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새 역사 경험 KOSTA로”

오는 8월 캐나다 KOSTA 개최를 위한 제4차 청년연합 기도모임이 5월25일(금) 오후 7시30분부터 토론토 조이플교회(담임 최규영 목사) 에서 열린다.
KOSTA 스탭진과 부문별 청년사역자들이 참석해 가질 기도모임은 버팔로 대학 금요집회를 인도하는 버팔로 새 소망교회 김성찬 담임목사가 참석해 말씀을 전할 예정이다. 
‘영적 기드온의 300용사여 일어나라’(삿 7:7)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기도모임도 찬양과 말씀,중보기도 등 순으로 이어지며, 기도모임 후에는 KOSTA 전반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준비사항 들을 협의한다. 
앞서 지난 13일 주일 저녁에는 은평교회(담임 김은대 목사)에서 KOSTA 사역자 기도모임이 있었다. 이날 찬양과 말씀, 중보기도에 이어 참석자들은 김지연 총무(토론토 유학생선교회 대표) 인도로 올해 코스타의 개최준비 전반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회합에서 참석자들은 올해도 개회축제 공연, 찬양과 말씀, 간증과 기도가 있는 3번의 저녁집회, 그리고 깊이있는 주제 성경공부, 다양한 세미나, 워크샵, 전공별 멘토와의 만남, 조별 나눔과 싱글들의 축제, 부부세미나, 사역자 세미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교회별 모임과 Family Time도 고려하기로 했다. 또 강사선정과 섭외도 논의, 오는 27일 기도모임에서 주요 사항을 확정하기로 했다.
이날 말씀을 전한 최선순 목사(믿음 휄로쉽교회 담임)는 로마서 12장 1~2절을 본문으로 “이번 KOSTA가 과거의 경험과 습관으로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에 집중하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새 역사를 경험하게 되길 소망한다”고 격려했다. 
올해 제17회 코스타는 8월28일(화)부터 31일(금)까지 블루마운틴 리조트에서 ‘이웃을 섬기는 십자가 리더쉽’ (고후4:5)이라는 주제로 열린다.

< 문의: 416-227-1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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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자 칼럼] 돌아누운 민들레 꽃대

● 칼럼 2012. 5. 20. 05:45 Posted by SisaHan
읽던 책 한 권을 끼고 집을 나섰다. 커피숍까지 산책 삼아 걷고 있는데 산책길 옆의 잔디를 깎고 있어 멀리까지 풀냄새가 진동을 했다. 짧게 밀어버린 초록 잔디 군데군데에 용케도 살아남은 노란 민들레 꽃들이 한숨 돌리고 있었다. 기계가 지나가면 슬쩍 누운 척하다가 다시 일어서는 민들레의 생존 전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민들레 꽃이 올 봄에는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겨울이 춥지 않은 덕에 작년에 퍼뜨린 홀씨를 성공적으로 키워내어 의기양양해진 민들레가 지천으로 널려있었기 때문이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에도 천지를 노랗게 물들이며 꼬마 전등을 깔아놓은 것처럼 대지를 환하게 밝혀 한때 장관을 이루었었다. 노란 불이 꺼지면서 골프공만한 하얀 홀씨들이 줄기마다 하나씩 가뿐히 올라 앉아 있어 또 한동안은 세상이 온통 골프연습장 같았다. 그러다가 봄 바람이 지날 때면 스스로를 시들게 하던 삶의 무게를 털어내려는 듯 이미 가벼워진 몸에서 솜털마저 낱낱이 훑어내어 날려보내던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어제는 비가 내렸다. 한차례 지나가는 봄비치고는 우악스러운 소낙비가 쏟아졌다. 그러고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갠 하늘은 순수한 어린아이 눈동자처럼 맑았다. 산책길 좌우로 넓게 펼쳐진 잔디가 비에 씻긴 말끔한 얼굴로 햇빛을 받아 배시시 웃고 있었다.
 
