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국군의 날 행사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장병들의 경례를 받고 있다. 대통령기록관
대통령실은 11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관련 ‘프레스 가이드’(PG·보도시 활용하는 공식 입장)를 내어 “전작권 환수는 과거부터 한·미 간 계속 논의되어 온 장기적 현안으로 새로운 사안이 아니다. 또한 우리 신 정부의 공약사항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측은 미 측과 동 사안을 계속 긴밀히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조선일보가 1면 머리기사로 ‘정부, 미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협의 나섰다’고 보도한 뒤 나온 피지였다.
대통령실 피지와 조선일보 보도는 전작권을 두고 ‘환수’와 ‘전환’이라고 달리 표현했다. 환수와 전환에는 전작권에 대한 다른 생각, 감정이 깔려 있다. 대체로 더불어민주당 쪽이 집권하면 환수, 국민의힘 쪽이 집권하면 전환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는 환수와 전환을 모두 사용했고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전환을 사용했다.
보수 정부와 보수언론은 환수 대신 전환(transition)을 쓴다. 환수에는 마치 빼앗기거나 도난당한 것을 되찾아온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수 쪽은 한국전쟁 기간 한국 정부가 전작권을 스스로 이양해준 것이지 도난당하거나 빼앗긴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환수를 좌파의 감정적 선동 용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런 태도는 사실과 맞지 않다. 환수는 그냥 ‘돌려받는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withdraw’다. 국민의힘 뿌리격인 김영삼 정부도 환수란 표현을 주로 사용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 12월1일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있던 한국군의 평시 작전통제권이 한국으로 환수됐다. 1994년 한·미 장성급회의 기록에는 한국이 주어로 등장할 때 미국으로부터 작전권을 환수(withdraw)한다고 나와 있다.
보수 쪽은 전작권 환수가 미국과 거리를 두려는 진보정권이 불을 지핀 좌편향 오류라고 단정한다. 수십년째 이런 주장이 되풀이되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5년 ‘전시작전통제권 행사를 통해 명실상부한 자주 군대로 거듭날 것’이라고 한 뒤, 전작권 전환은 진보 정권의 숙원처럼 됐다.“(조선일보 7월11일치 4면, 전작권 전환 비용 최소 21조… 군 “우리가 먼저 제안해선 안 된다”)
정작 작전통제권 문제는 보수 정부가 제기한 이슈였다. 작전통제권 환수는 1987년 직선제 대통령 선거 때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가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당시 노태우 후보는 ‘작전권 재조정’을 공약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우리가 독자적으로 지휘관을 갖지 못한 것은 주권국가로서 창피한 일이었다”고 밝혔다.
노태우 정부는 정권 초기인 1988년부터 전시, 평시의 구분없이 작전통제권 전체를 환수하려고 했다. 북핵 문제 등이 불거지자 1992년 10월 작전통제권을 평시와 전시로 나눠 일단 평시작전통제권만 먼저 환수하고 전작권은 나중에 환수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김영삼 정부 때인 1994년 12월 평시작전통제권이 환수됐다.
이후 30년 넘게 역대 한국 정부는 미국과 협의를 하며 전작권 환수를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실이 전작권 전환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었던 윤석열 정부 때도 합동참모본부에는 현역 장군(소장급)이 단장을 맡은 전작권전환추진단이 꾸려져 활동했다.
1988년 2월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하고 있다. 대통령기록관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취임 초 전작권 환수에 대해 “주권국가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하자 보수 쪽은 전작권은 군사주권이 아니고 제한된 전시 지휘관계라고 반발했다. 이와 달리 1973년부터 1976년까지 유엔군사령관을 역임했던 리처드 스틸웰 미 육군 대장은 “한·미 지휘관계는 지구상에서 가장 엄청날 정도로 국가주권을 양보한 경우”라고 했다.
전환이란 용어를 고집한 윤석열 정부와는 달리 문재인 정부는 한·미가 공동 주체인 협의·합의 때에는 전환이란 용어를 쓰고, 한국 정부나 군이 주체가 될 때에는 환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전환은 주체가 바뀌는 상황을 말하는 표현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한·미안보협의회 합의문에도 “한국으로의 전작권 전환”(transition of OPCON to ROK)이라고 나온다. 환수란 단어에 색안경을 끼고 사용을 꺼릴 이유가 없다. < 권혁철 기자 >
검찰 수사권 분리 반대하며 '소신' 바뀐 안 검사 언론의 또다른 단골 소재인 김예원 변호사 주장 '사회적 약자 위해 검찰 수사권 지키자'는 기만극
불굴의 용기로 내부 고발해 온 임은정 검사의 길 무소불위 검찰-언론 카르텔에 맞선 기적의 시간
며칠 전 안미현 서울중앙지검 검사가 검찰내부망인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자 족벌언론들과 친검찰 언론과 기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수많은 기사를 써서 올리며 '이렇게 소신 있는 정의로운 검사도 비판하고 있으니 역시 임은정은 친민주당 정치검사일 뿐'이라는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가려고 애쓰고 있다.
