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동 · 남 · 북 삼면 포위

서방은 폴란드·루마니아 등 우크라이나 접경국에 병력 증강

 

    러시아와 벨라루스군의 합동 군사훈련 [러시아 국방부 제공]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대치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는 가운데 양측 모두 우크라이나 접경에 군사력을 집결하고 있다.

 

서방 정보기관에 따르면 러시아는 크게 세 방향으로 우크라이나의 삼면을 포위하듯 약 13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배치한 상태다.

 

먼저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주(州)를 일컫는 돈바스 지역에는 러시아의 주력이 밀집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돈바스는 2014년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충돌한 '돈바스 전쟁'의 무대로, 현재도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이 일어나는 지역이다.

 

돈바스는 러시아계 주민이 많아 러시아 침공 시 주민의 저항이 상대적으로 덜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인 하르키우와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다.

 

    '우크라 사태' 속 흑해서 해상훈련 하는 러시아 전함들 [러시아 국방부 제공]

 

지난 2014년 러시아가 무력으로 병합한 크림반도와 인근 해역에는 해군 전력이 집결하고 있다.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은 러시아 흑해함대의 모항으로 러시아 해군은 지난 10일 북해함대와 발트함대에 속한 상륙한 6척을 세바스토폴에 입항시켰다.

 

러시아의 킬로급 디젤 잠수함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해 흑해로 향하는 것이 포착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북쪽 벨라루스에도 대규모 러시아군이 모여있다.

 

옛 소련에 함께 속했던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1990년대 말부터 '연합국가'(Union State) 창설을 추진하며 동맹 이상의 밀접한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약 3만 명의 러시아군은 지난 10일부터 우크라이나와 접한 벨라루스 남서부 브레스트와 도마노보, 폴란드·리투아니아 국경에 가까운 고슈스키 훈련장 연합 훈련을 하고 있다.

 

특히, 벨라루스-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까지는 최단 거리가 90㎞에 불과해 러시아가 벨라루스를 통해 침공할 경우 키예프 점령은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키예프와 벨라루스 사이 우크라이나 북부 지역은 습지대가 많고 겨울에 언 땅이 녹아 진흙탕이 되는 '라스푸티차' 현상이 발생해 기갑부대가 전진하기 어려운 지형이다.

 

실제로 러시아 원정에 나선 나폴레옹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도 이 지역을 돌파하느라 고전을 면치 못했고, 결국 패전의 한 원인이 됐다.

 

우크라이나의 병력은 26만 명 정도로 서방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러시아가 여러 방면에서 공격해올 경우 역부족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정예군은 돈바스 접경 지역에 밀집해 있는데 러시아가 북부와 남부에서 협공해올 경우 포위 섬멸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5일 미 당국자 2명을 인용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 필요한 전투력의 약 70%를 우크라이나 접경에 배치했다고 전했다.

 

이에 서방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최정예부대인 82공수사단의 병력 4천700명을 우크라이나와 접한 폴란드에 배치했다.

 

82공수사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됐으며, 지난해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지원을 위해 아프간에 긴급 배치된 부대이기도 하다.

 

    폴란드에 도착한 미 82공수사단 병사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은 또 독일에 주둔 중이던 2기병연대 소속 1천여 명의 병력을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마주한 루마니아로 전환 배치했다.

 

이들과는 별개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은 미군 8천500명에게 유럽 파병 비상대기 명령을 내렸다.

 

아울러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2억 달러(약 2천400억 원) 규모의 군사 원조를 승인했다.

 

이미 미국제 대전차 미사일인 재블린을 비롯해 탄약과 의료물품, 개량형 포탄, 무선통신 교란 장치 등이 우크라이나에 반입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행할 경우 미국이 동유럽에 순환 배치 병력을 추가 파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의 동맹인 서방 국가들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영국은 지난 7일 폴란드에 해병 350명을 파병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 전투기를, 흑해에 전함을 보내는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

 

라트비아·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은 우크라이나에 대전차·대공 미사일을 지원하기로 했으며, 체코도 우크라이나에 152㎜ 포탄을 제공하기로 했다.

