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오 국무 “이제 공은 러시아로 넘어갔다” 미국 "며칠 안에 러시아 쪽 만나 논의할 것"
우크라 부분휴전 원했으나 미 전면휴전 요구 미 중단했던 우크라 군사지원 정보공유 재개 유럽, 일제히 환영하며 러시아에 수락 촉구
11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미국-우크라이나 고위급회담에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마이크 월츠 국가안보보좌관(왼쪽)이 중간의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무장관, 모사드 빈 모하마드 알-아이반 국가안보보좌관을 사이에 두고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안드리 예르마크 대통령실장, 루스템 우메로프 국방장관(오른쪽)과 마주보고 앉아 있다. 회담에서 우크라이나는 미국에 러시아와의 부분적 휴전 계획을 제시했으나 미국은 전면휴전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2025.3.11. UPI 연합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11일 고위급 회담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30일간 멈추기로 합의하고, 러시아가 이에 동의할 경우 휴전은 즉시 실행될 수 있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휴전안은 미국이 제안한 것으로, 우크라이나의 동의을 얻어낸 미국은 며칠 안에 러시아 쪽과 만나 휴전안 수락을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중단했던 군사지원 정보공유 재개
이날 합의 뒤 미국은 지난 2월 28일 백악관 정상회담 결렬 뒤 중단했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과 기밀정보 공유를 즉시 재개하기로 했다.
두 나라는 또 2월 28일 정상회담에서 결렬됐던 우크라이나 자원 공동개발협정을 “가능한 한 빨리” 체결한다는 데에도 합의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이날 회담에는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마이크 월츠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과 안드리 시비하 외무장관, 루스템 우메로프 국방장관 등이 참석했다.
11일 사우디 제다에서 열린 미국-우크라이나 고위급회담에 참석한 양국 관리들. (왼쪽부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월츠,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장 안드리 예르마크, 외무장관 안드리 시비하, 국방장관 루스템 우메로프. 2025.3.11. UPI 연합
루비오 국무 “이제 공은 러시아로 넘어갔다”
공동성명은 러시아가 휴전안을 수락할 경우 휴전은 즉시 실행에 옮겨지며,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합의에 따라 휴전기간이 연장될 수 있다는 내용도 담았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기자들에게 “교섭을 하기 전에 서로 공격을 멈출 필요가 있다. 그것이 (트럼프) 대통령이 바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쪽에서 그럴 의사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휴전안을 러시아에 제시할 것이며, 그들이 이를 받아들이기를 희망한다”면서 “이제 공은 러시아 코트로 넘어갔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가 잠정 휴전에 동의하면 제2단계로 “우크라이나의 장기적인 안전을 확보하게 해 줄 본격적인 교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자세를 보였다.
러시아의 종전조건에 관한 논의 없었다
그러나 이날 논의에서는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4개 주에서의 우크라이나군 철수,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반대 등 러시아 쪽이 내건 정전조건들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아, 러시아가 휴전안을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젤렌스키 부분휴전 원했으나 미국 전면휴전 요구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또 우크라이나가 요구해 온 안전보장과 관련해, “우크라이나에 장기적인 안전보장을 제공해 줄 지속적인 평화를 향해 즉시 교섭을 시작”하기로 했으며, 휴전기간 중의 포로교환과 민간인 석방, 러시아가 강제로 데려간 어린이들의 귀환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공동성명 발표 직후 동영상에 담은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는 공중과 해상에서의 ‘부분 휴전’을 제안했으나 미국이 지상까지 포함한 전면적인 휴전을 촉구해 이를 받아들였다며, “러시아도 전쟁을 끝낼 의사가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계속할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젤렌스키로서는 미국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미-러 정상 며칠 내 전화협의, 위트코프 중동담당특사 모스크바로
공동성명 발표 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이번에는 러시아에 가야 한다. 푸틴 대통령도 동의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푸틴 대통령과는 이번 주 내라도 전화로 협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내일 러시아와 중요한 회담을 하는데, 훌륭한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담당특사가 조만간 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은 러시아 외교부의 마리야 자하로바 대변인이 며칠 안에 미국과 협의할 가능성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고 전했으며, 러시아의 한 기자는 SNS에 “푸틴과 트럼프의 (전화)협의가 금요일(14일)에 열린다”며 “단순한 전화회담 이상의 것이 될 것”이라고 썼다.
