최 부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야당이 감액 수정안을 단독 처리한 데 매우 안타깝고 심히 유감”이라며 “단독 처리를 철회하고, 예산안 합의해 임해주면 정부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한겨레 신민정 기자 >
일제강점기 일본 기업의 생산 현장에 끌려가 강제노동한 한국인들의 피해를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또 나왔다.
30일 법조계와 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1 단독부의 구자광 판사는 지난 26일 강제동원 피해자 유아무개씨 유족들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본제철이 유족에게 모두 1억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유씨는 1927년 태어나 15세 무렵인 1942년 1월 일본 규슈 야하타 제철소에 끌려가 3년 넘게 일했다. 같은 재판부는 다른 강제동원 피해자 윤아무개씨의 유족이 낸 소송에서도 일본제철이 유족에게 1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윤씨는 1916년 생으로 1944년 10월부터 일본 가마시이 제철소에 강제동원돼 작업하다가 왼손 엄지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재판부는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옛 일본제철의 행위는 당시 한반도에 대한 일본 정부의 불법적인 식민 지배, 침략 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면서 “피해자들의 당시 나이와 강제노동으로 고통받은 기간, 육체적·정신적 피해의 정도, 현재까지도 책임을 부정하고 있는 피고의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자료를 산정했다”고 밝혔다. < 한겨레 노형석 기자 >
천주교 사제 1466인은 28일 오전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시국선언에는 김선태 주교(전주), 김종강 주교(청주), 김주영 주교(춘천), 문창우 주교(제주), 옥현진 대주교(광주, 이상 가나다순)를 비롯해 전국의 교구 및 수도회·사도생활단 소속 사제, 해외에 있는 사제까지 동참했다.
사제들은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통해 "숨겨진 것도 감춰진 것도 다 드러나기 마련이라더니 어둔 데서 꾸민 천만 가지 일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며 "이에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민심의 아우성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천주교 사제들도 시국선언의 대열에 동참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어 "조금 더, 조금만 더 두고 보자며 신중에 신중을 기하던 이들조차 대통령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거두고 있다. 사사로운 감정에서 '싫다'고 하는 게 아니"라며 "선공후사의 정신으로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고, 나머지 임기 절반을 마저 맡겼다가는 사람도 나라도 거덜 나겠기에 '더 이상 그는 안 된다'고 결론을 낸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사제들의 생각도 그렇다"면서 "그를 지켜볼수록 '저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나 못할 일이 없겠구나' 하는 비탄에 빠지고 만다. 그가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별로 놀라지 않을 지경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을 향해 "하여 묻습니다. 사람이 어째서 그 모양입니까?"라고 직격했다.
사제들은 특히 "대통령 윤석열 씨의 경우는 그 정도가 지나치다"면서 "그는 있는 것도 없다 하고, 없는 것도 있다고 우기는 '거짓의 사람'"이라고 했다. 이어 "꼭 있어야 할 것은 다 없애고, 쳐서 없애야 할 것은 유독 아끼는 '어둠의 사람'"이며 "무엇이 모두에게 좋고 무엇이 모두에게 나쁜지조차 가리지 못하고 그저 주먹만 앞세우는 '폭력의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야 할 것을 싹둑 끊어버리고, 하나로 모아야 할 것을 마구 흩어버리는 '분열의 사람'"이며 "자기가 무엇하는 누구인지도 모르고 국민이 맡긴 권한을 여자에게 넘겨준 사익의 허수아비요 꼭두각시. 그러잖아도 배부른 극소수만 살찌게, 그 외는 모조리 나락에 빠뜨리는 이상한 지도자"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제들은 "어디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파괴와 폭정, 혼돈의 권력자를 성경은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고 아주 튼튼한 네 번째 짐승'이라고 불렀다"면서 "그러는 통에 독립을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생존과 번영을 위해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 바친 선열과 선배들의 희생과 수고는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의 양심과 이성은 그가 벌이는 일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사제들은 "그를 진심으로 불쌍하게 여기므로 그를 위해 기도한다. 하지만 '그 사람 마음 안에서 나오는 나쁜 것들'이 잠시도 쉬지 않고 대한민국을 괴롭히고 더럽히고 망치고 있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면서 "(대통령 윤석열 씨가) 버젓이 나도 세례 받은 천주교인이오, 드러냈지만 악한 표양만 늘어놓으니 교회로서도 무거운 매를 들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사제들은 신자와 시민들에게 "나로부터 나라를 바로 세우자. 아울러 우리는 뽑을 권한뿐 아니라 뽑아버릴 권한도 함께 지닌 주권자이니 늦기 전에 결단하자"면서 "헌법준수와 국가보위부터 조국의 평화통일과 국민의 복리증진까지 대통령의 사명을 모조리 저버린 책임을 물어 파면을 선고하자"고 했다.
