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세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우리법재판소” 민주당 “극우 유튜버처럼 헌재 모욕” 
헌재 공보관 “정치권과 언론에서 탄핵 심판의 본질 왜곡” 유감 
이 와중에 조선일보 “헌재, 민주당에 ‘탄핵 폭주 허가증’ 준 것”

 
 
▲헌법재판소 깃발. ⓒ연합
 

국민의힘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을 심리 중인 헌법재판관들의 정치 성향을 문제 삼자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31일 “헌법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난 과거 행적들과 특정 정치세력과의 특수 관계 등이 속속 드러나면서, 법치의 최후 보루라고 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를 국민들께서 믿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헌법재판관 8명 가운데 3명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밝혀지면서,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우리법재판소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이재명 대표와의 사적 친분과 함께, 불분명한 국가관과 편향적 언행이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미선 재판관은 동생이 대통령 퇴진특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공정한 판단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같은 날 “국민의힘은 원내대표까지 나서 극우 유튜버처럼 헌법재판관의 10여 년 전 SNS 글을 파내고 가족을 들먹이며 헌법재판소를 모욕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재판관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좌우되는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결국 헌재 결정에 불복할 명분을 쌓으려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국민의힘은 정파적 이익을 위해 사회적 합의로 어렵게 만들어진 헌법기관을 흔드는 행태를 당장 멈추라”고 요구했다. 

 

헌법재판소도 대응에 나섰다.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같은 날 “대통령 탄핵 심판 심리 대상은 피청구인(윤석열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 되는지와 그 위반 정도가 중대한지 여부”라며 “이에 대한 판단은 헌법과 법률을 객관적으로 적용해 이뤄지는 것이지 재판관 개인 성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치권과 언론에서 재판관의 개인 성향을 획일적으로 단정 짓고 탄핵 심판의 본질을 왜곡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사법부 권한 침해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 ⓒ연합뉴스

 

국민의힘을 비판하는 보수신문 사설도 등장했다. 동아일보는 2월1일 사설 <與 헌법재판관 공격, 도를 넘었다>에서 “(국힘 주장대로) 진보 성향 재판관 3명을 심판에서 배제하자는 것은 헌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런 논리라면 윤 대통령이 임명했거나 여당이 추천한 재판관도 제척·기피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6명 이상의 재판관이 참여해야 하는 탄핵 심판을 하지 말자는 말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헌법이 대통령과 대법원장, 국회에 각각 3명의 재판관을 임명·지명·선출할 권한을 준 것은 헌재의 정치적 다양성을 위해서다. 탄핵, 정당 해산 등 정치적 사건들을 담당하는 헌재의 특성상 재판관 구성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설계한 것”이라며 “헌재에는 보수-중도-진보 성향의 재판관이 늘 혼재돼 있었고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이 신문은 나아가 “여당에서 주장하는 진보 성향 재판관들의 신상 문제도 심판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기엔 무리다. 문형배 권한대행이 법적 판단에 장애가 될 만큼 두 사람이 가까운 관계라는 점은 확인된 바 없다. 이미선 재판관의 동생이 민변 산하 윤석열퇴진특위 부위원장이라는 점도 제척이나 기피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동아일보는 “여당이 재판관들에 대해 도를 넘은 공격을 쏟아내는 것은 탄핵 심판 보이콧이나 불복까지 염두에 둔 여론전으로 비칠 뿐이다. 헌재에 대한 불신을 자극해 혼란과 분열이 더욱 가중된다면 그 책임은 여당 몫”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헌재를 흔드는 사설도 등장했다. 조선일보는 2월1일 사설 <방통위 수장 겨냥한 네 번째 탄핵안이 남용 아니라니>에서 “헌법재판소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을 기각하면서도 국회의 탄핵소추권 남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탄핵소추는) 오로지 야당을 적극 지원해 주는 MBC 지휘부를 사수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에 무슨 헌법 수호 목적이 있겠나. 이런 탄핵이 남용이 아니라는 헌재 판단은 상식 밖”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헌재의 판단이 “민주당에 ‘탄핵 폭주 허가증’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틀었다.

 

조선일보는 헌재가 최상목 권한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은 것의 위헌 여부를 3일 선고하기로 한 것을 두고도 “헌재 내 진보파가 윤 대통령 탄핵 가능성을 높이려고 마 후보 임명을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라면서 “국가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헌재가 오해받을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왔다.  <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

 

한국사 강사 전한길 “계엄령=계몽령”…음모론 이어 또 망언

부산 윤석열 탄핵 반대 기도회 참석

 
 
           ‘꽃보다전한길’ 유튜브 채널 중 ‘대한민국 혼란 선관위가 초래했다’ 영상 화면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국민 모두에게 정치의 중요성을 깨우쳐주고, 법과 질서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는 것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계몽령’이다.”

 

1일 오후 3시26분께 부산 동구 부산역 광장. 개신교 쪽 단체인 ‘세이브코리아’가 주최하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인 ‘구국기도회’에 참석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이렇게 주장했다. 그의 말에 부산역 광장에 가득 메운 집회 참가자 1만3천여명(경찰 추산)이 소리를 지르며 손뼉 쳤다.

 

“저는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자유대한민국을 사랑합니다”고 운을 뗀 전씨는 “윤 대통령을 다시 직무에 복귀시키고, 대한민국을 살려야 한다는 애국심 하나로 이렇게 100만명이 모였다. 오늘은 침몰 직전 대한민국을 살려낸 역사적인 한 페이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불법 수사와 체포, 서부지법의 불법 영장으로 억울하게 갇힌 윤 대통령을 석방하고 탄핵을 반대하는 집회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고 했다. 

