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종료 시점으로부터 4년 뒤인 2016년에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김건희 여사에게 20억원을 송금한 사실을 검찰이 파악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두 사람은 장기간 거액의 돈거래를 지속했던 사업 파트너로서, 이런 관계는 시세조종 공모를 뒷받침하는 정황이 될 수 있지만 검찰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며 무혐의 처분했다.
한겨레가 23일 입수한 검찰의 2021년 9월 수사보고서에는 2016년 12월29일 권 회장이 김 여사에게 20억원을 송금한 내역이 나타난다. 검찰은 이 돈의 일부가 도이치모터스의 법인 자금이라고 판단했고, 다른 계좌주 이아무개씨를 설명하면서 “권오수는 김건희와의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필요한 자금을 이씨로부터 융통하는 관계”라고 했다. 또 “김건희·최은순 등 5명이 권오수와 매우 긴밀한 관계”라며 “권오수가 내부 정보를 김○○(주가조작 계좌주이기도 한 초기 투자자) 등에게 유출하고 주가가 1만∼2만원까지 상승한다고 확언하면서 주식 매수를 유도하고, 이에 따라 이들이 주식 매수에 나선 것으로 보는 게 맞다”고도 적었다. 수사보고서가 작성된 이 시기는 서울중앙지검이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서며 주가조작 수사에 속도를 내던 때였다.
한일 정상회담과 아세안 정상회의 관련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1일(현지시간) 라오스 비엔티안 왓타이 국제공항에서 귀국하기 전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올라 손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연합
실제로 김 여사는 권 회장이 시세조종과 유상증자 등 돈이 필요할 때마다 자금을 댔다. 주가조작 1단계 주포에게 현금 10억원과 도이치모터스 주식 3만여주가 든 증권계좌를 맡기고 주포가 변경된 이후에도 일당들에게 계좌를 계속 맡겼다. 또 김 여사는 2007년 12월 도이치모터스 우회상장을 위한 유상증자에 참여(2억원)한 뒤 2009년 5월 두창섬유(권 전 회장이 운영)가 보유한 도이치모터스 주식 8억원어치도 장외 매수했다. 1·2심 법원은 권 전 회장의 시세조종 동기를 자회사(도이치파이낸셜) 사업 등 경영상 필요를 꼽았는데, 1심 판결문에는 권 전 회장이 김 여사 등의 투자로 도이치파이낸셜을 설립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김 여사는 2013년 7월에는 도이치파이낸셜 주식을 2억원에 인수한 데 이어, 2017년 1월에는 전환사채를 20억원에 인수해 ‘저가 매입’ 논란이 일기도 했다.
도이치모터스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임명되기 직전까지, 김 여사가 운영하는 코바나컨텐츠의 행사에 협찬을 계속했다. 그리고 김 여사는 2022년 5월10일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에 주가조작 사건으로 재판을 받던 권 전 회장 대신 그의 부인과 아들을 초청했다. 만약 김 여사가 권 전 회장에게 사업 자금을 대주는 ‘돈줄’로만 이용되다가 주가조작 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됐다면, 그 이후에도 권 전 회장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건 상식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 최재훈)는 김 여사가 주식 관련 전문성이 부족하고 권 전 회장을 믿고 초기부터 도이치모터스에 지속적으로 투자했던 점을 근거로 주가조작 사실을 몰랐을 거라고 추정하며 면죄부를 줬다. 자본시장법 관련 사건 경험이 많은 김광중 변호사는 “큰 규모의 돈거래를 수시로 한다는 것은 서로의 금전 사정에 대해 깊게 이해하는 관계라는 뜻”이라며 “그런 관계라면 검찰은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알았는지 얼마나 깊게 관여했는지 추궁해야 하는데 (금전 거래 사실을 오히려) 시세조종을 몰랐다는 근거로 삼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정혜민 기자 >
지난 9월9일 안창호 인권위원장 취임식에 모인 전·현직 인권위원들. 왼쪽부터 원민경·이충상 위원, 이상철 전 위원, 안창호 위원장, 남규선·김용원·한석훈 위원. 한겨레
각 국가 인권 기구들의 등급을 심사하는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 간리) 승인소위(SCA)가 내년 특별심사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우리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22일까지 해명서 제출을 요구한 가운데, 인권위와 김용원·이충상 위원이 제출한 해명이 사실상 의견 제시를 거부하거나 사실과 다른 부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흡한 답변이 특별심사와 인권위 등급 보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인권위 내부에서도 나온다.
