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취재 방식 변화가 몹시 불편한 조선일보

● COREA 2025. 8. 3. 11:33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질문 기자 생방송에 부정적 측면만 강조
신규 출입 인터넷 매체도 ‘유튜버’로 폄하
수준 낮은 질문 하는 자사 기자부터 보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브리핑룸에 카메라를 추가로 설치해 질문하는 기자의 모습을 생방송으로 공개하기로 했다는 방침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TV 화면 갈무리.
 

윤석열 일당이 일으킨 내란과 외환 음모를 이겨내고 민주시민이 세워낸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지 두 달이 가까워진다. 지난 6월 24일에 도입한 대통령실의 ‘쌍방향 브리핑‘ 제도도 시행 한 달이 넘었다. 새로운 제도의 신선함을 마음껏 느끼고 있다. 질문한 기자들의 고충을 호소한다는 말이 들린다. 얼굴을 가린 채 용기 있는 척 호기(豪氣)를 부리던 기레기들이 익명성에서 누리던 사치를 버려야 하는 괴로움은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왜 자신들이 하는 일을 국민께 직접 알릴 수 있는 호기(好機)라는 생각은 못 하는 걸까?

 

“‘비판적 질문한 기자는 공격당해’… 대통령실, 알면서 왜 생중계할까”... 방씨조선일보 김태준 기자가 7월 23일에 쓴 기사 제목이다. 비판과 견제는 정상적인 언론인이 수행해야 할 본연의 책무다. 하지만 아직도 구태에 젖어 본질을 벗어난 채 거들먹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태도가 있다면 마땅히 국민으로부터 비판받아야 한다. 그래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김 기자의 질문 “...왜 생중계할까”에 대해 답하려 한다. 국민의 언론 자유 즉 알 권리를 위해서다.

 

국민주권정부는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발표자와 질문하는 기자를 카메라가 번갈아 비추는 방식의 ‘쌍방향 브리핑’ 제도를 도입했다. 그늘에 숨어 권력과 짬짜미를 즐기던 일부 기레기들이 마치 언론의 자유가 침해되는 듯 수선을 피우지만 그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처음엔 낯선 제도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부 시민들이 과격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시간이 가면 그들도 차차 분노를 가라앉히고 제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윤석열 일당의 내란을 막아선 자랑스러운 대한국민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기사 인터넷판 화면 갈무리. 

 

내란수괴 윤석열은 취임 초에 도어스테핑이라며 출근길 문답을 시도한 적이 있다. 우여곡절 끝에 별다른 해명도 없이 6개월 정도에 걸친 반짝 행사로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기자에 대한 질문 제한이나 윤석열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 등으로 논란만을 불러일으킨 채 그야말로 허무한 정치쇼로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특히 MBC 기자의 발언을 핑계로 기다렸다는 듯이 국민의 알 권리를 저버린 작태는 윤석열 내란 집단의 언론관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당시에도 질문자를 탓하며 언론 탄압을 자행하던 정권에 아부하던 자들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모른다.

 

방씨조선일보가 브리핑의 질이나 질의·응답 수준이 높아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고 걱정이다. 그런 예를 하나 들어야겠다. TV 조선 최민식 기자가 한 질문을 그대로 옮겨본다. 이재명 대통령이 노동자 사망사고가 잦았던 SPC 공장을 방문해 가졌던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을 비틀어보려 일부러 던진 비뚤어진 질문이다. “앞으로 8시간을 넘어가는 초과 야근은 대한민국에서는 인정되기 어려운 것이라고 보면 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대통령의 뜻이 그런 방향인지 궁금합니다.” 억지나 심술만 가득하다. 질문을 참고 들어야 하는 국민이 화끈거린다. 국민은 그들을 믿고 질문권을 위임한 사람들이다. 이런 엉터리 질문을 해대는 자를 나무라지 않는다면 국민이 의무를 저버리는 것은 아닐까?

 

브리핑을 지켜보면서 질문자들이 불편하기는 하겠다고 생각했다. 길지 않은 질의와 응답 가운데서 질문자와 답변자의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질문을 하면서 격에 맞지 않게 “말씀을 주셨다”라느니 “여쭤본다”라느니 하는 말이 튀어나온다. 내란수괴 윤석열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던 ‘외람이’가 쓰는 말투를 다시 듣고 있자니 화가 치민다. 국민은 여과 없이 진실을 밝혀내는 자리에 임하는 당당한 각오를 기대한다. 질문자의 수준이 적어도 세계 민주주의의 표본이 되는 대한국민 정도는 돼야 한다.

 

김 기자는 “어느 정도의 비판은 (기자가) 마땅히 감수해야 할 숙명이기도 하지만 인신공격이나 도를 넘는 조롱까지 견뎌야 할 의무는 없다”며 “특히 여성 기자의 경우 성적 폭력에 이르는 모욕을 겪는 경우도 일반적”이라는 언론노조의 입장을 보도했다. 과연 이 내용이 얼마나 사실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이런 불미스러운 일은 반드시 새로 도입된 브리핑 방식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떳떳하다면 그야말로 언론 자유를 위해서 당당하게 대처하면 될 일이다.

