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회복·사법개혁 선후 선택의 문제 아냐

대법관 증원 소폭에 순차적으로 하면 실패

대법원 전문법원화로 전원합의제 부담 해소
대법원장의 헌법재판관 3인 지명권 없애야

법원 판결도 헌법소원 대상에 넣어야 마땅
좌고우면 말고 국민 믿고 조속히 완수해야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임기를 시작함에 따라 사법부는 물론 수사기관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4일 대법관수를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사진은 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왼쪽)과 대검찰청 모습. 2025.6.5. 연합
 

1. 사법개혁의 필요성

 

최근 대법관 증원 내용을 담은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를 통과했다. 대법관 증원을 필두로 민주당이 정권 초기부터 사법부 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모양새다. 사실 그동안 학계에서 제기된 시급한 사법개혁 주장에 대하여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은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사법제도가 국민들의 기본권과 민생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일련의 내란사태와 사법쿠데타를 겪고 나서야 사법개혁에 눈을 돌리게 됐다. 최근의 사법 사태가 사법개혁의 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기회에 사법부가 명실상부 헌법정신에 따라 기득권 세력과 권력 집단이 아닌 국민에 대한 충복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사법개혁의 방안은 광범위하다. 그동안 국민 위에 군림해 온 사법부의 문제점이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헌법개정이 요구되는 것들과 법률개정만으로 가능한 것들이 있다. 사법개혁은 대법원 및 각급 법원뿐 아니라, 헌법재판 제도의 개혁과도 연결돼 있다. 여기서는 사법개혁 방안 가운데 비교적 손쉽게 개혁할 수 있는 몇 가지에 대해 살펴 보기로 한다.

 

2. 사법개혁의 구체적 방안

 

2-1. 대법관의 증원과 전문 법원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민들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법부 내부, 특히 대법원의 내부 구성과 심리 과정 등에 대해 알게 되면서 매우 놀랐다. 믿었던 최고법원의 심리와 운영절차가 그토록 부실하고, 1년에 대법원에 상고되는 사건 수가 약 4만 건에 이르고 대법관 한 명이 처리해야 하는 사건이 3000건이 넘는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사실 대법관은 물론 재판연구관도 사건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는다. 그럴 의지도 없고, 그럴 여건도 되지 않는다. 가끔 전관예우에 따라 전임 대법관이 변호인으로 제기한 사건 또는 특별히 사회의 이목을 끄는 사건에 대해서만 약간의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법원의 심리절차에 따르면 모든 사건은 일단 대법관의 업무를 보조하는 재판연구관에게 배정된다. 연구관이 사건을 검토하고 심리불속행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 보고서 표지에 ‘심리불속행’이라 표기해 주심대법관에게 보고한다. 이후 사건의 처리는 검토 연구관의 의견대로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법관들이 제대로 사건을 읽어보지도 못하는 구조란 이야기다. 실제로 대법원은 민사본안 상고심 사건의 약 70%, 행정본안과 특허본안 사건의 72% 이상을 본안 심리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심리불속행을 통해 종결하고 있다. 이처럼 대법원의 심리와 판결이 지극히 부실하고 불공정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국민이 공정하고 신속하게 재판 받을 권리가 실질적으로 침해된다. 한마디로 강자에게는 친절하고, 약자에게는 군림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사법부가 약자 보호와 정의 실현을 위한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구호가 실현되는 전당이 돼버렸다. 이는 결국 사법부 전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으로 이어진다.

 

이 문제의 비교적 손쉬운 해결책은 대법관 수의 획기적 증원과 대법원의 전문 법원화다. 이는 필연적으로 하급법원의 전문 법원화를 초래한다. 그런데 그동안 대법원은 과도한 업무부담에 시달린다고 호소하면서도 수십년간 대법관의 증원을 결사 반대해 왔다. 대법원 권위 수호와 전관 예우에 대한 고려, 그리고 왜곡된 엘리트주의와 집단이기주의 때문이다. 한마디로 소수 귀족으로서의 희귀성과 돈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 법체계인 대륙법계의 모국인 독일은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사건 관할별로 5개의 전문법원으로 분할되어 있다. 민·형사 사건을 담당하는 연방통상법원, 연방행정법원, 연방재정법원, 연방노동법원, 연방사회법원 등이다. 대법관 수는 모두 약 320명 정도이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담당 전문의가 확보되어 있는 종합병원처럼 각각의 사건의 내용에 따라 관할하는 각각의 전문 법원이 하급법원부터 대법원까지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효율적인 심리가 가능하도록 충분한 대법관들이 배치돼 있다.

 

대륙법계의 또다른 대표국가인 프랑스는 우리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법원으로, 민·형사 사건을 관할하는 최고법원인 파기원과 행정사건을 관할하는 최고법원인 국사원으로 구성돼 있다. 법관은 파기원에 약 200명, 국사원에 약 230명이 근무하고 있다. 모두 전문성과 대법관 수에 있어서 우리와 비교가 안된다. 우리 대법원은 이러한 사실을 결코 언급하지 않는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지난 1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재판정에 착석해 있다. 2025.5.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
 

대법관 증원과 관련해 국회 법사위는 최근 법안심사 1소위를 열어 김용민·장경태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심사한 뒤 ‘위원회 대안’으로 통과시켰다. 현재 14명인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되, 법 시행을 1년 유예한 뒤 이후 매년 4명씩 16명을 증원한다는 내용이다. (당초 김용민 의원은 대법관을 현행 14명에서 30명으로 늘리는 개정안을, 장경태 의원은 대법관을 100명으로 늘리는 개정안을 각각 발의한 바 있다.) 대법관을 30명으로, 그것도 순차적으로 늘리는 개정안은 너무 약소해서 개혁 효과가 있을지 지극히 의문이다.

