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무용단 ‘짓’(Jit: Stepping through Times) 공연

12일은 Parma 공원서 ‘Arts in the Park’ 프로그램 탈춤 워크샵

 

 

캐나다 한국무용연구회(KDSSC: 예술감독 김미영)가 한카수교 60주년 기념 공연 ‘짓’(Jit: Stepping through Times)을 13일(일 ) 오후 6시 토론도 한인회관 대강당에서 펼친다. 이번 공연에는 김미영 무용단과 함께 한국에서 온 박진미 무용단원들도 가세해 화려한 무대를 장식하며, 그러티아 색소폰 앙상블이 찬조출연할 예정이다.

현편 한국무용연구회는 12일 Toronto Arts Foundation의 후원으로 Parma 공원에서 오후 2시부터 ‘Arts in the Park’ 프로그램 탈춤 워크샵을 진행한다. 이날 참여자에게는 무료로 plain mask를 제공한다. 탈춤은 한카수교 60주년 공연에 참여하는 한국 장요한 선생의 지도로 스텝을 배운 뒤 스스로 만든 탈을 쓰고 함께 탈춤을 추어보기도 할 수 있다.

4시30분부터는 1시간동안 카나다 한국무용연구회 멤버들과 한국 대구광역시 문화재단 지원으로 토론토에 오는 박진미 무용단의 다양한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                 < 문의: 416-443-9329 >

 

이윤신 식품영양학 박사 강사로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홍푹 정신건강협회가 당뇨관련 온라인 세미나를 8월29일(화) 개최한다.

이번 세미나는 캐나다와 한국 공인 영양사인 이윤신 식품영양학 박사가 ‘당뇨 예방과 당뇨병이 있는 한국인을 위한 식단’이라는 주제로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진행한다.

자세한 사항은 강소연 Mental Health Worker (skang@hongfook.ca) 에게 문의하면 되며, 미리 등록(https://forms.gle/egDwM1Yeta8eKLPu8) 하는 이들에게는 줌링크를 보내준다. < 문의: 416-493-4242, 437-333-9376 >

 

 

[편집인 칼럼] 잼버리 소동이 말해주는 것

● 칼럼 2023. 8. 11. 12:24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한마당 편집인 칼럼]  잼버리 소동, 또 하나의 징후

 

 

지구촌 청소년 야영축제인 세계 잼버리가 ‘난민 체험’ ‘생존게임’으로 비아냥 당하며 낯뜨거운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대한민국에서 열린 국제행사로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여름·겨울 올림픽과 월드컵을 포함해 수많은 세계적 스포츠대회와 국제행사들을 개최해 오며 빈틈없는 준비와 운영으로 정평이 난 한국에서 어찌 저런 일이 벌어졌는가~? 국내는 물론이고 캐나다를 비롯한 전세계 한인동포들이 하나같이 탄식을 쏟아내고 있다.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는 치열한 경쟁 끝에 유치해 5년여 동안 1천여 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는 행사다. 그것도 3개 부처의 장관 3명이 공동위원장이고, 대통령이 휴가 중임에도 개영식에 성대한 의전예우를 받으며 참석해, ‘전폭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던 자신의 치적으로 삼으려던 이벤트였다.

그런데 개막하자 마자 준비부족에 운영미숙이 드러나 그야말로 엉망진창인 ‘총체적 난맥상’이 되어 국가망신을 사고 있다. 국내외 빗발치는 질타에 놀란 정부가 허겁지겁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어서 행사는 상채기만 남은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World Scout Jamboree’는 세계스카우트연맹(WOSM)에서 주최해 4년마다 열리는 전세계 보이스카우트 회원들의 합동 야영대회이자 각국의 문화 교류를 위한 대규모 청소년 축제다.

나라마다 중·고등학교 스카우트 대원을 중심으로 대표단을 구성해 세계잼버리에 참가한다. 이들은 야영생활을 하면서 국제적 우의를 쌓고 형제애를 나눈다. 피부색·종교·언어를 초월해 각종 행사와 과정활동에 참여하면서 “개척정신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고, 심신의 조화로운 발달과 자아실현을 도모하여 국가 발전과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잼버리 정신을 경험하고 체득한다.

올해 25회 대회에 이르기까지 캐나다도 두 차례 세계잼버리를 개최한 적이 있다. 1955년 북미에서는 처음으로 제8회 행사를 온타리오 나이아가라의 On-the-Lake에서 71개국 1만1천여명이 참가해 성대히 열었다. 이어 1983년에 제15회 행사를 앨버타주의 카나나스키스에서 106개국 1만47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무난히 개최했다.

한국에서는 1991년 8월 강원도 고성군에서 제17회 대회를 ‘세계는 하나’라는 주제로 처음 열었다. 당시엔 잼버리 사상 가장 많은 135개국의 1만9천여명이 참가했고, 이 행사의 성공을 계기로 세계 청소년들에게 한국의 이미지와 관심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는 호평과 함께 이후 참가국과 인원이 크게 늘면서 한국 스카우트도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은 그후에도 아시아태평양 잼버리와 국제 패트롤 잼버리 등 30~50개국의 수천에서 2만명 안팎이 참가하는 잼버리를 아무 문제없이 여러차례 개최해 신망을 얻었다. 그런 저력을 바탕으로 이번에 158개국 4만3천여명이 참가하는 세계잼버리 역대 2번째 큰 규모의 대회를 유치했는데, 뜻밖에도 ‘개망신’의 화를 자초한 것이다.

