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본경선 여론조사 문항을 ‘가상 양자대결을 전제로 한 4지선다형’으로 확정했다. 가상 양자대결을 선호하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4지선다형을 주장했던 홍준표 의원 사이에서 절충한 결과지만, 홍 의원의 요구에 더 가깝게 결론이 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대선경선 선관위 산하 여론조사 소위위원장인 성일종 의원은 26일 전체회의가 끝난 뒤 “가상대결을 전제로 해서 질문하고 본선 경쟁력을 묻는 방식으로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세부 문항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재명과 원희룡, 이재명과 유승민, 이재명과 윤석열, 이재명과 홍준표 후보가 대결한다. 이 가운데 본선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는 누구라고 생각하나”라는 식으로 문항이 설계될 것으로 보인다. 가상 양자 대결 형식을 가미했지만 결과적으로는 4지선다 방식이다.
홍 의원은 이날 안보·국방 대전환 공약발표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결국은 저희들이 한 주장대로 들어준 거 아니냐. 그래서 저는 전혀 이의가 없다”며 환영했다. 홍 의원은 “이재명 후보와의 경쟁력을 본다고 하는데 최근 여론조사는 저만 유일하게 이기니까 다른 사람들은 마이너스다. 그만큼 좋은 게 없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홍 의원은 이날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자신의 ‘경쟁력 우위’를 강조하고 있다. 윈지코리아컨설팅이 <아시아경제> 의뢰로 지난 23~24일 전국 성인 1024명을 대상으로 가상 양자 대결을 실시한 결과(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홍 의원은 45.1%, 이 후보 40.6%로 나타났지만, 윤 전 총장과의 가상 대결에서는 이 후보가 43.7%, 윤 전 총장은 40.6%였다.
가상 양자대결을 주장해온 윤석열 캠프는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당 선관위 결정을 따르겠다고 이미 밝힌 대로 선관위 결정을 존중하고 수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전 총장은 이날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 뒤 기자들과 만나 “후보들은 권한이 없고 당에서 내려진 결정이기 때문에 따라갈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며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캠프 내부에서도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했던 ‘역선택’을 방지하지 못해 불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윤석열 캠프 관계자는 <한겨레>에 “우리 의견은 10∼20% 수준밖에 반영이 안 됐다. 가상대결을 주장했던 건 역선택을 어느 정도 방지하기 위함인데 이를 설문으로 꼬는 건 안 하는 것보단 낫지만 편법”이라고 지적했다.
양자대결 방식을 선호했던 원희룡 전 제주지사 쪽은 “대승적으로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유승민 전 의원 쪽은 ‘양자대결 형식의 문구를 뺀 단순한 4지선다형이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여론조사 문항이 너무 길면 수용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게 불만의 요지다. 그러나 대선 예비후보 3명이 수용했고 “번복은 없다”는 게 국민의힘 선관위의 확고한 입장이어서 확정된 문구로 여론조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국민 여론조사 50%와 책임당원 투표 50%를 합산해 다음달 5일 대선 후보를 확정한다. 책임당원 투표는 다음달 1~4일 모바일과 전화를 통해 이뤄지며, 여론조사는 3~4일 진행된다.
환담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와 환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약 50분간 차담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이 후보가 지난 10일 민주당 경선에서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지 16일만으로, 이번 만남을 계기로 이 후보의 '원팀' 행보에 한층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청와대는 이날 자리에 대해 '후보 선출을 축하하는 자리'라고 규정한 뒤, 대장동 비리 의혹을 비롯한 선거 정국에 관련된 얘기는 일절 거론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재명 대선후보와 차담하는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우선 인사말에서 지난 민주당 경선을 거론하며 "경쟁을 치르고 나면 그 경쟁 때문에 생긴 상처를 서로 아우르고 다시 하나가 되는 게 중요하다"며 "그런 면에서 일요일에 이낙연 전 대표님을 (만난 것이) 아주 좋았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이 후보와도 2017년 당내 경선 겨뤘던 일을 떠올리며 "경쟁을 마친 후 힘을 모아 정권교체를 해내고 이후 함께 국정을 끌어왔다"며 "이제 나는 물러나는 대통령이 되고, 이 후보가 새 후보가 돼 감회가 새롭다. 끝까지 많이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자 이 후보는 "저도 경기도지사로 일한 문재인 정부의 일원"이라며 "앞으로도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고 역사적 정부로 남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또 "겪어보니 제일 중요한 것은 정책"이라며 "대선 과정에서 정책을 많이 개발하고 정책을 위한 선의의 경쟁을 해달라. 이 후보 외에 다른 후보들에게도 똑같은 당부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어제 대통령님의 시정연설을 보니 제가 하고 싶은 얘기가 다 들어있어서 너무 공감이 많이 됐다"며 "가끔 대통령과 제 생각이 너무 일치해 놀랄 때가 있다"고 화답했다.
