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내전 시위대 체포했던 전직 정보요원 징역형
‘국제법 반한 범죄’ 법률 적용해  보편적 관할권 행사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시위대 고문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정보기관 요원 에야드가 24일 독일 코블렌츠 법원에 출석해 종이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코블렌츠/로이터 연합뉴스

 

독일 법원이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시위대 고문’에 가담한 혐의로 전직 정보기관 요원에게 4년6개월형을 선고했다. 아사드 정부가 시리아 내전 과정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인류에 대한 범죄’ 혐의를 적용해 단죄한 첫 사례다.

독일 코블렌츠 법원은 24일 전직 시리아 정보기관 요원 ‘에야드’(44)에게 이 같은 형을 선고했다고 <도이체 벨레> 등이 전했다. 에야드는 지난 2011년 두마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자 최소 30명을 체포했고, 고문당할 줄 알면서도 붙잡힌 이들을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에 있는 비밀 감옥으로 보낸 혐의를 받았다. ‘251지사’라고 불린 이 감옥에 끌려간 이들은 채찍질과 전기고문 등 각종 고문을 당했다. 에야드는 2013년 시리아를 떠나 터키와 그리스에 있다가, 2018년 독일로 들어와 2019년 독일 당국에 체포됐다. 에야드는 24일 재판 때 “정권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나와 가족들이 죽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독일은 2002년 국제법에 반하는 범죄는 ‘보편적 관할권’을 행사해 처벌할 수 있다는 법률을 제정했다. 비슷한 법률은 영국과 캐나다, 스페인 등에도 있다. 독일 법원은 이를 근거로 독일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고, 독일인이 관련되지도 않은 이 사건을 단죄할 수 있었다. 국제사면위원회(국제앰네스티) 중동·북아프리카 부국장인 린 말루프는 “역사적 판결이다. 수만명의 시리아 고문 피해 생존자와 실종된 희생자에게 큰 승리”라며 “끔찍한 일에 책임이 있는 시리아 정부에도 정의는 구현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평가했다.

독일 법원에서는 또다른 역사적 판결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2019년 체포된 안와르(58)라는 인물의 재판이 오는 10월까지 열릴 예정이다. 에야드는 하위 직급이었지만 안와르는 ‘251지사’에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수감자 고문을 감독했던 상급자다. 안와르는 최소 수감자 4000명의 고문을 주도했고, 이 중 58명을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아사드 정권이 민주화 요구 시위를 유혈진압하며 시작됐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만 수십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기원 기자

 

바이든, 대선후보 시절엔 "대가 치르게 하겠다"  강경론과 배치

'동맹' 사우디와 관계 · 실권자 왕세자 위상 감안 고육지책 평가

 

2018년 10월 암살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미국은 26일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과 관련해 대(對) 사우디 제재 조처를 했다.

그러나 정작 미 정보당국이 2018년 10월 카슈끄지 암살을 승인했다고 판단한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제재대상에서 빠졌다. 그가 실권자인데다 사우디가 중동의 동맹이라는 현실과 타협한 고육지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사우디 정보국의 전직 부국장인 아흐메드 알아시리를 제재하고, 왕실경비대의 신속개입군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신속개입군은 왕세자 경호를 담당하는 조직으로, 카슈끄지 암살에도 개입했다는 것이 미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제재 대상이 되면 미국 내 보유 자산이 동결되고 미국 기업과 거래가 금지된다.

미 국무부는 76명의 사우디 시민권자에 대해 비자 발급 중지 조처를 발표했다.

이 조처는 국경을 넘어 언론인이나 반체제 인사를 대상으로 억압, 괴롭힘, 감시, 위협 등 행위를 한 국가를 겨냥해 국무부가 '카슈끄지 금지 규정'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이 도입한 정책이다.