안 검사는 "검사장님께서 검찰이 바뀌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발견한 현답을 후배들에게 알려주시길 부탁드린다"라고 했지만, "정치로부터 독립이 검찰 개혁"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리며 임 지검장을 비판했다. 임 지검장이 취임 후 '검찰 장의사'를 자처하며 검찰 해체 수준의 개혁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안 검사의 주장을 이용해 임 지검장을 공격하는 언론들은 모두 안 검사가 과거에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외압 의혹'을 폭로했던 검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이 만들어낸 '소신파 검사'라는 이미지를 이용해 정치적 효과를 높이려는 노골적 의도가 드러난다. 하지만 안 검사의 이러한 이미지는 다소 과장된 점이 있다.
임은정(오른쪽) 검사장과 안미현 검사. MBC 뉴스 화면 갈무리
안미현 검사가 강원랜드 사건 때 검찰 수뇌부의 외압에 반기를 들고 용기 있게 거물 정치인인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을 수사한 것은 사실이고 분명히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때 안 검사는 친검 언론, 족벌언론, 검찰 권력 내부에서 집중적인 공격과 왕따를 당하면서 점차 자신의 입장을 조절하거나 침묵하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 직후인 2019년 '조국사태'(윤석열 사단의 연성쿠데타) 때를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당시에 '당신은 조국을 편드는 것이냐'라는 의심이 나오자, 안미현 검사는 '나는 간담회 자리에서 조국 장관에게 가족 수사를 받아들이라고 주장했다'라고 변명했다. 검찰 권력의 문제점과 수사권 남용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시기에 별다른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않은 셈이다.
2019년의 전 사회적 조국몰이의 광풍 속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가 극히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나중에 2022년에 검찰 수사권 분리 법안(이른바 '검수완박)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을 때, 안미현 검사가 검찰의 수사권 유지를 강력히 주장하며 검찰의 기득권 옹호에 나선 것은 변명해주기 어렵다.
이 과정에서 안 검사는 과거 자신이 담당했던 '계곡 살인사건'에서 졸속적인 수사 종결이 문제였다는 족벌언론들의 공격이 시작되자,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그 원인을 '검찰 수사권 분리'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족벌언론들의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개인적 잘못을 난데없이 감찰 개혁이 낳은 문제로 책임을 돌려버리는 잘못된 대응이었다.
그러자 당시 검찰 지도부는 태도를 바꾸어 안 검사의 "용기"를 칭찬했고, 친검찰 성향의 족벌언론과 보수 매체들은 이러한 주장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톡톡히 우려먹었다. '검찰을 비판했던 안미현 검사도 검수완박에 반대한다'라는 프레임으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안 검사는 검찰 수사권을 지키려고 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검찰과 언론에 의해 활용됐다.
MBC 뉴스 화면 갈무리 - 검찰의 '장의사'를 자처한 임은정 검사에 대한 공격이 벌어지고 있다.
그 후 안 검사는 '검찰 강점기'라고 불릴 정도로 검찰 권력의 폭정과 전횡이 넘쳐났던 윤석열 정부 내내 별다른 공개적 비판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검찰 권력의 중심인 서울중앙지검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 검사가 정말로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통한 개혁'을 소신으로 가지고 있다면, 가장 그것이 필요한 시기에 침묵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안미현 검사의 주장은 지금 검찰 개혁의 가장 상징적 인물인 임은정 검사를 흠집 내면서 검찰 권력의 옹호자들과 그 하수인들에게 개혁에 저항할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윤석열 사단이 막장으로 보여 준 검찰 권력의 문제와 폐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의지는 찾기보기 어렵다.
덧붙여 또한 최근 친검찰적인 족벌언론과 종편 방송들이 검찰 개혁 반대를 위해서 툭하면 인용하고 불러내서 우려먹고 있는 것에는 김예원 변호사의 주장도 있다. 김예원 변호사가 장애인 인권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활동해 온 진정성은 충분히 인정받아야 하지만, '이렇게 정의롭고 진보적인 변호사도 검찰 개혁을 반대하지 않냐?'는 게 저들이 노리는 효과이다.