 

1일 오후 부산 동구 부산역 광장에서 종교단체가 주최한 ‘구국기도회’ 참가자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를 촉구했다. 부산경찰청 제공

 

전씨는 또 “계엄으로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와 29차례 탄핵, 일방적 예산 삭감으로 행정부를 마비시킨 야당의 실체를 국민이 봤다. 야당이 주장하는 대통령의 내란이 아니라,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행정부와 국가 시스템을 모두 마비시키는 자는 거대 야당이라는 것을 국민이 알아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야당의 폭압적이고 비합법적 방법으로 탄핵당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 110만명의 유명 한국사 강사인 전씨는 지난달 19일 자신의 유튜브 영상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등 극우 세력 주장을 지지하는 여러 행태를 보여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1일 오후 부산 동구 부산역 광장에서 종교단체가 주최한 ‘구국기도회’ 참가자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를 촉구했다. 김영동 기자

 

집회에 참석한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부산 수영구)은 “오늘 이 자리에서 대구, 부산 시민들이 모인 열기를 보니 대통령께서 돌아올 것 같다. 부산이 지켜야 한다. 지금 제2의 6·25가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부산이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부산역 광장 곳곳에 경력 320명을 배치해 안전사고 예방에 나섰다. 집회는 이날 오후 5시께 끝났다.            < 한겨레 김영동 기자 > 

 

탄핵 심판 정지되면, 최소 1년6개월... 국가적 불확실성 헌재가 심판 절차 정지 않을 것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구속 상태에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 재판을 동시에 받게 된 윤석열 대통령의 대응 카드에 관심이 쏠린다. 형사 재판을 이유로 탄핵 심판 정지를 요청할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전문가들은 “인용 가능성이 낮다”고 입을 모은다.

 

헌법재판소법 51조(심판절차의 정지)는 “탄핵심판과 동일한 사유로 형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 탄핵 심판 절차를 정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4월 헌재는 ‘고발 사주’ 의혹의 형사사건 항소심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검사장)의 심판절차를 정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법 51조는 강행 규정이 아니고 심판절차의 정지는 재판부의 재량으로 결정된다. 헌재는 그동안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을 신속하게 심리하겠다는 방침을 강조해왔다. 대통령은 지위나 영향력 면에서 가장 중요한 공직인 만큼 직무 계속 여부를 결정하는 탄핵 심판을 우선 심리하겠다는 설명이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모든 사법 절차에서 목적을 가지고 지연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이 분명한 상황인데, 윤 대통령이 형사 재판에 기소됐다고 탄핵 심판이 정지되면, 최소 1년6개월은 걸린다. 국가적 불확실성을 그렇게 오래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며 “헌재가 심판 절차를 정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탄핵심판과 형사재판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사재판에서는 증거·법리가 엄격하게 적용되지만, 탄핵 심리에서는 그렇지 않다. 드러난 증거만으로도 탄핵 심판의 인용 여부를 충분히 결정할 수 있다”며 “손준성 검사 사건의 경우 헌재에서 사실관계를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 파악되지 않았기 때문에 탄핵 결정을 정지한 것이지만, 지금은 별도로 형사재판의 증거나 판단을 기다리지 않고도 인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연구원장을 지낸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와 형사 재판은 판단하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별개의 법리”라며 “사실관계가 확정이 안 되면 다른 법정에서 확인을 받고 오라고 할 수 있지만, 헌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명확한 경우에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위법성은 이후 진행될 내란 혐의 관련 형사 재판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판단 가능한 영역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국회는 소추의결서 작성 과정에서 탄핵소추 사유를 △위헌·위법한 비상계엄 선포 △국헌문란의 내란 범죄 행위로 구분한 뒤 이후 내란 범죄 행위 부분은 철회하며,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한 위헌성 판단만 받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헌재는 지난 변론기일을 통해 이번 탄핵 심리 판단 쟁점으로 △계엄 선포 △계엄사령부의 포고령 1호 발표 △군대와 경찰을 동원한 국회 활동 방해 △군대를 동원해 영장 없이 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압수수색 △법조인 체포 지시 행위 다섯가지를 정리했다. 이헌환 교수는 “내란죄 여부는 헌재의 관심 사항이 아니다. 형사사건의 기록을 수사기관으로부터 받은 것은 객관적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요청한 것이지, 기록을 보고 내란죄 여부를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위헌·위법한 비상계엄 선포 행위 여부만 따지면 되는 것이고 탄핵 인용 여부를 결정할 만큼의 객관적 사실만 확인하면 된다”고 말했다.  < 장현은 기자 >

 

윤석열 쪽, 헌법재판관 3명 회피 촉구 의견서 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 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해 있다. 연합
 

윤석열 대통령 측이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해 정계선·이미선 재판관에 대해 회피 촉구 의견서를 제출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1일 입장문을 내어 “재판부의 권위와 재판이 공정하다는 신뢰는 내부에서 문제없다고 강변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인정해야 하는 것”이라며 전날 헌법재판소에 회피 촉구 의견서를 냈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문 권한대행에 대해 “에스엔에스(SNS)에서 교류관계에 있는 정치인들은 이재명 대표를 포함해 대부분 민주당 인사들”이라면서 “심지어 그는 수많은 음모론과 가짜뉴스를 양산한 유튜버까지 팔로우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이 지목한 유튜버는 ‘김어준 저장소’다.

