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예프 인근 바실키우에 로켓 공격

“동부에선 가스관 공격” 미확인 보도

 미국, “저항 강해 러시아 군 고전 중”

 러시아, 남부 해안 지역도 집중 공격

 

러시아 군의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대한 집중 공세가 재개된 27일 새벽(현지시각) 키예프 인근 바실키우의 유류 창고가 미사일 공격을 받아 화염에 휩싸였다. 바실키우/EPA 연합뉴스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침공 나흘째로 접어든 27일 새벽(현지시각) 수도 키예프 인근에 두 발의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야간 총공세에 다시 나섰다. 러시아는 전날 새벽에도 일부 병력을 키예프 시내로 투입해 교전을 벌이고 키예프 공항 주변을 집중 공격했으며, 우크라이나 군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해 낮 동안은 시내 진입 작전을 늦췄다.

 

미국 <시엔엔>(CNN) 방송은 이날 새벽 1시께 키예프에서 30㎞ 정도 떨어진 남서부 바실키우 지역에서 큰 폭발음이 들렸다고 보도했다. 이 지역에는 대규모 군 비행장과 유류 저장 시설이 있으며 26일에도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고 방송은 전했다. <비비시>(BBC) 방송은 현지 언론을 인용해 바실키우의 유류 저장소가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유류 저장소에서 거대한 검은 연기가 치솟는 동영상이 올라오고 있다고 방송은 덧붙였다. 유류 저장소 폭격 이후 키예브 시 당국은 폭격 현장에서 유독 물질이 퍼질 수 있다며 창문을 굳게 닫는 등 철저히 대비하라고 경고했다.

 

앞서 이날 자정 즈음부터 공습 경고 사이렌이 키예프 전역에 울렸다고 <비비시>가 전했다. 야당인 ‘홀로스당’의 레시아 바실렌코 의원은 26일 밤 11시께 트위터를 통해 “앞으로 30~60분 사이에 키예프가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대규모 공격을 당할 것”이라며 “러시아 군이 가진 무기를 총동원해 타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키예프 시 당국은 이날부터 오후 5시~아침 8시 야간 통행 금지를 실시해 한밤 공습이 재개될 때까지 거리는 고요했다.

 

북동부 지역 주요 도시인 하르키우에서는 가스관이 공격을 당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으나,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다. 러시아가 군 기지를 첫번째 공격 대상으로 삼은 뒤 가스와 석유 시설을 두번째 목표로 삼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 군의 키예프 점령 시도가 강력한 저항에 부닥치는 등 러시아 군이 예상보다 고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 국방부 당국자는 26일 브리핑에서 “우리가 관찰한 정보에 근거하면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러시아가 예상했던 것보다 크다. 우린 러시아가 특히 (수도 키예프를 노리는) 우크라이나 북부에서 지난 24시간 동안 모멘텀을 얻지 못해 점점 더 좌절하고 있다는 신호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국방부도 짧은 성명을 내어 러시아 군이 “계획한 대로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며 “군수 물자 보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군의 저항도 거세다”고 평가했다.

 

러시아군은 키예프 외에 경제적으로 중요한 남부 해안 지역에서도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러시아의 공격이 키예프와 함께 흑해 연안의 항구 도시 오데사, 남동부 마리우폴에 집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마리우폴에서는 우크라이나 방위군이 바다를 통한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교량을 통제하고 있다.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도 두쪽은 격렬한 전투를 이어갔다.

 

 미국 ‘전쟁학 연구소’(ISW)가 분석한 26일 오후 8시 현재 러시아 군 점령 지역(붉은색). 전쟁학 연구소 트위터 갈무리

 

미국의 ‘전쟁학 연구소’(ISW)는 26일 오후 8시 현재 러시아군이 수도 키예프 북쪽 외곽부터 벨라루스 국경까지를 점령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또, 하르키우 주변 등 북동부 러시아 국경 지역, 남부 크림반도 인근인 헤르손과 마리우폴 주변, 동부 돈바스 분쟁 지역도 러시아 군의 통제 아래 놓였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금까지 교전 과정에서 약 3500명의 러시아 군인이 죽거나 다쳤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또 우크라이나 민간인 198명이 사망하고 1천명 이상이 다쳤다고 밝혔다. <시엔엔>은 26일 밤 서부 키예프에서 벌어진 교전 중 6살짜리 소년이 숨졌다고 현지 병원 관계자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소년은 러시아 침공 이후 희생된 이들 가운데 가장 어릴 것이라고 <비비시>가 지적했다.

 

한편, 해커 집단 ‘어너니머스’는 27일 오전 러시아 내 체첸 자치공화국이 우크라이나 파병을 선언한 이후 공화국 정부 사이트를 공격해 마비시켰다고 주장했다. 이 집단은 25일 러시아에 대한 ‘사이버 전쟁’을 선포한 바 있다. 러시아 대통령실 공식 사이트도 26일 사이버 공격을 당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앞서, 미하일로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에 맞설 ‘정보기술(IT) 군대’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자국의 해커들에게 중요한 기간시설 방어와 러시아 군에 대한 정보 수집에 협조해줄 것을 촉구했다. 신기섭 기자

 

미 국방부 “러시아, 예상보다 강한 우크라 저항에 좌절”

 

  지난 24시간 동안 전황 교착 상황인 듯

“러시아 장악한 도시 있다는 신호 없어”

 독일, 대전차·지대공 미사일 공급

 미국 “동맹과 함께 우크라 지원 이어갈 것”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26일(현지시각) 수도 키예프 외곽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 키예프/EPA 연합뉴스

 

개전 나흘째를 맞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군의 강한 저항으로 인해 예상 외로 고전 중이라는 미 국방부의 평가가 나왔다.

