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 자녀들 부정 입학시킨 국내 입시브로커 등 4명 입건

다니지도 않은 국내 과학고 성적증명 만들어 미국 대학 제출

학부모에 수억원 뒷돈 요구미 대학관계자 매수 시도 정황도

 

일부 유학 전문 학원은 비뚤어진 아이비리그 보내기방법을 전수한다고 한다. 서울에서 열린 유학박람회의 모습.

 

한국 부유층 자녀들이 가짜 고등학교 성적증명서를 제출하는 등의 방법으로 미국 명문대에 합격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국내 입시 브로커가 개입해 미국 대학 관계자한테 수억원의 뒷돈을 건네려 시도한 정황도 확인됐다. 지난해 할리우드 스타 등 부유층이 유명 사립대에 거액을 주고 자녀를 입학시켜 논란이 된 이른바 미국판 스카이캐슬사건과 유사한 수법으로, 한국 학생들이 이렇게 합격한 사례가 알려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13<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이런 수법으로 한국 학생들을 미국 명문대에 입학시킨 혐의(사기, 업무방해)로 정아무개(31)씨 등 4명을 불구속입건했다. 경찰은 이들을 이달 중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정씨 등은 국내 중소기업 사장 아들 씨 등 최소 3명을 2016~2017년 위조한 고교 성적증명서를 이용해 미국 뉴욕대와 컬럼비아대 등에 합격시킨 혐의를 받는다. 201612월 뉴욕대 스턴경영대 합격 통보를 받은 씨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이들은 씨가 국내 과학고에서 3년 내리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는 내용의 성적증명서를 뉴욕대에 제출했다. 정씨는 앞서 유출된 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SAT) 문제를 씨한테 주며 답을 외우게 하고, 대학 입학 에세이(자기소개서)를 대필하기도 했다.

정씨가 미국 대학 관계자를 매수하려 시도했을 가능성도 있다. 정씨는 기여입학제로 합격한 것이어서 대학에 기부금을 내야 한다며 학부모에게 적게는 15천만원에서 많게는 9억여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 대학의 기여입학제는 학생의 가족이 같은 대학 동문일 경우 가산점을 주는 제도로, “일정 금액을 대가로 합격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정씨 주장과 같은 방식의 입학 제도는 없다. 뉴욕대 관계자도 <한겨레>에 보낸 전자우편에서 기부금을 받고 합격증을 주는 제도는 없다고 밝혔다.

2016년 정씨에게 동업 제안을 받았다는 한 에스에이티학원 원장은 “(정씨가) 대학 입학사정관 등에게 돈을 줘서 합격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별로 구체적인 금액도 언급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학부모에게 받은 돈을 실제로 대학에 뇌물로 줬을 가능성과 학부모를 속이고 동료 브로커들과 나눠 가졌을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자세한 사항은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씨 등 2명은 정씨의 금전 요구에 응하지 않으며 해당 대학에 입학하지 않았다. 미국 고등학교를 나온 나머지 1명은 과학고 성적증명서를 이용해 실제 컬럼비아대에 입학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씨는 2014년께부터 입시 컨설팅 업체에서 일하며 고위 공직자나 대기업·중소기업 오너 자녀의 미국 대학 입시를 맡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13<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서류를 위조한 일이 없다고 사실관계를 부인했다.

 

미국 고교 졸업하고 가짜 과학고 성적 증명자소서 대필까지

SAT문제 빼내 답만 외우라 주문, 자소서는 대필 조금 지어냈어

1년반만에 뉴욕대 등 2곳 합격증 돈 요구 거절하자 입학은 취소돼

 


띠링~’

201542일 새벽 3시 지호(가명·당시 18)한테 페이스북 메시지 한통이 도착했다.

너 컨설팅받을래? 합격 보장이야. 100% 꽂아주는 거야. 입학사정관하고 네트워킹해서 무조건 보장.”

지호가 2년 전 서울 강남구의 한 유학원을 다닐 때 진로상담을 담당했던 정아무개(31)씨였다. 정씨는 학원을 그만둔 뒤 싱가포르에 있는 패스웨이 컨설팅이란 입시 컨설팅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성적과 상관없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시켜줄 수 있다는 정씨의 말은 언뜻 허무맹랑하게 들렸다. 지호는 성적이 중요한 것 아니냐고 거듭 물었다. 정씨는 점수도 만들어준다. 칼리지보드(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 SAT 주관 기관)에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2년 뒤 뉴욕대 스턴경영대와 존스홉킨스대에서 합격증이 날아왔다. 뉴욕대 스턴경영대는 미국 경영대 중에서 최상위권으로 평가된다. 지호 어머니는 아들 성적이면 50위권 대학만 가도 만족하겠다고 생각하던 차여서 (합격 소식이) 정말 기적 같았다고 했다.

