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에 앞서 DMZ 철조망을 잘라 만든 평화의 십자가를 설명하고 있다.

 

3년 만에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프란치스코 교항이 북한 방문 의사를 거듭 확인했다.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바티칸 교황청을 찾아 프란치스코 교황을 단독면담했다. 배석자 없이 진행된 면담에서 문 대통령은 “교황님께서 기회가 되어 북한을 방문해주신다면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이 될 것”이라며 “다음에 꼭 한반도에서 뵙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초청장을 보내주면 여러분들을 도와주기 위해 평화를 위해 나는 기꺼이 가겠다. 여러분들은 같은 언어를 쓰는 형제이지 않느냐”고 답했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반도 비무장지대(DMZ)에 설치됐던 철조망을 녹여서 만든 ‘평화의 십자가’를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선물했다. 문 대통령은 교황에게 “한국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군사분계선이 250㎞에 달한다. 철조망을 수거해 십자가를 만든 것”이라며 “성서에도 창을 녹여 보습을 만든다는 말도 있다. 이에 더해 한반도 평화의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과 프란치스코 교황은 코로나19, 기후변화, 난민 등 국제사회가 직면한 여러 현안들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으며, 앞으로 국제사회의 행동을 독려하기 위한 협력을 지속하기로 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문 대통령이 유럽 순방 첫 일정으로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한 것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불씨’를 계속 살리기 위해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북한 방문이 임기말 남북 대화의 돌파구를 마련할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내놓은 제안이다. 또 로마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 정상회의 등으로 인해 전세계 이목이 교황청에 쏠려있는 것도 감안했다. 이날 <시엔엔>(CNN) 등 미국 언론은 “카톨릭 신자인 문 대통령이 교황을 방문한데 이어 두번째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교황을 만나 기후위기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앞서 2018년 10월 면담에서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북한에서)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적극 호응했지만 방북은 아직 성사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교황의 방북을 거듭 요청하며 지난 9월 유엔총회 종전선언 제안에 이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려는 의지를 나타냈지만,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실제 방북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바티칸을 방문한 문 대통령은 교황청을 지키는 스위스 근위대가 도열한 가운데 교황청 의장단의 영접을 받았다. 오전 10시15분부터 12시17분까지 프란치스코 교황 단독 면담과 파롤린 교황청 국무원장 면담을 진행하고 한-교황청 협력 강화 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문 대통령의 이번 방문에는 정의용 외교부장관과 이인영 통일부장관, 서훈 국가안보실장, 박용만 한국몰타기사단 대표 등이 함께 했다. 바티칸/이완 기자

 

재판 개입 임성근 탄핵심판 각하…헌재, 현직법관 아니라며 ‘면죄부’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탄핵심판 사건 선고 공판을 진행하고 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소추된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청구 각하 결정을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 헌법재판소의 역할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파면(탄핵)은 현직이어야만 가능하다는 법률 문언에 입각한 적절한 판단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그간 헌법수호 기관임을 자임하며 헌법 해석의 지평을 넓혀온 헌재 역사, 최초의 법관 탄핵 사건이라는 사안의 중대성 등을 고려하면 책임 회피를 위한 판단 정지라는 비판도 거세다.

 

헌법재판관 9명 중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가 위헌인지 아닌지를 판단한 재판관은 유남석(헌법재판소장)·이석태·김기영 재판관 3명에 불과하다. 이들 3명은 임 전 부장판사가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시절 일선 판사들의 판결문 작성이나 공판회부 절차에 개입한 행위에 대해 “법관 독립성 침해”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이미선 재판관이 각하 의견을 냄에 따라 이 사건은 다수의견으로 본안 판단까지 이르지 못하고 종결됐다. 5명의 재판관은 현직 판사가 아닌 임 전 부장판사에 대해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며, 임 전 부장판사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소추된 이유들에 대해서도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았다. 심판절차종료 의견을 낸 문형배 재판관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법조인들은 각하 결정이 나온 데 대해 “헌재가 책임을 회피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각하가 법 논리적으로 틀렸다고 할 순 없지만, 헌재가 그동안 해온 역할 등을 고려하면 충분히 본안 판단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았냐는 지적이다.

