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비상시국회의, 미국 대한반도 정책 일신 호소
김상근 "미국, 일본 우선주의 정책 폐기하라"
함세웅 "약소국 돌보는 아름다운 미국 되길"
신홍범 "근본적 해결은 미‧북 대화와 수교"
황석영 "전쟁은 이미 시작됐으며 진행 중"
명진 "평화 위해 윤석열 탄핵 횃불 들어야"
이부영 "윤, 분단체제의 남쪽 기득권 대표"
평생을 좌고우면 없이 이 나라의 민주화와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투신해온 각계 원로들이 전쟁의 먹구름이 뒤덮는 한반도 상황을 더는 두고볼 수 없어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각계 원로 108인은 전국비상시국회의 주최로 14일 서울 프레스센터 18층 서울라운지(구 외신기자클럽)에서 진행된 외신 기자회견에서 일촉즉발의 위태로운 국면에 처한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군사적 해결이 아니라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와 공존의 해법을 찾아야 하며, 특히 미국이 제재와 봉쇄 등 강경 일변도의 대북한 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전국비상시국회의 신형식 정책위원장 사회로 진행된 이날 외신 기자회견에는 각계 대표인사로 김희중 천주교 대주교, 강우일 천주교 주교, 박경조 성공회 주교, 이경호 성공회 주교, 김중배 전 MBC사장, 김상근 원로 목사, 함세웅 원로 신부, 명진 스님, 신낙균 전 문화관광부 장관,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 황석영 작가, 현기영 작가, 김영주 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장임원 민교협 초대 의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박석무 다산연구소장, 권영길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 강정채 전 전남대 총장, 박찬석 전 경북대 총장, 이부영 동아투위 위원장 등이 직접 참석했다.
전국비상시국회의는 작년 1월 19일 민주화운동 원로 100인의 시국 기자회견을 계기로 검찰 독재, 민생 파탄, 전쟁 위기를 막아내기 위해 결성한 전국적 시민운동단체다. 앞서 9월 20일에는 '친일매국 반국가세력'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국선언을 발표함으로써 검찰독재‧친일매국 정권을 향한 총궐기에 시민들이 동참하도록 독려했다.
이들은 '9‧20 시국선언 참여 인사들과 전국비상시국회의' 명의의 기자회견문을 통해 "윤석열 정권 집권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조선·북한)의 핵무력은 날로 강화되고, 남북 상호 간의 적대와 위협이 가중되며 평화가 위협받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대한반도 안보·외교·경제 정책도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면서 "한국 국민은 역사적으로 한반도 주민들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아 온 미국과 일본의 한반도 정책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행정부와 유엔을 상대로 네 가지 주요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는 미국과 북한의 국교 수립을 위한 대화 제의와 수교 협상을 통한 북한의 안전보장과 핵 문제 동시 해결이다. 이들은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에 따라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더불어 미·중·일·러 4개국의 남북한 교차승인이 추진됐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남한과 수교한 반면에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의 수교를 거부함으로써, 고립된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본격화해 지금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보유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원로들은 "미국의 수교 거부와 봉쇄 정책은 이 같은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으며, 미국은 한반도, 특히 대조선 정책이 결정적으로 실패했음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미국의 새 대통령은 실패의 첫 단추로 돌아가 조선과 수교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조선의 핵무장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시도에도 빌미를 제공하고 있으며 자칫 한국, 일본, 대만까지 핵을 보유하게 된다면 핵 비확산 체제(NPT)가 무력화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둘째는 한반도에 군사적 재진출을 열망하는 일본 극우 세력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미·일·한 군사동맹 추진은 한국 국민의 큰 저항을 부를 것인 만큼 이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원로들은 "미국과 일본이 고질적, 고압적이고 대국주의적 대응으로 미·일·한 군사동맹을 계속 강화한다면 윤석열 정권의 정치, 경제, 사회 등 총체적 무능에 대한 불만과 합쳐져 2016~17년 같은 시민항쟁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대조선 수교 협상을 통한 새로운 접근이 남북 한반도 주민뿐 아니라 국제 사회의 더 큰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특히 "한‧일 과거사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에 기초하지 않은 윤석열 정권의 노골적인 친일 정책은 지역‧세대‧계층‧성별과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국민적 저항을 불러오고 있어 미국과 일본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셋째는 유엔 사무총장에게 유엔사령부(UNC)의 정체성을 해명하고 평화협상의 주선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원로들은 "유엔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로 미국 지휘 하의 군사기구로 만들어져 한국 전쟁에서 큰 역할을 했지만, 종전 후에도 유지되며 애초의 목적과는 반대로 오래전부터 평화의 장애물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총장에게 △ 유엔사는 유엔 산하 기구인가, 아니면 미국과 그 구성국들의 자율적 기구인가 △ 만약 유엔 산하 기구라면 남북 공동 활동을 막아온 유엔사의 결정은 지금까지 유엔이 내린 것인가 △ 그렇지 않다면 '유엔'이란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등을 질의했다. 그러면서 "유엔은 지금이라도 세계 평화라는 설립 목적에 맞게 군사 기구 유엔사를 해체하고 평화 협상을 주선하라"면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해체되어야 할 유엔사가 도리어 강화되는 현실에 깊이 우려한다"고 덧붙였다.
