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녹음전화 로보콜로 부당이득연방통신위, 해명 요구

        

불법 로보콜(자동녹음전화)로 막대한 실적을 올린 미국의 텔레마케터 2명이 연방 규제 당국에 적발돼 천문학적인 벌금을 물게 됐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9, 텍사스 주에 거주하는 건강보험 텔레마케터 존 스필러와 제이콥 미어스에게 사상 최대 규모인 22500만 달러(2700억 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스필러와 미어스는 작년 초 4달여에 걸쳐 가짜 발신번호로 10억 건에 달하는 자동 스팸 전화를 걸었다가 꼬리가 잡혔다. 인디애나·미시간·미주리·오하이오·노스캐롤라이나·아칸소·텍사스 주 검찰총장이 스필러와 미어스, 그리고 이들의 사업체인 '라이징 이글'(Rising Eagle)·'제이스퀘어드 텔레콤'(JSquared Telecom)을 연방 '전화이용자보호법'(TCPA) 위반 혐의로 기소했고, FCC는 이 사안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FCC는 이들의 로보콜이 자동메시지로 애트나(Aetna)·유나이티드헬스(UnitedHealth) 등 대형 건강보험사의 보험 플랜을 제안한 뒤 소비자가 상세 정보를 얻기 위해전화기 버튼을 누르면 해당 회사가 아닌, 자신들의 보험 상품을 팔기 위한 콜센타로 연결했다고 전했다. 이어 미주리주 검찰총장이 지난해 '라이징 이글'의 최대 고객 '헬스 어드바이저오브 아메리카'(Health Advisors of America)를 텔레마케팅 규제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면서 문제가 수면에 드러났다고 밝혔다.

FCC는 이들이 소비자를 속일 목적으로 발신자 ID를 위조하고 수신거부 목록에 있는 고객에게 의도적으로 전화를 거는 등의 불법 행위를 했다며 "소비자를 기만하고 귀찮게 할 뿐 아니라, 전화가 마치 제3의 회사에서 걸려온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제3의 회사가 소비자의 항의 전화를 받거나 소송 협박을 듣도록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벌금은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며, 스필러와 미어스는 FCC에 해명할 기회를 부여받았다.

로보콜이 소비자들을 괴롭히는 문제로 대두되면서 FCC는 통신사업체에 대응 조치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올초 로보콜 강력 규제를 위한 '로보콜 남용 단속 및 범죄 제지 법안(TRACED Act)'에 서명했다. 이 법에 따라 불법 로보콜에 대한 벌금은 건당 1만 달러로 상향 조정됐으며, 통신사는 고객이 원할 경우 추가요금 없이 로보콜 차단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교류협력법 위반 남북정상 합의 위반 접경지 주민 생명안전 위험

                        

통일부는 10일 북한이탈주민단체(탈북민)인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큰샘’(대표 박정오)이 전단·패트병을 북쪽에 보낸 행위를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한 미승인 반출로 판단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고발)하고, 법인 허가 취소 절차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대북전단과 관련한 정부 대응의 무게중심을 기존의 처벌 없는 단속에서 처벌을 통한 원천 차단으로 옮기겠다는 선언이다.

북한 당국이 남북 사이 모든 직통 연락선을 차단하며 대남 강경 기조로 돌아선 직접 원인인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원천 차단해 남북관계의 추가 악화를 막고, 반전의 계기로 삼으려는 정책으로 풀이된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어 발표한 대북전단·패트병 살포 관련 정부 입장을 통해 정부는 오늘(10)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법인 설립 취소 절차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상기 대변인은 두 단체가 대북전단 및 패트병 살포 활동을 통해 교류협력법의 반출 승인 규정을 위반했으며 남북 정상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해, 남북 간 긴장을 조성하고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안전에 대한 위험을 초래하는 등 공익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경찰력을 동원해 대북전단 살포를 단속한 사례가 있지만,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교류협력법 위반으로 판단해 사법적 처벌 절차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행 교류협력법은 물품 등을 북쪽으로 반출하려면 사전에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13), ‘미승인 반출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271). 역대 정부도 경찰관직무집행법(51) 등을 근거로 대북전단 살포를 단속했지만, 처벌 조항이 없어 원천 차단에 한계가 있었다.

