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만원씨가 5·18 당시 사진에 찍힌 광주시민을 북한 특수군으로 지목한 사진 자료. 5·18기념재단 제공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5·18조사위)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광주침투설’을 허위로 판단했다. ‘5·18 역사왜곡 재판’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5·18기념재단은 21일 “5·18조사위가 지난달 31일 펴낸 ‘2020년 하반기 조사활동보고서’를 지만원씨를 상대로 한 명예훼손 재판에 증거로 제출했다”고 말했다. 5·18조사위는 이 보고서에서 일부 탈북자들이 제기한 5·18 당시 북한 특수군의 광주 침투설에 대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탈북자 이주성씨는 2017년 펴낸 체험담 <보랏빛 호수>에서 북한 특수군 50명이 배를 타고 1980년 5월22일 새벽 2시께 전남 영광 해안에 도착했다고 썼다. 이 책에는 북한군이 5시간 동안 도보로 영광에서 광주 무등산에 있는 사찰 증심사로 이동해 식사와 휴식을 했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5·18조사위는 영광과 증심사의 직선거리가 60㎞이기 때문에 걸어서 5시간 안에 이동하기에는 불가능하며, 건물들이 밀집한 증심사 안에서 들키지 않고 50명이 머무르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했다. 5·18조사위는 일부 탈북자들이 광주에 투입됐던 북한군 묘역이라고 주장한 북한 청진 열사릉은 한국전쟁 전사자의 묘지라고 설명했다. 북한에서 철도운송 무사고운동 명칭으로 사용한 ‘5·18 무사고 정시 견인초과 운동’의 5·18은 광주와 무관한 1979년 개최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18차 전원회의를 의미한다고 확인했다.
5·18재단은 이번 보고서가 향후 5·18 왜곡 재판에서 자신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차종수 5·18기념재단 고백과 증언센터 팀장은 “이번 보고서는 향후 지만원의 5·18 왜곡 논리를 깨뜨리는 데 한몫할 것”이라고 말했다.
극우인사인 지씨는 2015년 자신이 운영하는 누리집에서 5·18 당시 사진에 찍힌 광주시민을 북한 특수군이라고 지목해 피해자 15명으로부터 2015~2018년 명예훼손 혐의로 네차례 고소당했다. 지씨는 전남도청에서 시민군 상황실장을 맡았던 박남선씨를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 황장엽이라며 71번 광수(광주에 투입된 북한 특수군이라는 의미)로 지목했다. 또 아들의 관 앞에서 울고 있는 김진순씨는 162번 광수 성혜량(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형), 유가족을 위로하는 고 백용수 신부는 176번 광수 김진범(북한 조선대외문화연락위원회 부위원장)이라고 했다.
지씨는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지만 고령이라는 이유로 법정구속은 되지 않았다. 지씨는 항소 뒤 지난해 5월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집회를 열어 “5·18은 북한이 일으킨 폭동”이라며 5·18 왜곡을 이어가고 있다. 지씨의 항소심 다음 재판은 다음달 2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지씨에게 388번 광수 문응조(북한 식량공급기관인 수매양정성 장관)로 지목당한 박철씨는 “5·18 때 어린 나이였지만 나름 민주화에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서 우리를 북한군으로 모는 일은 없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보안법 있는 한 ‘남북 합의’ 무용지물, 분단장벽 두고 떠난 마음 오죽하실까 신냉전 기류 ‘쿼드동맹’ 끌려들 우려 국익 지킬 ‘민족 자존감’ 본보기 삼아야
2019년 2월 ‘국정원 조사 동의’ 설득을 위해 네번째 방문했던 일본 요코하마 정경모 선생 자택에서. 왼쪽부터 이명준 전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간사, 정 선생과 부인 지요코 여사, 이부영 이사장. 자유언론실천재단 제공
지난 2월 16일 일본 요코하마의 자택에서 별세하신 정경모 선생님 이름 앞에는 일제 식민지시대의 독립지사를 떠올리는 ‘망명객’이라는 호칭이 따라다녔습니다. 반세기를 넘도록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채 이국땅에서 사셔야 했으니 기막힌 일이었습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대에는 일본에서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운동을 벌인 이유로 귀국하지 못하셨다고 해도, 민주화로 들어선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나아가 촛불혁명으로 이룬 문재인 정부에서도 국가보안법의 족쇄를 풀어주지 못해 끝내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민주정부라해도, 정보기관이나 공안 검찰이 보안법으로 ‘빨갱이 딱지’를 붙여 잡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나라입니다. 보안법 앞에서는 대통령도 별 볼 일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그토록 온몸으로 넘어서고, 깨뜨리고자 했던 분단 장벽이 켜켜이 쌓인 조국을 이렇게 남겨 두고 떠나시는 정 선생님의 마음이 오죽하셨겠습니까.