넷째는 최악의 남북관계 속에도 현실적인 평화공존의 방안을 마련하고 실현함으로써 평화통일의 꿈을 지켜나가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원로들은 윤 대통령의 '자유(흡수) 통일론'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거론한 뒤 "남북 양측 기득권 정치인들의 입장은 오랜 세월 외세의 침략과 내부의 폭정을 견디면서 살아온 민중들을 대변한다고 할 수 없다"면서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평화통일 운동을 벌여온 한국의 시민사회는 독립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을 계승해 겨레와 나라의 하나 됨을 이뤄가야 한다는 더욱 큰 소명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조선의 국교 수립을 위한 미국의 대화 제의를 촉구한다. 해리스‧트럼프 대선 후보들은 한국 국민의 요청에 답변해야>란 제목의 기자회견문은 류태선 목사와 김애영 한신대 교수,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 황순식 전국비상시국회의 대외협력위원장이 돌아가며 낭독했다.
"피 토하는 심정"이라며 인사말에 나선 김상근 목사는 미국을 향해 "한반도 평화의 길을 찾고 구현할 의무와 책임을 다하라고, 당신들의 패권을 위해 우리에게 반하는 일본 우선주의, 대한민국 하위적 외교‧군사 정책을 폐기하라고,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위해 대조선 정책을 일신하라고, 오늘 우리는 요구한다"며 "미국에 구걸하는 게 아니라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전쟁 때 북한 정권에 의해 아버지를 잃었다는 김 목사는 마무리 발언에서는 "1980년 광주살상의 참상을 겪으며 인권, 민주화운동에 나섰지만, 그에 앞서 남북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이 땅에서 인권, 민주화운동은 어려운 일이란 깨우침을 얻었다"고 회고했다.
함세웅 신부는 "오늘 작은 나라, 한반도의 한 시민, 국민으로서 우리나라를 갈라놓고 지배하고 민주주의와 인권 옹호, 평등의 원리를 많이 도와주었지만, 도와주면서도 크게 방해했던 미국의 회개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영국에서 미국으로 처음 이주했던 그 선구자들, 워싱턴을 비롯한 초대 정치인들의 그 아름다운 마음, 그것을 간직해서 약소국, 약자들의 마음을 돌보는 평등의 원리를 간직한, 아름다운 미국인, 미국의 정치인, 미국의 신앙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뒤이어 신홍범 전 조선투위 위원장은 "수십 년에 걸쳐 남북 간 대화도 했지만, 그 모든 선언, 회담의 결과들이 결국 역사적 기록으로만 남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그런 허무함을 느낀다. 현재 남북관계, 대화는 완전히 단절되고 통로를 잃었다. 이런 상태에선 위기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다"며 "우발적 사고로 인해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그런 두려움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근본적 해결할 길은 미국과 북한이 수교하고 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내용을 미국 국민에게 미 정치 지도자들에게 잘 전달해서 한반도 문제에 이 전쟁 위기를 막고 돌파구를 마련해 줄 것을 외신기자들에게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황석영 작가는 남북 간 대북 전단-대남 오물 풍선 사태와 평양 무인기 침투 등에 대해 "오래 중단됐던 남북 선전전이 세계 최대의 무력이 맞서는 휴전선에서 벌어지고 점점 더 상승하고 있다"며 "수십 년 전쟁 위기 속에서 살아와 국민이 실감하지 못하지만, 이미 전쟁은 시작됐고 진행 중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데 크나큰 책임이 있고, 현재 윤석열 정부가 대단히 모험주의적 길을 걷고 있어 우려하는 것"이라며 "그동안 한반도 상황을 겪어온 원로들로서 한반도 평화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위기를 자초하는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지금이라도 공식적이기 전에라도 물밑에서 북한과 접촉해서 대화를 시작할 것을 간곡하게 요구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나온 명진 스님은 "미지막 분단의 땅, 허리 잘린 한반도. 