이어 "문 대통령께서 지금까지 민주당의 핵심 가치라고 하는 민생, 개혁, 평화의 가치를 정말 잘 수행해주신 것 같다"며 "경제발전, 군사강국, 문화강국으로 자리잡은 것은 다 문재인 대통령 노력 덕분"이라고 언급했다.
모두발언 뒤에는 비공개 대화가 이어졌으며, 이 내용은 배석자인 이철희 정무수석이 언론에 브리핑했다.
이 수석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코로나 위기로 디지털 전환이 빨라지고, 기후위기도 가속화하는 역사적 시기"라며 "이 짐은 현 정부가 지는 것보다 다음 정부가 지는 것이 더 클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이 후보는 농담조로 "그 짐을 제가 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고 이 수석은 전했다.
또 이 후보가 "대선을 치르며 안 가본 곳을 빠짐없이 다 가보려 한다"고 하자, 문 대통령은 "방역을 잘해서 이번 대선이 활기차게 진행될 수 있도록, 자유롭게 선거운동이 이뤄지도록 최대한 노력해보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경쟁했던 2017년 대선 경선 당시 얘기도 나왔다.
이 후보가 "따로 뵐 기회가 있으면 하려고 마음에 담아 둔 얘기를 꼭 드리고 싶다"며 "지난 대선 때 제가 조금 모질게 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한다"고 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이 "이제 1위 후보가 되니까 아시겠죠? 그 심정 아시겠죠?"라고 편안한 표정으로 답했다고 이 수석이 설명했다.
경제 문제에 대해서는 이 후보는 "전체 경제가 좋아지지만 양극화가 심화하고 서민경제가 좋아지지 않는다"며 "우리나라는 여전히 확장재정을 하는 것이 좋다"고 견해를 밝혔다.
이에 문 대통령은 "기업들을 많이 만나보라"며 "대기업들은 (사정이) 굉장히 좋아 생존을 넘어 대담한 목표를 제시하지만, 그 밑의 작은 기업들은 힘들어한다"고 설명했다.
이재명 대선후보와 차담하는 문재인 대통령
한편 이 수석은 "(회동에서) 대장동의 '대'자도 나오지 않았다. '검찰'이나 '수사'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며 "부동산에 대해서도 특별한 언급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수석은 "대북정책 얘기도 하지 않았다"며 "무거운 얘기를 피하다 보니 가볍게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소개해드린 농담들도 서로 편하게 주고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수석은 "사전에 제가 이 후보 측과 선거 관련 얘기, 선거운동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얘기는 일절 하지 않는 것으로 얘기를 했다"며 "이 후보는 후보로서 얘기할 수 있겠지만, 대통령을 상대로는 언급 안하면 좋겠다고 양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선출된 지 16일 만에야 문 대통령과의 첫 회동이 성사된 것을 두고 '과거보다 늦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에는, 이 수석은 "자연스럽게 스케줄을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역대 사례를 살펴보면 현직 대통령과 여당 대선후보의 면담은 두 차례 있었다.