유럽, 일제히 환영하며 러시아에 수락 촉구
유럽은 두 나라의 이날 합의를 일제히 환영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총리는 이날 밤 두 나라 합의가 "획기적인 돌파구(breakthrough)"라며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스타머 총리는 “이제야말로 러시아는 휴전과 전투종결에 동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은 15일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정상급 회의를 온라인으로 개최한다. 스타머 총리는 “우크라이나가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공정하고 영속적인 형태의 종전을 맞을 수 있도록 밀어줄 준비가 돼 있다”고도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협의 진전을 환영한다”며 “공은 분명히 러시아 쪽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또 “프랑스와 그 파트너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강고한 안전을 보장하는 견고하고 영속적인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도 “전향적인 진전”이라며 “우크라이나가 포괄적이고 공정하며 영속적인 평화를 향해 가는 한 걸음이 될 수 있다”고 평가하고, “공은 이제 러시아 코트에 있다”고 했다.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미국과 우크라이나간 협의에서 처음으로 나온 전향적 결과를 환영한다”며 러시아에 긍정적인 응답을 촉구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도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평화를 향해 중요한 일보를 내디딘 것 같다”며 “유럽은 공정하고 영속적인 평화의 실현을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교장관도 “우크라이나가 영속적인 평화와 안전을 추구하는데 큰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침략전쟁을 끝내는 것은 이제 러시아 몫”이라고 말했다. < 민들레 한승동 기자 >
지난달 11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에 위치한 철강 공급업체 창고에 철강 제품이 보관된 모습. 토론토/AF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정된 캐나다산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기존 발표보다 두 배로 올린 50%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글을 올려 이렇게 밝히며 “캐나다 온타리오주가 미국 북부 주로 보내는 전력에 25%의 관세를 부과한 것에 대한 보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철강) 관세는 12일(현지시각) 아침부터 발효된다”며 “조만간 해당 지역의 전력 문제와 관련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캐나다 온타리오주는 미국 150만 가구와 기업에 송전하는 전기요금에 25% 할증료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더그 포드 온타리오주 주지사는 10일 “무역 전쟁을 미국이 더욱 확대한다면 (캐나다에서 보내는) 전력을 완전히 차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 정부는 이번 결정으로 미국인 한 명당 한달에 약 100캐나다 달러(약 10만원)을 추가로 내게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가 농산물 등 특정 품목에 대한 관세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자동차 산업에 대한 관세를 인상할 것이라며 “사실상 캐나다 자동차 제조업을 영구적으로 폐쇄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김원철 기자 >
8일(현지시각) 독일 쾰른의 나치기록박물관 앞에서 2차대전 종전 80년을 맞아 준비한 전시 ‘2차 대전에서의 제3세계’ 일환으로 소녀상이 설치됐다. 사진 장예지 특파원
세계 여성의 날인 8일(현지시각), 독일 쾰른에 새롭게 앉은 ‘평화의 소녀상’(소녀상) 옆 빈 의자엔 분홍빛 양귀비와 장미가 놓였다.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이 의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빈자리와 더불어, 희생자의 마음을 느끼고 공감하는 공간을 상징한다. 이날 독일 쾰른과 카셀, 베를린에 놓인 소녀상 옆엔 ‘위안부’의 역사를 기억하고, 폭력으로 희생된 여성들을 추모하는 독일의 시민들이 모였다.