국무부는 반체제 인사와 언론인을 감시하거나 괴롭히고 표적으로 삼는 사우디와 다른 나라의 행동을 매년 발간하는 인권보고서에 기록하는 작업도 시작하기로 했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이 조처는 카슈끄지 암살의 배후에 무함마드 왕세자가 있다는 정보당국의 보고서가 이날 공개된 데 따른 후속 작업이이기도 하다.

이 보고서는 왕세자가 카슈끄지 생포나 살해를 승인했다고 판단한다는 내용이 핵심이지만, 제재 명단에서 무함마드 왕세자는 빠졌다. 솜방망이 제재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더욱이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대선 기간 카슈끄지 암살이 왕세자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그들이 대가를 치르고 '버림받은 사람'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도높은 발언까지 했다.

카슈끄지 암살을 못 본척하며 왕세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차별화하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이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처럼 '앙꼬 빠진' 제재는 사우디와 관계, 왕세자의 위상이라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우디는 미국과 적대적이거나 껄끄러운 나라들이 많은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대표적인 동맹국이다. 중동의 대 테러전과 이란 견제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데, 국왕의 아들을 제재할 경우 양국관계의 경색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무함마드는 2017년 왕세자에 지명된 뒤 사우디를 실제로 다스리는 실권자로 통한다. 머지않아 공식 통치자로 등극할 인물을 내치는 결정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번 보고서를 공개한 국가정보국(DNI)의 애브릴 헤인스 국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보고서가 양국관계의 진전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미 당국자는 무함마드 제재는 너무 복잡한 문제이고 사우디에서 미국의 군사적 이익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며 선택지가 절대 아니었다고 말했다고 CNN방송은 보도했다. 국무부에 왕세자 제재 옵션을 검토하라는 지시가 없었다는 전언도 있다.

한 고위 당국자는 이번 보고서 내용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1년도 더 이전에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이라고까지 언급했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로선 보고서 전격 공개와 관련 인사 제재를 통해 사우디에 모종의 조처를 하고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양국 간 부정적 파장을 최소화하려는 타협을 했다고 볼 수 있다.

CNN은 대선 후보 시절에 비해 대통령이 된 뒤 더 복잡해지는 의사결정의 유형을 보여준 것이자, 휘발성 높은 지역에서 동맹과 결별하는 일의 어려움을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왕세자 직접 제재시 외교적 부담이 너무 크다고 판단한 것이라는 고위 당국자의 발언을 전하면서도 인권단체와 친정인 민주당 구성원들을 실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카슈끄지 보고서에 "스모킹건 없다" vs "왕세자 제재해야"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승인자로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지목하고도 그를 제재하지 않은 데 대해 엇갈린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친사우디 인사들은 미 국가정보국(DNI)의 보고서에 '스모킹건'(명백한 증거)이 없다며 반박하고 있지만, 인권단체는 암살을 승인한 왕세자를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워싱턴 소재 아라비아재단의 전직 이사장인 알리 시하비는 26일 로이터 통신에 "(카슈끄지 암살에 관해) 이전에 거론됐던 것들이 보고서에는 없다. 스모킹건은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 얇은 보고서는 무함마드 왕세자에 관한(그가 살해를 승인했다는)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우디 정부가 통제하는 미디어 그룹을 이끄는 칼럼니스트 압둘라흐만 알-라셰드도 "(암살 혐의를 받는) 팀이 카슈끄지 암살을 위해 여행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여기엔 스모킹건이 없다"고 동조했다.

사우디 정부 측이 왕세자의 암살 승인 주장을 전면 부인한 가운데 현지 최대 신문과 방송은 아직 카슈끄지 암살 보고서 내용을 보도하지 않고 있다.