기적은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또 정씨가 말한 입학사정관 네트워킹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한겨레>는 정씨와 지호네 가족의 진술, 그들이 주고받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 내용을 비롯해 뉴욕대, 고등학교, 입시업계 관계자 등의 증언을 바탕으로 정씨의 미국 대학 불법 컨설팅을 재구성했다.

답만 외우면 된다”, “채팅 기록은 지워

20151022일 정씨와 지호가 쓰는 공용 이메일 계정에 알림이 떴다. 11월에 치르는 에스에이티 시험을 보름 남겨둔 때였다. 정씨는 이 이메일 계정의 내게 보내기기능을 이용해 중요한 자료를 공유하곤 했다.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면 자신이 언제든 수신·발신 내역을 직접 삭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씨가 보낸 파일은 에스에이티2 수학 기출문제 15개 세트였다. 에스에이티는 미국 대학들이 지원자의 성적을 평가하는 데 활용하는 시험이다. 과거에 나온 문제가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출제되는 문제은행 방식이어서 기출문제를 공개하지 않는다. 바꿔 말해 기출문제를 빼돌려 문제와 답을 외우면 고득점을 노릴 수 있다는 뜻이다. 정씨는 <한겨레>와 만나 아는 브로커를 통해 기출문제를 구했다. 2000만원이 들었다지호에게는 문제랑 답만 외우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은 당시 두 사람의 대화 내용에서도 확인된다.

쌤이 주신 수학2 문제 이해 안 가는 것도 있는데 답을 외우라고 해서 문제에 대한 답을 그냥 외웠어요.”

외우세요. 그리고 화학도 있지? 화학도 그렇게 봐. 아니면 물리 할래? 아예 문제 세트를 통째로 올릴까? 온갖 거 다 있어. 마음먹으면 프랑스어도 가능함. (중략) 아 참, 채팅 기록 지워줘.”(20151028)

타이에서 요리 배워브로커가 꾸며낸 자기소개서

입시 브로커 정씨의 손길은 에스에이티 문제 유출에서 멈추지 않았다. 미국 대학 원서 제출 시즌이 되자 정씨는 지호의 인적사항을 모두 넘겨받은 뒤 제출 과정을 직접 진행했다. 에세이(자기소개서)도 정씨가 대필했다.

에세이 나 지금 쓰려 하는데 그냥 대필해주면 되지? 내가 이야기 지어내?”

에세이는 그냥 쌤이 끝내시기로 했잖아요.”(20151028)

근데 조금 지어내야 하는데 괜찮지?”

당연하죠.”

아버지 이야기 쓰고 막 팔아먹었어.”(20151030)

그렇게 정씨가 작성한 에세이에는 ‘(지호가) 2016년 여름 타이 우돈타니 현지 시장에 직접 찾아가 커리 요리법을 배웠고, 한국의 맛을 가미해서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모두 거짓이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영향을 받았다거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생각 등도 정씨가 직접 지어냈다. 정씨는 지호 아버지가 기업을 경영한 덕에 지호가 자라면서 얻은 이점이 무엇인지도 꾸며 썼다. ‘아버지가 경영인이어서 한국과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거주했다. 일에 매진하신 아버지 덕분에 이사 갈 때마다 더 큰 집과 더 좋은 학교로 옮길 수 있었다는 식이다.

뉴욕대=80만 달러뒷돈 거래 있었나

201612월 지호는 뉴욕대와 존스홉킨스대 합격증을 받아들었다. 몸이 좋지 않아 에스에이티 시험을 몇차례 놓치고, 늦게나마 본 시험에서도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은 지호로선 놀라운 결과였다.

하지만 합격증은 공짜가 아니었다. 1231일 새벽 3시께 지호 어머니는 정씨가 보낸 메시지를 받았다. “통화가 필요합니다. 금액에 관한 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뉴욕대 스턴은 80만불, 존스홉킨스대는 50만불입니다. 16일 전에 통화 시간 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돈을 지급하지 않으면 합격도 없던 일이 된다는 것이었다.