 

이 정도의 소폭 개정안에 대해서도 예상했던대로 국민의힘과 일부 법조계가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도 “공론의 장이 마련되길 희망한다”며 정치권 주도의 제도 추진에 우회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지난달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재판 지연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법원 수만 증원한다면 오히려 모든 사건이 ‘상고화’돼 재판 확정이 더더욱 늦어질 것”이라며 “결국 전원합의체가 사실상 마비돼버리기 때문에 충실한 심리를 통한 권리 구제 기능 또한 마비될 수밖에 없다”고 반대 의사를 피력했다. 이처럼 대법원은 대법관 증원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은 이러한 저항에 부딪히자 일단 전체 회의 처리 등 후속 절차를 보류한 상황이다. 임기 초반부터 입법 독주 양상이 펼쳐진다면 여론의 역풍을 부를 수 있다는 신중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법관 증원은 대법원의 기능 활성화와 더불어 오히려 사법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위해서 불가피하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도 없다. 반대 논리로 내세우는 전원합의체 마비 우려와 관련하여 전원합의체 자체가 대법원에서 자주 개최되는 것도 아니고, 전원합의체로 가는 사건 자체도 극소수다. 참고로 2023년 전원합의체로 간 사건은 총 9건으로, 전체 상고사건의 0.02%에 불과했다. 따라서 거의 모든 사건을 4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소부에서 해결하고 있는 현실에서 전원합의체 기능 마비를 대법관 증원의 반대 사유로 드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또한 헌법재판소를 별도로 설치하지 않은 미국 등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독일처럼 헌법재판소를 별도로 설치한 만큼, 대법원은 헌재처럼 ‘정책결정’의 역할보다 ‘권리구제’의 역할에 중점을 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대법원이 대법관 증원과 더불어 전문 법원화되어 분할된다면 전원합의체 개최의 문제는 아예 발생되지 않는다. 설사 전문 법원화가 실현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대법관 증원과 더불어 현재 4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의 각 부를 대폭 증원된 전문 관할별 부(예컨대 민사부, 형사부, 행정부, 조세부, 노동부, 특허부, 군사부 등)로 확대 개편해 각 부별로 전원합의체를 개최하면 된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수가 9인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대법관 증원에 반대하는 견해도 있다. 미국의 사법시스템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국가적 구조로 인해 민형사 사건 등 일반 사건은 대부분 주 차원에서 그리고 하급심에서 해결된다. 아울러 미국에는 헌법재판소가 없기 때문에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헌법 사건을 담당하는 사실상 헌재의 역할 내지 ‘정책결정’의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의 대법원을 미국의 연방대법원에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다.

 

결국 대법원의 업무과중을 해소하고 대법원의 최고법원으로서의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대법관 수의 획기적 증원이 필수적이다. 장기적으로는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를 참고해 인구수에 비례한 대법관 수로 대폭 증원해야 한다. 아울러 재판의 질적 향상과 전문성 강화를 위해서는 대법원의 전문 법원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물론 독일의 경우처럼 필연적으로 하급법원의 전문 법원화를 수반한다. 대법관 수의 증원은 법원조직법의 개정만으로 가능하지만, 대법원의 전문 법원화는 헌법개정 사항이다.

 

사법부의 공정성과 중립성 및 독립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다양성을 반영하도록 대법관 구성도 다양화해야 한다. 획일적 배경을 가진 소수 엘리트 출신 대법관만으로 구성된 현재의 대법원은 약자의 어려움 등 다양한 사회 현실을 이해하기 어렵고, 국민의 상식과 법 감정에 상응하는 재판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강한 정치적 편향성을 갖는 구조적 취약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법원의 구성이 특정 학벌과 출신, 특정 직역과 성향에 치우치지 않도록, 지역·성별·법조 경력 등의 다양성을 반영한 인선 기준을 제도화해서 판결이 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관점을 반영할 수 있도록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재판을 하는 사법부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결국 사법부가 특정 정권이나 기득권층의 하수인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한다.

 

참고로 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지난 5월 2일 대법관의 3분의 1 이상을 판검사 외에 변호사, 법학교수도 지원이 가능하게 하고, 대법관후보추천위원을 현행 10명에서 15명으로 늘리고, 법조직역 출신이 전체 위원 구성의 반수를 넘지 않도록 하며, 여성 위원을 최소 4명 이상이 되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정문. 연합뉴스 자료사진

 

2-2. 법원의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허용

 

헌법소원제도는 위헌적인 공권력 행사에 의하여 기본권을 침해당한 개인이 기본권의 구제를 위하여 헌법재판소에 제기하는 아주 유용한 심판제도이다. 원칙적으로 모든 공권력 작용, 즉 입법, 행정, 사법 작용 모두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법원의 재판도 공권력의 행사의 일종이기 때문에 헌법을 위반하여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해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헌재 판례에 의하여 인정된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 이외에는 원칙적으로 대법원을 비롯한 법원의 모든 재판은 헌법소원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위헌적인 법원의 판결로 부당하게 기본권을 침해받은 국민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 마침 민주당 정진욱 의원은 지난 5월 7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는 사유에 ‘법원의 재판’을 추가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본래 헌법소원은 공권력 작용 중에서도 사법(재판)작용을 통제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우리가 모델로 삼고 있는 헌법소원제도의 모국인 독일이 그렇다. 독일은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전체 헌법소원 사건의 약 90%이다. 한마디로 헌법소원의 본령은 법원의 재판을 대상으로 하는 재판소원이다. 이와는 달리 우리는 헌법재판소법 제정 당시 법원의 재판을 제외했다. 대법원의 기득권과 권위 의식 내지 자존심 때문이다. 즉 재판소원이 인정된다면 대법원이 실질적으로 헌재 밑으로 들어간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실제로 세간에 알려지기는 대법관들이 헌법상 동급인 헌법재판관들을 한 수 아래로 본다. 자신들이 내린 판결이 다시 헌재의 통제 대상이 된다는 것을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위를 훼손하는 참을 수 없는 수치로 본다. 이는 헌재와 대법원의 위상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재판에 대한 헌법적 통제와 국민 기본권의 효율적 보장이라는 헌법 실현의 문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일으킨 사법사태에서도 보듯이 대법원의 위헌적 판결에 대해 대한민국에서 헌법적으로 통제하고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 미국처럼 헌재가 없다면 모르되, 독일제도를 도입해 최후의 헌법수호기관으로 헌재를 설치한 이상 대법원 등 법원의 재판도 최종적으로는 헌재에 의한 헌법적 통제를 받도록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라고 헌재를 만든 것이다. 사법 사태를 계기로 필자를 비롯한 헌법학자들의 강력한 주장에 드디어 국회가 주목하게 됐다. 만시지탄이지만 이번 정부 국회는 조속한 시일내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간단하다. 이는 법률개정만으로 가능하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부분을 삭제하면 된다.

 

한편 재판소원을 허용하게 되면 그만큼 헌재의 사건이 늘어나기 때문에 헌재 재판관의 소폭 증원이 바람직하다. 재판관 증원은 헌법개정사항이다. 참고로 독일의 경우 연방헌법재판소는 2개 부(Senat)로 구성되고, 재판관은 각각 8명씩 총 16명이다.

