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온통 안철수 교수 이야기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안철수 교수의 압도적 지지로 나타나는 것은 심상치가 않다. 서울시장 선거를 넘어서 내년 총선과 대선 판도까지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이란 전망도 속출하고 있다. 언론에서 이름 붙인 것처럼 가히 ‘안철수 쓰나미’라 할 만하다.
하지만 아직도 정치권은 자기 당의 표를 갉아먹는 안철수만 볼 뿐, 안철수의 등장 뒤에 숨겨진 민심의 흐름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
‘정치는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안철수의 등장을 비판하는 제1 논거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이 적실성을 가지려면, 그간 ‘혼자 하는 게 아니었던’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는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 한 달 8·24 주민투표를 치른 한나라당은 ‘오세훈 당’과 다르지 않았다. 서울시 정책투표에 원내 169석의 거대 정당이 중심을 잃고 떠밀려갔다. 당내에서 ‘주민투표 반대’의 목소리가 있었음에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란 식으로 당도 함께 주민투표 판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당 대표의 표현대로 ‘사실상 승리한 투표’(?)라고 하면서도, 곧 이은 서울시장 보선에선 ‘무상급식에 반대하지 않는’, 적어도 ‘무상급식 투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후보를 공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 및 야권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오세훈 시장 사퇴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서울시장 후보 출마 선언이 줄을 잇는다. 그리고 당내 주류와 비주류 간에 세력다툼이 시작되었다. 서울시장 보선의 큰 전략은 세워놓았다. 야권 대통합. 그런데, 이 메뉴는 작년 지방선거 때도 들었고, 4·27 재보선에서도 들었던, 아니 야권이 정권을 뺏긴 이후 4년 동안 고장난 확성기처럼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던 레퍼토리다. 왜 통합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통합을 통해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안철수의 등장과 부상은 기존 정치권의 무능과, 정책 하나하나에도 물든 지나친 정치화의 반작용에 기인한다고 본다. 대중의 눈에 비친 안철수의 이미지에는 기존 정치권이 결여한 점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먼저 청장년층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그들의 고민을 듣고, 그들의 시각에서 생각을 나누는 ‘소통’의 이미지이다. 지난 4년간의 청춘콘서트를 통해서 안철수·박경철은 청년들을 찾아다니며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안철수가 ‘국민 멘토’라고 불리며 수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청년들이 듣고자 하는, 필요로 하는, 위로받고자 하는 말들을 통해 ‘벗’으로서 다가가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둘째, 대중은 안철수의 이미지에서 신실(integrity)을 찾고 있다. 현 정권은 ‘실용’에서 ‘친서민’으로, ‘공정한 사회’에서 ‘공생’으로 일년 단위로 언어공해를 남발했지만, 실질적으로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도, 그 효과도 제대로 이루어진 것은 없다. 빈부 격차는 더욱더 커지고, 가지지 못한 이들의 경제적·사회적 기회 또한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100만부가 넘게 팔리지만, 알면 알수록 정의롭지 못한 비뚤어진 사회구조에 대한 절망과 자괴감만 늘어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지로서의 안철수는 단순한 정치적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담보해 낼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신뢰를 시민들에게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그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거라는 논평에 대한 답이다. 때묻지 않은 정치신인이 변화와 신실함, 자기 성공신화를 걸고 중앙정계에 태풍으로 등장한 사례는 우리만 경험하는 건 아니란 점을 강조하고 싶다.
3대째 중앙정치에서 잔뼈가 굵은 부시와 체니, 럼스펠드 등 공직 경력만 30년이 넘는 이들이 벌여놓은 금융위기, 이라크 전쟁을 청소하기 위해 미국인이 선택한 사람은 중앙정치 경력 갓 3년이 넘지 않는 40대 중반의 흑인 변호사였다.
< 김준석 동국대 정치외교 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