정씨는 지호 부모한테 기여입학제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한겨레>를 만난 정씨는 사실 로비에 쓰려던 돈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입학사정관으로 일했던 사람들, 아니면 대학교 이사회 통해서 (로비를) 하는 거예요. (미국 입시비리 주범) 릭 싱어처럼 코치를 매수하거나. 보통 중간에 브로커가 있죠. 어쨌든 현직 입학사정관한테 영향이 가도록 하는 게 핵심이죠.” 윌리엄 릭 싱어는 학생 서류를 위조하고 대학 관계자를 매수하는 방식으로 미국 상류층 자녀들을 명문대에 합격시킨 사실이 드러나 지난해 재판에 넘겨진 입시 브로커다. 정씨는 입학사정관한테 돈을 주는 게 주가 되는 건 아니다. 합격시킬 명분을 만들어줘야 된다. 에스에이티 점수를 만들고 에세이를 써주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정씨에게 동업 제안을 받은 적 있는 한 국내 에스에이티 학원 원장은 일부는 자신이 챙기고, 나머지는 대학에 뇌물로 줬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정씨가 하는 게 기본적으로 학교 관계자와 거래를 하는 건데, 서류상 학생의 스펙이 좋을수록 단가를 낮출 수 있다고 했다스펙을 조작해서 본인이 챙기는 몫을 늘리고, 나머지는 대학 관계자에게 줬을 것이라고 했다.

 

과고 성적증명서, 학교장 추천서 위조

지호 어머니는 고민 끝에 뉴욕대와 존스홉킨스대 진학을 포기했다. “정 선생한테 두 대학을 포기하겠다고 말하니 이미 기부금의 10%를 자기 돈으로 선지급했다면서 화를 내더라고요. 이렇게 거래를 파투 내면 다음부터 그 대학과 거래하기 어려워진다고도 했어요.”

정씨는 돈을 내지 않았으니 합격이 취소될 것이라고 했고, 그 말은 현실이 됐다. 이 과정에서 정씨가 뉴욕대에 위조된 고교 성적증명서와 추천서를 낸 정황도 발견됐다. 이듬해 3월 뉴욕대에서 온 전자우편에는 지원 서류에 허위 사실(fraudulent material)이 발견돼 합격을 취소한다고 적혀 있었다. 뉴욕대 관계자는 당시 지호한테 “(당신이) 한국의 과고 성적증명서와 학교장 추천서를 냈는데 모두 가짜인 게 적발됐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고교를 다닌 지호는 난생처음 듣는 얘기였다.

과고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실제로 미국 현지 대학 쪽에서 확인차 연락이 와서 그런 학생이 입학한 적도, 재학한 적도 없다고 확인해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처음엔 서류 위조 자체를 부인하다 나중엔 당시에 지호가 다녔던 유학원에서 위조했을 수도 있다. 뉴욕대 합격은 지호 쪽에서 동시에 두 대학에 보증금을 넣어놨기 때문에 취소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그가 담당한 씨와 씨 등 두 학생도 과고 재학생으로 둔갑돼 미국 대학에 합격한 것을 고려하면 그의 해명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정씨가 담당한 학생 중 최소 3명이 같은 학교의 가짜 성적증명서로 대학에 합격한 셈이기 때문이다.

법정에서도 기여금 입학 여러번 진행해주장

정씨는 20172월 지호 쪽을 상대로 4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뉴욕대 합격에 대한 보수 2억원과 지호 누나의 대학원 에세이를 첨삭해준 보수 등을 달라는 취지였다. 정씨는 소장에서 미국 대학은 기여입학이라는 비공식적 제도를 두고 시행하고 있다. ‘기여금을 지급받고 입학을 승인하고 있다“201612월 중순경 뉴욕대 비즈니스스쿨로부터 80만달러를, 존스홉킨스대학으로부터 50만달러를 기여금으로 지급하는 조건으로 합격증명서를 전달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뉴욕대 입학처는 <한겨레>의 사실관계 확인 요청에 기부금의 대가로 합격을 보장해주는 제도는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없다고 밝혔다.

정씨가 대놓고 거짓말을 한 셈이지만 법정에서는 쟁점이 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재판장 유석동)는 지난해 11뉴욕대와 존스홉킨스대의 경우 각 약 8억원, 5억원 이상의 기여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입학 허가를 받았던 것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기여입학 추진에 관하여 사전에 피고(지호네)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지호네가 정씨한테 12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양쪽 모두 항소해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정씨는 법정에서 이런 기여입학을 여러번 진행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진술기록을 보면 “2015년 이전에 원고의 컨설팅으로 미국 대학에 기여금 입학을 한 학생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씨는 기여는 미국 대학에 들어갈 때 일반적으로 돈이 필요하다 보니까 필요에 따라 있었다고 대답했다. 지호네 쪽 변호사가 다시 “(기여금 입학을 진행한 학생이) 2명 이상이냐고 묻자 정씨는 그렇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한국장학재단 자료 분석 결과신청 안한 학생 감안하면 더 많을 듯

 

서울대 정문.

 

올해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3곳 대학 신입생들 가운데 절반이 넘는 55.1%가 고소득 가구의 자녀인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장학재단에서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20학년도 1학기에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3곳 대학에서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신입생은 모두 6865명이고, 이 가운데 월 소득 인정액이 9~10분위에 해당하는 신입생은 3783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장학금은 가구 소득과 재산에 따라 국가가 대학생들의 등록금을 지원해주는 제도다. 월 소득 인정액을 바탕으로 기초수급자부터 1~10분위로 구간을 나눴을 때, 소득이 가장 높은 9~10구간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올해 기준으로 9구간의 월 소득 인정액 하한선은 월 9498348, 10구간은 월 14247522원이다.

