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쿠데타 1년] 군부 1인자 민 아웅 흘라잉 누구?

군부 정권서 총사령관으로 두각

2017년 로힝야족 갈등·학살 주도

 

수치 정권 타격 노리다 불발되자

총선 민심 뒤집고 시민들에 총구

아들·며느리 동원해 이권 등 독점

 

26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총리실에서 훈 센 총리(왼쪽)가 미얀마 쿠데타 군정의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과 함께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훈 센 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지난 7~8일 자신의 미얀마 방문 이후 발생한 폭력 사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휴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모든 당사자의 자제를 촉구했다. 캄보디아 정부 제공

 

지난 7일 미얀마를 전격 방문한 훈 센 캄보디아 총리와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군 총사령관이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 전세계에 공개됐다. 지난해 2월1일 쿠데타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끌던 합법 정부를 전복한 ‘미얀마의 1인자’ 민 아웅 흘라잉이 처음 외국 정상과 회담에 나선 순간이었다. 두 정상은 이날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 미얀마가 지난해 4월 합의한 △폭력행위의 즉각 정지 △아세안 특사의 미얀마 내 ‘모든 관계자’에 대한 면담 허용 등 5개 항목의 이행을 이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두 정상은 26일에도 화상 회담을 여는 등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

 

미얀마 쿠데타가 발생한 지 1년이 다가오면서, 여전히 짙은 베일에 싸인 민 아웅 흘라잉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956년 7월에 태어난 민 아웅 흘라잉은 2002년 미얀마 북부 샨주의 지역 사령관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10년 군부 정권 때 합동참모총장직을 수행하며 당시 군의 1인자였던 탄 슈웨 국가평화발전평의회(SPDC) 의장의 후임자로 지목됐다. 이어 2011년 테인 세인 과도정권에서 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되며 현재까지 이어지는 정치적 야욕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그는 2017년 8월 서북부 라카인 지역에서 발생한 로힝야족과 미얀마인의 충돌로 발생한 살인 사건을 불교도(미얀마)와 무슬림(로힝야) 간의 종교적·종족적인 갈등으로 증폭시킨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미얀마군은 이 사태를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대규모 학살을 일으켰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비난은 민 아웅 흘라잉이 아닌 수치 국가고문에게 집중됐다. 결국, 2019년 12월 국제사법재판소에 피고로 출두하면서 ‘평화’를 상징했던 수치의 신화가 상처 입게 된다. 지금 와 돌아보면, 수치 정권에 타격을 주기 위한 군부의 철저한 노림수였다.

 

수치 고문은 국제적으로 큰 비난을 받았지만, 국내적으로는 국제사법재판소에 출두해 수모를 감당하는 모습을 보이며 책임 있는 지지자로서 비치게 된다. 그 결과 2020년 11월 총선에서 수치 고문이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은 83%의 높은 지지율로 압승을 거뒀다. 민 아웅 흘라잉은 더 이상 정권 장악을 위한 야욕을 참지 못하고 쿠데타를 결심하게 된다. 군부는 쿠데타 직후 1년 뒤 총선을 치르고 민정 이양을 하겠다고 했지만, 며칠 뒤 준비 기간은 2년6개월 연장돼, 총선은 2023년 8월에나 치를 수 있다. 미얀마의 ‘신군부’ 민 아웅 흘라잉의 독재를 향한 행보가 시작된 것이었다.