2012년에는 박근혜 당시 후보가 선출된 지 13일 만에 이명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회동했고, 2002년에는 노무현 당시 후보는 선출된 지 2일 만에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면담했다. 2007년 대선 때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여당의 탈당 요구로 당적을 정리한 후였던 만큼, 당시 여권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는 만나지 않았다.
회동 형식이 차담이 된 것에는 "식사를 하게 되면 필요 이상으로 무거운 의미부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이 수석이 설명했다.
이재명, 문 대통령 ‘인증’ 받고 정세균 만나며 ‘원팀 구성’ 박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오른쪽)가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한정식집에서 정세균 전 국무총리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6일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집권여당 대선후보로서 ‘정식 인증’을 받았다. 이 후보는 이날 오후 정세균 전 총리도 만나 선거 지원을 요청했고, 27일에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회동을 예고하는 ‘통합 행보’로 본격적인 원팀 선대위 인선을 예고했다.
문 대통령 만난 이재명, 일체감 강조
이 후보는 청와대 상춘재에서 50분 동안 이어진 문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과거 앙금을 털어내고 일체감을 강조했다. 이 후보는 “따로 뵐 기회가 있으면 마음에 담아둔 얘기를 꼭 드리고 싶었다”며 운을 뗀 뒤 “지난 대선 때 제가 모질게 한 부분이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사과한다”고 했다. 2017년 대선 경선에서 ‘모질게 경쟁’했던 과거를 문 대통령에게 직접 사과한 것이다. 이에 문 대통령은 “이제 1위 후보가 되니까 그 심정 아시겠죠”라며 웃으며 받았다고 한다. 이날 비공개 회동의 주요 화제는 대선 정책경쟁과 기후위기와 경제 문제였다고 하지만, 배석한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이 전한 대화에서도 문 대통령과의 동질감을 강조하는 이 후보의 발언이 두드러졌다. 이 후보는 전날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거론하며 “대통령과 제 생각이 너무 일치해서 놀랄 때가 있다. (시정연설) 내용도 꼼꼼히 살펴봤는데 내 생각과 너무 똑같았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을 가장 존경하는데 문 대통령도 루즈벨트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알고 있다. 거기에 공통분모가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계승자임을 강조함으로써 40%에 가까운 문 대통령 지지율을 흡수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일부 정책에 관한 해법에는 시각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이 후보는 좀 더 과감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조정과 양극화 극복을 위한 확장적 재정을 강조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어떤 목표든 현실성이 있어야 한다”며 “기업들도 많이 만나보라”고 말했다.
오늘 정세균, 내일 추미애…원팀 선대위 구상
지난 24일 이 전 대표를 만나 ‘경선 후유증’을 정리한 이 후보는 이날 오후에는 또 다른 경쟁자였던 정 전 총리를 서울 여의도 음식점에서 만나 만찬을 함께 했다. 정 전 총리는 “이 후보가 승리해 문재인 정부가 잘 계승되길 바라는 당원 동지와 국민이 많다”며 덕담을 건넨 뒤 “꼭 원팀을 만들어서 필승하도록 노력하자”고 격려했다. 이 후보는 “총리님께서 함께 해주시고 큰 역할 해주시면 아주 잘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가 우리 총리님 계보”라고 화답했다. 이 후보는 정 전 총리가 대표 시절이던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당 상근 부대변인을 지낸 인연이 있다. 2010년 ‘이재명 성남시장 후보’를 공천한 사람도 정 전 총리였다. 지난 11일엔 “원칙을 지키는 일이 승리의 시작”이라며 이 전 대표의 경선 불복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이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정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이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선대위 상임고문직을 수락했다. 이 후보는 선대위에 후보 직속 ‘미래경제위원회’를 둬서 정 전 총리 쪽 의원과 전문가들을 적극 포용할 계획이다.
