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장 또 성추행 쇼크' 오거돈 부산시장 자진사퇴 상보
기자회견 자청 "여성 공무원 면담 과정서 불필요한 신체접촉"
성추행 피해 신고받은 부산성폭력상담소 사퇴 요구에 백기
변성완 행정부시장이 권한 대행…내년 4월까지 행정 공백 불가피
오거돈 부산시장이 전격 사퇴했다.
오 시장은 23일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열어 "시장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죄스러운 말씀을 드린다. 저는 최근 한 여성 공무원을 5분간 면담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이 있었고 강제추행으로 인지했다"며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저의 행동이 경중에 상관없이 어떤 말로도 용서받지 못할 행위임을 안다"며 "이런 잘못을 안고 위대한 부산시민이 맡겨주신 시장직을 더 수행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고 했다.
오 시장은 이어 "공직자로서 책임지는 모습으로 남은 삶을 사죄하고 참회하면서 평생 과오를 짊어지고 살겠다"며 "모든 잘못은 저에게 있다"며 흐느꼈다.
그는 "3전 4기로 어렵게 시장이 된 이후 사랑하는 시민을 위해 시정을 잘 해내고 싶었지만, 이런 모습을 보여드려 너무 죄송스럽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시장 집무실에서 한 여성 공무원과 면담하다가 해당 여성의 신체 특정 부위를 만진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여성은 부산성폭력상담소를 찾아 성추행 피해 사실을 알렸고, 오 시장에게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 시장이 사퇴함에 따라 부산시정은 변성완 행정부시장이 시장 권한대행으로 이끌게 됐다. 오 시장 취임과 함께 시청에 입성한 정무 라인도 일괄 사퇴할 예정이다.
한편 오 시장 사퇴에 따른 보궐선거는 내년 4월 치러질 예정이어서, 부산시정은 1년간 공백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사임통지서 시의회 제출…"바로 효력 발생"
23일 전격 사퇴를 발표한 오거돈 부산시장의 사임통지서가 부산시의회에 제출됐다.
부산시의회는 이날 오전 11시 30분께 오 시장의 사임통지서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부산시의회 한 관계자는 "지방자치법에 따라 사임통지서는 접수된 날로부터 바로 효력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미투 의혹 넘겼는데 결국 여직원 성추행으로 자진 하차
한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했다며 전격 사퇴 의사를 밝힌 오거돈 부산시장은 지난해에도 미투 의혹에 휩싸였다.
지난해 10월 모 유튜브 채널이 오 시장 미투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유튜버는 2018년 지방선거 때 오 시장 선거캠프에서 거액의 돈거래가 있었다고 주장한 데 이어 오 시장이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오 시장 측은 이들의 계속된 주장을 '가짜 뉴스'라고 규정하고 관련자 3명을 대상으로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오 시장 측은 당시 "개인을 넘어 350만 부산시민을 대표하는 시장과 부산시 명예를 훼손하고 시정 신뢰를 떨어뜨려 엄벌할 필요가 있다"고 강력 대응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당시 미투 의혹은 세간의 기억에서 잊히며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오 시장은 6개월 만에 스스로 다른 성추행 사실을 밝히며 자진 사퇴했다.
오 시장은 23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저는 한 사람에게 5분간의 짧은 면담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했다"며 "경중에 상관없이 어떤 행동, 말로도 용서가 안 된다"며 강제추행 사실을 인정하며 전격 사퇴 의사를 밝혔다.
오 시장은 앞서 2018년 한 회식 자리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양옆에 앉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사퇴 소식에 한 여성단체는 "오 시장이 그동안 보여준 낮은 성 인지 감수성을 보면 어느 정도 예견 가능한 일이었다"고 비판했다.
사퇴로 공석된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내년 4월 7일
오거돈 부산시장이 여성 공무원을 성추행했다며 전격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공백이 된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내년 4월 7일 치러진다.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는 부산시로부터 시장 궐위 통보문이 공식 도착하면 보궐선거 준비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23일 밝혔다. 오 시장 사퇴가 확정되면 보궐선거일은 내년 4월 7일이 된다.
선관위는 내년 3월 8일 이전에 사퇴 등의 사유로 시도지사, 광역 단체장 자리가 궐위(직위나 관직 자리가 빈 상태)되면 내년 4월 첫 번째 수요일인 4월 7일 보궐선거가 열린다고 설명했다.
부산시장 예비후보 등록은 올해 12월 8일이며 공식 후보등록은 내년 3월 18∼19일, 선거운동 기간은 3월 25∼4월 6일까지 13일간이다.