8일 화창한 낮 쾰른의 나치기록박물관 앞에서 열린 소녀상 제막식엔 250여명(경찰 추산)이 모여 길목을 꽉 채웠다. 여성의 날과 소녀상 설치를 축하하기 위해 꽃을 들고 온 사람들은 소녀상을 감싼 보라색 장막이 걷히자 환호했고, 동상 주위를 화려한 꽃으로 장식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게슈타포(나치 비밀경찰) 본부 건물로 악명을 떨쳤던 박물관 건물을 등진 소녀상은 이곳을 걷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방향에 놓였다. 붉은 장미를 갖고 소녀상을 찾은 수잔느(59)는 “신문에서 제막식 소식을 보고 왔다”며 소녀상 이야기는 “모든 여성들과 연결돼 있다. 지금이라도 (과거의) 역사를 인정하고, 희생된 사람들에게 존중을 표하는 일은 늦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쾰른에서도 소녀상 설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전시는 2년 전부터 기획됐지만, 지난달 초 헨리에테 레커 쾰른 시장이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우려해 소녀상 전시를 금지했다. 그러나 독일과 벨기에, 프랑스, 미국 등의 시민단체에서 공개 항의 서한을 보내고, 지방의회와 시 당국 정치위원회도 소녀상 설치를 요구하면서 레커 시장도 방침을 철회했다. 이에 전시를 기획한 단체 ‘리서치 인터내셔널’은 쾰른 시 당국과의 갈등도 따로 정리해 박물관에 관련 언론 기사와 쾰른시 공문 등을 함께 전시했다. 큐레이터 카를 뢰셀은 “우리가 소녀상을 세우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또 이것이 얼마나 쉽지 않았는지를 관람객에게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크리스타 아레츠는 “소녀상이 세워지는 어느 곳에서건 일본 정부의 압박이 있었다. 이는 2차 대전 기간 아시아 국가에서 납치돼 일본군에 의해 학대받은 여성들에 대한 성적 폭력을 기억하는 일 또한 막는 것이었다”며 “하지만 이 동상은 일본뿐 아니라 독일군에 의한 여성 성폭력 문제를, 그리고 현재도 반복되는 성폭력 문제를 모두 상징한다”고 말했다.
세계 여성의날인 8일(현지시각) 독일 쾰른 나치기록박물관 앞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찾은 시민들. 경찰 추산 250명 가량이 모였다. 사진 장예지 특파원
쾰른 지역에 처음 둥지를 튼 소녀상은 나치기록박물관이 2차대전 종전 80년을 맞아 준비한 전시 ‘2차 대전에서의 제3세계’ 일환으로 기획됐다. 소녀상도 이 전시 기간(3월7일∼6월1일) 동안 박물관 앞에 설치될 예정이다. 쾰른 소녀상은 지난 2021년 드레스덴 주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 기간에도 박물관 일본궁전 안뜰에 설치돼 관람객들을 만난 적이 있다.
이번 소녀상 설치에 함께한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의 한정화 대표는 제막식 연단에 서 “드레스덴 전시 당시에도 일본 대사관의 방해가 있었다”며 “그런 소녀상이 이렇게 쾰른에서 다시 빛을 보게 됐다. 단지 몇 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녀상이 더 오래 이곳에 있을 수 있길 소망한다. 소녀상은 평화와 정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세계 여성의날인 8일(현지시각) 독일 쾰른 나치기록박물관 앞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 꽃을 들고 찾은 시민들. 사진 장예지 특파원
제막식엔 전쟁과 분쟁 지역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지원하는 독일 인권단체 메디카 몬디알레 창립자인 의사 모니카 하우저를 비롯해, 이민자와 난민, 흑인 여성들을 지원하는 여성단체 ‘아지스라’ 등 여러 시민사회단체도 참여했다.
아시아계 독일인을 위한 이주민 단체에서 활동하는 베레나 요가라야(33)는 “소녀상 설치를 두고 늘 일본 정부가 싸움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한 친구에게 들었다. 그래서 우리도 연대의 뜻으로 나와 제막식을 열 수 있도록 힘을 더했다”며 “소녀상은 현재의 여성들이 싸우고 있는 문제들과도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8일(현지시각) 독일 카셀 지역의 교회 ‘노이에 브뤼더키르헤’(새로운 형제들 교회) 부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누진. 이날 제막식 축하 행사에선 우크라이나 난민 여성으로 구성된 합창단이 축가를 불렀다. 사진 시민단체 ‘이니셔티브 세이브 누진’ 홍소현 활동가 제공
일본 정부의 철거 압박을 받고 창고 신세가 됐던 독일 카셀 지역의 소녀상도 이날 새로 둥지를 틀었다. 카셀대학교 교정에 세워졌던 ‘누진’은 2023년 여성의 날 행사 다음날인 3월9일 대학 당국에 의해 철거됐다. 그러나 2년이 지나 맞이한 여성의 날, 누진은 카셀대 인근 교회 ‘노이에 브뤼더키르헤’(새로운 형제들 교회) 부지에 재설치됐다. 이 소녀상의 전시 기한은 1년이다.