지난 수년동안 문익환 목사님 자제들과 몇몇 후학들이 정 선생님 귀국을 위해 정부 당국과 타협안을 마련해 보려고 애썼지만, “내가 뭘 잘못했다는 말이냐. 갈라진 민족, 나라를 할 걸음이라도 가까이 만들려고 노력한 게 뭐가 죄가 된단 말이냐. 나를 조사하겠다고? 필요 없다. 그럴 거라면 안 간다. 전향? 자술서? 나에게 모욕을 주자는 것이냐? 안 가고 여기서 죽고 묻히겠다.” 선생님은 단호하셨습니다. 결국 선생님은 떠나셨습니다. 못난 정부와 후학들에게 ‘마지막 망명객’의 절절한 묵언을 남기셨습니다. 그동안 해마다 한번씩은 자택을 찾아뵙고 술 한잔 올리던 일도 이젠 영원한 추억이 됐습니다.
정 선생님은 유원호 선생님과 함께 문익환 목사님을 모시고 1989년 3월 25일 평양으로 떠나셨습니다.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쪽 재야민주화운동의 통일방안을 전하고 논의하고 싶다는 문 목사님의 간절한 소망을 실현시키자는 뜻이었지요. 그해 연초에 문 목사님을 만나 먼저 대강의 계획을 전해 들었던 저는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에 대한 탄압에 대응할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남북 정부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문 목사님이 전민련 상임고문 자격으로 남쪽 민간인을 대표한 것이니 한국전쟁 이후 처음 이루어지는 역사적 북행이었습니다. 노태우 정권도 국가연합을 인정하는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하는 등 남북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에, 한편으로 유연한 반응을 기대했지만 역시 그들의 본질은 옛날 그대로였습니다.
그래도 정 선생님 일행이 김 주석에 이어 허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합의하신 ‘4·2 공동성명’은 “1.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에 기초해 통일문제를 해결 2. 한반도 분열의 지속 반대 3. 정치·군사 회담 추진과 이산가족문제 등 다방면의 교류와 접촉 실현 4. 공존 원칙에 입각한 연방제 방식의 통일 지지에 합의한다”는 큰 성과를 냈습니다. 문 목사님과 유 선생님은 귀국하시자마자 구속됐고 전민련에서는 저를 비롯한 여러 인사들이 옥고를 치러야했습니다. 무엇보다 정 선생님은 그 뒤 남북회담이 셀 수 없이 열렸지만 끝내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남북관계의 진전과 민간 교류의 확대는 국가보안법이 온존하는한 불가능해 보입니다. 어느 정부가 들어선다해도 우리 안에 뿌리 깊은 극우세력과 외세의 충동질이 있으면, 남북 합의를 뒤집어버리는 만행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김구·여운형·장준하 선생이 하늘에서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파하시면서 나누는 가상의 대담을 엮은 정 선생님의 책 <찢겨진 산하>를 읽고 우리는 큰 감명을 받았었습니다. 우리 근현대사를 제대로 배울 수 없었던 젊은이들에게 해방 전후와 군사독재 치하에서 진정한 지도자의 초상을 바로 세우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문 목사님과 정 선생님 자신이 그 모범을 또 세워주셨습니다.