통일부는 대북전단 살포 단속에 이전과 달리 교류협력법을 적용하기로 판단한 핵심 이유로 20184·27 판문점선언에 따른 사정 변경을 들었다. 4·27 판문점선언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 중지”(21)를 명시하고 있다.

앞서 20162월 대법원은 대북전단 살포 행위가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신체에 급박하고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킨다국가는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대북전단 처벌 통한 원천차단남북관계 경색에 강경 전환

통일부가 10일 전단과 페트병을 북쪽에 보내온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 두 북한이탈주민(탈북민) 단체를 실정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법인 취소 절차를 밟겠다고 밝힌 건, 정부의 대북전단 대응 기조 전환 선언이다. ‘처벌 없는 단속에서 단속과 처벌, 원천 차단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것이다.

통일부가 대북전단 살포 행위 처벌의 근거로 내세운 법률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교류협력법)이다. 교류협력법은 131항에서 물품 대북 반출은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하며, 27조에서 미승인 반출은 징역(3년 이하) 또는 벌금(3천만원 이하)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물론 문재인 정부에서도 대북전단에 교류협력법을 적용하지는 않았다. 사정이 있다. “전단 살포는 북한의 불특정인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 교역에 해당하지 않아 통일부 장관의 승인 대상이 아니다라는 이명박 정부의 유권해석이 있었다. 통일부가 그동안 교류협력법으로 대북전단 살포를 단속·처벌하려는 의원입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온 배경이다.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교류협력법을 위반한 미승인 반출로 판단해 처벌을 추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통일부의 10일 발표를 두고 미래통합당 등 보수 야당과 보수 언론의 비판이 예상되는 이유다.

이를 의식한 듯 통일부는 대북전단 살포 단속·처벌에 교류협력법을 적용하겠다고 법률 유권해석을 바꾼 사정 변경사유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통일부 당국자들이 밝힌 사정 변경사유는 전단을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 중지를 명시한 4·27 판문점 선언 접경지 국민의 생명·신체에 대한 급박하고 심각한 위험을 이유로 국가(정부)의 대북전단 살포 제지가 적법하다고 한 대법원 판결(2016225) 대북전단을 매개로 한 남북 사이 전염병 전파 우려 생명과 안전에 위협을 느낀다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민원 라디오·달러·유에스비(USB)·쌀까지 담아 보내는 전단 살포 방식의 다양화·대규모화 등이 그것이다.

사실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교류협력법 위반으로 단속·처벌해야 한다는 법률가들의 지적은 전부터 있었다. 예컨대 김하중 국회 입법조사처장은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던 201410월 언론 기고문에서 대북전단 살포는 교류협력법상 통일부 장관 승인 사항이라며, 미승인 살포 행위를 단속·처벌하지 않으면 오히려 직무유기죄(형법 122)에 해당한다고 짚었다. 대북전단은 교류협력법에 따라 반출 때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광고물 또는 인쇄물에 해당(통일부 고시 2012-2호 등)한다는 것이다.

통일부는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의 법인 허가 취소 절차에 착수하겠다고 밝혀, 대북전단 살포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드러냈다. 두 단체는 통일부에 등록된 비영리법인이다. 민법은 특정 비영리법인이 공익을 해치거나 설립 목적 밖의 활동을 하거나 허가 조건을 어겼을 때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정부의 통일정책 추진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의 활동을, 큰샘은 탈북청소년 지원을 내세워 설립 허가를 받았다두 단체가 이를 어겨 허가 취소 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와 박정오 큰샘 대표는 친형제 사이인 탈북민이다.

통일부의 이런 정책 기조 전환엔 정부와 접경지역 지자체·주민의 제지·반발에도 한국전쟁 70돌인 26일 대북전단 100만장을 살포하겠다고 공언해온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막무가내식 태도와 북한 당국의 반발 등이 두루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통일부의 10일 발표는 청와대 등 관계부처의 조율을 거쳐 이뤄졌다. 범정부 차원의 기조 전환인 셈이다. 대북전단 살포 단속·처벌 방침을 둘러싼 국내 논란의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더라도 4·27 판문점 선언 이행 의지를 강조해 남북관계의 추가 악화를 막고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반전의 계기로 삼겠다는 포석이다.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연일 항의 군중집회 등을 조직하고 이를 <노동신문>에 닷새째 대대적으로 보도해온 북한 당국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주목된다.