23일 한겨레가 더불어민주당 서미화·윤종군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간리 승인소위 특별심사 요청에 대한 답변 보고’와 ‘승인소위 특별심사 개시 여부 관련 이충상·김용원 상임위원 당사자 의견’을 보면, 인권위는 간리로부터 해명을 요청받은 주요 쟁점에 대해 그동안 안창호 위원장과 이충상 상임위원이 펼쳐온 논리에 바탕해 반박하거나 아예 의견 개진을 거부했다. 주요 쟁점에 대한 인권위 공식 답변 보고가 9쪽, 이충상 위원의 의견서는 16쪽이다. 김용원 위원은 사실상 답변을 거부하는 1쪽자리 의견서를 냈다.
앞서 1일 인권위 바로잡기 공동행동과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에 속한 204개 인권시민사회단체는 간리에 서한을 보내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위원들이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결정을 내리는 가운데 회의를 개최하지 않고 직원들을 협박하여 결정을 지연시킴으로써 인권 침해 조사 등을 이행하지 못하도록 해왔다”며 특별심사를 요청했고, 간리 승인소위의 실무를 담당하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인권위에 22일까지 해명서 제출을 요구한 바 있다. 각 국가 인권기구의 등급을 매기는 간리 승인소위는 한국 인권위의 해명서를 검토한 뒤 내년 상반기에 특별심사 여부를 결정한다.
특히 김용원 상임위원이 제출한 ‘당사자 의견’을 보면 김 위원은 “현재 한국의 일부 인권단체들은, 김용원 위원이 그들과 정치적 입장이 달라, 그의 직무수행 내용이나 방식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부당하고 과격한 방식으로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고 간리에 서한을 보낸 인권단체들을 탓했다. 아울러 “허위·왜곡의 점을 구체적으로 밝히기 위해서는 쟁점이 다수이고, 사실관계를 일일이 정리해야 해 적어도 한 달 이상의 시일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해명을 거부했다.
김용원 인권위 상임위원. 한겨레
인권위도 ‘공식 답변 보고’에서 안창호 위원장과 관련해 해명을 요청 받은 지적 사항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안창호 위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했던 차별금지법 관련 발언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의 많은 시민들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차별금지법이, 질병과 관련된 성소수자에 대한 객관적 발언을 할 표현의 자유 및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여, 최소 5백만원 손해배상금을 내야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역차별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며 “이에 대해 위원장은 사회적 논의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숙고하고, 민주적으로 논의하여, 헌법 정신에 입각한 공공의와 공동선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답변한 것”이라고 했다.
안 위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의견을 밝히지 않은 윤석열 대통령 풍자만화 ‘윤석열차’에 대해서는 “개별 진정 사건 관련 사안으로, 취임 전 인사청문회 당시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취지에서 답변한 것”이라고 했다.
‘사회적 약자·소수자 보호 노력에 대한 역행’에 대한 항목에선 “안창호 위원장은 ‘다수의 인권을 위해 소수의 인권을 보호할 수 없다’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 위원장은 ‘소수자의 인권도 보호해야 하지만, 다수자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고 했고, 안 위원장이 취임하자마자 첫 전원위원회에서 그동안 공개 심의한 안건을 비공개로 전환한 것에 대해서는 “(회의 공개 여부는)위원회 규정상 회의 참석 위원들의 과반수로 결정되도록 돼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충상 위원도 개인 의견서에서 “반인권적 언행을 한 적 없다”는 의견을 밝혔는데, 한겨레 확인 결과 사실과 다른 내용이 담겨 공방이 예상된다. 가령 “성소수자가 기저귀를 찬다”는 혐오 표현을 한 것에 대해 이 위원은 “본인의 표현이 동성애에 대한 객관적 진실을 언급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남규선 상임위원의 ‘해병대 훈련병의 두발 관련 인권침해’ 발언에 대한 반박 과정에서 나왔다고 주장했는데, 남규선 위원은 그런 의견을 낸 적이 없다고 했다. 또한 ‘반인권적 언행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반인권적 표현을 ‘소수의견이며 다수결의 폭력에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남규선 상임위원 등이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 결정문과 상임위원회 결정문에 소수의견은 가급적 쓰지 말고 쓰더라도 가급적 짧게 쓰라고 한 것”에 반발한 것이라고 했으나, 남 위원은 역시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정식 절차를 거쳐 채용된 정책비서관 3명의 이념 성향을 문제 삼아 배정을 거부한 것에 대해 이충상 위원은 “국회 사무처가 국회의원들의 비서관들을 일괄 채용해서 국민의힘 의원과 민주당 의원에게 배정할 경우에, 최근까지 국민의힘 의원의 비서관을 지낸 사람을 민주당 의원의 비서관으로 배정하면 민주당 의원이 받을 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어 “한국의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정치적 이념이 상당히 다르고 사이가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무리한 주장이 담긴 의견서 제출에 대해 인권위 내부에서도 우려가 이어진다. 한 인권위 관계자는 한겨레에 “인권옹호자 탄압, 인권위 업무 방기, 인권위 독립성 훼손 우려, 사회적 약자 보호 역행 등 간리가 (해명을) 요청한 내용에 대한 답변으로 매우 미흡하고 부적절하다”며 “인권위 업무 후퇴에 대해 원인을 분석하고 인권위 정상화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임기응변식의 답변은 인권위로서의 책임성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 고경태 기자 >
2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 인근 거리에 대남 안에 실려 있던 북한의 삐라(전단지)가 놓여 있다. 김건희 여사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내용 등이 담겨있다. 공동취재사진
북한이 날려보낸 쓰레기 풍선이 2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경내에 떨어졌다.