 

민 아웅 흘라잉은 권력은 물론 재산에 대해서도 엄청난 야욕을 가졌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아들 아웅 피애 손(36)은 양곤의 심장이라 불리는 슈웨다곤 사원 근처에서 고급 갤러리 식당 겸 미술 전시관, 서부 유명 해안가에 고급 리조트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 건설사를 소유하고 있으며, 약품 회사를 설립해 모든 수입 약품의 허가 업무 독점 대행을 맡고 있다. 며느리인 묘 야더나 타이크는 양곤 밍갈라돈 지역 내 부동산 회사를 설립해 부지 개발 사업을 하고 있고, 딸인 킨 티리 테 몬(37)과 함께 연예기획사를 설립해 영화 사업도 독점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얀마 군부는 최근 수치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을 해산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조 민 툰 군 대변인은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27일치)과 한 인터뷰에서 결정은 선거관리위원회가 하는 것이지만 “총선 때까지 민족민주동맹을 해산할 뜻이 없다”고 말했다. 신문은 이를 두고 미얀마 군부가 수치 고문만 제거하면 당 자체는 큰 위협이 아니라고 보는 듯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양곤/천기홍 부산외국어대 미얀마어과 특임교수, 길윤형 기자

 

“포스코 인터내셔널, 미얀마 군부 쿠데타 세력과 단절을!”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106개 한국시민사회단체들

포스코 인터내셔널 미얀마 가스전 사업 중단 촉구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시민사회단체모임 회원들이 27일 오전 미얀마 군부 쿠데타 1년(오는 1일)을 앞두고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 앞에서 포스코 인터내셔널의 미얀마 쿠데타 세력과의 관계 단절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내 106개 단체가 모인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시민사회단체모임이 미얀마 군부 쿠데타 1주기(오는 1일)를 앞두고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 앞에서 미얀마 가스전에 투자하고 있는 포스코 인터내셔널의 사업 중단을 촉구했다.(▶관련기사: 미얀마 쿠테타 1년…시민단체 “포스코, 쿠데타 세력과 단절하라”) 포스코 인터내셔널은 포스코 그룹의 글로벌 인프라부문 계열사이다.

 

이들은 미얀마 석유가스공사(MOGE)와 슈웨 가스전 사업을 하는 포스코 인터내셔널이 쿠데타 세력의 인권 유린에 눈감고 계속해서 가스 수익금을 쿠데타 세력에게 지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1일 에너지 기업인 프랑스 토탈과 미국 셰브런은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의 인권과 법치가 훼손됐다며 사업 철수를 발표한 바 있다. 시민모임은 “지난 1년간 미얀마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포스코 인터내셔널을 규탄한다”며 “쿠데타 세력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가스 수익금의 에스크로 계좌(제3의 계좌) 예치, 가스수송 파이프라인 사업의 배당금 지급 유예 등을 포함한 실효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시민모임은 미국과 유럽, 미얀마 등 23개 단체와 함께 미얀마 쿠데타 세력의 자금줄인 가스 수익금의 제재를 촉구하는 서한을 미국과 프랑스 정부에도 보내고, 이날 포스코 인터내셔널의 미얀마 슈웨 가스전 대금 지급 중단을 촉구하는 전 세계 시민 9만5251명의 서명도 사쪽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현장의 사진을 모아본다.   김명진 기자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시민사회단체모임 회원들이 포스코 인터내셔널의 미얀마 쿠데타 세력과의 관계 단절을 요구하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시민사회단체모임 회원들이 27일 오전 미얀마 군부 쿠데타 1년을 맞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센터 앞에서 포스코 인터내셔널의 미얀마 쿠데타 세력과의 관계 단절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미- EU, 러시아에 대한 금융제재안 합의 근접”

● WORLD 2022. 1. 27. 06:10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FT “미 관리 ‘고무적 의견 수렴 있었다’”

러시아 대형 금융기관 제재안 거론

블룸버그 “독일, 에너지 분야 예외 요구”

 

