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미화하는 다큐 '기적의 시작' 광복절에 방영
실무자들 반발하자 편성본부장이 직접 후반 제작
역사기관장의 극우파 임명과 함께 '역사 장악' 노골화

 

KBS가 이승만 전 대통령 독재를 미화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다큐멘터리를 광복절 기획으로 준비하고 있어 내부의 반발을 사고 있다. 광복절을 '이승만의 날'로 만들어 보겠다는 시도다.  

언론노조 KBS본부에 따르면 KBS 편성본부는 <기적의 시작>이라는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다큐 영화를 구매했으며 이를 광복절에 방영할 예정이다. 이 영화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친일파, 독재자로 평가받아서는 안 되는 인물이며, 건국은 이승만 한 명의 지대한 업적”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일방적인 주장이지만 사료 등의 근거 제시는 전혀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영화는 4.19 혁명에 대해서도 이승만을 미화하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부정선거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수하들이 저지른 것이며, 이 전 대통령은 이 같은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또 당시 폭력적 진압으로 다친 학생들이 이승만 전 대통령이 병원에 방문하자, `할아버지!'를 외치며 울었다는 등의 인터뷰를 삽입해, 당시 이 대통령에게 분노한 민심 등은 전혀 알 수 없게끔 내용을 구성했다.

대구 10월 사건을 `대구 폭동'으로, 여수순천사건은 `여순반란'으로 명기하는 등, 국가적 차원에서 정리된 역사적 사건들도 왜곡해 표현하고 있다. 이는 사건의 책임을 `남한 내 좌익'세력에만 지움으로써, 이승만 정부의 실정으로 인해 위 사건들에서 민간인 희생의 규모가 커진 점 등은 의도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KBS 내부의 평가다.

 

28일 서울 한 영화관의 상영 시간표에 이승만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과 '기적의 시작'이 띄워져 있다. 2024.2.28 [연합]
 

게다가 KBS 편성본부는 여수순천사건 관련 부분, 이승만의 기독교 활동에 대한 과장된 묘사 등이 문제가 될 것이라 여겼는지, 이를 삭제편집한 방송본을 만들어둔 상황이라고 언론노조 KBS본부는 설명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실무자들이 강력 반발하자 편성본부장이 직접 후반제작을 하는 KBS 역사상 유례 없는 일이 발생했다”면서 “이렇게 편성책임자들도 영화에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편성을 강행하는 데에는, 배후가 있을 것으로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이 다큐의 제작을 지원한 단체는 극단적 이념에 사로잡힌 단체라는 평가를 받아온 곳이다. 제작을 지원한 `대한역사문화원'은 국가에서 시행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문제점을 조사해 시정조치를 요구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이승만의 주요 업적으로서 `건국'의 뜻과 역사적 의의를 재평가하는 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이 단체는 공식 홈페이지에서“2017년 현직 대통령 탄핵을 전후하여, 수많은 애국 시민들은 좌경화된 기막힌 현실을 깨닫고 태극기를 들었다며, “교육 문화 인권 분야에서 진보와 민주로 포장하여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기형적으로 진화해 온 공산주의 이념의 해악을 알게 돼”본 단체를 설립했다고 밝히고 있다. 세부활동으로‘이승만연구회,‘박정희연구회,‘제주 4.3 사건 재조사반,‘노조연구회’등을 소개하고 있다.

KBS 노조본부는 “광복절 기획으로 이러한 역사를 왜곡하는 다큐영화를 방영하는 것은 공영방송의 책무를 저버리고, 방송의 영향력을 특정 목적을 가진 세력에 갖다 바치는 일이다”고 비판했다.

KBS에서는 박민 사장이 취임한 이후 이승만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다큐 <건국전쟁>을 구매하려 했으며 인기 역사 프로그램인 <역사저널 그날>에 국민의힘 활동을 한 인물을 MC로 앉히려 하는 등 역사 프로그램에 대한 장악 시도가 계속 있어왔다.

