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권의 본질적 내용 침해…폐지해야”

 

국가인권위원회 전경.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헌법재판소에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3일 인권위는 현재 진행중인 사형제도에 대한 헌법소원(2019헌바59)에 대해 ‘사형제도는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므로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대한민국은 2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며 “유엔(UN) 자유권규약위원회 등 국제사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사형제도 폐지를 지속적으로 권고해왔고, 인권위 역시 2005년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의견표명을 시작으로 꾸준히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생명은 한 번 잃으면 영원히 회복할 수 없고,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며 존엄한 인간존재의 근원”이라며 “인간의 생명과 이에 대한 권리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 국가는 이를 보호·보장할 의무만 있을 뿐, 이를 박탈할 권한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또 “사형제도 유지 및 집행이 범죄억제 효과를 발휘하는지에 대해 확실하게 검증된 바가 없다”며 “범죄의 예방은 범죄억지력이 입증되지 않은 극단적인 형벌을 통해 가능한 것이 아니라, 빈틈없는 검거와 처벌의 노력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수사의 과학화와 사법절차 개선을 통해 오판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사형제도 존치론 쪽의 주장에 대해서는 “2007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희생자들과 같이 오판에 의해 사형이 집행되었을 경우 그 생명은 회복할 수 없다”며 “무고하게 제거된 한 생명의 가치는 아무리 공공의 이익을 강조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형벌의 목적 중 하나인 교화의 측면에서 볼 때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이미 제거된 생명을 교육해 순화할 수 있는 방법이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사형은 교육 순화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유일한 형벌로, 사형을 대체해 형벌제도가 꾀하는 정책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체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사형제도는 인간의 존엄에 반하는 잔혹한 형벌로, 국가가 형벌의 목적달성을 위해 그 수단으로 삼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되고 생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며 “사형제도에 대한 3번째 헌법재판소 결정을 앞두고 대한민국이 사실상 사형폐지국을 넘어 사형제도를 폐지함으로써 인간의 존엄한 가치가 존중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윤주 기자

싸이월드 누리집 갈무리.

 

지난해 폐업 처리 됐던 싸이월드가 부활의 기회를 찾았다. 3천만명 넘는 회원들이 추억을 되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콘텐츠 회사 슈퍼맨씨엔엠(C&M) 등이 모인 ‘싸이월드제트(Z)’는 2일 보도자료를 내어 “싸이월드 서비스를 인수하고 올 3월 기존의 서비스를 정상화하려고 한다”며 “기존 서비스를 정상적으로 재개한 뒤, 수년간 이어지고 있는 ‘레트로 열풍’을 반영한 ‘모바일 3.0버전’ 서비스도 내놓겠다”고 밝혔다.

싸이월드는 지난해 6월 최종 폐업처리 됐고, 전제완 싸이월드 대표는 경영난을 이유로 직원들의 임금을 체불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지난 11월 1심에서 전 대표는 직원 27명의 임금과 퇴직금 4억7천만원 상당을 체불한 혐의에 대해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전 대표는 혐의는 인정하지만 인수 작업이 끝난 뒤 다시 판결을 받아보겠다면서 항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싸이월드제트 쪽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전 대표는 서비스 매각대금 10억원으로 지난 1월29일 임금체불 문제를 완전 해결했다”며 “임금체불이 해소됨에 따라 서비스 재개 절차에 돌입했다. 14개월만에 서비스 재개를 통해 점유율 회복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1999년 설립된 싸이월드는 2001년 미니홈피 서비스를 시작한 뒤로 2000년대 내내 ‘원조 에스엔에스(SNS)’로 큰 인기를 끌었다. 2009년에는 일촌 건수가 10억건, 회원수는 3200만명에 달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등장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글로벌 서비스에 크게 밀리며 경영이 악화됐고, 2019년 10월 서비스가 중단됐다. 이에 싸이월드에 남아있는 3200만명 회원들의 사진 170억장, 음원 파일 5억3천여개, 동영상 1억5천여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불거졌다. 최민영 기자

 

“9 ·19 군사합의 남북 간 긴장 완화 기여”
‘북한=적’ 특정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규정

 

2020년 국방백서와 2018년 국방백서.

 

2년마다 발간되는 ‘2020년 국방백서’에서 일본에 대해 ‘동반자’란 표현이 삭제되고 ‘이웃국가’로만 표기됐다.

국방부는 2일 이런 내용이 담긴 ‘2020년 국방백서’를 발간했다. 내용을 보면, 일본에 대해 “양국관계뿐 아니라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도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할 이웃국가”라고 설명했다. 2018년 국방백서에서 “한일 양국은 지리적, 문화적으로 가까운 이웃이자 세계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할 동반자”라고 했던 것에서 ‘동반자’란 규정이 빠진 것이다.

이는 최근 최악의 상태인 한-일 관계가 반영된 기술로 보인다. 앞서 일본은 지난해 7월 2020년 방위백서에서 일본의 안보 협력 대상 국가로 한국이오스트레일리아(호주), 인도, 아세안(필리핀 등 동남아 10개국)에 이어 네 번째로 거론하는 등 한국의 중요성을 의도적으로 평가절하했다.