 

헌재는 재판 요건이 갖춰지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도 사안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사건을 각하하지 않고 본안 판단을 해왔다. 가령 1970년대 유신헌법에 근거한 긴급조치 1·2·9호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재가 2013년 3월 위헌 결정을 내린 일이나, 2015년 고 백남기 농민에게 물대포를 쏜 경찰의 행위에 대해 지난해 4월 위헌 확인 결정을 내린 일이 대표적이다. 모두 기본권 침해 행위가 이미 종료된 사안들이지만, 헌재는 “객관적인 헌법질서의 수호·유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헌재 존재 이유에 부합하므로 재판의 전제성이 인정된다”며 본안 판단을 내렸다.

 

헌재연구관을 지냈던 한 법조인은 29일 “그동안 헌재는 각하가 원칙이고 본안 판단이 예외인 사건들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예외를 인정해 본안 판단을 해왔다. 다수의견의 논리가 모순이라거나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동안 헌재가 보여준 적극성 등을 고려하면 이번 각하 결정은 책임 회피로 보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한 판사도 “탄핵은 헌법질서에 심각한 해를 끼친 사람에 대해 헌법적 징벌을 내리는 절차이자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제도다. 특히 법관 탄핵은 (헌정 사상 처음이기 때문에) 헌재가 길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사건이다. 이런 중대한 사건을 헌재가 마치 개인 사이의 권리분쟁을 다루는 것처럼 취급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헌정 사상 최초의 법관 탄핵이 흐지부지되면서, 대법원이 사법행정권 남용 법관들에 대해 적극적인 징계에 나서지 않았다는 ‘원죄론’, 국회 역시 너무 늦게 탄핵소추에 나섰다는 ‘방치론’ 비판도 다시 일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2018년 10월 임성근 전 부장판사를 비롯한 판사 13명에 대해 징계처분을 했고(1차), 이듬해 10명의 법관에 대해 추가로 징계청구 했다(2차). 그러나 1차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징계인 견책 처분을 받은 임 전 부장판사 등은 곧바로 법원행정처장을 상대로 징계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해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2차 징계는 “(관련자들의) 형사재판 절차를 지켜보겠다”며 한 번의 징계심의 후 2년 넘게 추가심의도 열리지 않고 있다. 임 전 부장판사의 임기만료 퇴직을 불과 한 달 가량 남기고서야 국회가 법관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데 대해서도 “탄핵소추가 더 빨랐으면 결과가 달랐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판사는 “선진 사법 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는데 결과적으로 누구도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신민정 기자

 

9명중 3명만 “중대한 헌법위반” ... 판사출신들 제식구 보호

 

헌법재판소가 28일 재판 개입 등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가 확인된 임성근(57·사법연수원 17기)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에 대한 국회의 탄핵심판 청구를 각하했다. 판사 출신 재판관 6명은 임 전 부장판사가 이미 법관직에서 사퇴했기 때문에 파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재판 개입 자체에 대한 위헌 여부 판단도 하지 않았다. 반면 재판관 3명은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로 파면함이 마땅하지만 퇴임으로 부득이 파면 결정을 하지 못할 뿐이라는 의견을 냈다.

