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보험관계에 따른 비용 지출 불과

질병 발생 다른 원인 가능성 배제 못 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흡연 때문에 발생한 손실을 배상하라며 국내외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500억원대의 소송을 냈으나 6년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1심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홍기찬 부장판사)20일 건보공단이 KT&G와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요양기관에 보험급여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징수하거나 지원받은 자금을 집행하는 것에 불과하다""보험급여를 지출해 재산 감소나 불이익을 입었더라도 법익이 침해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원고의 보험급여 비용 지출은 피고들의 위법 행위 때문에 발생했다기보다 건강보험 가입에 따른 보험관계에 의해 지출된 것에 불과해 피고들의 행위와 보험급여 지출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담배와 질병의 인과관계에 대해 "개개인의 생활 습관과 유전, 주변 환경, 직업적 특성 등 흡연 이외에 다른 요인들에 의해 발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건보공단은 흡연 때문에 추가로 부담한 진료비를 물어내라며 20144월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총 533억여원의 배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청구액은 흡연과 인과성이 큰 3개의 암(폐암 중 소세포암·편평상피세포암·후두암 중 편평세포암) 환자들 가운데 20년 동안 하루 한 갑 이상 흡연했고, 기간이 30년을 넘는 이들에 대해 건보공단이 20032013년 진료비로 부담한 금액이다.

건보공단 김용익 이사장은 판결을 지켜본 뒤 "대단히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판결"이라며 "담배의 명백한 피해에 관해 법률적으로 인정받으려고 노력했는데, 그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또 "항소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앞으로도 담배의 피해를 밝히고 인정받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0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국민건강보험공단, 담배회사 상대 손해배상 소송 1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1심까지 7년 걸린 건보공단 담배소송공방 계속될 듯

국민 건보공단, 담배회사 상대 손해배상 소송 1심 패소

 

건강보험공단이 국내외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하는 소송은 1심 선고까지 7년이 넘게 소요됐으나 앞으로도 공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0일 법조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건보공단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처음 검토한 시기는 201382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건보공단은 '건강보장정책 세미나'를 열어 과거 19년 동안의 검진·진료 데이터를 분석해 담배의 건강피해를 입증했다며 소송 제기 가능성을 거론했다.

과거 폐암에 걸린 흡연자들이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낸 사례는 있었으나 국내 공공기관으로서는 첫 사례여서 크게 주목받았다. 담배 제조업체의 모임인 한국담배협회는 건보공단이 승소할 가능성이 작다며 반감을 드러냈다.

건보공단은 20141월 이사회에서 담배 소송을 제기하기로 의결하고, 이후 대리인 선정과 법리 검토 등을 거쳐 같은 해 414일 서울중앙지법에 소장을 제출했다.

재판 시작 전부터 건보공단에 불리한 소식이 전해졌다. 개인 흡연자들이 담배회사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2건이 소송 제기 불과 나흘 전 대법원에서 원고 패소로 확정된 것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개인 흡연자들이 낸 소송과 건보공단이 낸 소송의 주장이나 논리가 사실상 같기 때문에 판단이 뒤집히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건보공단이 청구한 금액이 533억 원에 달하고, 소송의 원인으로 제시한 암에 걸린 흡연자가 3465명이나 돼 재판에 긴 시간이 소요됐다.

법원은 5개월에 걸친 기록 검토 끝에 20149월 첫 변론을 열었고, 이후로도 수개월에 한 차례씩 재판이 열렸다. 양측은 흡연과 암 발병 사이 인과관계를 두고 법정에서 공방을 벌였다.

그러던 중 건보공단이 20189월 법원에 15천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증거를 추가로 제출하면서 법원은 기록 검토를 위해 기일을 연기했다.

연기된 재판은 2년 만인 올해 8월 재개됐고, 재판부는 2개월 뒤 한 차례 더 재판을 열어 변론을 종결한 뒤 판결을 선고했다.

