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천만 달러 상당 매입, 투자국 순위 103"저금리로 투자 여건"

"한국 투자자들 응찰가가 가장 높아한국 투자자들 경쟁심해 가격 올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얼어붙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한국 투자자들이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17일 상업용 부동산 시장 분석업체인 리얼 캐피털 애널리틱스 자료를 인용해 올해 들어 지난 9월까지 한국 투자자들이 156천만 달러(한화 약 17250억 원) 상당의 미국 부동산을 매입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24천만 달러(13710억 원)보다 25.8% 급증한 수치다.

코로나19 이후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대한 부정적 전망에 따라 거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투자액이 늘어남에 따라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한국 투자자의 비중도 늘었다.

지난해 미국 상업 부동산 시장에 투자한 외국 투자자 중에서 한국은 10(3.7%)였지만, 올해는 3(8.6%)로 뛰어올랐다.

한국보다 더 많이 미국 부동산 시장에 투자한 국가는 캐나다와 독일뿐이다.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과 중국 당국의 자본 유출 제한 등의 영향으로 투자가 급감한 상태다.

WSJ은 미국 부동산 시장에 한국의 투자가 급증한 것은 코로나19 이후 미국의 초저금리 상황이 직접적 원인이 됐다고 전했다.

초저금리 때문에 금리에 기반한 환율 헤지 상품의 가격이 대폭 하락했고, 한국 투자자 입장에선 부담 없이 미국의 부동산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부동산 업체 뉴마크에 따르면 한국 투자자들은 2년 전만 해도 매년 부동산 가격의 2%를 환율 헤지 비용으로 지출해야 했지만, 최근엔 환율 헤지 비용이 0.1%에 불과하다.

WSJ은 최근 시애틀에서 매각된 6억 달러(6630억 원) 짜리 건물의 사례를 들면서 한국 투자자들의 경쟁이 미국의 상업 부동산 가격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소개했다.

건물을 구입하겠다는 12건의 문의 중 4건이 한국 투자자의 문의였다는 것이다.

당시 매각 업무를 담당한 뉴마크의 알렉스 포셰이 국제투자분야 대표는 "한국 투자자들의 응찰가가 가장 높았다""한국 투자자들이 가격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GSK · 릴리 코로나19 치료제 생산

SK바이오사이언스· GC녹십자 등 코로나19 백신 생산

 

전 세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한국이 주요 의약품의 생산기지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코로나19 유행 속 고품질의 의약품을 신속하게 생산할 수 있는 능력과 시설을 갖췄다고 인정받은 덕분이다. 이른바 'K-바이오'가 글로벌 무대에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8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는 올해 들어서만 두 곳의 다국적제약사와 코로나19 항체치료제 위탁생산(CMO) 계약을 했다.

지난 4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 이어 5월에 일라이릴리와 계약을 성사, 최근 초기 물량을 전달했다. 특히 릴리의 코로나19 항체치료제는 고객사로부터의 기술이전 기간을 대폭 단축해 신속하게 생산할 수 있었다.

릴리의 코로나19 항체치료제는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회복한 환자의 혈액에서 항체를 추출해 만든 의약품으로, 지난 9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긴급사용승인을 받았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그동안 쌓아온 백신 사업 역량을 바탕으로 다국적제약사로부터 코로나19 백신 생산 계약을 잇달아 따내고 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 7월에는 아스트라제네카와 코로나19 백신 CMO 계약을, 8월에는 노바백스와 코로나19 백신 위탁개발생산(CDMO) 계약을 연이어 맺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임상시험에 필요한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하고 향후 상업용 생산에도 대비하고 있다.

특히 SK바이오사이언스는 코로나19 백신 생산을 위해 안동 백신공장 L하우스의 연간 생산량을 기존 15천만 도스(dose·1회 접종분)에서 3배 이상인 약 5억 도스까지 확대했다.

