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명의와 명 목사

● 칼럼 2012. 8. 14. 15:38 Posted by SisaHan
명 목사란 말이 어색하다. 그러나 명의를 생각하면서 그렇게 붙여보았다. 명의라면 중국의 편작을 따를 자 있을까? 이 달에 읽은 책 ‘신도림 역에서 공자를 만나다.’ 에서 편작에 관한 글을 읽었다.
 
그에게 두 형이 있었는데 모두 훌륭했으나 편작이 가장 유명했다. 어느 날 왕이 편작에게 물었다. 세 형제 가운데 누가 가장 뛰어난가? 편작이 대답하기를 큰형이 가장 뛰어나고 둘째 형이 그 다음이며 자신은 가장 떨어진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어째서 선생이 가장 유명한가 하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큰형은 병을 치료할 때 증세가 나타나기 전에 병의 원인이 될 요소를 치료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그가 사전에 병의 뿌리를 제거하는 것을 알지 못하므로 이름이 나지 않았고 둘째 형이 병을 치료할 때는 증세가 나타나는 초기에 치료를 하기에 사람들은 그가 가벼운 병을 치료한 줄로 여기기 때문에 이름이 동네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요.
그런데 자신이 병을 치료할 때는 증세가 이미 심각해졌을 때이므로 자신이 경맥에 침을 놓고 피를 빼거나 피부에 약을 붙이는 대수술 과정을 보기에 제 의술이 뛰어나다고 여기기에 명성이 이렇게 전국에 퍼져나가 유명한 사람이 된 것이라고 답했다.
 
편작의 겸손한 모습을 보면서도 그의 말에 수긍을 하는 것은 진정한 명의는 겉으로 나타난 병의 증세를 따지고 처리해주는 것이 아니라 병의 뿌리를 알고 미리 예방해주는 것이 중요하며 또한 적어도 병의 상태가 초기에 이르렀다 생각하면 빨리 조처해주는 것이 훌륭한 명의가 아니겠는가? 편작이 못하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병의 상황이 악화되었을 때 치료하는 것도 귀중하지만 근본을 미리미리 치료하고 예방하는 것이 진정한 명의라는 말이 되겠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영혼을 치료하는 명의는 누구인가? 앞에서 어색하게 써놓은 명 목사는 누굴까? 오늘날 속칭 대형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일까? 사자후를 토하면서 강단에서 명설교로 또는 대부흥사로 이름을 날리는 저들이 명 목사일까?
 
가만 살펴 보면 대부분의 목사들이 부끄럽지만 편작처럼 나타난 증세를 가지고 치료의 방법을 제시하고 이렇게 살자 저렇게 살면 안 된다 하고 부르짖는 목사들이 아닐까? 그들도 결코 잘못되거나 훌륭하지 못한 목사는 아니다. 저들도 편작처럼 필요한 목사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 어떤 문제나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예방 차원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훈련시키며 또한 설교의 시간이 치료의 목적보다 병의 근원을 아예 뿌리 채 뽑겠다는 의욕으로 말씀을 준비하고 성도들을 훈련시킨다면 얼마나 훌륭한 영적 명의가 되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아직 미련하여 그 근본적인 치료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그냥 나타난 현상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냥 침을 발라주거나 고약으로 때울 때가 얼마나 많은가.
 
때로는 수술도 필요하고 때로는 독한 약도 먹여야 하겠지만 목회자들은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 병이 생기지 않도록 몸을 보호하는 일이나 혹은 작은 일이 생겼을 때라도 미리미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몸을 보완하고 건강하게 해주는 그런 일에 더 큰 관심을 쏟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오늘의 목회자들의 관심이 얼마나 치료를 잘 해주는 명의가 되었는가? 나에 대한 소문이 어떤가? 나는 많은 사람의 존경의 대상이 되어있는가? 하는 일에 관심을 쏟으니 세상적으로 명의의 반열에 올랐다 해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글쎄?