KBS 노조본부는 “이는 최근 정부가 독립기념관장 등 3대 역사기관장들을 모두 극우 세력으로 앉히려는 시도와도 같은 맥락의 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이에 관한 기자회견을 오는 12일 오후 2시에 가질 예정이다.  < 이명재 기자 >

디플로매트지 정밀분석 보도... 기시다 정부 '역사 전쟁 팀'  과거사 세탁 전말

"사도광산 '금'으로 무기 사들여 러-일전 승리"
"조선인 대놓고 납치‧인신매매 사례 잦았다"

외교부, '강제' 표현 거절당하고도 등재에 찬성
수시로 거짓말하다가 들통나자 마침내 '실토'

우원식 "사도광산 등재 협상 전모 공개하라"
"굴욕 협상 바로 잡자" 야 의원들 15일 일본행

 

 

일본 사도의 한 광산 모습. 사도의 광산들은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데도 지난 7월 27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윤산으로 등재됐다. 2022. 05. 09 [AFP=연합뉴스]

 

미국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매트>가 '일본 사도 금광, 한국의 지지받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란 7일 자 기사에서 근대 일본 제국주의 팽창에 과정에서 사도 광산의 역할, 1939년 조선인 노동자 강제동원, 이번 등재 협상에 대한 한국 내 비판 여론, 윤석열 정부의 친일 굴종 외교,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에서 시작된 일본 자민당의 일제 과거사 세탁 및 윤 정부의 동조 등을 자세하게 다뤘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월터 E. 워싱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4개국(IP4) 정상회동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2024. 07.12 [공동취재]

 

"일본, 사도 '금'으로 서구 전함‧탄약 구입"

"조선인 대놓고 납치‧인신매매 사례 잦았다"

일제하 강제동원과 관련해 더 디플로매트는 "일본의 한국 식민 본부인 조선총독부가 '강제 노동자'(forced laborers)를 모집하고 확보하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며 "대놓고 납치하거나 인신매매하는 일도 잦았고, 고용 기관이 노동자를 국외로 강제 추방하기 위해 식민지 경찰에 의존하기도 했다"고 썼다. 매체는 "1940년 초반에서 1943년 중반에 사도에서 탈출한 조선인 광부들의 15%는 그들이 사도에 가고 노동하는 데서 강제된 요소를 증명한다"고 덧붙였다.

더 디플로매트에 따르면, 조선인 노동자의 생활 및 노동 여건도 일본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참혹했다. 이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가족들은 따로 거주시켰고, 일방적으로 조선인 노동자의 급여는 일정 부분 떼어내 강제저축을 시켰다. 그리고 니가타현 노동청 기록에 의하면 이 돈은 전후에 일본 정부의 국고로 귀속됐다. 또한 조선이 노동자는 갱도 깊숙한 곳에서 가장 위험한 작업에 배정됐고, 건장한 모습으로 사도에 도착했어도 폐병과 사고로 3년도 못 버텼다.

1896년 미쓰비시 광업은 정부로부터 사도 광산을 인수한다. 더 디플로매트는 "일본은 사도 광산에서 나온 미쓰비시 금을 서구의 전함과 탄약과 교환했고 그 결과 일본은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했다. 일본은 그 지역의 유일한 패권자였고 그해 한국은 보호국으로 전락한 데 이어 1910년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쓰비시가 금과 다른 광물 생산을 확대함으로써 일본 제국주의의 작업을 촉진시켰다"고 덧붙였다.