다만 국영 알-아라비아 TV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취지로 보도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반면 인권단체들은 이번 정보 보고서 공개를 반기면서도 무함마드 왕세자를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슈끄지가 설립한 미국 소재 인권단체 '아랍 세계를 위한 민주주의(DAWN)는 "바이든 행정부의 투명성에 감사한다. 책임자인 사우디 왕세자에 대해 제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DNI는 4쪽 분량의 기밀 해제 보고서를 통해 "무함마드 왕세자가 카슈끄지 생포 또는 살해 작전을 승인했다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DNI는 평가의 근거로 ▲무함마드 왕세자의 사우디 내 의사 결정상의 지위 ▲왕세자 측근의 직접적인 개입 ▲반체제 인사를 침묵하게 하려는 왕세자의 폭력적 방법 지지 등을 꼽았다.

                  카슈끄지 암살에 관한 미 국가정보국(DNI) 보고서 표지 [연합뉴스]

2017년 이후 왕세자가 사우디의 안보 및 정보기관에 절대적 통제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의 승인 없이 사우디 관리들이 이런 작전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게 보고서의 주장이다.

또 보고서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아마도 카슈끄지 암살 임무에 실패했을 경우 측근들이 해고되거나 체포될 것을 두려워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 밖에도 DNI는 암살팀 15명 중에는 왕세자의 측근이 주도하는 사우디 연구·미디어센터(CSMARC) 소속 관리와 왕실 경비를 담당하는 신속대응군(RIF) 소속 경호원 7명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끝으로 카슈끄지 암살에 연루된 21명의 명단을 게시하고 "이들이 무함마드 왕세자와 관련이 있는 카슈끄지의 죽음에 참여하거나 명령을 받거나 공모했거나 책임이 있다고 확신한다"고 썼다.

 

유엔 보고관 "미국, '카슈끄지 암살승인' 왕세자 제재해야"

  

2018년 10월 암살된 사우디 출신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유엔 특별보고관은 26일 미국 정보 당국이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을 승인한 것으로 판단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제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녜스 칼라마르 유엔 즉결 처형에 관한 보고관은 트위터에 올린 성명에서 미국은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개인 자산은 물론, 그의 국제 업무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민사 소송과 관련한 면책 특권을 줘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 높였다.

아울러 사우디아라비아는 카슈끄지 시신이 터키 이스탄불 영사관에서 훼손됐는지, 또 어떻게 처리됐는지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미국 국가정보국(DNI)은 이날 무함마드 왕세자가 사우디 출신 반체제 언론인 카슈끄지의 살해를 승인했다고 평가하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국무부는 이와 관련해 사우디인 76명에 대한 비자 제한 조치를 발표했고 재무부도 제재에 나섰다.

그러나 정작 무함마드 왕세자는 제재 대상에서 빠졌다.

그가 실권자인데다 사우디가 중동의 동맹이라는 현실과 타협한 고육지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카슈끄지는 지난 2018년 10월 결혼 관련 서류를 받으러 이스탄불에 있는 사우디 총영사관에 갔다가 피살됐다. 그의 시신은 훼손된 뒤 버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바이든, 실권자 빈 살만 왕세자 배제,  살만 국왕과 통화
‘카슈끄지 사건 보고서’ 기밀 공개로  빈 살만 견제 시도
빈 살만 주도 ‘반이란 대외정책’ 저지, 중동 정책 재조정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 백악관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탈동조화에 들어갔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무조건적인 친사우디 정책을 조정하겠다는 의도다. 친사우디를 주축으로 하는 미국의 기존 중동정책뿐만 아니라 대외정책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곧 사우디의 살만 국왕과 통화를 할 예정이고, 이에 즈음해 미국은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에 대한 미국 정보당국의 보고서를 비밀해제해 공개할 방침이다. 이 보고서는 카슈끄지 살해에 사우디의 최고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직접적으로 공모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 같은 행보는 빈 살만 왕세자 및 그의 정책에 제동을 거는 의도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24일 “우리는 처음부터 사우디와의 관계를 재측정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며 “이 정부의 의도처럼 대통령의 의도는 사우디에 대한 우리의 개입을 재측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키 대변인은 “그 일환으로 (…) 대통령의 상대역은 살만 국왕”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이 빈 살만 왕세자를 상대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미 인권을 고리로 하여 사우디와의 관계를 재조정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사우디가 그 대가를 치러야 하며 버림받은 자들인 그들을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경한 발언을 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한 왕실 숙청이나 카슈끄지 살해 같은 반체제 인사 탄압을 비롯한 사우디의 인권 문제를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뜻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빈살만 왕세자