<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


지금 한국 정계에 ‘안철수 현상’은 마치 외계인의 습격과 같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익숙한 관념들로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이다. 현실의 권력질서를 뒤흔드는 무서운 힘으로 엄습해오고 있다. 
이 외계인은 안철수 원장이 아니다.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낸 수많은 시민들이다. 이들에게 정치인과 정당들은 외계인이었다. 선거철만 되면 인간의 말을 하고 심지어 인간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선거만 끝나면 인간이 알 수 없는 세계에 살면서 인간의 삶을 좌우한다. 참다못한 인간들은 정치를 습격했다. 그들이 외계인이 되어 정치를 덮쳤다. 저비용 고효율의 한국판 점령운동이다. 
이처럼 정치와 시민이 서로에게 외계인이라는 것은 둘 사이에 쌍방적인 낯섦과 소외의 협곡이 놓여 있다는 뜻이다. 정당과 시민의 간극, 정당일체감의 약화,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불신은 많은 선진 민주주의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그 저변에는 탈산업화, 개인주의화, 정보화, 네트워크화 등의 거대한 사회변동의 흐름이 있다. 시민들은 더 많은 주권, 더 투명한 권력, 더 친근한 정치를 원하고 있고, 그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정치현실과 충돌하고 있다.
 
이런 변화들은 각 나라의 전통과 제도에 따라 각기 다른 결과를 낳는다. 유연하고 역동적인 정치체제를 가진 나라에서는 새로운 사회적 욕구가 정당정치로 부드럽게 반영된다. 반면 한국은 제왕적 대통령제, 소선거구제 등의 제도 구조로 인해 구석구석 승자독식의 질서가 지배하는 경직된 체제다. 이런 환경에서 소수정당들은 득표율 부족으로 자연소멸하거나, 집안싸움에 몰두하는 자폐적 단체로 고립됐다. 
현재의 주어진 제도적 조건에선 양대 정당이 변화의 욕구를 반영해야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 다수 시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끌어내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세상은 광속으로 변하고 있는데, 정치는 박정희·전두환 세력과 김대중·노무현 세력의 대결을 반복했다. 안철수 현상은 이제 역사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다는 집단적 소망의 표현이다. 
하지만 안철수 현상이 정당정치에 대한 혐오 때문에 생겼다는 단순한 해석은 지난 몇년간의 의미심장한 변화들을 놓치고 있다. 한국은 지금 정당정치의 종언을 앞두고 있는 게 아니라 이제 막 본격적인 정당정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명박 정권하에서 시민들은 두 가지 의미에서 권력에 눈을 떴다. 정치권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고, 시민권력이 정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경험했다. 이제껏 시민들이 선거정치에 이토록 열렬히 참여한 적이 없다.
 
민주당 역시 정당정치의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는 중요한 변화를 겪고 있다. 민주당은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등, 한국 사회의 경제적 균열구조를 반영하는 일련의 정책노선들을 대폭 수용했다. 인적으로도 그동안 당 외부에 있던 유능한 정책통들을 국회의원이나 보좌진으로 대거 영입했다. 차세대 정치계급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혁신은 느리게 진행되고 있고, 패러다임 이동의 결정적 문턱을 아직 넘지 못했다. 
안철수는 계승과 혁신이 함께 가는 이행을 위한 선택이다. 안철수가 운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안철수의 운명을 선택한다. 지금 안철수 원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2040세대’가 원하는 것은 성인도, 초인도, 의인도 아니다. 낡은 판을 흔들어 새 시대에 문을 열어줄 통로다. 그 문을 넘어 외계인들이 정치와 만날 때, 정치와 시민은 더 이상 서로에게 외계인이 아니다. 정당정치가 무너지는 게 아니라, 정당정치의 새로운 역사적 단계를 위한 문턱을 넘는 것이다.

< 신진욱 -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


새누리당의 공천뇌물 의혹 사건은 박근혜 의원의 국가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검증하는 중요한 시험대다. 단순히 박 의원이 공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당을 이끈 책임자였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이런 종류의 사안에 대처하는 모습을 통해 정치지도자의 리더십, 책임의식, 조직 운영 능력 등이 상당 부분 드러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사건에 관한 한 박 의원의 성적표는 낙제에 가깝다.
우선 박 의원의 상황 파악 능력의 부재다. 박 의원은 애초 “검찰에서 한점 의혹 없이 밝혀야 할 문제”라는 원론적인 언급을 했다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발언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를 두고는 측근 참모들이 박 의원에게 ‘청와대 기획설’ 등 사건의 실체와는 거리가 먼 보고를 한 탓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보고에 솔깃한 것부터가 박 의원의 잘못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윗사람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인물들을 주변에 포진시킨 박 의원의 조직 운영과 용인술의 실패다.
 