김예원 변호사도 오래전부터 검찰 수사권 분리나 검찰 개혁법안들에 반대해 왔는데, 그 논리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먼저 '보완 수사를 할 수 있는 검찰 수사권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라는 주장부터 우리의 경험적 사실과 맞지가 않다. 검찰 수사권의 선택적 사용이 권력자들을 위해 남용되면서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한 사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조작하고 보복 기소까지 하던 검사들, ‘룸살롱 99만 원’ 접대받은 검사들, 건설 노동자들을 '건폭'으로 몰아서 구속하던 검사들이 이제 와서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 검찰의 수사권을 지켜야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김예원 변호사의 주장을 활용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다.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검찰개혁 법안 관련 공청회에서 김예원 변호사가 법안에 대한 의견을 진술하고 있다. 2025.7.9. 연합
2022년 임은정 검사의 '시사인' 인터뷰 내용중에서
김예원 변호사는 검찰 개혁 법안이 통과되면 '정치 경찰', '경찰 국가'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의견에 동조하며 "국가 폭망법"이라는 과도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 시절에 '정치 검찰'이나 '검찰 국가'의 폐해가 명백히 드러났을 때, 김예원 변호사가 현재와 같은 적극적인 비판과 반대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경찰이 수사 종결권을 가지면서 생긴 문제점과 경찰 수사의 부족함에 대한 비판과 우려는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검찰 수사권의 유지를 옹호하는 것을 넘어서서 경찰 수사의 전문성 강화, 중립적 기관을 통한 수사의 공정성 감독, 피해자 이의 신청권과 시민 통제 강화 등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처럼 여전히 개혁에 저항하는 검찰-언론 카르텔의 힘이 무시할 수 없게 남아있고, 그들이 안미현 검사나 김예원 변호사의 주장을 입맛대로 활용해 개혁을 막아서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거의 20여 년간 검찰 내부에서 온갖 구박, 왕따,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절대 굴복하지 않고 검찰 권력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과 고발을 해 온 임은정 검사의 존재는 너무 소중하다.
진정으로 용기 있는 '내부 고발자'인 임은정 검사의 고발은 항상 직설적이고 통렬했다. "[공수처가 출범하면] 정말 많은 전현직 검사들이 구속될 가능성이 저는 높다고 보고 지금까지 수사의 성역이었던 검찰을 수사한다면 여기는 황금어장이다. 그물만 내리면 범죄자들이 잡힐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 물고기입니다', '저 물고기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고발인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그런 역할을 할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2020년 인터뷰)
임은정 검사는 이미 2020년에 검찰이 불법비리를 저지른 검사들로 가득하다고 고발했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로 이어지는 4개의 정권을 거치면서 검찰 개혁에 조금이라도 머뭇거리거나 주저하는 사람은 그것이 어느 정부이고 어느 정당이든 임은정 검사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더구나 임은정 검사는 "검찰 개혁이 안 되는 것은 언론과의 협업 때문"이라며 "검찰 간부들의 속기사 역할"을 하는 친검찰 언론과 기자들에 대해서도 사정없이 비판해 왔다.
자기 자신조차 개혁돼야 할 검찰 권력과 적폐의 일부라는 성찰과 자각도 잊지 않았다. “역사의 심판에서 피고인석에 앉을 검찰은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모든 검사들일 테고, 저도 검사이니 심판을 피할 길이 없네요. 부끄러워 하늘을 우러를 염치가 없습니다.”(2020년 경향신문 칼럼) 이처럼 자신이 속한 조직에 반하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다.
지도부와 선후배 동료들에게 밉보이면서 왕따의 고통을 자초하게 되고, 조직의 명예를 훼손하고 파괴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두고두고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 더구나 그 조직이 검찰이라면?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기관이고, 대통령까지 배출하고, 언론과 손잡고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조직과 등을 돌린다는 말이 된다.