같은날 베를린 미테구에 있는 소녀상 ‘아리’ 앞에서도 집회가 열려 여성의 날을 축하하고, 아리에 대한 철거를 통보한 미테구청을 규탄했다. 베를린에선 지난달 16일 별세한 여성인권운동가 길원옥 할머니의 분향소도 열어 추모객을 맞이했다.
8일(현지시각) 베를린 미테구 앞에 놓인 평화의 소녀상 ‘아리’와 함께한 베를린 시민들. 사진 코리아협의회 제공
미국 측 광물협정 조인식, 오찬 취소하고 "떠나달라" "한번이라도 고맙다고 해봤나" 젤렌스키 '태도' 비난
트럼프 "젤렌스키 종전 원치 않아, 미국 없이 싸워라" "합의안 서명하면 처지 좋아질 것"…타협 기대는 유지
"(푸틴과 젤렌스키, 양측과 공히 보조를 맞추고 있느냐는 언론 질문에) 나는 푸틴과 같은 편이 아니다. 누구와도 같은 편이 아니다. 미국 편이다. (종전을 바라는) 세계 편이기도 하다. 나는 전쟁을 끝내고자 한다. 푸틴에 대한 젤렌스키의 엄청난 증오는 이해한다. 그러나 타협안을 도출하려는 입장에서 그러한 증오는 일을 매우 어렵게 한다…." (트럼프)
"평화로 가는 길, 번영으로 가는 길은 외교에 뛰어드는 것이다. 미국이 좋은 나라인 것은 외교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 하는 일이다." (밴스)
"내가 물어봐도 되나. 푸틴은 우크라이나 동부와 크림반도를 점령했다. JD, 당신은 지금 어떤 종류의 외교를 말하나." (젤렌스키)
"MR. 대통령(젤렌스키), 나는 당신 나라의 파괴를 끝낼 외교를 말하는 거다. 백악관 집무실에 와서 미국 언론 앞에서 싸우려는 건 무례한 행동이라고 본다. 지금 우크라이나에 문제가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나? 당신 나라의 파괴를 막으려 노력하는 (트럼프)행정부를 공격하는 게 예의인가." (밴스)
"전쟁 중에는 누구나 많은 문제를 갖게 된다. 심지어 당신들도 그렇다. (전쟁터와의 사이에) 멋진 대양을 갖고 있어 지금은 못 느끼지만 언젠가 느낄 거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젤렌스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8일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J.D. 밴스 부통령과 격론을 벌이고 있다. 2025.2.28. EPA 연합
28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미국-우크라이나 정상 간에 벌어진'막장 설전'의 도입부다. 양쪽에 태평양과 대서양을 두고 있는 미국의 지리적 이점 덕분에 전쟁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느끼게 될 것이라는, 일종의 악담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버럭 화를 낸 지점이다. 애당초 격론을 벌일 자리가 아니었다. 어차피 심각하게 협상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우크라전 종전 방안을 확정 짓는 자리도 아니었다.
희토류와 가스, 원유를 포함한 광물협정은 서명식만 남긴 상태였다. 소파에 앉아 덕담이나 주고받고 서명식을 한 뒤 공식 오찬으로 이어졌을 자리가 파국으로 치달았다. J.D. 밴스 부통령과의 언쟁하면서 '싸움닭'으로 변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이 빌미를 제공했다고 본다.