이 후보 쪽은 이낙연·정세균 캠프 인사들을 전면에 배치해 통합·원팀 선대위를 꾸릴 계획이다. 이 후보 쪽 핵심 관계자는 “양 캠프의 3선 이상 의원들은 한명도 예외 없이 본부장급 이상을 맡을 것”이라고 전했다. 선대위의 주요 보직인 총괄선대본부장과 비서실장, 수석대변인을 비롯해 5대 본부장(종합상황·전략·조직·정책·홍보)을 누가 맡게 될지도 관심사다. 이 후보 쪽은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를 돕던 의원 그룹에 ‘원하는 자리를 먼저 고르라’고 제안했고, 답을 기다리고 있다. 후보 비서실장은 이낙연 캠프의 총괄본부장이었던 박광온 의원에게 제안했으나 박 의원이 고사하면서 이재명 캠프 비서실장이었던 박홍근 의원이 유임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서영지 이완 기자
고발 사주 의혹 핵심 인물인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 핵심 인물인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이세창 영장전담부장판사는 26일 밤 10시40분께 손 검사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판사는 “피의자에 대한 출석요구 상황 등 이 사건 수사진행경과 및 피의자에게 정당한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 심문과정에서 향후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피의자 진술 등을 종합하면,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하여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된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지난 23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공직선거법 위반, 선거 방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손 검사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바 있다.
손 검사는 지난해 4·15 총선을 앞두고 검사와 수사관에게 범여권 인사 등에 대한 고발장 작성을 지시하고,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서울 송파갑 후보였던 김웅 의원에게 이를 전달한 혐의를 받는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공수처는 지난 14∼15일 손 검사에게 출석을 요청했으나, 손 검사가 변호인 선임 등을 이유로 출석을 미루자 “수사를 회피하려는 목적”이라며 지난 23일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공수처는 지난 20일엔 손 전 검사의 체포영장을 청구했는데, 법원은 “출석하지 않으리라 단정할 수 없다”며 이를 기각했다.
공수처는 이날 손 검사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입장문을 내어 “아쉽지만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추후 손 검사에 대한 조사와 증거 보강 등을 거쳐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신민정 전광준 기자
‘조사 불응’ 손준성 구속영장도 기각…공수처 수사 빨간불
법원 “구속 필요성·상당성 부족”
체포영장 기각 뒤에도 조사 안 받아
‘방어권 보장’ 손준성 요구 받아들여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이 2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 핵심 인물인 손준성(47·사법연수원 29기)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현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의 사전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범여권 인사 등을 대상으로 한 고발장 작성·전달자로 손 검사를 지목해 온 만큼, 구속수사를 통해 사건 실체를 파악하려던 공수처 계획에 빨간불이 켜졌다. 공수처 수사력에 대한 의문과 함께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국민의힘의 역공도 거세질 전망이다.
이세창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26일 밤 10시40분께 손 검사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판사는 “손 검사에 대한 출석요구 상황 등 이 사건 수사진행경과 및 손 검사에게 정당한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 심문과정에서 향후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손 검사 진술 등을 종합하면,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하여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공수처는 손 검사가 줄곧 조사에 응하지 않아 구속수사가 필요하다고 요구했지만, 법원은 피의자 방어권을 보장해달라는 손 검사 쪽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조사 않고 구속영장 청구한 공수처의 ‘자충수’?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2시간30분 동안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뒤 서울구치소에서 대기 중이던 손 검사는 바로 풀려났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 23일 손 검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공직선거법 위반, 선거 방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손 검사 구속 여부가 고발 사주 의혹 수사의 갈림길이라는 평가가 있었던 만큼 여운국 공수처 차장 등이 직접 나와 1시간가량 범죄사실 프레젠테이션을 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공수처는 앞서 지난 20일 손 검사 체포영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청구했으나 기각당한 바 있다. 공수처는 손 검사가 출석을 약속한 10월22일에도 출석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원은 ‘손 검사가 출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체포영장을 기각했다고 한다. 체포영장 기각 뒤 공수처 예상처럼 손 검사가 또다시 조사에 불응했지만, 법원으로서는 체포영장을 기각한 피의자의 구속영장을 며칠 뒤 발부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수처가 조사도 하지 않고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피의자 방어권을 침해한다는 손 검사 쪽 주장도 방어권 보장을 중시하는 법원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손 검사가 조사에 계속 불응하는 상황이어서 판사 앞에서 손 검사 소명을 들어보겠다는 취지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지만, 법원은 손 검사의 불응 태도가 구속수사할 만큼은 아니라고 봤을 수 있다.