 25일 우크라이나 군인이 친러시아 반군이 활동하는 도네츠크 인근에서 경계를 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해 러시아 금융기관을 겨냥한 금융 제재안을 상당 부분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25일 미 행정부 관리들이 대 러시아 경제제재 특히 금융 분야 제재와 관련해 대서양 동맹(미국과 유럽) 사이에 “매우 고무적인 (의견) 수렴이 있었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한 미국 관리는 미국과 유럽연합 간에 △러시아 금융기관 및 국유기업의 규모 △조처 강도 △즉각성 등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합의에 근접한 제재안의 구체 내용을 밝히진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의회에서 추진되는 러시아 최대 은행이자 국영 은행인 스베르방크와 러시아 국부펀드인 ‘러시아직접투자펀드’(RDIF) 등에 대한 제재를 지지하고 있어, 이들 대형 금융기관을 겨냥한 제재가 준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문은 그와 함께 첨단기술 관련 수출 규제도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러시아에 대해 제재 조처를 취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제재를 추가할 수 있다”는 경고를 쏟아내고 있다.

 

다만,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회원국이 많은 유럽연합 쪽은 대 러시아 추가 경제 제재안에 대해 미국과 완전히 의견 일치를 보기 쉽지 않다. 한 유럽연합 당국자는 신문에 미국 당국자가 의견 접근을 이뤘다는 금융 제재에 대해 “막후 작업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블룸버그>는 25일 독일 정부가 일부 러시아 은행과의 거래 금지 및 자산 동결 등에 대해서는 합의했지만, 에너지 분야는 추가 제재의 예외로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기원 기자

 

푸틴의 ‘전쟁’, 시진핑의 ‘올림픽’

 

대규모 병력으로 우크라이나를 위협하며 미국·유럽과 대치 중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다음주 베이징겨울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다. 2020년 1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전세계로 확산된 이후 시진핑 주석이 외국 정상과 직접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이징겨울올림픽에 대한 미국 주도의 ‘외교적 보이콧’에 공식·비공식으로 동참한 나라는 14개국뿐이지만, 지금까지 직접 정상이 참석하겠다고 밝힌 나라도 러시아, 파키스탄, 폴란드, 몽골과 중앙아 5개국 등 10개국뿐이다. 코로나와 일부 국가들의 외교적 보이콧 속에서 열리는 개막식에 푸틴의 참석은 시진핑에겐 천군만마의 특별한 ‘선물’이다.

 

푸틴으로서도 시진핑과의 공조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이탈리아와 비슷한 러시아의 경제력으로는 미국과 유럽에 맞설 수 없다. 하지만 러시아의 군사력과 중국의 경제력을 결합해, 유라시아의 서쪽과 동쪽에서 동시에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흔든다면 승산이 있다는 것이 푸틴과 시진핑의 계산이다.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볼모로 한 위험한 도박으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위축시키고 ‘소련의 영향권’을 회복한다면, 시진핑도 같은 방법으로 대만을 볼모로 동아시아에서 영향권을 확보할 수 있다. 지난달 화상 정상회담에서 시진핑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푸틴의 행동을 지지했고, 푸틴은 대만에 대한 중국의 정책을 지지한다고 화답했다.

 

푸틴이 그동안 올림픽을 기습 침공의 계기로 활용해왔기 때문에, 베이징겨울올림픽 기간 동안 전쟁이 벌어질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푸틴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뒤 곧바로 돌아가 조지아 침공을 지휘했고, 2014년 자국에서 개최한 소치겨울올림픽 폐막 며칠 뒤 기습적으로 크림반도를 합병했다.

 

푸틴과 시진핑의 장기 과제는 미국의 달러 패권 흔들기이다. 지난달 화상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제3자(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금융 네트워크를 만들려는 노력을 가속화하겠다”며 양국 무역에서는 달러가 아닌 위안과 루블 결제를 늘리겠다고 했다. 단기간에 달러 패권을 흔들지는 못할지라도, 미국이 금융 제재로 두 나라의 행동을 제약하는 데서 벗어나겠다는 계획은 분명하다. 미국이 러시아를 향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국제 금융결제 시스템인 스위프트에서 배제하겠다고 경고하고 있지만, 러시아와 중국은 오히려 달러 패권을 약화시킬 방법을 찾겠다며 맞서고 있다.