이번 국방백서는 또 일본의 왜곡된 역사 인식과 독도 영유권 주장, 2018년 12월 일본 초계기의 위협 비행, 2019년 7월 수출 규제 등을 하나하나 거론하며 양국 국방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에 장애 요소가 되고 있다고 적었다. 또 정부는 언제든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의 효력을 정지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일본의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조치에 대해 단호하고 엄중하게 대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만 공동의 안보 현안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방부 당국자는 “외교부 등 관련 부처와 협의해서 국방부 입장에서 이웃국가로 쓰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고, 한-일관계가 불편한 상황 등도 고려됐다”고 말했다.

백서는 남북간 2018년 체결된 9·19 군사합의에 대해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획기적으로 완화되었다”고 적극 평가했다. 백서는 “북한군이 과거 군사분계선 5㎞ 이내 구역에서 다수의 포병사격 및 야외기동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했으나 ‘9·19 군사합의’ 이후에는 일체 실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또 그동안 100여 회의 총격·포격 도발이 발생했던 비무장지대에서도 “2020년 5월 중부전선 우리측 감시초소를 향한 총격 사건이 발생한 것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군사적 긴장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고, 서해 완충구역에서도 북한군이 “2019년 11월 창린도에서 해안포 사격을 제외하고는 함포·해안포의 실사격 및 해상기동훈련을 실시하고 있지 않으며 북한 해군함정의 북방한계선 침범 사례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명시했다. 국방부 당국자는 “북한의 9·19 군사합의 위반 사례는 2019년 11월 창린도 해안포 사격훈련과 2020년 5월 비무장지대 지피(GP·감시초소) 총격 등 두 건”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해선 플루토늄은 50여㎏, 고농축우라늄은 “상당량”을 보유했으며, 핵무기 소형화 능력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2018년 백서의 평가를 그대로 유지했다. 국방부 당국자는 “북한이 그동안 재처리시설을 가동한 징후가 발견되지 않아 플루토늄 보유량은 변함이 없는 것으로 평가하며, 우라늄농축시설이나 핵무기 소형화 기술은 은밀히 진행되고 있어서 정확히 평가할 자료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미사일 능력에 대해선 “2019년 이후 작전 운용상 관리가 유리한 다종의 고체추진단거리탄도미사일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3형을 시험 발사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10월 당 창건 75돌 열병식에 나온 탄도미사일은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북극성-4ㅅ’ 등 9종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2019년 첫선을 보인 이래 초대형방사포라고 지칭한 무기는, 이번 백서에서 단거리탄도미사일(SLBM)로 분류했다. 방사포는 연속 사격 능력이 특징적이며, 비행 궤적도 탄도미사일과 조금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당국자는 “북한은 전체 시스템 측면에서 방사포라고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발사체가 탄도미사일에 가까운 기능을 보인다는 점에서 단거리탄도미사일로 규정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북한이 운용하는 미사일여단은 2018년 백서에서 9개였으나, 이번 백서에선 13개 여단으로 늘어났고, 기계화보병사단은 4개에서 6개로 증가됐다. 또 특수전 부대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특수작전군을 별도의 군종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적시됐다. 국방부 당국자는 북한의 미사일여단 증가에 대해 “그동안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13개라는 주장이 꾸준히 있었는데, 이번에 이를 받아들인 것”이라며 “그렇지만 실제 그만한 미사일이 다 배치돼 편제된 것인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좀 더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기계화보병사단에 대해 “실제 늘어난 것이 아니라 애초 기계화보병군단으로 알고 있던 것이 지난해 10월 당창건 75돌 열병식에서 사단으로 호칭한 것이 확인돼 이를 반영해 수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미 연합훈련은 지난해 육군 29회, 해군 70회, 공군 66회, 해병대 7회를 했다고 기록했다. 해·공군은 전년 대비 각각 9회, 49회 늘어났고, 육군과 해병대는 같은 기간 60회, 17회씩 줄어든 것이다. 국방부 당국자는 “코로나19 상황에서 해·공군은 비대면 훈련이 가능한 반면, 육군과 해병대 훈련은 사람이 모여야 하기 때문에 차이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백서에 ‘북한은 적’이란 표현은 들어가지 않았다. 2018년 국방백서와 마찬가지로 북한 등 특정 국가나 세력을 지칭하지 않은 채 “우리 군은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고 포괄적으로 규정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2018년 국방백서 내용을 유지하여 북한의 위협뿐 아니라 잠재적 위협, 초국가적·비군사적 안보위협을 포괄할 수 있는 개념으로 기술됐다”고 밝혔다.

이날 공개된 백서는 2일부터 국방부 누리집에서 열람과 내려받기가 가능하며, 정부 기관과 국회, 연구소, 도서관 등에는 이달 안에 책자로 배포될 예정이다. 또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등 다국어 요약본으로도 올해 상반기에 발간된다. 국방백서는 2년에 한 차례 국방정책 홍보 등을 위해 펴내는 것으로, 이번 백서가 1967년 이후 24번째이다.    박병수 기자


일본, 국방백서에 공개 반발…주일 무관 불러 항의

 

국방부, '2020 국방백서' 발간

일본 정부는 한국 국방부가 2일 발간한 '2020 국방백서'에 일본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것에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특히 국방백서가 일본 정치지도자들의 독도 도발(영유권 주장), 2018년 일본 초계기의 한국 함정에 대한 근접 위협 비행과 이에 대한 '사실을 호도하는 일방적 언론 발표'로 한일 양국 국방 관계가 난항을 겪었다고 기술한 것에 대해 외교 경로로 항의의 뜻을 표명했다.