모든 폐쇄적 상명하복 조직에서는 수뇌부의 눈 밖에 나면 곧바로 멋대로 짓이겨도 되는 사람이 되고, 조직 구성원 모두가 우르르 돌을 던지며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하려 하는데, 이러한 특징을 가장 분명하게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검찰이다. 이 공포에 가까운 엄청난 압력과 맞서면서 검찰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다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임은정 검사는 조직에 반하는 사람을 괴롭히고 왕따시키는 검찰 내부 문화를 드라마 '글로리'와 비교한 적이 있다. - 유튜브 화면 갈무리
그런데, 그 기적을 정말 오랫동안 실천해 온 사람이 바로 임은정 검사였다. 실제로 임은정 검사는 검찰에서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았고 몇 번이나 징계와 적격심사의 대상이 되었고, 승진에서 밀려나고 여기저기 지방으로 쫓겨 다니며 커다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지금도 선후배나 동기들이 임은정 검사와 거리를 두고 있고 왕따의 효과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런 시련의 세월을 임은정 검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막 계단을 걸어와서 현관문을 걸어 잠그고 안에 신발 벗을 정신도 없었고요. 그냥 주저앉아서 울었지요 …. 한참 울다가 방에 기어들어가 자고 그랬어요"라면서 돌아본 적이 있다. 2022년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는 "인생이 왜 이렇게 힘든 건지. 너무 힘들어요"라고 끝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임은정 검사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제가 지금은 혼자처럼 보이지만,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길게 늘어선 줄의 앞자리에서 가고 있는 겁니다. … 숱한 사람들이 흘린 피눈물과 땀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어 역사가 되지요",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는 성경 구절이 떠오르더군요. … 다짐했지요. 돌멩이만도 못한 그런 검사장이 아니라 할 말 하는 검사가 되겠노라고." 그리고 이 불굴의 용기는 이제 열매를 맺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끝까지 응원해야 한다. "시대의 도도한 흐름은 거대한 암초를 만나도 타고 넘어서고, 끝내 암초를 부수어 모래를 만들어버리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습니다. … 연한 살이 찢기는 고통을 감내해야 진주조개가 되듯, 우리 모두의 고통이 검찰 개혁이라는 영롱한 진주로 거듭날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2019년 '조국 사태' 때 임은정 검사의 글) < 전지윤 기자 >
이 대통령 ‘4대강 재자연화’ 설명자료 금강·영산강 보 3곳 해체 등 계획빠져 한 국정위원 “껍데기 보고” 자리박차
문재인 정부 들어 개방된 세종보의 2022년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환경부가 국정기획위원회(이하 국정위)와 환경 전문가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재명 정부의 주요 환경 공약인 ‘4대강 재자연화’에 대해 구체적 계획을 내놓지 않아 비판을 받고 있다. 환경부는 국정위에서 국정 과제가 결정되는 대로 공약 이행 계획을 내놓겠다고 해명했다.
10일 환경단체와 전문가들 이야기를 종합하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성동 대통령 직속 국정위 회의실에서 사회2분과가 ‘물 정책 분야 국정 과제 논의를 위한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국정위 위원들과 환경 분야 전문가들, 환경부 담당 간부들이 모였다. 이날 환경부는 이 대통령의 4대강 공약과 관련해 11장짜리 문건을 제출하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문건엔 ‘4대강 재자연화’와 관련한 구체적 내용과 일정이 전혀 포함돼 있지 않았다. 이 문건을 본 국정위의 한 기획위원은 “문건에 내용이 없다. 껍데기다. 이런 보고를 들을 필요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날 제출된 문건을 보면, 환경부는 윤석열 정부가 취소해버린 ‘금강·영산강 보 해체’를 다시 추진하겠다고 한 이재명 정부의 공약(‘금강·영산강 보 해체 결정 취소 원상태로 회복’)을 거론했다. 그러나 금강의 세종보와 공주보, 영산강의 죽산보를 해체하는 일에 대해선 아무 내용이나 일정을 제시하지 않았다. 금강·영산강 3개 보의 해체는 재자연화의 핵심이다.
‘4대강 재자연화’를 약속한 문재인 정부는 2021년 금강·영산강 보 처리 방안을 확정했고, 이에 따라 2022년 환경부는 세종보와 공주보는 2025년까지, 죽산보는 2026년까지 해체한다는 이행계획 보고서까지 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2023년 사회적 논의 없이 보 처리 방안을 취소해버렸다. 이 때문에 보 처리 방안은 이행계획까지 나오고도 3년 이상 시간이 지체된 상황이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한 전문가는 “금강·영산강의 3개 보는 윤 정부에서 뒤집힌 보 처리 방안을 국가물관리위원회에서 바로잡으면 바로 해체할 수 있다. 2022년 이행 계획까지 모두 완성돼 있는 상황이라, 이르면 올해 안, 늦어도 내년까지는 모두 해체할 수 있다. 환경부가 이런 내용과 일정을 제시했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 때처럼 의사 결정과 실행을 계속 미루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2021년 세종보와 공주보, 죽산보는 해체가 결정됐다. 2024년 6월 공주보의 모습. 김규원 선임기자.