 

덴마크와 스페인, 프랑스, 네덜란드도 이미 리투아니아, 루마니아 등에 선박과 전투기를 보내는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

 

주요 나토 회원국 가운데 독일은 '살상무기 수출금지'라는 원칙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지원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답하지 않고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방향을 전환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처럼 서방 국가들이 잇따라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지만, 병력 지원은 우크라이나 영토가 아닌 주변국에 집중되고 있다.

 

아직 나토에 가입하지 않은 우크라이나에 나토군을 배치할 경우 자칫 러시아를 자극해 사태를 더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은 지난 12일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판단하에 우크라이나에 머물던 미군 자문단 160명을 철수했다.

 

임박한 16일…우크라이나 위기 해소 5가지 해법은?

 민스크 협정 부활을 시작으로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대치를 통한 현상 굳히기도 가장 현실적 해법

 대치 장기화 속에서 긴장 완화하며 외교적 해법 추구

 

 13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시민이 우파 활동가들이 마련한 공개 군사 훈련에 참가하고 있다. 키예프/EPA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이르면 16일에 침공할 수 있다는 미국 정보당국의 평가까지 나오는 가운데 12일 열린 미-러 정상 간의 전화회담에서도 양쪽은 뚜렷한 접점을 찾진 못했다. 최고조로 치닫는 우크라이나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외교적 해법’ 도출이 가능할지 회의론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이 위기를 해소할 5가지 시나리오로 △병력 철수 등 긴장완화 조처를 통한 러시아의 양보 △나토-러시아의 새로운 안보협약 △우크라이나-러시아 사이의 ‘민스크 협정’ 재발효 △우크라이나 중립지대화 △대치를 통한 현상 굳히기 등 5가지를 지적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는 쉽지 않으며, 이런 외교적 해법들이 중층적으로 결합돼야만 위기 해소를 향해 한발짝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 시나리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양보다. 이번 위기 국면을 통해 러시아의 ‘안보 우려 사안’에 대해 미국 등이 충분히 인지했다고 판단하고 과감히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은 그동안 러시아에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금지 등을 확약할 순 없지만, 동유럽과 옛 소련 지역 내에서 진행되는 군사훈련이나 미사일·핵 배치 문제에 대해선 논의할 수 있다고 제안해 왔다. 푸틴 대통령이 군사적 긴장완화 조처를 통해 자신을 평화의 주창자로 자리매김하고는 미국과 이 문제를 논의하는 협상에 돌입할 수 있다. 미국은 러시아가 병력 철수 등 긴장완화 조처를 먼저 취해야만,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러시아 입장에서 볼 때 이 같은 양보는 푸틴 대통령이 결국 서구와 대결에서 ‘굴복했다’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줄 수 있다. 이를 피하려면, 형해화된 ‘민스크 협정’을 재발효하는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 2014년 초 우크라이나 내전이 시작된 뒤 러시아, 우크라이나, 프랑스, 독일 등 4개국이 체결한 민스크 협정은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있는 돈바스 등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고도의 자치를 보장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친러 분리주의 세력과의 직접 협상을 거부해 협정은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이 협정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위기 국면에서 적극적인 중재 외교에 나서고 있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민스크 협정이 “평화 구축으로 가는 유일한 경로”라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에 강경한 영국의 벤 월러스 국방장관도 민스크 협정 복원이 “긴장완화로 가는 강력한 길”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그동안 민스크 협정 복원에는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도, 이것이 러시아가 제기하는 핵심적 요구는 아니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나토와 러시아 사이의 새 안보협약 체결은 위기 해소를 위한 또다른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있다. 러시아와 미국 등은 나토 가입 문제를 놓고 타협점을 찾지 못하지만, 다른 안보 사안들에 대해서는 접점이 있다. 이미 미국이 논의를 제안한 미사일 배치와 관련해 합의가 이뤄지면, 러시아의 안보 우려를 상당 부분 덜어낼 수 있다. 나토 가입 문제는 서로의 원칙을 현상적으로 고수하는 선에서 타협하고, 다른 실질 사안들을 협의하는 협약을 체결하면, 러시아가 노리는 동유럽과 옛 소련 지역에 대한 ‘세력권’을 현실적으로 받는 결과가 된다.

