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처음처럼

● 칼럼 2016. 2. 12. 21:22 Posted by SisaHan

얼마 전에 한국의 인터넷 상에는 한국의 한 교수의 죽음이 크게 떠돈 적이 있었다. 인간과 생명, 평화와 공존, 생의 가치와 의미를 가르친 우리 시대의 스승이라는 「신영복」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관련된 글을 올렸다. 마치 모두 그의 제자였고 독자인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였다. 70년대 중반에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캐나다로 떠나온 나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아무리 떠나온지 오래 되었다 해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 부끄러웠다. 그의 유명한 책,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을 제목이라도 들었음직 한데…. 더우기 ‘처음처럼’이란 수필집을 썼고, 그 책 제목을 서민들이 주로 마시는 소주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을 기꺼이 허락해준 사람이고, 글씨마저 직접 써준 분이라는 데 관심이 갔다. 나도 이곳 캐나다에서 몇 해 전에 한국식당에서 ‘처음처럼’을 마셨고 제목과 글씨체가 참 특이하면서 사람을 끈다고 생각했다. ‘처음처럼’이라는 말이 참 가슴에 와 닿았다. 그 이전에 ‘초심으로 돌아간다.’ 는 말이 있었지만 그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사실 살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품었던 뜻이나 마음을 잃어버리고 현실과의 타협과 적응이라는 이름 아래 점점 퇴색해가고 타락해가는 느낌을 가지기 마련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렇다. 처음에 가졌던 좋은 인상은 어디로 가고 알수록 두려워 질 때가 많다.


그의 약력을 보고 또 놀랐다. 사형을 선고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20년을 교도소에서 살다 나온 것이었다. 서울대 상대 졸업생으로 육사와 숙명여대에 재직 중이었다.
그 때가 유신정권 때였다. 참 어지럽고 혼란스러울 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학생들의 데모도 심했고, 그리고 간첩단 사건 같은 엄청난 사건도 많이 터지고, 군인들이 총을 들고 대학에 진입할 때였다. 그때 고등학교에 다녔던 나는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다. 가끔 친구 중에 유신헌법과 ‘귀신헌법’을 말했지만 전혀 나의 관심 밖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서 운동권으로 빠진 친구 때문에, 정부(정보부)에서 발표하는 간첩단 사건, 내란음모 같은 것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신영복 선생님은 27살에 감옥에 들어가 20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으니, 인생의 가장 중요한 황금기를 감옥에서 보낸 셈이다. 무기징역이었으니 끝이 보이지 않고, 무엇보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 자신 자살하지 않은 이유를 하루 한번 들어오는 신문지 크기의 햇빛 때문이었다고 나중에 말했다. 그는 자신이 빼앗긴, 또는 잃어버린 20년에 대해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감옥이 자신의 ‘인생대학’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처음에 구형 받은대로 사형을 당했더라면 얼마나 큰 비극이었고 우리에게 손실인가 생각해보았다. 88년에 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는 ‘감옥에서의 산책’이란 책은 물론 ‘처음처럼’이라는 서민들의 사랑을 받는 소주는 이 세상에서 빛도 보지 못했을 터였다.


나는 처음에 그가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무기징역이 되었다 해서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줄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통혁당이었다. 그 차이를 자세히는 모르지만 두 사건에는 많은 대학생들과 지식인이 연루되었고 고문으로 폐인이 되거나 나중에 후유증으로 죽은 사람들이 많다. 시인 천상병도 그중 하나다. 인혁당에 관해서는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지 하루도 안돼 사형을 당한 8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김형태 변호사의 ‘지상에서 가장 짧은 영원한 만남’이라는 책에서 읽었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후에 그들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참 기가 막힌 이야기다. 50년 전에 사형당한 사람들에게 무죄선고가 무슨 소용있으며 그 지난 50년 동안 가족들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을지, 진실을 밝히는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혹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은 없는가? 신영복, 그는 재심을 신청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통일혁명당에 가입한 적도 없고 통일혁명당은 그가 체포된 후에 생겼다고 말했다. 이 모든 일이 남북이 갈라져 첨예하게 대립되는 어두운 시대의 비극이라 생각한다.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고, 이제는 있을 수도 없다. 삼가 신영복 선생님과 억울한 죽음을 당한 고인들의 명복을 뒤늦게 빕니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처음처럼….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한마당] 샌더스 돌풍과 지도자론