 

2-3. 대법관·헌재 재판관 선출 방식개혁 / 대법원장의 헌법재판관 3명 지명권 폐지

 

최근 대통령 권한대행들의 헌법재판관 지명 또는 임명 거부 사태에서 보듯, 헌재 재판관의 지명과 임명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헌법상 대법원과 헌재, 대법원장과 헌재 소장은 정확히 동급이다. 그런데 헌법 제111조 제3항에 따라 헌재 재판관 중 3인을 대법원장이 지명한다. 반대로 헌재 소장은 대법관 지명권이 없다. 이는 말이 안 되는 것으로 헌법상의 체계정당성에 위반된다. 법률심을 담당하는 대법원에 비해 법률보다 상위의 최고법인 헌법심을 담당하는 헌재의 위상이 법리상으로는 독일처럼 대법원 위에 위치해야 하는데, 대법원장의 헌재 재판관 지명권 때문에 오히려 헌재가 대법원 밑으로 들어갔다. 현행 헌법의 체계를 고려한다면 대법원장의 재판관 지명권에 대응해 헌재 소장도 일정 수의 대법관을 지명하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과 헌재가 큰 틀에서 동일한 사법기관이라는 점, 양 기관의 민주적 정당성이 모두 취약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법원장의 헌재 재판관 지명권과 마찬가지로 헌재소장의 대법관 지명권도 헌법정신에 반한다. 따라서 대법원장의 재판관 지명권을 폐지하는 것이 맞다.

 

독일의 경우를 참고해 헌재 재판관과 대법관을 모두 국회에서, 또는 국회와 관계 부처 장관 등으로 구성되는 법관선출위원회에서 선출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이 대법원과 헌재 구성의 다양성과 전문성 및 취약한 민주적 정당성을 보완할 수 있다. 이는 국회를 국민의 제1 대의기관으로 정한 헌법정신과 의회주의에도 부합된다.

 

2-4. 국민참여재판의 확대

 

국민의 형사재판참여란 일반 국민이 배심원으로서 일정한 형사재판에 참여하는 제도를 말한다.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하여 마련됐다. 2007년에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2008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국민의 형사재판참여제도는 일정한 형사재판에 국민들이 참여함으로써 재판에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이로써 재판의 공정성, 객관성, 투명성, 신뢰성을 제고하는 기능을 가진다. 직업 법관만의 재판이 자칫 폐쇄적이고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져 관료화·보수화되거나, 이념적·정치적 편향의 위험성을 다소나마 해소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법관들의 일방적이고 균형을 상실할 수 있는 재판의 진행과 결과를 국민이 간접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현행 제도는 그 대상과 절차 등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그 대상을 대폭 확대하고, 소송당사자의 효율적인 공격과 방어가 가능하도록 절차를 대폭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다소나마 사법권에 대한 소송당사자와 국민에 의한 통제가 가능해지고, 법원 판결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강화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2-5. 법원의 판결문 공개 확대

 

법원의 판결문 공개가 보다 확대돼야 한다. 물론 판결문 공개가 매우 제한적이었던 과거보다는 최근 상당히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사법부는 ‘종합법률정보시스템’과 ‘판결서 인터넷 열람 제도’를 통해 인터넷으로 판결문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판결문의 공개 범위와 판결문에 대한 접근성에 상당한 제한이 존재하고, 판결서 열람 서비스 이용에 제약이 많다.

 

헌법 제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을 원칙상 공개하도록 규정하면서,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안녕질서를 방해하거나 선량한 풍속을 해할 염려가 있을 때는 법원의 결정으로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아놨다. 원칙적으로 모든 판결문은 공개하되, 다만 국가안전보장 등 공익적 이유에서만 예외적으로 비공개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원칙과 예외가 뒤바뀌었다. 해외 법치 선진국들은 대체로 헌법정신에 따라 판결문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예외적으로만 비공개로 한다.

 

법원의 판결문은 이처럼 헌법상,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당연히 공개해야 되는 것이지, 법원의 재량으로 제한될 수 없다. 또한 재판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하고, 법 집행 과정에서의 부패와 권력의 남용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 절실히 요구된다. 자신이 내린 판결이 당사자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공개된다면 그만큼 법관들이 심혈을 기울여 헌법과 법률 및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또한 결과적으로 전관예우의 폐해도 다소나마 방지할 수 있다. 아울러 당사자가 재판에서 방어권을 행사하는 데 필요한 기본 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다. 물론 판결문의 공개 확대로 관계자의 사생활 비밀 침해나 기타 기본권의 침해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비실명 처리 등 얼마든지 절차적·기술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한편 오늘날 AI 시대를 맞아 법률서비스 시장의 발전 추세에 걸맞는 데이터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라도 판결문 공개 확대는 필수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미국과 유럽, 심지어 중국도 판결문 공개를 전면적으로 확대하며 데이터베이스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결국 효율적인 사법 통제와 사법의 민주화를 위하여, 판결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판결문의 원칙적 전면 공개는 필수이다.

 

3. 결어

 

이런 최소한의 사법개혁은 조속히 실시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근본적으로는 사법개혁을 정권의 명운을 걸고 해야 한다. 법률개정만으로 가능한 것을 시행하고, 헌법개정의 기회가 있을 때 대법원과 각급법원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 아울러 헌재 역시 재판관의 자격과 구성 방법 및 관할권과 관련한 다양한 개혁을 해야 한다. 또한 대법원과 헌재와의 위상이 재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법조인 교육제도와 선발 문제 및 법원, 검찰, 변호사 상호 간의 관계의 재정립, 그리고 전관예우 근절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개혁은 새 정부 초기에 전격적으로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와 민생 등 먹고 사는 문제가 급하니 실생활에 관계되는 문제부터 먼저 해결하고 사법개혁 등은 추후에 논의하자고 한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첫째, 민생문제와 사법 및 검찰개혁 문제는 상호 배타적이거나 선택적인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병행 가능하다. 실제로 사법 및 검찰개혁 없이는 다른 분야에서의 개혁도 불가능하거나 어렵다. 아울러 사법 및 검찰개혁은 행정부가 별도의 노력과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문제도 아니다. 즉 국회는 이미 만들어진 법안을 통과시키고, 대통령이 법안을 즉각 공포하면 된다. 나머지는 예산을 추가해서 각 기관에서 추진하면 된다.