 

더 나아가 우크라이나의 중립화 방안도 거론된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 당국자들은 푸틴-마크롱 회담에서 우크라이나가 2차 대전 뒤 중립화를 택한 핀란드를 모델로 채택할 수 있다는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가 중립화를 선언하면, 나토의 문호 개방 정책도 손상되지 않고,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등 서방화에 대한 우려를 달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이런 방안들은 어느 한쪽의 과감한 선제적 양보가 있어야 가능하다. 현재의 대치 국면을 살펴볼 때 쉽지 않은 결론이다. 결국, 10만명 넘는 러시아 병력이 우크라이나 전선에 전면 배치된 현재 상황이 그대로 굳어져 기정사실화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먼저 벨라루스에서 진행 중인 연합 군사훈련을 끝낸 러시아군은 그동안 언급해 온 대로 이 지역에선 철수한다. 그와 함께 군사 긴장은 점차 완화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접경 지대의 병력은 순환 배치를 통해 늘 임전태세로 유지된다. 또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러시아가 해 온 반군 지원 역시 지속한다. 이에 맞서 나토 역시 동유럽 내 나토 국가들에서 군사태세를 강화한다. 그 와중에 협상과 중재 역시 간헐적으로 지속된다. 하지만, 위기 상황이 일상화되며, 국제적인 관심이 줄어들고 우크라이나 전선은 동결된 분쟁으로 남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침공하지 않아야 한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옛 소련에 대한 자신들이 몫을 주장할 수 있고, 나토도 문호개방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불안한 공존’을 추구할 수 있다. 결국, 현재의 대치는 장기화되면서, 그 속에서 민스크 협정의 부활 등 을 타협책을 도출하려는 외교적 노력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의길 기자

 

우크라이나 외교관 ‘나토 가입 포기’ 시사 발언 파문

 

주영국 대사 나토 가입 정책 “유연할 수 있다”

헌법 개정하며 못 박은 우크라 대외 정책

파문 일자 “오해가 있었다” 한발 물러나

 

1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방문한 올라프 숄츠(왼쪽) 독일 총리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함께 서 있다. 키예프/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외교관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추진 정책을 재고할 수 있다고 내비쳐 파문이 일었다.

 

바딤 프리스타이코 주영국 대사는 14일 영국 <비비시>(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 추진 정책에 대해 “유연할 수 있다”며 “특히 지금처럼 위협당하고 협박당하고 있을 때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지금 나토 회원국이 아니고 전쟁을 피하기 위해 많은 양보를 할 수 있고 그게 지금 러시아와 대화하면서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2019년 개헌을 통해 헌법에 나토와 유럽연합(EU) 가입을 국가적 목표로 설정했을 정도이기 때문에, 그의 발언은 상당한 파장을 불렀다. 그는 나중에 나토 문제에 대해 오해가 있었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우크라이나가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양보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를 확약하라고 요구했던 러시아는 그의 발언을 환영하면서 우크라이나 정부의 공식적인 확인이 있어야 한다고 반응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우크라이나가 공식화된 형태로 나토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확약하면 러시아의 우려에 대한 의미 있는 반응이 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페스코프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프리스타이코 대사에게 인터뷰 발언에 대해 해명하라고 지시한 점을 지적하며 “우크라이나가 외교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했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국경 부근에 병력 10만여명을 배치하고 우크라이나와 접경한 벨라루스에도 연합 훈련 명목으로 3만여명의 병력을 파견해,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오른 상태다. 미국 <뉴욕 타임스>는 미국 정보관리들이 러시아군이 16일에 침공을 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지난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잇달아 방문했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14일 우크라이나 방문에 이어 15일에는 러시아로 향한다. 조기원 기자

FT, 프랑스 관리 말 인용해 보도

“새 군사 조처도 취하지 않기로”

 공동 기자회견에서 직접 언급은 없어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7일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러시아와 프랑스 정상회담에서 ‘벨라루스에 배치된 러시아 병력 철수’ 등 위기 종식을 위해 필요한 구체적 행동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7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모스크바에서 한 대면 회담에서 향후 새 군사 조처를 취하지 않고 벨라루스에 파견한 수천여명의 군 병력도 애초 예정된 훈련 뒤 철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프랑스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8일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이 이 언급을 이행하게 되면, 러시아가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접경 지대에 10만명 이상의 병력을 집결하면서 조성된 우크라이나 위기는 해결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 하지만 신문은 이 같은 조처를 취하는 대가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러시아에 지불해야 하는 대가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이에 대한 직접 언급은 없었다.