 

김 기자는 또한 “‘본질은 기자가 실명을 밝히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대통령실 브리핑 내용이 충실해지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며 정치권의 입장을 전한다. 슬그머니 수치심이 올라온다. 대한국민의 수준을 함부로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따옴표를 했으니 누군가 이런 말을 직접 했다는 뜻이리라. 이런 인식을 가진 자가 정치권에 있다니 한심하다. 대체 대통령실 브리핑의 본질이 기자 실명을 밝히는 데 있다고 주장할 국민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 망상에 빠져 있으니 아무렇지 않게 내란과 외환을 획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선일보 기사 인터넷판 화면 갈무리.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질문하는 기자는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하는 것이다. 기자는 국민이 진실을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진실을 찾아내고 알리는 자리는 가시방석일 수 있다. 하지만 언제라도 뜻을 함께하는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또한 추상같은 꾸지람을 내릴 국민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에 하나 기자 개인을 드러내거나 자신이 속한 회사에 충성하기 위하여 그 자리에 있다는 착각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훌훌 자리를 털고 나가면 될 일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다행히 ‘뉴스공장’, ‘취재편의점’, ‘고발뉴스’가 대통령실에 출입하게 되었단다. 방씨조선일보 주희연 기자가 7월 25일에 “대통령실 기자단에 ‘김어준 유튜브’ 들어간다”는 기사를 썼다. “정치권, ‘좋은 소리만 듣겠다는 것’”이라는 평을 곁들였다. 가난한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몹시 아픈가 보다. 하지만 방씨조선일보의 시샘은 쌍방향 브리핑 제도를 잘 알고 있는 국민에겐 먹힐 리 없다. 이번에 대통령실에 새로 들어가게 된 출입 기자들은 새 바람을 일으켜주길 바란다. 방씨조선일보가 실력이 딸려 정 버티기 어렵다면 제 발로 걸어 나오길 바란다.

 

다시 방씨조선일보는 폐간만이 답이다.    <  이득우 언소주 정책위원·조선일보폐간시민실천단 단장 >

 

독립투사이며 반독재 민주투사 장준하 50주기

● Hot 뉴스 2025. 8. 3. 11:30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한평생 반란세력에 항거한 그의 정신을 기리자

 

                                                    고상만 인권운동가(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사무국장)

 

장준하 선생은 일본군에 징집됐다가 1944년 중국에서 목숨을 걸고 병영을 탈출했다. 탈출 후 광복군으로 편입돼 미 OSS 훈련을 받고 국내 침투를 계획하다가, 급격히 이루어진 일본의 항복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광복 후 백범 김구 선생의 비서로 환국했다. 장 선생은 박정희가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자 <사상계> 잡지를 발행하는 언론인으로, 그리고 생애 막바지에는 제7대 야당 국회의원과 재야 민주투사로 줄기차게 박정희 독재에 맞서 싸웠다.

독립군 출신으로, 일본군 장교 출신 박정희의 숙적일 수 밖에 없었던 그는 박정희 유신독재가 절정을 치닫던 1975년 8월 17일 인적 드문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사했다. 독재권력이 내세운 공식 사인은 실족사였지만 민주진영에서는 아무도 그 발표를 믿지 않았다. 그의 두개골 후두부에는 둔기로 맞은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직경 6cm의 큰 함몰 자국이 있었다. 그는 조국의 광복과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일생을 바친 ‘대한민국의 진정한 애국자’였다.

 

중앙정보부 기록에서 명백히 드러난 장준하 탄압 흔적

 

나는 지금까지 몇 권의 책을 썼는데 그중에 두 권이 이 분, 장준하 선생에 대한 이야기다. 한 권은 그의 40주기 되던 2015년에 쓴 평전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이고, 다른 한 권은 2003년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 조사관으로서 그의 사인 의혹을 추적한 책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이다. 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1960년대 이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가 작성한 장 선생 관련 미행 사찰과 도감청 기록을 입수하여 샅샅이 살펴봤다. 이를 통해 박정희 독재 정권이 얼마나 악랄하게 장 선생을 탄압했는지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고상만 지음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기록 중에는 장 선생이 집 안방에서 통화한 전화통화 내역도 많이 있었다. 일상의 소소한 통화조차도 중정은 엿듣고 있었던 것이다. 장 선생이 어디를 갔으며 누구와 만났는지는 기본이었다. 이처럼 자신이 철저히 감시되고 미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장 선생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생애 마지막에 이르러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집에서 마당 변소간(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감시받으며 살고 있다”고 호소할 정도였다. 특히 1973년 12월 장 선생이 주도한 ‘개헌 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이 일주일 만에 무려 30만 명의 국민이 참여하는 등 폭발적 반응을 일으키자 그 감시와 탄압은 극에 달했다.