1심이 선고됐으나 패소한 건보공단 측이 불복하겠다는 입장인 만큼 사건은 상급심 법원인 서울고법에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사건은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어느 쪽이 승소하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와야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건보공단마저 패소 흡연자 승소 국내선 전무, 일부 해외사례만

한국판례는 담배회사 모두 승소미국·캐나다 등선 흡연자 승소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20일 패소했지만, 공단이 항소를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담배 제조사의 법적 책임을 둘러싼 다툼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흡연자들이 개인이나 집단으로 담배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적이 다수 있었지만, 지금껏 단 한 번도 승소하지 못했다.

1999년 흡연으로 인한 건강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과 그 가족 등 30명이 KT&G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은 15년 만인 20144월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흡연과 암 발병 사이의 개별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게 대법원 판결의 대체적인 취지였다.

다만 이 사건의 항소심 단계에선 흡연자 중 흡연과 역학적 인과관계가 높다고 알려진 소세포암과 편평세포암에 걸린 4명에 대해서는 '흡연과 폐암 사이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는 재판부의 판단이 나온 바 있다.

이 소송 이후에도 국내에서 흡연자와 유족 등이 담배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례가 있었으나 번번이 패소했다.

이런 가운데 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주목을 받았다.

공단은 비록 항소심 단계였지만 흡연과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시됐던 소세포암과 편평세포암 등에 걸린 '장기 흡연' 환자들에게 암 진료비로 지급한 금액을 담배회사 측에 청구했다.

객관적 자료를 다량 보유한 공공기관으로서 승소 개연성이 큰 사례를 모아 제기한 소송이었던 만큼 그 결과에 관심이 쏠렸으나 결국 앞선 판례가 되풀이되는 데 그쳤다.

공단 측이 법률에 따라 암 환자에게 보험급여를 준 것을 두고 '담배회사 때문에 법익이 침해됐다'고 보기 어려운 데다 생활습관과 유전 등 다양한 원인이 개입할 가능성이 있는 질병과 담배 사이의 인과관계를 뚜렷하게 인정하기도 어렵다는 게 공단의 1심 패소 사유였다.

흡연으로 피해를 본 사람과 집단, 기관 등이 담배회사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담배 소송'은 우리나라에서만 제기된 것은 아니다.

이미 1950년대부터 미국에서 처음 제기된 바 있고 세계 각국으로 이어졌다.

미국에서는 1954년 첫 소송부터 1990년 초까지 제기된 수백 건의 소송에서 모두 담배회사가 승소했으나, 1994년 담배회사가 흡연의 위험성을 은폐했다는 내부 문건이 공개된 뒤에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대표 사례로는 미국 주 정부가 흡연 관련 의료비를 반환하라면서 담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이 꼽힌다.

이 소송에서 미시시피를 비롯한 4개 주는 담배회사와 개별 합의를 했고 나머지 46개 주정부도 19984개 담배회사에서 25년간 260억 달러를 받는 것으로 최종 합의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개인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손해 배상 책임을 인정 받은 사례가 잇따랐다.

미연방대법원은 2001년 한 흡연자가 BAT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배상금 109만달러를 지급할 것을 확정했고, 2006년에는 필립모리스가 흡연 피해자에 5550만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캐나다에서도 흡연자들이 승소한 사례가 있다.

캐나다 퀘벡주에서는 1998년 흡연자 약 110만 명이 집단으로 임페리얼, 로스만스-벤슨&헤지스, JTI-맥도널드 등 3개 담배회사를 상대로 약 156억 캐나다 달러(133백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재판부는 흡연자들의 피해가 인정된다면서 20151심에서 원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항소심 판결에서도 주내 흡연자들이 승소했다. 그러나 담배회사들은 판결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대법원에 상고할 뜻을 밝힌 상태다.

브라질에서는 1997년 담배회사가 81천 달러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온 바 있다. 이와 별개로 브라질 정부는 지난해 담배로 인한 질병의 치료와 관련 치료비용을 환수하기 위해 필립모리스 등 담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담배회사가 승소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62월 폐암 환자 6명이 일본담배회사(JT)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담배 회사의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원심을 확정한 바 있다.