일본 방위성 당국자는 주일본한국대사관 무관을 불러 "우리나라(일본)로서는 수용할 수 없다. 매우 유감이다"는 뜻을 전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이시카와 다케시(石川武) 방위성 보도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영유권에 관한 우리나라의 입장과 양립하지 않는 내용이 기술됐다"며 "북한의 핵·미사일을 둘러싼 상황을 포함해 일한(한일), 일미한(한미일)의 협력은 중요하다. 협력을 손상하는 일이 없도록 한국 측에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국방백서에 대한 불만을 자국 언론에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은 다소 이례적으로 보인다.

'2018 국방백서'가 공개된 2019년 1월 15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당시 일본 관방장관은 한국이 일본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기본 가치를 공유한다'는 내용이 국방백서에서 삭제된 것에 대해 "논평을 삼가겠다"고 반응한 바 있다.

일본 언론은 2020 국방백서에서 일본에 대한 표현이 '동반자'에서 '이웃국가'로 격하된 것에 대해 작년 공개된 일본 방위백서에 대항하는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산케이신문은 한국의 국방백서에서 일본에 대한 기술이 2018년 판에선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할 동반자'였지만, 2020년 판에선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할 이웃나라'로 바꿨다고 이날 보도했다.

신문은 이에 대해 일본 정부가 작년 7월 공개한 방위백서에서 '한국과 폭넓은 분야에서 방위 협력을 추진한다'는 문구가 삭제된 것에 대항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교도통신도 국방백서의 일본 표현 변화를 보도하면서 한국 국방부 관계자는 2019년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강화 조치 등을 이유로 "(일본에 대한 표현은) 이웃국가가 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 발행된 2018년 판 국방백서에선 '한일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표현이 삭제된 점도 거론했다.

일본 민영 방송사 뉴스 네트워크인 NNN도 한국 국방백서에서 일본에 대한 표현이 동반자에서 이웃국가로 "후퇴했다"고 보도했다.

NNN은 북한에 대해서는 2년 전 국방백서와 마찬가지로 '적'이라고 표현하지 않은 사실을 전하면서 "북한에 대한 자극을 피하고 남북 대화 재개를 모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연합뉴스

이병령 위원 “한국 단독추진 100% 불가능”
“국민의힘 김종인 위원장 주장 완전히 틀려
비핵화 대비해서 미리 검토했다면 잘 한 일”

 

이병령 원자력안전위원(원자력공학 박사).

 

산업통상자원부 내부에서 작성된 북한 내에 원전 건설을 검토한 문건을 근거로 보수야당이 “이적 행위”, “대북 원전 게이트”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데 대해 야당 추천으로 원자력안전위원이 된 원자력 전문가가 “한심하다”며 쓴 소리를 쏟아냈다.

이병령 원안위원(원자력공학 박사)은 4일 <한겨레>와 전화 인터뷰에서 “한국이 미국 동의 없이 북한에 원전을 짓는 것은 미국과 단교를 하고 한다고 해도 안 될 일”이라며 “‘이적행위’라는 얘기는 말이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틀린 얘기”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올해 74세로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온 원자력계의 원로다. 원자력연구원에서 한국형 경수로 개발책임자와 원전사업본부장을 역임하고 2018년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원안위원이 됐다.

이 위원은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면 돈이 8조~10조원이 들고 공사 기간도 7~8년이 걸린다”며 “미국 주도로 모든 나라가 북한에 김정은 사치품이 들어가는 것도 막고 있는 마당에, 한국 정부가 미국의 적극적 동의 없이 북한에 원전을 세우는 것은 100% 불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슈퍼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 산업부의 과장 국장이 지금 공개된 내용보다 훨씬 더 나가서 ‘원전 당장 지어줘야 된다’고 결론을 낸 문서를 만들어서 위에 보고를 했든 안 했든 그게 무슨 대수겠느냐”며 “언론에 가십 정도로 다뤄질 일을 놓고 무슨 큰 문제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은 너무 생각이 짧은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지시로 만들었어도 문제될 게 없다”

이 위원은 특히 김종인 국민의힘 위원장을 겨냥해 쓴소리를 했다. 산업부 공무원이 감사원의 월성 원전 감사를 앞두고 삭제한 문서 파일에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이 포함됐다는 검찰의 공소장이 지난달 29일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김 위원장은 “정부가 북한에 극비로 원전을 지어주려는 이적행위를 했다”고 주장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 문건은 이후 산업부가 전문을 공개하면서, 북한의 비핵화에 대비해 미·일 등과 공동 의사 결정을 통해 추진하는 방안 등을 검토한 자료로 확인됐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3일 비대위 회의에서도 “핵무기 재료가 될 수 있는 원전을 북한에 지어주는 계획이 사실로 드러났다”며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고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이 위원은 “그 분은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을 도입한 공로도 있고 해서 내가 존경해 온 분인데, ‘이적 행위’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 듣고 깜짝 놀랐다. 제1야당의 대표인데 저렇게 경솔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나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이 위원은 “북한 원전 건설은 비핵화를 전제로 한다는 얘기는 굳이 할 필요도 없이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설령 그 문서가 산업부 국장 과장이 아니라 청와대에서 누가 만들어 보라고 해서 만들었다고 해도 문제될 게 무엇이냐”며 “그런 일을 두고 제1야당과 언론이 난리를 치는 것은 기가 막히고 한심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열린 대북 원전 의혹 긴급 대책회의에 참석해 “정부가 진상을 밝히지 않으면 국회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 위원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질 때 한국이 북한에 원전을 건설해주지 않으면 중국이 지어주고 북한을 손아귀에 넣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그는 “그렇게 되는 것은 민족의 비극”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은 “회사가 호황에 불황을 대비하고 불황에 호황을 대비한 준비를 해놓는 것처럼 공무원은 남북 관계가 완전히 얼어 붙었을 때도 풀릴 때를 준비하고 공부하고 그러는 것이 바람직하다. 2018년 당시에 누가 그런 준비를 시켰다고 한다면 그 공무원은 사전 준비를 잘 하는 훌륭한 공무원”이라고 말했다.