 

정 재판관에 대해서는 “자신의 배우자가 탄핵 촉구 시국 선언에 이름을 올렸으며, 배우자가 근무하는 단체의 이사장이 소추인 측 대리인으로 나섰음에도 심리에 계속 참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재판관에 대해서는 “친동생이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윤석열 퇴진 특별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배우자는 이재명 대표와의 재판거래 의혹 및 대장동 50억 클럽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권순일 전 대법관과 같은 법무법인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정치적 예단을 드러내고 공정성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보인 문형배, 정계선, 이미선 헌법재판관은 즉시 회피해 탄핵심리의 공정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헌재는 윤 대통령 측이 비슷한 사유로 제기한 정 재판관 기피 신청을 기각한 바 있다. 당시 헌재는 “단순히 주관적 의혹만으로는 부족하고 합리적이라고 인정될 만큼 객관적인 사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천재현 헌재 공보관은 전날 브리핑에서 회피 사유와 관련해서도 객관적 사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천 공보관은 “정치권과 언론에서 재판관의 개인 성향을 획일적으로 단정 짓고 탄핵심판의 본질을 왜곡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한 사법부의 권한 침해 가능성에 대해 헌재는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 한겨레  손지민 기자 >

 

윤석열 대검 ‘구름다리 틴팅’ 사건…막무가내 징조 5년 전 그날

 

 
2020년 7월 2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본관과 별관을 잇는 구름다리가 검게 ‘틴팅’ 되어 있다. 김혜윤 기자 
 

당선되면 단 하루도 청와대에 머물지 않겠다고 공언한 윤석열 대통령은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5년짜리 세입자가 70년 넘은 본가를 버리고 아파트 이사하듯 제멋대로 옮기는 바람에 졸지에 내쫓긴 각 기관은 줄줄이 사탕처럼 연쇄적으로 옮김을 당했다. 역술인이 시켰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본인은 제왕적 대통령을 버리고 국민과의 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취임 후 한동안은 용산 청사에서 아침 출근길에 취재진 앞에 섰다. 하지만 곧 심기를 건드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그 유명한 ‘바이든 날리면’ 사건. 2022년 11월 관련 언론사를 순방 비행기에 안 태우는, 밴댕이가 ‘형님’이라고 할 일이 발생했고 도어스테핑은 1년도 안 돼 중단됐다. 기자들이 출근을 기다리던 출입구는 봉쇄되고 이내 튼튼한 벽으로 아예 막아버렸다.  

그런데 성질 나면 다짜고짜 막아버리는 특유의 기질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1월 1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로 들어서면서 기자들과 출근길 문답을 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MBC를 비난하며 곧 있을 순방에 전용기를 태우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윤운식 선임기자 

 

지난 2020년 검찰총장 시절, 이른바 조국사태 이후 아침마다 사진 찍고 질문하는 기자들이 귀찮았는지 청사 정문에서 하차해 출근하는 전임들과 달리 지하통로로 바로 들어갔다. 퇴근도 마찬가지로 지하에서 냅다 나가버리는 바람에 사진에 담을 수 있는 순간은 구내식당을 가기 위해 점심시간에 본관과 별관을 이은 투명창이 있는 구름다리식 통로를 지나갈 때뿐이었다. (이곳은 원래 별관 3층 내부에서 사진취재가 가능했는데 박근혜 정부 시절 김진태 검찰총장이 사진기자들을 신경질적으로 내쫓는 바람에 이후엔 건물 밖에서만 취재가 가능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두 눈을 의심케 할 일이 벌어졌다. 그 긴 통로의 유리를 불투명한 검은색 필름으로 감싸버리는 ‘틴팅’ 작업을 한 것. 그게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에 일어났다. 사진기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대검은 구름다리가 유리창으로 이뤄져 단열에 부적합해 작업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몇십년을 냅두다가 하필, 그때 단열에 신경 쓰셨다는 말이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이 2020년 1월 10일 낮 서울 서초구 대검창철 별관에서 식사를 마친 뒤 본관으로 이동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전임자들은 권력이 없어서 사진에 찍힌 건가? 최고 공직자의 자리에 올랐기에 귀찮고 짜증 나더라도 찍히고, 질문받고, 설명한 것 아니던가? 본인이 좋을 땐 기자들 앞에서 당당한 척,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권력을 맘대로 휘두르면 그게 깡패지 검사냐” 며 으스댔지만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역정 내고, 멀쩡한 출입구가 벽으로 막히고, 비행기 안 태우고, 투명한 창이 검은색 비닐로 도배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국민과 소통을 한다는 구실로 막대한 비용을 치르면서 청와대를 나온 윤 대통령은 취임 3년 차에 들 때까지 공식 기자회견이라고는 취임 100일 차 기자회견이 유일했다. < 윤운식 기자 >

 

2007년 12월 3일 BBK 사건의 중간수사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임채진 검찰총장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본관 건물에서 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검찰의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 수사결과 발표가 있은 2014년 4월 14일 낮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별관에서 김진태 검찰총장이 걸어가다 사진 취재를 하는 기자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국회 통과 법안 7번째 거부권
민주당 “내란 동조 자인한 셈”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1일 오후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1일 두번째 ‘내란 특검법’에도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최 대행이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이번이 7번째다. 역대 대통령 권한대행 가운데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최 대행이 올바른 결정을 했다며 국회에서 내란 특검법 재표결이 이뤄질 경우 가결에 필요한 찬성표를 확보하지 못해 폐기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 대행의 거부권 행사를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정치적 역풍 등을 우려해 당장 탄핵소추 카드를 꺼내들진 않았다.

 

최 권한대행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헌법 질서와 국익의 수호, 당면한 위기 대응의 절박함과 국민의 바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번 특검 법안에 대해 재의 요청을 드리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전에 정부로 이송되어 왔던 특검법안에 비해 일부 위헌적인 요소가 보완됐다”면서도 “이전 특검법안과 동일하게 여야 합의 없이 야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야당이 여당의 요구를 수용해 두번째 특검법을 대폭 수정했음에도 여전히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국회에서 대승적으로 논의해달라”고 또다시 공을 돌린 것이다.