 

푸틴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은 7일 저녁 식사를 겸한 6시간의 장시간 회담을 하고, 자정을 넘겨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마크롱 대통령이 제시한 몇몇 제안은 현실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며 “수많은 그의 생각들과 제안들을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지만, 우리의 진전된 공동 조처들의 기초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미국과 나토가 러시아가 우려하는 핵심 안보 사안들을 여전히 간과하고 있다고 언급하는 것을 잊진 않았다. 푸틴 대통령은 “그들이 우리의 안보 사안들을 그냥 간과해버려, 마치 우리가 이런 질문들을 제기하지 않은 것 같은 인상”이라면서도 “이것이 대화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대답과 비전을 만들어서, 워싱턴과 브뤼셀에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도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향후 며칠간이 매우 중요하다”며 “쉽지는 않겠지만, 다 함께 결과를 얻어낼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8일엔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난 뒤 다시 푸틴 대통령과 전화 회담을 하기로 했다. 이날 회담은 지난해 11월 우크라이나 위기가 시작된 뒤 러시아와 서구 정상 사이에 이뤄진 첫 대면회담이다.

 

같은 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워싱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에 대한 두 나라의 “완벽한 단결”을 강조했다. 숄츠 총리는 회담 뒤 바이든 대통령과 기자회견에 나서 “미국 친구들에게 우리는 단결할 것이라는 점을 말해둔다. 우리는 모든 필요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독일은 완전히, 전적으로, 완벽하게 믿을 만하다”며 러시아에 대응하는 양국의 공조를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이 유력한 대러 제재 수단으로 내건 노르트스트림2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에 대해선 여전히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숄츠 총리는 러시아가 침공한다면 파이프라인의 “플러그를 뽑겠냐”는 미국 기자의 질문에 즉답을 피한 채 “우리(미·독)는 완벽하게 단결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조처들을 취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하는 데 그쳤다. 정의길 선임기자,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4일 단독 오찬에 개막식도 관람

정상들 참가 3분의 1 이하로 줄어

미 · 유럽 압박에 중·러 관계 격상

 

 2019년 6월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대화하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2008년 8월 중국 베이징 여름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중국을 찾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후진타오 당시 국가주석을 만나기 위해 무려 30분 동안 줄 서야 했다. 오찬도 단독이 아닌 다른 정상들과 함께 했다. 100명 가까운 다른 정상들과 다른 대우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을 만난 것 정도였다.

 

14년이 흐르고 베이징 겨울올림픽을 위해 다시 방문한 푸틴 대통령을 대하는 중국의 태도는 당시와는 사뭇 다르다. 시진핑 주석은 개막식이 열리는 4일 푸틴 대통령과 단독으로 회담하고, 에너지·금융·우주 등 15개 분야에 이르는 협정에 서명했다.

 

무엇이 바뀐 것일까. 가장 직접적인 변화는 개막식을 찾는 외국 정상들의 수가 급감했다는 점이다. <블룸버그> 통신 보도를 보면,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는 21개 국가 정상이 참석한다. 러시아를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카자흐스탄, 캄보디아, 아르헨티나 등이다. 한 지도자가 수십년 째 장기 집권을 하고 있거나 비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국가들이 적지 않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 주요 국가들에게 이번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을 요구한 탓에 세계 주요 7개국(G7) 정상 가운데 이번 올림픽에 참석하는 이는 없다. 14년 전 개막식에 미국, 프랑스, 한국 등 68개국 대통령·총리 등 정상들이 참석했던 것에 견주면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올 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전파력 높은 오미크론 변이도 정상들이 대화 참석을 꺼리는데 톡톡히 한 몫했다.