산업부가 이 내부 검토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나와 있는 날짜(검찰 공소장 기준)는 2018년 5월14일로, 한반도가 전례 없는 평화 분위기에 빠져 있던 때였다. 3월5일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가 전격 발표되고, 4월27일 이뤄진 회담에서는 연내 종전선언을 천명한 판문점 선언까지 나왔다. 5월11일에는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개최 발표까지 나와 남북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안팎의 기대가 한껏 높아진 상황이었다. 김정수 기자

 

USB 논란  “미 강경파 볼턴도 문제삼지 않아”

정의용, ‘미국과 내용 공유’ 작심 공개해  쐐기

 

정의용 외교부 장관 후보자.

 

4·27 판문점 회담을 총괄했던 정의용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2일 오후 작심하고 기자들을 만났다. 그는 이날 퇴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이동식저장장치(USB·이하 유에스비)를 공개하라는 야당의 요구에 대해 “적절치 않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이적행위’에서 ‘유에스비 공개’로 논점이 바뀐 야당의 공세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정부의 태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정 후보자가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택한 카드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시절 자신의 대화 상대(카운터파트)였던 존 볼턴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유에스비의 내용을 공유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것이다. 대북 초강경파로 잘 알려진 볼턴 전 보좌관은 지난해 펴낸 자서전 <그 일이 일어난 방>을 통해 북-미 핵협상 과정에서 한-미 간에 이뤄진 시시콜콜한 논의 내용을 폭로하고, 정의용 후보자를 다소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유에스비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을 남기지 않았다. 볼턴 전 보좌관도 문제를 삼지 않은 사안이니, 야당도 이제 자중해야 한다고 요청한 셈이다. “현재 남북관계의 전반적 상황에 비춰” 유에스비 공개가 적절하지 않다고 한 언급에선 새로 취임한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 대북 정책을 조율하기 앞서 이 문제가 남북관계에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기 바란다는 속내도 읽을 수 있다. 정 후보자는 사안의 성격상 “더 설명할 수 없을 거라 본다. 유에스비 내용은 언젠간 공개될 것이다. 지금 공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밖에 정 후보자는 정부가 북에 원전을 제공하는 논의를 했는지에 대해선 “정부 차원에서, 청와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원에서 전혀 검토하지 않았다”며 원전 제공을 위해서는 △한반도 비핵화 협상 마무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해제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북한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간 세이프가드 협정 체결 △원전 제공국과의 양자 협정 체결 등 최소 5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짚었다.

청와대도 유에스비 비공개로 기조를 정하고,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날 오전 <문화방송>(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유에스비 공개 요구에 “아무 근거 없이 의혹 제기를 한다고 정상회담에서 있었던 일, 또 오갔던 것을 무조건 다 공개한다면 나라가 뭐가 되겠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수석은 “야당이 (공개해도 괜찮다는) 자신 있으면, 책임 있게 걸라”며 “야당이 명운을 걸면 청와대도 그에 상응해 할 수 있는 일은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야당은 유에스비 공개를 줄곧 요구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하태경 의원은 <티비에스>(TBS) 라디오에서 “정보위에서 (비공개로) 공개하면 된다”며 “그렇게 해서 해명이 되면 (원전 추진을) 안 했다더라”고 논란이 정리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완 길윤형 기자

산업부 ‘북 원전’ 6쪽 문서 공개…극비리 추진 정면 반박

“내부검토 자료” 해명불구 야권 논란 지속에 공개
고려사항  첫 줄  “미·일 등 외국과 공동구성” 명시

 

신희동 산업통상자원부 대변인이 지난달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북한 원전 추진 의혹 관련 주장에 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통상자원부가 1일 야당에서 현 정부의 ‘이적 행위’의 근거 자료라고 주장하는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문서를 공개했다. 야당은 이 문서가 월성원전 감사를 앞두고 산업부 직원이 삭제한 530개 파일에 포함돼 있다는 검찰의 공소장을 근거로 정부가 북한에 극비로 원전 건설을 추진한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업부는 이에 앞서 31일 브리핑을 열어 이 문서가 “남북 경협이 활성화될 경우를 대비해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자료”라며 “북한에 원전 건설을 극비리에 추진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논란이 계속되자 “불필요한 논란의 종식을 위해” 정보공개심의위를 거쳐 원문을 전격 공개한 것이다.