● 칼럼 2016. 2. 12. 21:21 Posted by SisaHan

지구촌이 주목하는 미국 대선레이스에서 초반 돌풍의 주역 가운데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후보가 단연 돋보인다. 지지율 0%의 무명인사에서 단숨에 50% 이상까지 뛰어 올라 거물 힐러리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놀라운 파워맨이 됐다.
샌더스 후보가 얼마나 부러웠으면 한국의 야권에서도 다투어 ‘샌더스 마케팅’에 나설까. 더불어민주당은 새로 영입된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경제민주화 소신을 들어 샌더스 같다고 비유했다. 이에 질세라, 당을 뛰쳐나가 국민의당을 만든 안철수 대표도 샌더스처럼 주먹 쥔 팔을 뻗으며 자신이 바로 ‘한국의 샌더스’라고 연설했다. 이에 한 정치평론 교수는 “언제 샌더스가 힐러리 물러나라고 외치다 민주당을 탈당했는가. 우클릭해 새누리당과 발을 맞추면서 진보적인 샌더스와 같을 수 있는가. 지지율 0%에서 50%로 올라가는 샌더스와 50%에서 0%로 내려가는 상황이 같은가”라고 조목조목 반박하며 ‘개그’라고 비아냥대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수준 낮은 한국정치의 희극들이다.


유력 주자인 힐러리 여사를 위협하며 일약 세계적 인물이 된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고 마침내 백악관의 주인으로까지 승승장구 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국제사회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 세계최강국 미국의 정치권을 뒤흔든 것 만으로도 그는 성공한 정치인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거부감을 가져 온 미국사회에서 당당한 사회주의자로 인기를 얻고있는 것 또한 기적같은 일이다.
그는 ‘가진 자들만의 세상’으로 질주하는 기성 정치와 사회·경제적 폐해들을 낱낱이 들춰내 혁신적인 비전으로 고단하고 지친 미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동시에 그는 국제사회에도 ‘미국식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맹목적인 추종에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샌더스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인가?. 인권운동가였던 그는 1986년 버몬트 주의 벌링턴시장 선거에 도전해 겨우 10표 차로 힘겹게 당선되며 정치인이 됐다. 그리고 4선 시장을 역임하면서 폐촌이 되어가던 벌렁턴시를 협동조합과 재생에너지 등으로 유명한 자연친화적 모델도시로 만들어 전국각지 공무원들의 견학이 끊이지않는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버몬트 주의원으로 2006년 상원에 진출, 본격적인 ‘사회 민주주의자’로서의 활약을 벌인다.


그를 널리 알린 것은 2012년 12월10일 의회단상에 올라 무려 8시간37분에 걸친 필리버스터 연설이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부자감세 연장’법안을 공화당과 합의하자 이에 대한 반대논리를 하나하나 사례를 들어 반박하는 연설을 장장 8시간이 넘게 계속한 것이다.
“백만장자와 억만장자들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세금혜택을 주어 이미 심각한 지경인 국가부채를 악화시키는 일이 제게는 비양심적인, 너무도 비양심적인 일”이라고 시작한 그의 연설은 모두 자리를 떠 텅빈 의사당에서 홀로 외친 절규였다. 가난한 서민들의 편지 열 두 사연을 소개하는 것으로 쓸쓸히 마친 그의 연설은 그러나 2년 뒤 부자감세법 폐지의 결실을 맺었고, 수많은 지지자를 불러 모으며 오늘의 대선후보 반열에 올려놓은 일대 전기가 됐다.
미국이 역시 선진국인 것은, 국가 지도자를 선출하는 대통령선거 시스템과 검증이 호락호락하지 않아 진짜 보석같은 인물을 배출한다는 점이다. 한국처럼 포장술에 능한 보좌진과 어용 친위언론에 가리워 위선적인 불량지도자를 걸러내지 못하는 현실과는 다르다. 오죽하면 써준 원고가 없으면 버벅거리고, 기자회견 한번 제대로 못하는 지도자를 뽑을까. 미국 정치에 신선하고 파격적인 바람을 몰고 온 샌더스가 부상한 것도 훌륭한 시스템의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샌더스는 사실 그만한 내공을 쌓아 온 인물이었다.
우선 샌더스는 시골의 시장 시절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지녀 온 서민과 빈민층 위주의 정책소신, 즉 1%가 아닌 99%를 위해 일한다는 초심과 열정을 잃지않은 정치인이다. 그 것은 부유한 자와 가진 자들의 반대편에서 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긍휼과 측은지심을 지닌 따뜻한 사람임을 각인시켜 주었다. 그는 또한 가식이 없이 솔직하다. 그 자신 서민으로 살며 어울려 살아왔다.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애용하는 그의 사진들은 그가 외양만을 내세우는 ‘바리새인’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의 살아온 삶과 이력을 통해 소신과 철학을 입증해 주었고, 미국이라는 거대 자본사회의 온갖 추하고 그늘진 현상에 메스를 가하며 변혁을 선도할 지도자로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샌더스의 도전은 한낱 도전으로 멈출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선국면의 미국 정치 한복판에 몰아친 75세 노정객 샌더스 돌풍은 국가와 사회의 지도자가 어떠해야 하는지, 지도자를 어떻게, 어떤 인물을 고르고 택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타산지석이 되고도 남을 것 같다.


