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곡동' 이광범, '최순실' 박영수, '드루킹' 허익범

모두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당, 자유한국당 등 추천
이명박‧박근혜‧문재인은 거부권 행사 않고 수용

최순실 위헌 제기에 법원 '기각'…헌재 전원 '합헌'
"특검 독립성 확보 등 고려해 국회가 결정할 사항"
"여당이 추천하면 이해충돌, 특검 도입 목적 저해"

윤 정권은 우격다짐식 '위헌 타령' 고장 난 레코드
언론의 '야당 입법 폭주' 보도 유도하며 국민 기만

 

2017년 3월 9일 '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팀의 수사팀장인 윤석열 검사(왼쪽)와 박영수 특별검사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2017.3.9. 연합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오후 김건희 특검법(정식 명칭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 세 번째로 거부권(재의요구안)을 행사했다. 취임 이후 통틀어 25번째 거부권 행사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김건희 특검법을 세 번째 발의해 지난 14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고, 정부는 26일 전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이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

윤석열 정권은 거부권 행사의 근거를 이것저것 끌어모아 나열하고 있지만 핵심 사유는 '특검을 야당이 추천하는 건 위헌'이라는 것이다. 이번 특검법은 수사 대상을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개입 의혹과 명태균 씨 관련 의혹으로 대폭 축소했으며, 특검 후보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의 방안을 반영해 제3자인 대법원장이 추천하도록 양보하되, 야당이 재추천을 요구할 수 있는 '비토권'을 담았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이조차도 위헌이라고 규정했다. 포장을 어떻게 했든 특검 추천을 야당이 좌우할 수 있으니 절대 안 된다는 논리다.

한덕수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야당이 그 위헌성이 조금도 해소되지 않은 특검법안을 또다시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유감"이라며 "제3자 추천의 형식적 외관만 갖췄을 뿐, 실질적으로는 야당이 특검 후보자 추천을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헌법 수호 의무가 있는 대통령은 위헌적 요소가 있는 법률안에 대해 재의요구권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건희 특검법은 위헌이라는 요지의 이완규 법제처장 주장을 제목으로 뽑아 보도한 한국일보의 인터뷰 기사.
 

법무부도 마찬가지다. 법무부는 이날 A4 용지 5쪽 분량의 보도자료를 내고 "특검법안의 수사 대상인 도이치모터스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재판이 계속 중"이라며 "관련 사건의 재판을 담당한 대법원 수장이 수사를 맡게 될 특검 후보자를 추천하는 것은 권력분립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주장했다. 또 "야당은 대법원장이 추천한 후보자가 부적합하다고 판단할 경우 야당이 원하는 후보자가 추천될 때까지 '무한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서 "결국 '제3자 추천'이라는 무늬만 갖췄을 뿐 특검 후보 추천권을 야당에 부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정권의 '법기술' 행사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이완규 법제처장 역시 지난 24일 한국일보 인터뷰를 통해 "(김건희 특검법의) 결정적인 문제는 특별검사를 실질적으로 야권에서 추천하는 형태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임명권을 침해해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며 "고발인(야권)이 특검까지 정하는 건 '적법절차의 법리'에도 어긋난다. 헌법 수호의 책무를 가진 대통령으로서는 거부권 행사가 당연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 본인이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국회가 사실상 특검을 임명하고 방대한 수사팀을 꾸리는 나라는 없다. 명백히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삼권분립 체계에 위반되기 때문"이라며 "대통령과 여당이 반대하는 특검을 임명한다는 자체가 기본적으로 헌법에 반하는 발상"이라고 항변했다. 나아가 "이건 사법 작용이 아니라 정치 선동이다. 인권 유린이 될 수 있다"면서 "헌법을 수호할 궁극적인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검건희 여사 특검법이 상정되자 퇴장하고 있다. 2024.11.14. 연합
 

윤석열 정권이 이렇게 '야당 추천은 물론 대법원장 추천 특검도 위헌'이라는 소리를 고장 난 레코드처럼 무한 반복하는 이유는 다수 언론이 이를 무비판적으로 보도해줌으로써 국민들을 속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대 특검법에서 대법원장은 말할 것도 없고 야당이 특검을 추천하도록 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으며, 헌법재판소도 이를 합헌이라고 더할 나위 없이 명쾌하게 결론 내린 바 있어 윤 정권이 내세우는 위헌론은 의도적인 궤변이자 대국민 사기극에 불과하다.

