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영불해협에서 구조단체가 이주민들을 영국 해안으로 안내하고 있다. 던지니스/로이터 연합뉴스
프랑스 당국이 지난달 24일 영국과 프랑스 사이 해협에서 일어난 고무보트 침몰 사고로 숨진 이주민 27명 중 26명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검찰은 14일 신원이 확인된 26명 중 대다수는 이라크 쿠르드족(16명)이었고 아프가니스탄인(4명), 에티오피아인(3명), 소말리아인, 이란인, 이집트인 등이 포함돼 있었다고 밝혔다. 연령대로 보면, 7살 소녀와 16살 청소년도 사고에 휘말려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은 전했다. 이 참사는 2014년 관련 통계가 수집되기 시작한 뒤 영불해협에서 일어난 최악의 참사다. 사고 직후 프랑스 칼레시 시장은 ‘희생자 중에 임신부도 있었다’고 밝혔지만, 이번에 신원이 확인된 이들 중에 임신한 여성은 없었다.
레즈완 하산. <비비시> 누리집 갈무리
18살 레즈완 하산과 27살 아프라시아 모하메드는 이라크 북부에 위치한 라니아라는 이름의 같은 쿠르드족 마을 출신이었다. 하산의 조카는 영국 <비비시>(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목수였던 하산이 영국에서 더 나은 삶을 꿈꿨다고 말했다. 하산이 그에게 마지막으로 연락해온 것은 사고 당일 저녁이었다. 하산은 “영국에 도착해서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고, 가족들은 “집으로 돌아오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설사 죽음을 부를지라도” 영국에 가겠다고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로부터 불과 몇시간 뒤 하산은 목숨을 잃었다. 같은 마을 출신 모하메드의 유족도 고인이 “더 나은 삶을 위해 간다고 했다. 거기(영국)에는 인권이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유족은 “그것들(더 나은 삶과 인권)은 쿠르드족 지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프라시아 모하메드. <비비시> 누리집 갈무리
사고 직후 쿠르드 언론 등에서 약혼자를 찾아갔다가 숨진 24살 여성 등 희생자로 추정되는 이들의 이름과 사연 등을 보도한 바 있다. 이번 발표는 프랑스 당국이 20일 넘는 조사 끝에 희생자들의 신원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영불해협은 중동 출신 이주민들이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몰래 건너가는 통로로 유명하지만 변덕스러운 날씨, 찬 바다, 붐비는 해상교통 때문에 고무보트나 구명정 같은 작은 배로 건너기엔 위험하다. 지난달 사고 때 구조된 2명이 영국 언론들에 남긴 증언에 따르면, 고무보트에 33명이 타고 있었으며, 바다에 빠진 뒤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서로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구조대가 오지 않아 대부분 버티지 못하고 결국 손을 놓았다.
사고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서로 상대의 탓을 하기 바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영불해협 이주민 문제 해결을 위한 제안이라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소셜미디어에 올리자, 마크롱 대통령은 “정상들은 이런 사안에 관해 트위터나 공개편지로 소통하지 않는다”고 발끈했다. 조기원 기자
“(러시아와 중국이) 21세기 국가 간 협력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핵심적 이익을 지키려는 중국의 노력을 강하게 지지해줘서 감사하다.”(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15일 오후(중국 시각) 열린 화상 정상회담에서 서로에게 덕담을 건네는 훈훈한 분위기에서 회담을 시작했다. 미국이 지난 9~10일 중·러를 겨냥한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한 직후였기 때문에 두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그에 대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대만과 우크라이나라는 ‘두개의 전선’에서 미국에 맞서는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이날 오후 4시7분께 회담이 시작되자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며 친근감을 과시했다.