 

3일 미국 샌프란시코 금문교에서 시민들이 ‘베이징 겨울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AFP 연합뉴스

 

‘외교 보이콧’이라는 서방 국가들의 고의적 무관심 속에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밀착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베이징에 도착하기 하루 전인 3일 중국 국가통신사인 <신화통신>에 ‘러시아와 중국-미래를 내다보는 전략적 동반자’라는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푸틴 대통령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면서 포괄적 동반자 관계와 전략적 협력의 양국 관계는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효율성, 책임감, 미래에 대한 열망의 모델이 된 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이 강조한대로 두 나라는 2001년 ‘선린우호협력조약’를 맺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심화하고 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은 일본,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등 동맹국들과 함께 경제·군사적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고, 러시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앞세운 미국, 유럽 세력과 대결하고 있다. 이런 때일 수록 중-러가 일치 단결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세계 질서의 한축을 담당하는 다극 체제로 바꿔나가겠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냉전 시절 공산주의 진영에서 치열하게 갈등했던 ‘중·소 분쟁’은 이미 옛말이 됐고,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 등 민주주의 세력에 맞서는 ‘깐부 관계’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중국은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러시아를 편드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달 27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에게 “안전보장에 대한 러시아의 우려를 중시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고, 31일 열린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도 중국은 러시아의 입장을 대변하며 미국을 견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베이징/최현준 기자

 

시진핑·푸틴 “전략적 협력 심화”…미국 보란 듯 ‘밀착’

 

베이징올림픽 맞춰 정상회담

 

미·유럽 등 서방 압력에 맞서 새 국제체제 구축 논의한 듯

에너지분야 협력 서명여부 주목

 

 

미-중 전략 갈등이 격화되고 미·러가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두고 정면충돌로 치닫는 가운데 중·러 정상이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막에 맞춰 대면 회담을 열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국과 유럽 등을 한편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다른 한편으로 하는 대결을 의미하는 ‘신냉전’ 흐름이 더욱 강화되는 모양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이날 오후 베이징에 도착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두 정상은 열렬하고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중-러 관계와 국제 전략 안보와 관련한 중대한 사안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을 나눴다”고 전했다. 시 주석이 외국 정상과 대면 정상회담을 한 것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2년여 만에 처음이다.

 

이날 회담에서 두 정상은 양국 관계 심화와 새로운 국제체제 구축, 지속가능한 세계 발전 촉진 등을 의제로 미국과 유럽 등 서방에 맞서기 위한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냉전 종식 이후 지속된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를 깨뜨리고, 중·러가 세계 질서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다극 체제’를 구축하자는 의도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를 증명하듯 두 정상은 회담 직후 ‘새로운 시대 국제관계와 지속 가능한 세계 발전에 관한 중-러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양국은 이 성명에서 서로의 “핵심 이익, 국가 주권, 영토 보전을 지키기 위해 상호 지원하겠다”는 뜻을 다지며, 미국의 압박에 맞서 바짝 밀착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구체적으로 러시아는 중국이 집착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과 대만이 중국의 불가결한 일부라는 점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혔고, 중국은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확장에 반대한다”며 러시아의 손을 들어줬다. 시 주석은 앞선 회담에서도 “중·러는 복잡하고 변화된 국제정세에 맞서 전략적 협력을 심화하고, 국제 공평·정의를 위해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러-중 관계는 21세기 국제관계의 모델”이라며 “러-중 관계의 전략적 성격이 전례 없이 부각돼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양국 간 전면적인 전략적 협력 심화는 세계 전략안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화답했다.

 

향후 양국 협력에서 주목해 봐야 할 분야는 에너지 협력이다. 양국 정상은 지난해 12월14일 열린 화상 정상회담에서 몽골을 통해 중국 중부 일대에 한해 천연가스 500억㎥를 공급할 수 있는 ‘시베리아의 힘 2’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을 논의한 바 있다. 양국은 7년여 전인 2014년 5월에도 한해 380억㎥의 천연가스를 30년 동안 공급하기로 하는 4천억달러(약 473조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었다. 이후 헤이룽장성을 통해 중국 동부 일대로 천연가스를 들여오는 총연장 3천㎞에 이르는 ‘시베리아의 힘’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2019년 말 운영을 시작했다.

 

당시 양국이 파이프라인 건설에 전격 합의한 시점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합병한 지 불과 2개월 만이었다. 국제사회의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가 중국과의 초대형 계약을 통해 ‘활로’를 찾은 셈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가 다시 제재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양국이 두번째 파이프라인 건설 사업을 추진한다면, 미국 등이 예고한 고강도 제재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2019년 알바그다디 제거후 최대작전…알쿠라이시 급습 도중 가족과 자폭"

어린이·여성 포함 최소 13명 사망…시리아 북서부는 극단주의 반군 본거지

 