 

둘째, 만일 새 정부 초기에 개혁을 못하면 시기를 놓칠 수 있다. 당장 내년에 지방선거가 닥치고, 동시에 개헌 문제가 필연적으로 대두될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문재인 정부가 그랬듯이 사법 및 검찰개혁 문제는 뒤로 미루게 되고, 22대 국회의원선거가 닥치게 되면 개혁은 물 건너갈 수 있다. 더욱이 비례대표제를 강화하고, 많은 비판을 받는 이른바 위성정당의 설립이 금지되는 방향으로 공직선거법이 개정된다면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이 나오기 어렵게 되고, 따라서 현재의 국회 의석 구도가 무너지게 된다. 그러면 당연히 개혁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번 대선을 통해 민주당은 행정부와 국회의 권력을 함께 갖게 되었다.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누구도 예상 못한 윤석열의 계엄선포라는 패착이 이런 전혀 뜻밖의 기회를 제공했다. 한마디로 민주주의가 전면적으로 기사회생할 기회를 잡았다. 이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 만일 사법개혁이 성공한다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완전히 민주·호헌 세력이 장악하게 된다. 정부수립 이후 최초로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국가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셈이다. 국가권력이 명실상부하게 국민을 위한 공복이 된다.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도 강조했던 검찰개혁이 사실은 오히려 검찰 개악이 됐다. 최대 치적으로 내세웠던 공수처의 설치도 최근의 사태에서 보듯이 처음부터 제대로 기능할 없는 공수처법을 제정한 결과 무능 공수처로 전락했다. 정말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문재인 정부의 실책이 윤석열이라는 괴물 검찰공화국을 탄생시킨 원인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한 우를 다시는 범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정 초기에 사법 및 검찰개혁을 전격적으로 단행해야 한다. 어차피 개혁에 대한 야당과 법조계의 극심한 저항은 상수다. 돌파해야 한다. 좌고우면하면 안된다. 그 시기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는다. 천추의 한을 남겨서는 안된다. 이재명 정부는 국민주권정부 아닌가. 국민이 원한다. 국민만을 보고 가라.  < 정연주 기자 >

 

4일 청원이 공개된 지 닷새 만에 역대 두 번째로 많은 동의

 
이준석 개혁신당 대통령 후보가 5월26일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
 

전국에 생방송되는 대선 후보 티브이(TV) 토론에서 ‘여성 신체에 대한 폭력 묘사' 발언을 해 논란이 된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을 제명하라는 국민청원이 47만명을 돌파, 50만명도 곧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9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누리집을 보면, ‘이준석 의원의 의원직 제명에 관한 청원’은 이날 자정 기준 47만5,436명의 동의를 얻었다. 지난 4일 청원이 공개된 지 닷새 만에 역대 두 번째로 많은 동의를 얻은 것이다. 국민동의청원 누리집은 이날 접속자가 몰리며 한때 접속이 지연되기도 했다.

 

이 의원 제명 청원 동의자 수가 빠르게 늘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와 내란죄 수사를 위한 특검법 제정 촉구에 관한 청원’(40만287명 동의)은 3위로 밀려났다. 역대 최다 동의를 얻은 청원도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에 관한 것인데 12·3 내란사태 전인 지난해 7월 올라온 것이다. ‘헌법과 법률을 유린한 국민의힘 정당 해산에 관한 청원’은 35만5507명의 동의를 얻어 역대 네 번째로 동의가 많은 청원에 이름을 올렸다.

 

청원에 대한 국회의 심사가 이뤄지기 위해선 30일 이내 5만명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 의원 제명 청원은 공개 하루 만에 심사 요건을 충족했다. 다만 연휴 등의 여파로 심사는 아직 시작되지 않은 상태다.

 

국회 사무처가 조만간 청원 내용을 심사할 소관 위원회를 결정하면, 해당 위원회가 청원을 심사해 본회의 부의 여부를 정하게 된다. 국회의원 제명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국민동의청원으로 국회의원이 제명된 전례는 아직까지 없다.

 

앞서 이 의원은 지난달 27일 대선 후보 3차 티브이 토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가족에 대한 검증을 명분으로 내세워, 이재명 후보 아들이 인터넷 게시판에 쓴 혐오 표현을 왜곡 인용한 내용으로 질문해 논란이 됐다.

 

청원인 임아무개씨는 “이 의원은 모든 주권자 시민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상대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여성의 신체에 대한 폭력을 묘사하는 언어 성폭력을 저질렀다”며 “이 의원의 행태는 주권자 시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국회의원의 품위를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행위”라며 청원 이유를 밝혔다.   < 심우삼 기자 >

 

"한미일 협력 틀 안에서 위기 대응 노력"

 

"성숙한 한일 관계 만들어 나가자"…직접 만나 심도있는 대화키로

이 대통령 "상호 국익 관점에서 상생할 수 있는 방향 모색"


이재명 대통령, 일본 총리와 통화=이재명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2025.6.9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재명 대통령은 9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취임 후 첫 전화 통화를 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한일 정상이 이날 정오부터 약 25분간 통화를 했다면서 "이 대통령은 이시바 총리의 대통령 취임 축하에 사의를 표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통화에서 오늘날의 전략적 환경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이 더욱 증대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한일 양국이 상호 국익의 관점에서 미래의 도전과제에 같이 대응하고 상생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언급을 했다고 강 대변인은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양 정상은 상호존중과 신뢰, 책임 있는 자세를 바탕으로 보다 견고하고 성숙한 한일관계를 만들어 나가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이어 "특히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은 올해 양국 국민들 간 활발한 교류 흐름에 주목하면서, 당국 간 의사소통도 더욱 강화해 나가자고 했다"고 밝혔다.

 

강 대변인은 "또한 양 정상은 그간 한미일 협력의 성과를 평가하고 앞으로도 한미일 협력의 틀 안에서 다양한 지정학적 위기에 대응해 나가기 위한 노력을 더해 나가자고 했다"고 덧붙였다.

 

양 정상은 이후 직접 만나서 한일관계 발전 방향을 비롯한 상호 관심사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고 강 대변인은 설명했다.       < 임형섭 황윤기 기자 >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이어 외국 정상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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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9일 첫 전화 통화를 했다고 교도통신이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외무성 간부에 따르면 양국 정상은 이번 전화 회담에서 양국이 긴밀하게 협력할 것을 확인했다.