북쪽은 하반신 마비, 남쪽은 상반신 마비가 된 채로 80년을 싸우고 있지만, 주변에선 박수 치며 즐기고 있다"며 "이런 한반도에서 언제 포탄이 날아오고 날아갈지 일촉즉발의 전쟁의 위기가 눈앞에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윤 대통령의 대북 '선제타격' 발언을 거론한 뒤 "수십, 수백만의 인명이 살상되는, 대량살상무기가 사용되는 전쟁을 예닐곱 살 먹은 어린애들의 병정놀이로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명진 스님은 평양 무인기 침투 사건과 관련해 "드론을 띄우는 건 전쟁 행위다. 전시작전권은 미국에 있는데, 미국 허락을 받고 이 땅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드론을 띄웠는지 묻고 싶다"고 따졌다. 그는 윤석열의 무지, 무식, 무모, 몽매함과 저급함이 국민을 위험해 빠뜨리고 있다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이 정권을 탄핵하는 촛불, 횃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명진 스님은 "언젠간 외국 군대도 물러나고 언젠가는 분단의 벽도 무너져야 한다. 빠를수록 좋다. 이를 막고 있는 건 누군가"라면서 "자치권만 겨우 보장되고 국방과 외교는 미국의 눈치를 보고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미국의 준 식민지 치하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뒤이어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은 북미 대화 재개와 국교 수립이 미국에 어떤 이익이 있겠느냐는 질문에 "지금 북한이란 나라를 외교적으로 승인하지 않고 봉쇄해서 무너뜨리려는 게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냐, 아니면 핵 협상을 다시 시작해서 북한의 안전보장과 미국의 핵무기 동결 또는 해체 등과 맞바꾸는 협상을 하는 게 도움이 되겠느냐, 이것이 미국의 세계전략에도 보탬이 되면 됐지 해로울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주한미군을 엄청나게 주둔시키고 항상 핵무기, 잠수함 항공기들을 보내서 엄청난 군비를 여기다 쏟아붓고 하는 게 미국에 도움이 되는가. 지금이 미국이 한반도, 동아시아 정책을 바꿀 때다. 그 핵심은 미국과 북한의 대화 시작이다"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흡수 통일론'과 김 위원장의 '두 국가론'과 관련해 이 명예이사장은 "분단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고통당하는 민중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권력을 지닌 실력자들, 기득권 위주로 이런 발언이 나오고 있다"며 "윤 대통령은 동족의 파멸에 심각한 고민이 없이 전쟁을 통해서라도 통일할 수 있다는 망언을 하고 분단체제 남쪽의 기득권자를 가장 대표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남쪽에서 오랫동안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해왔거나 평화통일 운동을 해왔던 사람으로서 남북 양쪽의 기득권 세력에서 어떤 얘기가 나오든 괘념치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민주화운동 입장에서, 평화통일 운동 입장에서 민족의 하나됨, 나라의 하나됨을 위해 주장하고 필요하다면 평화를 위한 투쟁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에 황석영 작가는 "내가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도 직접 들은 얘기다. '한반도내지 북한에 미군의 군사기지가 존재하는 것을 우리는 반대하지 않는다' '미국이 오히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균형을 위해 한반도에 존재한다는 걸 우리는 인지하고 있다'라고 분명히 얘기했다. 이는. 북한의 일시적 전략은 아닌 것 같다"면서 "북한이 계속 핵을 쏘는 건 '날 좀 봐주라' '나랑 얘기 좀 하자' 그런 미국에 대한 신호였다"고 풀이했다. 이어 "만약 미국과 북한이 수교하면 동북아에 지금과는 훨씬 다른 천지가 개벽하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그 변화에 가장 중심에 서 있는 게 중국이다. 미국이 이런 것들 전략적으로 이미 검토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황 작가는 "도대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70년 동안 전쟁을 지속하고 있는가. 현 정전체제를 종전하고 평화 체제로 바꾸는 게 우선이고 그 뒤에 통일을 얘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분단과 전쟁에 깊게 관련돼 있고 책임 있는 게 유엔이다. 유엔이 깊은 과오와 책임을 책임을 지닌 만큼 힌국에서 평화의 실마리를 끌어내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민들레 이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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