 

“윤 재판 진행중…특검 필요성 판단 어렵다”는 최 대행

 

최 대행은 그러면서 “치열한 고민에도 불구하고, 현 시점에서 특별검사 제도를 반드시 도입해야 하는지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낼 수 없었다”고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기소돼 재판 절차가 진행 중인데, 특검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현재는 비상계엄 관련 수사가 진전돼 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군·경의 핵심 인물들이 대부분 구속기소되고, 재판 절차가 시작됐다. 앞으로의 사법절차 진행을 지켜보아야 하는 현 시점에서는 ‘별도의’ 특별검사 도입 필요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특검 법안에 비해 일부 보완됐지만, 여전히 내용적으로 위헌적 요소가 있고 ‘국가기밀 유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헌법질서와 국익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된다”고도 했다. 특히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을 반영해 수색 및 검증까지 제한하는 강한 보호 규정을 두고 있는 ‘위치와 장소에 관한 국가 비밀’은 한 번 유출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며 “검찰이 이미 내란 기수(실행에 옮겨 결과가 발생한 것) 혐의로 기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추가적 조치로 얻을 수 있는 실익뿐 아니라, 그에 따른 부정적 영향도 함께 균형 있게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자칫 정상적인 군사 작전까지 수사 대상이 될 경우 북한 도발에 대비한 군사 대비 태세가 위축될 수 있고, 군의 사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며 “그들의 명예와 사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또다시 발생한다면,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대신해 국정을 운영 중인 권한대행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6표→1표→?…내란 특검법 폐기 수순이라는 국힘

 

국민의힘은 최 대행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법적·정치적 정당성을 모두 갖춘 결정이자, 대한민국의 법치와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한 결단”(김대식 원내대변인)이라고 평가했다. 국민의힘도 ‘윤 대통령 기소’로 특검법 필요성이 사라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100일 동안 112억원이나 들여 특검해서 뭘 더 밝혀내겠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조기 대선을 위한 ‘내란 특검 쇼’를 하겠다는 것으로서 역대급 국력 낭비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최 대행의 거부권 행사로 내란 특검법이 국회로 돌아와 재표결이 이뤄진다고 해도, 가결될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1차 내란특검법은 지난해 12월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283명 중 찬성 195표, 반대 86표, 기권 2표로 가결된 바 있다. 최 대행의 거부권 행사로 지난 8일 치러진 재표결에선 찬성 198표, 반대 101표로 폐기됐다. 내란 특검법을 공동 발의한 야 6당이 192명인 점을 고려하면 국민의힘에서 최소 6표의 찬성표가 나온 셈이다.

 

이후 여당의 뜻을 수용해 외환 혐의와 내란 선전·선동 혐의 등을 삭제한 2차 내란 특검법은 지난 17일 표결에서 재석 의원 274명 가운데 찬성 188표, 반대 86표로 가결돼 오히려 찬성표가 줄었다. 당시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만 여권에서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당이 자체 특검법을 발의한 데다 여당 지지율이 계엄령 이전으로 회복돼 여당 내에서 재표결 시 찬성표가 나올 가능성이 적어진 상황이다. 실제로 2차 내란 특검법 표결 당시 찬성표를 던진 안철수 의원은 “재의결(재표결)하면 반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내란 특검에 찬성한다고 밝혔던 한 국민의힘 의원도 한겨레에 “윤 대통령을 기소하기 위한 특검이었는데 (이미) 기소가 되지 않았나. 민주당도 특검에 대해 전향적으로 고민을 해봐야 한다”며 반대 뜻을 내비쳤다.

 

혁신·진보 “최상목 탄핵 즉각 추진”…민주 일단 ‘경고’만

 

야권에서는 “특검의 칼날이 윤 대통령을 넘어 자신까지 겨누게 될까 두려운 것이냐”, “대통령 놀음을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는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내란특검법을 거부함으로써 자신도 내란 가담 또는 동조 세력이라고 자인한 꼴이 됐다. 국민의힘이 줄기차게 주장했던 대로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다”라고 비판했다.

 

조국혁신당과 진보당은 최 대행을 즉각 탄핵하자고 주장했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여전히 최 대행 탄핵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최 대행 탄핵의 실익이 없을 뿐 아니라, 정치적 역풍도 우려되는 까닭이다. 민주당 지도부의 핵심 관계자는 “현재로선 최 대행에 엄중 경고를 하는 것이 최선이다. 특검법 재의결 과정에서 여당 내 합리적인 의원들의 동참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장나래  신민정  엄지원 기자 >

 

최상목을 언제까지 놔둬야 하나 …안철수는 또 '철수'

'내란 특검법' 또 훼방…한 달간 거부권 행사 7번

소극적 권한행사인 헌법재판관 임명은 안 하면서
적극적 권한행사 남발하는 해괴한 '대통령 놀이'

국힘 요구 대부분 반영한 수정안에도 막무가내
'여야 합의' '국가기밀' '위헌' 타령 반복 생트집
민주 "특검이 자신 겨눌까 두렵나"…탄핵엔 신중

다음 대행도 '윤석열 아바타', 재표결 통과에 주력
국힘 이탈표는 글쎄…안철수도 입장 바꿔 "반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2025.1.31. 연합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결과는 역시 뻔했다. 생선(특검법)은 싱싱한 상태로 소비자(국민)에게 전달되는 대신 마구 물어뜯긴 끝에 뼈만 남아 쓰레기통에 버려질(폐기) 위기에 놓였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를 통과한 두 번째 '내란 특검법'에 대해 또 다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 권한대행 자리에 오른 지 한 달 만에 무려 7회(내란 특검법만 2회)에 걸쳐 법안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이는 벌써 노무현(6회), 박근혜(2회), 이명박(1회) 대통령의 기록을 넘어선 것이고 노태우 대통령(7회)과는 동률이다. 김영삼·김대중·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내내 거부권을 한 번도 행사하지 않았다.