‘손준성 보냄’ 등 증거, 그리고 현직 검사
반면 공수처가 이미 관련 증거 등을 어느 정도 확보한 만큼 불구속수사를 해도 증거인멸 가능성는 낮다고 법원이 판단했을 수도 있다. 공수처는 ‘손준성 보냄’이라는 텔레그램 메시지, “저희가 고발장 초안을 만들겠다”는 김웅 국민의힘 의원의 생생한 육성이 담긴 17분 분량 녹취파일 등 구체적 물증, 손 검사 지시를 받아 고발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는 수사관과 파견검사 진술 등을 확보했다. 손 검사가 추가로 인멸할 증거가 없고 현직 검사로서 도주할 우려도 없다고 법원이 판단했다는 것이다.
다만 손 검사 구속영장 기각에 따른 수사 차질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야권 유력 대선 후보로 꼽힌다는 점에서 그가 속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최종 확정되는 11월5일 이후부터는 공수처 수사가 자칫 야권 대권 주자에 대한 탄압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손 검사가 자신의 조사 일정을 11월5일 전후로 공수처에 요청했었던 것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검찰 안팎에서 나온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공수처가 손 검사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조사 일정을 계속 미루면서 수사에 난항을 겪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수사 역시 순탄하게 흘러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윤 전 검찰총장이 고발 사주 의혹에 연루됐기 때문에 대선 일정이 다가올수록 공수처 수사는 정치적으로 읽힐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현수 기자
손준성, 김웅 “저희” 녹취 공개되자…갑자기 ‘11월4일 이후 조사받겠다’
출석조사 일정 미루다 10월22일 확정
10월19일 김웅-조성은 녹취파일 공개
조사 하루 전 “11월4일 이후” 요구
11월5일 국민의힘 대선경선 일정 노렸나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 연합뉴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고발 사주 의혹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배경엔 단순히 출석 조사 비협조 때문만이 아닌 범죄 혐의를 상당 부분 입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검찰 안팎에서 나온다. 손준성 검사는 공수처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일정 등을 고려해 신속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조사 협조 요청 문자메시지를 언론에 공개하며 “정치적 중립의무를 저버리고 야당 경선에 개입하는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별다른 이유 없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 직전이나 이후에 조사받겠다고 요구하는 등 오히려 이번 수사를 정치적 논란 한복판으로 끌고가고 있다.
25일 공수처가 손 검사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힌 주요 이유는 일단 ‘조사 불응’이었다. 공수처는 지난달 10일 손준성 검사를 입건한 뒤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공수처와 손 검사 쪽 설명을 종합하면, 증거물 분석과 관련자 조사 등을 마친 공수처는 지난 4일 처음으로 손 검사에게 ‘10월14일 또는 15일 출석 조사’ 일정을 전달했다고 한다. 이후 ‘변호인 선임이 늦어지고 있다’는 이유를 대는 손 검사와 지루한 조사 일정 밀고당기기가 계속됐다. 그 과정에서 손 검사는 ‘10월22일 출석해 조사받겠다’는 뜻을 공수처에 전달했다.