정상 간 비공개 대화에서 트럼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입장을 두둔하는 데 실망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렇다고 해도 젤렌스키의 태도와 말은 외교적 선을 넘었다. 정확히 트럼프가 목소리를 높인 지점이다. 대화록을 더 읽어볼 필요가 있다. 다른 어떤 논평보다 주고받은 말 자체에 사건의 진실은 물론, 향후 전망의 단서가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28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25.2.28. AFP 연합
"우리가(미국이) 무엇을 느끼게 될지 말하지 마라. 우리는 문제를 풀려고 노력하고 있다. 당신은 그걸 단정할 처지가 아니다. 우리는 매우 좋게, 또 매우 강함을 느끼게 될 거다. (…) 당신은 지금 좋은 처지에 있지 않다. 우리에게 내밀 카드를 갖고 있지 않다." (트럼프, 고성)
"나는 지금 카드놀이를 하는 게 아니다. 매우 진지하다. 나는 전시 대통령이다." (젤렌스키)
"당신은 수백만 인명을 놓고 도박을 하고 있다. 3차 세계대전을 놓고 도박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의 행동은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국가와 이 나라에 대해 매우 무례하다." (트럼프)
"한 번이라도 고맙다고 말한 적이 있나?" (밴스)
"여러 번 했다. 오늘도." (젤렌스키)
"당신 나라는 지금 큰 문제에 빠져 있다. 승리하지 않고 있다. 우리 때문에 (전쟁에서) 빠져나올 정말 좋은 기회가 있다." (트럼프)
"안다…. 우리는 강하다. 전쟁 시작부터 우리는 홀로였다. 고맙게 생각한다." (젤렌스키)
"당신들은 혼자이지 않았다. 우리가 멍청한 대통령(바이든)을 통해 3500억 달러(실제 1149억 달러)를 줬다. 군사 장비도 줬다. 당신과 당신 국민은 용감했지만, 우리 군사 장비가 없었다면 전쟁은 2주 안에 끝났을 거다." (트럼프, 다시 고성)
"푸틴이 '사흘 안에'라고 말한 걸 들었다." (젤렌스키)
"장담컨대 이렇게 하면 일을 하기가 너무 어려워진다."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28일 백악관 입구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맞아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5.2.28. UPI 연합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백악관 직원의 배웅을 받으며 백악관을 황급히 떠나고 있다. 2025.2.28. EPA 연합
10분 가까이 정상 간의 외교적인 대화가 아니라 말싸움으로 변했다. 좌중은 충격에 사로잡혔지만, 젤렌스키는 여러 차례 트럼프가 말하는 동안 이를 무시하고 끼어들어 자기 말을 섞었다. 고함이 이어진 까닭. 밴스가 "그냥 고맙다고 말하고, 이견이 있음을 받아들이고 다퉈보자. 미국 언론 앞에서 싸우려고 하지 말고. 우리는 당신이 틀렸다고 본다"라고 하자 다시 "미국민에게 여러 번 감사하다고 했다"라고 말하며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트럼프는 "당신 국민이 죽어간다. 병력도 부족하다. 그런데 당신은 '종전을 원치 않는다'라고 되풀이 말했다. 지금 당장 종전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라"면서 "타협하지 않으면 우리는 빠질 것이고, 우리가 빠지면 아무런 카드(선택지)도 없이 끝까지 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타협안에 서명만 하면 훨씬 나은 입장에 설 것"이라고 말해 종전 협상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트럼프는 "우크라가 어떠한 카드도 갖고 있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지만, 우크라도 카드는 있다. 바로 트럼프가 관심을 보인 광물협정이다. 다만, 러시아 점령 지역의 포기와 우크라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등 종전 방안에 대한 이견은 아직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이날 이례적인 설전은 그 때문일 터. 젤렌스키는 격론이 정리된 뒤 곧바로 재회담을 희망했지만, 트럼프가 거부했다. 각료회의를 거쳐 젤렌스키에게 백악관을 떠날 것을 요구했고, 젤렌스키는 오찬도 들지 못한 채 현지 시각으로 밥때가 지난 오후 1시 40분쯤 백악관을 떠났다. 젤렌스키는 회담 뒤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정의롭고 항구적인 평화'를 강조했다. 폭스뉴스 인터뷰에선 트럼프 행정부와 관계 개선 의지를 내보였지만, "사과할 용의는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와 밴스가 문제 삼은 젤렌스키의 '태도'는 이전에도 노출됐었다. 