 

이들의 또 다른 무기는 유엔 안보리에서의 거부권 공조다. 시리아 내전에서 아사드 정권 지원, 미얀마 군사 쿠데타 옹호 등 중국과 러시아는 안보리 거부권을 이용해 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해왔다. 북한이 새해 들어 극초음속미사일 연속 발사에 성공했다고 한 뒤, 미국이 안보리에서 규탄 성명을 내려는 시도도 중국과 러시아가 막았다.

 

중국과 러시아의 세계질서 흔들기의 파장을 가장 주도면밀하게 읽고 있는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일 것이다. 새해 들어 벌써 다섯차례 미사일을 발사했고,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재개 카드까지 꺼냈다. 북한이 다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핵 실험을 해도 안보리가 대응할 수 있을까. 박민희 논설위원

미 본토 병력 8500명에 비상대기령

  유럽 유사시 파병 준비 태세 돌입

  나토, 동유럽 회원국들에 군비 지원

“집단안보 강화, 신속대응군 준비”

 나토-러, 지중해 대규모 훈련도 벌여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로부터 합병한 크림반도에서 지난 18일 러시아군 장갑차 행렬이 도로를 달리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비해 본토 주둔 병력 8500명에게 비상대기령을 내렸다. 그와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서유럽 동맹들은 동유럽에 군사장비를 보내고, 지중해에서는 나토와 러시아가 각각 대규모 훈련에 나서는 등 냉전을 방불케 하는 무력 대치가 심화되고 있다.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24일 나토의 신속대응군 가동에 대비해 미군 8500명이 비상대기 상태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그는 “안보 상황 악화로 나토의 신속대응군이 가동되면 미국은 여단급 전투부대와 병참, 의료, 항공, 정보, 감시, 정찰, 운송 등의 군사력을 유럽에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사시 4만명 규모로 가동되는 나토 신속대응군은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을 계기로 지금처럼 규모가 커졌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지중해에서 진행되는 나토의 ‘넵튠 스트라이크 22’ 훈련에 미국의 해리 트루먼 항공모함 전단이 참여한다며 “냉전 종식 후 처음으로 미국 항모 전단이 나토의 작전 통제를 받게 된다”며 “우리(나토)의 동쪽 측면 국가들(동유럽)의 안보를 지원해야 하는 신성한 의무”가 미국에 있다고 말했다.

 

나토에 속한 서유럽 회원국들은 이날도 동유럽에 대한 군사장비 배치 계획을 쏟아냈다. 덴마크는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과 러시아가 면해 있는 발트해에 프리깃함을 투입하고 리투아니아에는 F-16 전투기 4대를 보내겠다고 밝혔다. 스페인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해안을 이루는 흑해에 프리깃함, 불가리아에는 유로파이터 전투기를 투입하겠다고 했다. 네덜란드는 불가리아에 F-35 전투기 2대를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프랑스도 루마니아에 병력을 파견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나토 신속대응군 가동 가능성을 띄우는 미국과 서유럽의 움직임은 나토의 집단안보 시스템을 가동할 준비를 시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나토는 전 회원국을 보호하고 방어하기 위해 모든 필요한 수단을 계속 사용할 것”이라며 집단안보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집단안보 개념의 핵심인 나토 조약 제5조는 개별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대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발트 3국과 폴란드에 파견된 4개 나토 전투그룹의 보강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 면한 국경에 병력을 집중시키며 시작된 이번 대치는 미-소가 존멸을 놓고 대립하던 냉전 때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의 움직임은 동유럽 신규 회원국들을 안심시키고, 러시아에는 집단적 대응 가능성을 경고해 침공 의지를 꺾으려는 이중 목적을 지닌 것으로 분석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유럽 국가 및 나토 수뇌부와의 화상회의를 마친 뒤 “모든 유럽 지도자들과 완벽한 (의견의) 만장일치를 이뤘다”고 말했다. 이번 위기에서 강경 메시지를 주도하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러시아군이 전격전으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점령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나토의 비상한 대응을 강조했다.