사법부 영역인 헌법재판관과 대법관을 임명하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권한행사는 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입법부가 통과시킨 법안을 거부하는 매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권한행사는 멋대로 남발하는 최 대행의 해괴한 '대통령 놀이'를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과 수사 및 체포의 중요 고비마다 법치주의와 헌정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책임감 있는 결단을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방해 공작만 벌여온 최 대행을 지켜보며 시민들의 '내란성 스트레스'는 커져만 간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나경원 의원 등이 체포 저지에 나섰다가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2025.1.15. 연합뉴스

특검법에 거부권을 휘두른 이유 또한 얼토당토않다. 최 대행은 1월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헌법 질서와 국익의 수호, 당면한 위기 대응의 절박함과 국민의 바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재의 요청을 하는 게 불가피하다"며 "여야 합의 없이 야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여전히 위헌적 요소가 있고 국가기밀 유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면서 "검찰이 이미 (윤 대통령을) 기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추가적 조치로 얻을 수 있는 실익뿐 아니라 그에 따른 부정적 영향도 함께 균형 있게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헌법 질서와 국익의 수호, 당면한 위기 대응의 절박함과 국민의 바람'을 고려했다면 내란 사태의 완전한 종식을 위한 특검법 수용이 마땅하다. 이는 특검 도입을 압도적으로 찬성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윤 대통령을 사력을 다해 비호하며 헌법재판소와 법원마저 백안시하는 '내란옹호당' 국민의힘이 특검법에 찬성할 가능성은 전무한데도 최 대행이 매번 '여야 합의' 타령을 고장 난 레코드처럼 반복하는 것은 야권과 국민을 우롱하겠다는 속셈일 뿐이다.

특검법에 위헌적 요소는 처음부터 없었지만 민주당이 국민의힘 요구를 대부분 반영해 특검 후보를 대법원장이 추천하도록 하고 수사 인력‧기간‧대상을 모두 대폭 줄인 수정안을 제시했는데도 '위헌' 타령을 되풀이한 것 역시 기만 술책이다. 법원행정처가 제시한 의견을 담아 국가기밀 유출 위험도 원천 차단했지만 어차피 생트집을 잡기로 작정한 최 대행은 어떻게든 특검 수사를 차단할 이유만 만들어냈다. 구구절절 늘어놓은 다른 거부권 사유들 또한 말장난이긴 마찬가지다.

 

야6당 의원들이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서 내란 특검법을 제출하고 있다.왼쪽부터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 진보당 전종덕 의원,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2025.1.9 [공동취재] 연합
 

야권은 최 대행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 대통령으로부터 '비상입법기구 예산 확보' 문건을 전달받은 '내란 중요 임무 종사' 혐의자로서 사실상 자기 자신에 대한 수사를 차단하려는 의도도 깔려있다는 점을 다시금 부각시키며 '내란 대행'의 작태를 규탄했다.

더불어민주당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최상목 대행은 차라리 솔직해지라. 여야 합의 불발도, 윤석열 구속 기소 상황도, 위헌성과 국가기밀 유출 우려도 모두 핑계"라며 "특검의 칼날이 윤석열을 넘어 자신까지 겨누게 될까 두려운 것 아닌가? 비상계엄 당일 윤석열에게 받은 지시 문건을 '읽지 않았다'는 자신의 발언이 검증될까 겁나는 것 아닌가?"라고 캐물었다.

 

그러면서 "최상목 권한대행은 12월 3일 밤 본인의 묵인과 방조 책임을 감추고 싶어 특검을 거부했겠지만 오늘의 선택으로 정체를 분명히 드러냈다. 국민의힘이 줄기차게 주장했던 대로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며 "이제 국회의 시간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경고한 대로 최상목 대행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의 제안 설명 때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해 의석이 비어 있는 가운데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24.12.7. 연합

 

다만 민주당은 '합당한 책임'을 묻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최 대행 탄핵소추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명시하지는 않았다. 국정 안정과 경제 회복을 최우선 목표로 내건 상황에서 한덕수 총리에 이은 연쇄 탄핵이 자칫 정부‧여당과 언론에 '국정을 마비시킨다'는 선동의 빌미를 줘 여론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최 대행을 탄핵한다고 해도 다음 권한대행 승계자가 최 대행보다 협조적일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 또한 결단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다음 순번은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고 그 다음은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라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애초에 국무위원들이 '윤석열 아바타'들로 구성된 탓에 내란 사태 극복에 별 의지가 없거나 기회주의적 보신에 급급한 인물만 가득한 실정이다.

 

민주당은 결국 내란 특검법 국회 재표결에서 200석을 확보해 통과시키는 방안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재표결을 서두르지 않고 국민의힘 비주류 의원들을 개별 접촉하면서 이탈표가 8표 이상 나올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설득 작업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기명으로 진행된 지난달 17일 첫 표결 때 여당에서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진 안철수 의원조차 "특검은 수사를 하는 곳인데 지금은 수사가 끝나고 재판으로 넘어갔다"며 "(재표결 시) 찬성할 생각이 없다"고 입장을 바꿔 전망은 여전히 밝지 않다.