경찰은 대북전단 살포를 막으려 해당 탈북민 단체의 주요 이동 지점인 경기도 파주·연천지역 36곳에 5개 중대(400), 강화에 2개 제대(60) 등을 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 이제훈 기자 >

 


스웨덴 국민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던
국민 총리올로프 팔메.

      

검찰, 용의자 20년 전 사망해 사건 종결

새 증거 제시 안해용의자 전처 등은 부인

 

스웨덴 국민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던 국민 총리올로프 팔메를 저격한 암살범이 34년 만에 밝혀졌다. 하지만 검찰이 지목한 범인은 이미 20년 전 사망한 인물이라, 팔메의 죽음을 둘러싸고 제기돼왔던 수많은 음모론을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팔메 암살 사건 수사를 맡았던 크리스터 페테르손 주임검사는 10(현지시각) 기자회견을 열어 팔메 전 총리를 암살한 것은 한 보험회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근무했던 스티그 엥스트롬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페테르손 검사는 용의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기소할 수 없다며 사건 종결을 발표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검찰이 밝힌 용의자 엥스트롬은 1986228일 팔메 암살 사건 당시 주요 용의자로 언론에 오르내렸던 인물로, 2000년 이미 사망했다. 엥스트롬은 사격클럽 회원으로, 팔메와 그의 정책에 반감을 가졌고, 사건 당시 현장에 있던 일부 목격자들은 엥스트롬과 인상착의가 같은 인물이 현장에서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며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현장에 같이 있던 팔메의 아내 리스베스가 다른 인물을 용의자로 지목한 것을 비롯해, 다른 목격자들은 그를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등 진술이 엇갈렸다. 엥스트롬은 당시 자신이 현장에 있었지만 팔메를 소생시키기 위한 시도를 했고,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과 함께 추격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후 경찰은 엥스트롬의 진술을 신뢰할 수 없다며, 관련 없는 인물로 분류했다.

팔메는 두 차례 총리직을 역임하며 노동조합의 권한을 강화하고 스웨덴 복지 체계를 확장한 인물로, 스웨덴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았던 정치인이다. 그는 19862월 아내와 함께 스톡홀름 극장을 떠나 귀가하던 중 총에 맞아 살해당했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용의자는 당시 팔메 총리의 뒤에서 총을 쏜 뒤 도주했다. 이와 관련해 1만명 이상이 조사를 받고 134명이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수사당국은 끝내 범인을 찾지 못했다. 이에 팔메의 좌파적 정책에 반감을 갖고 있던 스웨덴 군 등 우파 세력은 물론, 미국 중앙정보국(CIA)이나 터키의 쿠르드 분리주의 무장조직인 쿠르드노동자당혹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첩보기관이 배후에 있는 게 아니냐는 음모론이 제기돼왔다.

<로이터> 통신은 검찰의 팔메 암살범 지목에도 좀처럼 음모론은 잦아들 것 같지 않다고 평가했다. 검찰이 이날 엥스트롬을 용의자로 지목하면서도 새로운 증거 등 수사 진전 상황을 발표하지 않은 것도 그 이유다. 게다가 엥스트롬의 전처가 지난 2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겁이 많아 살해를 저지를 위인이 못 된다고 밝히는 등 반론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 이정애 기자 >


정세현 민주평통 부의장, 회고록 출판 기념회서 밝혀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1945616만주국 싼장성 자무쓰시’(현 중국 헤이룽장성 자무쓰시)에서 태어났다. 세상의 빛을 처음 본 지 두달 만에 광복을 맞아 아버지의 고향 전라북도 장수로 귀향했다. 일제강점기의 끄트머리에 세상에 나와 한국전쟁과 오랜 분단의 세월을 헤쳐온 그의 삶은 곡절 많은 한국 현대사 그 자체다. 그는 서른셋의 서울대 외교학과 박사학위 과정 학생이던 197711월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공산권연구관실 보좌관(4)으로 북한과 인연을 맺었다. “북한 자료도 맘껏 보고 월급도 챙길 수 있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첫 걸음이다. 하지만 그는 그뒤로 40년이 넘도록 끝도 시작도 없는 통일의 미로를 헤매고 있다. 운명이다.