 

반면 러시아는 긴장을 끌어올리는 것은 미국과 나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레믈 대변인이 나토와의 갈등 심화에 대해 “러시아가 아니라 나토와 미국이 하는 짓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에 10만6천명의 병력을 집결시켜 전쟁 임박설을 유발한 러시아는 지중해에서 함정 140척과 병력 1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훈련도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와 나토가 각각 진행하는 지중해 훈련은 전부터 예고된 것이지만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위기 상황에서 진행되기에 더 큰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우크라 위기의 연원…미국, ‘나토 동진 안 한다’ 약속했나?

 

1990년 냉전해체·독일 통일 협상 때

미·독 “나토 동진 않는다” 구두 약속

구속력 있는 서면 약속은 이뤄지지 않아

30년 흐른 지금까지 미-러 분쟁 불씨 돼

 

1991년 8월19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 주변 도로에서 시민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소련 공산당 강경파 쪽 탱크의 진입을 온몸으로 저지하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유럽에 전운을 드리우고 있는 우크라이나 위기가 발생한 ‘핵심 원인’은 냉전 해체 이후 끊임 없이 이어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확장 때문이다. 러시아는 미국이 독일이 통일되고 냉전이 해체되던 1990년 ‘나토를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주장하지만, 미국과 나토는 “그런 적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미국은 당시 소련과 협상에서 나토의 확장 금지에 대한 ‘공식 보장’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과 서독의 지도자들은 소련과 협상 과정에서 그런 언급을 했고, 이를 통해 독일 통일에 대한 소련의 양해를 얻은 것은 사실이다. 소련은 서구의 선의를 믿었지만, 이는 구속력이 없는 공염불에 불과했다.

 

나토는 2차대전 직후인 1949년 미국이 소련의 위협에 맞서 유럽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만든 집단안보기구이다. 헤이스팅스 이즈메이 초대 나토 사무총장은 나토가 냉전 시기 “소련을 막고, 미국을 끌어들이고, 독일을 억제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애초 목적인 소련의 위협을 성공적으로 막았을 뿐 아니라, 두 차례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이 유럽에 녹아 들게 하고, 미국을 확실히 유럽에 붙들어 매는 등 여러 면에서 훌륭히 기능했다는 지적이다.

 

이후 40년의 세월이 흘러 1989년 11월9일 베를린장벽이 붕괴됐다. 냉전이 종식되며, 독일 통일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독일의 운명을 정할 핵심 변수는 소련의 반응이었다. 서독은 통일을 목표로 주변국들과 적극적으로 타협을 시도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동유럽 국가들의 사회주의권 이탈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고르바초프는 냉전 이후 소련의 안전 보장을 위해선 서구의 군사동맹인 나토가 현재의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고 봤다.

 

 

한스 디트리히 겐셔 당시 서독 외무장관은 1990년 2월6일 더글러스 허드 영국 외교장관에게 “나토는 동쪽으로 영역을 확장할 의도가 없다”는 성명을 발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3일 뒤인 2월9일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고르바초프를 직접 만났다. 베이커는 “최종 결과: 통일 독일은 (정치적으로) 변화된 나토에 고정된다. ’나토의 관할 영역은 동쪽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라는 자신의 말을 직접 메모했다. 회담 뒤 베이커 장관은 곧 소련을 방문하는 헬무트 콜 서독 총리에게 비밀 편지를 전했다.

 

이 편지에서 베이커는 자신이 고르바초프에게 한 제안을 밝혔다. “통일 독일이 나토 밖에 있기를 선호하는가, 그래서 독일에 미군이 주둔하지 않고 완전히 독립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나토의 관할권이 현재 영역에서 ’한 치도 동쪽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보장 하에서 통일 독일이 나토와 엮여있기를 원하는가?” 고르바초프는 “나토의 영역 확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독일이 통일이 되어도 나토가 동독으로 확장되어선 안 된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워싱턴 매파들은 베이커-고르바초프의 타협안에 이의를 제기했다. “나토가 어떻게 한 나라의 반쪽에만 적용될 수 있냐”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도 이에 동조하는 편지를 써 콜 총리에게 보냈다. 나토가 동쪽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베이커는 ‘나아갈 수 없다’, 부시는 ‘나아갈 수 있다’. 콜에게 미국의 서로 다른 입장이 전달된 것이다.