바이든 행정부가 사우디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와 사우디가 과도하게 밀착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위 재러드 쿠슈너 전 백악관 선임보좌관을 내세워 빈 살만 왕세자와의 직통 채널을 구축하고는 중동정책을 조율했다. 그 결과가 미국의 이란 핵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 일방 탈퇴 등 강경한 반이란 정책이었다. 또 트럼프 행정부는 사우디의 중동 정책을 일방적으로 지지해, 사우디가 개입한 예멘 내전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미 지난 1월 사우디의 예멘 내전 개입에 관련된 무기 및 다른 장비 판매를 중단하는 명령을 내리며, 미국의 예멘 내전 개입을 중단시켰다.

바이든 대통령과 살만 국왕의 전화통화에서는, 빈 살만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어떤 형식으로든 전달될 것으로 보인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주 <CNN>과의 회견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카슈끄지 살해 사건의 비밀보고서 해제에서 이 범죄에 관련된 개인들에게 책임을 묻는 “진전된 대답”을 동반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이미 카슈끄지 살해에 관련된 17명에게 제재를 가했다. 곧 공개될 보고서에는 살해팀이 빈 살만 왕세자의 측근에게 건 전화통화 내역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적 부담이 큰 탓에, 미국이 빈 살만을 실제로 제재할지는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빈 살만 제재보다는 사우디 국영기업이나 국부펀드의 미국 내 투자에 대한 제한을 예상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사우디 쪽은 바이든 대통령이 차기 국왕인 빈 살만을 고립시키려 하는지, 그를 왕위에서 낙마시키려고 시도하는지 당황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사키 대변인은 바이든이 후보 시절에 말한 ‘버림받은 자’라는 표현과 관련해 “나는 그의 우려들이나 견해들이 바뀌었다고 확실히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강경한 입장에 변함이 없음을 드러냈다.

미국이 빈 살만을 실질적인 국정 운영자로 상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유지한다면, 사우디 왕실의 권력투쟁이 점화될 수 있다. 빈 살만이 주도한 중동의 ‘반이란 전선’ 등 갈등요소를 완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데, 이는 바이든 행정부의 당면 과제인 이란 핵합의 복원과도 관련이 있다.

한편으로는 인권을 고리로 대중국 전선을 구축하려는 더 큰 그림의 전초 작업이기도 하다. 바이든 행정부는 신장위구르 지역 무슬림 탄압 등 중국의 인권 침해를 부각해 중국 견제 전선을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미국의 최대 동맹국 중 하나인 사우디에도 같은 잣대를 적용하면, 대중전선의 명분을 강화할 수 있다.   정의길 기자

경기 수원시 수원고등농림학교 학생 운동지를 항일독립운동지로 알리는 안내판. 경기도 제공

 