우선 대법원장의 특검 추천 사례를 보면, 과거 윤 대통령 본인이 파견 검사로 참여했던 BBK 특검(2007)의 정호영 변호사는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이 추천해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이다. 이어 스폰서 검사 특검(2010)의 민경식 변호사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추천해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했고, 디도스 특검(2011)의 박태석 변호사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추천해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했다. 윤 대통령이 정치적 사표(師表)처럼 추종하는 MB도 대법원장 추천 특검을 잇따라 수용했던 것이다.

특히 윤석열 정권이 막무가내로 부정하는 야당 추천 사례도 세 차례나 존재한다. 그 첫 사례였던 내곡동 사저 의혹 특검(2012년)은 '피의자'가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들이었던 만큼 공정한 수사를 위해 특검을 야당에서 추천할 필요가 있다는 당시 민주통합당의 요구를 여당인 새누리당이 받아들여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민주통합당은 특검 후보로 김형태‧이광범 변호사를 추천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과 가족을 향한 특검 수사에 불만은 있었지만 '대승적으로'(당시 청와대 측 표현) 결단해 두 후보 가운데 이광범 변호사를 낙점했다.

 

2018년 6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접견실에서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을 조사할 허익범 특별검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향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18.6.8. 연합
 

익히 알려진 대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가 수사팀 주축으로 활약했던 '최순실 게이트'의 국정농단 특검(2016년) 때는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3당이 조승식 변호사와 박영수 변호사를 추천했다. 박근혜 대통령 또한 자신과 측근들 목에 칼이 들어오는 상황에서도 두 후보 중 박영수 변호사를 임명해 역대 최대 규모의 '슈퍼 특검팀'이 출범하도록 했다. 박영수 특검은 야3당 중에서도 국민의당이 추천한 인사였다.

드루킹 특검(2018)은 대한변호사협회 추천이라는 한 단계를 더 거치긴 했지만 야당이 2명의 후보를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기본 골격은 동일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배제된 상태에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등 교섭단체 야3당은 대한변협에서 국회에 추천한 김봉석·오광수·임정혁·허익범 변호사 등 4명의 후보 중 청와대 추천 대상으로 임정혁·허익범 변호사를 추렸고, 문재인 대통령은 공안 검사 출신 허익범 변호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친문 핵심이던 김경수 경남지사의 투옥으로 이어져 특검 수사 및 판결 내용을 둘러싼 여러 의문에도 불구하고 문 정부에 큰 타격이 됐다.

이렇게 이명박‧박근혜‧문재인 대통령은 자신과 가족, 또는 측근들에게 닥칠 위험에도 불구하고 대승적이든 마지못해서였든 야당 추천 특검을 받아들였다. 이전 대통령들은 모두 국회의 의사 결정을 존중해 설혹 여당 일각에서 반대가 있었더라도 표결을 거쳐 본회의를 통과한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일절 하지 않았는데, 유독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과 배우자가 수사 대상인 채 해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에 각 3번씩, 무려 6번이나 거부권을 휘두르는 전대미문의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

 

국정농단 특검법의 야당 추천 특검 조항이 합헌이라는 2019년 2월 28일 헌법재판소 결정문 일부. 법률 정보 검색 서비스 케이스노트 화면 갈무리
 