 

지난 4일 취임한 이 대통령은 지난 6일 해외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앞서 이시바 총리는 지난 4일 이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한국 민주주의 결과로 한국 국민의 선택에 경의를 표한다"며 "일본은 정말로 한국과 흉금을 터놓고 민간을 포함해 적극적으로 교류해 연결고리를 강하게 하고자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한일 협력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해 왔으며 작년 12월 탄핵 정국 이후에는 "현 전략 환경하에서 양국 관계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 연합 경수현 기자 >

 

하버드대와 싸우는 트럼프, 현대판 ‘분서갱유’

● WORLD 2025. 6. 9. 12:1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미국을 최강국으로 만든 ‘소프트 파워 기반 해체’

계급·문화전쟁- 배경에 MAGA의 반엘리트 주의
또 한 가지는 정권이 적대시하는 ‘좌파 워크’

‘탈미국’ 움직임 속에 커지는 두뇌 유출 위험
연구자 75%가 미국 떠날 생각. ‘미국 오겠다’ 25% 줄어
정권 비판자들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 주목적

 

코끼리(미국 공화당)의 거대한 발에 짓밟힐 위기에 놓인 플라스크(연구비) 이미지. 트럼프 정권의 하버드대 등 명문대들에 대한 지원 중단과 통제 강화로 인한 미국 대학의 자유롭고 안정적인 학문연구체제 붕괴 위기를 상징하는 그림.     이코노미스트 5월 21일  

 

"사관에게 진의 책이 아닌 것은 모두 태우고, 박사관의 것을 제외하고 천하에 감히 보관하고 있는 시(詩), 서(書), 제자백가의 글들은 지방관에게 보내 모두 태우게 하십시오. 또 두 사람 이상이 모여 감히 시, 서를 이야기하면 저잣거리에서 처형해 조리를 돌리고, 옛날을 가지고 지금을 비판하는 자는 멸족시키십시오." <사기> 진시황 본기 중에서(나무위키)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주민 학살에 반대하는 유학생들의 시위’를 빌미 삼아 하버드대학 등 미국 명문대들을 겨냥해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대대적인 학문 및 사상 탄압은 기원전 213~212년에 책을 불태우고 학자들을 생매장했다는 진 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떠올리게 한다. 이미 많은 학생들과 연구자들이 ‘아이비 리그’의 명문대를 비롯한 대학들에서 쫓겨나거나 미국을 떠나 해외로 일자리를 옮겨가고 있다.

 

트럼프 정권은 법원의 금지명령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에 대한 연방정부 지원금을 끊고 유학 비자를 취소하거나 신규 발급을 중단하고 있다. 정권에 비판적인 자유주의적 진보 세력과 그 사상을 말살하려는 트럼프 정권의 대학 공격이 미국을 최강국으로 키운 ‘소프트 파워’의 토대를 스스로 무너뜨릴 것이라는 우려와 비판이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대학을 정권에 적대적인 기관으로 규정하고 공격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J.D. 밴스 부통령 등 ‘트럼프주의자’들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올해 1월 20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에 나란히 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J. D. 밴스 부통령.   아사히신문 6월 6일

 

지원기관 “당신의 연구사업은 종료됐다” 통고

 

하버드대학 공중보건대학원(School of Public Health)에서 환경질병학을 가르치던 마크 와이스코프 교수(59)는 지난 5일 대학 당국으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연방기관의 통지에 따라 당신의 연구사업은 종료됐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지원 중단을 통고받은 대학 당국이, 아무런 이유도 설명도 없이 보낸 그 메일 통지문에는 “종료한다”는 사업들이 열거된 액셀 파일이 첨부돼 있었다. 10여 명이 함께 일하던 그의 연구실은 연방정부 지원금이 끊어지면서 생존위기에 몰렸다.

 

트럼프 정부가 지난 3월 말에 하버드대학에 “다년간에 걸친 87억 달러의 지원금” 재검토 방침을 알려 왔을 때에도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진행 중인 연구는 ‘유해금속이 건강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장기간 연구 프로젝트여서, 트럼프 정권이 문제시하는 인종이나 젠더 등과 관련한 DEI(다양성·공정성·포용성) 이니셔티브나, 정권이 부정적으로 보는 바이러스 백신 연구와도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산이었다.(<아사히신문> 6월 6일)

 

미국 엘리트 고등교육과 그것을 지배하는 진보적 지식인들과 사상에 대한 트럼프 정권의 혐오와 적대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트럼프 정권은 지금 국가권력을 동원해, 얼마전 타계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명예고수가 얘기한 미국의 최대강점, 즉 ‘소프트 파워’의 기반인 미국 명문대의 존립토대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2023년 또는 그 이후 정부기관 및 대학들의 과학연구비의 각국별 비교. 단위 10억 달러(구매력평가 ppp기준). 위로부터 중국 EU 27국, 미국(옅은 주홍색은 2026년도 예산안에서 삭감될 부분), 일본, 영국, 한국, 캐나다 순. 미국은 CDC(질병통제예방센터), DOE(에너지부), EPA(환경보호청), NASA(항공우주국), NIH(국립보건원), NIST(국립표준기술연구소), NOAA(국립해양대기청), NSF(국립과학재단), USGS(지질조사국)의 연구비 총합. 중국과 EU보다 적은데, 2026년 예산안대로 삭감되면 더욱 줄어든다.    이코노미스트 5월 21일

 

미국 노스웨스턴대 떠나 런던 정경대로 이직

 

독일인 마티아스 되프케는 199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원에 들어갔다. “미국에 오면 전적으로 환영받고 지역사회의 일원이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30여년 전에는 그랬다. 2012년에 그는 일리노이 주 노스웨스턴대학에서 경제학 교수가 됐고 2014년에는 미국에 귀화했다.

하지만 올해 4월 되프케 박사는 노스웨스턴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 교수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그 이유였다. “선거가 치러진 뒤 우리가 미국에 남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과학계에 대한 연구비 지원을 중단하고, 연구자 비자를 취소했으며, 미국 최대연구기금 지원기관의 예산 대폭 삭감계획을 발표하며 학계와의 ‘과학전쟁’을 예고했다.