 

미 국방부 당국자는 26일(현지시각) 브리핑에서 “우리가 관찰한 정보에 근거하면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러시아가 예상했던 것보다 크다. 우린 러시아가 특히 (수도 키예프를 노리는) 우크라이나 북부에서 지난 24시간 동안 모멘텀을 얻지 못해 점점 더 좌절하고 있다는 신호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이 계속 작동하고 있으며, 자국 영공에 러시아 항공기가 접근하는 것을 막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러시아가 개전 직전 우크라이나 주변에 배치했던 병력 15만명 가운데 가운데 절반 가량이 우크라이나로 진입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이 당국자는 격전이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이는 키예프의 전황에 대해선 구체적 언급을 피했지만, “오늘 상황으로 볼 때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어떤 도시도 장악했다는 신호가 없다”, “(하지만) 일부 러시아 정찰부대가 키예프에 진입해 있다”고 전했다. 미국은 러시아군이 이 브리핑이 있기 전 지난 24시간 동안 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구성된 250발의 미사일을 우크라이나 전역에 쏟아 부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당국자는 “미사일 타격으로 인해 민간 시설과 주택이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24일 새벽 개전 직후부터 수도 키예프를 직접 노리는 북부 전선, 무력 분쟁이 이어졌던 동부 전선, 2014년 3월 합병한 크림 반도에서 국경을 넘는 남부 전선에서 동시에 전격을 시작했다. 이로 인해 수도 키예프를 포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의 저항 의지가 예상보다 강해 고전하고 있는 모양새다. 미국은 개전 초기부터 키예프에 전력을 집중하는 러시아의 움직임을 볼 때 이번 전쟁의 목표가 친 서방 정책을 펴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을 참수(전복)하고 친러 정권을 수립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항전을 거듭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정부는 26일 자신들이 3000여명의 러시아군을 사살했다고 밝혔지만, 진위를 판단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 등 서구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미 국방부 당국자는 “미국은 앞으로 동맹과 동반국들과 함께 서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방위 지원을 신속히 해 나갈 예정”이라는 뜻을 재차 강조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앞선 25일 오후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하고 3억5000만달러(4200억원)의 방위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또 독일이 26일 분쟁지역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대전차 무기 1천정과 군용기 격추를 위한 휴대용 적외선 유도 지대공미사일 '스팅어' 500기를 우크라이나에 공급하기로 했다.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것은 군용 헬멧 5000개뿐이었다. 올라프 숄츠 총리는 트위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환점으로 전 세계의 전후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에 맞서 방어하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적었다. 길윤형 기자

 

러 “우크라이나, 협상 거부”…우크라 “비현실적 조건 안돼” 맞서

 러 “25일 진격중지했다가 협상거부로 26일 재개” 주장

 우크라 “최후통첩식 수용못해”…미 “총구 들이댄 채 외교 안돼”

 

우크라이나 군인이 26일(현지시각) 키예프 바실키프 공군기지에서 임무를 하고 있다. 키예프/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가 협상 추진과 관련해 “우크라이나가 거부했다”며 군사작전 재개를 선언했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협상 조건이 비현실적”이라고 맞받았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26일(현지시각)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가 협상을 거부해 전쟁을 장기화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아에프페>(AFP)가 보도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어제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이 열리길 기대하면서 러시아군에 진격 중지를 명령했다”며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협상을 거부했기 때문에 오늘 오후 러시아군의 진격이 재개됐다”고 말했다.

 

전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협상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세르기 니키포로프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대변인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협상 시간과 장소를 놓고 논의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는 정전과 평화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환영했다.

 

그러나 양쪽은 협상 장소를 둘러싸고 입장이 엇갈려 논의가 더 진전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에서 하자고 주장했으나, 우크라이나는 “벨라루스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돕고 있다”며 거부하고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만나자고 제안했다.

 

‘우크라이나가 협상을 거부했다’는 러시아의 주장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이날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은 “우크라이나는 협상을 준비했지만, 러시아군이 공격 수위를 높이는 등 협상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행동은 우크라이나를 파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을 강요하려는 것일 뿐”이라며 “우크라이나는 최후통첩이나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올렉시 아레스토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장 고문 올렉시 아레스토비치도 협상이 무산된 것은 러시아의 조건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가 중재자를 통해 전달한 조건은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를 항복시키려는 시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제안한 조건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러시아의 협상 제안이 “총구로 위협하며” 외교를 하려는 시도라며 푸틴 대통령이 협상에 진지하다면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군사행동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박병수 기자

 

“내가 필요한 건 피신이 아니라 탄약”…재평가 받는 젤렌스키

  수도 키예프에서 동영상 올리며 항전 의지, 국민 독려

  정치 경험 없는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비판 잠재워

 “살아있는 모습 마지막일 수도”…유럽에 도움 호소

 “우크라의 조지 워싱턴으로 역사에 남을 것” 평가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6일 수도 키예프 시내에서 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국민들에게 단합을 호소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 트위터 화면 갈무리.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의 조지 워싱턴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미국 럿거스 대학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문가인 알렉산더 모틸 교수는 지난 26일 <엘에이 타임스>에 실은 기고에서 이렇게 적었다. 자신을 포함해 많은 전문가들이 정치 경험 전무한 코미디언 출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4)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우크라이나에 재앙일 것이라고 비판해왔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이 보여주는 모습이 기존의 평가를 뒤집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4일 전쟁이 시작된 뒤 수도 키예프에 남아 지속적으로 동영상과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려 건재를 확인시키면서 자국민에게 항전을 독려하고 전세계에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면도도 하지 못한 초췌한 얼굴에 티셔츠 등 평상복 차림이다.