 

헌재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임 전 부장판사의 탄핵심판 사건(2021헌나1) 선고 공판에서 재판관 5(각하) 대 3(인용) 의견으로 각하 결정했다.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이미선 재판관은 “이미 임기만료로 퇴직한 임 전 판사에 대한 본안 판단을 하더라도 파면 결정을 선고할 수 없다. 탄핵심판을 할 이익이 인정되지 않아 각하해야 한다”고 밝혔다. 문형배 재판관은 각하 여부를 판단할 필요 없이 퇴임과 동시에 심판절차가 종료됐다는 의견을 냈다. 앞서 국회는 지난 2월4일 임 전 부장판사의 탄핵소추안을 헌정 사상 처음으로 가결(찬성 179표)했다. 같은 달 28일 부산고법 부장판사였던 임 전 부장판사는 10년 임기만료 형식으로 연임하지 않고 퇴임했다. 그는 국회가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를 준비하자 지난해 5월 김명수 대법원장을 찾아가 사표 수리를 요구한 바 있다.

반면 유남석(헌법재판소장)·이석태·김기영 재판관은 “사실상 법관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임 전 부장판사의 재판 개입은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로, 이미 퇴직했더라도 헌법질서 회복과 수호 차원에서 강력한 경고와 법적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재판 독립 침해에 사전 경고하고 미리 예방할 수 있다”며 파면 요건인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탄핵심판에서까지 면죄부를 주게 된다면 재판 독립 침해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을 용인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임 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있던 2014~15년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 추측 칼럼으로 기소된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판결문 작성 등에 개입한 사실 등이 사법부 자체 조사 및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재판 개입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기소됐지만 1·2심에선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개입했더라도 죄를 물을 수 없다’는 논리로 무죄를 선고했다. 현재 대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다. 전광준 기자

 

국회 대리인단 · 시민사회  “헌재, 헌법수호 포기”

법조계 “예상한 결과이나 중대한 위헌적 행위 확인”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심판 각하 결정이 난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국회쪽 대리인단의 박주민(왼쪽)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헌재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법농단’에 연루돼 헌정사상 처음으로 법관 탄핵심판대에 오른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탄핵심판 사건에서 헌법재판소가 각하 결정을 내리자, 탄핵심판을 청구한 국회쪽 대리인은 “헌재가 헌법수호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시민사회단체들도 “헌재가 사법농단에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고 밝혔다. 반면 임성근 전 부장판사 쪽은 “합리적 결론을 내린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탄핵심판을 청구한 국회쪽 대리인인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헌재 선고 뒤 기자들과 만나 “결론적으로 (헌재가) 다수의견으로 본안판단을 회피한 것은 헌법 수호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했다고 생각한다. 다수의견은 법 기술자적인 판단에 그쳐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어 “명백한 재판개입 행위에도 헌법 위반자(임 전 부장판사)의 임기가 재판 도중 만료됐다는 이유로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는 것은 재판개입을 조장한 것이다. (탄핵 결정에 따른 파면으로) 최소한 공직 복귀 금지만큼은 이뤄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헌재는 임 전 부장판사의 탄핵심판 선고 공판에서 “임기만료로 퇴직한 임 전 부장판사에 대해 본안판단에 나아가도 파면 결정을 선고할 수 없으므로 결국 이 사건 탄핵심판청구는 부적법하다”며 각하 결정했다. 임 전 부장판사는 지난 2월28일 퇴직했다.

 

