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손 편지의 숨소리

● 칼럼 2012. 8. 20. 16:59 Posted by SisaHan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비에 마음까지 축축한 듯했다. 물어물어 찾아간 그곳은 전주에 와서 <혼불>의 작가를 만나지 않을 수 없다며 들른 문학관이었다. 날씨를 핑계 삼아 아늑한 곳에 들어가 따끈한 커피나 마셨으면 하는 마음을 달래주려는 듯 밝게 웃는 커다란 사진이 우리를 맞이했다. 최명희는 1990년대에 한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알게 된 작가였다. 
당시 나는 도서실 관리 업무를 맡고 있어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도서실에 상주하며 자연스럽게 신간 서적을 읽을 수 있었다. 도서실에서는 학생들뿐 아니라 마음이 맞는 교사들이 책을 돌려가며 읽은 후에 이따금씩 감상을 나누고 토론을 하기도 했다. 기억도 아득한 일이지만 그때 만난 책이 <혼불>이었다. 요즈음과는 달리 그때만해도 대하소설이 꽤 읽히던 때라 열 권이라는 부피가 그리 부담스러운 줄 모르고 읽던 시절이었다.
 
실은 최명희 문학관에 들어서면서 큰 기대는 없었다. 여느 문학관처럼 비슷한 형태로 작가 소개와 작품, 원고지 등을 전시해놓았겠지 싶었기 때문이다. <혼불>을 연구한 논문들이 유리 진열장 아래 한 줄로 놓여있고 정면에 간단한 약력이 적혀있었다. 그 보다는 전시실 중앙에 작가가 누군가에게 보낸 엽서에 더 관심이 가서 그 앞을 서성이는데 바로 옆 진열장에서 뭔가 강렬하게 시선을 잡아당기는 게 있었다. 옛 선비들이 서신용으로 주고받던 둘둘 말린 한지를 길게 펼쳐 놓은 듯한 종이의 염력(念力)에 아마 나도 모르게 끌렸나 보았다. 
조금 바랜 듯한 하얀 종이에 왼편에서 시작해 세로로 써 내려간 글, 그건 작가가 친구에게 육필로 쓴 편지였다. A4 용지만한 크기의 종이를 2미터 이상 늘어놓은 길이인데 여러 장을 이어 붙인 게 아니라 온전한 한 장이었다. 대체 어디에서 그렇게 긴 종이를 구했는지 몰라도 모나지 않은 글씨들이 정스럽게 조근조근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작가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예민한 필체를 예상했는데 의외로 부드럽고 편안한 글씨체였다. 어떤 마음으로 썼기에 그렇게 긴 글을 한결 같은 필체로 이어갈 수 있었을까. 단숨에 썼을까, 며칠을 두고 썼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나는 그 앞에서 발이 붙은 것처럼 서 있었다. 원고지 위에서 사각거리던 만년필 소리가 들려오고 종이에 배어든 잉크 냄새가 나는 듯한 환각이 일었다. 편지를 쓰고 있는 작가 바로 곁에 앉아있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 긴 종이에 끝도 없이 조용조용 풀어놓았을 작가의 마음이 만져지는 것 같아 나는 감히 발을 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문득 어디선가 찬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내 다음 다음 세대쯤 되는 작가의 문학관은 어떤 광경일까, 펜을 사용하지 않고 컴퓨터로 글을 쓰는 차세대 작가의 타이핑한 편지가 전시되어 있다면 관람객의 마음에 어떤 파장이 일까 상상해보았다. 친필이 아닌 인쇄된 편지를 보고도 내가 느끼는 것처럼 작가와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며 감정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듯한 착각으로 가슴이 뛸 수 있을까 싶었다. 
요즈음은 전화도 음성보다는 문자를 선호하는 세대이다.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기계문명에 기대어 문화 성향이 음성에서 문자로 바뀌어간다는 것은 주관보다는 객관에, 감성보다는 이성에, 이해보다는 책임 쪽으로 무게가 더해간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육필도 육성도 사라져가는 문명 사회에서, 희미해져 버린 아날로그적 흔적을 그리워하며 한쪽 귀퉁이가 무너진 듯한 불균형을 느끼는 것이 비록 나 한 사람뿐일까. 기계문명의 편함을 누리는 대신에 어쩌면 우리는 그 이상의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손으로 쓴 편지에서는 세월이 지나도 숨결이 느껴진다. 영혼의 숨결이 스며든 살구빛 체온을 글자마다 품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녀의 체온이 묻어있는 편지를 받은 행운의 주인공이 누구였을까. 작가가 쓴 문학적인 글이라서 감동을 받은 게 아니기에 내용이 어땠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편지에 배어있던 살 냄새를, 그 따스한 숨결을 오래 기억하고 싶을 따름이다.
 