'이슬람국가(IS) 수괴' 알쿠라이시가 최후를 맞이한 시리아 이들립 주의 가옥= 미국 정부는 3일 오전 특수부대가 시리아 북서부에서 대테러작전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 작전을 통해 'IS 수괴' 알쿠라이시를 제거했다고 밝혔다. (이들립 AP=연합뉴스)

 

미국은 3일 새벽 시리아 북서부에서 미군 특수부대 작전을 통해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의 우두머리 아부 이브라힘 알하시미 알쿠라이시(46)를 제거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간밤에 나의 지시로 미군이 미국인과 우리 동맹을 보호하기 위한 대테러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의 기량과 용맹함 덕분에 알쿠라이시를 전쟁터에서 사라지게 했다"며 "모든 미국인은 작전에서 안전하게 귀환했다"고 말했다.

 

이번 대테러작전은 지난 2019년 10월 미군 특수부대가 당시 IS의 수괴였던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를 제거한 이후 최대 규모라는 평가가 나온다.

 

알쿠라이시는 알바그다디 사망 뒤 수괴 자리를 이어받은 인물로, 한때 미국에 억류된 적도 있다. 미 국무부는 그에게 1천만 달러(약 120억원)의 현상금을 걸었다.

 

미 고위 당국자는 알쿠라이시가 미 특수부대의 급습을 받자 스스로 폭탄을 터뜨려 부인들과 자녀들 등과 함께 폭사했다고 전했다. 알바그다디 역시 2019년 미국의 공격 도중 자폭했었다.

 

미 당국자는 알쿠라이시의 자폭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작전의 결과를 평가하고 있다"면서도 "알바그다디 제거 작전 때와 똑같이 비겁한 테러 전술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군 특수부대가 공격한 시리아 북서부 이들립 주의 한 가옥=미국 국방부는 3일 오전 특수부대가 시리아 북서부에서 대테러작전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작전 목표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시리아인권관측소는 이번 공격으로 적어도 12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이들립 AP=연합뉴스)

 

시리아 민방위단체인 '하얀 헬멧'은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해 최소 13명이 숨졌다고 전했다.

 

한 주민은 알쿠라이시가 11개월 전부터 이곳에서 부인과 자녀, 여동생 등과 함께 살았다고 진술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번 작전이 중동 지역을 관할하는 미 중부사령부에 의해 수행됐다고 밝혔다.

 

이번 작전은 IS 잔당이 지난달 21일 시리아 쿠르드자치정부가 관리하는 IS 포로수용소를 공격하는 등 재기를 모색하는 와중에 이뤄졌다.

 

IS 잔당은 약 열흘 간 약 3천 명의 IS 포로가 수용된 그화이란 수용소를 공격했으며 수용소를 관리하는 쿠르드족 120여 명이 사망했다.

 

이 공격은 2019년 3월 IS 패망 이후 최대 규모였으며, 미군은 그화이란 수용소에 장갑차를 비롯한 병력을 배치했다.

 

목격자들은 미 특수부대가 최소 3대의 헬기를 타고 와 한 2층짜리 가옥을 공격했고, 2시간 이상 동안 총기를 지닌 괴한들과 대치하며 충돌하는 와중에 폭발음도 들렸다고 전했다.

 

계속된 총격과 폭발은 터키 국경 인근에 시리아 내전 난민 캠프가 흩어져 있는 이곳 아트메흐 마을을 뒤흔들었다는 진술도 있다.

 

아울러 드론 공습이 이뤄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민간인의 이 지역 출입을 금지하는 확성기 소리를 들었다는 증언 역시 있다.

 

작전에 투입된 미군 헬기 1대는 기계적 문제가 생겨 지상에서 폭파시켜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의 공격 현장에 떨어진 탄피

 

시리아 북서부는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10년째 정부군에 맞서는 반군의 본거지로, 현재는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를 비롯한 극단주의 세력이 반군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특히 옛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의 후신인 하야트 타흐리흐 알샴(THS)은 북서부 반군 중 최대 파벌로 성장했다.

 

미국은 이 지역에서 알카에다와 연계 세력을 겨냥한 소탕 작전을 꾸준히 펼쳤다.

 

작년 10월에는 알카에다의 고위 지도자 압둘 하미드 알마타르를 드론을 이용해 사살했고, 12월에는 알카에다 연계조직의 고위급인 무사브 키난을 목표로 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