대통령경호처 관계자는 “이날 새벽 북한의 쓰레기 풍선이 공중에서 터져 용산 청사 일대에 산개된 낙하 쓰레기를 식별했다”고 말했다. 또한 “안전 점검 결과 물체의 위험성과 오염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돼 수거했다”며 “합동참모본부와의 공조하에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와 북한 쓰레기 풍선. [연합]
풍선에 실려 있던 전단에는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사진과 함께 원색적인 비난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김 여사를 ‘사치와 향락의 현대판 마리 앙투아네트’라고 비유하고, 윤 대통령에 대해서도 ‘윤석열의 해외 행각은 국민혈세를 공중살포하는 짓’ ‘대파 값은 몰라도 되지만 핵주먹에 맞아 대파될 줄은 알아야 하리’라고 비난한 등의 내용이 담겼다.
북한 쓰레기 풍선 낙하물이 대통령실 청사 경내에 떨어진 것은 지난 7월24일 이후 3개월 만이다. < 장나래 기자 >
북 쓰레기풍선 낙하물 10여개 식별…대통령 부부 비난 전단 담겨
합참 "확인된 내용물은 대남전단…안전 위해 물질은 없어"
용산 청사 내에도 낙하…경호처 "합참 공조하에 지속 모니터링"
북한이 24일 새벽에 대남 쓰레기 풍선 약 20개를 부양했고 수도권에서 10여개의 낙하물을 확인했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합참은 "확인된 내용물은 대남전단 등이며 분석 결과 안전에 위해가 되는 물질은 없었다"고 말했다.
대남 전단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담겨 있었고, 이 전단은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 일대에서도 발견됐다.
북한이 대통령 부부를 직접 비난하는 내용의 전단이 담긴 쓰레기 풍선을 살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이 살포하는 대남 쓰레기 풍선에는 위치정보시스템(GPS) 장치가 달려 있어 특정 지점에 낙하물을 투하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쓰레기 풍선 부양은 올해 들어 지난 5월 말을 시작으로 이번이 30번째다.
대통령경호처는 이날 언론 공지에서 "새벽 시간대에 북한 쓰레기 풍선이 공중에서 터져 용산 청사 일대에 산개된 낙하 쓰레기를 식별했다"며 "안전 점검 결과 물체의 위험성 및 오염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어 수거하였으며, 합참과의 공조하에 지속 모니터링 중에 있다"고 밝혔다.