경기도가 3·1운동 102돌을 맞아 ‘친일기념물’ 161건에 친일 행적 안내판 설치에 나섰으나, 친일 인물의 후손 등은 “후손이 무슨 책임이 있냐”며 반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는 “2019년부터 지난해 4월까지 경기도 친일문화 잔재 조사 연구에서 친일기념물로 확인된 161건의 기념비와 송덕비에 친일 행적을 기록한 안내판을 설치하기로 했다”고 25일 밝혔다. 도는 이들 기념비 외에 친일 인물과 관련된 동상 등이 75건, 건축물 46건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경기도의 한 절에는 <친일인명사전>에 친일 문학가로 확인된 이광수의 추모비가 있고, 도내 한 대학에는 친일 작곡가로 분류된 홍난파의 흉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경기도는 우선 친일 인물의 기념비와 송덕비에 친일 행적 안내판을 세우기로 하고 해당 시·군에 설치 가능 여부를 문의했으나, 후손들의 반발 우려 등을 이유로 ‘설치 가능하다’고 한 곳은 16곳에 불과했다. 실제로 안내판 설치 추진이 알려지자, 친일 인물의 후손들은 ‘그분들 때문에 왜 후손이 고통을 받냐’, ‘후손들이 무슨 책임이 있느냐’는 등의 항의를 경기도에 쏟아냈다.

김도형 경기도 문화정책팀장은 “안내판 설치는 교육적으로 후세들에게 역사적 공과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라며 “올해 10개를 시범 설치하고 추가로 나머지 친일기념물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는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120곳에는 항일독립유적지 안내판을 세우기로 했다. 앞서 경기도는 친일 작곡가 이흥렬이 작곡한 <경기도가>를 폐지하고, 도민 참여로 새 경기도 노래를 만들어 지난 1월부터 쓰고 있다. 홍용덕 기자

감염 예방 효과에만 큰 관심 쏠려 있어
전파력 감소· 중증 예방 효과 과소평가

 

세계 코로나19 백신 접종 횟수가 2억회를 넘어섰다. 사진은 존슨앤존슨(얀센) 백신.

 

지난해 12월8일 세계 첫 코로나19 백신 접종 이후 지금까지 80여개국에서 2억회가 넘는 백신 접종이 이뤄졌다. 긴급사용 승인을 받은 백신이 9가지로 늘어나면서 백신별 효능 차이를 둘러싼 공방이 뜨겁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선 아스트라제네카백신이 남아공 변이 바이러스에 대해 감염 예방률이 매우 낮다는 이유로 접종을 중단하는 일도 벌어졌다.

실제로 가장 먼저 사용 승인을 받은 화이자 백신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임상시험에서 드러난 효능에서 큰 차이가 난다. 화이자 백신은 95%,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62%다. 여기서 말하는 효과는 감염을 예방하는 능력을 나타낸다. 그러나 백신에는 감염 예방 효과만 있는 건 아니다. 주목해서 봐야 할 두 가지 효과가 더 있다.

 2월21일 현재 나라별 코로나19 백신 접종 현황(인구 100명당 접종 횟수)

하나는 감염되더라도 다른 사람에 대한 전파력을 낮춰주는 효과다. 백신이 바이러스 전파력을 얼마나 차단하는지에 대해서는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아직 정확히 규명되지는 않은 상태다. 다만 최근 인구 대비 백신 접종률이 50%를 넘어선 이스라엘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 연구가 나왔다. 이스라엘 테크니온공대 연구진이 2월6일 온라인 사전출판논문집 `메드아카이브'에 발표한 연구 논문을 보면, 화이자 백신을 맞은 뒤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인 사람들의 바이러스 양을 분석한 결과, 1차 접종 후 12~28일 사이에 감염된 사람의 경우 바이러스 양이 4분의1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바이러스 감소는 전파 속도를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표본 수가 1200명으로 적어, 효과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백신을 접종했다 하더라도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 수칙은 철저히 지킬 것을 권고한다.

다른 하나는 감염되더라도 증상을 경미하게 해주는 효과다. 감염 예방력에 큰 차이를 드러낸 화이자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중증 예방력에선 모두 매우 좋은 효과를 보이고 있다. 이는 백신을 맞은 뒤 코로나19에 감염되라도 중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뜻한다. 이는 연쇄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전파력을 떨어뜨리는 효과로 이어진다.