이 때문에 9~10구간 학생들이 많을수록, 고소득 가구에 속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추정할 수 있다. 최근 4년 동안의 추세를 보면,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서울대·고려대·연세대 3곳 대학 신입생들 가운데 9~10구간에 속하는 학생의 비율은 201741.1%, 201851.4%, 201953.3%, 202055.1%로 꾸준히 커져 왔다. 반면 이 3곳을 제외한 다른 대학들에선 9~10구간에 속하는 학생의 비율이 기본적으로 더 낮고, 201717.9%, 201824.4%, 201924.3%, 202025.6% 등으로 변화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를 두고 정 의원은 올해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들의 소득을 분석했더니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신입생의 55.1%가 이른바 있는 집자녀로 분석된 결과라고 말했다.

다만 해당 통계는 국가장학금을 아예 신청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다는 점도 감안해서 봐야 한다. 본인의 소득분위가 9~10구간에 해당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기 때문에 신청하지 않거나 규모가 더 큰 외부 장학금 등을 받기 위해 저소득층에 속하는데도 신청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한국장학재단 쪽은 일단 신입생의 경우 자신이 어느 소득구간에 속하는지 잘 모른 채 신청하는 경향이 있어서, 전체 현황보다는 9~10분위에 속하는 신청자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최원형 기자

조정래 작가 등단 50년 회견 인간 본질과 영혼 탐색 장편 낼 것

친일파 단죄해야, 반역자들에 맞서는 운동 아리랑작가로서 책무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개정판 산문집 홀로 쓰고, 홀로 살다

 

조정래 작가가 12일 낮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등단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그동안은 계속 새 작품을 쓰느라 지난 작품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번에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다시 읽어 보니까 잘 쓴 부분도 보이고 아쉬운 대목도 없지 않더군요. 등단 50주년에 맞추어 개정판을 내면서 독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통해 저의 문학관·인생관·역사관·사회관·세계관·문학론 등을 꾸밈없이 들려드리는 책도 함께 냈습니다.”

한국 현대사를 다룬 대하소설 삼부작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작가 조정래가 이 세 작품의 개정판을 내고 12일 서울 한국언론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올해로 등단 50주년인 작가는 세 대하소설 개정판과 함께, 독자들의 질문에 답한 산문집 <홀로 쓰고, 함께 살다>도 동시에 내놓았다.

1983<태백산맥>을 연재하기 시작한 작가의 대하소설 삼부작 여정은 2002<한겨레><한강> 연재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20년 만에 완료되었다. 세 작품을 합해 원고지 51500매에 등장인물만 1200여명에 이르는 대 작업이었다. 지금까지 <태백산맥>860만부가 팔렸고 <아리랑>410만부, <한강>305만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이 작품들을 포함해 장편소설 10, 중단편 50여편, 산문집 6, 위인전 7권 등을 합하면 작가 생활 반세기 동안 그의 생산량은 원고지 10만장을 훌쩍 넘는다.

조정래 작가가 12일 낮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50주년 기념 기자간담회가 시작하기 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작가는 기자회견에서 <아리랑>의 일본 식민 지배 묘사를 비판하는 <반일 종족주의>의 지은이 이영훈 등 일부 학자들의 주장과 관련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영훈이 책에서 저를 많이 욕했는데, 그 사람은 신종 매국노이고 민족 반역자입니다. 저는 국사편찬위원회와 진보적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쓴 책을 중심으로 명확한 자료를 가지고 <아리랑>을 썼습니다. 인물은 허구이되 역사적 자료는 사실인 것이죠. 민족 정기를 다시 세우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반민특위는 반드시 부활해야 합니다. 토착왜구라고, 일본 유학을 다녀온 뒤 일본의 죄악을 편들고 역사를 왜곡하는 민족 반역자들에 맞서는 운동에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려 합니다. 그것이 <아리랑>을 쓴 작가로서 책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소설 태백산맥에서 500가지 넘게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고발당했고, 11년간 조사를 받은 뒤 완전 무혐의 판정이 난 경험이 있다그 경험으로 아리랑을 쓸 때는 더 철저하게 자료를 조사했다고 강조했다.