 

탈냉전시대 협상 파트너였연 헬무트 콜(오른쪽) 전 독일 총리와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2001년 9월 러시아 모스크바 근교 바르비카에 있는 옐친의 집에서 만나 옐친의 부인 나이나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반갑게 껴안고 있다. 바르비카/AP 연합

 

콜은 모스크바를 설득하기 위해 베이커의 온건한 의견을 따랐다. 그에 따라 “본질적으로 나토는 동독의 현 영토로 그 영역을 확장할 수 없다”고 약속했다. 이 얘기를 들은 고르바초프는 독일의 통일을 지지하기로 한다. 그날 밤 콜은 기쁨으로 잠을 이루지 못해 추운 붉은광장을 밤새 산책했다. 이 과정에 서면합의는 없었다.

 

부시 대통령은 격노했다. 2월24~25일 캠프데이비드 산장에서 이뤄진 콜과 회담에서 “빌어먹을! (냉전에서) 우리가 이기고 저들이 졌다. 소련이 패배의 아가리에서 벗어나 승리를 낚아채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부시는 이어 서독이 “두둑한 주머니”를 갖고 있으니, “소련이 (동독에서) 나가도록 매수하라”고 말했다. 부시는 ‘소련군이 철수한 뒤 통일 독일은 미군이 주둔하는 나토 회원국으로 남을 것’이라며 독일 통일에 소극적인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등을 달랬다.

 

독일 통일이 시작된데다 소련의 내정까지 불안해지며, 고르바초프는 무력해졌다. 콜은 1990년 7월부터 9월까지 철수하는 소련군에게 총 150억마르크를 제공했다. 또, 동독에 나토 군과 핵무기 배치를 제한한다는 체면치레용 약속도 했다. 이 모든 약속이 상호 신뢰에 기초한 구두 약속이었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나토 확장에 대한 서면으로 된 어떤 공식 보장도 받지 못한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중견 간부가 현지에서 지켜봤다. 그는 “어떻게 소련이 동유럽에서 지위를 잃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비탄하며 동독을 떠났다. 새로운 비극의 씨앗은 이렇게 싹트기 시작했다.

 

역사의 패자가 된 고르바초프는 2014년 러시아 언론 <리아 노보스티>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당시 베이커와 회담에서 “나토의 군사시설이 전진하지 못하고, 추가적인 군 병력이 독일 통일 뒤에도 동독 영토에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했다”고 말했다. 또 1999년 이후 많은 나라들이 나토 가입을 결정한 일들은 “1990년에 우리에게 했던 언명과 보장들의 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부시의 뒤를 이은 빌 클린턴 대통령은 애초 나토 확장에 신중한 자세였다. 소련과 국경을 마주한 나토 회원국인 노르웨이의 전례 따라 외국군과 핵무기 배치를 금지한 ‘스칸디나비아 모델’을 동유럽 국가나 옛 소련 국가들에 적용하려 했다. 그에 따라 ‘평화를 위한 동반자’(PfP) 프로그램을 1994년 만들어 이들 국가를 가입시켰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최근 소련 해체 뒤 경제난 때문에 택시 운전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2005년 모스크바 대통령 별장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태우고 1956년형 볼가를 운전해 보이던 때의 모습. AFP 연합뉴스

 

워싱턴의 매파들은 이런 조처는 러시아에게 나토 확장에 대한 비토권을 주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도 1차 체첸 내전을 강경 진압해 강경파들에게 좋은 명분을 제공했다. 워싱턴에서 ‘신봉쇄’라는 개념이 나왔고, 11월 중간선거에서 나토 확장을 공약으로 내 건 공화당이 승리했다. 결국 클린턴 대통령은 선거 직후인 12월 나토를 동유럽으로 확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반대하던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은 사임했다.