 

그는 지난 25일 밤(현지시각) 키예프 밤 거리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30여초 분량의 동영상에서 데니스 슈미갈 총리 등 지도부 인사들과 함께 서서 “우리 모두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지켜내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키예프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허위정보를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항전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는 26일 낮에도 키예프 시내에서 촬영한 동영상에서 “우리는 성공적으로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 수도에 꼭두각시를 세우길 원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며 “우리는 우리의 영토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고 있다는 걸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국민들 포함한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우크라이나로 돌아올 수 있는 이들은 모두 돌아와달라. 우크라이나를 지키는 모두가 영웅이다”라고 호소했다.

 

미 정보 당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번 침공을 통해 우크라니아 정권 교체를 하려 하고 있으며, 젤렌스키 대통령을 제거 대상 1호로 꼽고 있다고 분석한다. 러시아는 이번 전쟁을 개시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비나치화’를 하나의 명분으로 내걸었는데, 이는 젤렌스키 대통령 제거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치의 탄압을 받은 유대계 후손이며, 언어도 러시아어를 쓴다.

 

생명의 위협에 놓인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미국 정부는 피신을 권하면서 대피를 지원해주겠다고 제안했으나, 그는 거절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쟁은 여기서 벌어지고 있다. 내가 필요한 것은 피신 차량(ride)이 아니라 탄약”이라고 말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이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24일 밤 연설에서도 “적이 나를 첫번째 목표로, 내 가족을 두번째 목표로 삼고 있다”며 “그러나 나는 키예프에 있을 것이고, 가족도 우크라이나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내와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이같은 태도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의 침공 전까지 보여온 혼선과 무기력과 대조된다. 그는 지난해 후반부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 주변에 병력을 증강하고 미국이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다’고 경고할 때, 위협이 과장됐다고 반박했다. 러시아가 반대하는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합류 관련해서도 가입 의지를 강하게 밝히면서도 한편으로는 “꿈 같은 얘기일 것”이라고 하는 등 혼재된 메시지를 냈다. 그러나 러시아의 침공이 현실화하자 수도를 지키며 단단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이면서 ‘재평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독립 언론의 편집장 올가 루덴코는 트위터에 “젤렌스키가 그동안 정말로 많은 나쁜 실수를 저질렀지만, 점점 자신이 국가를 이끌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적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에 저항 의사를 밝히는 한편 전세계에 ‘반러 연합’ 구축을 도모하고 있다. 그는 26일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영국, 인도, 이탈리아, 폴란드, 터키, 조지아, 체코 등 외국 정상들과 통화하고 지지를 약속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개전 첫날인 지난 24일 유럽연합(EU) 정상들과 전화 회의에서 “이게 당신들이 내가 살아있는 모습을 보는 마지막일 수 있다”면서 서방의 적극적인 대응과 지원을 촉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는 러시아 시민들에게도 전쟁 반대 목소리를 통해 푸틴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 대통령은 2015년 방영된 텔레비전 드라마 <국민의 종>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역사 교사에서 대중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돼 개혁 정치를 펴는 역할을 맡았다. 개혁적 이미지와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그는 2019년 대선에 출마해 70% 넘는 지지율로 당선됐다. 그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계속되는 정부군과 친러시아 반군 세력의 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했으나, 이제는 러시아의 대군을 서방의 간접 지원에만 의존한 채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에 놓였다. 황준범 기자

 

유럽 각국 우크라 난민 수용…“15만명 국경 넘어”

 폴란드 11만명 이상, 몰도바·루마니아 2만6천명 이상

 유엔난민기구 “400만명 난민 발생할수도”

 

26일 우크라이나 난민 임시 쉼터로 제공된 루마니아 북동부 시레트에 있는 호텔에서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다. 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각국이 국경을 열어 우크라이나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다. 유엔(UN)은 우크라이나 인구 4400여만명 중 400만명이 난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폴란드 내무부는 지난 24일(현지시각)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인 최소한 11만명이 폴란드로 들어왔다고 26일 밝혔다. 폴란드 정부는 우크라이나에서 오는 이는 여권을 소지하지 않은 경우에도 입국을 허가하고 있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폴란드 남동부 국경 마을인 메디카에 도착한 우크라이나 서부 출신 헬레나(49)는 국경을 넘는 데 24시간이 걸렸다며 “지옥이었다”고 말했다고 <알자지라>는 27일 전했다.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인 100만명 이상이 살고 있는 나라이며, 전쟁 발발 뒤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가장 많이 향하는 국가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전쟁 발발 뒤 국경을 넘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15만명가량으로 추정하는데 3분의 2 이상이 폴란드로 간 셈이다. 유엔난민기구는 상황이 악화되면 400만명이 난민이 되어 우크라이나를 떠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난민 대부분은 여성과 아이들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가총동원령을 내리고 18~60살 남성은 출국을 금지했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프랑스 일간지 <웨스트 프랑스>에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인들 수만명 아니 수십만명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26일 말했다. 폴란드는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 출신 난민의 급격한 유입을 막기 위해 장벽을 건설 중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에 대해서는 적극 지원 의지를 보이고 있다.

 

유럽 다른 국가들도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에 나섰다. 유럽에서 가장 난민에 대해 부정적인 지도자로 꼽히는 빅토로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우크라이나 시민과 합법적 우크라이나 거주민은 모두 받아들이겠다고 26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우크라이나 서부와 국경을 접한 헝가리로 들어온 우크라이나인은 수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 서부에는 헝가리계 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고, 이들이 주로 헝가리로 가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남쪽과 국경을 맞댄 몰도바와 루마니아로 각각 1만6000여명과 1만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이 들어갔다고 <라디오 프리 유럽>이 전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하지 않은 독일에도 폴란드 등을 경유해 온 우크라이나 난민 일부가 도착했다. 독일 정부는 독일로 온 우크라이나 난민 숫자가 아직 소수이지만 앞으로 숫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대비하고 있다. 조기원 기자

미국·유럽, ‘우크라 침공’ 푸틴 직접 제재 ‘초강수’

 

미, 라브로프 외무 등 고위급 3명도 포함

EU · 영국 · 캐나다도 푸틴 · 라브로프 동시 제재

EU, 금융·에너지 · 교통업계 제재도 발표

서방, ‘국제 금융망 퇴출’ 방안도 검토

 

미국과 유럽이 25일(현지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 장관(푸틴 오른쪽)에 대한 직접 제재를 단행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미국과 유럽이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침공을 명령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직접 제재를 단행했다. 국가 지도자를 직접 제재하는 것은 아주 드문 초강경 대응이다.