 

연구자 75%가 미국 떠날 생각. ‘미국 오겠다’ 25% 줄어

 

올해 첫 3개월 동안 미국에 기반을 둔 연구자들이 다른 나라에서 일자리를 구하겠다고 지원한 사람이 2024년 같은 기간에 비해 32% 늘었다. 지난 3월 <네이처>는 미국 연구기관 소속 연구자 12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5%가 미국을 떠날 생각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대신 미국 연구직을 지원한 비미국인 지원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약 25% 줄었다.(<이코노미스트> 5월 21일)

 

024년 예산 대비 대폭 삭감된 2026년 예산안. NSF(국립과학재단), NIH(국립보건원), NASA(미국2024년 예산 대비 대폭 삭감된 2026년 예산안. NSF(국립과학재단), NIH(국립보건원), NASA(항공우주국), NOAA(해양대기청) 등 주요 연방 지원기관 예산들이 대폭 삭감됐다. 단위 10억 달러.  이코노미스트 

 

내년 예산 연구비 삭감으로 8만 명 이상 실직할 수도

 

미국이 매력을 잃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재정, 또는 재정 부족의 그림자다. 트럼프 정권은 취임한 1월 이후 수천 건의 연구 보조금을 취소했다. 웹사이트 ‘그랜트 워치’에 따르면, 지금까지 적어도 25억 달러 규모의 연구 보조금이 취소돼 연구원들이 급여를 받지 못하고 연구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앞으로 더 많은 예산이 취소될 수 있다. 백악관의 2026년 예산안은 과학 지출을 대폭 삭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 최대 생물의학 연구기금인 NIH는 거의 40%에 달하는 예산 삭감에 직면해 있다. 또 다른 주요 연방기금인 NSF는 무려 52%의 예산을 삭감당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예산 삭감은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상하원을 공화당이 지배하고 있는 의회에서 이 예산안이 통과될 경우, 8만 명 이상의 연구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렇게 될 경우 미국의 학술과학연구 지원금은 중국이나 유럽연합(EU)보다 상당히 부족한 상태가 될 것이다.(<이코노미스트> 5월 21일)

 

“지금 미국서 벌어지는 일, 나치 독일과 유사성”

 

런던정경대학으로 옮겨간 되프케 교수는 나치 독일이 유대인 교수를 해고하고, 아카데미아(학문 예술계)를 장악한 사실을 떠올리며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방향성이나 특징 중 몇 가지는 (나치 독일) 당시의 사건과 유사성이 있다”고 했다.

 

예일대학 교수였던 매시 쇼어와 남편인 티머시 스나이더(모두 역사학)는 올해 봄 캐나다의 토론토대학으로 옮겨갔다. “남편은 결코 도망가는 부류의 인간이 아니지만, 나와 아이들 때문에 토론토로 가는데 동의해 주었다”고 매시 교수는 말했다.(<일본경제신문> 5월 28일)

 

제이슨 스탠리 예일대 교수(철학)도 토론토대로 이적했다. 조지아대의 팀 퀴글리 교수(경영학)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소(IMD)로 옮겼다.

 

5월 30일 쵤영된 하버드대 교문 주변 모습.  아사히신문 6월 6일

 

연구자금 동결로 커지는 두뇌유출 위험

 

연구 자금이 동결되면서 미국에서 두뇌 유출 위험이 커지고 있다. 올해 첫 3개월 동안 미국 과학자들의 해외 취업지원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분의 1이 늘었지만, 해외 연구자들의 미국 취업 지원은 4분의 1이 줄었다.(<이코노미스트> 5월 24일)

 

글로벌 인재 유치는 미국 학계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였다. 지난 20년 동안 유학생 비율은 거의 두 배로 증가해 2023년에는 거의 6%에 달했다. 대부분의 유학생은 과학, 공학, 수학 등의 분야 학위를 취득하고 있다. 그중 약 3분의 1은 인도, 4분의 1은 중국 출신자들이다.

 

한국인 유학생도 2023-2024 학년도 기준 약 4만 4천 명으로 중국과 인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미국에서 가장 우수한 연구기관 158곳의 유학생 비율은 14%로, 전국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아이비 리그’와 스탠포드, MIT(매사추세츠 공대)와 같은 명문대를 포함한 12개 ‘아이비 플러스’(아이비 리그 8개대 플러스) 대학의 유학생 비율은 28%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공격 대상으로 삼은 컬럼비아대와 하버드대는 각각 40%와 28%로 유학생 비율이 높다.

 

그런데 전 세계 학위 프로그램 온라인 디렉토리인 ‘스터디 포털스’에 따르면 미국 강좌 클릭 수는 현재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저 수준이다. 1월 5일부터 4월 말까지 주간 페이지 뷰는 그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1분기 미국 학부 및 석사학위 과정 트래픽은 전년 대비 20% 이상 감소했고, 박사과정 트래픽은 3분의 1로 줄었다. 가장 큰 감소폭을 보인 곳은 인도로, 관심도가 40% 감소했다. 예비 유학생들이 미국 외의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유학생이 줄면 미국 대학들의 재정적 위험 부담이 커진다. 비영리 단체인 미국 국제교육자협회에 따르면, 2023-24 학년도에 외국인 유학생들은 미국 경제에 438억 달러를 기여했다. 이 수치는 주로 민주당 성향이 높은 지역에서 발생했다. 유학생들은 대학뿐만 아니라 외식 서비스, 의료 등 다른 분야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미국이 가장 걱정해야 할 것은 인재 확보다. 유학생 박사과정생의 약 4분의 3은 졸업 후에도 미국에 남을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차세대 유학생 유치를 막는 것은 아이비리그 대학들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이코노미스트> 5월 28일)

 

유럽연합과 일본, 미국 이탈 연구자 응모, 지원

 

트럼프 2.0이 시작된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발급된 학생 비자는 2만 9천 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 이상 줄었다.

 

유럽연합은 지난 달 미국을 떠나는 연구자들을 염두에 두고 5억 유로의 예산으로 연구자의 이전과 연구 비용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AFP 통신>은 프랑스 엑스 마르세이유대학이 20명의 (미국 이탈) 연구자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대학에는 컬럼비아대와 예일대 등에 재직 중인 연구자들 약 300명이 응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도쿄대도 하버드대에서 학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된 유학생들을 일시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미국의 유학생 비자 발급 건수 추이. 트럼프 1기와 2기 정권 때인 2020년과 2025뇬애 대폭 줄었다.   단위 1만 명.   일본경제신문  5월 28일

 

유학생 1800명 이상 비자 취소 조치

 

연구 지원금만이 문제가 아니다. 많은 과학자들, 특히 외국 시민권을 가진 과학자들이 위축과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2025년 첫 4개월 동안 적어도 1800명의 유학생들(최근 졸업생 포함)이 아무 설명도 없이 비자 취소 조치를 당했다가 그것이 위법이라는 법원의 취소 명령으로 4월에 회복됐다. 이미 다수의 미국 명문대 재학 외국 유학생들이 체포당하거나 국외추방당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 먼저 온 과학자(연구자)들은 신입 연구자들의 비자 취득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해외에서 온 후배들에게 미국 입국 때 억류당할 수 있으므로 모국방문을 위해 출국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정권 비판자들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 주목적