사제들은 끝으로 "오늘 우리가 드리는 말씀은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니 방관하지 말자는 뜻"이라며 "아무도 죄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기에 매섭게 꾸짖어 사람의 본분을 회복시켜주는 사랑과 자비를 발휘하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북측광장 인근에서 '김건희-채상병 특검 추진! 국정농단 규명! 윤석열을 거부한다 2차 시민행진'이 열리고 있다. 2024.11.23. 사진 이호 작가
전통을 중시하는 천주교회에서 1446인의 사제들이 시국선언으로 뜻을 모은 것은 그만큼 교회 내부에서도 현 정세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는 최근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인 이용훈 주교의 발언에서도 일부 확인할 수 있다.
이 주교는 지난 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 50주년 심포지엄 격려사에서 박정희 유신시대와 10·26 사건 등을 언급하며, 사제단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 주님의 예언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평가하는 한편, "세상은 이제 교회를 향해 새로운 희망의 길이 무엇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느냐고 끊임없이 묻고 있다. 우리는 의로움 때문에 고난을 겪을지라도, 사람들이 우리를 두렵게 할지라도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는 희망을 고백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주교의 발언도 현 시국에 대한 심각성과 교회의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전국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잇따르는 가운데, 천주교 사제 1446인이 대규모로 시국선언을 낸 만큼, 종교인들 시국선언도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정부의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 발표 당시에도 천주교뿐 아니라 개신교와 불교 등에서 수천 명의 종교인들이 시국선언을 한 바 있다. < 민들레 김성진 기자 >
다음은 천주교 사제 1446인 시국선언문 전문.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로마 3,23)
1. 숨겨진 것도 감춰진 것도 다 드러나기 마련이라더니 어둔 데서 꾸민 천만 가지 일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에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민심의 아우성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 천주교 사제들도 시국선언의 대열에 동참하고자 합니다.
2. 조금 더, 조금만 더 두고 보자며 신중에 신중을 기하던 이들조차 대통령에 대한 신뢰와 기대를 거두고 있습니다. 사사로운 감정에서 "싫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선공후사의 정신으로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나머지 임기 절반을 마저 맡겼다가는 사람도 나라도 거덜 나겠기에 "더 이상 그는 안 된다"고 결론을 낸 것입니다.
3. 사제들의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를 지켜볼수록 "저들이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나 못할 일이 없겠구나."(창세 11,6) 하는 비탄에 빠지고 맙니다. 그가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별로 놀라지 않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하여 묻습니다. 사람이 어째서 그 모양입니까? 그이에게만 던지는 물음이 아닙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마는"(로마 7,19) 인간의 비참한 실상을 두고 가슴 치며 하는 소리입니다. 하느님의 강생이 되어 세상을 살려야 할 존재가 어째서 악의 화신이 되어 만인을 해치고 만물을 상하게 합니까? 금요일 아침마다 낭송하는 참회의 시편이 지금처럼 서글펐던 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나는 내 죄를 알고 있사오며 내 죄 항상 내 앞에 있삽나이다 … 보소서 나는 죄 중에 생겨났고 내 어미가 죄 중에 나를 배었나이다."(시편 51,5.7)
4. 대통령 윤석열 씨의 경우는 그 정도가 지나칩니다. 그는 있는 것도 없다 하고, 없는 것도 있다고 우기는 '거짓의 사람'입니다. 꼭 있어야 할 것은 다 없애고, 쳐서 없애야 할 것은 유독 아끼는 '어둠의 사람'입니다. 무엇이 모두에게 좋고 무엇이 모두에게 나쁜지조차 가리지 못하고 그저 주먹만 앞세우는 '폭력의 사람'입니다. 이어야 할 것을 싹둑 끊어버리고, 하나로 모아야 할 것을 마구 흩어버리는 '분열의 사람'입니다. 자기가 무엇하는 누구인지도 모르고 국민이 맡긴 권한을 여자에게 넘겨준 사익의 허수아비요 꼭두각시. 그러잖아도 배부른 극소수만 살찌게, 그 외는 모조리 나락에 빠뜨리는 이상한 지도자입니다. 어디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파괴와 폭정, 혼돈의 권력자를 성경은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고 아주 튼튼한 네 번째 짐승"(다니 7,7)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는 통에 독립을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생존과 번영을 위해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 바친 선열과 선배들의 희생과 수고는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의 양심과 이성은 그가 벌이는 일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5. 