야당 추천 특검이 위헌이라는 윤 정권의 생떼가 얼마나 기만적인지는 바로 그 위헌 여부를 결정하는 헌법재판소 판례를 보면 더없이 명확해진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비선 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는 지난 2017년 3월 7일 박영수 특검팀의 출범과 활동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하지만 같은 해 4월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국회가 정치적 상황의 중대성과 특수성 등을 고려해 특검 후보자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추천하도록 한 것이 명백하게 자의적이거나 현저히 부당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최 씨의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최 씨는 같은 해 4월 21일 헌법재판소에 직접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으나, 헌재는 2019년 2월 28일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법'의 야당 추천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것도 헌법재판관 9명(유남석‧서기석‧조용호‧이선애‧이석태‧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기영) 전원 일치 의견이었다. 재론의 여지가 없는 헌재 전원재판부 결정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특별검사 후보자의 추천권을 누구에게 부여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특별검사를 임명할 것인지에 관한 사항은 사건의 특수성과 특별검사법의 도입 배경, 수사 대상과 임명 관여 주체와의 관련성 및 그 정도, 그에 따른 특별검사의 독립성·중립성 확보 방안 등을 고려하여 국회가 '입법 재량'에 따라 결정할 사항이다.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는 대통령이 소속된 여당이 특별검사 후보자를 추천함으로써 이해충돌 상황이 야기되면 특별검사제도의 도입 목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 하에 (…) 여당을 특별검사 후보자 추천권자에서 배제하고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두 야당으로 하여금 특별검사 후보자를 추천해 2인 중 1인을 대통령이 특별검사로 임명하게끔 규정했다고 해서 합리성과 정당성을 잃은 입법이라고 볼 수 없다." (2017헌바196)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수사 대상이기 때문에 이해충돌을 피하고 특검의 독립성을 기하기 위해 여당인 국민의힘 추천권을 배제하는 건 상식적으로 너무도 당연하다. 이해하기 복잡한 사안이 전혀 아니지만 윤석열 정권은 우격다짐을 끝없이 되풀이함으로써 마치 일리가 있는 논리처럼 언론에 주입하고 '야당의 입법 폭주'라는 식의 보도를 유도해 여론을 선동하려 한다. 왜 이리 필사적일까. 윤 대통령 본인이 그 답을 가장 잘 알고 있다. "특검을 왜 거부합니까? 죄를 지었으니까 거부하는 겁니다."                                                        < 민들레 김호경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1년 12월 29일 경상북도 선대위 출범식에서 여야의 대장동 특검 및 고발사주 특검 공방과 관련해 "떳떳하면 사정기관을 통해서 권력자도 조사받고 측근도 조사받고 하는 것이지, 특검을 왜 거부합니까? 죄지었으니까 거부하는 겁니다"라고 발언했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유튜브 화면 갈무리

 

[아침신문 솎아보기]

추도사 공개 않는데 날짜 못 박은 정부…“예고된 실패” 입 모아
오세훈까지 번진 명태균 의혹 “이래도 특검 안하나”

“사라진 청년 일자리, 통계 작성 이래 최저”

 
 

 

▲25일 조선일보
 

한국정부가 24일 일본 니가타현 사도시에서 열린 ‘사도광산 추도식’에 불참했다. 이 추도식은 지난 7월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때 일본이 한국 동의를 얻기 위해 약속한 후속 조처다. 그러나 일본이 정부 대표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인물을 보내며 한국 유족이 불참했고, 정부가 하루 전날 불참을 결정했다.

25일 대다수 신문은 1면 보도를 통해 한국 정부가 사도광산 유네스코 등재에 성급히 동의해주면서 이번 외교 실패가 예고됐다고 했다. 일본이 2015년 군함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할 때도 희생자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론 현장이 아닌 도쿄에 세우고 강제성도 부인하며 약속을 어긴 바 있다. 이 같은 전례에도 정부가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는 지적이다.

▲25일 경향신문
 

외교부는 추도식 하루 전인 23일 “사도광산 추도식을 둘러싼 양국 외교당국 간 이견 조정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치 않다”며 “제반 사정을 고려해, 추도식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제반 사정’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일본 정부 대표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전력과 추도사 내용 등이 불참 배경으로 풀이된다.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은 참의원으로 당선된 뒤 2022년 8월15일 일본 패전일을 맞아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고 교도통신 등이 보도한 바 있다. 그는 강제동원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두고 “한국 정부가 더 양보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추도사에도 강제성 표현은 없었다. 이날 신문들에 따르면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한 이쿠이나 아키코 외무성 정무관(차관급)은 추도사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이 위험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힘든 노동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쟁 중에 노동자에 관한 정책” “전쟁이라는 특수한 사회 상황”을 언급했다. 강제동원이 합법이라는 인식을 드러낸 대목으로 풀이된다. 강제성을 나타내는 직간접적인 단어는 들어가지 않았다.

▲25일 한겨레
 

행사의 주최는 일본 정부가 아닌 시민단체가 맡았다. 추도식 날짜는 개최 나흘 전인 지난 20일에야 확정됐다. 일본 정부는 추도식에 한국 유가족을 ‘초청’하면서도 비용은 모두 한국 측이 부담하게 했다. 추도식 명칭도 누굴 추모하는지 알 수 없는 ‘사도광산 추도식’으로 정했다. 광산 인근 전시물에서도 ‘강제노역’이란 표현을 뺐다. 일본 측은 추도사 내용을 전날까지 한국에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일본 정부 참석자와 추도사 내용을 합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추도식 날짜를 못 박아 발표했다.