 

그렇게 관련 기록을 읽던 중 나는 한 대목에 이르러 결국 분노로 인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잔인해도 이리 잔인할 수 있을까. 1974년 1월 26일에 있었던 장준하 선생의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피의사건’ 증인신문 조서를 읽으면서였다. 대통령 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꾼 유신 악법을 개정 이전의 헌법으로 돌려놓으라는 요구를 담은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한 것이 장 선생의 죄였다. 처음엔 재판을 받는 장 선생이 인간적으로 진심 불쌍하다는 연민을 느끼다가, 마지막엔 독재자 박정희를 향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유죄 정해진 법정에 부인과 자녀를 증인으로 세운 독재정권의 잔인함

 

그러한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된 세 사람이 있었다. 장 선생이 구속되기 전, 74년 1월 11일 <크리스찬 사이언스 모니터> 도쿄 특파원 엘리자베스 폰드 기자와 <뉴욕타임스> 도쿄 특파원 비터 휠드 기자를 집에서 만나 유신헌법을 비난하는 인터뷰를 한 사실, 그리고 그에 앞서 74년 1월 9일 미국 대사관 소속 정치담당 2등 서기관 보드만의 숙소에 가서 면담한 사실을 입증할 증인이었다. 그들에게 유신헌법을 비난한 것이 죄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재판의 증인으로 채택된 사람들의 이름을 확인한 순간 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증인이 장 선생의 부인 김희숙 여사와 장남 장호권, 장녀 장호경이었기 때문이다.

 

알려진 것처럼 긴급조치 위반 재판은 형식적이었다. 민간인 신분임에도 군사재판에 회부하였고 기소 자체가 이미 유죄였던 것이다. 그런 재판에 불리한 증언을 하라며 부인과 자식들을 증인으로 끌고 온 독재자 박정희. 그때 법정으로 끌려나온 처, 자식을 바라보고 있었을 장 선생의 심정을 생각하니 나는 정말이지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사랑하는 남편과 아버지의 구명은 고사하고, 해서는 안 될 진술을 강요당하고 있던 그 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것을 두고 어찌 박정희 18년 통치를 ‘독재’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결국 1974년 1월,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죄’로 구속된 장 선생은 군사 재판정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는다. 그의 나이 56세. 선고받은 징역을 다 살고 나오면 71세의 노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음모가 숨어있었다. 당시 우리나라 성인 남성의 평균 수명은 60대 초반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도 좋지 않은 장 선생이 어찌 15년형을 다 살고 71세에 석방될 수 있을까. 결국 박정희의 진짜 목적은 장 선생을 영원히 감옥에 격리시키는 것이었다.

 

병중에도 투쟁 멈추지 않았던 장준하 선생

 

하지만 박정희의 음모는 무산된다. 1974년 12월 3일, 장 선생이 병보석으로 석방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미국이 장 선생의 즉각 석방을 외교적으로 압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 선생의 반독재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감옥에서 얻은 깊은 병에도 불구하고 장 선생은 감옥을 나오자마자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사실은 2004년 3월 어느 날, 당시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 조사관으로서 법정 스님을 길상사로 찾아갔을 때 직접 들은 것이다. 「무소유」로 널리 알려진 법정 스님의 증언이다.

 

“1974년 12월 말이었어요. 구속되었다가 11개월 만에 석방된 장 선생이 서울 종로 조광현 내과에 입원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갔습니다. 장 선생이 엄청 반가워하며 안부 인사를 나눈 직후 갑자기 부탁이 있다며 자신의 베개 밑에서 한 뭉치의 서류를 꺼내 저에게 건넸습니다. 그러면서 누구 누구를 만나 서명을 받아달라고 말했지요.”

 

나는 법정 스님의 말씀에 귀가 번쩍 트였다. 다가서며 “그것이 무엇이었나요?”라고 여쭙자 스님은 ‘유신헌법 개정을 위한 제2차 100만인 서명지’였다고 답하셨다.

 

그랬다. 나는 독재자 박정희가 왜 1975년 8월 17일 포천 약사봉에서 장 선생을 죽일 수 밖에 없었는지 법정 스님의 증언을 듣고 확신했다. 영구집권을 꿈꾸던 독재자에게 장준하는 결코 살려둘 수 없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결국 그의 일상생활,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다가 인적 드문 포천 약사봉에서 ‘제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의 민주주의 밑거름 된 장준하의 치열했던 반독재 투쟁

 

 

돌아가신 날로부터 어느덧 50년 세월이 흘렀다. 올해 50주기를 맞이하며 그 분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다양하게 준비되었다. 먼저 8월 11일(월)부터 17일(일)까지 국회 의원회관 3층 로비에서는 ‘장준하 아카이브 사진전’을 연다. 개막식은 11일(월) 오후 2시. 이어 같은 날인 11일(월) 오후 3시부터는 ‘집중 강연, 장준하를 말한다’ 행사가 개최된다.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는 이부영 전 의원(‘장준하와 한국 민주주의’), 손남훈(‘권력에 저항한 시대정신, 사상계’), 고상만 전 조사관(‘장준하 선생은 타살되었다’)이 차례로 강연한다.

 

또한 8월 17일(일) 오전 10시에는 파주 ‘장준하 공원’에서 <장준하 선생 50주기 추모제>가 거행되며, 같은 날 오후 5시에는 서울 안국동 소재 노무현 시민센터에서 ‘내 영혼 노을처럼 번지리’라는 주제로 <장준하 선생 서거 50주기 추모음악회>가 개최된다. 일제 식민지배와 독재권력에 일생을 통해 항거한 고 장준하 선생. 우리 역시 그의 정신을 잊지 않아야 옳지 않겠나. 이를 다짐하는 50주기 추모행사가 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함께 할 것을 기대한다.