더 디플로매트는 "(중‧일 전쟁 발발 이듬해인) 1938년경 미쓰비시는 상향 조정된 일본 정부의 광물 생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애썼지만, 숙련된 광부들은 악화된 작업 조건으로 병들고, 일본인은 전시 징집령을 받았다"며 "1938년 내려진 일본의 국가총동원령에 힘입어 미쓰비시는 1939년초에 조선에서 강제 노동자들을 모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중구 유관순 기념관에서 열린 제105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기 전 인사하고 있다. 2024.03. 01

 

기시다 '역사 전쟁 팀' 창설…일제 과거사 세탁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이란 완벽한 공범 찾아"

잡지는 "일본 제국주의 꿈과 식민지 억압을 위한 자양분을 공급한 사도 광산의 역할을 일본이 묻어 버리고자 하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지적했다. 하나는 잔혹했던 일제 과거사 세탁 목적이다. 다른 하나는 그 당시 조선인은 '황국 신민'이었던 만큼 강제 노동에 처해진 게 아니라, 그냥 동원됐거나 일황의 부름에 호응해 '자발적으로' 나섰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 디플로매트에 따르면,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정부는 "역사 전쟁 팀"을 창설하고 일본의 "아름답고" "깨끗한" 역사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싸우고 있고 가장 최근의 사례가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등재였다.

잡지는 "기시다 정부는 일본 역사를 세탁하는 데 한국의 윤석열 대통령이란 완벽한 공범을 찾았다"면서 "윤 정부는 일본의 조선 점령을 식민지 잔혹 행위와 엘리트들의 부역 문제로 접근하기보다 근대성과 계몽의 원천이라고 정당화하는 한국의 뉴라이트 운동을 선택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윤은 이미 한국 역사에서 독립운동가의 유산을 배제하고 식민지 부역자들의 열렬한 반공주의를 강조하는데 열심인 뉴라이트 인물들로 자신의 정부를 채웠다"면서 "이것은 전부 한국 엘리트들이 식민지 (시절) 공모와 독립 이후 정부를 장악한 역사를 희석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야 의원들, 15일 방일…"굴욕 협상 바로 잡자"

일본 측에 '조선인 강제 노역' 명시 요구 예정

한편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 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드러난 '굴욕적 협상'를 바로잡기 위해 야당 의원들이 나섰다.

국회 연구모임 '외평포럼'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재강, 조국혁신당 김준형(대표) 이해민, 진보당 정혜경 의원은 광복절인 오는 15일부터 나흘간 일본을 방문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들 의원은 일본 외무성과 니가타현 관계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의 사도 광산 전시에 '조선인 강제 노역' 사실 명시 △ 전시 공간을 사도 광산 박물관이나 갱도 앞으로 이전 △ 조선인 강제노역 피해자 명부 공개 등을 일본 측에 요구할 계획이다. 비판 여론이 거센데도 윤석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이 아예 손 놓고 있으니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첫 번째 이슈는 사도 광산 전시에 '조선인 강제 노역' 사실을 명시하는 문제다. 윤 정부는 사도 광산 등재를 둘러싼 일본과의 외교 협상 과정에서 조선인 동원 과정의 억압성을 드러내는 '강제'(forced to work)란 표현을 명시할 것을 요청해 거절당했는데도 등재에 찬성해준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부는 6일 민주당 이재정 의원에게 제출한 답변서에서 "전시내용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강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일본의 과거 사료 및 전시 문안을 일본 측에 요구했으나 최종적으로 일본은 수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동안 외교부는 "강제성 표현은 일본과 협의하지 않았다"(7월 28일 보도자료)거나 "우리 쪽은 강제성이 더 분명히 드러나는 많을 내용을 요구했지만, 일본이 최종적으로 수용한 게 현재 전시내용"(7월 30일 외교부 당국자)이라고 거짓 해명을 해왔으나, 협상 과정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갈수록 거세지자 마침내 실토한 셈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27일(현지시간) 오후 라오스 비엔티안 한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4. 07.27 [연합]
 

외교부, '강제' 표현 거절당하고도 등재에 찬성

수시로 거짓말하다가 들통나자 마침내 '실토'

심지어 외교부는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28일 자 기사에서 "일본이 강제노동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 현지시설에서 상설전시를 하고, 한반도 출신 노동자가 1500여명 있었다는 점과 노동환경이 가혹했다는 점을 소개하는 방안 등을 타진해 한국이 최종적으로 수용했다"고 보도하자 보도자료를 내고 "사실무근"이라고 대놓고 거짓말을 했다.