문득 저게 뭘까 싶어 걸음을 멈추었다.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저것. 초록 잔디에 불그스름한 빨대를 빼곡하게 꽂아놓은 것 같은 저것들. 처음에는 그게 뭔지 언뜻 분간하지 못하다가 가까이 다가가서야 갑자기 쏟아진 소낙비로 졸지에 홀씨를 잃고 줄기만 앙상하게 꽂혀있는 민들레 꽃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오늘, 더 이상 버티고 살아있어야 할 의미를 지니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하얀 햇살을 받아 몸을 뒤튼 채 줄기들이 잔디에 아무렇게나 돌아누워있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저항하던 몸부림을 목격한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민들레 참상의 현장에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순간 나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하는 진지하고도 심각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홀씨를 널리 퍼뜨려야 하는 번식의 임무를 순리대로 마치지 못한 민들레가 생존의 의미를 잃고 저리 쓰러진 채 일어나지 못하듯, 사람 역시 어느 순간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면 생을 버리고 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키울 때까지는 자식이 생명줄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함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살아야 할 충분한 의미가 되어주고 부양의 의무를 마치기 전까지는 한눈 팔 겨를조차 없기 때문이다. 자식들을 성가시켜 떠나 보낸 후에는 아내나 남편이 기대고 있을 자신의 어깨를 치울 수 없다는 것이 존재의 구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배우자가 떠나고 혼자 남겨질 경우 나머지 생을 의연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삶의 버팀목이 될 무엇인가를 준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육신과 정신의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베갯머리에 묻어있는 꿈 조각을 붙들고 살기 보다는 의식을 확장 시켜 나갈 무엇인가가 필요하리라는 의미이다.
 
어찌됐든 가냘픈 몸피로 척박한 환경에서 불굴의 삶을 살아야 하는 생명이 어쩔 수 없이 지니게 된 강인한 생명력과 적응력은 놀랄만하다. 그러나 민들레 또한 한시적인 생명이거늘 예기치 못한 일로 순리를 거역하는 상황에서 담담할 수는 없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젖으면 자신도 젖는다는 이치를 미처 깨닫기도 전에 소낙비에 홀씨를 갑자기 잃어버린 그들, 만일 그들이 제 할 일을 순조롭게 마무리했다면 적어도 흙으로 돌아가는 순간에 저항하는 몸부림은 없지 않았을까. 
노랗게 익은 희망의 빛을 밝히며 생을 살아낸 민들레의 전성기를 추억하며 걷다가 햇빛을 받아 잠시나마 다시 꼿꼿하게 몸을 일으킨 줄기 몇 가닥에 마음이 잡힌다. 꺼지기 직전에 반짝 강한 빛을 발하는 촛불 같아서였을까.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협 회원, 한국 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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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민교육헌장이란 것을 제정하여 전국민에게 이를 암송시킨 적이 있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한국의 민주주의와 진보 운동은 저급한 권위주의에 저항하면서 탄생하고 성장하고 발전하였다. 박정희는 5.16 이후 군사정부를 끝으로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스스로 육군 소장에서 대장으로까지 진급을 시킨 뒤 군복을 벗고 대통령이 되었다.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로 언론의 자유를 박탈하고 국민을 체포·투옥한 독재 통치에 맞서서 학생들은 민주화를 요구하며 감옥으로 갔고,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항의하였다.
전두환과 노태우 정부로 이어진 권위주의 아래에서 다행히 노동운동과 사회민주화 운동은 더 강력한 시민사회의 연대를 이룩하고, 1987년의 6월항쟁을 거치며 한국 사회에 진보의 흐름을 확고히 세워 나갔다.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했던 한 나라가 기적처럼 경제성장을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 시민의 각성과 연대에 기반하여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디딘 한국의 진보운동과 민주화의 성취는 전세계에 자랑스럽게 내놓아도 좋을 훌륭한 자산이다. 그러한 역사의 성과 위에서 한국 진보운동은 발전해 왔고, 현재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민주주의와 평화의 완성, 그리고 국제사회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가치를 주도하는 역할을 해주길 염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최근 통합진보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거관리의 문제점과, 그에서 촉발된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무질서한 논란과 비민주적인 의사진행 방해 행위를 바라보면서 많은 뜻있는 국민들이 안타까움과 우려를 금하지 못하고 있다. 4.19 이후 수립된 장면 정부의 무능과 무질서, 그리고 혼란스러운 정치상황을 이유로 들어 박정희는 군사독재를 시작하였다. 경제성장과 반공을 내세우며 무려 18년에 걸친 비민주적 통치가 그로부터 이어졌음을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번 총선에서 상당한 국민의 지지를 받은 통합진보당이 역설적이게도 진보의 역사와 정당성을 한꺼번에 잃고 민주주의와 진보를 반대하는 세력들에게 영속적으로 그 자리를 내주지는 않을지 걱정을 하게 된다. 당내의 논의 과정에서 규약 등 내부 규정을 따지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민주주의와 진보의 대의를 위해 자신을 꽃잎처럼 내던지던 지난 시절 국민의 가슴을 감동시킨 그 아름다운 정신의 승리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6석은 커다란 이권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미래를 열어내는 진보의 힘은 그 의석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통합진보당의 당내 사정이 어떤 방식으로 귀결이 되든, 지난 수십년에 걸쳐서 우리 사회가 이루어온 자산과 성과를 싸안고 국민의 가슴속으로 다가가지 못한다면, 국민들이 그 모습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교육헌장의 강변과 달리 모든 개인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띤 것도 아니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이라고 무리하게 강제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민주주의는 오히려 다소는 느슨하고 불합리한 모습을 안아내고 그 속에서 스스로를 정화시켜 내는 능력이 있는 시스템이다. 사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진보운동은 80년대와 달리 새로운 운동문화를 발전시켜왔다. 민주주의를 더욱 성장·발전시키고, 경제적 정의와 평등을 더 진전시키기 위한 운동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그 방식이 과거와는 달라졌다. 이제 시민들과 함께 웃고 노래부르고 춤추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비장한 투신 대신에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고 대화하며 즐기는 속에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설계해 갈 수 있음을 촛불문화제가 보여주었고, 또 축제처럼 치러지는 몇 차례의 선거 속에서 우리 사회는 이를 확인했던 것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대중의 뜻을 잘 헤아리고 또 스스로를 낮추며 우리 시대가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볼 일이다. 시민과 함께 즐거이 웃고 울며, 더욱더 부드럽게, 그러나 스스로를 던지는 데서는 누구보다 과감한 새 정치와 문화를 만들어낼 때 비로소 새로운 희망이 시작되는 것 아닐까.