GC녹십자 역시 다국적제약사에서 개발하는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하기로 국제민간기구인 감염병혁신연합(CEPI)과 합의했다. 아직 어떤 제조사의 코로나19 백신을 얼마큼 생산할지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CEPI와 합의한 만큼 본계약이 머지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CEPI는 이미 GC녹십자에 20213월부터 20225월까지 코로나19 백신 CMO를 맡기겠다고 밝혔다. 이 기간 GC녹십자를 통해 5억 도스의 코로나19 백신을 생산하는 게 목표다. 현재 GC녹십자가 한 해 생산할 수 있는 백신 물량은 완제품을 기준으로 4억 도스다.

이밖에 세계 최초로 승인된 러시아의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 V' 역시 국내 바이오 기업 지엘라파(GL Rapha)에서 일부 생산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대규모 설비와 높은 기술력으로 해외와 견줘도 뒤처지지 않는 생산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평한다. 코로나19 유행 기간 안정적으로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을 정도의 방역 수준을 갖춘 것도 긍정적 요인이다.

이재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전무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역량을 갖춘 건 물론 'K-바이오'에 대한 신뢰가 커지고 인지도가 높아진 덕분"이라며 "아시아 시장의 전진기지로 충분한 경쟁력을 갖췄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국외재단 6월 미 경매서 매입해 국내 환수

18일부터 국립 고궁박물관에서 일반 공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지난 6월 미국 경매에서 매입한 해시계 앙부일구’. 조선 4대 임금 세종 치세기의 발명품이지만, 환수된 앙부일구는 18~19세기 제품이다.

       

500여 년 전인 143410, 서울 거리에 사상 최초로 공중용 해시계가 등장했다. 종묘 앞과 종로 1가 중학천에 걸친 다리인 혜정교 앞에 각각 설치된 해시계의 이름은 앙부일구’(仰釜日晷). 당시 재위 16년째를 맞은 조선 4대 임금 세종(1397~1450)이 과학자 장영실과 이천, 김조 등에 명령해 처음 만든 이 해시계는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모양의 오목한 금속제 구형 그릇 안 쪽에 뾰족한 시침 막대를 놓고, 여기에 비치는 햇살의 방향에 따라 그림자가 지게 해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발명품이었다.

영침 둘레에는 하루의 시각선이 표시됐다. 글을 모르는 백성들도 단번에 보고 알게끔 각 시각을 상징하는 쥐와 소, 호랑이, 토끼 등 십이지 동물상을 그려 넣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세종 16102일조에는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한 앙부일구로 시간을 잰 뒤 보고한 내용이 전한다. “()의 몸을 그렸으니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것이요, ()과 분()이 빛나니 해에 비쳐 밝은 것이요, 길옆에 설치한 것은 보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라고 기록해 백성을 위한 애민의 마음으로 십이지상이 그려진 해시계를 설치했음을 알 수 있다. 세종대의 발명품인 앙부일구는 그 뒤 조선 시대 말까지 공중용 시계는 물론 도자기나 목제 등의 휴대시계 등 여러 모양과 크기로 만들어져 퍼지게 된다.

1446년 창제한 한글과 더불어 세종대왕의 애민사상이 구현된 중요 발명품으로 꼽히는 앙부일구’(仰釜日晷) 완형품이 최근 미국에서 고국으로 되돌아왔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최응천)은 지난 6월 미국 경매에서 매입한 18~19세기 제작품 앙부일구17일 오후 2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에 공개한다.

재단 쪽은 지난 1월 이 유물이 현지 경매에 출품된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유물에 대한 조사와 국내 소장 유물과의 비교분석 등을 진행했다. 경매는 원래 3월 치러질 예정이었으나, 코로나 확산사태로 수차례 취소되고 연기되는 곡절을 겪었다. 결국 6월 경매에서 낙찰받아 입수한 뒤, 지난 8월 국내로 들여왔다.

<국조역상고> 1에 기록된 앙부일구의 북극고도 관련 기록(붉은 선으로 친부분). ‘숙종 39년인 1713년 청 사신 하국주가 한양 종로에서 북극고도를 측정해 373915초의 값을 얻었다는 내용으로 이 측정값을 명문에 표기한 앙부일구 환수품의 제작 시기가 1713년 이후임을 입증하는 근거가 된다.