중앙일보 “이쿠이나 정무관, 질문 안받고 뒷문 퇴장”

이쿠이나 정무관은 이날 뒷문으로 입장해 행사 뒤 기자 질문을 받지 않고 뒷문으로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추도식 후 질의응답에서 실행위원회 측은 ‘광산 노동자들에 대한 감사 발언’이 부적절하지 않냐는 한국 취재진의 질문에 “여기는 일본”이라며 “모든 노동자가 있었기에 세계유산 등록이 됐는데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 대표와 유족 불참엔 “유감”이라고 했다.

▲25일 중앙일보
 

경향신문은 “이번 추도식 사태는 근본적으로 정부의 대일 외교 기조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했다. 한겨레는 “사도광산 추도식 파행은 표면적으로 일본 정부의 ‘도발’ 탓으로 보이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지난 7월 강제동원 역사가 사실상 삭제된 상태로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동의해준 한국 정부에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했다.

사도광산 추도식은 지난 7월 말 한국 정부가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반대하지 않은 대신 일본 정부가 약속한 조치 중 하나였다. 경향신문은 “정부가 등재 여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때에 추도식 일본 정부 참석자 지위, 추도사 핵심 내용 등을 미리 합의했어야 했다는 얘기”라며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1개 회원국 전체의 합의로 등재를 결정하기 때문에 한국이 반대할 경우 일본 정부 부담이 커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 9월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런 비판을 두고 “(그만큼) 생각이 미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일본이 강제노역으로 고통받은 한국인을 추모하는 행사에 일제 침략을 미화하는 인사를 보낸 건 유족에겐 모욕에 가깝다”며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선 우리 측 동의가 필요한 만큼 일단 간사한 말로 속인 뒤, 목적을 이루자 본색을 드러낸 셈”이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더 참을 수 없는 건 우리 정부의 무능”이라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또다시 뒤통수를 맞은 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외교부가 처음엔 일본 측 대표의 야스쿠니 참배 사실도 파악 못한 채 차관급으로 격이 올라갔다고 자화자찬한 건 참담할 정도”라고 했다.

▲25일 한국일보
 

조선일보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된 한국의 대일 외교가 또다시 일본으로부터 뒤통수를 맞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이처럼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 문제로 갈등이 표면화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대다수 신문이 사태의 근본 원인을 한국 정부 책임이라고 지적한 것과 다르다. 조선일보는 3면에선 야스쿠니 참배 인사인 이쿠이나 외무성 정무관이 ‘아이돌 출신’이며 ‘세미누드집’을 낸 전력이 있다고 강조하는 기사를 배치하기도 했다.

▲25일 조선일보
 

여권 번진 명태균 의혹, 경향 “이래도 특검 안하나”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여권 인사들 간의 부적절한 커넥션 의혹이 여권 정치인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번엔 오세훈 서울시장 지인 김모씨가 2021년 시장 보궐선거 당시 명씨 측에 여론조사 비용을 대납한 의혹이 불거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오랜 후원자로 알려진 사업가는 2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명씨 측에 비공표 여론조사 비용으로 거액을 건넨 사실을 인정하면서 오 시장 캠프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25일 경향신문
 

이날 명씨 의혹을 제기한 강혜경씨 측에 따르면 미래한국연구소는 2021년 4월 보궐선거 전인 2020년 12월22일부터 2021년 3월21일 사이 서울시장 선거 관련 비공표 여론조사를 13차례 실시했다. 강씨 측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김씨는 보궐선거 전인 2021년 2월 1일부터 3월 26일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3300만원을 연구소 실무자였던 강씨에게 송금했다. 당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간에는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문구 등을 두고 신경전이 이어졌다.

김씨는 이날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명씨 측에 비공표 여론조사 비용을 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당시 오 후보 선거캠프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오 시장 측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캠프에서는 ‘그 결과를 쓸 수 없다고 차단했다”며 “우리(캠프)에는 여론조사 결과가 오지 않았다”고 했다. 경향신문과 국민일보, 동아일보가 이를 지면 보도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된 2021년 전당대회, 2022년 국회의원 보궐선거 경선 등에서도 명씨가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여론조사를 실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위해 불법 여론조사를 하고 공천 등에 개입했다는 의혹에서 출발한 ‘명태균 게이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 의혹이 불거지면서 연루된 여권 인사들도 불어나고 있다”며 “이런데도 정부·여당은 ‘김건희·명태균 특검’을 거부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국민들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받은 것과 견주어 검찰의 김 여사 처분이나 여당의 특검 거부가 공정하지 않다고 본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특검 수용을 결단해야 한다”고 했다.