그를 진심으로 불쌍하게 여기므로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 마음 안에서 나오는 나쁜 것들"(마르 7,21-22)이 잠시도 쉬지 않고 대한민국을 괴롭히고 더럽히고 망치고 있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오천년 피땀으로 이룩한 겨레의 도리와 상식, 홍익인간과 재세이화의 본분을 팽개치고 사람의 사람됨을 부정하고 있으니 한시도 견딜 수 없습니다. 힘없는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사회의 기초인 친교를 파괴하면서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조롱하고 하느님 나라를 거부하고 있으니 어떤 이유로도 그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버젓이 나도 세례 받은 천주교인이오, 드러냈지만 악한 표양만 늘어놓으니 교회로서도 무거운 매를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6. 그가 세운 유일한 공로가 있다면, '하나'의 힘으로도 얼마든지 '전체'를 살리거나 죽일 수 있음을 입증해 준 것입니다. 숭례문에 불을 지른 것도 정신 나간 어느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이기로 말하면 그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요, 우리야말로 더 큰 하나가 아닙니까? 지금 대한민국이 그 하나의 방종 때문에 엉망이 됐다면 우리는 '나 하나'를 어떻게 할것인지 물어야 합니다. 나로부터 나라를 바로 세웁시다. 아울러 우리는 뽑을 권한뿐 아니라 뽑아버릴 권한도 함께 지닌 주권자이니 늦기 전에 결단합시다. 헌법준수와 국가보위부터 조국의 평화통일과 국민의 복리증진까지 대통령의 사명을 모조리 저버린 책임을 물어 파면을 선고합시다!
7. 오늘 우리가 드리는 말씀은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니 방관하지 말자는 뜻입니다. 아무도 죄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매섭게 꾸짖어 사람의 본분을 회복시켜주는 사랑과 자비를 발휘하자는 것입니다.
전국적으로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 발표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4천명이 넘는 교수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한 것에 비해 같은 대학 구성원인 학생들은 잠잠하다며 비교하는 보도 역시 눈에 띈다. 하지만 지난 26~27일 둘러본 대학 내 풍경은 달랐다.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에 부착된 대자보를 시작으로 서울 지역 대학 곳곳에는 학내 게시판에 부착된 교수들의 시국선언 대자보 옆에 학생들의 대자보가 자리잡고 있었다.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면 기존에 발표된 시국선언문과는 다른 '나의 이야기'가 적혀있어 더 공감이 된다는 반응이 많다.
양심과 부끄러움 앞에서 터져 나오는 '윤석열 퇴진'
▲26일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안에 부착된 윤석열 퇴진 대자보 "양심에 찔려 위기를 모른 척 할 수 없습니다." ⓒ 김수정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내부에는 졸업을 앞둔 재학생 명의로 작성된 대자보가 붙었다. 해당 대자보는 기존의 윤석열 퇴진의 이유를 밝히는 시국선언과는 사뭇 달랐다. 윤석열 정권 아래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느끼는 진솔한 고백이 담겨 학생들의 공감을 더욱 받고 있다.
시국선언문을 쓴 이는 졸업을 앞두고, 취업준비와 관련 공부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도 외면할 수 없는 윤석열 정권 아래 벌어지는 국정농단 사태와 실정에 삶이 고통스럽다고 호소한다. 특히 그는 "속이 답답하기만 한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제 자신이 부끄럽기만 하다"면서 "윤석열을 뽑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내 삶이 고통스러워야 하는지, 한참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누구나 시대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부끄럽게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 대통령을 그냥 둘 수 없습니다.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대통령을 그냥 둘 수 없습니다. 나와 우리를 갉아 먹으며 제왕적인 권력을 누리는 대통령을 그냥 둘 수 없습니다.
서울여대 24학번 아동학과 재학생이라고 밝힌 이가 쓴 윤석열 퇴진 서울여대 학생 시국선언문 주변엔 공감을 표시하는 포스트잇이 붙기도 했다. 시국선언문을 쓴 학생은 윤석열 정권에 느낀 실망감과 임기 2년 반을 우울하고 희망이 없는 시간으로 보낸 마음을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무기력함으로 표현한다. 이어서 " 투표권이 없던 나는 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내가 사는 나라의 대통령이 누구인지 실감했다" 며 "더이상 외면할 수도 타인을 원망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한다.