프랑스 최고법원도 2003년 폐암으로 숨진 흡연자의 유족이 담배 회사 알타디스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법원 전두환 씨 앞으로 명의 바꾼 뒤 추징 가능

재산 환수 절차 더욱 복잡, 사망 땐 불가능할 수도

 

법원이 전두환(89) 전 대통령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집 일부에 대한 검찰 압류가 위법하다고 결정하면서, 전씨의 추징금 2205억원 중 남은 991억여원의 환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연희동 집이 전씨의 차명재산일지라도, 불법재산이 아닌 한 이를 추징하려면 전씨 앞으로 명의를 먼저 돌려놔야 한다고 법원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소유자 명의 이전으로 재산 환수 절차가 장기화되면 추징금 집행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서울고법 형사1(재판장 정준영)는 지난 20일 전씨의 아내 이순자씨 등이 연희동 집 압류가 위법하다며 낸 압류집행 이의 사건에서 불법(재산)이 아닌 한 차명재산을 직접 압류할 수 없다며 본채와 정원의 압류를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해당 부동산이 불법재산이려면 전씨가 대통령 재임 중 받은 뇌물이어야 하는데, 본채 토지(1969)와 정원(19806) 취득이 전씨의 11대 대통령 취임(19809) 이전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19874월 등기를 마친 본채 건물은 검사가 불법수익으로 형성됐다고 볼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연희동 집이 전씨의 차명재산이 맞는다면, 채권자(국가)가 채무자(전씨)를 대신해 제기하는 채권자 대위소송을 통해 소유자 명의를 전씨 앞으로 돌린 뒤 추징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전씨 주변인 명의로 된 재산이 전씨의 차명재산임을 증명하고, 명의를 돌려놓는 절차를 밟은 뒤 추징하라는 뜻이다.

법원 판결은 소송을 통한 전씨의 환수 지연 전략이 일부 통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전씨 쪽은 그간 추징 과정에서 수차례 소송을 걸어 추징 절차에 제동을 걸어왔다. 2013년 전씨 장남 전재국씨가 검찰에 납부 재산목록을 제출하는 등 환수에 협력하는 듯했지만, 연희동 집을 둘러싼 이번 재판집행에 관한 이의신청 뿐 아니라 2018년엔 연희동 집 공매를 맡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상대로 공매처분취소소송도 냈다. 지난해엔 헌법재판소에 제3자 명의라도 추징금 환수가 가능하다는 전두환 추징법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하기도 했다. 전씨 쪽 정주교 변호사는 지난 20일 법원 결정 뒤 정의를 추구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법적 절차에 의하지 않은 정의는 법이 보호하지 않는다고 말해, 앞으로도 추징을 둘러싼 법정 다툼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환수 작업이 길어지는 가운데 자칫 구순을 바라보는 전씨가 사망할 경우 환수 절차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행법상 환수 의무자가 사망할 경우 미납 추징금 징수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천정배 전 민생당 의원이 지난해 말 전씨의 상속재산에 대해서도 미납 추징금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내기도 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국민재산되찾기운동본부는 법원 결정 뒤 성명에서 이번 결정은 단순히 소유시기와 소유자만을 고려한 사안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검찰의 재항고에 따라 대법원에서는 전씨에 대한 불법재산과 추징금을 모두 환수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신민정 기자

     

고법 "전두환 자택 별채만 압류…본채는 위법" 판결

검찰 "항고하고 압류 집행 방법 다각도로 검토할 것"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공매에 넘긴 검찰의 조치가 일부 위법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법 형사1(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부장판사)20일 전 전 대통령이 검찰의 추징에 불복해 제기한 재판의 집행에 관한 이의를 일부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연희동 자택 본채와 정원의 경우 몰수 가능한 불법 재산이라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압류를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다만 전 전 대통령의 셋째 며느리 명의인 별채는 뇌물로 조성한 비자금으로 매수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공매에 넘긴 처분을 유지하도록 했다.