조 작가는 친일파에 대한 단죄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150~160만 친일파를 전부 단죄하지 않으면 이 나라의 미래가 없다고 성토했다. 이어 토착 왜구라고 부르는 일본 유학파, 일본 유학을 다녀오면 무조건 친일파, 민족 반역자가 된다면서 일본의 죄악에 대해 편들고 역사를 왜곡하는 자들을 징벌하는 법 제정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제가 아리랑을 쓴 작가로서 적극적으로 나서려고 한다. 사회적 책무라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이 이사장은 지난 2007년 계간 시대정신에 기고한 논문 등에서 조 작가의 소설 아리랑을 두고 “‘역사학 텍스트로 분석한 결과 자격과 함량 미달이었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일종의 광기, 학살의 광기와 거꾸로 통하는 광기로 가득 찬 소설이라고 하기도 했다.

작가는 그동안은 우리 사회와 역사 속 갈등과 문제점에 대한 추적을 계속 해 왔는데, 이제 그런 상황성을 떠나서 인간의 본질 존재에 관한 장편을 세 권 정도 써서 2년 뒤 책이 나올 예정이고, 3년 뒤에는 내세와 영혼의 문제를 불교적 세계관에 입각해 쓴 소설을 내는 것으로 장편소설 인생을 마감하고자 한다그 뒤에는 초창기 단편들을 손보아서 다시 내고 새 단편소설들을 쓰고, 아울러 명상적 수상록을 몇 편 정도 쓰는 것으로 인생의 문을 닫을까 한다고 말했다.       최재봉 기자

노동당 창건 75돌 열병식 연설 사랑하는 남녘 동포들에게도

미 대선 뒤 관계 재정립도 염두 관계복원 뜻 주목동향 주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이 10일 자정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렸다고 보도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길 기원한다며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쳤다. 전쟁억제력을 계속 강화해나가겠다면서도 전쟁억제력을 남용하거나 선제적으로 쓰지 않겠다며 과도한 공격적 발언을 자제하고 수위를 조절했다.

김 위원장은 100시에 열린 노동당 창건 75돌 열병식 연설에서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에게도 따뜻한 마음을 정히 보내며 하루빨리 이 보건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최근 서해 연평도 공무원 피격사건으로 한반도에 냉기류가 흐르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이런 우호적인 발언을 한 것은 더는 남북관계 악화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피격사건이 알려진 직후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한 바 있다. 불안정한 남북관계 등 주변 정세가 코로나19 확산과 자연재해 극복에 전념하고 있는 상황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관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또 당장은 아니더라도 다음달 미국 대선 이후 북-미 관계가 재정립될 경우 남북관계 개선 등도 염두에 둔 행보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 직후 브리핑을 통해 상호 무력충돌과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남북 간 여러 합의사항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신중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환경이 조성되는 대로 남북관계를 복원하자는 북한의 입장에 주목하면서 향후 관련 동향을 면밀히 주시하고 관계부처들이 조율된 입장으로 대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주무 부처의 실천행동이 이어질 것을 시사한 셈이다.

김 위원장은 우리의 전쟁억제력이 결코 남용되거나 절대로 선제적으로 쓰이지는 않겠지만 만약 그 어떤 세력이든 우리를 겨냥해 군사력을 사용하려 한다면, 가장 공격적인 힘을 선제적으로 총동원해 응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군사력의 현대성은 많이도 변했다자위적 정당방위 수단으로서의 전쟁억제력을 계속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날 과거와 달리 핵·미사일이나 전략무기 등을 직접 입에 올리며 도발하지 않고 비교적 절제된 표현으로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이었다. 대신 북한은 이어진 열병식에서 기존의 화성-15보다 더 규모가 큰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4을 처음으로 선보이며 군사력을 과시했다.

김 위원장이 도발적인 메시지를 자제하자 미국도 원론적인 수준에서 반응하며 추가 자극을 피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열병식에서 신형 전략무기를 선보인 것에 대해선 경계심을 내보였다. 미 행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열병식에 대한 입장을 묻는 <한겨레>의 질의에 북한이 금지된 핵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우선시하는 것에 실망했다며 북한에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 주민들이 올해 기존의 대북제재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코로나19와 물난리까지 겹치는 ‘3중고를 겪은 실정을 돌아보며, 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의 감정도 털어놓았다. 김 위원장은 예상치 못한 방역 전선과 자연재해 복구 전선에서 우리 장병들이 발휘한 애국적이고 영웅적인 헌신은 감사의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는 것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북한 주민의 협력에 대해서도 성실한 땀과 노력으로 이 나라를 굳건히 받드는 고마운 애국자들이 바로 우리 인민이라며 때로는 울먹이면서 감사의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김일성, 김정일 정권 때는 사례가 드물 정도로 이례적이다. 각종 자연재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민들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서며 다독이고 격려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박병수 김지은 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대외관계 개선 염두 둔  인민의 번영”  새 목표 제시