 

조국혁신당 차규근(왼쪽부터)·정춘생·강경숙·이해민 의원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두번째 '내란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31. 연합

 

민주당을 제외한 다른 진보적 야당들에서는 최 대행을 당장 탄핵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분출하고 있다.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단은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최상목 대행이 내란 종식에 기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끝내 걷어찼다. 내란 가담자임을 스스로 입증했다"며 "국정 안정을 핑계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아니라 자신의 거울인 윤석열 '내란수괴 대행'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맹렬하게 비판했다.

 

나아가 "조국혁신당의 인내도 이제 끝났다. 조국혁신당은 최상목 권한대행을 확실한 내란 사태 가담자이자 내부자로 규정한다. 국정을 책임지는 자리에 이대로 둘 수는 없다"면서 "최상목 대행은 대통령 놀음을 이제 그만 내려놓길 바란다. 조국혁신당은 최 대행의 즉각적인 사퇴를 촉구하며, 불응시 본격적으로 탄핵을 추진할 것임을 밝힌다. 민주당의 조속한 최상목 권한대행 탄핵 동참을 요청한다"고 했다.

 

김보협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다음 달 3일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 심판을 통해 최상목이 임의로 헌재 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은 위헌 행위가 확정될 것이다. 내란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의심받는 권한대행이 헌법을 우습게 아니 탄핵 추진에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며 "경제부총리의 무능력은 윤석열의 계엄 선포 전부터 곤두박질친 경제성적표로도 충분히 입증됐다. 국회가 탄핵소추라는 징계를 주저할 경우 최상목은 더욱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기고만장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보당 정혜경 원내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최상목은 사실상 본인이 내란 범죄 가담자임을 인증하며 '내란 은폐 대행'으로 전락했다. 민주주의도, 삼권분립도, 법치도 다 부정한 역대 최악의 권한대행"이라며 "저자가 권좌에 앉아 '소통령 놀이'하는 꼴을 더 두고 볼 수 없다. 야권이 힘을 합쳐 최상목 탄핵을 즉각 추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윤석열 즉각 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 도로에서 연 9차 범시민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2025.2.1. 연합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도 최 대행의 즉각 사퇴 또는 탄핵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입장문에서 "특검이 기존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독립성을 갖고 공소 유지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특검 도입의 필요성이 크다"며 "억지 주장으로 내란 범죄를 옹호하는 최상목 권한대행을 강력히 규탄하고 주권자 시민의 명령으로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한다. 최상목 권한대행이 계속 버틴다면 국회에서 탄핵을 통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전했다.

 

참여연대는 성명을 통해 "최상목은 '여야 합의'를 요구하며 1차 특검법을 거부하고 시간을 끌더니, 국민의힘 요구를 상당수 반영해 수정안이 통과되었음에도 이 핑계 저 핑계로 끝내 거부권을 행사했다. 결국 내란 특검의 수사를 무산시키려는 것"이라며 "끝까지 무책임하고 기회주의 행태를 보이는 최상목은 즉각 사퇴하라.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최상목의 책임을 엄중히 묻고 모든 역량을 발휘해 내란 특검법 재의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촛불행동도 성명에서 "최상목은 되지도 않는 핑계를 대며 '내란 대행'임을 자처했다. 이런 자가 권한대행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 내란범들과 극우세력들이 마음껏 폭동을 치며 활개를 치는 것"이라며 "지금 국정 안정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과 그 일당들을 하루라도 빨리 일망타진하는 것이다. 최상목은 국정 안정화의 길이 아니라 내란 지속, 내란 옹호의 길을 택했다. 더 두고 볼 것 없다. 탄핵이 답이다"라고 단언했다. < 민들레 김호경 기자 >

 

내란특검법 또 거부한 최상목에 야권 “특검 칼날 두렵나”

혁신·진보당 “최상목 탄핵 즉각 추진”
민주, 실익 없다 판단 일단 “경고”만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1일 두번째 ‘내란 특검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자 야권에서는 “특검의 칼날이 윤석열 대통령을 넘어 자신까지 겨누게 될까 두려운 것이냐” “대통령 놀음을 이제 그만 내려놓으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다만 조국혁신당과 진보당 등 소수정당이 최 대행의 탄핵소추를 주장한 것과 달리, 민주당은 “합당한 책임을 묻겠다”며 유보적 입장을 내놨다.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최 권한대행이 내란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자 “내란특검법을 거부함으로써 자신도 내란 가담 또는 동조 세력이라고 자인한 꼴이 됐다. 국민의힘이 줄기차게 주장했던대로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다”라고 비판했다. 최 대행이 비상계엄 선포 당일 윤 대통령이 전달한 지시 문건(쪽지)을 읽지 않았다며, 내란 가담 가능성을 부정해왔는데, 특검 수사 과정에서 반대의 정황이 드러날까봐 특검에 반대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노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은 이번 내란 특검법에 제3자 추천 방식을 포함했고, 법원행정처가 제시한 안을 담아 국가기밀 유출 위험도 원천 차단했다”며 “그런데도 최상목 권한대행은 위헌성과 국가기밀 유출 우려를 거부권 행사의 이유로 들먹였다. 대놓고 대국민 사기를 치겠다는 뜻이냐”고 규탄했다.

 

조국혁신당과 진보당은 최 대행을 즉각 탄핵하자고 주장했다. 혁신당 원내대표단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최상목 대행은 내란수괴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당시부터, 체포 협조 지시는커녕, 경호처의 불법 저항을 방관하며 오히려 불법 저항을 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며 “국정 안정을 핑계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아니라, 자신의 거울인 윤석열 ‘내란수괴 대행’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국혁신당은 최 대행을 확실한 내란 사태의 가담자이자 내부자로 규정한다. 조국혁신당은 최 대행의 즉각적인 사퇴를 촉구하며, 불응시 본격적으로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에도 “최 대행 탄핵에 동참하라”고 촉구했다.