산업부가 공개한 여섯쪽의 문서는 맨 앞에 “동 보고서는 향후 북한 지역에 원전 건설을 추진할 경우 가능한 대안에 대한 내부검토 자료이며,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님”이라고 적혀 있다. 또 ‘고려사항’의 맨 첫줄에 “(추진 체계) 의사결정 기구는 미·일 등 외국과 공동 구성”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일단 추진 체계를 외국과 공동 구성한다는 점에서 극비리에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는 야당 등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또 이 문서가 여전히 산업부 전산망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정부 차원의 은폐와는 무관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

문건은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방안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케도) 부지인 함경남도 금호에 건설 △비무장지대에 건설 △신한울 3·4호기 건설 후 북한으로 송전 등 세가지를 설정해 장단점을 검토했다. 건설할 원자로 노형과 함께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에 대해서도 언급돼 있다.

문서의 검토의견에는 북한에 건설하는 1안이 “소요시간과 사업비, 남한 내 에너지전환 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 설득력이 있다”면서도 “현재 북미 간 비핵화 조치의 내용·수준 등에 따라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 향후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적혀 있다. 산업부는 삭제된 자료 530개 가운데 북한 원전 관련 자료로 예시된 17개 파일 가운데 산업부가 작성한 자료는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과 ‘에너지분야 남북경협 전문가’ 2개이고, 나머지 자료는 과거 케도 관련 자료와 전문가 명단이라고 밝혔다. 김정수 선임기자

 

문 대통령 “구시대 정치로 대립 부추겨”…‘원전 공세’ 작심비판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야당의 ‘대북 원전 지원 의혹’ 공세를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로 규정하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야권 지도자들을 향해 “정치를 후퇴시키지 말라”고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연 수석·보좌관 회의 머리 발언을 통해 “가뜩이나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로 대립을 부추기며 정치를 후퇴시키지 말기 바란다”며 “민생문제 해결을 두고 더 나은 정책으로 경쟁하면서 협력하는 정치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지난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이동저장장치(USB) 자료 가운데 원전 건설 제안이 들어있다는 야당의 의혹 제기를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유력하다. 문 대통령으로선 야당의 ‘탈원전’ 이슈를 ‘북핵’ 프레임에 엮어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야권의 시도에 최대한 정제되면서도 엄중한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앞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사건’과 관련한 검찰 공소장에 근거해 “대한민국 원전을 폐쇄하고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려 한 것은 정권의 운명을 흔들 수 있는 이적행위”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혹세무민한 발언”이라고 했고, “(북한에 건네준) 자료에는 ‘원전‘의 ‘원’자도 들어있지 않다”(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건설비용만 5조원이 들고 건설기간이 10년 넘게 걸리는 원전을 어떻게 극비리에 합의할 수 있겠냐”(윤영찬 의원·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고 하는 등 여권의 반격도 이어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도 기자들과 만나 “선을 넘는 정치공세다. 색깔론”이라고 격앙된 내부 분위기를 전달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이 남북협력을 위한 정책 아이디어 차원에서 작성한 것을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는 것으로 연결하는 것은, 선거를 앞두고 펼치는 전형적 정치공세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발언에서 코로나19 방역 조처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 대한 송구함도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일부 종교시설 등의 집단감염으로 인해 다시 늘어나는 일이 거듭되고, 결국 자영업자들을 비롯한 민생의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게 되어 참으로 속상하다”면서 “특히 영업시간을 1시간만이라도 늘려달라는 요구 조차 들어주지 못하고 또다시 결정을 미루게 되어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또 “지난 추석에 이어 이번 설에도 고향 방문과 이동을 자제해 주실 것을 당부드리게 되어 매우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영업손실 보상에 대한 대책 마련이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사회 전체적으로 손실과 고통을 나누는 현실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면서 “정부의 방역 조치로 발생하는 손실을 보상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 마련과 함께, 그때까지 발생하는 피해에 대한 지원대책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완 기자


김정은에 건넨 USB엔 ‘화력 설비 개선과 재생에너지 구축’ 담겨

 

특정 지역에 화력발전소 설비 개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당시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한 뒤 서로 손을 맞잡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건넨 이동저장장치(USB)에 담긴 에너지 지원 대책 내용이 조금씩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북한의 특정 지역에 대한 화력발전소 설비 개선과 함께 서해안과 동해안에 조력·풍력·태양열 등 신재생 에너지 생산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1일 통일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당시 문 대통령이 유에스비에 담아 건넨 ‘신한반도경제구상’에서 에너지협력 내용은 ‘OO지역 등에 대한 화력발전소 설비개선과 함께 서해안은 조력, 동해안은 풍력과 태양열 등 신재생 에너지를 구축하겠다’는 방안이 포함됐다. 이 자료를 확인한 관계자는 “에너지 지원 관련한 분량은 한 쪽에 8~9줄 정도였고 이중 발전소 관련한 것은 두서너줄이었다. 설비를 개선해주겠다는 화력 발전소의 구체적 숫자는 없었다”고 전했다.

이밖에 에너지협력 부분엔 ‘동북아 수퍼그리드’ 구상이 담겼다. 동북아 수퍼그리드는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 등 5개국이 참여하는 초대형 신재생에너지 전력망 연결 사업인데, 여기에 북한도 포함해 전력망을 구축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중단된 개성공단의 송전을 다시 재개하려면 몇 년이 걸린다’는 취지의 내용도 포함됐다.