4대강 문제와 관련해 이 대통령의 또 다른 공약인 ‘낙동강 등 4대강 보 전면개방과 취·양수장 위치개선사업 신속추진’에 대해서도 아무 내용이나 일정이 제시되지 않았다. 식수·용수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보 개방·해체 전에 취·양수장의 취수구 개선이 선행돼야 하는데, 환경부는 별 계획 없이 현재까지의 개선 현황만 제시했을 뿐이다. 이 실적도 형편없었다. 개선 대상 취·양수장은 모두 180개인데, 이 가운데 환경부 관할 70개 중 1개, 농식품부 관할 101개 중 10개만 개선 공사가 끝났다. 민간 관할 9개는 하나도 개선하지 못했다. 이중 금강·영산강은 2021년 보 처리 방안이 나온지 벌써 4년이나 흐른 터다. 환경부는 이에 대해 ‘지역의 보 개방 반대’와 ‘지자체의 추진 의지 결여’로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위의 전문가는 “한강·낙동강도 2021년 보 처리 방안(에 대한) 사회·경제적 분석이 나와 있으니 국가물관리위원회에서 해체할 보를 결정하고 환경부에서 바로 실행하면 된다. 모니터링이나 조사·평가를 핑계로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180개 취·양수장 개선도 지방정부나 농식품부에 떠넘기지 말고 환경부가 주도해서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4대강의 녹조 관리 등 수질 개선 대책도 사후약방문에 그쳤다는 지적을 받았다. 환경부는 이날 녹조 대책으로 국립환경과학원에 등록된 14종의 녹조 제거 물질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또 36곳에서 조류(녹조) 경보제를 운영하고 있고, 친수 활동 시설 8곳에서도 녹조 감시를 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녹조 개선에 가장 효과가 좋은 보 개방에 대해선 아무 계획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 참석한 다른 전문가는 “녹조를 제거하려면 보를 열어 물을 흐르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현재 상태에서 보를 얼마나 개방할 수 있을지, 어느 정도 녹조를 줄일 수 있을지 계획을 가져왔어야 한다. 환경단체가 밝혀낸 녹조의 독성에 대해서도 나오지 않았다거나 위험하지 않다고 버틸 것이 아니다. 조사 위치나 방법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또 다른 전문가도 “이재명 대통령이 4대강 재자연화를 하겠다면 가장 먼저 ‘잘못된 사업으로 망친 4대강을 되살리겠다’는 목표를 명확히 해야 한다. 그리고 2030년까지의 임기 안에 실행할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문재인 정부처럼 대책 없이 모니터링하고 조사·평가하고 계획 세우다 보면 임기가 다 끝난다. 환경부에도 이런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의 고위 관계자는 “아직 국정위에서 국정 과제가 결정되지 않아 환경부의 공약 이행 계획을 밝히지 못했다.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있고, 국정 과제로 결정된다면 최대한 빨리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할 것이다. 4대강 재자연화에 대해 의지가 없거나 지연시키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 김규원 기자 >
환경단체 “4대강 재자연화 수행 불가”…금한승 환경부 차관 임명 철회 촉구
낙동강 네트워크는 지난달 30일 낙동강유역환경청 들머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금한승 환경부 차관의 차관 임명 철회를 정부에 요구했다. 낙동강 네트워크 제공
#2022년 9월 낙동강물을 원수로 사용하는 대구의 수돗물에서 유해한 녹조물질인 남세균이 검출됐다고 언론이 보도했다. 그런데 국립환경과학원은 ‘가짜 뉴스’라며 언론사를 상대로 2023년 3월 소송을 제기했다. 질 것이 뻔한데도 언론의 입을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는 비판이 나왔고, 결국 지난 2월 국립환경과학원은 대법원에서 패소 확정됐다.
#국립환경과학원은 2023년 2월 국제학술지 ‘환경 기술과 혁신’에 4대강 사업으로 보 건설 이후 낙동강 수질이 나빠졌다는 내용의 논문을 실었다. 그런데 같은 해 5월 4대강 사업 이후 수질이 개선됐다는 상반된 연구결과를 내놨다. 윤석열 정부는 이를 근거로 “4대강 사업으로 수질이 개선됐다”고 발표했다.
#2023년 11월 낙동강 인근 지역 공기에서 녹조 독성물질이 검출됐다고 환경단체가 발표했다. 그런데 국립환경과학원은 공기 중 녹조독 조사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공기 중에서 녹조 독성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라고 환경단체 조사 결과를 반박했다.