정 선생님께서 한국전쟁 때 ‘판문점 정전회담’의 미군 쪽 통역관으로 문익환·박형규 목사님과 함께 참관했던 경험이 평생토록 분단극복·민주화·남북화해-평화통일 운동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은 후학들에게 큰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또한 일본에서 사는 긴 세월 동안 몽양 여운형 선생 추모사업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민족적 양심을 가진 이는 어디에 서 있든지 쉬는 법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지난 2월16일 별세한 고 정경모 선생의 빈소. 일본의 장례 풍습에 따라 화장을 한 뒤 평생 거주했던 요코하마 히요시의 자택에 모셨다. 유족 제공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기류가 거세지는 지금, 미국의 군사주의와 북한의 핵 보유 사태는 한반도에 다시 핵전쟁 위기를 몰고 올 기세입니다. 미국이 일본·호주와 더불어 주도하고 있는 ‘인도-태평양 4자 동맹’(쿼드)의 주 무대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입니다. 한국이 한미동맹이라는 ‘인계철선’ 때문에 이른바 쿼드동맹에 끌려 들어가지 않을 지혜가 필요합니다. 한미동맹도 줄여가야 하는 처지에, 자유무역과 상호의존이 주류를 이루는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이념 대결과 적대적 배제를 앞세우는 강대국 지배 논리에 다시 포로가 된다면 지난 세기처럼 그들의 제물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한국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와는 달리, 그리고 해방 전후와 한국전쟁 이후와는 달리, 민주화와 산업화 그리고 문화예술과 스포츠의 위상으로 국제적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전인류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대재난에도 한국은 케이(K)방역을 통해 모범적으로 대응함으로써 국제적 본보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미·일·중 등 강대국들에 대해서도 중견국으로서 민족적 자존감을 가지고 국가 이익에 근거해서 발언하고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입니다.
정 선생님께서 어떻게든 고국에 돌아와 ‘오래된·새로운’ 지혜를 들려주시기를 기다리고 있던 와중에 홀연 떠나시니 후학들은 어쩔 줄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구·여운형·장준하·문익환·유원호 선생님과 하늘에서 함께 모여 ‘한반도 통일’을 환영하는 감격의 잔치를 벌이시는 날이 어서빨리 오도록 남은 후학들이 노력하겠습니다.
정경모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
“신념 지키며 ‘조국과 민족’ 뜨겁게 사랑하며 멋지게 사셨습니다”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 선생님을 추모하며]
1989년 4월9일 문익환 목사는 방북 일정을 마치고 도쿄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가와사키에 있는 재일동포 이인하 목사의 사쿠라모토 교회에서 예배를 올렸다. 왼쪽부터 유원호씨, 정경모 선생과 맏아들 강헌씨, 문 목사와 정 선생의 손자, 정 선생의 맏며느리와 손녀. 유족 제공
선친 문익환 목사와 ‘운명적인 역사의 동지’
“통역 · 주례 · 방북… 하나님 예비한 섭리”
문 목사·유원호 선생과 남북 활보 하시길
저의 선친 문익환 목사님과 고 정경모 선생님은, 널리 알려진 대로 1989년 이른바 ‘방북 사건’의 주역이었습니다. 더불어 ‘운명적인 역사의 동지’였습니다.
두 분이 처음 만난 것은 1950년 한국전쟁 와중이었습니다. 미국 유학을 하고 있던 두 사람은 조국의 전쟁 소식에 유엔군에 지원하여 일본 도쿄에 있던 맥아더 사령부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습니다. 판문점을 오가며 정전회담 통역을 하고, 문서들을 번역했으며 미군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쳤습니다. 해방 직전 게이오 의대 유학 시절 인연을 맺은 하숙집의 딸이 5년이 넘도록, 기약없이 자신을 기다려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감동했지만, 일본인이란 이유로 결혼을 주저하는 정 선생님에게 문 목사는 용기를 주고 직접 결혼식 주례를 해주며 새 가정을 축복해주셨다지요. 정 선생님이 한국에 머물던 1960년대 문 목사님이 그 동생분의 결혼식도 주례를 섰으니 ‘각별한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70년 정 선생님이 ‘정치적 망명’을 한 이후, 문 목사님은 한국에서 신학자이자 재야의 민주인사로 살아갈 동안 정 선생님은 일본에서 문필가로 자유분방하고 날카로운 필체로 한국의 문제를 파고들었으며 <씨알의 힘> 간행물을 출간했습니다.