사라진 청년 일자리, 통계작성 이래 최저

올해 2분기 10·20대 청년층 신규 채용 일자리가 역대 최저치로 줄어들었다. 신문들이 이를 주요 지면에 배치했다.

▲25일 국민일보
 

24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임금근로 일자리 중 20대 이하의 신규 채용 일자리는 145만4000개로 전년보다 13만6000개(8.6%) 감소했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8년 이래 가장 적다.

20대 이하 전체 임금 근로 일자리도 줄었다. 20대 이하 임금 근로 일자리는 305만9000개로 1년 전(319만2000개)보다 13만3000개 줄었다. 역시 통계 작성 이래 최소치다.

한겨레는 “청년층의 신규채용 일자리 감소세는 인구 변화를 고려해도 급격한 기울기”라며 청년층 인구 감소율은 2.9%였고 경제활동인구는 3.1% 줄었는데 임금근로 신규채용 일자리 감소율은 2배 이상 높은 8.6%였다고 했다.

▲25일 경향신문
 

한국일보는 “정부가 앞장서 청년 채용을 권장하는 공공기관 정규직에서조차 자리는 좁아지고 있다”며 올해 3분기까지 339개 공공기관이 채용한 일반정규직 가운데 청년은 1만 703만명으로 80.2% 수준이며, 이 비율은 2022년부터 하락세라고 했다.

60대 이상 신규채용 일자리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지만 이 역시 ‘질 낮은 일자리’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동아일보는 “60대 이상 고령층의 신규 채용 일자리는 122만9000개로 1년 전(116만7000개)보다 6만2000개(5.3%) 증가해 역대 최대”라며 “월급이 수십만 원에 그쳐 ‘질 낮은 일자리’로 여겨지는 정부의 노인 일자리 공급 규모가 올해 103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약 5만 명 증가한 영향이 컸다”고 했다.                       < 미디어 오늘 김예리 기자 >

전 정권 인사들에게 타격을 주려는 정치적 목적의 수사

 

 

 

 
2022년 6월15일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세계 1% 과학자’다. 최근 10년간 논문 인용 횟수가 전 세계 상위 1%에 해당한다. 노벨상 예측 후보 발표로 유명한 글로벌 학술정보기업 클래리베이트가 해마다 집계하는 통계다. 신소재 분야의 권위자인 그는 해외 학회와 강연, 세미나에 자주 초청된다. 지난 6일에도 유럽에서 열린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재료 학회’(MATSUS) 초청으로 일주일 동안 출장을 다녀왔다. 올해에만 8번째 해외 출장이다.

‘세계 1% 과학자’가 출국허가신청서 내야 하는 까닭

그의 해외 출장은 다른 학자에겐 필요 없는 절차를 요구한다. 법원과 검찰의 출국 허가를 받는 일이다. 그는 현재 재판받는 피고인 신분이라서 출국금지 돼 있다. 해외 출장 때마다 ‘출국허가신청서’를 제출한 뒤 처분을 기다려야 한다. 그의 첫 출국 허가는 검찰이 출국일이 임박해서 내주는 바람에 출장 직전까지 애를 태워야 했다. 담당 검사는 별다른 이유 없이 차일피일 허가를 미뤘다.

백운규는 1심 재판만 4년째 받고 있다. 재판을 받는 데에는 시간과 돈과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 “기소되면 인생이 결딴난다”라는 말에 역설적으로 100% 공감하게 됐다. 윤 대통령의 경고(!)대로 피고인이 되면 일상이 파괴되고 인간관계가 단절될 위기를 맞는다. 그도 처음에는 인생이 결딴날 것만 같았다. 수사가 시작되자 그에 대해 온갖 악의적인 기사가 쏟아졌다. 보수언론은 그를 영혼 없는 ‘어용학자’로 몰아갔다. “그동안 쌓아온 학자로서의 명예가 송두리째 날아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기소 후에는 기자들이 그가 몸담은 학교 쪽에 징계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왔다. 마치 해고가 당연하다는 뉘앙스였다. 다행히 학교 재단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그의 교수직을 유지하기로 했다.