 ‘돈 공천’ 의혹은 친박이 공천 심사를 전횡할 때부터 제기됐다. 일방의 전횡은 밀실, 담합, 부정으로 이어진다. 공천 혁신의 뼈대는 이를 막기 위한 민주성과 투명성의 확보였다. 그러나 여론조사가 조작되고, 전과 경력이 검증에서 누락되는 등의 왜곡이 있었다는 의혹은 초기부터 잇따랐다. 공천의 비민주성이나 일방통행식 경선의 비민주성은 다를 게 없다. ‘돈 공천’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황우여 대표가 책임진다고 합의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전형적 눈속임이다. 그는 박 후보의 ‘대리인’일 뿐이다. 남경필 의원의 주장대로 공천 의혹과 불공정 경선 책임의 정점엔 박 후보가 있다. 공천을 총괄한 것도 그였고, 현 지도부를 구성한 것도 그였으며, 경선 룰도 마찬가지다. 법적인 책임이 없다며, 마지못한 유감 표시로 발을 빼려고 하는 것은 지도자로서 자격 미달이다.
 
새누리당에 진정성이 있다면, 박 후보의 책임과 함께 문제의 근원인 그의 민주주의 인식을 따져야 한다. 이미 드러난 박 후보의 인식을 용인한다면, 그는 밀실 공천이든 추대용 경선이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쿠데타나 군사변란으로 말미암은 헌정 중단과 국민주권 폐기를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기는 신념 아래서, 못할 짓이 무엇이겠는가. 박 후보가 유신의 전체주의적 동원체제를 강제한다고 해도 거부할 수 없다. 쿠데타를 불가피하게 여기는 인식에 따르면서, 당 운영 과정에서 나타난 비민주성과 일방주의를 비난하는 건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과연 새누리당은 민주정당을 지향하는가, 이번 기회에 솔직하게 점검하기 바란다.


[사설] 신음하는 4대강, 어찌할 것인가

● 칼럼 2012. 8. 14. 15:16 Posted by SisaHan
4대강 사업으로 거대한 보에 갇힌 강물이 썩어가고 강 주변이 황폐화돼 가고 있다. 정부는 4대강 공사가 끝나면 맑아진 강물에서 강수욕을 즐기고, 강변공원에선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처럼 선전했지만 말짱 빈말이 돼버렸다. 강 주변 시설을 넘겨받아 관리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은 막대한 유지관리비용 때문에 벌써 골머리를 앓고 있다. 도대체 왜 막대한 혈세를 들여 4대강 사업을 밀어붙였는지 한숨만 나올 뿐이다.
가장 심각한 게 수질 악화다. 이달 초 <한겨레>가 녹색연합과 공동조사한 결과를 보면, 남조류의 일종인 ‘마이크로시스티스’가 낙동강 중류인 대구 주변까지 북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고온현상 탓이라고 하지만 전문가들은 4대강 사업으로 보에 막힌 강물의 흐름이 느려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낙동강 중류에서 남조류가 발견된 것은 4대강 사업 이전에는 없었던 현상이라고 하니,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남조류가 식수원까지 오염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잘 알려진 대로 마이크로시스티스는 간질환을 일으키는 독성 물질이다. 이를 제대로 정수하지 않고 장기간 마실 경우 인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재 낙동강 정수장 중 구미정수장 등 몇몇 정수장은 마이크로시스티스를 걸러낼 장치조차 없다고 한다. 남조류 발생 원인을 원천적으로 제거하기 이전이라도 우선 정수시설만이라도 보완해 수돗물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4대강에 인공으로 조성된 강변공원 234곳도 애물단지다. 수자원공사가 직접 관리하는 곳은 그나마 나은 모양이지만 대부분의 강변공원은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고 한다. 애초부터 얼마의 비용을 들여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 없이 우선 만들어 놓고 보자며 밀어붙인 결과다. 이를 넘겨받아 해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유지관리해야 하는 지자체로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앞으로 이런 강변공원을 그대로 유지할지 아니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게 자연의 흐름에 맡길지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4대강 사업은 이제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을 거대한 ‘물 항아리’로 만드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성과에만 집착해 부작용을 애써 무시할 게 아니라 잘못된 것은 고치고 부족한 것은 보완해야 한다. 보를 아예 없애는 게 옳다면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4대강 사업에 반대 목소리를 내왔던 환경단체 등과 머리를 맞대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