<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협 회원, 한국 문인협회 회원 >


런던올림픽은 끝났지만 아직도 자리에 누우면 가끔씩 박주영의 감각적인 드리블, 양학선의 그림 같은 착지 장면이 아른거릴 때가 있다. 장미란, 손연재의 눈물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이보다 더 전이긴 하지만 개막행사 2부, 병상 위에서 뛰어놀던 영국 아이들 모습도 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일부에선 좌파 올림픽이라 비난했다지만 무상의료제도(NHS)에 대한 영국의 자부심이 오롯이 담겨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상징되는 영국 복지제도는 지식인사회의 정책 개발과, 정치권의 타협을 몰아붙인 대중들의 힘이 결합해 만들어낸 작품이다. 전문가들의 복지국가 청사진이 자유당 사회개혁가 윌리엄 베버리지 주도로 1942년 발간한 ‘베버리지 보고서’에 담겼고, 그 핵심이 무상의료였다. 수십만부나 팔릴 정도로 보고서가 대중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는데도 기득권 세력을 대변한 처칠의 보수당은 이를 외면했다가 총선에서 쓴맛을 봐야 했다. 보수당과 영국의사협회의 저항을 무력화시킨 건 노동당에 대한 지지로 복지사회에 대한 기대를 폭발시킨 유권자들이었다. 이후 1979년 대처의 보수당 정부가 들어선 뒤 89년부터 일부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등 변화가 있었으나 무상의료의 큰 틀은 흔들림이 없었다.

좀 다른 얘기지만, 핀란드의 교육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시민들의 압도적 지지가 바탕이 됐다. 1966년 제1당이 된 사회민주당은 인민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꾸렸고 다른 정당까지 가세해 범정파적으로 ‘교육개혁’을 최우선 목표로 정했다. 이후 정권은 바뀌었으나 ‘평등과 협동’ 원칙은 손대지 않았다. 초당적으로 교육개혁의 방향과 원칙에 합의한 뒤 세부 설계는 국가교육청장을 비롯한 교육전문가들에게 맡겼다. 교사 출신의 에르키 아호는 1972년부터 1991년까지 20년간 국가교육청장을 연임하며 오늘날 세계 제1로 평가받는 핀란드 교육개혁을 완성해냈다.

올림픽뿐 아니라 이제는 우리 정치에서도 ‘양학선2’ 같은 남부럽잖은 정책이 나올 때가 됐다. 대선을 앞두고 일자리와 복지, 경제민주화가 최대 쟁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는 게 교육문제다. 우리 교육은 ‘위기’에서 ‘붕괴’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사교육비는 살인적 수준으로 치솟고 청소년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1위다. 그런데도 교육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평등’에서 ‘경쟁’으로 냉·온탕을 오가는 바람에 학생들만 실험실 모르모트처럼 피해를 보고 있다. 백낙청 교수가 이미 갈파했듯이 2013년 체제에서 가장 달라져야 할 것도 교육이다. 이제는 혁명적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고 초당적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될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정파를 넘어 교육개혁기구를 설치하자는 제안이 나온 지는 10년 이상 됐고, 여야와 진보·보수단체 모두 사실 비슷한 얘기를 해왔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도 한나라당과 민주당, 전교조와 한국교총 모두 국가교육위나 교육개혁국민회의 등 이름만 달랐지 초당적 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해 6월 진보교육감들의 교육혁신 선언에 이어 최근 교육개혁100인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초당적인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운동을 벌이고 있다. 국회에 교육계획위원회를 두어 정권과 무관하게 장기계획을 세우자는 심상정 통합진보당 의원의 제안은 검토할 만하다.

교육혁명의 초석을 놓는 데는 이번 국회가 적기다. 대통령 선거 뒤엔 임기 안에 실적을 내려는 욕심 때문에 장기적 계획도, 초당적 접근도 어렵다. 여야가 협력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힘은 유권자들만이 갖고 있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 움직일 때다.
 