                아시시 자 박사의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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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가지 백신 임상 데이터 비교 표가 말하는 것

 

미국 브라운대의 아시시 자(Ashish K. Jha) 공중보건대학장은 완벽하게 감염을 차단해주는 백신이 없는 현실에선 이 효과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지난 1일 자신의 트위터에 여러 백신의 임상 시험 데이터를 비교한 표를 올렸다.

당시 트위터에서 큰 주목을 끈 이 표는 모더나와 화이자, 노바백스, 아스트라제네카, 존슨앤존슨(얀센) 백신의 임상시험 데이터를 비교한 것이다. 하지만 감염 예방 효과가 아니라 백신 접종 후 감염 사례에 관한 것이다. 표의 수치들은 5가지 백신 임상시험 접종자들한테서 입원자나 사망자, 부작용 사망자가 전혀 나오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감염 예방력에선 차이가 나지만 중증을 막는 데선 모두 뛰어난 효과를 냈다는 얘기다. 자 교수는 트윗을 통해 "나는 여러 백신과 그 효능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각각의 임상시험 결과는 각각 서로 다른 효능을 보여준다. 그러나 어떤 숫자가 중요한가, 어떤 숫자를 들여다 봐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2월19일 국제 의학학술지 `랜싯'에 발표된 아스트라제네카백신의 1~2회 접종 투여 간격 결정을 위한 새로운 임상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트윗에서도, 백신 접종자 중 입원 환자와 사망자가 전혀 없다는 데이터를 강조했다.

2020년 12월8일 세계 처음으로 코로나19 백신 주사를 맞는 영국의 90세 노인. 비비시 방송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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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예방 효과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이유

 

그런데 이런 효과는 왜 크게 주목받지 못할까? 당연한 얘기일 수 있지만 임상시험의 초점이 감염 예방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모든 임상시험은 사전에 일차적으로 시험을 어느 단계에서 종료할지 정해 놓는다. 인터넷 미디어 `복스'에 따르면 백신 임상시험의 경우 1차적 임상 종점은 대체로 코로나19 감염 증상이 나타나는 때다. 일부에선 양성 반응 여부를 종점으로 삼기도 한다. 발생 빈도가 드문 입원이나 사망 사례를 종점으로 설정해 임상 연구를 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코로나19의 치명률은 1% 안팎인데, 사망을 임상 종점으로 설정해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임상시험 참가자를 모집해야 한다. 수만명이 아닌 수십만명이 필요할 수 있다. 시험을 진행하는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따라서 대부분의 임상 연구는 감염 예방 비율에 초점을 맞춘다. 임상 연구 논문들에 입원과 사망에 관한 데이터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보조 데이터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중단한 남아공의 경우에도, 표본 수가 적은 한계는 있지만 접종자 중에 중증 환자나 입원 치료자가 없다는 점은 주목받지 못했다. 이달 초 미국식품의약국에 긴급승인 신청을 한 존슨앤존슨 백신의 경우도 지난달 말 발표된 임상시험의 감염 예방 효과는 66%로 화이자, 모더나 백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다. 그러나 4만4천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데이터에는 접종 28일이 지난 시점까지 단 한 명의 입원 치료자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또 다른 데이터도 있다. 백신이 코로나19 증상을 훨씬 더 약화시킨 것이다. 존슨앤존슨 백신은 단발 접종 백신이다.

임상시험이 아닌 실제 접종 사례에서도 비슷한 데이터가 나오고 있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접종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경우 1월말 현재 접종자 중 입원자는 16명(0.002%)이며 사망자도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모든 관심이 감염 예방 효과에만 쏠려 있다 보니 중증 예방 효과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아시시 자 교수는 "우리는 흔히 최고의 효능에만 초점을 맞추고 백신이 중증을 막아주는 것에 대해선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백신이 감염을 중단시키는 것보다 중증을 막아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신의 1차 방벽(감염 예방) 효과뿐 아니라 2차 방벽(중증 예방) 효과에도 주목하자는 얘기다.    곽노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