 

지난 5일 앨리슨 버로스 매사추세츠 주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하버드대 유학생의 입국을 금지(비자 취소)한 트럼프 대통령의 새 행정명령이 발동되면 하버드대가 “즉각적이고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게 된다며 효력중지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전날인 4일 트럼프가 외국인 유학생들의 위헙행위 관련 자료 제출 요구를 하버드대가 거부하고 있다며,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하버드 유학생들과 연구자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고 비자를 취소한 조치를 무효화했다. 하지만 5월에도 트럼프 정권은 같은 조치를 취하고 법원은 이를 취소했으며, 트럼프 정권은 불복하고 조치를 다시 발동했다. 앞으로도 그런 과정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정권의 이런 조치가 외국인 유학생만을 겨냥한 건 물론 아니다. 그것을 빌미로 눈엣가시로 생각하는 하버드대학, 나아가 진보적, 자유주의적 엘리트 대학과 지식인들을 통제하려는 “정치적 보복”이 조치의 주목적라고 비판자들은 지적한다.

 

4월 중순에 트럼프 정권은 하버드대학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력공격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인 유학생들의 ‘반유대주의’ 활동에 관한 자료 제출과 DEI(다양성, 공정성, 포용성) 방침 폐지를 요구했다. 하버드대 당국이 이를 거부하자 국가예산을 무기 삼아 지원금을 중단하는 무차별 공격을 시작했다. 와이스코프 교수는 국립보건원(NIH)뿐만 아니라 질병통제예방센터(CDC)로부터도 지원 중단을 통고하는 메일을 받았다.

 

연방 연구지원기관인 국립보건원(NIH)와 국립과학재단(NSF)의 연구비 지원 취소 건수가 2025년에 크게 늘면서 3천 건에 달했다.  단위 1000건.  NIH 연구비 지원 76건 등이 부활할 수도 있다.  그랜트 워치  이코노미스트 5월 21일

 

흔들리는 연구비 신청 및 승인 절차

 

트럼프 재선(트럼프 2.0) 뒤 과학자나 연구기관에 대한 지원금 약 80억 달러가 취소되거나 철회됐다. 이는 연방정부의 고등교육 지원금 예산의 약 16%에 해당한다. 거기에다 추가로 122억 달러 지원계획이 취소됐으나 법원의 명령으로 복원됐다.

 

학계가 운영하는 추적 웹사이트인 ‘그랜트 워치’(Grant Watch)에 따르면, NIH와 NSF(국립과학재단)는 올해에 이미 승인된 3000건 이상의 연구비를 취소했다. 에너지부와 국방부 등에서 최소한 연구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연구자들이 NIH나 NSF, 국방부, 에너지부 등의 연구지원 기관에 연방기금 지원을 신청해 왔다. 신청(제안)서는 동료 심사위원단의 평가를 거쳐 기관의 승인을 받으면 합의된 지원금을 일정기간 지급한다.

 

트럼프 정권 들어 이런 구조가 대격변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지원 취소는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팀이 좋아하지 않는 연구들을 대상으로 취해졌다. 여기에는 DEI 관련 연구, 기후변화, 허위 정보, 코로나 바이러스 19, 백신 연구 등이 포함돼 있다. 하버드와 컬럼비아, 예일, 스탠포드 등 명문대학에서 수행된 연구들도 추가된다.

 

MAGA 모자를 쓴 코끼리(공화당 트럼프 정권)에 짓밟힐까 도망치는 연구자들의 모습.   이코노미스트 5월 24일

 

그 배경에 MAGA의 반엘리트 주의

 

그 배경에 트럼프 정권의 극우 국수주의적 구호이자 운동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있고, 그 핵심에 반엘리트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트럼프가 적대시하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를 포함한 8명의 미국 대통령이 다녔고, 정재계와 과학계의 요직에 인재를 공급해 온 하버드대학은, MAGA주의자들에겐 쳐부수어야 할 기득권층의 아성이다.

 

또 한 가지는 정권이 적대시하는 ‘좌파 워크’

 

또 한 가지는 트럼프 정권이 이들 엘리트 대학들을 자신들의 뜻대로 따르지 않는 좌파 ‘워크(Woke)’사상의 거점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워크’는 원래 ‘깨어 있다’는 뜻을 지닌 말로, 인종적 편견이나 성차별, 불평등을 비판하고 ‘정치적 올바름’, 기후위기 등에 적극 대응하려는 진보적 성향을 지닌 사상 또는 세력을 가리키는데, 주로 트럼프 등 우파 세력이 ‘잘난 체하는 놈들’이란 경멸적 의미로 '좌파' 진보적 지식인을 야유하는 용어로 쓴다. 워크적 가치는 트럼프가 혐오하고 적대시하는 민주당 엘리트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의 신문과 ABC, NBC, CBS 등의 방송들로 짜인 리버럴(자유주의적, 진보적) 주류언론이 추구하는 가치에 가깝다.

 

밴스 부통령 문화전쟁 선포 “대학을 공격하라”

 

이 말을 공격적으로 사용하는 트럼프 진영의 대표주자가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J.D. 밴스) 부통령이다. 노동자계급 출신으로 예일대를 나온 밴스는 2021년 11월에 한 연설에서 “대학이라는 적대적 기관이 지식을 지배하고,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결정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상을 밀어주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리는 솔직하게 적극적으로 이 나라의 대학들에 공격을 가해야 한다”며 적대감을 표출했다.

 

따라서 트럼프 정권의 하버드대, 컬럼비아대 등 엘리트대학들에 대한 지원 중단, 공격은 감정적 차원에서만 기획된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정치적 적대세력을 말살하겠다, 씨를 말리겠다는 일종의 계급투쟁, 문화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 규모 키우려는 트럼프

 

<이코노미스트>(5월 21일)에 따르면, 트럼프 정권으로부터 지원 취소 위협을 받고 있는 대상과 금액은 훨씬 더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NIH 예산을 38%, 즉 거의 180억 달러 삭감하고, NSF 예산은 50% 이상인 47억 달러를 줄이고, NASA(미국 항공우주국) 과학임무국(SMD)의 예산 거의 절반을 폐지하려 하고 있다. 연방 연구기관에 대한 예산 삭감안은 모두 합쳐 거의 4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미 많은 기관들이 폐지됐다. 3월에는 NIH를 포함한 보건복지부(HHS)는 전체 인력의 25%에 해당하는 2만 개의 일자리를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환경 및 기후 연구를 수행하는 국립해양대기청(NOAA)에서도 전체의 10%, 약 1300개가 넘는 일자리가 사라졌다. NSF에서도 인력 감축이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법원의 명령으로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더 많은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 NIH, NSF, 에너지부, 국방부는 이른바 간접 연구비에 제한적인 상한선을 설정했다.