 

미국 재무부는 이날 푸틴 대통령,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 장관,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 장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재무부는 “푸틴 대통령과 라브로프 장관은 민주 국가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불법 침공을 감행한 직접 책임자”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미국의 직접 제재를 당한 국가 지도자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알렉산드로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있다.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우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심각한 경제, 외교적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우방들과 단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필요하면 추가 제재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미 재무부는 러시아 국영 ‘러시아 직접 투자 펀드’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백악관 대변인이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 이 펀드는 고성장 분야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국부 펀드다.

 

미국 외교관계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에드워드 피시맨 선임 연구원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제재는 대체로 상징적인 것”이라며 “이는 우크라이나에 강한 연대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앞서, 유럽연합(EU)과 영국도 푸틴 대통령과 라브로프 장관에 대해 직접 제재를 가했다. 유럽연합 회원국 외무 장관들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의를 열고 러시아에 대한 2차 제재를 승인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보도했다. 유럽연합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직접 제재 외에 러시아 금융, 에너지, 교통 부문에 대한 제재 방안도 통과시켰다. 이번 조처로 러시아 국영 금융 기관 등 전체 금융계의 70% 정도가 유럽연합 금융 시장을 접근할 수 없게 된다고 <데페아>(dpa) 통신이 전했다. 러시아에 대한 항공기 부품과 반도체 수출도 금지된다.

 

영국 정부도 이날 푸틴 대통령과 라브로프 장관의 영국 내 자산 동결 조처를 취하고, 러시아 재벌 기업 소속 항공기의 영국 영공 진입을 금지시켰다고 <아에프페>가 전했다. 앞서 영국은 러시아 은행 브이티비(VTB)와 군수 업체 로스텍의 자산 동결 조처를 취하고 러시아 국적 항공사 아에로플로트의 영국 진입을 금지시킨 바 있다. 캐나다도 이날 푸틴 대통령과 라브로프 장관 제재에 동참했다.

 

미국과 유럽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서 러시아를 배제시키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서 배제되면, 러시아의 국제 금융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렇게 될 경우, 에너지 수출 등 무역은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된다. 유럽이 러시아산 천연가스 등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 등을 고려해, 지금까지는 이 제재안이 배제되어 왔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서방의 제재가 “그들의 전적인 무기력을 보여준다”고 말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러시아는 영국의 아에로플로트 항공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이날 영국 항공기들의 러시아 영공 통과를 금지시켰다. 신기섭 기자

 

푸틴 “다른 선택지 없었다”…젤렌스키 “새 ‘철의 장막’ 내려와”

  러시아 · 우크라이나 자국 입장 호소

  프랑스 · 인도 등 “군사작전 중단, 대화로 해결” 외교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과 관련해 해당 국가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외교전’도 다방면으로 이뤄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자국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앞장서 내놓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작전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은 이날 푸틴 대통령이 모스크바에서 자국 주요 기업인들과 한 면담에서 “러시아에 어떻게 대응할 수 없는 안보 위협이 가해졌다”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군사작전)은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맞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24일 대국민 연설에 나섰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가 지금 듣는 것은 미사일 폭발, 전투 소리뿐만 아니다. 이것은 새로운 ‘철의 장막’이 내려지는 소리”라며 “우크라이나에 이 장막이 쳐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의 장막’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냉전이 종식될 때까지 유럽을 동유럽 사회주의와 서유럽 자유주의 진영으로 나눴던 사상적·물리적 경계를 말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어 세계 정치지도자들에게 “자유 세계를 이끄는 당신들이 지금 우리에게 손을 내밀지 않으면 내일 당신들이 이런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지원을 호소했다.

 

주변국들은 더 이상의 참사를 막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이어갔지만, 우크라이나를 ‘중립화’하겠다는 푸틴 대통령의 결심이 워낙 확고해 가시적 성과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4일 푸틴 대통령과 전화 회담에서 우크라이나에서의 군사작전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로이터> 통신은 “마크롱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먼저 이야기를 나눈 뒤 푸틴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러시아의 군사작전을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되자, 해결사를 자처하며 이 문제의 외교적 해법 찾기에 나서왔다.

 

러시아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는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즉각적인 폭력 중단을 호소했다. 인도 총리실은 24일 보도자료를 내고 모디 총리가 이날 푸틴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모든 당사자가 외교적 협상과 대화의 길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합심해 노력해 달라”며 “폭력을 즉각 중단할 것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인도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모스크바를 방문 중인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도 24일 푸틴 대통령을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고, 외교를 통한 군사적 충돌을 막기 바란다”고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묘한 중립적 입장을 취하면서 사실상 러시아를 두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4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과 회담에서 “중국은 일관해서 각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존중한다”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우크라이나 문제에 복잡하고 특수한 경위가 있다는 점을 주시하고, 러시아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또 “중국은 반드시 냉전적 사고를 버리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최종적으로 균형 있고 효과적이며 지속 가능한 유럽 안보 체제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침략을 잇따라 비난하며, 제재를 쏟아낸 미국 등 서구 국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 셈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밝히며 “이번 침공은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포함한 국제질서와 관련된 문제다.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은 결코 허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주요 7개국(G7)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긴밀히 연계해 사태 타개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길윤형 기자

