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찰당한 자의 슬픔

● 칼럼 2012. 4. 7. 14:45 Posted by SisaHan
“저녁 9시 정도 된 것 같다. 진찰이 모두 끝나고 소파에 앉아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피로를 풀기 위해 마티아스 그뤼네발트에 대한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내 방이 사라지더니, 곧 아파트가 사라져버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두렵게도 내 시야가 미치는 곳 어디에도 아파트 벽들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스피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벽을 제거하라는 이번달 17번째 포고령에 따라….’”
1934년 한 독일인 의사가 기록한 꿈의 내용이다. 나치가 개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나가던 숨막히는 체제에서 그 의사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아주 잠깐 ‘자유로운’ 개인적 취향(16세기 종교화가인 마티아스 그뤼네발트를 탐닉하는 것)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감시당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불이익에 처해질 수 있다는 강박이 그를 짓눌렀던 게다.

“꿈을 기록한 뒤에 그 의사는 또 한 번 이 꿈을 기록한 사실 때문에 고발당하는 꿈까지 꾸었다. 이제 잠조차 사적 영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상은 <한겨레21> 편집장 시절이던 2009년 9월 권두칼럼 ‘만리재에서’에 쓴 이야기다. 따옴표로 묶인 부분은 유럽 현대사를 다룬 책 <암흑의 대륙>에서 인용했는데, 사찰당하는 사회에 대한 공포를 잘 보여준다. 당시 이런 글을 쓴 이유는, 끔찍하게 묘사된 저 파시즘 사회가 우리에게도 전조를 드리우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촛불정국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거치며 날로 시민의 자유를 옥죄어 오는 공권력의 횡포에서 이 정부의 ‘파시즘적 경향’을 읽어낼 때였다.

바로 그즈음인 2009년 11월9일 작성된 민간인 사찰 문건에 <한겨레21> 편집장의 이름이 올라 있다. 당시 수많은 민간인에 대한 사찰이 진행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우려는 이미 현실이었다. 우리도 모르게 아파트의 벽들이 투명해지고, 징그러운 사찰의 눈빛이 기본권의 벽을 뚫고 들어와 ‘자유로운’ 개인의 영역을 훑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2009년 6월 <한겨레21> 764호 표지이야기에는 미국 사회비평가 나오미 울프가 제시한, 민주주의에서 파시즘으로 넘어가는 이행기의 특성이 소개돼 있다. △일반 시민을 사찰한다. 개인의 전과와 정치성향, 사생활 등을 기록한 개인자료를 활용한다. △교수·공무원·언론인·문화예술인 등 비판적 인사들을 직장에서 쫓아내거나 경력을 파괴한다. △비판적 검사(판사)를 해임하는 등 법의 지배 방식을 뒤엎는다. △정치적 압박으로 자유언론을 탄압한다. △시민들의 사상·행위·표현을 ‘법의 이름으로’ 처벌한다…. 최근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과 소름 돋도록 일치한다.

이제 비로소 “잠조차 사적 영역이 아니”라는 표현의 절실함을 알겠다. 그것은 공포를 넘어선 것, 실존의 심연을 덮는 슬픔이다. 인간의 외피를 입고 있으되,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기본권의 경계 밖, 짐승의 영토로 내동댕이쳐졌다는 깨달음은 온몸과 정신을 구정물로 적시는 듯하다. 슬픔의 깊이를 더하는 건 이 추잡한 현실을 되돌리는 것조차 순조롭지 않다는 점이다. 불법사찰의 책임자도, 그를 처벌해야 할 검찰도, 민주주의 파괴를 개탄해야 할 상당수 언론도 방관하거나 오히려 물타기에 급급하다. 과거 우리나라나 외국에서 유사한 일들이 벌어졌지만 제도적으로 단죄와 교정 과정을 거쳤기에 민주주의가 살아남았다. 이것이 불가능한 사회는 이행기를 지나 본격적인 파시즘의 도래라는 절망을 마주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붙잡는다. 우리에게 선거가 다가와 있다는 것,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파시스트 세력을 민주주의의 전당에서 축출할 기회가 한번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박용현 - 한겨레 신문 오피니언넷 부장>