용산 대통령실 청사 내에는 지난 7월 24일에도 북한 쓰레기 풍선이 떨어진 바 있다. < 연합 김호준 곽민서 기자 >
'북 파병' 긴급 논의한 NSC회의 불참, 돌연 부산행 세계자원봉사대회 참석 뒤 초량시장서 '민생 행보' 작년 '서울 무인기' 침범 때 입양견 소개 장면 연상돼
군, 드론 전력 확충…'평양 무인기'는 과연 무관한가 정부 침묵 일관 속 유엔사, 왜 엄격한 조사 착수했나
'이상한 여유' 바라보는 대한민국 국민은 '극한 직업'
비정상의 정상화인가, 정상의 비정상화인가.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안전이 걸린 외교안보 사안이 돌출할 때 마다 공개된 대통령실 홍보사진을 보면서 굳어지는 생각이다. 세간에서는 "이러다 전쟁 나는 거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고 있지만, 사진 속 대통령은 지극히 평화롭다 못해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북한이 '평양 무인기' 경고를 내놓은 뒤 22일 국가안보회의(NSC)까지 11일 간의 장면들을 돌려보자.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부산역 인근의 전통시장, 초량시장을 방문해 시민과 상인을 응원하고 격려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2024.10.22. [대통령실] 시민언론 민들레
22일 부산 초량시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상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4.10.22. [대통령실] 시민언론 민들레
사진 뉴스가 보여주는 장면들
평양 무인기 침범을 공개한 북한 외무성 '중대성명'이 나온 건 지난 11일.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위협의 균형'이 유지되던 호수에 돌을 던졌다. 우리 국방부는 1시간 가량 멈칫하더니 "확인해 줄 필요가 없다"라는 입장을 정했다. 14일, 러시아 외교부가 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을 향해 "대북 도발을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수교 34년 동안 일관되게 한반도 남쪽 국가와 정치적·외교적·경제적 관계를 중시했던 러시아가 보인 사상 초유의 파격이었다. 15일 북한이 경의선-동해선 남북 연결 철도-도로의 북측 구간을 각각 60m씩 폭파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사진 뉴스'에 따르면 15일 모처럼 많은 일정을 소화했다. 제44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연세대 논술시험 문제 유출과 관련해 책임자 문책을 지시했다. 제주대 병원을 방문, 의료 대란의 현장을 점검하고, 제주에서 29번째 '민생토론회'를 열었다. 16일 하반기 재·보궐선거 투표를 했다. "바르게 살자"는 다짐도 내보였다. 17일 바르게살기운동 전국회원대회에 참석, "바르게살기운동은 바로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제대로 건설하자는 운동"이라는 어록을 남겼다. 일상의 지속이었다. 안팎에서 제기된 안보 불안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물 위의 오리처럼 물 밑에선 발질을 계속하고 있었음이 다음 날 밝혀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부산항 국제전시컨벤션센터(BPEX)에서 열린 '27회 IAVE 2024 부산세계자원봉사대회' 개회식에 참석해 박수치고 있다. 2024.10.22 연합
18일 오후, '평앙 무인기'와 한반도 안보,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의 대한국 강경 태세를 일거에 뒤덮는 대형 뉴스가 서울에서 터졌다. 북한군 특수부대의 러시아 파병을 확인했다는 국가정보원의 대대적 발표였다. 대통령은 '긴급 안보회의'를 열어 "우리나라와 국제사회에 중대한 안보위협"이라며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하겠다"고 다짐했다. 대한민국이 요동을 쳤지만, 국정원은 언론의 의혹에 침묵했다. 전형적인 신비주의 컨셉트였다. 그 덕에 대통령 탄핵 여론과 부인 김건희씨가 관련된 뉴스가 뒤로 밀렸다.
이달 초부터 북한군 시신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발견됐느니, 1만 1000명이 러시아에서 훈련을 받고 있느니, 하는 뉴스가 우크라이나 발로 나왔지만 세계는 흘려들었다. 전쟁 뒤 우크라 측이 허위, 과장 소식을 전한 게 어디 한 두 번이었나? 11월 미국 대선 전까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지원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의 안간힘으로 간주됐다.
"심각하다, 심각하다, 심각하다"
국정원 발표와 대통령의 긴급 회의 덕에 젤렌스키의 '외로운 목소리'가 힘을 받았을까? 놀랍게도 아니었다. 미국과 나토는 침묵했다. "사실이라면 우려되지만 아직 확인이 안 됐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결국 국내에서만 시끄러웠던 셈이다. 월요인인 21일, 대통령은 제79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을 다녀 온 뒤 드디어 안보 문제를 챙기기 시작했다. 안이 아니라, 밖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과 통화를 한 뒤 방한 데이비드 라미 영국 외교장관을 접견했다. 최근 한반도 안보 상황과 북한군 파병과 러·북 협력 정보를 공유했다, 고 한다. 뤼터 총장에겐 국정원 발표내용을 새삼 건넸다. 정보당국간 협력 사안을 굳이 대통령이 전달해주는 세심한 배려를 보였다. 대통령은 "북한군 파병이 한반도와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면서 심각한 사안임을 되풀이 강조했다.