긴 세월 각자의 삶을 살았음에도, 두 분이 서로를 믿고 역사적인 과업을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활동과 글을 통해서 지속적인 소통을 해온 덕분이었습니다. 정 선생님은 문 목사의 ‘옥중서신집’을 번역해 일본에서 출판하고 제자들에게 한글 교재로 소개했습니다. 문 목사는 정 선생님의 <찢겨진 산하>를 읽으며 ‘민족주의자 정경모’의 참모습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 목사님은 1988년부터 ‘방북’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정 선생님으로부터 방북 의사를 타진하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정 선생님은 남과 북 어느 쪽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여운형 선생 추모 모임’을 도쿄에서 해마다 열어왔고, 이에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을 지낸 몽양의 둘째딸 여연구 선생이 ‘감사 편지’를 보내면서 서로 교분을 나누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 선생님은 김일성 주석과 면담을 비롯한 방북 과정의 모든 준비를 진행했고, 이듬해 3월말 평양 도착 성명, ‘4·2 공동선언’의 초안도 작성했습니다.
2014년 11월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문익환 목사 서거 20주기와 4·2남북공동성명 25돌 기념행사’에 참석한 뒤 요코하마 정경모 선생님 자택을 방문했을 때. 왼쪽부터 부인 지요코 여사와 정 선생, 문영금 관장과 동생 문성근 배우. 통일뉴스 제공
훗날 정 선생님은 문 목사님을 두고 ‘한국전쟁 중에 만나 민족의 아픔을 함께하고 가정을 꾸미게 해주었으며, 김 주석을 만나 민족통일을 논의하게 된 것은 모두 하느님이 예비하신 섭리’라고 감회를 나눈곤 했습니다.
정 선생님은 그 흔한 ‘반성문’ 한 장 때문에 그렇게도 그리던 고국 땅을 끝내 밟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구름 위에 계신 여운형·김구·장준하 선생님은 만나셨겠지요? 평양에서 나란히 ‘선구자’를 불렀던 문 목사님과, 재작년 먼저 세상을 뜨신 유원호 선생님과도 만나 옛 생각 추억하며 평양거리, 서울거리를 활보하고 계시겠지요?
정 선생님은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키며 뜨겁게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며 멋있게 살다 가셨습니다. 선생님은 남기신 글들을 통해 저희 안에 살아 계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모님과 자손들께 위로를 드립니다. 하늘에서 편히 쉬십시오.
김명수 대법원장이 19일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탄핵소추와 과거 그의 사표 수리 거부를 둘러싼 ‘거짓 해명’ 논란에 관해 공식 사과했다.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의 사표 반려를 두고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은 정치적 고려가 있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사법부 위기론이 거세지는 현 상황을 돌파하려는 의도로 풀이되지만, 법원 안팎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형식이나 내용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법원 내부게시판에 ‘국민과 법원 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란 제목의 글을 올려 임 부장판사의 탄핵소추 및 자신을 둘러싼 ‘거짓말 해명’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우선 현직 법관이 탄핵소추된 일에 대법원장으로서 안타깝고 무거운 마음을 금할 수 없고 그 결과와 무관하게 국민들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임 부장판사 사표 반려 이유와 관련해 거짓 해명을 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저의 부주의한 답변으로 큰 실망과 걱정을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거듭 사과했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은 ‘법관 탄핵을 추진하던 정치권의 눈치를 본 게 아니냐’는 지적에는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 그는 “법관 사직 의사 수리 여부에 대한 결정은 관련 법규정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한 판단이었을 뿐 정치적 고려는 있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또 “지금까지 기울인 모든 노력의 궁극적 목표는 ‘독립된 법관’에 의한 ‘좋은 재판’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 제가 부적절한 정치적 고려를 하여 사법의 독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김 대법원장은 야권 등의 사퇴 요구와 관련해서는 “초심을 잃지 않고 ‘좋은 재판’을 위한 사법개혁의 완성을 위해 저에게 부여된 헌법적 사명을 다하겠다”고 일축했다.