세계적인 환경단체 그린피스 간부 3명이 엊그제 ‘밝힐 수 없는 관계기관’의 요청에 따라 인천공항에서 쫓겨났다. 국익유해자로 분류됐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이달 중순 희망에너지 선박 투어를 통해 원전 반대 운동을 할 계획이었다. 결국 이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을 둘러싼 논란을 억제하려는 것이었으니, 원전 마피아의 이익과 독선 앞에선 국민의 체면도 국가의 품격도 없다.
일본의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에 대한 국익 판단은 뿌리째 흔들렸다. 현재 우리 국민이 동의하는 수준은 원전의 안전성과 효율성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증이다. 원전 확대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쪽에 가깝다. 따라서 국민을 어렵게 생각하고 그 뜻을 존중하는 정부라면 기존의 정책을 밀어붙일 순 없다. 당대와 미래세대의 안전을 고려해 지속가능한 에너지 대책을 새로이 수립해야 한다. 불과 60년 안에 초대형 원전사고가 3건이나 터졌는데, 원전의 안전 신화를 맹신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지금까지 숨겨왔거나 누락시켰던 사회적 비용 혹은 폐로 및 폐기물 처리 비용까지 합친다면 원전의 저비용 신화 역시 의심받아 마땅하다.
 
그린피스는 이번 희망에너지 투어를 통해 ‘에너지 혁명’ 한국판 보고서인 한국의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망을 발표할 계획이다. 원전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한국적 에너지 대안을 제시한다니, 정부로서는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그린피스의 제안이 오히려 원전 마피아의 독선적인 확대 정책보다 국익에 더 부합할 수 있다. 그럼에도 훼방만 놓고 있으니 이보다 더 국익에 반할 순 없다. 캠페인을 위한 에스페란사호의 입항을 허가해줄지도 의문이다.  게다가 이번 입국 봉쇄는 탈원전 논란을 떠나 국가의 품격을 현저히 훼손하는 짓이었다. 정부는 이들에게 입국 금지의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않았다.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사토 다이스케 반핵아시아포럼 사무국장의 입국을 불허했을 때처럼 사실상 막무가내로 입국을 거부했다. 국제적 기준에서 볼 때 이런 한국은 열린 사회도, 민주국가도 아니다.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소되어 국제적 망신을 사도 할 말이 없다.
 
한국은 올해 열릴 리우+20회의 등 각종 환경회의의 의장국을 수임했다. 지속가능한 개발과 보존의 의제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국제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상황에서 합법적 캠페인조차 봉쇄한다면 지도력은 커녕 조롱거리만 될 수 있다. 당장 입국 금지부터 풀고 캠페인을 방해하지 말기 바란다.


[사설] 몰염치로 똘똘 뭉친 집권세력

● 칼럼 2012. 4. 7. 14:41 Posted by SisaHan
이명박 대통령은 재임중 나라를 톡톡히 망신시킨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국무총리실 불법 민간인 사찰 사건을 두고 외국 언론들이 “한국판 워터게이트가 터졌다”고 대서특필할 정도이니 나라 망신은 제대로 시킨 셈이다. 입만 열면 ‘국격’ 타령이더니 막상 자신이 국격을 떨어뜨린 일등공신이 됐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조그마한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이 대통령은 어제 열린 국무회의에서 “선거를 앞두고 혼란스러운 가운데 국정이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하게 된다”며 “공직자들이 중심을 잡고 중요한 국정과제가 흔들림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민간인 사찰 사건으로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고도 스스럼없이 ‘나라 걱정’을 입에 올리는 낯두꺼운 모습에 할 말을 잃는다.
 
그 상관 밑에 그 부하라고 권재진 법무부 장관도 이에 못지않다. 그는 엊그제 열린 신임 검사 임관식에서 “누가 보더라도 공정한 검찰권을 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좌고우면하지 말고 원칙을 지켜 직무를 수행하라”고 말했다. 민간인 사찰 사건의 핵심 인물인 그는 신임 검사들에게 귀감이 되기는커녕 그들 앞에 설 자격도 없는 인물이다. ‘공정’ ‘원칙’ 따위의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기에 앞서 ‘좌고우면하지 말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사람은 권 장관 자신이다. 
청와대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사찰 내용을 수시로 보고받은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 불법사찰 관련자 4명은 2008~2010년 사이에 195차례나 청와대를 출입했다고 한다. 당시 민정수석이던 권 장관은 전임 정동기 수석과는 달리 이 전 지원관으로부터 독대 보고를 포함해 6차례나 보고를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2009년 9월 경찰에 ‘특정 연예인 명단’을 제시하며 내사를 지시했다는 경찰 내부 문건도 공개됐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침묵과 방관, 물귀신 작전 따위의 꼼수로 일관하고 있다. 권 장관 본인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으면 청와대라도 나서서 장관을 경질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본 척 만 척 한다. 권 장관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한 사찰 사건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가 신뢰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하기야 청와대에 그런 상식을 기대하는 것조차 무리일지 모른다. 털끝만한 양식이라도 있는 정권이라면 불법사찰에 대한 반성은커녕 오히려 전 정권 탓이나 하는 몰염치와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겠는가.