연희동 자택은 부인 이순자씨 명의인 본채, 비서관 명의인 정원, 며느리 명의인 별채 등 3곳으로 구분된다. 이 중 본채의 토지는 이순자씨가 196910월 소유권을 취득했고, 건물은 종전에 있던 것을 철거하고 신축해 1987년 등기가 이뤄졌다.

정원은 대통령 취임 전인 19806월 소유권을 취득했으며 이후 장남 재국씨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가 1999년 비서관 명의로 등기됐다. 별채는 전 전 대통령의 처남이 2003년 취득했다가 추징금 시효만료가 임박했던 20134월 셋째 며느리의 소유로 넘어갔다.

재판부는 "피고인(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에 받은 뇌물 일부를 처남이 자금 세탁을 통해 비자금으로 관리하다가 그 비자금으로 별채를 취득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셋째 며느리는 별채를 취득할 당시 국내에 거주하지도 않았고, 매매계약이 비정상적으로 단기간에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본채와 정원에 대해서는 "범인 외의 사람으로부터 추징하려면 법적인 근거가 필요하다""대통령 취임 전 취득해 불법 재산으로 취득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재판부는 "본채와 정원이 피고인의 차명재산에 해당한다면, 국가가 채권자대위 소송을 내 피고인 앞으로 명의를 회복시킨 뒤 추징 판결을 집행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검찰은 "법원의 결정문을 면밀히 분석해 이의 신청을 받아들인 부분에 적극적으로 항고하고, (압류) 집행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다각도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 전 대통령 측 대리인은 "추징금 문제로 국민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린 점에 전 전 대통령을 대신해 깊이 송구한 말씀을 드린다""법원의 결정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떤 정의를 추구해도 그것이 법적 절차에 의하지 않으면 법이 보호하지 않은 정의"라며 "이런 당연한 법치국가의 원리를 법원이 선언했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은 2018년 서울중앙지검의 신청으로 연희동 자택이 공매에 넘겨지자 전 전 대통령이 반발해 이의를 신청하면서 시작됐다. 전 전 대통령은 과거 대법원의 판결로 부과된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연희동 자택에 집행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반발해왔다.



송승용 부장판사, 양 전 대법원장과 당시 법원행정처장 등 상대

사법행정 쓴소리 지목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돼 인사 불이익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01952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가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은 사회문제나 법원행정처에 이견을 제시하는 법관을 사찰하고 이를 인사에 반영했습니다. 법관 독립을 침해한 것입니다. 법관 독립이 지켜져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권리도 보장됩니다. 민사소송은 책임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1119일 류신환 변호사(법무법인 지향)<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양승태 대법원 시절 인사 불이익 피해자인 송승용(46·사법연수원 29) 수원지법 부장판사의 소송대리인이다. 송 판사는 이날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현직 부장판사가 전직 대법원장과 인사 실무를 맡은 현직 판사, 국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낸 것이다. 그는 사법 개혁을 촉구하는 글을 법원 내부망에 올렸다가 이른바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됐고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

판사 블랙리스트 관리뒷조사도 벌여

양승태 대법원 시절 사법부의 대내외적 비판 세력을 탄압하려고 특정 판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은, ‘사법농단사건의 한 축이다. 법원은 금품 수수, 성추행, 음주운전 등 이론의 여지가 없는 비위 행위자를 이른바 물의 야기 법관으로 추려 그 리스트를 관리했다. 양승태 대법원은 사법부에 비판적 의견을 제시하거나 튀는언행을 한 판사들도 이 리스트에 포함했다. ‘판사 블랙리스트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세월호참사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글을 외부에 기고하거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1심 판결을 지록위마’(윗사람을 농락해 권세를 휘두름)라 비판한 판사 등이 대표적이다.