 

우크라 개전 이틀 만에 중-러 정상회담…중국 “교섭 통해 해결해야”

 

푸틴 대통령 “우크라와 고위급 담판 원해”

시진핑 주석 “교섭 통한 문제 해결 지지”

앞서 러 외교장관은 전제조건으로 ‘항복’ 요구

푸틴 ‘조건 없는 대화’ 의사인지는 불분명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신화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이틀 만에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전화 회담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크라이나와 고위급 회담을 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지만, ‘전제조건’이 없는 진지한 대화 의사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

 

중국 외교부는 25일 보도자료를 내어 두 나라 정상이 이날 오후에 전화 회담을 했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우크라이나 문제의 역사적 경위와 우크라이나 동부의 러시아 특수군 작전의 상황과 위치를 설명”한 뒤 그동안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러시아의 합리적 안전보장상의 우려를 오랫동안 무시해 왔고, 약속을 거듭해 뒤집어 왔다”는 지론을 다시 밝혔다. 그러면서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고위급 담판을 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냉전의 정신을 버리고 모든 국가들이 정당한 안전보장상의 우려를 중시하고 존중해 교섭을 통해 균형잡히고, 효과적이며, 지속가능한 유럽의 안전보장체제를 형성해야 한다”며 “중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모든 국가들의 주권과 영토보전을 존중하고 유엔(UN) 헌장의 목적과 원칙을 준수한다는 중국의 기본적 입장은 일관돼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가 느끼는 안보상의 불만에 대해선 이해하지만, 전쟁을 금지한 유엔 헌장을 무시해가며 전쟁으로 문제를 풀려는 러시아의 방식엔 중국도 동의하기 어렵다는 뜻을 에둘러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에 대항해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협력국인 중국이 사실상 전쟁에 반대한다는 뜻을 에둘러 밝히고, 교섭을 요구함에 따라 푸틴 대통령의 입지가 다소 좁아지게 됐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진지하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고위급 담판’을 할 의사가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 자료가 공개되기 직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우크라이나가 무기를 내려 놓는다면 키예프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는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사실상 ‘항복’을 요구한 것이어서, 중국 외교부가 전한 푸틴 대통령의 발언과 상당한 온도차가 있다. 길윤형 기자

 

푸틴 멈춰세울 ‘카드’가 없다…경제 제재 효과도 미지수

 

미국 · 유럽 “우크라에 병력 투입 안 해”

“우크라 넘어 나토 회원 공격하면 대응”

 경제제재 꺼냈지만 시간 걸리고 푸틴 못 멈춰

 젤렌스키 “우리는 홀로 남겨져 싸우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기갑부대가 수도 키예프의 30㎞까지 육박하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돌려세울 카드가 마땅치 않은 모습이다. 서방은 예고했던 경제·금융 제재만 잇따라 쏟아낼 뿐 우크라이나에 직접적인 군사 개입은 하지 않겠다는 점을 오히려 분명히 하고 있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 아닌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들여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각) 러시아에 추가 제재를 발표하는 연설에서 “우리 군대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의 충돌에 관여하지 않고 있고, 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 군대는 우크라이나에서 싸우려고 유럽에 가는 게 아니고, 우리의 나토 동맹을 방어하기 위해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는 이날도 독일에 미군 7000명을 추가로 파병하는 등 우크라이나 주변에 병력을 증강했다. 하지만, 이는 우크라이나가 아닌 유럽의 나토 동맹들이 러시아에 공격당할 경우에 대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국은 이미 유럽에 주둔하는 미군을 우크라이나에 인접한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루마니아로 이동시켰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에이비시>(ABC) 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넘어 나토 회원국들에까지 진격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그 경우 “나토 헌장 제5조”를 들어 개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조항은 한 나라에 대한 군사 공격을 회원국 전체에 대한 침공으로 간주해 즉각 대응한다는 내용이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안에는 나토 병력이 없고, 앞으로도 보낼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직접적 무력 개입에 선을 긋는 이유는 표면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나토 회원국이 아니다’라는 점이지만, 러시아와 전면적 대결을 꺼리는 유럽 회원국들의 이해관계도 걸려있다. 미국의 경우, 해외에서의 전쟁에 개입하는 데 대한 반대 여론도 높다. 또한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 서방이 직접 충돌할 경우 핵전쟁으로 비화할 우려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 경우 “3차 세계대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방은 옛 소련 영토로 러시아가 훤하게 파악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서방의 군대를 투입해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판단도 한 것으로 보인다.

 

군사적 측면에서 미국과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해온 것은 무기 공급 등 간접적 지원 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도 약속했다.

 

서방은 강력한 응징 카드로 경제·금융 제재를 내세우지만, 이걸로 푸틴 대통령을 당장 멈추지는 못할 것이라는 점은 미 정부 관리와 전문가들 모두 인정한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제재로 인해 러시아의 통화 가치가 떨어지는 등 “즉각적 효과”가 나고 있다면서도 “효과는 시간이 지나야 정말로 느껴질 것이다. 제재가 지속되면 고통이 커지면서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세계 군사력 22위인 우크라이나는 2위 러시아를 사실상 혼자서 맞서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개전 둘째날인 25일 화상연설에서 “우리는 홀로 남겨져 나라를 지키고 있다. 누가 우리와 함께 러시아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되었는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준범 기자

러, 제공권 장악 뒤 3면에서 우크라군 포위

키예프 장악하고 동부 우크라군 고립 시도

향후 변수는 시가전과 우크라군 항전 여부

우크라 안정화엔 중장기적으로 60만 병력 필요

 

러시아군의 25일 새벽 미사일 공격으로 폐허가 된 건물을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둘러 보고 있다. 키예프/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24일 개전 첫날부터 우크라이나의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기갑부대는 수도 키예프 인근까지 육박했다. ‘결사항전’을 외치는 우크라이나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놓인 상태다.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오후 러시아군의 의도에 대해 개전 초 키예프를 신속 점령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을 ‘참수’(제거)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대리 정권을 세우려는 의도라는 분석을 내놨다. 다른 서구 정보·군사 당국자들도 러시아군이 키예프에 압도적인 전력을 쏟아 부어 함락시키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데 동의한다.