대법원장의 사과를 두고 판사들 사이의 기류는 대체로 미흡하거나 부족하다는 쪽이 많았다.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사과의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판사들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줬던 ‘거짓말 논란’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고, ‘국민들께 송구하다’는 표현이 담긴 사과문을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린 형식도 문제로 꼽힌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사과문에서) 대법원장의 실책을 ‘사법부를 둘러싼 일’로 표현하거나, 거짓말을 ‘부주의한 답변’ 정도로 적어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앞으로 좋은 재판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도 와닿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고등법원의 또 다른 판사는 “거짓말 사태 이후에도 법원 코드 인사 논란 등 여러 이슈가 추가로 제기됐다. (하지만) 그에 대한 소명 없이 임 부장판사 사건에 대해서만 언급해 안타까웠다. 자세한 설명이나 사과 없이 사퇴를 하지 않겠다고 밝히니, 이쯤에서 사안을 마무리 지으려는 게 아닌가 싶었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장예지 기자
김명수 사과에…법원 내부 비판론·신중론 엇갈려
"변명 일색, 사퇴해야" vs "사퇴 요구는 정치공세"
김명수 대법원장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19일 입장문 형식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법원 내 여론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분위기다.
김 대법원장의 처신에 비판적 입장을 보였던 판사들은 이번 입장문에 달라진 것이 없다며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 반면 사법부 비판이 선을 넘으면서 재판의 독립성 침해라는 본질을 흐리고 있다며 사법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신중론도 만만찮다.
지방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1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사과 글이 변명 일색"이라며 "정치적 중립성을 어긴 행위가 중점인데 그런 뜻이 아니다 정도만 말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공개적으로 흠이 난 이상 자리를 지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김 대법원장이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도 "잘못에 대한 인정과 진솔한 사과, 재발 방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없고 두루뭉술한 내용만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법원 내부 실명 게시판은 조용하다. 상당수 판사는 의견을 묻는 말에 인사이동과 인수인계 등을 이유로 구체적인 언급을 삼갔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김 대법원장을 비판하는 법관 중 상당수는 '사법농단' 연루 법관의 징계를 비판했던 고위 법관들"이라며 "평판사 중에는 사퇴 요구를 정치공세로 보는 여론이 적지 않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김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 공세로 재판 개입이라는 사태의 본질이 희석되는 것 같다"며 "탄핵 심판도 시작됐기 때문에 의견을 밝히지 않으려는 판사들이 대다수"라고 했다.
또 다른 판사는 "실망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큰 것"이라며 침묵 여론 중에는 김 대법원장에 대한 동정론도 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김명수, 항의 방문 야당에 “사퇴 안 한다”
대법원장 출석 공방에 국회 법사위 파행 국민의힘 의원들 대법 찾아가 “사퇴하라”
김명수 대법원장.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17일 김명수 대법원장을 찾아 “사퇴하라”고 압박했다. 김 대법원장은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민의힘 법사위원 6명은 이날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김 대법원장의 출석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퇴장한 뒤 대법원 항의 방문에 나섰다. 법사위 야당 간사인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김 대법원장을 만나 “(대법원장의 거짓말 논란으로) 앞으로 대한민국 국민 누가 법원 판단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사퇴해야 법원이 산다”고 압박했다. 이에 김 대법원장은 “더 이상 말씀드릴 수 없다”고 답했다. 김 의원이 “사퇴 안 한다는 뜻인가”라고 묻자, 김 대법원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사퇴할 뜻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김 대법원장이 법원장 승진을 앞둔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에게 법원행정처 직원을 통해 사퇴를 종용했다’는 언론 보도에 관해 해명을 요구했다. 이에 김 대법원장은 “잘못된 내용”이라고 일축했다. 조수진 의원은 이날 면담 뒤 기자들과 만나 “(김 대법원장이) 단호하게 ‘사퇴 생각이 없다’고 했지만,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이나 국회 출석은 검토해보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앞서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는 김명수 대법원장 출석 여부를 둘러싼 여야의 힘겨루기로 파행을 빚었다. 야당 의원들은 임성근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와 관련한 김 대법원장의 ‘거짓말 해명’ 의혹을 밝히겠다며 출석을 요구했다. 하지만 여당 의원들은 “대법원장의 국회 출석 요구는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대법원장 출석 요구의 건’을 의사일정에 추가할지를 두고 표결을 벌였지만, 여당 쪽 위원들의 반대로 부결됐다.