송승용 부장판사는 검찰 수사 결과 2013 ~2017년 부당한 이유에서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됐다는 판사 30여 명 가운데 한 명이다. 2014년 권순일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양창수 대법관 후임으로 임명 제청되자, 2003년 사법 파동을 언급하며 인권, 노동, 환경에 감수성을 지닌 법조인에게 문호를 개방하자는 내용의 글을 법원 내부망에 올렸다. 20151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추천되자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에 적합한 후보가 추천돼야 한다는 글도 올렸다. 송 판사는 법원행정처의 눈 밖에 났다.

2~4년마다 근무지를 옮기는 판사의 전보 인사는 법원장이 작성해 대법원에 올리는 근무평정과 더불어 10지망까지 적을 수 있는 근무 희망지, 마일리지처럼 쌓이는 비선호 근무 이력 등을 종합해 결정된다. 당시 초임 지법부장은 형평 점수에 따라 A~G그룹으로 분류됐다. A그룹으로 분류된 그는 물의 야기 법관을 뜻하는 G그룹으로 강등됐고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창원지법 통영지원으로 전보됐다. 이런 인사안은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결재란에 볼펜으로 브이(V) 표시를 함으로써 최종 결재됐다.

송 판사에 대한 뒷조사도 벌어졌다. 나상훈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제1심의관은 임종헌 당시 기획조정실장의 지시를 받고 송 판사의 대학 동기를 통해 확인되지 않은 풍문을 수집했다. 그렇게 작성된 문건(‘송승용 판사 자유게시판 글 관련’)에는 정세 판단에 밝은 전략가형으로 속칭 낄 때 안 낄 때 판단이 밝다’ ‘법원 집행부에 대한 불신 및 의혹이 많고 수원지법 내 사무분담 편성 당시 사무분담 하나하나에도 의혹을 제기한 사실이 있다’ ‘아웃사이더 비평가 기질이 있어 이슈 발생시 주변 법관들을 선동하는 기질이 다분하다는 내용이 적혔다.

사법 개혁 목소리를 내온 송 판사를 법원행정처가 요주의 인물로 취급하며 관리한 흔적이다. 20155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거취를 묻는 설문조사를 제안했다는 이유로 송 판사는 창원지법 통영지원 근무 이력에도 불구하고 20172월 선호 희망 임지에서 제외됐다. 형사재판에서도 배제됐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치소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법원의 인사 관행, 법원 판단 받고자

소장이 접수된 날은 2년 전 각급 법원 대표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사법농단 관여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 검토를 국회에 촉구한 날이다. 그는 대표회의 간사로서 이때 회의 내용을 언론 앞에 공표했다.

소장의 피고로는 최종 인사권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전 대법관)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인사 불이익 의혹 등으로 2년여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이외에 강형주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함께 인사 업무를 총괄한 김연학·남성민 전 인사총괄심의관, 나상훈 전 심의관, 그리고 국가도 피고에 포함됐다. 합의부 판단을 받기 위한 최소 소가(소송물가액) 등을 고려해 배상액은 3억원으로 정했다.

현직 판사가 현직 판사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법원 내 따가운 눈초리도 견뎌야 한다. 그럼에도 소송을 낸 이유를 류 변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현행 인사 시스템에 의해 수많은 법관이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됐다. 소송은 법관을 길들이고 통제하는 이 시스템에 대한 직접적인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단순히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금을 받는 게 목표가 아니라, 법원의 인사 관행이 잘못됐다는 판단을 법원에서 받고자 하는 것이다.”