북한과 마주한그 긴 세월 속에서 가장 슬픈 기억과 기쁜 기억을 물었다. 10일 오전 서울 창비서교빌딩에서 진행된 그의 회고록 <판문점의 협상가-북한과 마주한 40>(대담자 박인규·창비)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다.

“1994725~27일로 예정된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이 김일성 주석의 사망(199478)으로 무산됐을 때가 가장 실망스러웠다. 우리 민족의 운명이 여기까지인가 하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김영삼 대통령의 통일비서관으로 잠도 자지 않고 회담을 준비하던 때였다.”

그때 그는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북쪽의 경제적 어려움을 풀어주며 군사적 도발을 막고 한반도의 평화를 관리할 합의를 이끌어내려 했다. “김영삼 대통령한테 입력한 개념은 분단 한반도에서 군사적으로 조마조마하게 사는 공포에서 해방되려면 북쪽이 군사적으로 대남 적대행위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하고, 그러려면 경제가 어려운 북쪽의 상황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006·15 공동선언의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가장 큰 슬픔은 가장 큰 기쁨의 다른 얼굴이다. 삶의 역설이다. 그가 가장 희망적인 날로 기억하는 건, 2000410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613~15일 평양) 발표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기회를 잃고 우리한테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오나하고 한탄을 했는데, 6년이 지나지 않아 그날이 왔다.” 그는 이 대목에서 환하게 웃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그는 다양한 자리에서 북한을 상대했다. 남북관계가 대결로 점철된 냉전기에서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던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 이후 탈냉전기를 관통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땐 통일부 장관으로 남북을 잇는 길을 맨 앞에서 열어갔다.

687쪽에 이르는 벽돌책인 회고록은 정세현 특유의 입담과 통찰력이 잘 버무려진 생생한 사례와 기록으로 가득하다. 그의 부친은 해방된 조국에서 한의원을 개업했고, 그 덕에 어려서부터 한학에 익숙했다. 70년 분단 사상 최대 인적교류의 장이던 금강산관광사업의 별칭인 햇볕정책의 옥동자는 그의 작명이다. 그는 통일부 장·차관 시절 숱한 출입기자들의 아이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가까워질수록 미국의 간섭은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밀하지만 강력한 압박으로 다가왔다고 그는 회고록 서문에 적었다. 한국 외교의 전제처럼 인식되는 한미공조라는 개념의 탄생과 관련한 그의 전언은 서늘하다. “김영삼 정부 때 핵문제로 미국과 엇박자가 심했다. 그때 미국이 한국을 묶어놓으려고 꺼낸 게 한미공조라는 말이다. 공조를 이유로 사사건건 쥐어박으니 그 기가 센 김영삼 대통령도 결국 미국 하자는 데로 끌려가더라. 1994년 미국의 영변 핵시설 폭격 계획은 지금도 생각만 하면 끔찍하다. 실행됐으면 한반도가 어찌 됐겠나?”

그가 새삼스레 한미공조라는 개념의 본질을 상기시킨 건, 20189·19 남북군사합의 뒤 미국이 꺼내든 한미 워킹그룹한국 외교부가 아무 생각 없이 덥석 받아들인데 대한 짙은 아쉬움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한미워킹그룹은 제재를 빌미로 남북의 자율적 협력을 가로막는 미국의 덫이다.

출판사 창비는 정세현의 회고록을 학자의 머리, 행정가의 눈, 시민의 가슴으로 북한을 바라본 평생의 기록이라 표현했다. 과장은 없다. 그는 40년 넘게 북한과 마주한 고위공직자일뿐더러, <모택동의 대외관 전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중국전문가이자 국제정치학자다. 그는 기대를 거는 것은 국민의 힘이라고 강조한다. < 이제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