다큐 '추적'은 고발한다, 이명박의 4대강 악행

● COREA 2025. 8. 3. 11:27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한 다큐멘터리스트의 17년에 걸친 집념의 결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언론 쪽에서 종종 쓰이는 비속어 중의 하나가 ‘다구빨’이다. ‘다구’는 ‘(깡)다구’를 뜻하는 것이고 여기에 ‘빨’을 붙인 ‘다구빨’이란 깡다구를 구사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다구빨이 좋았던 인물은 예컨대 마이클 무어 같은 감독이었다. 그는 자신이 타겟(?)으로 삼은 인터뷰 대상을 향해 무조건 들이대는 인간이다. 그게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하는 질문이든, 화가 나게 하는 질문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원하는 답을 얻어 내는 데 있어 마이클 무어만 한 인간도 없다.

 

최승호 PD가 온 ‘다구빨’로 고발한 이명박이란 인재(人災)

 

 

한국에도 그런 인간이 하나 있는데 바로 최승호이다. 그는 대통령 이명박의 코멘트를 따기 위해 ‘뻗치기(카메라를 설치하고 무작정 기다리는 것)’를 하다 결국 질문을 하는 데 성공해 낸다. “이명박 대통령님. 오랜만입니다. (악수) 대통령님. 대통령님이 언론을 망친 주범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런 말을 얼굴에 대놓고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다큐 후반에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이자 4대강 개발론자였던 박석순을 따라붙는 장면도 최승호의 깡다구를 보여 준다. 박석순은 최승호의 질문을 부정하기 바쁘고 (“아, 내가 한 거 아니라니까!”) 최승호는 결국 짜증을 낸다. “아, 거기에 (당신) 직인이 찍혀 있잖아요?” 영화 거의 마지막에서는 감옥에서 겨우 2년여를 살다가 나온, 경호원에게 둘러싸인, 다 늙은 이명박에게 접근해, 역시 이제는 많이 늙은 최승호가 또 들이대기 시작한다. “운하 때문에 강이 저수지가 돼서 녹조가 창궐한다고 얘기합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명박은 공부 더 하고 오라고 그를 타박하고, 주변의 이명박 지지자들은 그를 밀쳐낸다. 최승호는 계속 질문을 던진다. 최승호는 그런 사람이다. 다구빨이 좋은 프로듀서이다.

 

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스트인, 그래서 다큐 감독이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그가 ‘다구빨’ 역작 다큐멘터리를 완성해 개봉한다. ‘추적’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제목 그대로 이명박의 4대강 운하 사업, 4대강 개발사업의 문제를 추적하는 내용이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일으킨 환경 폐해를 2008년 그가 대통령이 될 때부터 추적해 왔다. 사실상 17년이라는 시간을 들인 작품이다. MBC PD 시절(<PD 수첩>)에 시작해, 해직당하고, 복직한 후, MBC 사장을 2년 지내다, 다시 재야로 나와 ‘뉴스타파’라는 대안 매체의 다큐멘터리 팀에서 고군분투, 와신상담을 통해 완성한 작품이다. 때문에, 이 다큐는 4대강 개발이라는 이명박 발 인재(人災)를 추적하는 얘기일 뿐만이 아니라 동시에 최승호 자신의 인생역정을 기록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지난 20여 년의 한국 정치사, 현대사를 담아낸 작품이기도 하다.

 

산더미 같은 영상 푸티지가 밝혀내는 이명박의 거짓말

 

 

17년을 한 작품에 매달린다는 것은 무모한 일일 수 있다. 주변을 지치게 하기도 한다. 돈이 모자랄 때도 많다. 그건 일종이 역경이다. 그러므로 이 다큐는 한 개인이 겪은 역경의 드라마이기도 하다. 다큐가 진행되는 동안 최승호도 점점 늙어 간다. 그 모든 장면을 목도하게 되는 관객은 심각한 표정으로 영화를 보게 되겠지만 관객 틈에서 자신의 작품을 보는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장면 한 장면, 한땀 한땀 들인 자신의 노력이 기억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진부한 단어로 치부되지만, 진정성이 느껴진다. 다큐 ‘추적’은 진정성의 힘을 지닌 작품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쓰게 되는 말이다. ‘다구빨’이 좋다.

 

20년 가까이 4대강 문제를 추적해 온 만큼 최승호는 무수하게 많은 인터뷰, 무수하게 많은 분량의 촬영을 했을 것이다. 독일 뮌헨의 이자르강까지 다녀왔다. 그 어마어마한 영상 파일들을 보면서 최승호는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원래 제작국 PD는 그림(영상)을 먼저 편집하고 이후 작가가 그 그림을 보면서 원고를 쓴다. 보도국 기자는 기사를 먼저 쓴다. 그리고 거기에 그림을 덮는다. 그래서 보도국 기자는 찍어 오지 않은 그림에 관한 얘기를 글로 쓰면 안 된다. PD와 기자는 영상을 만드는 방식이 다르다. 거꾸로이다. 최승호 PD는 이번에 기자의 방식을 택한다. 그는 이번 다큐를 마치 한 권의 책을 쓰듯 목차를 정하고 텍스트를 먼저 썼다. 아니 썼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추적’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신화, 2부 거짓말, 3부 추적, 4부 회귀 순이다. 이야기, 서사의 구성을 짜고 자신의 내레이션을 쓰고 또 그리고 그림을 찾아 편집했을 것이다. 그림이 있을지 없을지 걱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푸티지가 있었을 것인가.