앞서 지난달 31일 통일부는 기자들에게 입장 자료를 배포해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측에 전달한 ‘한반도 신경제구상’에는 원전이라는 단어나 관련 내용은 전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서영지 기자


천영우 “비핵화 전제로 한 북 원전 추진, 호들갑 떨 일 아냐”

북한 원전 정치권 논란에 “이적행위 지적은 본질과 어긋나”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 미래포럼 이사장이 최근 정치권에서 불거진 북한 원전 건설 문제와 관련해 “(국제비확산체제에 따라) 북한 비핵화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원전 건설을 검토한 것이라면 호들갑을 떨 일은 못 된다”고 말했다.

천 이사장은 1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야권에서 ‘이적행위’라고 지적한 북한 원전 건설 검토 문제와 관련해 “북한 원전 건설 문제는 1994년 김영삼 정부 시절 제네바 기본합의 때부터 나온 얘기다. 북한 핵이 있는 동안에 (북한 원전 건설 지원은) 국제법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천 이사장은 2006~2008년 북핵 6자회담 한국 수석대표를 맡았고, 1999~2001년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 국제부 부장으로 제네바 합의에 따른 북한 함경남도 신포(북청) 경수로(원전의 한 종류) 공사 관련 업무를 직접 담당했다. 2008년 중단된 6자회담을 끝으로 공식 석상에서 관련 논의가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에 천 이사장은 한국 정부에서 이 문제를 마지막으로 다룬 책임자가 된다.

천 이사장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31일 “북한 원전 건설 구상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천영우 외교통상부 2차관이 처음 언급했다”며 자신을 호출하자, 이 문제와 관련된 견해를 31일과 1일 두차례에 걸쳐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1일 오전 글에서 북한 원전 건설은 “현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미국의 대북 제재가 해제”되고, “북한이 핵폐기를 완료한 뒤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전면 사찰을 받을 때만 가능하다”면서 핵확산금지조약(3조 2항)과 이를 뒷받침하는 원자력공급국그룹(NSG)의 통제 리스트 등 관련 규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그는 이어 미국의 원천기술 등이 포함된 품목의 대북 이전을 위해서는 “미국의 동의가 필요”해 북한이 미국의 원천기술로 건설된 원전을 비평화적 목적에 전용하지 않는다는 법적 의무를 규정한 (북-미) ‘원자력 협력협정’의 체결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천 이사장은 “이런 절차는 (한국이)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원전을 건설할 때도 거친 것이고 어느 나라에 원전을 수출하든 필수적으로 거치는 법적 요건”이라며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는 전제하에 북한 비핵화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원전 건설을 검토한 것이라면 호들갑을 떨 일은 못 된다”고 결론냈다. 다만 그는 “일어날 가망이 없는 일”을 산업부가 검토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법적 제도적 규범을 산업부가 모르고 검토한 것이라면 그 무지의 수준에 경악할 일”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천 이사장은 전날엔 원전을 짓기 위한 여러 국제적 제약을 “북한도 잘 알고 있다”며 “2007년 남북 6자회담 수석대표 협의에서 (북쪽 대표) 김계관은 중단된 경수로 공사를 재개하는 조건으로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와 핵물질을 일정한 장소에 모아 6자회담 5개 참가국이나 3개 핵보유국이 공동감시하에 두었다가 원전 건설이 완료되면 반출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적도 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이 글에서도 원전 검토를 “‘이적행위’로 규정한 것은 사안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지은 기자

‘대북 원전 게이트’가 ‘가짜 쟁점’인 세 가지 이유

  

첫째, 대북 경수로(형 핵발전소) 건설은 미국과 국제사회 북한 비핵화보상책 꾸러미.

둘째, ‘북에 핵발전소 지어주기남북 당국차원의 양자 협력 공식·제기 논의된 적 없다.

셋째, 미국과 유엔의 고강도 대북 제재가 완화·해제되지 않는 한 불가능한 프로젝트.

 

미국 정부는 19941021제네바 기본합의서를 통해 북한에 비핵화의 대가로 경수로형 핵발전소 2기를 지어주겠다고 공식 약속했다. 이를 근거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가 북한 함경남도 신포지구에 짓던 한국형 경수로 핵발전소의 원자로 기초콘크리트 타설공사(200287) 모습. 케도 누리집 갈무리   

 

정치권을 느닷없이 뜨겁게 달구는 이른바 북한 원전 건설 지원 의혹은 전형적인 가짜 쟁점이다.

일단 세 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대북 경수로(형 핵발전소) 건설 지원 사업은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오랜 북한 비핵화보상책 꾸러미의 하나다. 둘째, ‘북한에 핵발전소 지어주기는 남북 당국 차원의 양자 협력 사업으로 공식적으로 제기되거나 논의된 적이 없다. 셋째, 무엇보다 미국·유엔의 고강도 대북 제재가 완화·해제되지 않는 한 북한에 핵발전소 지어주기는 종이 위의 집만큼의 가치도 없는 몽상이자 불가능한 프로젝트.