개전 이후 미국을 비롯해 서방 각국에서, 환대를 받았지만, 평화와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면서 각국의 지원을 당연시하는 태도로 종종 눈살을 찌푸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시 지도자라는 점에서 큰 문제로 삼지 않았다. 리얼리티 쇼 진행자 출신인 트럼프는 대화 말미에 "이건 멋진 텔레비젼(쇼)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단순한 쇼에 그치지 않고 3년을 넘긴 우크라전에서 극적인 순간의 하나였다. < 민들레 김진호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백악관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플로리다 팜비치의 마러라고 별장으로 떠나기에 앞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2.28 AFP 연합
가속도 붙은 서방 분열, 미국없는 안보 대안 찾는 유럽
트럼프-젤렌스키 28일 회담 결렬의 충격파
유럽의 결속, 우크라의 젤렌스키 지지 강화 제대로 먹힌 젤렌스키 반격의 반전효과? 모든 것은 자국 이권 확보를 위한 “거래” 유엔 결의, 미국이 러 북한 편 들어 유럽에 반대
2월 28일 워싱턴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중앙)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 회담에서 J.D. 밴스(오른쪽) 미국 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이 설전이 발단이 돼 이날 회담은 결렬됐다. 2025.2.28. AP 연합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지난 28일 우크라이나 광물자원 공동개발 협정 체결을 위해 열린 미국-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의 역린을 건드린 ‘무례’를 범한 ‘죄’로 백악관에서 “쫓겨난”(<폭스 뉴스>) 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가 X(예전의 트위터)에 바로 올린 글이다. 이를 받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공정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 당신과 함께 싸울 것”이라고 했고, 이후 그날 자정을 갓 넘긴 시각까지 유럽 정상들이 X에 올린 젤렌스키 지지 글은 31건이나 됐다.
유럽의 결속, 우크라의 젤렌스키지지 강화
정상들이 민낯으로 언성을 높이며 말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생중계된, 외교사상 매우 이례적인 그날의 충격적인 회담 결렬 뒤 유럽은 결속했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젤렌스키 지지도 “개전 초기와 같을 정도로” 치솟았다. 트럼프와 이날 설전을 촉발한 J. D. 밴스 부통령의 발언 장면을 지켜보며 약소국 국민으로서의 울분을 느꼈을 우크라이나 국민 다수는 꿀리지 않은 젤렌스키의 “영웅적인” 대응에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젤렌스키를 비판해 온 야당 지도자들도 그의 대응을 칭찬했다.
말로만 했던 바이든과 달리 트럼프는 외교를 통해 전쟁을 끝낼 것이라며 밴스가 대화에 끼어들자, 2014년 이후의 푸틴 공세를 전혀 막아내지 못한 외교가 무슨 소용이 있었느냐며 반박한 젤렌스키의 그날 도발적 대응이 종전 뒤 바로 치러질 대통령선거를 의식한 계산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일거에 그에 대한 평판을 바꿔 놓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3월 1일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회담 전에 악수를 하고 있다. 2025.3.1.UPI 연합
제대로 먹힌 젤렌스키 반격의 반전효과?
젤렌스키는 28일 회담을 트럼프 정권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에 충격을 가해 여론을 바꾸고 지원을 얻어내기 위한 마지막 기회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회담 전부터 전쟁을 일으킨 쪽이 푸틴이 아니라 우크라이나고, 젤렌스키는 임기가 이미 끝났는데도 선거도 하지 않고 대통령직을 내놓지 않는 자격없는 “독재자”라며 비판했다. 프랑스의 뉴스전문 TV방송 BFM에 따르면, 트럼프는 28일 회담 자체를 열지 않으려 했는데, 젤렌스키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워싱턴을 움직여 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해서 열리게 된 회담이었다. 따라서 젤렌스키의 그날 발언은 벼르고 준비한 것이었다.