 

 

이명박이야말로 거짓말을 “아주 노래처럼 하지 않았나”

 

다큐 ‘추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사전 지식을 정확하게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운하와 보, 취수구 그리고 여울에 대해서이다. 특히 보(洑)와 취수구에 대한 개념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보는 일종의 작은 댐이다. 수량과 유속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설치하는 구조물이다. 취수구는 강 주변의 전답용으로 또는 식수용으로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설치하는 파이프라인 같은 것이다. 둘 다 다소 너무 쉬운 내용이라 다큐는 그것에 대한 설명보다는 이 보가 만들어 내는 환경 폐해, 혹은 취수환경이 극악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물고기들은 여울을 옮겨 다니며 사는데 보는 여울을 파괴한다.

 

건설업자 출신인 이명박은 4대강(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 운하사업이라는 대토목공사를 통해 재래식의 축재를 꾀했다. 그러나 집권 초기 미국산 소고기 파동 등으로 지지율이 급락하자 슬며시 운하란 단어를 개발이란 말로 바꿔치기 한다. 이명박의 가장 큰 문제는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그것을 자기 머릿속에 박제화한 후, 4대강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아무것도 모르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뿐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최승호는 자신의 천적인 이명박의 모습을 여러 컷에 나누어 담고 있는데 그중 이명박의 이런 멘트는 실소를 낳는다. “아주 노래들을 해요, 노래들을.”

 

 

다큐 ‘추적’은 이명박의 자가당착의 누추한 거짓말과, 4대강 개발이란 허구에 동원된 어용 언론의 비루한 모습들을 연결한다. 4대강 운하가 반대에 부딪히자 4대강 개발사업으로 둔갑시키는 과정에서 언론을 길들여야 한다는 당시 이명박 정부의 판단은 조중동에게 종편 채널을 몰아주기, 정연주 KBS 사장 쫓아내기, 김재철이라는 정권의 나팔수를 MBC 사장에 앉히기 등등으로 결과했다는 것을 다큐는 두 눈 부릅뜨고 증언하고 있다. 모든 것은 하나의 지점에서 시작하며 그리하여 돌고 돌아 다 연결돼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4대강 문제는 지금의 한국 언론이 지닌 치사한 민낯의 바탕이 됐고, 그런 언론이 거꾸로 박근혜 정부와 윤석열이라는 괴물을 만들게 했다는 자각을 하게 만든다. 이 다큐는 그 흐름과 연결점들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추적’이 왜 지난 20년의 한국 현대사 다큐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감독의 육성 경고 “(4대강 폐해) 수백 년 갈지 모른다”

 

 

4대강을 지키는 문제는 환경생태 운동의 차원이면서 동시에 고도의 정치성이 요구되는 것이며 그 때문에 PC(정치적 올바름)가 중요한 문제이다. 다큐 ‘추적’은 그 모든 걸 아우르는 작품이다. 오랫동안 공을 들인 만큼 최승호는 저널리스트로서 이번 다큐에 가장 많이 얼굴을 드러낸다. 자기 생각을 엔딩 부분의 셀프 인터뷰를 통해 드러내기도 한다. 그게 다큐의 정공법인지 편법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의 말마따나 “(4대강의 폐해는)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미래세대까지 이 문제를 안고 갈지도 모른다.” 그는 말을 잇지 못한다. 그의 허탈한 웃음이 꽤 자조적이다. 오래 공을 들인 다큐라면 보는 데도 좀 공을 들이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많은 극장에서 개봉하지는 못한다. 세상은 발품을 들여야만 바꿀 수 있다. 이 영화는 8월 6일 개봉된다.                             < 오동진 영화 평론가 >

 

조국 부부 1심 재판부, 검찰 입맛대로 교체됐다
사건 겹치는 '조국 재판' 또 맡고 회피도 안 해
그 누구도 못 견딜 '조국 몰이', 당신이라면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 형이 확정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16일 오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 앞에서 수감되기 전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2024.12.16. 연합
 

광복절 특사 시기가 다가오자 지난해 12월 수감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에 대한 사면 주장이 각계에서 글자 그대로 분출되고 있다. 한편으로 그런 여론에 맞서는 듯이 조국 사면 불가 주장도 적잖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사면 불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반론의 핵심은 조국은 죄인이고 아직 형기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어쨌든 대한민국 사법부가 조국과 그의 부인 정경심에게 유죄확정 판결을 내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면 불가론을 외치는 사람들의 절대다수는 그런 유죄 판결이 어떤 이유로 내려졌는지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그 진실에 딱히 관심도 없다. 그저 언론 보도의 제목들에서 ‘직권남용’, ‘자녀입시비리’ 같은 것만 떠올리고 반복적으로 내세울 뿐이다.

 

그들은 2019년 ‘조국 사태’ 와중에 무차별적으로 제기됐던 혐의들 중 검찰이 샅샅이 뒤졌음에도 기소조차 하지 못한 의혹들이 태반이었다는 사실, 또 기소된 혐의들 중 가장 대표적이었던 ‘사모펀드’ 의혹이 사실상 전면 무죄가 나왔다는 사실은 관심이 없거나 알아도 외면하고 있다.