미국과 캐나다 재정 안전한가

최근 전세계적으로 경제 침체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부채문제를 안고 있는 유럽을 비롯해 일본, 미국 등 세계 모든 국가들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재정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재정문제의 주요 원인은 계속되는 경제침체로 실업자가 늘어난 가운데 인구 고령화와 함께 베이비 부머들의 은퇴가 늘면서 정부의 지출이 크게 늘어나는 반면 재정수입이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때문이다. 캐나다 정부도 재정수입에 비해 크게 늘어나는 재정지출에 대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노인 연금대상 연령을 높이는 등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조만간 발표한다고 한다. 현재 연방정부예산이 2천7백억달러인 반면 노령연금으로만 290억달러가 지출되고 있는데 앞으로 20년 후에는 천억 달러 이상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때문이다.
 
미국은 그동안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제로 상태로까지 인하 해왔지만 약효가 없어지자 다시 다른 정책수단들을 동원하여 채권금리를 인하하기로 한 바 있다. 이는 명목상 모기지금리를 낮춰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고자 한 이면에, 급증하고 있는 부채부담을 줄여보려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된다. 근착 글로브 엔 메일신문에 따르면, 현재 미국 연방부채는 최근 크게 늘어 15조 달러에 달하고 있지만 평균 이자율은 물가상승률 수준에 불과한 2.2%로 부채에 대한 이자는 3천억 달러로 연방재정수입 3조달러의 10%수준이다. 이는 2004년 부시 정부의 9%보다는 다소 높지만 1998년 클리턴 정부 14%보다는 크게 낮다. 캐나다의 경우 크레티엥 정부가 정부지출에 제동을 건1990년대 초 정부부채에 대한 이자부담은 재정수입의 35%였고, 1993년에는 무려 45%에 달하였다고 한다.
 
미국은 지난 4년간 매년 거의 1조달러 정도 씩 부채가 늘었지만 이러한 낮은 이자 덕분에 미국 국민들은 커다란 부담을 지지 않았고, 금융시장도 커다란 변동을 보이지 않은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미국 정부는 2014년 까지도 금리를 제로 상태로 유지할 것이라고 선포하였고, 이런 상태가 상당기간 지속된다면 미국의 부채가 20조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2018년 까지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결국, 부채가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부채 규모가 아니라 이자율, 특히 이자율이 크게 오를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중국이 미국 채권을 더 이상 구입하지 않고 만기가 되면 회수할 것을 염려한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된다면 미국 부채를 미국 달러로 환전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이러한 거래를 하려고 할 것이다. 사실 미국 달러는 언제든지 액면가로 상환받을 수 있는 있는 연방정부의 채권(부채)와 같고, 사실 이자율이 거의 제로 상태인 현재 단기 정부채권과 화폐는 거의 차이가 없다. 이론적으로 미국 정부가 원한다면 백달러짜리 천 오백억개 지폐를 발행하여 정부의 15조 달러의 부채를 갚을 수도 있다.
 
중국은 한 때 일부 채권을 회수하려는 움직을 보였지만 다시 시장에서 그 달러로 채권을 구입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자가 없는 달러보다 적은 금액이라도 이자를 지불하는 채권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은 미국의 최대 채권보유국이지만 전체 채권금액에 비하면 7.5%에 불과하다. 
캐나다는 어떠할까. 캐나다의 연방정부는 재정수입의 12%에 해당하는 3백억 달러를 부채에 대한 이자로 지급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보다는 다소 높은 2.8%의 채권이자를 지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진국중에 가장 건실한 국가로 평가받는 캐나다는 과연 앞으로 재정문제에 있어 미국보다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김경태 - 은퇴투자 상담사, Maxfin 증권·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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