▲27일 서울여대 학생누리관 안에 부착된 아동학과 24학번의 시국선언 대자보 ⓒ 김수정
과거의 나를 위해 지금의 내가 <서울여대 학생 시국선언>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퇴진하라!-
2022년 3월 10일 새벽의 나를 기억한다. 그날의 나는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만 17세의 나이로 투표권이 없던 나는, 그날 새벽을 눈 뜬 채로 지새워야만 했다.
남몰래 조금 울었던 것 같기도 하다. 투표권을 가진 어른들을 원망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나의 무력함에 대해 자책했다. 그날 개인 SNS에 캐나다 오타와의 사진을 올리며 이민을 가야겠다고, 한국을 떠나야겠다고 울부짖었던 기록은 여전히 남아 그날의 나를 상기시킨다.
그날 이후로 얼마나 많은 일이 벌어졌던가.
투표권도 없던 나는 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내가 사는 나라의 대통령이 누구인지 실감했다. 친구와 전화기를 붙들고 한 시간이 넘도록 역정을 내고 한숨을 뱉어 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밖에 없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주위를 돌아보던 시선을 거두고 나의 삶만을 영위했다.
2024년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지금의 나는 12월 7일 그날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가진 참정권을 이대로 썩힐 수 없어서, 타인을 원망하고 싶지 않아서,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며 결국 또 무력했던 자신이라 기억하지 않았으면 해서.
12월 7일 광화문 광장에서 대통령 퇴진을 위한 범국민대회가 열린다. 나와 같은 기억, 다짐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 지난 과거의 내가 내지 못했던 목소리를, 지금의 내가 내고자 한다.
경희대 서울캠퍼스에 부착된 학생 시국선언은 현 정권아래 살아가는 청년들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시국선언문은 높은 물가 속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청년들의 삶을 지켜주기보다는 청년예산삭감으로 일관하는 앞뒤 다른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더이상 이 나라는 어려울 때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일갈했다.
쿠팡에서 내 시급과 맞먹는 계란 한 판 가격을 보며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물가가 계속 오르지만 최저시급은 그만큼 오르지 않는 현실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서울과학기술대 행정학과 21학번 재학생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2022년 여름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파업 당시 들었던 구호를 시국선언문 제목으로 삼았다. 시국선언문에는 노동혐오를 조장하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며 절박하게 외친 그들의 구호가 머릿속을 맴돕니다. 또, 특진을 내걸고 경찰력을 동원한 윤석열 정권에 맞서 차마 그 모욕감을 견디지 못해 자신의 몸에 불을 댕길 수밖에 없었던 건설노동자가 떠오릅니다.
마지막 순간 그가 느꼈을 외로움과 분노가 가슴 깊숙한 곳을 찌르듯 파고듭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노동혐오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에 대한 외면 뿐만 아니라 살고자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며 "뿌리부터 썩은 정권, 어쩌면 최근 밝혀지고 있는 명태균과 김건희의 국정 농단은 국민을 하찮게 여기고 무시하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해도 되는 행동이었을지도 모릅니다"라고 썼다.
각 대학들의 시국선언은 12월 초에 발표할 예정으로 학생들의 연명을 진행하고 있고, 대자보가 부착되고 있는 학교들 역시 더욱 늘어나고 있다. 윤석열 정권 아래 살아가는 청년들은 더 이상 또래의 계속되는 죽음 앞에서 숨어버리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자신의 양심 앞에서 더 이상 자책만 하고 싶지 않다며 윤석열 퇴진에 목소리를 높이는 대학생들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학생들이 붙인 대자보 말미에는 대부분 '12월 7일 윤석열 정권퇴진 범국민대회에 함께 나가자'는 호소가 담겨 있다. 더 이상 참지 못하는 대학생들이 12월 7일 광장으로 나와 다시 촛불을 들지 주목된다.
▲27일 광운대 중앙도서관 로비에 부착된 " 청년은 한톨의 희망도 느낄 수 없다." 학생 시국선언 대자보 ⓒ 김수정
▲지난 17일 오후 서울대 학생회관과 중앙도서관, 행정관, 공과대학 게시판 등에 '국민의 적 윤석열을 타도하자'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모교인 서울대에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자보가 또 게재됐다. 지난 8일, 13일에 이어 세 번째 대자보다. 이번 대자보를 게시한 학생은 "앞서 붙은 대자보를 보고 용기를 냈다"고 전했다.