 

벌써, 침공 12시간만에 러시아군 공수특전 병력과 공격용 헬기는 수도 키예프의 25~30㎞ 안에 접근해서 북서 외곽에 자리한 공항을 놓고 전투를 벌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와 관련해 키예프 서부의 고스토멜과 안토노프 공항을 놓고 공방전을 벌여 재탈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키예프를 겨냥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도 이어지고 있다. 25일 새벽 키예프에 러시아의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이 여러 발이 떨어져 굉음이 발생했다는 증언이 쏟아진다. 서방의 한 정보 당국자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러시아는 정해진 시간 내에 어디든지 갈 수 있는 효율적인 불도저 같은 우위를 같고 있다”며 “핵심 변수는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전투를 벌여서 푸틴에게 코피를 흘리게 하느냐이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며칠 내 전쟁의 운명을 가를 변수는 키예프 등 주요 도시에서 진행될 시가전의 양상이다. 미국 등 서구 정부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키예프를 뭉개 버리기보다는 질식시키기를 원한다”고 보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즉, 키예프를 포위한 뒤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무너지기를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압도적인 전력의 러시아군이 키예프를 포위한 뒤 시가전을 시도하면,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가 꺾일 수 있다.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에 노출돼 있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24일 전경. 키예프/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면, 러시아군이 일방적 우세를 보일 것임은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하지만, 예측보다 훨씬 빨리 전황이 기운 것은 두 나라 사이의 압도적인 전력 격차,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등 외부의 직접적인 군사 개입이 불가능한 상황 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꼽힌다. 그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변수가 우크라이나의 ‘지리적 취약성’이다.

 

우크라이나를 거대한 시계로 보면, 러시아는 10시 방향에서 12시를 지나 7시 방향까지 세 방면에서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 벤 베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연구원(전 영국 육군 준장)은 영국 <비비시>(BBC) 방송에 우크라이나의 이런 지형적 취약성에 대해 “방어자에게 매우 어려운 입지”라고 말했다. 잭 워틀링 영국 왕립연합연구소 연구원도 우크라이나는 다방면에서 위협받아서 그 전력이 아주 “옅게 퍼져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침공군 전력은 19만명에 달하나, 우크라이나의 전체 정규군 병력은 12만5천명이다.

 

실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개전을 선포한 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주요 군부대에 미사일 공격과 공습을 가한 뒤 3방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국경을 넘어 침공했다. 북쪽에선 벨라루스 접경, 동쪽에선 돈바스 지역의 분리독립 세력들의 자칭 공화국 경계, 남쪽으로는 2014년에 강제 합병한 크림 지역을 넘어서 침공했다. 침공이 시작된 뒤 우크라이나의 첫 방어선은 러시아 군의 정밀 미사일 공격으로 폭격 당했다.

 

핵심 전선은 북쪽 국경에서 수도 키예프까지 불과 100㎞ 떨어진 북쪽 전선이다. 벨라루스에서 국경을 넘어 침공한 러시아군은 전투기, 공수 특전부대, 헬기를 동원해 키예프 인근 주요 공항들을 공략하고 있다. 목적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우크라이나 정권 전복이다. 서구 고위 관리들은 러시아가 키예프를 며칠 내로 점령하려고 “압도적인 전력”을 모으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 국방부의 고위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러시아군의 초기 작전은 “주요 인구 중심지들을 점령하려는 의도가 확실하다”며 특히 키예프의 정부를 ‘참수’하는 것이 궁극적인 의도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의 로켓 공격을 받아 벽면이 너덜너덜해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아파트 건물 앞에서 25일(현지시각) 이곳에 살던 주민이 절규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전날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전면적인 침공을 감행했다. 키예프/AP 연합뉴스

 

러시아군은 이 공격을 받치기 위해 동부와 남부에서도 동시에 진격해 우크라이나군의 주력을 포위하려 시도하는 중으로 보인다. 현재, 우크라이나군의 주력은 돈바스 내전 때문에 동부에 배치돼 있기 때문에 동시 공격을 벌여 이 전력의 발을 잡아두겠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현재 가장 치열한 전투는 우크라이나 동부의 중심 도시인 하르키우(하리코프)에서 벌어지고 있다.

 

전쟁의 양상을 결정한 또다른 요소는 제공권이다. 전쟁이 시작된 직후 지상과 흑해 함대에서 100여발의 미사일이 발사돼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을 무력화했다. 러시아의 Kh-31P 미사일은 우크라이나군의 레이더와 통신시설을 공격했다. 또, 러시아 공군의 전투기 75대가 발진해 우크라이나의 방공망, 지휘통제 시설, 공군기지, 대규모 병력 주둔지를 공격했다. 유럽의 한 서방 정보 관리는 <아에프페>(AFP) 통신에 “우크라이나의 방공망은 지금 효과적으로 제거됐다”며 “그들은 더 이상 비행하거나 자신들을 보호할 공군력이 없다. 본질적으로 러시아는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완전한 제공권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전쟁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가르게 될 마지막 변수는 우크라이나군이 서부 배후지로 전략적 후퇴를 한 뒤 항전할 수 있느냐이다. 그러려면 우크라이나군 주력은 러시아의 포위를 피해 서구와 가까운 서부로 이동한 뒤 러시아의 진공을 저지하며 새 전선을 확보해야 한다. 마이클 코프먼 미 해군분석센터(CNA) 연구원은 “러시아군의 진공에 우리는 놀라서는 안 된다”며 “문제는 우크라이나 군이 저지선을 확보하느냐”라고 지적했다. 나토 국가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뒤 게릴라전을 막으려면 약 60만명의 병력이 필요할 것이라 보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러시아 입장에서도 상당한 출혈이 불가피하다.