 

정혜경 진보당 원내대변인도 “최상목 대행은 내란의 주요임무 종사자로 지목되어 왔다”며 “야권이 힘을 합쳐, 최상목 탄핵을 즉각 추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최 대행 탄핵에 여전히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미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만큼 탄핵해도 실익이 없을 뿐 아니라, 정치적 역풍도 우려되는 까닭이다. 민주당 지도부의 핵심 관계자는 “현재로선 최 대행에 엄중 경고를 하는 것이 최선이다. 특검법 재의결 과정에서 여당 내 합리적인 의원들의 동참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엄지원 기자 > 

 

검찰, ‘윤 체포 저지’ 김성훈·이광우 구속영장 또 반려

 
 
김성훈 대통령경호처 차장이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서 의원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
 

검찰이 대통령경호처의 ‘강경충성파’로 꼽히는 김성훈 경호처 차장과 이광우 경호본부장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다시 반려했다.

 

서울서부지검은 김 차장과 이 본부장의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 사전구속영장 신청을 반려하면서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청했다고 31일 밝혔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특수단)이 지난 24일 구속영장을 재신청한 지 일주일 만이다.

 

검찰은 경찰 특수단이 추가로 적용한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대통령경호법)상 직권남용 혐의에 보완수사를 요청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새로 입건된 혐의와 관련한 법 규정을 확인할 부분이 있어 그런 것들을 포함해 보완수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앞서 경찰은 지난 18일 김 차장에 대해 윤 대통령 1차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만 범죄사실에 담아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재범 위험성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이를 반려해 논란이 일었다.

 

이에 경찰은 애초 구속이 필요한 사유로만 담겼던 △비화폰 서버 삭제 지시 등 증거인멸 △영장 방해 지시를 따르지 않은 직원에 대한 직무배제 혐의 등을 범죄 사실로 추가하면서 ‘대통령경호법’의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재신청했다.

 

형법의 직권남용죄는 실제 증거인멸이나 직무배제 등의 ‘행위‘가 있어야 성립되지만 대통령경호법에서는 ‘직권을 남용해선 안 된다’고 규정해, 법조계 일각에선 증거인멸이나 직무배제 ‘시도’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고 본다.            < 한겨레  김가윤 기자 >

 

 ‘생각의 힘’을 키우기보다는 상관에 대한 충성과 명령에 대한 복종을 지나치게 강조

국가방위에 헌신하라고 세금으로 육성한 육군의 정예 장교들이 거꾸로 국가에 대한 공격

육사 네트워크란 사적 인맥이 공적 지휘체계보다 앞서는 경우가 12·3 내란 사태 때 민간인 신분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정보사 현역 장교들을 지휘한 데서 드러났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왼쪽부터). 
 

“이유를 대지 마라”

1980년대 중후반 육군사관학교(육사)를 다닌 한 예비역 영관급 장교에게 “한국 현대사에서 육사가 쿠데타의 주역이 된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그는 “육사 생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누가 봐도 명백한 불법 명령은 따르지 말아야겠지만, 상관의 명령이 내가 보기에 부당하더라도 일단 따라야 한다고 배웠다”고 전했다. 현재 군 지휘부를 구성하는 육사 출신 장군들이 다녔던 1980년대 중후반 육사 교육과 학교 분위기가 ‘생각의 힘’을 키우기보다는 상관에 대한 충성과 명령에 대한 복종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설명이다.

 

지난 2023년 5월 육사 29기, 39기, 69기 모교 방문 행사 모습. 육사 페이스북

 

지난해 12월7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그 상황에서 왜 그랬냐’ 하는데,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위기 상황이잖아요. 군인은 그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을 해요. 위기 상황이니까 맞나 틀리나 그거 따지기가 쉽지 않아요. 원래 계획이 이렇게 돼 있으니까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을 준비해야 하지 않냐 그런 거죠.”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의 변호를 맡은 김인원 변호사도 “당시 피고인(이진우)은 시간 여유가 없었고 법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국방부 장관의 명령이 위헌인지 불법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며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진우와 여인형은 육사 48기(1988년 입학) 동기다. 여인형과 이진우의 주장에는 “이유를 대지 마라”던 1980년대 육사 분위기가 강하게 묻어 있다.

 

육사는 한국 현대사에서 3차례나 쿠데타 주역으로 등장했다. 1961년 5·16 쿠데타 때는 김종필 등 육사 8기, 1979년 12·12군사반란 때는 전두환 등 육사 11기, 이번 12·3 내란사태 때도 육사 출신 현역·예비역 장군들이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육사 38기), 계엄사령관을 맡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육사 46기),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육사 47기),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육사 48기),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육사 48기),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육사 50기) 등이다.