이날 외교부가 초치한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는 정부의 '북한군 즉각 철수' 요구에 "러시아와 북한의 협력은 대한민국의 안보 이익에 반하지 않으며 국제법의 틀 안에서 실현되고 있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강원도 강릉시 아이스 아레나에서 열린 2024년 바르게살기운동 전국회원대회에서 축사를 위해 단상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2024.10.17 [대통령실 제공]
22일, 마침내 긴급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의가 열렸다. 이번에도 긴급 회의였다. 18일 '긴급 안보회의'에서 달라진 게 없었다. 국내 언론이 나흘째 춤을 춘 뒤에나 연 회의가 왜 '긴급회의'인지 알 길이 없다. 국가안보실 고위 당국자들은 실명·익명을 넘나들며 "러·북 군사협력 진전에 따라 '단계별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엄중한 경고를 던졌다.
어찌된 일인지, 나토와 미국은 그럼에도 '북한군 파병'을 확인하지 않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이 전세계에서 처음으로 '단호한 조치'를 예고한 나라가 됐다.
'평양 무인기' 반응은 사뭇 달랐다. 모처럼 미-러가 어슷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러시아가 엄중한 '대남 경고'를 한 14일 유엔군사령부는 "정전협정에 따라 이 문제를 엄격하게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사 과정에서 우리 국방부의 모호한 입장도 파헤칠 게 분명하다. 정부는 "확인 불가"를 외치지만, 유엔사 모자를 쓴 주한미군은 심각하게 보고 있음을 말한다.
심상찮은 반응의 유엔사
대통령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보가 공개된 건 이즈음이다. '북 파병'이 국내외에 널리 알릴만큼 위중한 사안이라면서 이날 NSC 상임위회의에 불참했다. 부산세계자원봉사대회에 참석한 뒤 초량시장으로 달려가 상인과 악수하는 사진을 남겼다. 엄중한 안보 사안이 진행되는 시점에 대통령이 '기행'을 보인 건 처음이 아니다. 북한 무인기가 백주 대낮에 서울 상공을 침범한 작년 12월 26일 상황을 돌아보자.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2024.10.21 [대통령실 제공]
북한 무인기 5대가 침범, 이중 한대가 서울 도심을 비행했다는 상황 보고 뒤 24시간 동안 군통수권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날 대통령은 수석비서관들에게 입양견(새롬이)을 선보였다. 북한 무인기 1대가 오전 10시 25분 군사분계선 이남으로 넘어왔다는 첫 보고가 전달된 즈음이었다. 대통령 경호를 위해 설정된 비행금지구역(P-73)까지 침범당했다. 그런데 NSC '긴급 회의'를 소집했어야 할 대통령이 국민 눈 앞에서 사라졌다. 김포, 인천 국제공항 민항기 이륙이 중단되고, 수도권 2600만 주민이 불안에 떠는 동안 대통령의 행적은 공개되지 않았다. 무인기를 요격하려고 긴급 출동하던 우리 군의 KA-1 경공격기 1대가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다.
더 황당한 일은 다음 날 벌어졌다. 27일 국무회의에서 드디어 나타난 대통령은 "그동안 대체 뭐한 거냐"면서 진노했다, 고 한다. 전날까지 "안보실장(김성한)을 중심으로 실시간 대응을 했다"던 대통령실도 말을 확 바꿨다. 대통령이 "우리도 몇 배의 드론을 북쪽으로 올려보내라"고 지시, 군이 전날 정찰용 무인기 2대를 올려보냈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3일 한국방송에 나와 이를 새삼 소개하며, 당시 우리가 무인기 보낸 걸 "북한이 몰랐다"는 점을 강조했다.
북한 무인기가 서울 상공을 침범한 26일 오전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수석비서관들과의 티타임 시간에 최근 분양받은 은퇴견 새롬이와 함께 들어서고 있다. 2022.12.26 연합
작년 12월 시작된 무인기 경쟁
작년 상황을 복기한 것은 멀리 보면 '평양 무인기' 사태가 이미 11개월 전 '서울 무인기' 사태에서 비롯됐다는 의혹이 짙다. 정부는 생뚱맞게 "무인기 대책부실은 전 정부 탓"이라고 우기더니 수십, 수백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드론작전사령부를 창설하고 공중 감시, 무인기 요격 자산을 확보했다. 그 끝에 대한민국이 기어코 북한과의 무인기 경쟁에서 승리한 것일까.
'평양 무인기' 사태 뒤 대통령의 행동 궤적은 1년 전의 의아함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다. 대통령은 입양견을 소개하고, 전통시장을 둘러보는 데 국민은 왜 불안할까? 지금처럼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게 '극한 직업'이 된 적이 있었나? 대통령은 한없이 여유로운 데 국민과 언론은 숱한 의문을 품은 채 불안한 안갯 속을 헤매이고 있다. < 민들레 김진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