북 향후 정책 전망미 자극 않고  전쟁 억제력 강화

자력갱생 한계에 3 방안포석, 경제 무게중심 관측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이 10일 자정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렸다고 보도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75돌 기념 열병식 연설에서 내년 1월 노동당 8차 당대회 때 인민의 부흥번영을 목표로 한 전략과 목표를 제시하겠다고 예고했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자위적 정당방위 수단으로서의 전쟁억제력을 계속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전제한 뒤 이제 남은 것은 우리 인민이 더는 고생을 모르고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마음껏 누리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는 그 실현을 위한 방략과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게 될 것이며 인민의 행복을 마련해나가는 우리 당의 투쟁은 이제 새로운 단계에로 이행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88차 당대회를 소집하면서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의 연설에 8차 당대회가 군사안보보다 경제쪽을 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김 위원장이 연설에서 발신한 대남·대외 메시지와도 맞닿은 것으로 보인다. 남쪽에 북과 남이 다시 두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고 한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미국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열병식에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공개한 게 대미 메시지로 읽히지만, 자신들의 군사력이 선제공격용이 아님을 애써 강조한 점에서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북한 사정에 밝은 전직 정부 고위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경제에 올인하면서 모든 대외 관계가 안정되길 원한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이 ‘3중 재난’(제재·코로나19·재해)으로 앞서 강조했던 자력갱생 정면돌파전의 한계가 뚜렷해지자 3의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포석을 깔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북한이 중국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1025~28)와 미국 대선(113)을 보면서 경제 정책의 방향을 정할 것이라며 미국에 대해 로키(low-key)(접근)하고 남쪽에 여지를 남긴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풀이했다. 김지은 기자

 

면목 없다” “고맙다눈물 훔친 김정은, 16차례에 걸쳐 감사표현

특유의 인민대중제일주의부각 방역·재해 복구전선 영웅적 헌신

검은 인민복 대신 회색 정장 차림 경제건설 매진주민 결집 메시지

 

북한이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을 열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회색 양복을 입은 김정은 위원장이 연설을 하던 중 재난을 이겨내자고 말하며 울컥한 듯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100.

불꽃이 평양 김일성광장의 하늘을 수놓자 하는 군중의 함성 소리와 함께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이 시작됐다.

주석단에 모습을 드러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평소 입던 검은색 인민복 대신 회색 양복 정장에 회색 넥타이를 맨 차림이었다. 21발의 예포가 발사된 뒤 검은 뿔테 안경을 낀 김 위원장은 경사스러운 10월 명절을 맞이한 온 나라 전체 인민들과 인민군 장병들!”을 부르며 입을 뗐다.

연설 초반 올해 예상치 않게 맞다든 방역전선과 자연재해 복구전선에서 우리 인민군 장병들이 발휘한 애국적이고 영웅적인 헌신은 누구든 감사의 눈물 없이는 대할 수 없는 것이라던 김 위원장의 목이 메었다. 태풍 피해 복구를 위해 평양시 당원들로 구성된 수도당원사단의 노력을 언급하고서는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정말 면목이 없다” “이 나라를 이끄는 중책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 노력과 정성이 부족하다는 등의 표현을 써 이목을 끌었다.

코로나19와 자연재해, 제재로 분투하고 있는 인민들의 노고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며 특유의 인민대중제일주의통치 스타일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최고 존엄의 무오류성을 다시 한번 스스로 부정하면서 공개적으로 반성문을 쓴 셈이다. 김 위원장은 또 한명의 악성 비루스(코로나19 바이러스) 피해자도 없이 모두가 건강해주셔서 정말 고맙다는 등 인민들에게 고맙다” “감사하다는 표현을 열여섯차례나 썼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이번 연설에서 제일 눈에 띄는 건 김 위원장의 인민대중제일주의라며 기존의 사회주의 지도자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은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말했다.

전례가 없는 이번 심야 열병식10일 저녁 7<조선중앙텔레비전>에서 2시간16분 분량으로 중계방송됐다. 열병식인 만큼 이날은 군을 책임지는 리병철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박정천 군 총참모장이 행사 내내 김 위원장의 양옆을 지켰다. 이 두 사람은 전략무기 개발 주역으로서 최근 원수 칭호를 받았다. 특히 리 부위원장은 중간중간 김 위원장과 귓속말을 하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화면에 포착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주석단에는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김덕훈 내각 총리, 박봉주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해 김재룡·최휘·김영철·박태덕·최부일·김수길·태형철·오수용·김형준·허철만·조용원 등 당·군간부들이 자리했다.

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당 제1부부장도 참석했으나,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리설주는 20182월 건군 70주년 열병식에 참석했으나, 지난 1월 삼지연 극장 설명절 기념공연 관람을 끝으로 9개월째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번 열병식에는 외빈에 대한 소개도 없었다. 20189월 정권수립 70주년 열병식 때는 리잔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비롯해 남아프리카공화국·쿠바·스웨덴·시리아·알제리 정부 대표단이 참석했다.