한편, 이날 오전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김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한 것을 두고 “사표를 수리하지 않는 것이 위법한지는 규정상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 처장은 또 “임 부장판사의 사표가 (수리해서는 안 되는) 제한 사항인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게 내부 검토 결과였다”고 덧붙였다. 장예지 기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언론사 광고단가와 국고보조금 액수에 영향을 미치는 지표가 조작되어왔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했다”며 미디어오늘 보도를 인용한 뒤 “문체부가 현장실사를 통해 ABC협회에서 주요 일간지의 유료부수를 조작하고 부풀린 정황을 적발했다고 한다. 조선일보의 경우 2019년(2020년 발표) 116만부로 집계되었는데, 실제로는 그 절반 수준인 58만 부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고 밝혔다.
수원지법 판사 출신인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ABC협회의 이 지표에 따라 언론사마다 광고단가나 신문우송료 지원금이 산정되는데, 만일 이를 속여서 다른 언론사보다 광고단가를 비싸게 받았거나, 지원금을 더 수령했다면 이는 사기범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의원실 조사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지난 5년간 신문 및 뉴스의 유통과 관련해 매년 3~4억 원, 합계 20여억 원에 이르는 지원금을 수령했는데, 부수를 두 배나 뻥튀기했다면 그동안 조선일보는 각종 광고비와 지원금 산정에 부당한 특혜를 어마어마하게 받았을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이 페이스북 게시글에 첨부한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선일보 신문·뉴스 유통 보조금 내역'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신문수송 및 우송비 지원 명목으로 2016년 4억2200만원, 2017년 4억700만원을 지급받았다. 2018년에는 뉴스유통지원 명목으로 3억6300만원, 2019년에는 3억1300만원, 2020년에는 3억1000만원을 받았다. 모두 세금이다.
김 의원은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함께 취재·제작 및 편집의 자율성 보장을 위해 편집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고 포털의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신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고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과 정청래 민주당 의원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공동발의자로 이름을 올리는 등 언론개혁 이슈에 관심이 높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승원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ABC협회와 부수 조작 의혹 관련한 일체의 자료를 문체부에 요구해놓은 상태다. 의원께서 이 사안을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안은 조선일보만이 아닌 신문업계 전반의 문제여서, 국회에서 이 사안이 진지하게 논의될 경우 향후 조선일보뿐만 아니라 종이신문에 대한 정부의 전반적 광고단가 변화도 예상된다.
김승원 의원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언론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사기범죄로 보이는 이번 ABC협회의 부수 조작 및 조선일보의 사기 범행에 대해 진실을 철저히 밝히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해 11월 문체부에 진정서를 내고 내부의 부수 공사 문제를 폭로한 박용학 전 ABC협회 사무국장은 지난 10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이성준 회장이 신문사의 민원을 받고 담당 공사원을 질책하며 결과를 수정하게 하는 등 협회의 독립성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사무국장은 내부 폭로 이후 대기발령을 받은 뒤 지난달 해고됐다. 미디어오늘.
문체부, 조선일보 유료부수 116만? 부풀리기 정황 잡았다
미디어오늘 문체부 신문지국 현장조사 결과 입수 본사 보고 부수와 실사 부수 따져보니 ‘반 토막’ ‘부수 조작’ ABC협회 회장·공사원 수사 불가피
미디어오늘이 ABC협회의 부수 조작 의혹을 조사 중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신문지국 현장조사 결과를 입수했다. 이에 따르면 ABC협회가 116만 부로 공표한 조선일보 유료부수는 거짓이며, 실제 유료부수는 절반 수준인 58만 부일 가능성이 높다. 문체부 조사 결과에 따라 ABC협회의 존폐를 비롯해 일간신문 유료부수 ‘거품’ 논란도 막을 내릴지 주목된다. 앞서 지난해 11월 “일간신문 공사 부정행위를 조사해야 한다”며 ABC협회의 ‘부수 조작’을 폭로한 내부 진정서가 문체부에 접수되며 조사가 시작됐다. 정부가 ABC협회 신문 부수 문제를 정식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체부는 지난달 조사단을 꾸려 서울, 경기, 강원, 충청, 호남, 영남지역 신문지국을 상대로 현장조사에 나섰다. ABC협회는 신문사 본사로부터 부수 결과를 보고받고, 20여 곳의 표본지국을 직접 조사해 본사가 주장하는 부수와의 성실률(격차)을 따져 부수를 인증하는 국내 유일 공사기구다. 그런데 2020년(2019년도분) 공사결과 조선일보가 95.94%의 유가율을 기록해 논란이 불거졌다. 100부를 발행하면 96부가 돈 내고 보는 유료부수라는 현실 불가능한 지표였다.