앞서 등재 당일이었던 27일에는 외교부 당국자가 "강제성 표현은 2015년 군함도 등재 때 정리됐다"라고 말해 이번 협상 과정에선 '강제성' 문제를 일본 측에 요구한 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전시실에는 조선인 노동자의 '모집', '관(官) 알선', '징용'이 한반도에도 도입됐다거나, 조선인 노동자가 일본인보다 더 힘든 일을 하도록 내몰렸고 처우도 좋지 않았다는 취지의 내용 등이 포함됐지만, '강제'라는 명시적 표현은 없다.

두 번째는 전시 공간을 현재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서 사도 광산 박물관이나 갱도 앞으로 이전하는 문제다.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은 이번 유네스코 등재 범위에 포함되지 않은 시설인데다, 사도 광산 현장에서 약 2㎞ 떨어진 시골구석에 있어 방문객들이 찾아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사도 광산에 동원된 조선인 강제노역 피해자 명부 공개 문제다. 일본 정부는 관련 명부를 제공해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한국의 동의를 얻고자 '한반도 출신 노동자' 등에 대한 추도식을 개최하겠다고 약속하고서도, 그 추모 대상자의 명단조차 공유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우원식 국회의장(오른쪽)과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3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회생명안전포럼 발대식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2024. 07.30 [연합]
 

우원식 "사도 광산 등재 협상 전모 공개하라"

일본에 사도 조선인 강제 노동자 명부 요청 촉구

연합뉴스는 7일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정부가 니가타현 현립문서관에 있는 '반도노무자 명부'의 제공을 지속해서 요청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관철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작년 4월 존재가 드러난 이 명부는 1983년 니가타현 지역 역사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촬영돼 마이크로필름 형태로 남아 있다. 명부에 기록된 조선인 노동자는 수백 명 규모라고 한다. 현재 사도 광산 조선인 노동자 관련 자료로는 연초 배급명부(490여명) 등이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6일 입장문에서 "등재 결정에 앞서 여야는 재석 의원 전원 찬성으로 '사도 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 철회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런데도 정부가 등재에 동의한 것은 국회 결정에 정면으로 반할 뿐 아니라, 국민적 상식과 보편적 역사 인식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 의장은 "국회를 대표하는 국회의장으로서 정부에 요구한다"며 △ 사도 광산 등재를 둘러싼 외교 협상 전모 공개 △ 일본 정부에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 요청 △일본 유초은행에 소장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통장 인수를 구체적으로 적시했다.                                               < 이유 기자 >

"소재 불분명" "존재하지 않아"변명,  한국쪽 요구 묵살

 
 
                   사도광산 입구에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연합]

 

일본이 일제강점기에 사도광산 강제노동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 명부를 제공해달라는 한국 쪽 요구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조선인 노동자 명부는 한국과 일본 시민단체에서 꾸준히 공개를 요구해온 자료다. 앞서 우원식 국회의장도 지난 6일 “정부가 올해부터 사도광산 추도식을 열겠다는 일본 정부의 약속에 의미를 뒀는데 추도식에 앞서 누구를 추도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정부가 일본 정부에 ‘반도노무자 명부' 제공을 요청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문제의 ‘반도노무자 명부’는 사도광산이 있는 니가타현 현립문서관에 ‘1414번 자료’라는 이름으로 보관되어 있다. 이 명부는 1983년 니가타현 지역 역사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일본 연구자들이 입수해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해 보존하고 있는데, 사도광산을 운영했던 미쓰비시광업이 제공한 자료다. 원본은 아니지만 사도광산에 동원된 조선인들의 상황을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공식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사도광산사’에는 조선인 노동자 1519명이 강제동원된 것으로 나오는데, 지금까지 이름이 공개된 것은 기숙사에서 연초를 배급한 명부에 기록된 490여명이다.