어떤 면에선 제대로 먹혔다고 할 수 있다. 외형상 젤렌스키는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에 위압당하는 듯 보였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유럽과 우크라이나의 여론을 반전시킨 효과가 더 컸을 수 있다. 회담에서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느끼는 안보위기를 미국도 장차 느끼게 될 것이라고 하자, 트럼프는 “당신은 (우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가 어떻게 느끼든 그런 얘기 말라”며 “당신은 지시할 입장이 아니다”, “당신은 지금 매우 불리한 처지다. 당신에겐 카드가 없다. 우리에겐 카드가 있다”고 쏘아붙였다. 그 장면을 보며 유럽인들은 미국의 현실적인 힘을 인정하면서도 젤렌스키가 얘기한 안보위기를 실감하며 미국의 태도에 한층 더 거부감을 느꼈을 법하다.
일론 머스크가 2월 11일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다. 2025.2.11. 로이터 연합
오르반 헝가리 총리만 트럼프 지지, 머스크 “백점 만점”
마크롱은 회담 결렬 뒤 “침략자는 러시아, 침략당한 쪽이 우크라이나인들”이라며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계속돼야 한다고 했다.
나흘 전인 24일, 마크롱은 트럼프 취임 뒤 처음 그를 만나러 워싱턴으로 갔을 때도 같은 말을 했다. 당시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과의 종전협상에 상당한 진전이 있다면서, 협상이 타결되면 자신이 직접 모스크바로 가서 협상을 마무리짓겠다고 했고, 그것이 “몇 주 안에” 이뤄질 수도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마크롱은 종전이 가져다 줄 “평화가 우크라이나의 항복이 돼선 안 된다”고 못박았다.
올라프 숄츠 독일총리는 “우크라이나 국민만큼 평화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면서 “우크라이나는 독일과 유럽을 믿어도 된다”고 했다. 차기 독일 총리로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민련(CDU) 당수도 “우리는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우크라이나와 함께할 것”이라며 “우리는 침략자와 피해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스페인은 당신과 함께 있다.”(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당신들은 유럽 전체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스웨덴 정부) 조셉 보렐 전EU외교안보 선임대표는 젤렌스키를 무례하다며 질책한 트럼프와 J. D. 밴스 부통령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할 짓”이라고 비난했다.
오직 한 사람,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만 X에 “강한 남자는 평화를 만들고, 약한 남자는 전쟁을 만든다”며 트럼프에게 “대통령, 고맙소”라는 글을 올려 트럼프를 지지했다. 이에 대해 일론 머스크는 “백점 만점”이라며 칭찬했다.
마크롱, 스타머 총리 얘기 받지 않은 트럼프
마크롱의 백악관 방문 사흘 뒤인 27일 키어 스타머 영국총리가 백악관에 갔을 때 트럼프는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믿을 수 없다”며 젤렌스키를 “독재자”라고 했던 자신의 말을 거두어들이며 “협력하겠다”고 했다. 그때 트럼프는 종전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국, 프랑스의 평화유지군 파견에 동의했으나, 회담 뒤 기자들에게 스타머가 요청한 미군 파견을 약속하지 않았고 전쟁시 필요한 자금을 제공하겠다는 보증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유럽의 얘기를 귀담아 들을 생각이 없었다. 마크롱과 스타머, 그리고 트럼프는 회담 때 우호적인 언사를 주고 받으며 이견을 조정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으나 속내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자국 이권 확보를 위한 “거래”
젤렌스키에 대한 혐오발언을 취소하며 협력하겠다고 했던 트럼프의 발언은 28일로 예정됐던 우크라이나 자원 공동개발협정 체결이 결렬된 뒤 그 진의가 드러났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자원개발과 운영으로 얻을 이익의 절반인 5000억 달러를 내라고 젤렌스키에게 요구했다. 미국정부는 투자 자금의 2배 회수를 보장하라고 했다. 5000억 달러는 미국이 지난 3년간의 전쟁 기간에 실제로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금액의 5배에 가깝다.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 안전에 대한 보장책이 없다며 이런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자 트럼프는 그를 만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마크롱의 중재로 28일 회담이 열렸으나, 우크라이나 자원공동개발 이익을 보장해 주지 않는 ‘거래’는 트럼프에게 의미가 없었다. 회담 결렬 뒤 트럼프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트럼프는 마크롱과의 회담 때 미국은 3500억 달러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했다며, 1000억 달러밖에 지원하지 않은 유럽의 3배 이상을 지원했다고 했고, 유럽은 그마저도 그냥 준 게 아니라 빌려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크롱은 유럽이야말로 그냥 지원한 것이고 미국은 유상과 무상 지원이 섞여 있다고 반박했다. 독일의 키엘 세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유럽이 지원한 금액은 1380억 달러, 미국은 1100억 달러다. 유럽과 미국의 지원금 비율이 6대 4로 유럽쪽이 더 많았다는 또 다른 기관의 평가도 있다.