 

1999년 3월 마침내 폴란드·체코·헝가리가 나토에 가입했다. 한달 뒤인 4월 나토는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옛 소련 공화국에 속했던 나라를 포함한 9개국의 가입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11월 이스탄불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에서 옐친은 “미국은 유럽에 있지 않다. 유럽은 유럽인들이 처리하게 해야 한다”며 나토가 러시아에 근접하는 것을 강력히 비난했다. 그는 회담장을 나서며 푸틴이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은 집권 후 동진해 오는 나토 확장에 맞서기 위해 2008년 조지아 전쟁,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우크라이나 내전을 일으켰다. 푸틴은 지난 12월23일 연말 기자회견에서 “그들이 우리를 속였다. 단호하고, 뻔뻔하게 나토가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9일 “나토는 새로운 회원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고, 그럴 수 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나토 역시 누리집에서 이 문제에 대해 “나토 동맹은 만장일치로 결정을 하고 이 모든 것은 기록된다. 나토가 (확장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했다는 기록이 없다. 한 지도자가 개인적으로 한 장담이 동맹의 합의나 나토의 공식 조약을 대체할 순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의길 기자

  미국 전날 대사관 직원 가족 철수령…EU "똑같이 하지 않을 것"

"호주도 외교관 가족 철수 시작"…프랑스, 우크라 여행 자제 권고

 

'러시아 침공 우려' 속 대피호서 전선 살피는 우크라이나 군인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영국이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 직원 철수를 시작했다.

 

BBC는 24일 영국 외교관들에게 구체적으로 위협이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일단 약 절반이 영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관계자들이 전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외무부는 성명에서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은 계속 열어두고 필수 업무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고 스카이뉴스가 전했다.

 

스카이뉴스는 비필수 인력을 철수하고 대사관은 정상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전날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의 직원 가족에게 철수 명령을 내리고 비필수 인력은 자발적으로 출국해도 된다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는 "러시아의 군사행동 위협이 지속함에 따라 23일부로 미 정부가 직접 고용한 인력에 자발적 출국을 허용하고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소재 대사관 직원의 가족에 출국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우크라이나에 있는 모든 미국인에게 우크라이나를 떠나라고 권고했다.

 

미 국무부 당국자는 "이번 조치가 미국 대사관의 철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은 계속 운영될 예정"이라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지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미 국무부는 성명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겨냥한 상당한 규모의 군사 행동을 계획 중이라는 보도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와 함께 미 국무부는 이날 러시아를 여행 경보 최고 단계인 4단계(여행 금지) 국가로 재지정했다.

 

호주 매체 시드니모닝헤럴드에 따르면 호주 정부도 키예프 주재 자국 외교관 가족들의 철수를 시작했고, 우크라이나에 체류 중인 자국민에게 즉시 철수하도록 촉구했다.

 

호주 정부는 "현지 상황 때문에 영사서비스와 영사조력 제공 능력이 제한될 수 있다"고 밝히면서 우크라이나를 방문하지 말도록 자국민에게 당부했다.

 

우크라이나에는 현재 1천400명 정도의 호주인이 체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유럽연합(EU)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가 24일 EU는 현재로서는 우크라이나에서 외교관들의 가족을 철수시킬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AFP 통신이 전했다.

 

보렐 고위대표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회원국 외무장관 회의에 앞서 취재진에게 미국이 전날 우크라이나 주재 대사관 직원의 가족에게 철수 명령을 내린 것과 관련해 "우리는 똑같이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떠한 구체적인 이유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만 프랑스 외교부는 비필수적인 우크라이나 방문은 피하도록 자국민에게 권고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