3전 4기 신화서 한순간 불명예 하차 오거돈, 그는 누구인가
사퇴한 오거돈 시장은 오뚝이 같은 삶을 살았다. 4번째 도전 끝에 부산시장에 당선된 그의 인생 후반 여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행정고시 합격으로 1974년 부산시 행정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그는 이후 내무부와 부산시 요직을 두루 거친 자타가 인정하는 행정 전문가이자 해양전문가로 평가받았다.
첫 발령지인 부산을 잠시 떠나 대통령 정책보좌관실, 내무부 국민운동지원과장 등을 그쳐 1992년 다시 부산시 재무국장으로 부임한 뒤 줄곧 부산에서 공직생활을 했다. 상수도사업본부장, 기획관리실장, 정무부시장, 행정부시장 등 시장직을 제외하고는 오를 수 있는 자리는 다 했다.
그는 언어장애 핸티캡을 선이 굵은 일 처리와 아래 직원과 원만한 소통으로 만회하며 주변으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다.
그가 정치권에 발을 처음 내디딘 것은 2004년 6·5 재보선이다. 그는 이때 열린우리당으로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해 낙선했다. 하지만 이때 도전 전력은 헛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2005년부터 2006년까지 해양수산부 장관을 역임한다.
이후 한국해양대 총장을 역임하면서 부산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해양·물류밖에 없다며 해양수도로서 부산 역할을 강조하는 등 지역에서 원로로서 걸맞은 역할을 했다.
해양대 총장 시절에는 축제 등 여러 무대에서 평소 말을 더듬는 것과는 달리 멋들어지게 노래를 불러 '노래하는 총장'으로 불렸다.
부산지역 정치에서 그의 행보는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다고 지역 정치계는 평가한다.
그는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후보로 나서 '통 큰 연대'란 말을 만든 주인공이다.
당시 보수 일색의 부산에서 진보 후보가 당선되기 위해서는 민주당 이름을 달고 후보로 나서기보다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야권 연대를 통해 선거를 치르자는 개념이다.
그는 "20년간 독점해온 새누리당에 대항해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당에도 소속되지 않는 '통 큰 연대' 만이 시장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같은 전략에도 당시 서병수 후보에게 눈물을 삼켰다.
하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서 3전 4기 도전 끝에 부산시장 자리를 꿰찼다.
당시 그의 당선은 1995년 처음 시작한 민선 1기 지방선거 이래 23년 만에, 그 이전 보수정권의 임명직 단체장 시절을 합하면 30여년 만에 부산지방 권력이 보수에서 진보로 교체됐다.
그토록 꿈꾸던 부산시장직에 어렵게 오른 그는 취임 2년을 못 채우고 성추행이란 불명예를 안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측근보내 회유·증인없다 부인…‘터질게 터진’ 권력형 성범죄
오거돈 부산시장이 23일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시장 자리에서 사퇴했지만, 사퇴에 이르기까지 과정과 사퇴하며 내놓은 입장문은 진정한 사과나 반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지난해 불거졌던 미투 의혹까지 다시 조명되며 시청 안팎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도 나왔다.
오 시장과 피해자 쪽이 밝힌 내용을 종합하면, 오 시장은 부산에 첫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2월21일)한 뒤 부산시 공무원들이 비상근무를 하던 이달 초 수행비서를 통해 피해 여성 직원을 집무실로 불렀고 강제적인 신체접촉을 했다. 조직 상하관계 사이에서 이뤄진 전형적인 권력형 성추행인 셈이다. 이를 두고 오 시장은 이날 회견에서 “5분 정도의 짧은 면담 과정에서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했다. 이것이 해서는 안 될 강제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중에 관계없이 어떤 말로도, 어떤 행동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 직원은 이날 부산성폭력상담소를 통해 낸 입장문에서 “그곳에서 발생한 일에 경중을 따질 수 없다. 그것은 명백한 성추행이었고, 법적 처벌을 받는 성범죄였다. ‘강제추행으로 인정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경중에 관계없이’ 등의 표현으로 되레 제가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비칠까 두렵다”고 밝혔다. 또 이런 우려 때문에 입장문의 내용을 사전에 확인하겠다는 의견을 전했지만 오 시장 쪽에서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기자회견도 예상치 못한 시간에 갑작스레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며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내용이나 형식은 최소한의 성찰도 없었던 셈이다.