2012년 4대강 사업 이후 낙동강 등에서는 해마다 녹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녹조현상은 갈수록 심해지며, 최근에는 낙동강물로 재배한 농작물, 낙동강물을 원수로 사용한 수돗물, 낙동강 인근 지역 공기에서도 녹조 독성물질이 검출되고 있다.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줄기차게 이 문제를 제기하며 정부에 대책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은 “수질이 개선됐다”며, 4대강 사업을 두둔하는 정부에 맞춤형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그런데도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금한승 국립환경과학원장을 환경부 차관에 임명하자, 이날부터 환경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환경부 차관 임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낙동강권역 환경단체들로 이뤄진 ‘낙동강 네트워크’는 지난 30일 낙동강유역환경청 들머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금한승 차관은 본인의 책무를 저버리고, 권력의 입맛에 맞는 ‘가짜 정보’를 퍼뜨려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외면한 인물이다. 이런 사람에게 환경 중책을 맡기는 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 철거를 위한 금강·낙동강·영산강 시민행동’도 논평을 내어 “이재명 정부는 ‘4대강 재자연화와 수질 개선’을 첫번째 환경공약으로 제시했다. 4대강 재자연화에 부정적 정책을 내왔던 환경과학원장 출신 금한승 차관이 새 정부 공약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는가”라며 “환경과학을 외면하고 권력의 하수인 노릇을 자처한 환경과학원은 혁신 대상이다. 환경부의 상실한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믿을 수 있는 명확한 행동이 있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26일 이재명 정부는 금한승 환경부 차관을 임명하며 “환경부에서 30년간 근무하면서 환경 정책 전반에 대한 경험과 전문성을 쌓았다. 환경분야 정책통으로, 오랜 경륜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기후 위기 등 환경 문제에 잘 대응할 것”이라고 금 차관을 소개했다. < 최상원 기자 >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리박스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가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5.7.10. 연합
"저희가 하고 있는 역사 교육은 이승만과 전두환을 바로 알리는 것입니다. 최근 전두환 명예 회복을 하는 교육을 하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론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기술을 공유하는 그런 공부가 계속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리박스쿨에서 스마트폰 교육을 무료로 제공할 테니 여러분은 언제든지 오셔서 공부하길 부탁드립니다."
2022년 11월 1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극우 단체 '자유와 연대' 출범식에서 리박스쿨 손효숙 대표가 한 발언이다.
10일 국회 교육위원회 '리박스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손 대표는 그가 옹호한 전두환이 '학살자'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당연히 자신의 행위에 대해 사과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언론으로부터 마녀사냥을 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준혁 의원은 손 대표에게 "손효숙 대표가 한 발언이 역사 정의가 맞냐"며 "지금 이 자리에 (손 대표가) 있는 것은 역사 정의에 맞지 않고 헌법적 가치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전두환을 바로 알리겠다는 것인가. (전두환이) 5·18광주민주화운동 학살과 관련해서 잘했다는 거냐"고 물었다.
손 대표는 "애국 현장에서는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다"며 "대통령마다 공과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김 의원은 "수많은 국민을 학살하는 것을 용인하는 게 애국이냐"며 "(전두환) 대통령이 공과가 있다고 했는데 무고한 국민을 학살한 게 애국이냐. 그것이 공이냐"고 몰아붙였다.
손 대표는 이런 상황에서도 전두환이 '학살했는지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하며 자신은 '공직자, 교육자도 아닌 일개 시민'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이에 "일개 시민이 전두환 옹호 운동을 하냐"며 "이승만 정부 거창양민학살사건을 아냐, 박정희가 한 사법살인을 아냐. 손 대표는 '여론전'을 해야 된다, 스마트폰 교육시켜야 된다고 하는데 그 돈은 어떤 애국 세력이 주는 거냐"고 지적했다. 손 대표는 여론전을 두고도 '스마트폰 이용법을 알려주는 것 뿐'이라며 비껴갔다.
김 의원은 '대한민국 사회 교과서'라는 책을 들고 보여줬다. 해당 책은 '뉴라이트 사관'에 입각해 일제 식민 지배를 미화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 책은 한국학 중앙연구원 김주성 이사장이 추천서를 쓰고 손 대표와 가까운 대한민국교원조합에서 만든 책"이라며 "김주성 씨는 리박스쿨 임원으로 있으면서 정치학교장"이라며 "이런 책이 보급되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 헌법과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영호 위원장은 손 대표의 발언을 듣고 "공감능력이 너무 떨어진다"며 "나도 희생자 가족인데, 이렇게 무렴치한 발언을 했으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하지 않냐. 기회를 줄테니 지금 같은 극우적 생각으로 파장을 일으킨 거에 대해 5·18광주민주화 유족들과 민주화 진영 사람들에게 사과할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가 10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리박스쿨 청문회에 참석해 극우 역사교육과 관련한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7.10. 연합
손 대표는 "'내 발언에 문제가 있다면' 사과를 해야겠지만…"이라고 자신의 잘못이 없는 듯처럼 말끝을 흐렸다. 2022년 자유와 연대 출범식에서 한 발언을 두고 '오래된 일'이라고 둘러댔다. 그는 자신의 극우적 발언에 대한 반성은커녕 "(리박스쿨 관련 첫 언론 보도가 나온) 지난 5월 30일 이후 마녀사냥을 당해 심신미약자가 됐다"며 피해자 행세를 했다.