열병식의 대미를 장식한 건 바퀴가 1122륜인 이동식 발사차량(TEL)에 실려 등장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었다. 이즈음 화면에 비친 군악대 지휘자는 2018년 평창겨울올림픽 때 남쪽을 방문해 삼지연관현악단을 지휘한 장룡식으로 바뀌어 눈길을 끌었다. 함께 방남했던 현송월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은 화동들이 건넨 꽃을 김 위원장한테서 넘겨받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 밖에도 이날 행사는 조명(LED)이 설치된 전투기 쇼, 불꽃놀이, 횃불 행진 등 볼거리로 가득했다. 고유환 통일연구원장은 핵무력 완성 이후 전략국가로서의 축제적 시위를 한 것 같다“(북한) 주민들에게 전략국가로서의 자신감을 심어주고 경제건설에 매진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세계 최대 ICBM·진화한 SLBM새 전략무기 위력 과시

28개월 만에 선보인 전략무기, 덩치 키운 신형 ICBM

사거리 · 탄두무게 늘린 ‘16평가, MD회피 다탄두가능성도

 

북한은 10일 노동당 창건 75돌 기념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두 종류의 새로운 전략무기를 선보였다. 북한이 열병식에서 전략무기를 선보인 것은 20182월 건군절 70돌 기념 열병식에서 화성-12중거리탄도미사일(IRBM)화성-14’, ‘화성-15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전략무기 3종 세트를 선보인 이후 28개월 만이다.

화성-15형보다 더 큰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선보여 이날 공개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은 바퀴가 1122(바퀴 11)인 이동식 발사차량(TEL)에 실려 이동했다. 기존의 화성-15의 이동식 발사차량은 918륜이었다. 바퀴가 두쌍 늘어났고 그만큼 크기도 커졌다.

북한은 이날 새 대륙간탄도미사일의 이름이나 성능 특징 등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화성-15형에서 진화한 화성-16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사일 전문가 밴 밴디펀과 마이클 엘러먼은 북한 전문사이트 ‘38노스에 이 미사일에 대해 대략 길이 25~26m, 지름 2.5~2.9m, 기존의 화성-15형보다 길이는 4~4.5m, 지름은 0.5m 더 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신형 미사일의 1단 로켓으로는 소련제 ‘RD-250’ 계열의 엔진 4기가 쓰인 것으로 분석됐다. 화성-15형이 1단 로켓에 RD-250 계열의 엔진 2기를 사용한 것과 비교하면, 엔진이 두배 정도 더 커진 셈이다. 2단 로켓에 어떤 형태의 엔진이 사용됐는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1단 로켓의 특성에 기초해 분석할 경우, 신형 미사일은 화성-15(탄두 무게 1t)보다 훨씬 무거운 2~3.5t 무게의 탄두를 미국 대륙 전역에 날려 보낼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신형 미사일은 한번도 발사된 적이 없어 당장 실전에 배치할 수 있는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이 신형 미사일은 이동형 탄도미사일로는 세계 최대 규모다. 실제 군사적 효용보다는 과시용의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을 회피하기 위한 다탄두(MIRVs) 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해 규모를 키웠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새로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북극성-4 이날 북한의 열병식에선 동체에 북극성-4이란 글씨가 적힌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도 소개됐다. 북한의 북극성계열 미사일 개발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북한은 애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북극성을 개발한 데 이어 이를 지상발사용으로 변형한 북극성-2을 개발했고, 지난해 10월엔 잠수함발사용 북극성 3을 발사한 적이 있다. 그러나 북극성-4형은 알려진 게 없다.

미사일 전문가 밴디펀은 북한이 공개한 영상만으로는 북극성-4형의 제원을 알기 어렵다며 평가를 유보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북극성-1형보다 직경이 2~3배 커지고 북극성-3형보다도 직경이 굵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잠수함 전문 웹사이트 커버스 쇼어’(Covert Shore)를 운영하는 H I 서턴은 북극성-4형의 크기가 북극성-3(KN-26)과 비슷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북극성-4형은 사거리를 늘릴 목적으로 개발된 것으로 보인다. 북극성-3형은 지난해 발사에서 정점고도 910, 비행거리 450를 기록해, 정상 각도로 발사하면 사거리가 1900이상 될 것으로 추정됐다. 미사일의 사거리가 늘어나면 북한 잠수함은 안전한 해안 근처에서 멀리 떨어진 군사적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게 된다. 국방부는 이번 열병식에 대해 새롭게 공개된 무기체계에 대해 한·미 정보당국이 정밀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박병수 기자


정부, '대화의지' 김정은 연설 긍정 평가신형 ICBM에는 "우려"

"남과 다시 손 맞잡길선제적 군사력 안써""북 입장 주목"

신무기 대거 공개에 정밀분석 착수북 공동조사 무반응은 '부담'

 

정부는 1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열병식 연설을 통해 남북대화 복원 의지를 피력하고 미국을 직접 자극하지 않으려 수위를 조절한 데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김 위원장의 메시지와 별개로 지난달 발생한 서해상 공무원 피격 사건으로 국내 여론이 좋지 않은 데다 북한도 공동조사 요구에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만큼 조심스러운 분위기도 감지된다.

