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이름 적힌 선거운동복 미리 주문, 선거차량들까지 계약했다가..."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이 '한덕수로 후보 교체를 위해 100억 원 이상을 지출했다'는 의혹을 언급하며 당무 감사 필요성을 주장하자, '심야 후보 교체 파동' 당시 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권영세 의원이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친한계인 김 전 최고위원은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의도에선 요즘 국민의힘의 ‘날린 돈’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며 "당 지도부가 한덕수 이름이 적힌 선거운동복을 미리 주문하고, 선거차량들까지 계약했다가 한이 후보가 되지 못하는 바람에 160억을 날렸다고 구체적인 액수까지 나온다. 옷들은 버리지도 못하고 창고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는 말과 함께"라고 말했다.

 

권영세 의원

 

김 전 최고위원은 "믿기지는 않는다. 이미 김문수가 후보로 선출돼 있는데 어느 간 큰 지도부가 당원도 아닌 한덕수를 위해 당비와 국고지원금을 100억이 넘게 지출하라고 명령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하면서도 "하지만 의문이 꼬리를 무는 건 사실이다. 혹시 선거운동 하루 전날까지 선거운동복이 일선 당협에 전달되지 않았던 것도 그래서인가? 김문수가 스튜디오에서 홍보 촬영을 할 때 한덕수도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촬영했다는 보도도 그래서 나온 건가? 이미 돈을 집행해버렸기에 무조건 한덕수를 후보로 만들려고 당내 쿠데타까지 감행한 것인가"라고 의문을 던졌다.

 

김 전 최고위원은 권영세 의원을 향해 "후보도 아닌 한덕수를 위해 당에서 100억원이 훨씬 넘는 돈을 지출했다는 세간의 소문이 사실인가 아닌가"라면서 "당시 비대위원장의 이름으로 당무감사를 공개 신청하는건 어떤가"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친윤계로 분류되는 권영세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저나 당시 지도부가 한덕수 후보에게 '100억' 이상의 돈을 지원했다는 악의적인 소문에 대해서는 이미 한참 전 유일준 당무감사위원장이 사실이 아님을 분명히 밝혔다"면서 "마치 새롭게 문제제기하듯이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법망을 피해 저와 당시 지도부의 명예를 훼손하기 위한 비열한 행태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권 의원은 "저와 우리 당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발해야겠다"며 "이런 행위는 김 최고위원이 그렇게 지지하는 한 전대표를 위해서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비난했다.  < 박세열 기자 >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일 내란특검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청사로 향하고 있다. ⓒ연합
                         ▲복원된 국정원 원훈석. ⓒ 국정원 제공관련사진보기
 


국가정보원(국정원)은 17일, '국민의정부' 시절 제정해 참여정부 시기까지 원훈으로 삼았던 '정보는 국력이다'를 복원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진행된 원훈석 제막식에는 이종석 국정원장과 장종한 양지회장과 직원 대표들이 참석했다.

복원된 원훈은 '국민의정부' 시절인 지난 1998년 5월 직원 의견수렴과 국민 공모를 거쳐 제정됐으며,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서 정보의 역할이 강조됐다. 이는 '국가정보원'으로 개칭하면서 같이 바꾼 첫 번째 원훈이기도 하다.

앞서 윤석열 정부에서 사용한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문구는 지난 1961년 국정원 전신인 중앙정보부 창설 당시 사용했던 원훈으로, 김대중 정부가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국가안전기획부를 1999년초 국가정보원으로 개편하기까지 약 37년 간 사용됐다.

윤석열 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며 창설 당시의 원훈을 재사용하기로 했지만, 12.3 불법 계엄과 윤 전 대통령 파면 등으로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3년 만에 원훈이 다시 바뀌게 됐다.

국정원은 '국민주권정부' 시대를 맞아 '국민의 국정원'으로 발전해 나가자는 의지를 반영하고, 실사구시 관점에서 국익·실용을 지향하는 '정보의 중요성'이 잘 담긴 해당 원훈의 복원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원훈석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를 바탕으로 당시 제작된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길이 5.6m, 높이 2.7m, 두께 1m 크기의 화강석 재질이다.