같은 당 박주민 의원도 “헌재가 각하 결정을 내리더라도 (임 전 부장판사)행위에 대한 헌법적 판단을 해주길 바랐는데 아쉽다. 헌재법에 따르면 (탄핵소추 대상자가) 임기만료로 퇴직하거나 탄핵심판 도중 사퇴할 경우 (탄핵심판이 어떻게 되는지) 내용이 없다. 입법 불비(법으로 마련돼 있지 않음)라고 생각해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심판 각하 결정이 난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발언을 하는 이는 이태호 4.16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시민사회단체들도 헌재 판단에 강하게 반발했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은 이날 헌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법관 탄핵을 통해 사법농단이 위헌임을 선언하라는 국민 요구에 응답하지 않은 결정에 참담하다. 사법농단에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고 비판했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는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그는 선고 직후 입장문을 내어 “법리에 따른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주신 헌재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저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와 논쟁을 초래해 많은 분들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더욱 겸허한 마음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선고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임 전 부장판사 대리인인 이동흡 변호사도 선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탄핵심판 절차 법리에 따라 내린 합리적 결론으로,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임 전 부장판사의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를 지적한 유남석·이석태·김기영 재판관의 ‘소수의견’을 두고서는 “소수의견에 대해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각하 의견이 효력 있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날 헌재 결정에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라는 반응이 나왔다. 임 전 부장판사가 이미 지난 2월 법관 임기만료로 퇴임했기 때문에 탄핵심판의 실익이 없다는 전망이 그동안 우세했기 때문이다. 다만 소수의견이지만 헌재가 본안판단을 통해 임 전 부장판사의 위헌적 행위를 구체적으로 짚어준 부분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결과인 것은 맞지만,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등 3명의 재판관이 사법농단에 대해 ‘중대한 위헌적 행위’라고 평가한 대목은 사법부가 진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손현수 기자

 

임성근 탄핵 각하에 향후 ‘사법농단’ 재판 영향은?

법조계 “재판에 영향 없지만, 위헌 지적 인용은 가능할 듯”

 

임성근 전 부장판사

 

헌법재판소가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 탄핵심판 사건을 28일 각하한 가운데, 이 결정이 법원에서 진행 중인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법조계에서는 헌재 결정은 법원 판단에 기속력이 없기 때문에, 이렇다 할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다만 헌재가 소수의견으로 임 전 부장판사의 위헌적 행위를 구체적으로 지적한 만큼, 법원이 판결문에 이를 일부 인용할 가능성은 있다.

 

사법농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법관은 임 전 부장판사를 포함해 모두 14명이다. 이날 헌재 결정의 당사자인 임 전 부장판사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 1,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은 아직 1심 진행 중이며,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항소한 상황이다.

 

다만 함께 기소된 대부분의 법관들이 1, 2심 등에서 줄줄이 무죄 판결을 받고 있다. 심상철·방창현 부장판사는 증거 부족 등 이유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수사기밀을 입수해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혐의를 받는 이태종 수원고법 부장판사와 사법부를 향한 수사 확대를 막으려고 법원행정처 지시를 받고 조직적으로 수사기밀을 파악해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는 모두 1,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은 무죄를 확정받았다.

 

사법농단 연루 법관 14명 가운데 13명의 형사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인 가운데, 법조계에서는 이날 헌재 결정이 이들의 재판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헌재 결정이 법원 판단에 기속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금 재판 중인 ‘사법농단’ 범죄 혐의와 임 전 부장판사의 파면 여부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헌재가 소수의견으로 임 전 부장판사의 행위를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라고 지적한 만큼, 법원이 헌재 결정문 일부를 인용해 판결문에 담을 수는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남석 헌재소장과 이석태·김기영 재판관은 이날 결정문에서 “재판의 독립과 공정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여러 재판에 걸쳐 반복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용인될 수 없는 한계를 넘은 중대한 헌법 위반행위”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송인권)도 임 전 부장판사 형사 재판에서 그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재판관여 행위는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짚은 바 있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헌재 결정이 법원 판결에 영향을 끼칠 수는 없고, 독립된 재판을 위해 영향을 끼쳐서도 안 된다. 다만 판사들은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며 판결문을 쓰기 때문에 헌재 결정 내용 일부를 인용할 수 있다. 실제 일반적인 재판에서도 헌재 결정을 많이 인용한다”고 말했다. 손현수 기자

 