 

조국 부부 1심 재판부, 검찰 입맛대로 교체됐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조국과 정경심에 대한 재판 절차들이, 그 결론인 유죄 판결을 도저히 신뢰할 수 없을 정도로 기형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지면에서는 재판 관련의 수없이 많은 기막힌 문제들은 다 제쳐놓고, 두 사람의 재판을 담당한 판사들의 문제, 그중에서도 가장 기막히는 사례 몇 가지만 훑어 설명해볼 생각이다.

 

가장 먼저, 조국, 정경심 두 재판의 1심은 공통적으로 재판부가 언론들과 자유한국당 의원들, 그리고 검찰의 집요한 공격을 받은 끝에 재판장이 교체당했다. 재판장이 검찰의 무리한 기소와 억지 주장들을 법정에서 제지하다가 도리어 검찰, 언론, 야당 3자 협공을 받고 법정에서 내몰린 것이다. 바로 정경심 1심의 첫 재판장이었던 송인권 부장판사와 조국 1심 첫 재판장이었던 김미리 부장판사다.

 

검찰은 물론이고 언론들과 자유한국당은 조국 1심 김미리 판사와 정경심 1심 송인권 판사를 집중적으로 협공해 기어코 두 재판부 재판장을 교체시켰다. 중앙일보 홈페이지 캡처.

 

게다가, 양쪽 재판 모두 재판장 교체 이후에도 비슷한 문제들이 더 이어졌다. 정경심 1심을 맡았던 송인권 재판장이 교체된 후 새로 재판을 인계 받은 임정엽 재판부는, 배당을 받자마자 불과 며칠 지나지도 않아 윤석열 검찰의 ‘판사 사찰 문건’에 등장했다. 재판부 판사들의 성향을 따지고 검찰에 우호적이니 아니니 조사했던 그 문건이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이 ‘판사 사찰’ 문건에 등장하는 다른 판사들도 모두 조국 관련 재판을 맡은 판사들이었다는 것이다. 이 문건은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판사 사찰’ 문건이 아닌 ‘재판부 사찰’ 문건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개별 판사들이 아닌 재판부 단위로 판사들을 왈가왈부한 것이었다. 그런데 거론된 모든 재판이 조국 관련이었던 것이다.

 

윤석열 검찰의 '판사 사찰 문건'의 일부. 언론 공개 과정에서 판사들의 실명이 삭제됐지만 세부 사항들을 통해 해당 판사들이 누구인지 확인된다. (김선희 판사가 재판장으로 잘못 기재된 것은 재판부 배당만 된 상태로 재판장이 정해지기 전에 검찰의 예상 수준으로 작성된 문건이기 때문이다.  이 문건이 작성된 직후에 임정엽 판사가 재판장으로 지정됐다.)

 

아직 교체되기 전 조국 재판을 맡고 있던 김미리 재판부, 유재수 재판을 맡고 있던 손주철 재판부, 정경심 1심을 다시 배당받은 임정엽 재판부, ‘조국 5촌 조카’ 조범동 재판을 맡은 소병석 재판부, 또 조국도 타깃으로 삼았던 ‘울산 사건’ 재판부 등이 이 ‘판사 사찰’ 문건에 등장한다. 이 문건에서 조국과 관련이 없는 재판부는 단 하나도 없었다. 오직 조국만을 타깃으로 모든 관련 재판부를 사찰한 것이다.

 

이 사찰 문건에서 검찰은 임정엽에 대한 ‘세평’으로 “주관이 뚜렷하다기보다는 여론이나 주변 분위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평”이라고 기록했다. 이쯤 되면 검찰로서는 언론들을 동원한 여론몰이만 잘하면 충분한 ‘귀 얇은’ 판사라고 판단했을 것이 뻔하지 않은가? 실제 정경심 1심은 그 기간 내내 ‘강남빌딩 꿈꿔’이니 ‘물고기 꿈’이니 하는, 사건 혐의사실과 전혀 무관한 뚱딴지 같은 검찰발 여론몰이 기사들로 연일 도배됐다.

 

또 조국 1심에선 김미리 재판장이 물러나고 새 재판부가 꾸려진 후에도 재판부가 또다시 더 변경됐다. 총 4번의 재판부가 구성됐는데, 1심 재판 기간 중 매년 재판부가 변경된 것이고, 게다가 판사 교체 사유가 매번 ‘병가’였다. 필자가 확인해본 바 그 시기 즈음인 2021년 판사 총 2,950명 중 휴직 판사는 118명으로서 겨우 4%였고 그 휴직 사유 중 병가는 1% 내외에 불과했음에도, 조국 재판부에서는 매년 판사가 ‘병가’ 사유로 교체됐다.

 

이렇게 해서 정경심과 조국 두 재판부 모두 검찰의 입맛에 맞는 맞춤형 재판부가 꾸려졌다. 언론들과 자유한국당을 등에 업은 윤석열 검찰의 압력으로 사실상 재판부 판사들을 검찰 입맛대로 갈아치운 셈이다. 교체된 재판부의 판사들은 무리한 증거를 들이미는 검사들을 제지하는 대신 변호인 측 증인들을 몰아세웠다. 이렇게 검찰 편들기에 급급했던 재판들에서 검찰이 유죄를 못 받아낸다면 그게 도리어 이상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판사의 문제 측면에 주목해서 가장 기가 막힌 사례를 꼽으라면, 필자로서는 다른 어떤 판사보다도 정경심 2심과 조국 3심을 모두 맡았던 엄상필 판사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엄상필, 1심 유죄 증거∙증언 모두 뒤집혀도 전면 무시

 

정경심 2심에서는 첫 공판부터 변호인 측의 대반격이 벌어졌다. 특히 1심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표창장 위조 혐의에 대해서는 매 공판마다 검찰의 증거가 허위였음을 증명하는 반대증거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 결과 1심 판결에서의 유죄 판단 근거들이 모조리 무너졌다.