앙부일구는 직역하면 하늘을 우러러보는 가마솥 모양에 비치는 해 그림자란 뜻이다. 조선 시대 과학 기술 수준과 백성을 위한 정책을 보여주는 대표 유물이다. 환수된 앙부일구는 지름 24.1, 높이 11.7, 4.5의 동합금 유물이다. 몸체에 1713(숙종 39) 한양 위도 측정치인 북극고 373915(北極高三十七度三十九分一十五秒)’란 명문이 새겨져 1713~19세기 초 사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솥뚜껑을 엎은 전형적인 앙부일구 형태를 띠고 있지만, 숙련된 장인의 솜씨로 구형용기에 시각선과 계절선, 24절기의 명칭을 은입사 기법으로 새겨넣었고, 받침 다리엔 화려한 구름과 용 문양까지 장식해 조형성까지 지닌 최상급 앙부일구로 평가된다. 박물관 쪽은 환수된 앙부일구는 서울 위도에서 정확한 시간을 읽을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 특징이라며 고국의 하늘 아래로 돌아와 정확한 시간을 가리킬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환수의 의미가 더욱 깊다고 밝혔다.

환수된 앙부일구를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뾰족한 모양으로 해 그림자를 드리우며 시간을 알려주는 영침(影針)과 그 둘레에 시각을 가리키는 시각선이 그려져 있다.

현재 앙부일구는 세종 당시의 원본은 사라졌고, 조선 후기 제작품만 남아있다. 동합금 금속·대리석·도자기 등 재료별로 여러 크기의 유물이 있는데, 앙부일구를 대표하는 동합금 제품은 환수품 외에 모두 7점이 국내에 전한다. 보물 2점을 포함한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 3점을 비롯해 고려대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성신여대박물관이 각각 1점씩 소장 중이다. 국외에는 영국 옥스퍼드과학사박물관, 일본 세이코박물관 등에 3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궁궐 권역인 덕수궁 석조전과 창덕궁 대조전·주합루, 창경궁 풍기대·옛 장서각 터 앞에는 왕실에서 앙부일구를 설치했던 대도 남아있다.

돌아온 앙부일구는 앞으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관리하면서 자격루, 혼천의 등의 다른 과학 문화재와 함께 연구·전시 등에 활용된다. 문화재청은 18일부터 다음 달 20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과학문화실에서 환수한 앙부일구를 공개할 예정이다. 노형석 기자


1954년 선교사로 파견돼 인천 정착, 20여년 산업선교 활동 보급에 진력

1974인혁당 피해자기도 모임박정희 정권 강제 추방으로 출국

미 의회 박 정권 인권 실태증언전미 순회 한국 민주화강연 활동

 

197412월 박정희 정권에 의해 강제 추방 당했던 조지 오글(왼쪽) 목사는 20년 만인 1994년 민청학련운동 계승사업회 초청으로 부인 도로시 오글(오른쪽)과 함께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오글 목사의 왼쪽 약지에 추방 직전 인혁당 조작 사건사형수 우홍선의 부인이 여비로 건네준 금반지가 보인다. 사진 연합뉴스

 

박정희 독재정권의 인혁당 조작사건을 폭로해 강제 추방 당하는 등 한국 민주화운동을 지원했던 조지 오글(한국 이름 오명걸) 목사가 지난 15일 미국 콜로라도에서 별세했다. 향년 91.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17일 오글 목사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외국인이자 종교인으로서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한 오글 목사의 업적과 뜻을 정리하고 기릴 것이라며 애도의 뜻을 밝혔다.

192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여섯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오글 목사는 연합감리교회 선교사로서 1954년 부인 도로시와 함께 한국땅을 처음 밟은 뒤 20년간 산업선교 활동을 펼쳤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를 설립해 노동자의 권리 노동법에 기반한 교육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등 인권옹호에 앞장섰다. 또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하는 미국·캐나다 선교사들 모임인 월요모임에 소속돼 선교사로 활동했다.