사법농단은 법원 외부뿐 아니라 내부 압력에 의해 법관의 독립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헌법은 법관 독립의 원칙을 천명하고 이를 위해 법관의 신분을 두텁게 보장한다. 그러나 법원조직법(44조의 2)에 근거한 법관 평정은 인사·평정권자의 주관이나 자의적 해석이 개입할 여지가 크다. 평정 자료나 결과도 비공개가 원칙이기에 윗선의 심기를 살피는 관료주의적 문화가 자리잡았다. 양승태 대법원은 이같이 인사·평정권을 휘둘러 입바른 말을 하는 판사들을 길들이려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는 법관 독립에 대한 위협으로 이어지고,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외면하는 코드 판사’ ‘코드 판결을 남긴다. 그러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법농단 재판의 피고인과 이들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인사 실무자들은 송 판사에 대한 인사 조처는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데 대한 인사권자의 재량이라고 주장한다.

법관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류신환 변호사는 말했다. “사법행정에 물의가 될 만한 사람이 있으면 인사에 반영하도록 한 것 자체가 큰 문제다. ‘판사가 이견을 제시하면 불이익을 받는구나.’ ‘인사권자가 항상 주시하고 있구나.’ 판사들이 이렇게 느끼는 것만으로 재판은 영향받는다. 길들여진 판사는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없다.” 고한솔 기자

경찰, 목부근 절반이상 훼손 50대 남성 현행범으로 체포

 

목 부근이 훼손된 청남대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상.

 

존치-철거 논란이 진행 중인 옛 대통령 휴양지 청남대 안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상이 훼손됐다.

19일 충북도 발표 등을 종합하면, 이날 오전 10~11시께 경기 용인에 사는 (50)씨가 청남대 안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상을 훼손했다. 이 남성은 준비한 쇠톱을 이용해 동상 목 부근을 절반 이상 훼손했고, 주변을 지나던 시민이 발견해 청남대 관리사업소에 알렸다. 경찰은 청남대 관리사업소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이 남성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이 남성은 경찰에서 평소에 전두환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면서 충북도가 최근 청남대 안 전두환·노태우 동상을 철거하지 않고 존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는 보도를 보고 화가 나 나 스스로 응징하려는 마음으로 동상 훼손을 결행했다고 밝혔다. 이 남성은 전두환 전 대통령 재판 때 연희동 집 앞 등에서 시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살 반란자 옷을 입은 청남대 안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동상. ‘5·18 학살 주범 전두환 노태우 청남대 동상철거 국민행동은 지난 3일 오후 청남대를 찾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동상에 펼침막 옷을 입히고 철거를 요구했다. 5·18 학살 주범 전두환 노태우 청남대 동상철거 국민행동

청남대 안 동상철거를 주장해온 ‘5·18 학살 주범 전두환·노태우 청남대 동상철거 국민행동’(청남대 국민행동)은 이 남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5·18 민주유공자 유족회, 5·18기념재단 등 전국시민사회단체 17곳이 꾸린 청남대 국민행동은 매주 화요일마다 청남대 앞에서 전두환·노태우 동상철거 화요 문화제를 열어왔다.

이 단체 정지성 대표는 이 남성은 청남대 국민행동과 직접 관련이 없다. 5·18 관련 단체 사이버회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안다. 경찰에서 사건 소식을 듣고 놀랐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충북도가 지난 5월 발표한 동상철거 약속을 깨는 바람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충북도가 자초한 일이다위법한 일이 발생해 안타깝지만 충북도와 사회에 경종을 울린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애초에 동상철거를 깔끔하게 마무리 짓지 못해 이런 사건이 일어나게 된 데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5·18 학살 주범 전두환 노태우 청남대 동상철거 국민행동이 지난 3일 오후 청남대 정문 앞에서 전두환 노태우 동상철거를 촉구하고 있다. 5·18 학살 주범 전두환 노태우 청남대 동상철거 국민행동 제공

씨의 신병을 확보한 청주상당경찰서 관계자는 지구대에서 1차 조사를 했지만 범행 동기, 사건 경위, 사전 계획 등을 면밀하게 조사할 계획이다. 조사에서 혐의가 드러나면 곧바로 입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1983년 전두환 전 대통령 지시로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대청호변 1825647에 조성된 청남대는 2000년대 초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89차례 찾아 366472일을 머물렀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3418일 관리권을 충북도에 넘겨 시민에 개방하도록 했다.