 

마티유 블레그 영국 채텀하우스의 유라시아프로그램 연구원은 앞으로 “2~4일 동안 상황을 판단하면서 진공, 정지, 탈환이 반복되는 진격-중단 작전이 될 것이다”며 “그 다음은 러시아 군의 사망자가 어느 정도이냐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번 전쟁은 최대한 전면적인 접근이나, 단순히 돈바스를 확보하려는 기만전략일 수도 있다”고도 말했다. 친러 분리독립 세력들의 자칭 공화국이 있는 돈바스 지역을 완전히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를 무너뜨리고 대리정권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돈바스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는 정도에서 그칠 것인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처럼 수렁에 빠질 것인가? 향후 며칠이 고비이다. 정의길 기자

 

러시아, 우크라 침공 3일째…오늘 ‘키예프 대공세’ 할 듯

 

러시아군, 키예프 북·서부 진입 시도

인근 50㎞까지 근접해 치열한 교전

동부·남부 지역 주요 도시서도 전투

유엔, “난민 최대 400만명” 예상

두쪽, 정전 협상 나설 의지 밝혀

 

러시아의 침략을 피해 피난에 나선 가족이 아이를 열차에 태우고 있다. 키예프/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이 3일째로 접어든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5일 밤(현지시각) 사이에 키예프에 대한 러시아의 총공세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키예프로 진입하려는 러시아 군과 이를 막으려는 우크라이나 군은 키예프 북부와 서부 인근에서 이날도 치열한 교전을 계속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화상 연설에서 “오늘밤은 어제보다 더 어려운 날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수도를 잃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오늘밤 적들이 거칠고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방어를 무너뜨리려 시도할 것”이라며 “오늘밤 (키예프를) 몰아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군과 우크라이나 군의 전투는 이날 내내 키예프 인근에서 집중적으로 벌어졌다. 러시아는 키예프 진입의 교두보 구실을 하는 인근의 호스토멜(고스토멜) 비행장을 장악했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은 이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 비행장 주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확인했다고 전했다.

 

<아에프페>는 키예프에서 북쪽으로 40~80㎞ 떨어진 두 곳에서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고위 정보 관계자는 러시아 군이 키예프 북부와 서부에서 수도 인근 50㎞까지 접근했다고 밝혔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키예프 외곽에는 러시아 전차, 보병, 공수부대원들이 침투를 준비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파괴 공작원들은 이미 키예프에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당국은 키예프가 조만간 함락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우크라이나 군의 저항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키예프 시내 정부 기관 주변에서는 무장 차량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배치돼,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했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예프 시장은 “시 북부에 있는 발전소 인근에서 3∼5분 간격으로 다섯 차례 폭발음이 들렸다”며 “긴급대응팀이 출동해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현지 방송은 발전소가 정상 가동되고 있다고 전했다. 클리치코 시장은 러시아군이 키예프와 가까워짐에 따라 시내 모든 다리를 보호하고 특별 통제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앞서 트위터를 통해 키예프 북동부 도시 체르니히우와 남부 해안 도시 멜리토폴에서도 교전이 거센 상황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제2 도시인 동부 국경 지대의 하르키우 인근 공항에서도 폭발음과 총격 소리가 들렸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유엔 관리들은 적어도 10만명의 우크라이나 주민이 피란에 나선 것으로 보이며 피란민은 최대 400만명에 이를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에이피>가 전했다.

 

우크라이나 인근 해상에서 선박 두 척이 이날 포격을 당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우크라이나 인프라부는 경유를 운반하던 몰도바 국적 ‘밀레니얼 스피릿’과 오데사 항구에서 곡물을 선적하던 파나마 국적 ‘나무라 퀸’이 포격을 당했다고 밝혔다. ‘밀레니얼 스피릿’에는 러시아 국적 승조원 10명이 타고 있었으며, 이 중 2명이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나무라 퀸’의 피해 상황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러시아는 앞서 정전 협상을 위해 대표단을 벨라루스 민스크로 보낼 의향이 있다고 밝혔고, 우크라니아 대통령 대변인도 협상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신기섭 기자

 

폴란드 · 헝가리 국경으로 몰리는 피란 행렬…“이건 시작일 뿐”

 

우크라 피난민들 탄 버스·기차 폴란드 도착

400여명은 걸어서 헝가리 국경 넘어

러시아에선 반전 시위…1600명 이상 체포

 