조지 오글(뒷줄 오른쪽) 목사는 부인 도로시 오글(뒷줄 왼쪽)과 함께 1954년 한국에 파견되어 12녀를 두고 1974년 강제추방 당할 때까지 20년 동안 산업선교와 민주화 지원 활동을 펼쳤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정희 정권의 감시대상이 된 오글 목사는 197411월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양심수들을 위해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서 목요기도회에 참석해 사건이 조작된 사실을 알리고 피해자와 가족들을 위해 기도했다. 인혁당 피해자 부인들의 요청을 받아 기도를 했을 뿐이었으나 그는 곧바로 중앙정보부에 붙잡혀가 심문을 당하고 빨갱이라는 거짓 자백을 강요받았다. 이런 사실이 <뉴욕타임즈>에 보도되면서 파장이 커지자 박 정권은 오글 목사에게 강제 추방 명령을 내렸다. 명동성당에서 열린 인권회복기도회에 가다가 체포된 그는 1214일 아침 출입국관리소로 끌려가 다시한번 조사를 받은 뒤 그날 저녁 미국행 비행기에 태워졌다.

19741214일 조지 오글 목사가 강제 추방 명령으로 김포공항에서 대한한공 비행기에 오르며 주먹을 높이 들어 대한민국 만세, 하나님과 함께!”를 외치고 있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듬해 49일 새벽 박 정권은 인혁당 사건 선고공판 18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8명을 사형시키는 사법 살인을 감행했고, 그 가족들마저 빨갱이낙인으로 사회에서 철저히 매장시켰다. 이에 오글 목사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인혁당 사건의 진실을 알리는 운동에 앞장섰다. 미 의회 청문회에 나가 관련 증언을 하고, 한인 민주화단체와 함께 강연 등을 통해 한국의 인권 실태를 알렸다.

1975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조지 오글 목사 강연회 소식이 사진과 함께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 기관지 한민신보에 실렸다.

1994년 민청학련계승사업회 초청으로 20년 만에 한국을 다시 방문했던 오글 목사는 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되는 등 와병 이전까지 여러 차례 더 다녀갔다. 지난 2002년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외국 민주인사 초청 행사에 제임스 시노트 신부와 함께 참석한 그는 김포공항에서 강제로 대한항공 비행기에 탑승하러 가기 직전 한 인혁당 피해자의 부인이 자신의 손가락에 있던 금반지를 빼서 건네줬고, 비행기에 타자 한 승무원이 익명의 한국 젊은이가 쓴 응원의 편지를 전해줘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그때까지 30년 가까이 손가락에 금반지를 끼고 다녔다는 그는 민주화의 상징물로 그 반지를 한국에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인혁당 유족들은 인터넷도 없고, 언론도 철저히 통제가 된 당시의 한국 사회에서 조지 오글 목사의 이런 희생과 노력은 그야말로 한줄기 구원의 빛이 아닐 수 없었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20021015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외국 민주인사초청으로 방문한 조지 오글(맨왼쪽) 목사가 제임스 시노트(왼쪽 둘째) 신부와 함께 인혁당 조작 사건' 유족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그는 2002년 한국 노동자들의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을 인정받아 한국인권문제연구소로부터 제5회 한국인권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인혁당 사건 등 자신이 겪은 한국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역사소설 <기다림은 언제까지 오 주여!20세기 한국의 이야기>(신앙과지성사)를 출간하기도 했다.

20184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대표단이 미국 콜로라도 라파예트의 한 요양원에 있던 조지 오글(왼쪽 둘째) 목사와 부인 도로시(가운데)를 위문 방문했다. 오글 목사 부부는 유창한 한국말로 여전히 한국의 민주화와 발전을 기원했다. 사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지난 20184월 정진우 상임부이사장과 기독교민주화운동 상임이사인 김영주 목사 등으로 대표단을 꾸려 노환으로 콜로라도 라파예트의 한 요양원에 머물고 있던 오글 목사를 위문 방문했다. 김 목사는 “89살의 고령에도 여전히 유창하게 한국말을 하시고, 조화순 목사 등 인천에서 산업선교 활동을 함께 했던 동지들을 기억하며 안부를 전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해 지난 6월 제33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 오글 목사에게 민주주의 발전 유공 포상국민포장을 전달했다. 김경애, 장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