<오마이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학생회관, 중앙도서관, 행정관, 공과대학 총 네 곳의 게시판에 '국민의 적 윤석열을 타도하자'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대자보 작성자는 생활과학대학과 인문대학에 재학 중인 학부생 두 명이다. 이들은 대자보에서 "대통령 자리를 꿰차고 앉아 전횡하는 윤석열은 국민의 공적"이라며 "스스로 물러나라. 그리하지 않으면 분노한 국민의 손으로 타도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윤석열의 죄가 매우 많아서 하나씩 열거하자면 지면이 모자란다. 이미 (그 죄가) 두루 알려져 있어 분명하지 않은 바가 없으므로 간단히 적는다"라며 ▲ MBC 바이든-날리면 보도 ▲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 ▲ R&D 예산 삭감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개입 ▲ 명태균씨 국정 개입 의혹 등을 직·간접적으로 언급했다.
그러면서 "윤석열의 실정과 무도함에 국민은 지쳐버렸다"며 "지난 대선, 국민 여론을 어떻게 조작했을지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라며 "대한민국은 공화국이고 왕이 되려 하는 대통령이 설 자리는 없다"고 지적했다.
"탄핵이든 개헌이든 빠르게 정권 종식해야"
대자보를 작성한 A씨는 18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윤석열 정권의 폭정, 김건희 여사의 국정농단 등으로 국민들의 삶이 피폐해졌다"며 "먼저 대자보를 쓴 다른 학생들을 보고 용기를 냈다. 저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번 대자보를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서울대 출신이란 게) 정말 부끄럽고 더 이상 우리 학교에서 이런 사람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윤 대통령을 탄핵하든 (임기 단축) 개헌을 하든 이 정권을 빠르게 종식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불공정과 비상식의 대명사, 윤석열 동문의 퇴진을 촉구한다"라는 제목의 지난 8일자 대자보가 11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게시판에 붙어 있다. ⓒ 박수림
한편 지난 8일에도 '불공정과 비상식의 대명사, 윤석열 동문의 퇴진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평범한 학부생' 명의로 학생회관·중앙도서관 게시판에 게재됐다.
지난 13일엔 '윤석열 퇴진 대학생 운동본부'와 '윤석열 탄핵 소추 촉구 대학생 시국농성단'이 서울대 내 버스정류장에 "윤석열과 하루도 더 함께 할 수 없다", "끌어내리자" 등의 내용이 담긴 대자보를 게재하기도 했다. < 오마이 박수림 기자 >
아래는 지난 17일 오후 서울대에 게재된 대자보 전문이다.
국민의 적 윤석열을 타도하자
대통령 자리를 꿰차고 앉아 전횡하는 윤석열은 국민의 공적이다. 윤석열의 죄가 매우 많아서 하나씩 열거하자면 지면이 모자라거니와 이미 두루 알려져 있어 분명하지 않은 바가 없으므로 간단히 적는다. 말 같지 않은 해명으로 국민에게 청력 테스트를 시키며 지록위마의 고사를 상기시키고, 한낱 똥별 놈을 감싸려고 채수근 상병의 억울한 죽음과 박정훈 대령의 충정에 모욕을 주며, 미래 성장 동력인 자연과학과 공학에는 R&D 예산 삭감의 치명타를 날리더니, 심지어는 괜한 이웃 나라의 심기를 건드려 적의 동맹을 만들어 주고, 공연히 남의 나라 전쟁에 참견하여 전쟁의 참화를 불러오고 있다. 윤석열의 실정과 무도함에 국민은 지쳐버렸다. 집권 이후 이룬 것이 무엇이 있나? 매번 전 정권 탓만 하고 정적 제거에만 몰두하지 않았는가? 더구나 명태균 같은 정치 잡상인을 권력 속에 초청한 것은 참을 수가 없을 따름이다. 지난 대선, 국민 여론을 어떻게 조작했을는지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대한민국은 공화국이다. 왕이 되려 하는 대통령이 설 자리는 없다. 국민의 신뢰가 바닥나고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국민이 윤석열을 믿지 않으니, 아직 존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국민의 적 윤석열은 스스로 물러나라. 그리하지 않으면 분노한 국민의 손으로 타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