문체부 현장조사 결과는 ABC협회의 ‘부수 조작’ 혐의를 증명하고 있다. 조선일보 A지국 보고부수(유료)는 3만3968부였으나 실사부수는 1만5358부, 성실율은 45.2%였다. 조선일보 B지국의 보고부수는 2만169부, 실사부수는 1만85부로 성실율은 50%였다. 조선일보 C지국의 보고부수는 3만5844부, 실사부수는 1만6931부로 성실율은 47.2%였다. 조선일보 D지국은 보고부수 8316부, 실사부수 6007부로 성실율 72.2%를 나타냈고 조선일보 E지국은 보고부수 5292부, 실사부수는 2966부로 성실율 56%를 기록했다. 조선일보 F지국은 보고부수 3564부, 실사부수 2822부로 성실율 79.2%를 기록했고 조선일보 G지국은 보고수부 3491부, 실사부수 2051부로 성실율 58.7%를 나타냈다. 조선일보 H지국은 보고부수 2만3692부, 실사부수 1만1363부로 성실율은 48%였다. 조선일보 I지국은 보고부수 2만3394부, 실사부수 1만958부로 성실율은 46.8%에 그쳤다. 앞서 같은 해 ABC협회 공사에서 표본지국이었던 조선일보 E지국의 성실율은 98.07%, H지국의 성실율은 98.12%였다. 거의 본사 보고대로 부수가 인증되고 있던 셈인데 문체부 조사에서 드러난 성실율은 각각 56%와 48%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번 현장조사에서 모두 9곳의 조선일보 표본지국 보고부수는 15만7730부, 실사부수는 7만8541부로 평균 성실률은 49.8%로 나타났다. ABC협회는 지난해 조선일보 유료부수가 116만2953부라고 발표했는데, 이번 성실율을 감안하면 실제 조선일보 유료부수는 공표된 부수의 절반 수준인 58만1476부로 추정해볼 수 있다. 물론 표본이 많지 않기 때문에 보다 정확한 조사를 위해선 조사 대상 지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문체부 현장조사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기존 ABC협회 공사는 신문사 담당자들이 나와 일종의 가짜 자료를 만들어 공사원에게 보여줬고, 우리는 확장일지·배포일지·수금내역 등 실제 자료를 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사원들이 자료를 많이 요구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조사를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신문사 사정도 비슷했다. 함께 조사한 한겨레의 경우 총 3곳의 지국에서 보고부수 1만6768부, 실사부수 7870부로 평균 성실율이 46.9%에 그쳤다. 동아일보의 경우 2곳의 지국에서 보고부수 1만6615부, 실사부수 6679부로 성실율은 40.2%에 그쳤다. 전반적으로 신문사들의 성실율에 상당한 격차가 있는 것이 드러난 만큼, 문체부가 향후 ABC협회 조사 결과를 어떻게 내놓을지 주목된다. 문체부 미디어정책과 관계자는 “회계조사, 현장조사 등을 진행했지만 조사 결과가 언제쯤 나올지 확답하기 어렵다. 현재는 자료 분석 작업 중이다. 필요하면 추가적으로 더 조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ABC협회 쪽은 조사에 비협조적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지금까지의 ABC협회 조사가 부실 수준을 넘어 ‘조직적 범죄’에 가까워 보이는 만큼 회장과 공사원들을 상대로 한 검찰 수사도 필요해 보인다. 한편 지난해 진정서 작성에 참여했던 박용학 ABC협회 사무국장은 진정서 사건 이후 대기발령을 받은 뒤 지난달 31일 해고됐다. 옵티머스 펀드에 투자한 ABC협회 운영금 6억 원 중 3억 원을 회수하지 못한 것이 해고 사유로 알려졌다. 하지만 ‘괘씸죄’로 해고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출처 : 미디어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