 

경제력이 커지고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선진국 소리를 듣게 되어, 우리들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게 엊그제다. BTS를 필두로 한 K-pop과 영화, 음악 등 수준높은 문화예술이 세계를 주름잡는 자랑스런 나라 내 조국, 자부심이 가슴을 부풀렸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새 정부 들어선지 겨우 일년여 만에 급전직하, 날개없는 추락에 얼굴을 들기가 부끄러운 지경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젊은이 159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 대처에서 민낯이 드러난 바 있다. 사전 대비는 없고, 일이 터지자 갈팡질팡, 책임은 미루고 떠넘기다 하위 실무자들만 처벌당한다. 위기 대처능력 부족에 책임감조차 없다. “내가 간다고 달라질 게 있나?”라는 공통의 발언에 저들의 무능 무책임과 천박한 인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람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존중이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공복의 자세와 역량이 되어있질 않은 부류들이다. 그러니 정권이 바뀐 뒤 검사정치와 경제악화, 언론장악, 매국적 굴욕외교와 안보파탄 등등 ‘총체적 추락’ 외에는 제대로 기억되거나 이뤄진 치적 자체가 없다. 안팎에서 치룬 행사마다 탈이 나고 뒷말이 무성하다. 잼버리 참사가 벌어진 이유나, 터진 뒤의 황망함도, 탓하고 발뺌하고 쪼잔하게 떠넘기며 덮어씌우는 모양새 역시 한치 다름없는 그들의 공식이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그랬고 잼버리 폭망도 연장선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참사들은 이어질 것이다. 일본의 공범을 자처한 핵폐수 방류도 다가오고 있다.

무능하면 그만 둬야 맞다. 자신 없으면 당장 손을 떼야 한다. 그런데 자신의 무능과 무지 무책임의 들보는 외면한 채 남의 눈의 티끌만 헤집고 우겨대니, 답답해 울화가 솟는 고통과 인내는 고스란이 국민 몫이다. 국격 손상 나라 망신에, 땅에 떨어진 민족 자존심을 회복하려면 애먼 국민들이 앞으로 얼마나 땀과 피와 정력을 쏟고 감내해야 할지 모른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이번 ‘직접 피해자’들이 전세계에서 온 미래의 주역들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후진 현실을 피부와 가슴으로 느꼈을 청소년들의 불쾌한 기억은 앞으로 수 십 년, 대한민국에 드리워질 어둡고 긴 그림자로 남을 것이다.     < 편집인 >

 

[목회칼럼] 가득할 복(畐)옆에 무엇을 둘 것인가?

● 칼럼 2023. 8. 11. 12:19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목회칼럼- 우리 교회 기쁨과 소망]

가득할 복(畐)옆에 무엇을 둘 것인가?

 

함진원 목사 < 순례길교회 담임 >

 

복(福)하면 떠오르는 성경인물은 아브라함입니다. 그의 이름이 아브람(큰 아버지)에서 아브라함(열국의 아버지)으로 바뀌기 훨씬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복 또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그의 이름을 떨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정말 복을 받은 인물이었을까요?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았을 때는 그의 나이 75세, 그가 드디어 아들을 얻었을 때는 100세... 약속이 이루어지기 까지 무려 25년이 걸린 것입니다. 말이 25년이지, 이 기간동안 아브라함과 사라가 겪은 일들을 생각해 보면 ‘그가 정말 복을 받은 인물이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단 그는 나그네가 되는 일을 감당해야 했고, 아름다운 아내로 인해 자신의 안전을 전전긍긍해야 했고, 처음엔 재산도 있었지만 나중엔 목숨이라도 붙이자고 애굽으로 들어가 구걸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주 긍정적인 시선으로 봐줘서 아브라함이 자신을 사라의 오빠라고 (두번이나) 속이는 행위도 결국은 자신이 죽으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지 못하게 됨으로, 그것을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처신이었다 해도, 25년이라는 시간의 무응답은 복(福)과는 거리가 먼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의 인생을 복의 근원이라고 규정 지은 것일까요? 이 25년의 세월도 그가 복의 근원임을 말하고 있을까요?

복(福)이라는 단어는 ‘가득할’ 복(畐)자 옆에 ‘보일’ 시(示)자가 있습니다. 시(示)자는 제단의 모양에서 나온 상형문자인데, 신과 연관이 있는 문자입니다. 신에게 보여주는 것도 의미하지만, 신이 보여주는 것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시고 채워 주시는 것이 복(福)입니다.

그런데, ‘가득할’ 복(畐)자 옆에 사람(人)이 들어가면, 의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인(人)+ 복(畐)= 핍박 할 핍(偪)자가 됩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을 봐도 그가 뭔가를 스스로 이루려 할 때마다, 오히려 걱정거리가 하나씩 늘어만 갔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결국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스스로 보이시고, 말씀하시고, 그와 동행하는 것, 바로 그것이 진정한 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00세가 되어 아들을 얻은 순간부터 비로소 복의 근원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순간부터 그는 이미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복의 주체는 그의 소유에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복의 근원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걷는 길을 함께 동행하셨습니다. 동행하며 그의 실패와 실수를 다 수습해 주십니다. 그의 결핍을 채워 주십니다. 25년의 세월은 어쩌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훈련시키고, 가르치는 가운데 그와 함께한 아주 의미있는 복된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가득할 복(畐)자 옆에 무엇을 둬야 할까요?  하나님이 함께 하실 자리를 두시고, 그분이 개입할 여지를 두시고, 그분과 함께 할 시간을 두십시오.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福)된 순례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