1994년 북-제네바 기본합의서에 명시된 핵발전소 계획

우선 대북 경수로 건설 사업은 비밀 프로젝트가 아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공개 프로젝트다.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실천하면 경수로를 지어주겠다는 건 국제사회의 공식 약속이다. 말뿐만 아니다. 북한 함경남도 신포에 한국형 경수로를 탑재한 핵발전소 건설 공사를 실제로 진행했다. 19941021일 합의·발표된 북한과 미국의 제네바 기본합의서가 그 근거다. 이 합의서 11항은 미합중국은 19941020일부 미합중국 대통령의 담보 서한에 따라 2003년까지 총 200만킬로와트 발전능력의 경수로 발전소들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제공하기 위한 조처들을 책임지고 취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미국·한국·일본·유럽연합(EU) 등이 이사국으로 참여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케도)가 구성돼 북한 신포에 한국형 경수로를 탑재한 100만 킬로와트급 핵발전소 2기를 짓는 건설 공사가, 국민의힘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이 집권당이던 김영삼 정부 때 시작됐다. 경수로를 한국형으로 하는 조건으로 건설 비용의 70%는 한국이 대기로 했다. ‘신포 경수로200287일 원자로 기초콘크리트 타설 공사를 하기도 했으나 그해 10월 이후 이른바 ‘2차 북핵위기의 발발과 함께 건설 공사가 중단됐다.

한반도 비핵화의 청사진으로 불리는 20056자회담 9·19공동성명 합의·채택의 주역인 송민순 당시 6자회담 한국 수석대표(오른쪽 둘째)와 김계관 북한 단장(왼쪽 둘째), 크리스토퍼 힐 미국 수석대표(왼쪽 첫째)가 어울려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059·19공동성명핵 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북한 권리 인정

경수로 건설 사업2000년대 중반 6자회담을 거치며 되살아났다. 20059196자회담에서 합의·발표된 ‘9·19 공동성명1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여타 당사국들은 이에 대한 존중을 표명하였고, 적절한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경수로 제공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데 동의하였다고 명시했다. 아울러 3조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일본, 대한민국, 러시아연방 및 미합중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 에너지 지원을 제공할 용의를 표명하였다.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200만킬로와트의 전력공급에 관한 2005712일자 제안을 재확인하였다고 명시했다. ‘200만킬로와트 대북송전, 참여정부가 6자회담 비핵화 합의의 마중물 차원에서 2005년에 제안한 내용의 재확인인데, 200812월 이후 6자회담의 장기 공전으로 실행되지는 않았다.

북한과 미국 또는 북한과 국제사회의 비핵화관련 합의에 경수로또는 에너지 지원이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건, 북쪽이 이 협상을 안전 담보와 함께 에너지 문제 해소의 지렛대로 활용해온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애초 대북 경수로 건설 지원 약속은 198512월 고르바초프의 소련이 북한의 줄기찬 요청을 받아들여 경수로 4기를 신포에 지어주기로 약속한 데서 출발했다(물론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조인이 전제조건으로 달렸다). 고르바초프의 이 약속은 소련연방의 해체로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고, 1990년대 초 이른바 1차 북핵위기를 거쳐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에서 미국 정부의 경수로 건설 지원 약속으로 되살아났다. 경수로 건설 지역으로 거듭 지목된 신포는 남쪽 사람들한테는 북청사자놀음 또는 북청물장수로 유명한 그 북청의 새로운 행정구역명이다.

멀리는 1985, 짧게 잡아도 1994년부터 이어진 대북 경수로 건설 지원 프로젝트2019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중단 상태인 핵협상이 재개되면 다시 북한의 의미있는 비핵화 실천을 이끌 보상책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렇듯 대북 경수로 건설 지원방안은 1990년대 이후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동북아 당사국들과 유럽연합의 북한 비핵화 보상책으로서 다자 프로젝트로 검토·추진·실행돼왔을 뿐, 남북 당국 차원의 양자 협력 사업의 맥락에서는 논의된 바 없다. 역대 한국 정부는 198221일 전두환 정권의 손재식 국토통일원장관이 ‘20개 남북 협력 시범 실천 사업을 제안한 이후로 지금껏 도로·철도 연결이나 자연자원 공동개발 등은 논의·실천해왔으나 핵발전소 건설은 양자 차원에서 다룬 적이 없다. 이런 논의 지형의 역사는 비핵화문제가 결정적 고빗길을 넘기 전에는 달라질 가능성이 없다.

미국 협력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북한 핵발전소 건설

무엇보다 지금은 미국과 유엔의 고강도 대북 제재가 북한과 협력사업을 전방위로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다. 코로나19를 포함한 감염병 예방과 임산부·영유아 영양 지원 등 국제사회의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조차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1718위원회)제재 면제등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기술적 측면에서 봐도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건설 사업이 한동안 진행된 한국형 경수로도 그 원천 기술은 미국이 갖고 있어, 설혹 대북 제재가 완화·해제되더라도 미국의 동의·협력이 없이는 한국 정부가 혼자 어쩌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정이 이런데 경수로 건설 사업의 비밀 추진이라고? 실체를 찾을 수 없는 아주 이상한 질문이다. “핵무장한 북한에 핵발전소를? 충격적 대북 원전 게이트라는 국민의힘의 인식과 주장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훈 선임기자

      
윤건영 “2018년 회담선 원전 얘기 안해에너지 협력은 오랜 과제

 

문재인 정부 초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인터뷰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가운데) 등이 지난 201972일 오전 청와대 본관 세종실에서 열린 국무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1“2018년도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원전자도 꺼내지 않았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그해 427일 판문점 정상회담 환담장에서 김 위원장에게 건넨 한반도 신경제 구상이 담긴 이동식저장장치(USB)에는 남북간 에너지협력과 관련한 내용은 있었지만, 원전 건설 지원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 의원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4·7 보궐선거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신북풍을 일으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윤 의원과의 일문일답.