당사국을 배제한 채 이뤄지는 미국 러시아 양 대국들의 합의는 약소국 처지의 우크라이나에겐 영토와 자원을 약탈해 가기 위한 ‘거래’로 비칠 수 있다. 트럼프의 최근 행보는 마크롱을 만났을 때 실토했듯이, 모든 것이 이권 확보를 위한 ‘거래’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2월 24일 뉴욕 유엔 본부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3주년을 맞아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결의안에 대한 표결을 하고 있다. 미국 결의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한 비판이 전혀 담고 있지 않아, 유럽이 수정안을 제시해 채택됐고, 미국은 기권했다. 2025.2.24. AFP 연합
2차대전 이후 질서 붕괴 “나토 6개월 뒤 사라질 수도”
마크롱이 백악관에서 트럼프를 만난 24일 우크라이나 관련 결의안들이 통과된 유엔 총회장은 ‘서방의 분열’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 3주년인 그날 유엔 총회가 연 긴급특별회의에서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을 올해 안에 종결하고, 러시아군의 즉각 철수, 우크라이나 영토보전 등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93개국 찬성으로 채택됐다. 미국은 러시아 북한 벨라루스 등과 함께 이 결의안에 반대한 18개 국 중 하나였다. 중국과 인도 등 65개 국은 기권했다.
미국이 러시아 북한 편 들며 유럽에 반대
이날 미국은 조기 종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따로 냈는데, 러시아의 침공을 양국간 ‘분쟁’으로 바꾸고 우크라의 영토보전이나 주권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러시아를 배려한, 러시아를 위한 결의안이었다. 유럽이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분쟁을 다시 침공으로 바꾸고 우크라의 영토보전과 주권에 대한 내용을 넣은 미국안 수정안을 제안해 통과됐다. 하지만 미국은 수정된 ‘미국 결의안’ 표결에 기권했다. 미국의 이런 ‘변신’은 불과 얼마전까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이 러시아와 북한 편을 들어 유럽의 결의안에 반대하다니.
속도 더 빨라진 전후질서 붕괴, 대응 서두르는 유럽
이미 무너져 가고 있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구축돼 온 국제질서가 도널드 트럼프 정권 등장 이후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그 질서의 한 축인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동맹’이 지난 2월 12일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배재한 채 시작된 도널드 트럼프-블라디미르 푸틴의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협상 이후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흔들리고 있다.
차기 독일총리로 유력한 메르츠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오는 6월까지 지금과 같은 형태로 남아 있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자국 이익만을 쫓는 대국들의 거래에 따라 국제질서가 하루 아침에 급변할 수 있는 세상이 돼 가고 있다. 그것이 대국들, 특히 미국의 영향력을 깎아먹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경고들이 나오고 있지만, 적어도 트럼프 집권 기간에는 그런 추세에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메르츠는 미국이 유럽을 버릴 경우에 대비한 시나리오까지 마련돼 있다며 유럽 공동방위 강화를 강조했다. 스타머 영국총리의 말대로 유럽은 그럼에도 미국이 함께 해 주기를 바라겠지만, 미국이 떠나갈 경우를 대비한 대책을 서둘러야 할 정도로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28일 회담을 전후해서 이미 2번이나 만난 유럽 정상들은 2일과 6일 다시 만나 대응책을 논의한다. < 민들레 한승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