백운규는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정재훈 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사장과 함께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를 강요한 혐의(직권남용)로 2021년 6월30일 기소됐다. 재판이 한참 진행된 2023년 7월에는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기소됐다. 문재인 정권의 실세였던 김수현이 무려 2년 뒤에 기소된 건 이 수사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가급적 더 많은 전 정권 인사들에게 타격을 주려는 정치적 목적의 수사였다.

삼중수소 다량 배출 노후 원전을 ‘멀쩡한 원전’ 전제한 수사

검찰은 설계수명(30년)이 2012년에 끝나 가동이 중단됐다가 2015년 수명연장으로 재가동된 월성1호기를 ‘멀쩡한 원전’으로 전제하고 수사를 했다. 월성1호기의 경제성이 충분한데도 이를 불합리하게 저평가해 조기 폐쇄했다는 논리였다. 안전성은 제쳐두고 손실이 얼마인지만 따졌다. 하지만 안전성을 평가하면 월성1호기를 멀쩡한 원전으로 보는 건 어불성설이다. 1983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이 원전은 2000년대 들어 노후화로 인해 잦은 고장을 일으켰다. 설계수명을 연장한 뒤에도 고장은 계속됐다. 재가동 1년 만인 2016년 5월 압력조절밸브 고장으로 가동이 중단됐고, 2017년 5월에도 원자로냉각재펌프 2대가 고장나 정지됐다.

더욱 심각한 건 방사성 물질 노출 위험이다. 월성 1~4호기는 중수로형 핵발전소다. 경수로형보다 삼중수소를 10배나 더 많이 배출한다. 삼중수소는 사람 몸속에 흡수되면 세포 돌연변이 발생률을 높여서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 몸속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많은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경주시 월성원전 방폐장민간환경감시기구가 2014년 2월부터 15개월 동안 이 원전 인근 주민 246명, 경주시 주민 125명, 울진핵발전소 인근 주민 124명을 대상으로 체내 삼중수소를 조사한 결과 원전 주변의 주민이 경주 시내 주민보다 검출 평균치가 2.6배 이상 높았다. 앞서 다른 조사에서는 이 수치가 무려 25배나 차이가 났다(2011년). 월성원전 주변 지역 빗물과 지하수의 삼중수소 농도가 다른 원전 지역보다 5~10배 높다는 조사(2010년)도 있다.

월성1호기가 고장으로 멈출 때마다 지역 주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특히 2016년 9월12일 경주 일대에 관측 이래 가장 큰 규모(5.8)의 지진이 일어났을 때 주민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참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지진 발생 1시간 후 “원전은 정상 운영되고 있다”고 발표했으나 4시간 뒤 월성 1~4호기가 모두 멈춰 섰다. 한수원은 “정밀 안전 점검을 위해 정지시켰다”라고 발표했지만, 주민들은 믿지 않았다. 지진 발생 이튿날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피해 지역을 방문한 뒤 주민들의 농성장을 찾았다. 주민들은 문재인에게 “대통령이 되거든 원전 문제를 꼭 해결해달라”고 했다. 월성1호기 조기 폐쇄가 문재인 정권의 공약이 된 배경이다.

법원 2017년 “월성1호기 수명연장 처분은 위법” 판결

 

2017년 2월7일 서울행정법원이 월성1호기 수명연장 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후 소송에 참여한 시민들이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동안 아이들이 장난을 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2017년 2월7일 서울행정법원은 2015년 박근혜 정부의 월성1호기 수명연장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지역 주민 2000여명이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를 상대로 낸 소송이었다. 재판부는 원안위의 수명연장 처분이 절차를 안 지켰을 뿐만 아니라 안전성 평가도 위법했다고 판결했다. 특히 안전성 평가의 위법성을 중요한 요인으로 봤다. 원자력안전법령에는 수명연장을 위한 안정성 평가 때 최신기술 기준을 적용하도록 돼 있다. 월성 1~4호기를 한국에 수출한 캐나다는 원자로에서 사고가 났을 때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도록 원자로 격납용기에 수문과 이중 밸브 등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규정(R-7)을 1991년 도입했다. 이 규정에 따라 1997년~1999년 건설된 월성 2, 3, 4호기에는 안전장치가 설치됐다. 그러나 이보다 10년 전에 건설된 월성1호기에는 이 장치를 설치할 수 없었다. 법령에 따르면 2015년 월성1호기의 수명연장을 결정할 때 수문과 이중 밸브 등의 설치 여부를 따져야 했지만, 원안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원안위는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2020년 5월 각하 판결을 했다. 앞서 2019년 12월24일 월성1호기가 폐쇄됐기 때문에 더 이상 소송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월성1호기는 안전성 면에서 ‘불안한 원전’이었다.