[사설] ‘위헌적 사법농단’ 눈감은 헌재의 각하 결정, 유감스럽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의 ‘사법농단’에 연루돼 국회에서 탄핵 소추된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 심판 청구를 28일 각하했다. 임 전 판사가 이미 임기 만료로 퇴직했기 때문에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탄핵 심판의 실익이 없다는 취지다 . 이 사건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법관 탄핵 소추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으나 , 헌재는 임 전 판사의 재판 개입 행위가 ‘ 법관의 독립성 ’ 을 규정한 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를 따지지 않은 채 각하 처리했다 . 초유의 사법농단 사태 에 대한 ‘헌법적 단죄 ’를 기대해온 국민들 입장에선 몹시 실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임 전 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 일하던 2015년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재판에 개입해 판결 이유를 수정하도록 지시하는 등 여러 건의 재판에 부당하게 관여한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됐다. 그러나 법원은 1·2심 모두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임 전 판사에게 다른 판사의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으니 직권 남용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다분히 형식적인 법 논리를 내세웠다. 사법농단에 연루돼 기소된 법관 대다수가 같은 논리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 식 판결로 사법농단에 대한 단죄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헌재가 탄핵 심판을 통해 ‘재판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확인해주리라는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이다.

 

이런 기대와 달리 헌법재판관 다수가 사법농단의 위헌성 여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채 각하 의견을 낸 것은 헌법 수호 기관으로서의 소임을 외면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다만, 9명의 재판관 중 3명이 임 전 판사의 재판 개입 행위에 대해 ‘중대한 헌법 위반’으로 규정한 것은, 비록 소수 의견이라 하더라도 의미가 있다. ‘탄핵 인용’ 의견을 낸 3명의 재판관은 “(임 전 판사가) 이미 퇴직했더라도 헌법 질서 회복과 수호 차원에서 강력한 경고와 법적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탄핵 심판에서까지 면죄부를 주게 된다면 재판 독립 침해에 대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을 용인하게 된다”고 밝혔다. 사법농단에 대해 미온적인 대응으로 일관해온 법원이 귀 담아 들어야 할 지적이다.

 

법원 수뇌부가 재판을 정치권력과의 거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재판 개입을 일삼은 사법농단은 헌법을 유린하고 법원의 신뢰를 통째로 허문 중대한 범죄다. 법원은 헌재의 소수 의견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법농단 연루자들에 대한 엄정한 사법적 단죄가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

조사 미뤄온 손준성, 더 이상 출석 연기 힘들어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이 2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을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손준성(47·사법연수원 29기)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을 내달 2일 첫 조사한다. ‘손준성 보냄’이라는 텔레그램 메시지가 언론에 공개되고 두 달 만이다.

 

29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공수처와 손 검사 쪽은 전날 오후 조사 일정을 확정했다. 양쪽은 공식적으로 조사 날짜와 공개출석 여부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손 검사가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상황이어서 사건 관계인 비공개 조사 때 쓰이는 공수처 정문 앞 차폐 시설을 통해 출석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손 검사가 이번에도 조사를 미루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 9월2일 ‘손준성 보냄’ 텔레그램 메시지를 통해 범여권 인사 등에 대한 고발장 이미지가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게 전달된 사실이 드러나자, 공수처는 같은 달 10일 손 검사를 피의자로 입건하고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주변 조사를 마친 공수처는 이달 초부터 손 검사에게 출석 조사 날짜를 전달했지만, 손 검사는 변호사 선임 등을 이유로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이후 10월22일 조사가 이뤄지는 듯했으나 김웅 의원과 이 사건 제보자 조성은씨 사이 녹취파일이 공개된 직후 손 검사가 ‘11월2일 또는 4일 이후 출석이 가능하다’며 또다시 조사를 미루기도 했다. 이에 공수처는 손 검사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앞으로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손 검사 진술 등을 종합해 이를 기각했다. 이번에도 조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구속영장 재청구 빌미를 줄 수 있다.