'본인이 교육부 정책자문위원으로 있던 지난 2월 초 교육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에게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반대하지 말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마치 학부모인 것처럼 보낸 것이 사실이냐'는 질의에 "그렇다"면서 "자문위원으로서 보낸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당시 손 대표는 교육부 교육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리박스쿨 역사관 논란이 불거지자 교육부는 지난달 1일 자로 손 대표를 해촉했다. 원래 임기는 6월 12일까지다.
손 대표를 교육정책자문위원으로 추천한 이수정 전 교육부 자문관도 청문회에 나왔다. 이 전 자문관은 "정책자문위를 구성한다고 해서 학계 교수님들께, 현장 의견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분들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며 "여러분이 손 대표를 추천했고, 저는 특별한 의견 없이 해당 부서에 그 추천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자문관은 "리박스쿨 활동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고, 기사를 통해 보고 많이 놀랐다"며 "손 대표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검증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손 대표가 이사로 있는 한국늘봄교육연합회와 교육부의 업무협약(MOU) 체결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고 MOU를 맺으라는 말을 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다만 그는 "행복교육공사단이라는 단체의 장이 교육부 해당 부서에 MOU를 맺고 싶다고 민원을 넣었는데 (교육부가) 답이 없다고 해서, 해당 부서에 검토를 한 번 더 해보고 확인해 달라고 했다"며 "해당 부서는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준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이 전 자문관은 "이런 의혹들로 염려를 끼친 부분에 대해서는 대단히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하지만 리박스쿨과 관련해 제게 제기된 의혹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김민주 기자 >
'리박스쿨'은 역사 왜곡 실험실... 시대착오적 인물숭배
피로 얼룩진 권력욕을 리더십으로 포장
이·박 독재는 신화가 아니라 비판의 대상
청년세대에 민주 감각 교육 필요한 시기 '리박스쿨' 퇴학 조치 내려야 마땅하다
보수 성향 단체 '리박스쿨'의 댓글 여론 조작 관련 보도가 나온 가운데 2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한 빌딩에 리박스쿨 사무실 간판이 붙어 있다.2025.6.2. 연합
‘교육’이라는 이름의 독재 세탁소
최근 공개된 콘텐츠 ‘리박스쿨’은 제목부터 낯설고 불길하다. 이승만과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이름에서 성을 따온 이 프로그램은 이들을 마치 학교의 ‘교장’처럼 설정해 ‘리더십’을 배우는 형식이다. 그러나 그 실체는 교육의 외피를 입은 정치 콘텐츠이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냉소와 역사왜곡, 그리고 시대착오적 인물숭배에 다름 아니다.
‘역사를 재조명한다’는 명분 아래 리박스쿨이 선택한 방식은 지나치게 편파적이다. 이 콘텐츠는 두 독재자의 업적만을 과장하고, 그들의 폭력적이고 반민주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침묵하거나 가볍게 넘긴다. 예능이라는 형식을 빌려 역사적 균형을 잃은 해석을 시청자에게 쉽게 주입시키는 이 프로그램은 교육이 아니라 ‘정치적 세뇌 실험실’이다.
이승만: 독립운동가였지만, 민주주의자였나?
이승만의 삶은 분명 복잡하다. 일제강점기에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점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록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유산은 해방 이후 철저히 민주주의와 배치된다. 그가 1948년 정부 수립 직후부터 보여준 통치는 민의를 존중하기보다는 억누르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전쟁 전후의 ‘보도연맹 학살’이다. 좌익계열 인사 혹은 그와 연루되었다고 추정된 수십만 명이 국가 권력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학살됐다. 이는 전쟁기 혼란이라는 변명으로 용납될 수 없다. 명백한 국가 주도 반인륜 범죄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최소 10만 명 이상이 이승만 정부에 의해 처형되었고, 이 과정은 비공개·비법적 절차로 진행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1952년에는 대통령 직선제를 밀어붙이기 위해 군을 동원해 국회를 포위했고, 1954년에는 ‘사사오입 개헌’이라는 전무후무한 숫자 장난으로 3분의 2 찬성을 끌어낸 척 헌법을 개정했다. 이런 인물이 ‘건국의 아버지’라 불릴 자격이 있는가? 민주주의가 그의 손으로 시작되었다는 주장은 피로 얼룩진 권력욕을 ‘리더십’으로 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박정희: 산업화 신화의 그늘은 민주주의의 붕괴였다
박정희를 이야기할 때 반복되는 문구가 있다. “그래도 경제는 살렸잖아.” 이 말은 사실상 정치적 무책임의 상징이다. 물론 그의 정권 아래서 산업화가 추진됐고, 수출이 증가했으며, 국가 인프라가 성장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전체주의적 동원체계’의 결과였으며, 그 체계 하에서는 국민의 권리와 자유가 지속적으로 침해받았다.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그는 처음엔 ‘과도정부’를 자처했지만, 결과적으로는 18년에 걸친 장기집권으로 나아갔다. 1972년 유신헌법은 그 정점이었다. 이 헌법은 행정부의 권력을 극대화하고, 국회의 기능을 약화시키며, 대통령에게 입법·사법·행정 전반에 절대권력을 부여했다. 형식만 남은 헌정질서 아래에서, 박정희는 비판을 불허하는 절대 권력자가 되었다.