이종석 국정원장은 "이 원훈을 다시 세우는 이유는 자명하다"며 "나라 안팎의 난관을 헤쳐나갈 우리에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필요한 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원장은 "정보 지원으로 안보와 국익을 뒷받침하는 국정원의 책무와 역할이 이 원훈 속에 다 담겨 있다"며 "직원 모두가 이 원훈을 마음에 새겨 정보 역량을 한층 강화하고 국익수호에 매진하자"고 당부했다.  < 김도균 기자 >

우원식 국회의장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제77주년 제헌절 경축식에 앞서 전직 국회의장과 원로, 제헌유족 등과 환담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국민의힘이 제77회 제헌절 경축식 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연주 및 제창 순서를 빼달라고 요구했다. 삭제하지 않으면 행사 자체를 '보이콧(참석 거부)'하겠다고까지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17일 행사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울려 퍼지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과거와 달리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어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하며 사실상 당론으로 채택해 왔다. 하지만 막상 제헌절 행사에 5.18을 상징하는 노래의 삭제를 요구한 모양새라 논란이 예상된다.

국회 측 "국힘, 노래 빼지 않으면 경축식 보이콧하겠다 했다"

앞서 국회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에 "국민의힘 측에서 '다시 만난 세계'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빼지 않으면 경축식을 보이콧하겠다고 했다"라며 "또한 행사에 사용된 영상에 삽입된 12.3 비상계엄 당시 국회 사진도 빼달라고 요구했다"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국회사무처와 국회의장실을 통해 공식적으로 요청한 것"이라며 "국회의장실에서는 해당 요청에 대해서 행사 기획 측에 판단을 맡겼다"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이날 제헌절 경축식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빠지고, '다시 만난 세계'와 영상 속 사진은 당초 기획대로 유지됐다.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 국회부의장,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행사에 참석했다. 국민의힘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며 타협한 모양새이다.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 역시 "해당 노래들을 경축식에서 빼달라고 당 차원에서 요구한 것은 맞다"라며 "12.3 비상계엄을 놓고 정치적으로 민감하게 충돌하고 있다 보니, 당 지도부 차원에서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박기순·윤상원 열사의 영혼 결혼식을 위해 작곡된 '민중가요'이다. 이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 잡았으며, 시민사회계와 대학가에서 민주화운동 시기 널리 불렸다. 그러나 정권에 따라 해당 노래의 위상과 편향성을 놓고 논쟁이 반복되기도 했다.

걸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2016년 이화여자대학교 투쟁에서 학생들이 부르면서 기존과 다른 정치사회적 맥락을 갖게 되었고,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실상 젊은 세대의 새로운 민중가요처럼 의미를 부여 받았다. 특히 12.3 비상계엄 이후 내란 사태 정국에서 세대를 아우르는 광장의 노래로 각광 받았다. 이른바 2030 '응원봉 부대'를 대표하는 노래가 됐다.

유상범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주제곡... 제헌절에는 맞지 않다"

유상범 국민의힘 원내운영수석부대표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한 뒤 나오며 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남소연


이같은 요구를 전달한 통로는 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를 맡고 있는 유상범 국민의힘 국회의원으로 알려졌다. 유상범 의원은 이날 당 회의를 마치고 <오마이뉴스>와 만나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주제곡이고, 제헌절 경축식에는 맞지 않다는 입장을 전달했다"라며 "(국회)의장도 동의를 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제외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라고 삭제 요청한 사실을 인정했다.

다만, '보이콧' 언급 여부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무슨 보이콧을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협박한 것은 아니다.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은 부적절하다"라며 "의장실 비서실장과 개인적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의 부적절성을 전달했고, 의장도 그것을 동의했기 때문에 삭제된 것"이라고 항변했다. 이어 "원래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주제곡이었고, 5.18 행사에 맞는 노래라고 다 인정을 했다. 제헌절에는 맞지 않다는 게 저희 당의 입장이었고, 그래서 그 의견을 전달한 것"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유 의원은 그러나 나머지 두 가지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전달한 바 없다고 강조했다. '다시 만난 세계' 삭제 요구가 있었는지 물었으나 "나는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라고 밝혔다. 사진 삭제 요청에 대해서도 "어디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삭제 요청한 바는 없다"라고 부인했다.