피해자는 이날 입장문에서 자신은 “여느 사람들과 같이 평범한 사람”이라며 “월급날과 휴가를 기다리면서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평범’, ‘보통’이라는 말의 가치를 이제야 느낍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이번 사건으로 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오 시장은 또 성추행 뒤 측근을 통해 피해자를 회유하고 목격자가 없다며 성추행 사실을 부인했다. 이달 말까지 사퇴하지 않으면 폭로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받은 뒤에야 이날 사퇴를 선언했다.
오 시장의 과거 행적들도 도마 위에 올랐다. 부산성폭력상담소는 이날 성명을 내어 “오 시장이 공약으로 내세웠던 성희롱·성폭력 전담팀 구성을 미뤘던 모습이나 2018년 회식 자리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양옆에 앉힌 보도자료 등에서 (이번 사건은)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었다. 낮은 성인지 감수성과 이를 성찰하지 않는 태도는 언제든지 성폭력 사건으로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10월에도 오 시장은 미투 의혹이 불거졌다. 한 유튜브 채널에서 부산시청 광장 앞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장 근처에서 오 시장이 전 부산시청 여성 직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오 시장은 ‘가짜뉴스’라며, 해당 유튜브 진행자 3명을 상대로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부산시 한 직원은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비슷한 추문에 연루돼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으면서 성추행을 저지를 수 있느냐. 정말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성폭력 사건 자체가 권력의 상하관계에서 계속 반복되는 문제였다. 권력의 상하관계, 권위주의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라며 “이를 위해서도 가해자가 정확히 처벌받는 사례를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피해자 쪽은 사건이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것을 경계했다. 피해자는 입장문에서 “이번 사건과 총선 시기를 연관 지어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움직임이 있다. 정치권의 어떠한 외압과 회유도 없었으며, 정치적 계산과도 전혀 무관함을 밝힌다. 부디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 부산/김광수 기자 >
“공증 때 피해자가 사퇴시점 제시…회유·협박 없었다”
서지율 부산성폭력상담소 상담실장
“오 시장 쪽 ‘총선 뒤 사퇴’ 제안” 보수언론 보도에
“사실무근…본질과 무관한 정치적 해석” 유감 표명
“정치적 해석으로 사건 본질과 상관없이 불필요한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굉장히 유감이다.”
여성 직원 성추행을 시인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사퇴 시점(23일)을 두고 ‘오 전 시장이 총선 뒤로 제안했다’는 보수언론 보도와 관련해, 피해자 쪽이 강하게 부인하며 유감을 표시했다.
성추행 사건 피해자를 지원하는 부산성폭력상담소 서지율 상담실장은 24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피해자가 오 시장의 사퇴일을 ‘4월 말까지’로 제시했다. 애초 피해자는 사퇴일을 정한다는 생각조차 없었는데, 상담소와 의논하면서 기한을 정해 (이달 말로) 제안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공증 내용도 오 전 시장이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4월 말까지 사퇴한다는 게 전부다. (사퇴 날짜를 정하는) 이 과정에서 회유와 협박은 없었다. 오 전 시장 쪽 관계자와 소통해 협상했다”고 덧붙였다.
서 실장은 “이 사건의 전말은 가해자가 처벌받고, 피해자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전부다. 피해자는 총선에 관심이 없었다. 자기 삶이 걸린 문제를 마무리하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총선 등 정치적 영향과 엮으려는 개인이나 단체가 있을까 걱정돼 피해자 입장문에서도 이 내용을 썼다. (근거 없는 추측성 주장을) 제발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피해자는 지난 23일 상담소를 통해 낸 입장문에서 “총선 시기를 연관 지어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움직임이 있다. 분명하게 말한다. 정치권의 어떤 외압과 회유도 없었으며, 정치적 계산과도 무관하다.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피해자는 오 전 시장을 고소할지 고민 중이라고 한다. 서 실장은 “경찰이 내사 착수했다는 상황은 알고 있다. 오 전 시장이 어제 사퇴했기 때문에 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피해자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고민하고 있다. 일단 이번주는 피해자를 추스르는 데 집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퇴 기자회견과 관련해서는 “22일 오 전 시장 쪽이 내일(23일) 사퇴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해 피해자도 동의했다. 다만 문구나 시간은 조율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상담소 쪽은 전날에도 오 시장이 밝힌 ‘불필요한 신체 접촉’ ‘경중에 관계없이’란 표현에는 문제가 있다며 유감을 표했다.
서 실장은 “가장 중요한 부분은 피해자가 빨리 일상으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오 전 시장은 이미 사퇴를 했다. 남은 피해자는 보호받아야 한다. 용기와 지지를 바탕으로 피해자가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부산시가 직속 성희롱·성폭력 전담기구 구성, 조직문화 개선 등 제도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 김영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