< 김이택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일본의 대응이 거세다. 겐바 고이치로 일본 외무상은 독도 영유권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독도를 다루는 전담조직 설치, 한-일 정상회담 보류 등 일본 정부가 검토중이라는 초강경 조처들이 연일 일본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의 고유 영토인 독도에 대한 일본의 공세적 대응은 과거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독도 문제를 국제분쟁화하려는 의도여서 불쾌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독도를 국제사법재판소에 넘기자는 주장에는 자가당착의 요소도 있다. 센카쿠열도 등 자신들이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영토에 대해서는 국제사법재판소행을 반대하면서 독도를 두고서는 국제 재판을 들먹이는 것은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얌체 짓이다. 역사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우리의 고유 영토인 독도를 국제 재판에 넘길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일본의 이런 강경대응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어찌 보면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일본으로서는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격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일본 대응을 고려한 치밀한 전략전술이 우리 정부에 마련돼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 독도 문제는 ‘조용한 외교’만이 해결책의 전부는 아니다. 정치적 승부수를 동원한 고차원적 방정식이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정부가 치밀한 전략을 마련해놓은 흔적은 별로 엿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문제만 해도 그렇다. 국제사법재판소는 국내 재판과 달리 강제적인 관할권이 없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응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런 논란 자체가 우리한테는 득이 될 게 없다. 그것이 바로 일본의 노림수이기도 하다. ‘무대응이 상책이다’ ‘일본이야 떠들든 말든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이다’는 따위는 전략이랄 것도 없다. 정부의 대비책이 그 정도 수준이라면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긁어 부스럼 만들기에 불과할 뿐이다.

한-일 관계의 급속한 냉각 역시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의 역량 등을 감안할 때 임기내 양국 관계의 정상화를 기대하기란 힘들다. 과거사 문제 등 두 나라 사이 각종 현안이 더욱 난마처럼 꼬여버린 상태에서 이 대통령은 차기 정부한테 모든 짐을 떠넘기고 떠날 가능성이 크다. 이제 한·일 양국 정부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강공몰이로는 어느 쪽도 승자가 될 수 없고 해법도 도출되지 않는다. 관계 악화의 장기화는 두 나라 모두 득보다 실이 많음을 유념하기 바란다.


북에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대내외 정책 변화가 역동적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군정치에 초점을 맞췄다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인민생활 향상, 즉 ‘선경정치’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달 보수파 군인으로 선군정치의 핵심인 리영호 총참모장을 해임하고, 그동안 당-정-군으로 분산됐던 경제 정책을 내각이 ‘경제사령부’로서 통일적으로 추진하도록 경제지도체제를 개편한 것이 대표적 예다.
외부 세계를 의식한 발신도 눈에 띈다. 지난 4월엔 로켓 발사의 실패를 즉각 시인하더니, 7월엔 김 제1비서의 부인 리설주를 공개했다. 새로 조직한 모란봉악단의 공연에 미키 마우스 인형이 등장하고, 짧은 치마에 높은 구두를 신은 젊은 여성이 노래를 하는 장면을 방영하기도 했다. 모두 국제 사회에 새 체제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과시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최근 들어선 미국, 중국, 일본과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북의 제2인자로 꼽히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그제 50여명의 대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방문 목적이 나선(나진·선봉)경제무역지대와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 공동개발·공동관리를 위한 양국 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으나, 수행자의 구성이나 방문 일정으로 보아 김 제1비서의 중국 방문을 포함한 포괄적 협력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도 옛 일본군 유골 수습을 명분으로 4년 만에 정부 간 대화를 재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미국과는 4월 로켓 발사 이후에도 계속 대화 창구를 열어 놓고 있다.
결국, 남북 사이만 불통인 채 북과 다른 나라는 활발하게 소통하고 있는 셈이다. 북이 대북 강경정책을 쓰고 있는 남을 따돌리는 탓이 크다. 북은 안팎으로 큰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유독 남에 대해서만 공개적인 비방과 테러 위협을 서슴지 않고 있다. 남북 간의 화해·협력 없이는 다른 나라와의 관계 개선이 제약될 수밖에 없고, 궁극적으로 북을 도울 수 있는 나라는 남이라는 점에서 이는 현명한 태도가 아니다.
 
우리 정부도 5.24 조처에 스스로 발목이 묶여 북쪽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자칫 남쪽만 왕따가 될 수 있다. 명분론에만 매여 있을 것이 아니라, 북의 수해에 대한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인도적이고 쉬운 일부터 관계를 풀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임기가 6개월밖에 남지 않았고 곧 대선국면이 시작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이 대북정책을 전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