정부는 북한이 이번 열병식에서 미 본토를 겨냥하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남한 전역을 사정권으로 하는 신무기를 대거 공개한 데 대해선 우려를 표명하며 정밀 분석에 착수했다.

주민들 앞에서 "사랑하는 남녘동포"정부 "관계 발전 이어지길"

김 위원장은 전날 열린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들에게도 따뜻한 이 마음을 정히 보내며 하루빨리 이 보건 위기가 극복되고 북과 남이 다시 두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30분가량의 연설 중 남측에 대한 유일한 언급이었지만, 최고지도자가 전체 주민들 앞에서 대화복원 의지를 공표했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남다른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6월 대북전단을 이유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한 데 이어 주민들이 보는 관영매체에서도 주민들을 동원한 대남 항의시위를 여는 등 내부적으로 남측을 적대시하는 여론을 조성했다.

이후 지난달 서해상에서 발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김 위원장이 사과했지만, 사과는 물론 소강 국면에서 남북 정상이 친서를 주고받은 사실 등은 내부에 일절 보도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의 이날 발언은 향후 다시 남북 간 대화에 나서기 위한 명분을 내부적으로도 조성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을 직접 비난하는 발언이 없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는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 상임위원회 회의 후 "환경이 조성되는 대로 남북관계를 복원하자는 북한의 입장에 주목한다"며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입장을 밝혔다.

통일부는 한발 더 나아가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남북 간 대화 복원이 이뤄지고 환경이 조성되는 대로 코로나19를 포함해 인도·보건의료 분야에서부터 상호 협력이 재개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제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강조한 종전선언과 동북아방역보건협력체 구상 제안에 대한 북측의 호응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ICBM·SLBM·초대형방사포로 무력과시"실질적 긴장완화 호응해야"

정부는 북한이 이번 열병식에서 최신 미사일 기술을 비롯해 새 기술이 집약된 다양한 신무기를 과시한 데 대해선 우려를 표명했다.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공개한 무기 분석에 착수했다.

전날 북한이 공개한 신형 ICBM은 길이와 직경이 커진 것으로 미뤄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고, 탄두부에 핵탄두 2~3개가 들어가는 '다탄두 미사일'(MIRV) 형태로 진화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처음 공개한 신형 SLBM '북극성-4A'도 직경이 굵어졌고, 역시 다탄두 탑재 가능 형태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시험발사 등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완성도와 실전배치 가능성 등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북한이 장기 제재와 코로나19, 각종 재해 속에서도 꾸준히 군사력을 키워왔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북한은 전략무기 외에 4~6연장 등 3종의 초대형 방사포, 전차포 및 대전차 미사일을 탑재한 스트라이커 장갑차와 신형 전차 등 급격히 현대화된 재래식 무기도 열병식을 통해 대거 과시했다.

이 가운데 초대형 방사포는 남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유사한 사거리를 갖췄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새로운 무기체계들의 전략적 의미와 세부사항을 계속 분석하고, 이에 대비한 우리의 방어 능력도 점검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다만 김 위원장이 '절대로 선제적으로 쓰이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데 대해선 "주목한다""9·19 군사합의의 완전한 이행 등 실질적인 군사적 긴장 완화에 호응할 것을 요구한다"고 입장을 냈다.

피격 공무원 공동조사 '무반응' 부담"군 통신선 재가동 촉구"

북한이 내달 미 대선 등을 고려해 전반적으로 수위를 조절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지난달 발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이 아직 '미해결' 상황인 점을 고려해 정부는 다소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남한의 대북여론이 악화할 대로 악화한 상황에서, 국민적 공감대와 지지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임기 말에 접어든 현 정부가 남북관계 복원에 추진력을 얻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은 공동조사 요구에 호응하지 않고 있으며, 도리어 '수색 시 영해를 침범하지 말라'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와 통일부, 국방부가 이날 낸 입장문에서 일제히 이 문제를 언급한 것 역시 이런 점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NSC 상임위원들은 서해상 공무원 피살 사건이 조기에 규명될 수 있도록 남측의 제안에 북측이 전향적으로 호응해 줄 것을 촉구했다. 국방부도 "군사 통신선 복구와 재가동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