충북도는 지난 2015년 역대 대통령 10명의 동상·기념물 등을 제작해 청남대 곳곳에 설치했다. 하지만 충북 5·18민중항쟁기념사업회 등은 ·노씨는 5·18 민주화 운동의 학살 주범이며,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범법자다. 동상·기념물 등을 철거하라고 주장해왔다. 충북도는 지난 5월 이들의 요구에 동상철거를 약속했다가, 최근 존치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반발을 샀다. 오윤주 기자

 

6개월 갈팡질팡국민 갈등만 부추긴 '전두환 동상 철거'

충북도 섣부른 철거 발표 뒤 법률 근거 못 찾아 오락가락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 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동상 철거가 6개월 논란 끝에 결국 존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충북도의 설익은 행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도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편승해 충분한 법률검토나 여론수렴 없이 섣부른 철거계획을 내놨다가 번복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행정을 펴 불필요한 갈등만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그러는 사이 전씨 동상이 훼손되는 사건까지 발생해 충북도의 입장이 더욱 난처해졌다.

1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20분께 청주시 문의면 소재 청남대에 있는 전씨 동상의 목 부위를 줄톱으로 자르려 한 A(50)씨가 현행범 체포됐다.

스스로를 경기지역 5·18 관련 단체 회원이라고 밝힌 A씨는 청동으로 된 동상 목 부위 3분의 2가량을 둥그렇게 둘러 가면서 훼손했다.

그는 관광객으로 청남대에 입장한 뒤 미리 준비해 간 줄톱으로 범행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충북도가 두 전직 대통령의 동상을 존치하기로 방향을 정한 뒤 발생했다.

도는 동상 철거를 요구하는 5·18 청남대 동상 철거 국민행동에 최근 "동상이 법에 저촉되지 않아 존치하겠다"는 뜻을 밝힌 뒤 "대신 두 사람이 법의 처벌을 받았다는 내용을 적시한 안내판을 새로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5·18 청남대 동상 철거 국민행동 측은 "충북도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범법자의 동상이 청남대에 세워져 있는 것은 국민정서에 맞지 않으며 철거해야 마땅하다""동상철거를 바라는 국민의 힘을 모아 끝까지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반발 속에 충북도는 동상 철거 논란을 매듭짓기 위해 각계 여론을 수렴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동상 철거 문제는 지난 5월 충북 5·18민중항쟁 40주년 행사위원회의 요구로 처음 공론화됐다.

당시 충북도는 이 요구에 화답해 곧바로 철거 방침을 내놨다. 도정정책자문회의를 통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공론화 과정 등은 없었다.

그런데 막상 동상을 철거하려니 법적 근거가 없었다.

난감해진 도는 충북도의회에 도움을 청했고, 이상식 도의원은 지난 6월 금고 이상의 형이 받은 전직 대통령의 동상이나 기록화 등 기념사업을 제한하는 내용의 '충북도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이는 다시 보수단체 반발에 부딪혔고, 조례안 심사를 맡은 의회 행정문화위원회는 7·9·103차례나 결정을 보류해오다가 결국 내분 속에 조례안이 최종 폐기되는 과정을 거쳤다.

충북도의 졸속행정이 국민 갈등과 대립만 키운 꼴이 됐다.

게다가 '철거'를 추진하던 충북도는 6개월만에 슬그머니 '존치'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행정 신뢰도마저 땅에 떨어졌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최진아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시민자치국장은 "도가 철거 발표에 앞서 여론수렴만 제대로 거쳤어도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었는데 스스로 비난을 자초했다"고 꼬집었다.

동상이 있는 청남대는 전두환 집권기인 1983년 건설돼 대통령 전용 별장으로 사용되다가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으로 일반에 개방됐다.

관리권을 넘겨받은 충북도는 청남대 관광 활성화를 위해 초대 이승만부터 이명박에 이르는 전직 대통령 10명의 동상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