 

윤석열 정권의 과학기술 R&D 예산 삭감과 같은 논리

 

과학계도 예외가 아니다. 5월 19일, 트럼프의 과학 고문인 마이클 크래시오스는 미국 국립과학원(National Academies of Sciences) 앞에서 정부 주장을 옹호했다. 그는 정부가 과학을 더 훌륭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어 "미국의 연구 예산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는 윤석열 정권이 2024년 예산에서 1만개 넘는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개발비(R&D)를 대폭 삭감할 때 내세운 이유와도 비슷하다. 그 바람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연구자들과 체결한 R&D 협약을 부랴부랴 변경해 연구비를 30% 가까이 감액했고, 과기부 소관 R&D 연구 97개는 아예 도중에 중단됐다. 그 결과 많은 연구들이 중단되고 연구자들도 떠났다.

 

윤석열 정권의 정책 브레인들은 제1기 집권 때부터 진행된 트럼프 정권의 ‘워크’사상에 대한 적대적 정책과 '좌파'(진보세력) 말살, 그리고 아베 신조 자민당 극우정권과 트럼프 정권의 밀착을 자신들의 정책입안 모델로 삼았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과학기술 R&D 예산 대폭 삭감과 전례없는 파격적 친일행보와 뉴라이트 인사 대거 채용 등이 거기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계엄령 선포 도박도 국회 여소야대 상황에서 그것을 밀어붙이려는 조바심의 소산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독재자들이 권력집중 시도할 때 써먹는 수법”

 

트럼프 정권의 진보적 엘리트들에 대한 공격은 그들에 대한 미국인들, 특히 공화당 지지자들의 의식을 반영하고, 또 그들의 그런 태도를 이용하는 면이 있다. 갤럽의 2024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들 중에서 고등교육을 “매우 신뢰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20%에 지나지 않았으며, “거의 또는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 비율이 50%였다. 이는 트럼프가 정치에 입문한 2015년 무렵의 응답비율과는 크게 달라진 것으로, 당시에는 “매우 신뢰한다”가 50%, “거의 또는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11%에 지나지 않았다. 극우 국수주의자 트럼프는 이런 여론변화를 무기로 삼아 정적인 진보적 자유주의 세력을 공격하고 있다.

 

앤드류 마누엘 크레스포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교수는 트럼프의 이런 공격을 “민주주의 체제에서 선출된 인간이 독재자처럼 권력을 집중하려 할 때 써먹는 전형적인 수법”이라며 말했다. “역사를 돌아보거나 세계를 둘러보더라도 그런 지도자들이 자유로운 언론기관이나 법원, 그리고 대학을 공격한다. 그런 것들이 (독재자의 출현을 막는) 활기찬 입헌민주주의에 불가결한 기관들이기 때문이다.”(<아사히신문> 6월 6일)

 

허버드대학을 방문한 관광객들에게 설명해 주는 안내자(모자 쓴 사람).  아사히신문 6월 6일

 

하버드대학을 사실상 ‘트럼프 대학’으로 바꾸려는 것

 

크레스포 교수는 하버드대가 거부한 트럼프 정권의 요구 중에는 교육내용에 대한 ‘감사’도 포함돼 있었다며, “트럼프 정권이 노리는 것은 하버드대학을 사실상 ‘트럼프 대학’으로 바꿔 (친트럼프, 친공화당적인) 사상교육을 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2023년 11월 11일, 친팔레스타인 학생단체 자격을 취소한 컬럼비아대학 당국 조치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있는 컬럼비애대 학생들.    아사히신문 6월 6일

 

첫 공격대상 컬럼비아대는 “정권에 투항”

 

하버드대학에 앞서 트럼프 정권의 공격표적이 된 것은 컬럼비아대학이다. 2023년 10월 7일 이슬람 무장조직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뒤 막강한 무력을 동원한 이스라엘군이 미국의 지원 아래 팔레스타인 가자 자치지구를 무차별 공격했을 때 이스라엘군의 무력공격을 비판하는 가장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미국 내 이스라엘군 반대 시위의 중심지가 된 곳이 컬럼비아대학이다.

지난해 4월 컬럼비아대 캠퍼스 내에 텐트를 치고 야영하던 시위 참가자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대학 당국이 경찰을 학내로 불러들여 200여 명을 체포했다. 트럼프 정권의 요구를 거부한 하버드대와 달리 정권의 요구를 수용한 컬럼비아대학 당국의 ‘투항’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총장이 사퇴했다.

 

올해 1월 출범한 2기 트럼프 정권은 컬럼비아대학 당국이 “유대인 학생들 괴롭힘에 대해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4억 달러 상당의 지원금 계약을 취소하고, 중동지역연구 등의 학부를 감독하는 담당기구를 적어도 5년간 존치한다는 것을 포함한 9개 항목의 조치를 요구했다. 컬럼비아대학은 이를 수용하고 시위 참가자들을 배제, 구속할 수 있는 권한을 경비원들에게 부여하는 등의 조치를 발표했다.

 

미국 대학이 “학생과 연구자들이 보호받는 환경 속에서 자유롭게 논의하고 공부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곳”이라는 기존 이미지가 무너지고 있다.

 

컬럼비아대가 “정권에 항복했다”,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두고 봐야겠지만, 하버드대는 그런 전철을 따라가기를 거부했다.

 

지원금 동결 등을 통한 트럼프 정권의 대학 공격은 이들 대학을 포함한 동부지역 8개 명문대를 가리키는 ‘아이비 리그’의 다수 대학을 겨냥하고 있다. 트럼프가 다닌 펜실베이니아대도 거기에 포함된다. 트럼프 정권은 이들 아이비 리그 대학들을 비롯해 미국 전역의 60개 대학에 대해 반유대 행위나 차별을 하고 있지 않은지 조사를 시작했다. 싸움을 멈출 기미가 없다.  < 민들레 한승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