야당은 문 대통령이 20184월 정상회담 당시 김 위원장에게 원전 건설 지원을 제안한 것 아니냐고 한다.

관련 언급이 없었다는 건 20184월 대통령도 얘기했다. 일부 언론은 도보다리에서 유에스비가 전달됐다고 하는데, 회동 장면이 전세계에 생방송 중계가 되던 상황에서 유에스비 전달이 가능했겠나?”

당시 청와대는 유에스비에 한반도 신경제 구상발전소관련 내용이 있다고 했는데, 원전 건설 지원 내용이 들어 있었던 건 아닌가?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2015년 문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발표한 것이다. 남북이 경제협력을 통해 성장의 동력으로 삼자는 것이다. 2018년 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에게 이 내용을 종합해 비핵화를 달성한다면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건넸다. 이걸 원전이랑 연결시키는 건 황당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427일 판문점 안 도보다리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당시 김의겸 대변인이 두 정상 간 대화에서 있었다고 언급한 발전소 내용이라는 건 뭔가?

건네준 유에스비에는 원전자도 없다. 에너지협력도 들어가 있지만, 원전은 절대 없다.”

에너지협력의 경우, 전력 생산 단가나 안전성 면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은 한국형 원전 건설 지원이 포함될 수도 있지 않나? 아이디어 차원에서라도.

남북간 에너지협력은 오랫동안 논의된 과제이고, 비핵화 과제 중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다. 과거 역대 정부가 다 그 과정을 거쳐왔고, 김영삼 정부도 한··일이 참여하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만들어서 (원전 건설 지원을) 추진했다. 9·19 공동성명 때도 비슷한 약속이 있었다. 다만 원전을 지어주겠다는 말이 (2018년 정상회담에서는) 없었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이라는 전제로,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전력난 극복을 위해 발전소 건설 지원이나 에너지협력을 검토할 수는 있지 않나?

당연히 해야 한다. 다만 2018년도에는 논의 단계가 아니었다. 2017년까지 남북은 전쟁 위기가 엄청나게 가중되던 상황이었다. (북한이) 핵개발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게)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

왜 야당이 원전 문제를 들고나왔을까?

김종인 위원장이 신북풍 공작을 하고 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서해북방한계선(NLL·엔엘엘) 관련 의혹으로 재미를 보더니, 보궐선거와 대선을 앞두고 신북풍을 일으켜 재미를 보려는 거라고 생각한다.”

산업부 공무원의 자료 삭제 행위가 이런 의혹까지 불러왔다. 월성원전 1호기 감사와 무관해 보이는 북한 전력 관련 문건까지 삭제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왜 삭제했는지는 검찰 수사 결과로 나올 거다. 제가 뭐라 할 사안은 아닌 거 같다. 다만 20185월은 한반도 봄이라고 불렸던 시기로 남북경협, 평화협력 등 많은 아이디어가 제시됐을 때다. 공무원 컴퓨터 안의 아이디어 문서가 모두 정상회담 의제가 될 수는 없다.” 

     
문 대통령 김종인 도 넘어이적행위발언에 격앙

 

민정수석실, 법적 대응 수순 돌입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9월 도보다리 위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국민의힘이 북한 원전 극비리 건설 추진설을 제기하며 정치적 공세를 퍼붓고 있는 것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 등 청와대가 매우 격앙된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진다. 문 대통령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를 두고 이적행위라고 발언한 데 대해 수많은 마타도어를 받아봤지만, 이건 도가 지나치지 않으냐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친 것으로 31일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문 대통령은 지난 29일 비공개회의에서 김 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발언 수위가 선을 넘었다는 취지로 언급했다고 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현재 김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가 이처럼 야당 대표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법적 조치를 언급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서는 것은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무분별한 흑색선전이 거침없이 쏟아져 정국은 물론 자칫 남북관계에까지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야당에서는 이런 게 포용정치냐고 반발하지만, 신년사에서 문 대통령이 언급한 포용은 구태 정치까지 포용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강경 대응은 북한 문제에 예민한 주변국과의 관계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주변국도 있는 문제인데, (야당 주장을) 저렇게 그냥 방치하면 안 된다정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북풍 공작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한편, 조한기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도 2018판문점 도보다리 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발전소 내용이 담긴 유에스비(USB·이동식저장장치)를 전달했다는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악의적 왜곡이라며 부인했다. 조 전 비서관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조선일보> 기사는 물론 거짓이고, 두 정상이 물밑 거래를 했을 거라고 은연중 연상시키는 악의적 왜곡이라며 당시 의전비서관이었던 나는 북한의 김창선 부장과 함께 현장에 있었다. 전세계로 생중계된 장면을 이렇게 왜곡할 수 있다니, 기가 찰 뿐이라고 비판했다.    서영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