‘탈원전’ 수사는 정치적 편향성 시비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박근혜 정권 때인 2015년 영구 정지된 고리1호기도 당시 한수원은 경제성은 물론 안전성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은 지역 주민들의 반대를 들어 영구 정지를 결정했다. 고리1호기 폐쇄가 월성1호기와 다른 점은 보수정권이 원전 폐쇄를 주도했고, 여야 모두 반대하지 않았다는 사실뿐이다.

2017년 6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이 고리원전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검찰, “한수원은 손실, 국가는 이득” 이유로 배임 적용

검찰은 백운규와 함께 기소된 정재훈에게 한수원 사장으로서 회사에 손실을 끼친 혐의(배임)를 적용했다(백운규는 배임 교사 혐의가 나중에 추가됐다). 검찰은 공소장에 “백운규 등 산업부 관계자들의 지시에 따라…(중략) 월성1호기의 가동중단을 실행함으로써 회사에 1481억원 상당의 손해를 가하고, 국가에 이 손해액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했다”라고 썼다. 국가 사정기관이자 ‘공익의 대변자’를 자임하는 검찰이 한수원의 주주나 할 법한 주장을 한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백운규와 채희봉은 노후 원전을 계속 돌려 돈을 벌려는 공기업(한수원) 경영진에게 국가에 이익이 되는 결정을 하도록 한 것이다. 검찰은 국민의 안전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공기업의 탐욕을 막은 공직자를 처벌하려고 한다.

이처럼 모순투성이인 검찰 수사가 별다른 제약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나중에 무죄가 난 산업부 공무원들의 ‘감사 방해’ 프레임이 먹힌 탓이다. 월성1호기 폐쇄가 관련 자료를 폐기해야 할 만큼 불법이었다는 인식을 퍼뜨려 검찰 수사가 힘을 받을 수 있었다. 때마침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사태까지 겹친 것도 윤석열 사단엔 호재였다. 윤 사단은 ‘현 정권이 범죄를 감추기 위해 검찰총장을 쫓아내려고 한다’고 여론전을 폈다. 여론도 호응했다. 징계 사태가 윤석열의 판정승으로 끝난 뒤 2021년 1월15일 한국 갤럽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는 긍정(38%)과 부정(53%)의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졌다. 윤석열은 여당의 정권 재창출을 막을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올랐다.

윤석열 대선 출마 선언 이튿날 ‘탈원전’ 기소

윤석열은 2021년 6월29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검찰총장을 중도 사퇴한지 석 달여만이다. 그는 출마 연설에서 밑도 끝도 없이 “법을 무시하고 세계 일류 기술을 사장한 탈원전으로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고 했다. 주민을 공포에 떨게 한 노후 원전 폐쇄가 ‘세계 일류 기술’을 고사시킨다는 주장은 지나친 침소봉대였다. 검찰은 이튿날 백운규 등을 전격 기소했다. 윤석열의 출마 선언에 힘을 실어준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윤석열은 “문재인 정권의 부패와 무능을 심판하겠다”는 출사표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을 돈 지난 11일 그의 지지율은 17~20%대를 기록했다. 그가 심판하겠다던 문재인은 물론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들에 견줘 가장 낮다. 검찰을 동원해 정권을 잡은 ‘검찰 정권’의 예고된 몰락인가.    <  한겨레 이춘재 기자 >

 

친한동훈계와 친윤계 당직자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등 설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오른쪽)와 추경호 원내대표가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했다. 연합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친윤석열계가 당원게시판에 올라온 윤석열 대통령 부부 비방 글과 관련해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면충돌했다. 친윤계인 김민전 최고위원은 한 대표 면전에서 “8동훈”을 언급하며 ‘가족 연루설’에 대한 입장 표명을 공개적으로 요구했고, 한 대표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말하라”고 반박하는 등 날 선 반응을 보였다. 15분가량 진행된 비공개회의에서도 당원게시판 의혹을 두고 친한동훈계와 친윤계 당직자 사이에 고성이 오가는 등 설전이 벌어졌고, 한 대표는 회의 직후 당원게시판 논란 자체를 조직적인 ‘당대표 흔들기’로 규정하며 강경하게 맞섰다. ‘8동훈’은 당원게시판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동훈’ 이름의 당원이 8명 있다고 친한계가 밝힌 뒤에 생겨난 말이다.