시 주석은 모두발언에서 “세계는 격동과 변혁의 시기로 접어들었지만, 중-러 관계는 시련을 견디며 그 생명력을 입증한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가 “국익을 지키기 위한 중국의 노력을 강력히 지지했으며, 양국 관계를 흔들려는 시도를 확고하게 반대했다”며 푸틴 대통령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중국은 상호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서로의 이익을 존중하는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만들었다”며 “양국 관계는 21세기 국가 간 협력의 진정한 모범”이라고 화답했다. 이어, “양국은 스포츠와 올림픽 운동을 정치화하려는 시도를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포함해 국제 스포츠 협력 분야에서 늘 서로 지지해왔다”며 “베이징겨울올림픽 개막식 참석에 앞서 (시 주석과) 회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담은 두 나라가 지난달 15일과 지난 7일 각각 미국과 정상회담을 한 뒤 열린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중국의 부상’과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라는 격변을 계기로 중-러는 중요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미국에 맞서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2019년 6월 정상회담 때는 미국의 ‘이란 핵협정’ 탈퇴, 지난 8월 말 전화 회담에선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사태에 대해 의견을 모으고 공동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이번 회담에선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대한 대응과 내년 초 ‘전쟁설’이 나오는 우크라이나 사태와 중국이 ‘핵심적 이익’으로 꼽는 대만 문제 등과 관련해 폭넓은 의견 교환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시 주석은 “최근 일부 세력이 ‘민주’와 ‘인권’을 내세워 중-러 양국 내정을 간섭하고, 국제법과 국제관계의 준칙을 난폭하게 짓밟고 있다”며 “중-러는 ‘다자주의’와 ‘규칙’의 탈을 쓴 패권적 행동과 냉전적 사고를 단호히 반대하기 위한 공동 대응에 더욱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도 “대만 문제에 대한 중국의 정당한 입장을 확고히 지지하며, 어떤 세력이든 대만 문제를 빌미로 중국의 이익을 해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할 것”이라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어떤 형태의 ‘작은 울타리’를 구성하는 것을 결연히 반대하며, 각국의 진정한 민주적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중국과 소통을 강화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관심사는 중·러가 대미 공조 방안을 놓고 구체적인 합의를 이뤄냈을지 여부다. 양국은 미국·북대서양조약기구가 전략무기 운용 훈련인 ‘글로벌 선더’를 실시한 직후인 지난달 23일, 화상으로 국방장관 회담을 열어 군사 협력 강화에 합의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중-러가 군사동맹에 다가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두 나라는 2001년 ‘선린우호 협력조약’을 맺었으며, 조약 체결 20주년을 맞은 지난 6월 이를 연장했다. 하지만 상호방위 의무를 지고 있는 동맹국은 아니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
러시아의 바실리 네벤지아 유엔대사가 1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서 기후변화를 국제 평화와 안보의 위협으로 규정하는 결의안에 대해 손을 들어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러시아가 1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기후변화를 국제 평화와 안보의 위협으로 규정한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결의안은 기후변화를 “충돌과 위기를 증폭하는 근본 원인”의 한 요인에 포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유엔 사무총장에게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가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한 방안 등에 대한 정례 보고를 요구하고 있다.
이날 결의안 표결에서는 유엔 안보리 회원 열다섯 나라 중 열두 나라가 찬성했으나, 러시아와 인도 두 나라가 반대표를 던졌고, 중국은 기권했다. 찬성이 압도적이었으나, 러시아가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 다섯 나라 중 하나여서 부결됐다.
결의안은 애초 지난해 독일이 제안했지만 정식 상정되지 못한 채 폐기됐던 것을 올해 안보리 의장국인 니제르와 아일랜드가 다시 공동으로 제안한 것이다. 결의안 채택 불발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단결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기후변화가 국가 간 갈등, 더 심하면 무력충돌의 잠재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유엔과 다른 국제기구에서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예컨대 말리와 니제르 등 아프리카 몇몇 곳에서는 기후변화로 가뭄과 사막화가 악화하면서 물과 식량, 농장, 목초지를 둘러싼 경쟁이 심각해졌으며, 이런 상황이 그 지역의 폭력 발생과 불안의 요인이 되고 있다.
러시아의 유엔대사 바실리 네베지아는 결의안에 대해 서구가 다른 나라 내부 문제의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이 될 것이라고 반대 이유를 밝혔다. 그는 “기후변화를 국제 안보의 위협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그들 나라의 뿌리 깊은 진정한 갈등 원인에서 시선을 돌리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도의 유엔대사 티 에스 티루무르티는 “인도는 기후 행동과 기후 정의에 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열심이지만, 안보리가 이들 문제를 다룰 장소는 아니다”며 기후 문제는 기존의 유엔기후변화협약에 맡겨 놓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엔 외교관들은 유엔 회원국 193개 나라 중 적어도 113개국이 결의안을 지지하고 있다며 러시아가 회원국의 전반적인 의사를 무시했다고 말했다. 미국의 유엔대사 린다 토머스-그린필드는 러시아가 “기후변화의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작고 실질적이고 필요한 조치를 막았다”고 비판했다. 결의안 제안국인 아일랜드의 제럴딘 바이언 네이선 유엔대사는 “이 결의안이 결정적인 시기에 역사적이고 중요한 움직임이었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며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에 “매우 실망했다”고 말했다.