 

또 법정 바깥에서는 최성해의 증언과 언론 인터뷰 내용들을 뒤집는 위증 정황들이 항소심 기간 내내 연속적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대구MBC 심병철 기자의 대활약으로 ‘조국 사태’ 발발 이후 최성해가 지인들에게 늘어놨던 심각한 문제 발언들이 끝을 모르고 줄줄이 보도된 것이다.

 

‘조국 씨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 망한다' 발언, '미래통합당 비례대표 공천 준다 했는데 내가 안 나가기로 했다' 발언, 그리고 최성해가 조국을 공격하고 있던 자유한국당 주호영과 몰래 연락했던 사실 등이 최성해 본인의 생생한 육성으로 방송을 탔다. (최성해가 조국에게 학교 관련 청탁을 했다가 거절당하고, 또 딸 조민 씨를 며느리 삼으려 접근했다가 퇴짜를 맞았던 이후로 앙심을 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정황은 이미 1심에서부터 드러나 있었다.)

 

표창장 위조 혐의에 대해서는 이 두 가지, 즉 검찰 측 포렌식 증거들과 최성해의 증언이 1심 유죄 판결 근거의 전부였다. 그런데 2심에 들어가자 마자 양대 축이 동시에 무너져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변호인 측 포렌식 분석을 맡았던 필자로서도 하루하루가 내내 놀라웠던 급진전이었다.

 

그런데 2심 엄상필 재판부는 이렇게 무죄로 급전환된 재판에서조차 다시 1심과 동일한 징역 4년형으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엄상필 재판부는 우선 필자가 제출한 수많은 변호인 측 포렌식 증거들을 판결문에서 노골적이고 명시적으로 외면했다. 기막히게도 ‘변호인측 포렌식 결과는 판단하지 않는다’라고 쓴 것이다. 판결문에서 이 재판부는 검사 측 증거들만을 먼저 사실이라고 판단해버린 후에 변호인 측 반대 증거들을 따져보지도 않고 무시했다.

 

엄상필 대법관이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성폭력 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위법(강간 등 치상) 등에 대한 전원 합의체 선고에 입장해 대기하고 있다. 2025.3.20 연합

 

법조인들이라면 재판에서 한쪽의 증거를 그냥 검토하지 않는다는 말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 아실 것이다. 법리적으로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판결' 혹은 '채증법칙 위반'에 해당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런 식의 증거 무시는 판사의 재량권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판결이 위법하다는 의미다. 상고심이 법률심임에도 불구하고 1, 2심의 사실심 결과를 뒤집는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바로 이런 문제를 바로잡아야 하는 책무가 있는 대법원도 이 대목을 못 본 체 했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최성해 증언에 대한 엄상필 재판부의 태도였다. 최성해 본인의 육성 방송으로 드러난 위증 정황들을 전면 무시하고 판결에서 그냥 '최성해'를 삭제한 것이다. 1심에서 유죄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 된 것이 최성해의 증언들이었는데도 엄상필 재판부는 2심 판결문에서 그냥 '최성해'를 지워버렸다.

 

'최성해 증언에 신빙성이 떨어져서 제외한다' 뭐 이런 최소한의 언급조차 없었다. 2심 판결문에서 '원심 판단'이라고 최성해 증언에 대한 1심 판단을 인용해놓고는, 2심 자체 판단 부분에서는 최성해의 이름을 단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상 판결에서 최성해를 아예 삭제한 것이다.

 

1심 판결에서 최성해의 증언들을 신뢰한 것이 잘못됐다고 적시하는 것을 일부러 회피한 것이다. 누가 봐도 위증 정황이 역력한데도, 위증 의심으로 1심 판단으로부터 제외한다고 적시해버리면 1심의 유죄 근거 한 축이 명시적으로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경심 2심 과정에서 1심 유죄 판결의 양대 근거가 다 무너졌음에도 엄상필 부장판사는 양쪽 모두를 무시함으로써 정경심 징역 4년 유죄를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사건 겹치는 ‘조국 재판’ 또 맡은 엄상필, 회피도 안해

 

이렇게 법관으로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담하고 기괴한 엉터리 판결이, 조희대 대법원장에게는 오히려 판사로서 대단한 능력으로 보였나보다. 엄상필을 법관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대법관에 앉힌 것이다.

 

그리고 대법관이 된 엄상필은 그런 발군의 '답정너' 판결을 또 한번 시전한다. 조국 상고심 주심을 맡으면서 말이다. 필자는 기대도 안했다. 조국은 그냥 유죄 확정이었다.