 

그동안 “어떤 경위로 이런 의혹이 발생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며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을 밝혀 왔던 손 검사는 구속 기로에 섰던 지난 26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선 다소 다른 태도를 취했다고 한다. 고발장을 누군가 보내와 이를 반송했고, 이 반송 메시지가 어떤 경로를 거쳐 김웅 의원에게 전달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텔레그램에는 답장, 복사, 전달, 삭제 등의 기능은 있지만 반송 기능은 없다. 앞서 공수처 수사 과정에서 해당 텔레그램 계정이 손 검사 본인의 것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한편 공수처는 지난해 4월3일 ‘손준성 보냄’ 고발장 메시지가 김웅 의원에게 전달되던 날, 손 검사 지휘를 받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 검사가 고발장 내용에 담긴 검-언유착 제보자 관련 판결문을 검색하는 등 의심스러운 행적을 확인했다. 공수처는 이 판결문이 ‘손준성 보냄’ 메시지를 통해 김웅 의원에게 전달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수처는 손 검사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며 김 의원을 공범으로 적시했다고 한다. 손현수 기자

12·12, 5·18 주요 역할 허화평

빈소서  “사과할 입장 아니다”

행안부 “유족 쪽 명단 그대로”

박철언·허삼수·김용갑 등도 포함

 

30일 올림픽공원서 영결식

 

 허화평 씨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 조문을 마친 뒤 나서고 있다.

 

“내가 반란 책임자인가? 내가 사과할 입장은 아니다.”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허문도(사망), 허삼수와 함께 ‘쓰리 허’로 불리며 실세로 꼽혔던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이 29일 노태우씨 빈소에서 12·12 군사반란 및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과 관련해 한 말이다. 반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8년이 확정됐던 허씨는 노씨의 국가장 장례위원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12·12 및 5·18 관련 어떠한 책임 인정이나 사과도 하지 않는 이들이 유족 추천 몫으로 장례위원에 포함되면서 유족들이 노씨를 대신해 전한 ‘사과’의 진의도 의심받고 있다.

 

허씨는 이날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노씨 빈소를 조문한 뒤 ‘노태우씨가 5·18 유족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사과한 것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족에게 사과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나에게 묻지 말라. 대답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12·12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으로, 반란중요임무종사죄가 인정된 허씨는 노태우씨 국가장 장례위원회 장례위원 352명에 포함됐다. 전날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장례위원 명단을 보면, 전두환 정권 실세로 불린 ‘쓰리 허’ 중 2016년 사망한 허문도씨를 제외한 허화평·허삼수(12·12 당시 보안사 인사처장) 두 사람이 나란히 포함됐다. 최세창씨 이름도 보인다. 최씨는 12·12 및 5·18 당시 3공수여단장이었다. 5·18 진압 공로로 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2019년 전두환씨의 12·12 군사반란 40주년 기념 오찬 논란 당시 참석자이기도 하다. 허삼수, 허화평, 최세창 모두 전두환, 노태우와 같은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이들은 2014년 ‘내란·반란죄로 받지 못한 군인연금을 달라’는 행정소송을 내기도 했다.

 

이번 장례위원회에는 입법·사법·행정부 고위공무원, 지방자치단체장, 방송언론계와 유족이 추천한 인사 등이 포함됐다. 허화평·허삼수 등은 유족 추천 몫으로 장례위원이 됐다고 한다. 이밖에도 6공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 전 장관, 전두환 정권에서 국가안전기획부 기조실장을 맡았던 김용갑 전 의원 역시 포함됐다. 동교동계 인사로 꼽히는 정대철·한광옥 전 의원, 상도동계 최형우·김덕룡 전 의원 등도 장례위원으로 참여했다.

 

반란 참여자가 장례위원이 된 것과 관련해 행안부 관계자는 “관례에 따라 유족들이 전달한 명단을 그대로 넣은 것이다. 정부가 위원을 심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명이인 여부에 대해서는 “이 역시 관례에 따라 유족이 경력은 안 주고 이름만 주고 있다”고 했다. 노태우씨 국가장 영결식은 30일 오전 11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평화의 광장에서 진행된다. 영결식 후 유해는 경기 파주시 검단사에 안치된다. 박수지 김양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