유엔 안보리는 국제 안전과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개별 국가 등에 제재를 내리고 무력의 사용을 명령할 수 있는 유일한 유엔 기구이다. 결의안이 채택되면 유엔 안보리는 기후변화로 무력충돌 등이 발생한 나라에 개입할 수 있는 합법적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 박병수 기자
오스트레일리아(호주)를 국빈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스콧 모리슨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고, 케이(K)-9 자주포 수출 등 양국 방산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날 정상회담 뒤 호주 정부는 케이-9 자주포 생산업체인 한화디펜스와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호주는 케이-9 자주포 30문과 케이-10 탄약운반장갑차 15대를 구매할 예정이고, 금액은 1조 900억원으로 알려졌다. 호주와 계약하기 전까지 한국은 이 자주포를 6개국에 약 600여문(약 2조원 어치) 수출했다. 한국은 2001년 터키를 시작으로 폴란드(2014년), 인도(2017년), 핀란드(2017년), 노르웨이(2017년), 에스토니아(2018년)에 수출했다. 호주는 우리나라까지 합쳐 8번째 ‘케이-9 패밀리’가 됐다.
케이-9 호주 수출은 방산업계와 국방 당국이 10년 넘게 추진해온 사안이다. 2010년에도 케이-9 자주포가 호주 자주포 사업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가 호주가 갑자기 사업을 취소해 무산된 바 있다. 업계와 당국 입장에선 숙원을 해결한 ‘쾌거’이다.
사방이 바다라서 가까운데 적성국도 없는 호주가 왜 지상전 무기인 케이-9 자주포를 수입하는 걸까. 강은호 방위사업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케이-9 자주포는 현재 견인포 중심의 호주 육군의 화력 지원체계 운용 개념을 생존성 보장과 신속 타격 지원이 가능한 화력 지원 개념으로 발전시켜서 보다 입체적인 육군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구매 계약 체결 의미를 설명했다. 그런데 무기체계가 낯선 시민 입장에서 견인포, 자주포란 말부터 낯설다. 자주포와 탱크는 뭐가 다른 지도 헷갈린다.
국군 K2(흑표) 전차 모습. 국방부 누리집
먼저 자주포와 탱크는 얼핏보면 비슷하게 생겼다. 둘다 무한괘도를 바닥에 깔고 사방에 철갑 장갑을 두르고 위에 대포를 달았다. 하지만 둘은 임무와 설계가 전혀 다르다. 탱크는 최전선에서 적의 진지, 탱크 등을 조준 사격해 파괴하며, 전선을 빠르게 돌파해 적진을 무너뜨린다. 2차 대전 때 나치 독일 탱크들이 종심돌파 전격전으로 유럽을 일거에 휩쓸었다. 탱크는 최전선에서 싸워야 하므로 빠르고 민첩한 기동력과 적 탱크의 공격을 견딜 만큼 튼튼한 장갑을 갖춘다. 전차포의 유효 사거리는 3㎞ 안팎이다. 탱크는 기갑병과에서 운용한다.
자주포는 전선에서 수십 ㎞ 떨어진 후방에서 운용한다. 자주포는 전방에 대한 지원 사격이 주 임무라서 탱크보다 사거리가 휠씬 길다. 케이-9 자주포는 최대사거리가 40㎞이다. 자주포는 탱크처럼 목표를 정조준해 파괴하는 게 아니라 포탄을 여러 발 쏘아 파편으로 적에게 피해를 준다. 자주포는 적 전차의 포탄에도 견뎌야 하는 탱크보다 장갑의 방호력이 약하다. 케이-9 자주포는 중기관총 총탄과 포탄 파편에 견딜 정도의 장갑을 갖췄다. 자주포는 포병병과가 운용한다.
국군 트럭이 155mm 견인포를 끌고 가고 있다. 육군 페이스북 동영상 갈무리
자주포(self-propelled artillery · 自走砲)는 스스로 움직이는 대포란 뜻이다. 트럭 같은 차량에 끌려다니는 견인포와 견줘 생각하면 쉽다. 견인포는 적의 공격에 취약하다. 차량으로 대포를 끌고 이동해 차량을 떼어낸 뒤 포 진지를 구축해 사격 준비를 하는데 수 십분 이상이 걸린다. 견인포는 적에게 사격 준비 움직임이 포착되기 쉽고, 적 대포 공격이나 항공기 폭격을 받으면 속무무책이다. 견인포는 자주포와 달리 보호 장갑이 없어 적의 공격에 취약하다.
105mm 견인포 사격 장면. 육군 누리집 갈무리
자주포는 무한궤도와 엔진, 장갑, 대포를 갖추고 있어 원하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해 복잡한 절차없이 바로 포 사격을 할 수 있다. 1000마력 엔진을 단 케이-9 자주포는 최고 시속이 67㎞ 가량이다. 케이-9 자주포는 자동화 사격통제장비, 포탄 이송과 장전장치가 있어 급속발사시 15초 안에 포탄 3발을 발사할 수 있다. 분당 6~8발 사격이 가능하다.