 

재판에 있어 법관이 특정 재판을 맡지 말아야 할 제척 사유, 회피 사유라는 것이 있다. 형사소송법 제17조에서 규정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법관 자신이 사건 관련자이거나 친족 관계 등에 있거나 등에 해당한다면 해당 재판을 맡지 말아야 한다. 당연하고 상식적이지 않은가.

 

이 형소법 제17조에서 7항의 내용이 아래와 같다.
“7. 법관이 사건에 관하여 전심재판 또는 그 기초되는 조사, 심리에 관여한 때.”

 

현실 재판 사례들에서 이 조문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구체적인 사례들까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필자가 ‘법알못’이기는 해도, 이 제척 사유들의 제정 취지를 못 알아들을 정도로 무식하지는 않다. 같은 사건에 대해 이미 심리에 관여했던 사람은 후속 재판을 맡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표창장 혐의를 포함한 입시비리 혐의들에 대해 엄상필은 이미 부인에 대한 2심을 맡아 유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 같은 판사가 사실상 같은 사건의 재판인 조국 3심을 또 맡은 것이다. 필자의 상식으로는 아무리 봐도 회피, 기피 사유에 해당하는 걸로 들린다.

 

부인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당사자이니 이 사건에 대한 유죄 심증은 두말할 것도 없다(아니, 대대적인 증거 무시로 유죄를 내렸으니 '유죄심증'이 아닌 '유죄의지'라고 불러야 더 적절할 것이다). 강력한 유죄 심증을 가진 판사에게 다시 동일 사건 재판을 맡기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런만큼 제척 사유가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조희대 대법원은 엄상필 대법관이 속한 소부에 사실상 같은 사건을 또 맡겼고, 심지어 엄상필이 주심까지 됐다. 엄상필에겐 스스로 이 재판을 회피하는 최소한의 양심도 없었으며, 더더욱이 정경심 재판에서 범한 잘못을 조국 재판에서 바로잡을 양심 따위는 기대할 여지도 없었다. 정경심 재판에서 양대 반대 증거를 싸잡아 날려버리고 유죄를 내렸던 그 얼토당토않은 법기술을 조국에게 다시 시전했다.

 

엄상필 대법관이 주심이었던 조국 상고심 소부에는 이흥구 대법관도 있었다. 그는 단지 조국과 대학 동기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회피했다. 그래서 이흥구 대법관을 제외한 3인의 대법관만으로 상고심 심리가 이루어졌졌다. 세평에서 해당 소부의 ‘유일한 진보 대법관’이라고 평가되던 사람이 빠지고 보수 대법관들만 남은 것이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이흥구 대법관은 대학 때 동기였을 뿐 이후 조국과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게다가 형소법상의 제척 사유에는 피고인과 대학 동기면 회피해야 한다는 내용은 당연히 없을 뿐더러, 설사 친구라 하더라도 재판을 회피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더욱이 80년대 당시에도 서울대 법대는 정원이 수백명이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법조항을 해석해서 회피한다면, 법조계에 넘쳐나는 수백명의 동기들이 모조리 회피 대상이 되는 셈이다.

 

같은 대법원 소부 4명 중 두 대법관이, 한 사람은 자신이 유죄 판결을 내린 같은 사건에도 회피를 하지 않았고, 다른 한 사람은 오래전 인연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형소법 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스스로 회피했다는 것이다. 둘 중 한 사람은 양심이 넘쳐났고, 다른 한 사람은 양심 비슷한 것도 없었다.

조국은 이렇게 해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고, 지난해 12월 수감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임 대법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숙희 대법관, 윤 대통령, 조희대 대법원장, 엄상필 대법관. 2024.3.5 연합

 

그 누구도 못 견딜 ‘조국 몰이’, 당신이라면

 

조국 사면 탄원에 대해 ‘그래도 조국, 정경심은 죄인 아니냐’는 말을 쉽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부부를 범죄자로 만든 것은 실제 이들의 범죄가 아니었다. 언론들이 합창했던 조국 토끼몰이와, 조작된 증거들로 유죄로 몰아붙였던 검찰 수사, 또 수차 재판부를 바꿔가며 검찰에 유리하게 교체된 법원의 문제까지, 이렇게 겹겹이 쌓아올려진 거짓의 태산이 조국 부부를 범죄자로 만들었다.

 

물론 사건의 실체를 티끌만큼도 모르는 사람들, 또 그런 실체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수많은 사람의 마음에 단호하게 반대 의사를 표시하려면, 최소한 진실을 알아보려는 성의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만약에 그런 반대론자들 본인이 일가족의 인생을 탈탈 털어대는 먼지털이 수사를 당하고, 또 허위 증거들을 쏟아내고 위증을 부풀림으로써 유죄 판결을 받고, 그 엉터리 유죄 판결을 내린 같은 판사에게 남은 배우자마저 유죄 판결로 수감당하는 꼴을 당하면 어떨 것 같은가. 그래도 법원의 유죄 판결은 옳다는 말이 입에서 나올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엄상필 대법관, 그에게 정말로 묻고 싶다. 도대체 왜 그랬어요? 조국, 정경심에게 오래전부터 앙심이라도 있었나요? 아니면 화끈하게 눈감고 유죄 판결 한번이면 대법관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흔한 욕심이 있었을 뿐인가요? 그래서 지금 그 자리가 영광스럽고 만족스러운가요?                                                     < 박지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