24일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폴란드 프셰미실의 기차역으로 피란한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야외 침대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다. 프셰미실/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24일(현지시각) 한적한 폴란드 남동부 마을인 메디카에 우크라이나 피란민 행렬이 몰려들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이 마을에 이날 우크라이나 피란민 수백명이 버스와 미니 밴을 타고 도착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피란민 대부분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젊은 부부들이었으며, 버스 운전기사 한 명은 “혼란 그 자체다. 모든 버스가 꽉 찼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버스 운전기사는 “이건 시작일뿐이다.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고도 말했다. 메디카에 도착한 우크라이나인들 상당수는 폴란드와 거리가 64㎞ 남짓에 불과해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꼽혔던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리비프에서 온 이들이었다. 두 아이의 어머니인 26살 이바나 카르피네츠는 “폭발음에 일어났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냥 뛰었다”며 “우크라이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짐을 싸서 떠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날 폴란드 남동부 국경도시 프셰미실에 도착한 정기 열차에서도 100여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내렸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출발한 이 열차에서 내린 이들은 전쟁을 피해 왔다고 말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우크라이나와 500㎞ 국경을 접한 폴란드는 피란민 행렬이 시작 단계일 뿐이라고 보고, 국경에 임시 대기 시설 8곳 그리고 부상자 수송 특별 열차를 마련했다. 폴란드에는 일자리를 찾아온 우크라이나인 100만여명이 이미 거주하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추가로 100만명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24일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열린 반전 시위에 참가한 이들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있다.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다른 동유럽 국가들에도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이 도착하고 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24일 헝가리 국경 도시 자호니로 들어오는 우크라이나 자동차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전했다. 헝가리에 도착한 첫번째 우크라이나인 피란민 중 한명은 아에프페에 “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도망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아내와 어린 아이가 있다. 아내가 아빠 없이 아이들을 키우게 하고 싶지 않다”며 징집되지 않고 싶다고 말했다고 아에프페는 전했다. 헝가리 <엠티아이>(MTI) 통신은 이날 우크라이나인 400여명이 걸어서 헝가리로 들어왔다고도 전했다.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려는 이들도 있다. 33살 우크라이나 의사는 동료 2명과 함께 헝가리에서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돌아갈 것”이며 “히치하이킹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고 아에프페는 전했다. 우크라이나와 615㎞ 국경을 접한 루마니아에도 이날 우크라이나에서 5300여명이 들어왔다. 유엔난민기구 대변인은 러시아 침공 뒤 우크라이나인 10만명이 이미 집을 떠나 피란길에 올랐고 수천여명은 국경을 넘었다고 밝혔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이날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주요 도시에서 반전 시위가 일어났고, 경찰이 시위 참가자 1600명 이상을 체포했다고 정치범 체포를 감시하는 비정부기구(NGO) ‘오브이디(OVD)-인포’가 밝혔다. 조기원 기자

침공 한나절 만에 우크라이나 수도 접근

키예프 북쪽 30㎞ 비행장서 치열한 교전

“공중에서 군인 투하해 도심 침투 가능성”

러 의원, “친러 정권 수립하는 게 목표”

러시아, 체르노빌 원전 장악 시도까지

동부 접경 지역, 남부 항구에서도 전투 격화

 

 러시아 군 소속으로 추정되는 헬리콥터들이 24일 오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인근에서 저공 비행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키예프 진입을 시도하면서 우크라이나 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 키예프/AP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공격 작전을 시작한 지 한나절 만에 러시아 군이 수도 키예프 인근까지 진출해 수도 진입 작전에 돌입했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24일 오후(현지시각)에 접어들면서 러시아 군이 수도 키예프 주변까지 진출했다고 군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국경 수비대는 러시아 군이 키예프 북부에서 우크라이나 정부 시설에 그래드 다연장 로켓포 공격을 가했다고 전했다. <아에프페>는 수도 북부에 있는 공항이 공격을 받는 가운데 자사 기자가 헬리콥터 몇 대가 저공 비행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보도했다.

 

<데페아>(DPA) 통신은 두 쪽이 키예프에서 북쪽으로 30㎞ 정도 떨어진 호스토멜 비행장 주변에서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관계자는 비행장 주변에서 적어도 3대의 러시아 군 헬기를 격추시켰다고 주장했다. 내무부 장관의 고문인 안톤 헤라시셴코는 페이스북을 통해 러시아 군 헬기 격추 동영상을 공개했다. 러시아가 이 비행장을 장악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군 관계자들은 러시아 군이 공중에서 군인들을 지상으로 투입한 뒤 키예프의 정부 청사 지역으로 침투시킬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러시아가 공격 초기부터 키예프 진입에 집중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정부 기관을 빠르게 무력화시킴으로써, 군과 시민들의 저항 의지를 꺾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 통신은 러시아 의원을 인용해 러시아의 목적은 키예프에 친러시아 정부를 세워 미국의 영향력을 몰아내는 것이라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군과 러시아 군의 교전은 동부 지역 러시아 접경 도시인 하르키우와 수미, 남부 항구 도시 오데사 등에서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벨라루스쪽 국경을 넘어온 러시아 군인들이 1986년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침략군이 원전을 장악하려고 하고 있으며, 우리 방위군이 1986년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는 두쪽의 전투 과정에서 원전 폐기물 보관 시설이 파괴됐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러시아 국방부는 자국 군이 우크라이나의 11개 공군 기지를 포함한 74곳의 군 시설을 파괴했다고 주장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또,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우크라이나 국경 수비대가 국경 지대의 시설들을 이미 포기했다고 주장했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전했다. 신기섭 기자

 

 바이든, NSC 소집… G7 정상과 협의 후 대러시아 제재 발표 예정

"첨단기술 유입 차단 · 금융기관 및 푸틴 측근 제재 대상 포함될 듯"

 

백악관서 국가안보회의 주재하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중앙)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회의(NSC)를 소집해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하고 있다. (워싱턴 로이터=연합뉴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4일오전 백악관에서 국가안보회의(NSC)를 소집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주재한 NSC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남·북쪽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침공을 개시한 뒤 처음 열린 것이다.

 

이 자리에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재닛 옐런 재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마크 밀리 합참의장,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이 참석했다고 CNN이 전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되자 전날 밤늦게 성명을 내고 러시아의 부당한 공격에 책임을 묻겠다며 동맹과 단호한 대응을 다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NSC 직후 주요 7개국(G7) 정상들과 화상 대책 회의를 한다.

 

여기에선 사실상 전면적인 침공을 감행한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신속하고 가혹한 경제 제재를 예고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정오 대국민 연설을 통해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조치를 발표한다.

 

제재에는 첨단 기술 유입 차단과 대형 금융기관 제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들에 대한 추가 제재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고 CNN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