자주포는 사격 뒤 1~2분 만에 원래 포격 위치에서 벗어나 다른 곳으로 달아나 다시 사격을 할 수 있다. 통상 적 포격을 받으면 대포병 레이더로 적 포탄의 궤도를 역추적해 적 포병의 사격 위치를 파악한 뒤 아군이 대포를 쏘아(대포병 공격) 적 포병을 섬멸한다. 자주포는 처음 사격 위치에서 재빨리 이동하는 ‘사격 후 신속한 진지변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포병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세계 각국은 자주포를 포병 주력으로 삼고 있다.
노르웨이는 2017년 케이-9 자주포 도입을 결정했다. 사진은 노르웨이 현지에서 시험평가 중인 K-9 자주포 모습. 한화디펜스 누리집
케이-9 자주포는 1989년 국내에서 연구를 시작해 1999년부터 국군이 본격 사용하고 있다. 케이-9 자주포는 구경 155㎜, 52구경이다. 1대 가격은 40~50억원 가량이다.
스톡홀롬국제평화연구소(SIPRI) 자료를 보면, 지난 2000~2017년 세계 자주포 수출 시장에서 케이-9 자주포가 절반 가량인 48%를 차지했다. 세계 최고의 자주포로 불리는 독일의 Pzh-2000 자주포보다 점유율이 높다. 케이-9 자주포 성능이 독일 자주포와 동등한데 가격은 20~40억원 가량 싸기 때문이다.
그동안 케이-9 자주포를 수입한 터키, 폴란드, 인도, 핀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는 지역 안보 위협이 높은 나라들이다. 폴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는 인접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직면해 있다. 이들은 러시아의 공격이나 위협을 받은 경험이 있다. 이들 나라는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러시아의 팽창정책으로 안보 위기감을 느껴 케이-9 자주포에 관심을 보였다. 터키는 쿠르드족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무장조직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을 최대 안보 위협으로 여기고 있다. 인도는 파키스탄, 중국과 분쟁 중이다. 인도는 지난 6월 중국과 국경 다툼을 벌이는 히말라야 라다크 동부지역에 케이-9 자주포를 배치한 바 있다.
지금까지 케이-9 자주포를 수입한 나라들은 지역 내 안보 위협이 높은 비서방 국가들이다. 국내 방산업계는 미국의 핵심 우방인 호주 수출을 계기로 서방권 국가에도 수출 확대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호주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캔버라 국회의사당 내 대위원회실에서 열린 한-호주 정상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정상들은 케이(K)-9 자주포 수출 등 양국 방산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캔버라/연합뉴스
호주는 왜 케이-9 자주포를 수입할까. 호주의 안보 여건은 앞서 케이-9 자주포를 수입한 6개국과 다르다. 사방이 바다인 섬나라이자 대륙인 호주는 주변에 뚜렷한 적성국이 없다. 호주의 목적은 중국 견제란 해석이 많다. 호주는 중국을 포위하는 4개국(미국·일본·호주·인도) 연합체인 쿼드와 중국 위협에 대응하는 오커스(미국·영국·호주 협의체)의 구성원이다. 모리슨 호주 총리는 지난 13일 양국 정상회담에서 오커스와 쿼드 등 중국 견제 협의체의 중요성을 부각했고, 양국 공동성명에는 미-중간 긴장이 높아가는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언급이 들어갔다.
호주의 2020 국방구조계획(2020 Force Structure Plan) 뼈대는 중국 부상에 대비해 호주의 아태지역 역내 안보 역할의 확대와 대응 능력 강화다. 호주는 군사력 증대가 지역 내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고 본다. 호주는 인도와 중국,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의 분쟁 사례를 반영해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정부는 지난해부터 10년간 국방에 2700억 호주 달러(약 230조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호주는 해공군뿐만 아니라 육군 능력도 키워 중국의 진출을 막으려고 한다. 호주 육군은 550억 호주달러(약 47조원)를 투입해 탱크, 자주포, 장갑차, 기동차량 및 미사일 등의 신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케이-9 자주포 구매는 이 일환이다.
호주 정부는 케이-9 자주포 완제품을 한국에서 수입하지 않고 현지에서 자주포를 생산·납품하려고 한다. 호주는 인구 20만명이 사는 질롱시에 자주포 생산시설을 건립할 예정이다. 질롱시에는 미국 포드 자동차 공장이 있었다. 2016년 포드가 철수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질롱 시민에게 스콧 모리슨 총리는 2019년 5월 ‘외국 자주포 공장을 유치하겠다’는 총선 공약을 내놓았다. 강은호 방위사업청장은 “질롱시를 한국의 창원처럼 군수혁신도시로 발전시키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권혁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