당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해당 의견이 나온 것인지 물었으나 유 의원은 일정 관계로 이 이상의 질의응답은 거부했다. < 곽우신 기자 >

 
1979년 11월 7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권총을 든 채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 80보도사진연감 <한겨레21>관련사진
 


'10.26 사건'으로 사형당한 고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형사재판 재심에서 김 전 부장의 동생 김정숙씨는 재판부를 향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1980년 (재판) 당시 오빠(김재규)는 최후진술에서 10.26 혁명의 목표는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국민들의 크나큰 희생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지난 45년 동안 오빠가 남긴 이 말을 굳게 믿어왔다. 오빠가 막지 않았다면 우리 국민 100만 명 이상이 희생됐을 거라 믿는다. 그래서 저는 평생 김재규의 동생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다."

어느새 86세가 된 동생은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이번 재심은 사법부 최악의 역사를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김 전 부장의 무죄를 호소했다.

16일 서울고법 형사7부(재판장 이재권 부장판사)는 내란 목적 살인 등 혐의로 기소돼 1980년 5월 사형당한 김 전 부장의 재심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그가 사형당한 지 45년 만이자 유족이 2020년 재심을 청구한 지 5년 만이다.

김 전 부장 측은 이날 재심 첫 공판에서 당시 군사재판은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으며, 내란 목적도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무죄를 주장했다. 이날 재판정에는 함세웅 신부와 이부영 동아투위 위원장 등 종교계 및 시민사회 원로를 포함해 일반 시민들도 참석해 재판을 지켜봤다.

"자유민주주의 회복 위해 한 일"

고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변호인단 ⓒ 김종훈
 


김 전 부장 변호인인 조영선 변호사는 "이 재판은 사법부의 치욕을 바로잡는 계기"라며 "사실상 6~7개월 만에 모든 형이 집행되는 유례없는 졸속 재판이었고 변호인의 접견권·조력권이 심각하게 침해됐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 변호사는 ▲1979년 10월 27일 선포된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 ▲김 전 부장이 민간인 신분이었는데도 군 수사기관이 수사한 점 ▲군법회의에 회부된 절차의 부당성 ▲내란 목적이 없었다는 점 ▲유죄를 입증할 직접적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점 등을 구체적인 항소 이유로 제시했다.

특히 조 변호사는 "내란 목적이 존재했다는 검찰의 판단에 동의할 수 없다. 최근 윤석열 재판을 통해 내란죄는 국헌문란 목적으로 다수가 폭동을 일으켜야 성립되는 것을 확인했다"라며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김 전 부장은 (10.26을 일으킨) 첫째 이유가 자유민주주의 회복하는 것, 두 번째가 많은 국민의 희생 막는 것, 셋째가 우리나라 적화를 방지하는 것, 넷째가 미국과의 나쁜 관계를 회복하는 것, 다섯 번째가 국제적으로 독재국가 나쁜 이미지 명예 회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헌문란과 고의가 부재하다. 사전사후 계획도 부재하다. 피고인은 내란 목적이 없다."

조 변호사는 "박정희 개인에 대한 살인 사건일 수 있지만 피고인은 박정희를 살해해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목적으로 했다"라며 "(전두환) 신군부는 정권 탈취를 위해 내란 프레임 씌우고 사건을 왜곡했다"라고 부연했다.

이날 변호인단은 증거 능력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상희 변호사는 당시 원심에서 사용된 진술조서, 피고인·참고인 신문조서, 공판조서 등 대부분의 자료가 위법하게 수집됐고, 자백 중심으로 조작된 구조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재심 과정에서 보안사령부가 비공식적으로 녹음한 당시 공판 테이프, 국선변호인이었던 안동일 변호사의 증언 등도 제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검찰은 "지금 단계에서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다음 공판기일을 9월 5일 오후로 정하고, 1979년 10.27 비상계엄 이후 12.12 군사반란까지 이어지는 당시 시국 자료와 북한과의 긴장 상황 등에 대한 자료 제출을 검찰과 변호인단 양측에 요청했다.

김재규 전 부장은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차지철 전 청와대 경호실장을 총으로 살해했다. 이튿날인 1979년 10월 27일 체포됐고, 한 달 만인 11월 26일 군법회의에 기소됐다. 같은 해 12월 4일 첫 재판이 열렸고, 재판 개시 보름여 만인 12월 20일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다음 해인 1980년 5월 20일 대법원 판결까지 나왔고, 나흘 후인 5월 24일 김 전 부장은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무덤은 현재 경기도 광주 공원묘지 한쪽에 있다.  < 김종훈 기자 >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무덤은 경기도 광주시 외곽 공원묘지에 있다. ⓒ 김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