<백태웅 -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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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어제 대법관 후보 추천 접수를 마감함에 따라 후보 선정 작업이 본격화했다. 6월1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열리면 의견수렴과 검증작업을 거쳐 3배수 이상의 후보를 추려 대법원장에게 추천하게 된다. 7월10일 임기가 끝나는 박일환·김능환·전수안·안대희 대법관의 후임이니 모두 12명 정도의 후보를 추천해서 이 가운데 4명을 대법원장이 대통령에게 제청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현 대법원이 보수성향 대법관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제청권자인 대법원장과 후보추천위원들은 이번 기회에 이런 우려를 불식하지 않으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더 심각한 지경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 부분적으로나마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시도함으로써 법원 안팎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은 모두가 잘 아는 대로다. 참여연대가 당시 판례를 분석한 결과 전원합의체 판결 건수가 대폭 늘어나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권리 보호, 기본권 관련 사건에서 진보적 목소리를 담은 판결도 많이 나온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서울대 출신 보수성향 남성’ 위주의 과거식 인사로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여성인 박보영 대법관을 기용하는 등 일부 변화를 모색하긴 했으나 전체적인 다양화 기대에는 턱없이 못 미쳤다. 판결과 법원행정 면에서도 최근의 전교조 시국선언 전원합의체 유죄 판결이나 서기호 판사 재임용 탈락 등에서 보듯 보수적·권위적이란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다양화한다면서 출신 대학과 지역을 안배하는 식의 ‘무늬만 다양화’ 하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보수 일변도의 불균형을 깨고 보수와 진보를 안배하는 가치의 다양화가 이뤄져야 대법원이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노동·환경·여성 등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대법관도 필요하다. 또 내부에서 발탁하는 경우에도 사법시험 성적 꼬리표 그대로, 법원행정처에서 키워온 엘리트 판사 일변도의 인사는 지양해야 한다.
 
검찰 출신 인사를 1명씩 포함해온 관행에 대해서도 이제는 한번쯤 평가해봐야 한다. 모양 갖추기 수준에 불과한 것이라면 굳이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 외부 인사를 판검사 출신 중에서만 발탁해야 하는지도 마찬가지의 검토가 필요하다. 대법관후보추천위는 심사 과정과 기준을 공개하고 공청회 등 여론수렴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참여연대의 제안도 숙고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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