 

국가를 전복시키는 행위를 뜻하는 쿠데타는 프랑스말이다. 이 말의 본뜻은 ‘국가에 대한 공격'을 의미한다. 육사 누리집이 밝힌 학교 목적은 “국가방위에 헌신할 수 있는 육군의 정예장교 육성”이다. 국가방위에 헌신하라고 세금으로 육성한 육군의 정예 장교들이 거꾸로 국가에 대한 공격(쿠데타)에 세 차례나 앞장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육사 생도들이 기말고사를 끝내고 3주간의 겨울휴가를 떠나고 있다. 육사 페이스북
 

한해 육사 모집 인원이 330명가량이고 이 중 4년 교육을 마치고 280명 정도가 육군 소위로 임관한다. 육사는 전면 무상교육이다. 4년간 학비가 없고,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옷도 준다. 사관생도는 월급도 받는다. (2025년 기준 1학년 121만 5000원, 2학년 135만원, 3학년 150만원, 4학년 165만원)

 

육사 생도 1명을 4년간 가르쳐 졸업시키는데 세금 2억5천만원이 들어간다. 이 가운데 직접비는 급여, 급식, 피복, 탄약, 교보재 등이고 간접비는 인력운영, 장비·시설유지, 유류 등이다.

 

‘막대한 세금으로 육성된 육사 생도들이 감사할 줄 모른다’는 지적은 예전부터 나왔다.

‘인격론에 근거한 군대윤리 연구‘(2014년 2월 윤경호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박사학위 논문)에는 가까이서 생도들을 지켜본 이들의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다.

 

“생도 태도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감사할 줄 모른다’입니다. 종교 행사 때 많은 사람이 어렵게 마련한 음식과 시간에 대해 감사하다고 표현하는 생도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보고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들은 타인들의 노고와 수고가 보이지 않거나 당연하다고 느끼나 봅니다. 그런 태도는 근본적으로 이 학교가 국민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데 있다고 봅니다. 공짜로 지내는 것에 익숙하고 작은 일에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구조가 있습니다. 이것은 인격교육이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들이 군의 주축이 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대단히 중요한 오류가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어느 목사의 말)

 

“생도들에게 이렇게 많은 세금을 쓰는데, 이렇게 무기력하고 책임감 없이 행동하는 데 화가 난다. 나는 같은 또래로서 어렵게 학비를 벌고 노력해서 학교를 다닌다. 그래도 공부에 대한 열정과 가치를 존중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데 생도들은 이렇게 비싼 교육기관에서 무관심하고 열정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를 느낀다.”(사관학교 근무 기간병의 소원 건의 중에서)

 

오래 전부터 육사 출신이 진급에서 앞섰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육사 출신들이 장군을 독식한다”는 불만이 학군(ROTC) 등 비육사 출신에서 터져 나왔다. 육사 출신이 아니면 대령에서 장군 진급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고, 비육사 출신이 어렵게 별 한 개를 달아도 별 두 개, 세 개를 달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좁은 문이 됐다.

 

지난 2023년 후반기 장군 인사 결과를 보면, 대령에서 준장(별 1개)으로 진급한 52명 가운데 육사 출신이 36명(69.4%)이었다. 육군3사관학교(3사) 출신은 5명(9.6%), 학군 출신은 5명(9.6%), 학사 출신은 4명(7.6%), 여군은 1명(1.9%), 간호는 1명(1.9%) 등이었다. 준장에서 소장(별 2개) 진급자 14명 가운데 육사 출신은 12명(85.8%)이었고, 3사 출신 1명(7.1%), 학군 출신 1명(7.1%)이었다. 소장에서 중장(별 3개)으로 진급한 7명 가운데 육사 출신 6명(85.7%)이고 학군 출신 1명(14.3%)이었다.

 

이번 내란 사태로 구속된 소장, 중장, 대장이 육사 출신 일색인 것은 원래 육군 고위 장성 중에 비육사 출신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육사 출신의 현역 지휘관과 예비역 장군들이 내란을 주도해, 이참에 사관학교 제도의 태생적 한계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각 군별로 육해공군사관학교를 두지 말고 융복합 시대 추세에 맞게 국방부 산하 국군사관학교로 통합하는 방안, 육군사관학교와 육군3사관학교를 통합하고 학군사관제도와 학사사관제도를 통합하자는 제안은 예전부터 나왔다.

 

폐쇄적 육사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젊은이들이 사회와는 단절된 상태에서 육사에서 학생도 군인도 아닌 상태로 4년간 학습하고 임관해 40, 50대까지 군 생활을 한다. 이들은 전역 후에도 육사 동기 선후배 관계가 그대로 이어진다.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12·3 계엄 내란 사태를 통해 드러난 한국 국방의 문제점과 극복 방안’ 세미나에서 김덕기 청주대 군사학과 교수는 “이들이 사관 생도 때 만난 선배, 동기, 후배 관계가 임관 이후 평생 지속되는 가장 중요하며 유일한 네트워크가 된다. 이들은 명령체계에만 익숙한 나머지 국가와 사회의 다른 구성원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이 서투르다”며 “사관생도에 대한 민주시민교육과 사관학교가 군 이외의 민간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육사 네트워크라는 사적 인맥이 공적 지휘체계보다 앞서는 경우가 12·3 내란 사태 때 민간인 신분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정보사 현역 장교들을 지휘한 데서 드러났다.

 

육군사관학교의 영문 표기는 KOREA MILITARY ACADEMY다. 해군사관학교는 Republic of Korea Naval Academy, 공군사관학교는 Republic of Korea Air Force Academy다. 영문 표기에서 알 수 있듯, 사관학교는 그리스의 아카데미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군의 리더인 장교를 키우는 사관학교를 아카데미로 명명한 배경에는 진리와 허상을 구별하는 능력 있는 엘리트가 대중을 선과 아름다움으로 향하도록 이끈다는 플라톤의 ‘철인’ 이상이 자리 잡고 있다. 육사 건물에는 ‘사유하고 질문하자’는 펼침막이 붙어 있기도 하다. 육사가 3차례나 쿠데타의 온상 노릇을 한 것은 KOREA MILITARY ACADEMY란 이름을 스스로 먹칠하는 일이다.   < 한겨레 권혁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