< 김종천 편집인 >



[칼럼] 사드 논란의 미래

● 칼럼 2016. 2. 12. 21:20 Posted by SisaHan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공론화 단계에 들어서는 모양이다. 북한의 핵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기 위한 방어책의 일환으로 사드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리가 정부 안팎에서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드’라는 나무만 보는 사이 ‘미사일방어’(MD) 체계라는 숲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리고 ‘사드 이후의 한국’을 아무도 상상하지 않고 있는 듯하다.


미국의 MD 체계는 적의 미사일을 공중에서 요격하는 복합 네트워크다. 탐지부터 요격, 반격까지 지상과 해상 그리고 해저와 우주에서 입체적으로 구성된 미국 패권의 아이콘이다. MD는 ‘적의 미사일을 요격해야 한다’는 신념체계를 구현하기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진화하고 확대되는 유기체다. 이 유기체는 인공위성과 각종 레이더로 구성된 탐지체계라는 촉수가 촘촘한 그물로 구성된다. 사드는 패트리엇 PAC3, 이지스 미사일방어체계, 전방센서, 지휘통제전투관리통신(C2BMC)과 연동되는 미사일방어체계의 핵심 요소다. 즉, 사드는 MD의 구성요소이지, 독립된 무기체계가 아니다. 사드는 곧 MD다.


한·미·일 군사협력의 핵심이 ‘미사일방어체계 구축’이라고 믿는 미국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북한을 협상으로 이끌기 위한 제재보다는 북한을 끝내려는 제재를 중국에 압박한다. 동시에 한국에 사드 배치를 내밀었다. 사드 배치는 한국을 미·일 동맹에 편입시킬 수 있는 고리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방기한 북한의 핵능력은 동북아에서 MD망을 확대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우리 영토의 사드는 일본의 MD망과 연계되어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이 연동되는 한·미·일 3국 군사협력의 연결고리다. 한국이 MD에 참여하면 한·미·일 동맹이 중국 견제용 동맹 네트워크로 전환되는 것이다. 결국 사드 배치는 방기된 북한 핵을 구실로 중국을 포위하는 반중국 동맹의 일원으로 한국을 끌어들이는 미국의 동아시아 균형 전략의 완성이다.


중국은 미국의 항모전단이 중국 근해로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수단들로 항모 킬러 미사일 등을 활용한다. 이를 반접근 거부 전략(A2/AD: Anti-Access, Area Denial)이라고 한다. 중국에게 한국의 사드 배치는 미국 MD의 핵심 촉수가 베이징 턱밑까지 전개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우리가 아무리 “북한의 핵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사드를 배치한다”고 외쳐도, “동아시아 재균형 전략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미국의 주장처럼 허튼소리로 들릴 것이다. 중국에게 한국의 사드 배치는 미국의 공세적 대중국 봉쇄 전략으로 보일 뿐이다.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실효적 정책보다는 북한의 4차 핵실험을 MD 확대로 활용하는 미국과 협력하는 한국을 비난할 수밖에 없다.


사드가 북한만 겨냥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공학과 안보학 그리고 국제정치학적 사실이다. 그 사드는 중국도 겨냥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안보 날라리’들은 사드 배치를 동맹의 이름으로 지지한다. 그들은 사드 배치가 한국을 미·중 초강대국 국제정치의 서슬 퍼런 작두 위에 올라서게 할 것이라는 점을 알지 못한다. 그 작두 위에는 북한의 평화적 비핵화라는 국익도, 통일이라는 갈망도 없다.


사드, 도입하려면 하라. 그러나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을 포기하고 6자회담도 폐기하라. 앞으로 중국과의 외교적 협력도 중단하라. 우리 아이들에게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과 중국이 제공하는 경제사회적 기회를 꿈도 꾸지 말라고 하라. 주변국 협력 외교보다 군사동맹의 중요성만 국정 교과서에 기술하라. 이것이 사드 이후 한국의 모습이 될 것이다.
< 최종건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교수 >



빌라델비아장로교회 유아·유치부 어린이들의 세배에 바울회 어른들이 기뻐하는 모습.


고운 한복을 입고 교회 어른들에게 세배하는 염광교회 어린이들.


설날을 하루 앞둔 2월7일 주일 각 교회에서는 설맞이 전통행사로 성도들이 함께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염광교회(담임 이요환 목사: 905-415-9115)는 전통민속 체험행사로 각종 민속놀이를 즐겼고, 빌라델비아장로교회(담임 김경진 목사: 416-444-1716)는 유아·유치부어린이들이 어르신들에게 세배를 드려 흐뭇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