 

김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한 대표와 가족들이 당원게시판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비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일부 최고위원 등 당직자가 (게시판에 한동훈이란 이름으로 글을 쓰는) ‘8동훈’이 있다는 얘길 언론에서 하는데, 어떻게 8동훈이 있(다고 확인했)는지 궁금하다”며 “(게시판에 글을 쓴 당원) 자료를 일부 최고위원은 보는데 왜 저희는 못 보는지, 그걸 어떻게 확인했는지 공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정당법상 익명 게시판에 글을 쓴 당원 신상은 확인할 수 없다고 버텨온 친한계가 ‘한동훈’이라는 이름으로 게시판에 글을 올린 이가 8명이란 사실은 어떻게 확인했는지 ‘논리적 빈틈’을 파고든 것이다.

 김 최고위원은 이어 “당에서 ‘한 대표 사퇴(요구)’와 같은 글을 쓰는 사람을 고발한다는 기사가 났는데,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고발한다면, 저한테 무수하게 많이 사퇴하라는 문자가 와 있는데 같이 고발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김 최고위원이 언급한 기사는 “한 대표를 향해 사퇴하라거나 추가 의혹 폭로하겠다는 식의 글을 올린 사람을 고발하는 방안을 친한계가 검토하고 있다”고 전한 24일치 채널에이 보도다.

 한 대표는 발끈했다. 김 최고위원 말이 끝나자마자 마이크를 켜고선 “사실관계 좀 확인하고 말했으면 좋겠다. 그런 고발 준비하는 사람이 없다”고 반박했다. 김 최고위원이 “기사가 있다”고 하자, 한 대표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다”며 “참…”이라고 헛웃음을 지었다.

 이후 비공개로 전환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당내 게시판 의혹을 두고 친한계와 친윤계 당직자들이 험한 말을 주고받으며 공방을 벌였다. 곽규택 수석대변인은 이후 기자들에게 “최고위원이 아닌 사람들끼리 언쟁이 있었다”고 전했다. 한 회의 참석자는 “친한계 당직자가 비속어에 가까운 말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 대표는 이날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 앞에서 긴 시간을 할애해 게시판 논란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드릴 말씀이 없다”고 언급 자체를 피해온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는 “대통령을 비판한 글(을) 누가 썼는지 색출하라는 건 자유민주주의 정당에서 할 수 없는 발상이고, 그 자체로 황당한 소리다. 그 정도 글도 못 쓰나. (지금이) 왕조시대인가”라고 반문했다. 익명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이라는 게 권력을 쥔 사람에 대한 비판과 쓴소리가 넘치는 법이니, 도를 지나친 비방이나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 이상 누가 썼는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란 논리다.

 게시판 논란을 주도적으로 제기하는 당내 인사들의 정치적 배경도 거론했다. 한 대표는 “최근 (당원게시판)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보면 대개 ‘명태균 리스트’에 관련돼 있거나 김대남(전 대통령실 행정관) 건에 나왔던 사람이거나, (논란을 키워) 자기 이슈를 덮으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또 “어떻게든 당대표인 저를 흔들어보겠다는 의도 아닌가. 그런 뻔한 의도에 말려들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당원게시판 논란 자체가 대통령실과 친윤계의 조직적인 ‘한동훈 흔들기’라는 것이다. 홍준표 대구시장, 나경원 의원, 김은혜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 등 최근 당원게시판 논란과 관련해 자신의 침묵을 비판한 이들을 겨냥한 발언이다.

 김 최고위원이 언론 보도를 언급하며 ‘당이 한동훈 대표 비판 글 작성자를 고발하려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저에게 ‘여성 속옷을 입었다’는 원색적 성희롱성 발언도 했다. 해당 행위이고 공개 모욕인데, 제가 법적 조치를 했느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친윤계는 ‘의혹에 제대로 해명은 하지 않고 남 탓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친윤계 중진 의원은 “그동안 본인과 관련해 사실이 아니면 직까지 걸면서 강하게 얘기하지 않았나. 남들에게 한 것처럼 자기한테도 (엄정하게 기준을 적용) 해보라”고 했다. 또 다른 영남권 재선 의원도 “그래서 (가족이) 글을 썼다는 거냐, 안 썼다는 거냐. 본인이 의혹을 더 크게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 한겨레  서영지 신민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