한국 민족문제연구소와 일본의 ‘강제동원 진상규명 네트워크’는 그동안 이 명부 공개를 계속 촉구해왔지만 사도광산과 니가타현은 처음에는 ‘원본 소재가 분명하지 않아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가 이후에는 명부의 존재 여부를 아예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부도 올해 일본과 사도광산 등재 협상 등을 계기로 이 명부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본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일본 정부와 사도광산 운영사가 강제동원 피해 유족의 추가 소송 등을 우려해 자료 공개를 꺼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조선인 노동자들의 실상을 전시하고 추모식도 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정작 추모의 대상을 정확히 공개하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 박민희 기자 >

일본은 “모든 노동자”라고만 표현
한국외교부 “한국인 노동자”로 변형
일본에 유리한 자료로 둔갑시켜

 
 
일본 사도광산을 대표하는 아이카와 금광·은광에서 메이지시대 이후 건설된 갱도. 구불구불하고 좁은 에도시대 갱도와 달리 비교적 넓고 매끈하게 뚫려 있다. 사도광산에는 2천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조선인이 태평양전쟁 기간 일제에 의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강제노역을 했다. [연합]
 

외교부가 지난달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개최를 앞두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사도광산 전시물과 관련한 일본 대표의 발언을 사실과 다르게 소개한 사실이 확인됐다. 일본 대표가 언급한 “모든 노동자”란 표현을 “한국인 노동자”로 바꿔 전달한 것이다.

지난달 27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의에서 일본 수석대표로 나선 카노 타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사도광산에서 일한 “모든 노동자”를 위한 전시물을 설치했다는 사실을 소개하며 등재 찬성을 설득했다. 하지만 우리 외교부가 낸 보도자료에는 일본 대표 발언에 등장한 “모든”이란 형용사가 “한국인”이란 명사로 바뀌어 있었다. 외교부는 “긴 발언문을 줄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긴 표현 줄이려다 생긴 일”이라 변명하는 외교부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일본 수석대표 발언문(국회 사무처 번역본)을 보면 “일본은 모든 노동자가 처했던 가혹한 노동 환경을 설명하고 이들의 고난을 기억하기 위해 모든 노동자와 관련된 새로운 전시물을 이미 현장의 설명∙전시 시설에 설치했다”고 돼 있다.

그런데 외교부가 회의 하루 전인 26일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같은 내용이 “일본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처했던 가혹한 노동환경과 그들의 고난을 기리기 위한 새로운 전시물을 사도광산 현장에 이미 설치했다”로 바뀌어있다. 

외교부는 이런 지적에 수긍하면서도 ‘일본 대표의 발언문을 옮기며 너무 긴 표현을 줄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취지로 한겨레에 해명했다.

굴종외교 숨기려는 국민 기만 시도

그러나 외교부 설명과 달리 문제의 보도자료는 일본 대표의 발언문을 ‘축약’한 것이 아니라 발언의 주요 부분을 뽑아내 소개한 것이다. 단어의 의미뿐 아니라 뉘앙스까지도 중요하게 취급하는 외교가에서 상대국 대표의 발언 일부를 자의적으로 축약·변형해 보도자료에 소개했다는 것 역시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논란이 되자 외교부는 문제가 된 발언이 한국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양국 사이에 이뤄진 합의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고 진화에 나섰다.

조정식 의원은 ”이 사건은 단순 단어 왜곡을 뛰어넘어 대일 굴종외교를 감추고자 벌인 국민 기만이자 우롱“이라며 ”외교부 보도자료가 배포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수정이 됐고, 용산 대통령실과도 소통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 전문가인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도 “한국노동자를 모든 노동자라고 말하면서 물타기 하는 것을 한국 외교부가 그대로 묵과하는 것 자체가 한국이 일본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 신형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