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길 할머니 재기부를 ‘윤미향 횡령- 준사기’ 혐의 기소 논란
다수 영상에 정신 또렷한 모습 담겨 ... ‘판단능력 없음’을 검찰이 입증해야
길원옥 할머니.
검찰이 지난 14일 기소한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의 ‘준사기’ 혐의는 정의연 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는 횡령 혐의와 함께 향후 재판 과정에서 입증돼야 할 핵심 쟁점이다.
검찰은 “윤 의원이 길원옥 할머니의 치매 상태(심신미약)를 이용해 여성인권상 상금 1억원 중 5천만원을 정의연에 기부하도록 했다”고 결론 냈다. 하지만 정의연은 길 할머니가 스스로 기부를 결심한 정황을 제시하며 검찰의 기소 내용을 반박했다.
기부를 결심할 당시 길 할머니가 주체적인 판단 능력이 있었는지를 놓고 양쪽의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상된다.
길 할머니는 2017년 11월 정의연으로부터 ‘여성인권상’과 함께 상금 1억원을 받았다. 정의연이 박근혜 정부가 2015년에 추진한 ‘12·28 한-일 위안부 합의’를 계기로 모금한 돈이었다. 당시 김복동(2019년 사망), 안점순(2018년), 이옥선, 송신도(2017년) 할머니에게도 상금이 수여됐고 길 할머니와 김복동 할머니가 각각 5천만원을 정의연에 다시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에 거주했던 송 할머니는 1억원 전액을 내놓았다.
정의연은 16일 여성인권상 수상 뒤에 촬영된 영상을 공개하며 “길 할머니가 또렷한 정신을 갖고 주체적으로 기부 의사를 밝혔다”고 주장했다.
실제 2018년 9월 김 할머니와 길 할머니가 일본에 있는 조선학교를 방문한 영상을 보면, 김 할머니가 “(길)원옥이도 장학금 좀 내”라고 하자 길 할머니는 “해야지. (돈이) 없어서 힘든 학생 그런 학생 둘만 선택해달라. 돈이 없어서 못 할 만큼 힘든 학생 찾아주면 힘닿는 데까지 돕겠다”고 답했다. 길 할머니는 또 “뭐든 힘이 되려면 내가 우선 배우고 봐야 한다. 열심히 배워서 이 나라 좋은 나라 만들어달라. 우리는 원체 못 배우고, 좀 못사는 세상에 살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15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 참석해 뭔가를 생각하고 있다.
정의연 관계자는 “길 할머니의 기부금은 모두 후원금과 상금 등으로 정상 집행됐다”고 설명했다. 길 할머니는 2018년 8월 한 소설가와 인터뷰를 통해 소설책도 완성했고, 2019년 2월 촬영된 영상에서는 “(위안부 문제가) 우리들만의 일이 아니다. 정부에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우리가 나가서 열마디 하는 것보다 정부에서 한마디가 효력이 있으니까 정부에서 빨리 해결해줬으면 좋겠다”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는 검찰이 한 언론에 밝힌 “2014년 7월 병원 치매 선별 검사에서 19점을 받아 ‘확정적 치매’를 받고, 2018년 7월 재검사에서는 17점을 받아 ‘경제활동 의사결정 불가’ 판정을 받았다”는 수사 결과와 배치된다. 이에 대해 의료기관의 치매 검사 결과만 놓고 의사결정 능력을 판단하는 게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환자의 경우에는 치매 검사 결과가 나쁘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치매 검사 결과만으로 당사자가 주체적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는 건 섣부르다”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의료기관의 진단만으로 법원이 당사자의 주체적인 판단 능력을 판단하지는 않는다. 기부 의사를 밝혔을 당시 할머니의 상황이 중요하다”고 했다. < 이재호 기자 >
이용수 할머니 “소녀상 철거 주장 ‘나쁜 행동’이자 역사 죄인”
친필 편지로 일 극우 비판, 스가 새 정부에 공식 사죄 등 요구
16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 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제1457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용수 소신으로서 세계 역사와 인권 문제 해결의 상징인 평화의 소녀상 철거 주장은 절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16일 정오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곁에선 소녀상 철거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날 열린 ‘제1457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수요집회)에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평화 인권운동에 앞장서 온 이용수(92) 할머니가 친필로 작성한 편지가 낭독됐다.
앞서 일본 극우세력이 정의연 회계부정 등을 언급하며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주장한 것에 대해 이 할머니가 직접 반박한 것이다. 이 할머니는 편지를 통해 “역사의 증거인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는 것은 나쁜 행동이다. 역사의 죄인이다”라며 “소녀상은 피해자들의 한과 슬픔, 후세 교육의 심장”이라고 강조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이용수 할머니가 쓴 친필 메시지. 정의기억연대 제공
이날 수요집회에서는 일본 극우 세력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이날 총리로 취임한 스가 요시히데 총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 이사장은 스가 요시히데 총리에 대해 “아베만큼의 역사 수정주의자는 아니지만 스스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이 한일 내각의 기본이라는 아베 정부의 기조를 되풀이하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의연은 새로 출범하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과 강제동원 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했다. 이 이사장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강제동원, 각종 전쟁 범죄를 진심으로 대할 때 진정한 평화와 상생의 길이 열릴 것”이라며 “스가 정부가 문제 해결에 더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일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말했다. 정의연은 “일본 정부는 공식 사과 및 법적 배상을 하고 미래 세대에게 진실한 교육을 실시하라”고 주장했다.
이날 연대발언에선 검찰이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한 것이 ‘억지 기소’라는 비판도 나왔다. 시바요코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전국행동 공동대표는 입장문을 통해 “검찰도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고백하면서 억지 이유로 기소해 검찰의 면목 유지만을 위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수요집회 현장 주변에선 자유연대 등 보수단체들이 맞불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윤미향 의원 사퇴와 정의연 해체 등을 주장했다. < 강재구 기자 >
정의기억연대 이나영 대표와 이용수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