그 시절, 노동자는 인간이 아니라 부품으로 취급받았다. 노동 3권은 부정당했고, 언론은 통제당했으며, 학생들은 감시와 사상 검열 속에서 생활했다. 인혁당 사건, 긴급조치 시대, 정치적 고문과 실종. 이 모든 고통을 단지 '산업화의 대가'로 치부할 수 있는가? '고속도로'와 '수출 증가'가 박정희 정권의 실적이라면, '표현의 자유 압살'과 ‘공포 정치의 일상화'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뉴스타파는 '리박스쿨' 잠입 취재를 통해 이번 대선을 앞두고 '자손군'이라는 댓글팀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띄우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비방하는 활동을 체계적으로 벌여왔다고 30일 보도했다. 뉴스타파 홈페이지
예능이란 포장지 속 역사 왜곡, 더 위험하다
리박스쿨은 예능 형식을 빌려 이 모든 과거를 ‘가볍게’, ‘웃기게’ 포장한다. 그러나 역사 왜곡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웃음 뒤에 감춰진 의도야말로 더 치명적이다. 대중문화는 반복과 익숙함을 통해 정당성을 형성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결국 예능을 통한 역사 왜곡은 무의식적 동의를 불러일으키고, 정치적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프로그램이 청년 세대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업률, 주거 불안, 정치 혐오 속에서 자란 청년들에게 '과거의 강한 리더십'을 낭만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일은, 무책임한 마취다. '그때는 잘 나갔다'는 말이 반복될수록, 청년의 미래는 과거 회귀적 정치에 갇히고 만다.
우리가 배워야 할 ‘교장’은 누구인가
리박스쿨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교장처럼 그린다. 그러나 이들이 진정 교육자적 리더였던가? 그들이 국민에게 가르친 것은 복종, 침묵, 그리고 무조건적 충성뿐이다. 그건 ‘교육’이 아니라 ‘군기’다.
진정한 교장은 국민이다. 우리는 4.19 혁명으로 부정선거를 심판했고, 5.18 광주에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켰으며, 6월 항쟁으로 다시 헌법을 되찾았다. 그런 국민적 수업이 있었기에 오늘의 민주주의가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교장으로 모신 순간, 대한민국은 학교가 아니라 병영으로 전환된다.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방과후강사분과 조합원들이 보수 성향 교육단체 '리박스쿨'이 서울 일부 초등학교에 늘봄 강사를 공급한 것을 규탄하며 방과후수업 외주 위탁 철폐를 촉구하고 있다. 2025.6.10. 연합
지금 필요한 건 ‘리박’이 아니라 ‘디박’이다
우리는 지금 ‘디박스쿨’이 필요한 시점이다. 디코딩하고(Decode), 디컨스트럭션하며(Deconstruct),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민주주의 감수성을 확장하는 교육. 독재의 유산을 신화가 아닌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청년 세대가 주체적으로 역사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민주적 감각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결코 한 번의 선거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는 경계, 참여, 그리고 교육을 통해 재구성되어야 하는 시스템이다. 과거를 회피하거나, 편리하게 포장할수록 민주주의는 퇴행한다. 지금 우리가 리박스쿨에 ‘퇴학 조치’를 내려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를 잊은 사회, 미래를 저당 잡힌다
오늘날 리더십의 위기를 독재 미화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다. 강한 리더는 필요하지만, 그것은 국민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 강함이어야 한다. 독재는 강함이 아니라 비겁함이다. 비판을 두려워하고, 권력을 독점하며, 국민을 수단화하는 통치는 결코 리더십이 아니다.
리박스쿨은 말한다. “과거를 통해 배워라.” 맞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배워야 한다. 그러나 배워야 할 것은 독재자의 리더십의 신화가 아니라, 그것이 남긴 상처와 폐해다.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그 어두운 순간들을 직시해야 한다.
기억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묻느냐가 앞으로 이 사회가 어떤 미래를 향해 나아갈지를 결정짓는다. ‘리박스쿨’은 과거로의 회귀를 상징하지만, 우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다. < 김성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