수사팀은 그때까지 손 검사 태도에 비춰볼 때 10월22일 조사도 불발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 따라 이틀 전인 지난 20일 서울중앙지법에 체포영장을 청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법원은 “손 검사가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이를 기각했다고 한다. 공수처 예상은 맞았다. 손 검사는 조사 하루 전인 지난 21일 갑자기 ‘일정상 조사받기 어렵다. 11월2일 또는 4일 이후 출석이 가능하다’고 공수처에 알려왔다고 한다. 애초 출석하기로 했던 날짜에서 무려 2주 뒤쯤으로 조사를 미뤄달라는 것이었다. 11월5일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선출되는 날이다. 손 검사와 함께 입건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야권 지지자들을 향해 검찰 고발 사주 의혹은 ‘여권의 정치공작’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25일 사전구속영장 청구 사실이 알려지자, 손 검사는 공수처 수사팀이 보낸 문자메시지를 공개하며 “수사기관이 대선 경선 일정을 이유로 출석을 종용하는 것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문자메시지를 보면 공수처는 손 검사에게 “김웅 의원과 제보자 사이 녹취록이 공개됐다. 그에 따른 파장 및 국민적 의혹 확산, 대선 후보 경선일정 등을 고려해 신속한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해 조속한 출석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며 협조를 구했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손 검사가 10월22일 출석하기로 했다가 갑자기 이를 미룬 뒤 “정치적 의도”를 주장하고 나선 배경에 자신의 혐의를 더 이상 부인하기 어려워진 사정변경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출석 조사 사흘 전인 지난 19일 공개된 김웅 국민의힘 의원과 이 사건 제보자 조성은씨의 전화통화 녹음파일의 파장이 워낙 크다는 것이다. 김 의원이 조씨에게 “고발장 초안을 저희가 만들어 보내겠다”고 말한 뒤 ‘손준성 보냄’이라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통해 고발장을 전달한 점에 비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해온 손 검사가 더 이상 혐의를 부인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공수처가 손 검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현재 출석일자를 늦추거나 불응하는 것은 실질적 방어권 보장 때문이 아닌 혐의가 중대하고 상식적으로 납득할 만한 해명 사유가 없어 수사를 회피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계속 불응할 경우 강제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법원이 26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위해 손 검사 구인을 위한 영장을 공수처에 내준 것도 일단 거듭된 조사 불응에 더해 혐의를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형사사건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손 검사는 공무원 신분임에도 공수처 요구에 여러 차례 불응해 그냥 두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 검사가 영장심사에 나오지 않을 경우 판사는 당사자 구인을 공수처에 요구한 뒤 추후에 다시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구인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할 때는 심문 없이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다. 강재구 기자
산업통상자원부와 관세청은 26일 오후 1시53분 현재 우리나라 올해 무역액이 1조달러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이 시각 수출액은 5122억달러, 수입액은 4878억달러이다.
우리나라 무역액은 2011~14년, 2017~19년 모두 7회 연간 1조달러를 넘어섰다가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세계 무역 침체로 1조달러 아래(9801억달러)로 떨어진 바 있다.
1조달러는 자동차 5천만대에 해당하는 금액이어서, 자동차만으로 무역이 이뤄졌다면 국내에 등록된 모든 자동차(2470만 대)를 수출하고 같은 양을 수입한 것과 같은 규모라고 산업부는 설명했다.
올해 무역 1조달러 돌파는 무역통계 집계 이후 최단 기간에 이뤄졌다. 2018년 달성한 기존 최단 기간 기록(11월16일, 320일)보다 21일 앞당겨 299일 만에 쓴 기록이다.
산업부는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올해 연간 무역규모는 코로나19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역대 연간 무역규모 순위는 2018년 1조1401억달러, 2014년 1조982억달러, 2011년 1조796억달러 순이다.
무역 호조는 수출 증가세에서 비롯되고 있다. 올해 수출액은 지난 20일 5천억달러를 돌파했다. 올해 연간으로는 6천억달러를 웃돌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산업부는 내다보고 있다. 역대 수출액 순위는 2018년 6049억달러, 2017년 5737억달러, 2014년 5727억달러이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사상 최단기 무역 1조달러 달성은 수출입 물류 애로, 변이 바이러스 지속, 공급망 차질 등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모든 국민이 함께 이루어낸 값진 성과”라며 “연간 수출액도 사상 최고치를 달성하도록 수출입 물류 등 현장 애로 해소, 중소기업 수출 역량 강화, 무역 기반 확충 노력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임재현 관세청장은 “올해 우리 무역은 코로나19 이후 기저효과를 넘어 실질적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며 “반도체 호황으로 역대 최대 무역액을 기록했던 2018년과 달리 승용차·무선통신기기·철강제품 등 다양한 품목이 고른 수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영배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