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저녁 창립 36주년 기념 봄 정기공연을 가진 토론토 한인합창단 (지휘 김훈모)의 모차르트 진혼곡「레퀴엠」연주모습. 이날 연주회에는 창단 후 처음으로 한인이 아닌 주류사회 성악인 4명이 특별 게스트 독창자로 협연, 눈길을 모았다.


한인합창단에 데뷔한 솔로들이 김훈모 지휘자 소개로 인사하고 있다.


한인합창단 36돌 봄 공연
진혼곡·성가곡 장엄연주 6백청중 갈채

한인합창단이 창립 36돌을 맞으면서 한층 농익은 연주실력을 과시했다. 토론토 한인합창단(Toronto Korean-Canadian Choir: 단장 장해웅)은 5월3일 저녁 다운타운 그레이스 교회(Grace Church On the Hill)에서 가진 정기 봄 공연에서 모차르트 진혼곡과 여러 성가곡을 주제로 2시간여 무대를 장식, 객석을 메운 6백여 청중을 무르익어 가는 봄 저녁의 음향에 취하게 했다.
45인 규모의 합창단은 이날 김훈모 박사 지휘와 임은성 씨 반주, Sinfonia Toronto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모차르트의 미완성 유작이며 유일의 진혼곡인‘레퀴엠’(Requiem: D단조 K626)을 주 연주곡으로 구노 및 생상스, 엘가와 모차르트의 같은 이름 곡 ‘Ave Verum Corpus’(경배하나이다,진리의 성체여)와 구노의 ‘O Divine Redeemer’(참회자) 등 여러 성가곡들을 들려주어 청중의 갈채를 받았다.


이날 연주는 특히 그동안 관례적으로 한인 출신들이 게스트 솔로로 무대에 서 온 것과 달리 주류사회 성악가들인 소프라노 쉐일라 디트리히(Sheila Dietrich)를 비롯, 메조 소프라노 린세이 프로맨(Lyndsay Promane), 테너 로베르트 부시어키비츠(Robert Busiakiewicz), 베이스 미셀 니비(Michael Nyby) 등 신선한 얼굴들이 특별게스트로 등장,열창을 선보여 팬들 관심에 부응하며 중량감을 더해 주었다.
전반부 성가곡을 들려준 데 이어 장엄한 합창으로‘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라는 가사로 막을 올린 레퀘엠은 모차르트가 직접 작곡한 ‘세쿠엔치아’(Sequentia, 연속된 노래들)와 ‘오페르토리움’(Offertorium, 봉헌미사) 등과 그의 제자 쥐스마이어(Franz Xaver Suessmayer: 1766-1803)가 작곡해 완성한 ‘생투스(Sanctus:거룩하시다), ‘베네딕투스(Benedictus:축복있으라), ‘애그너스 데이(Agnus Dei: 하나님의 어린 양)등으로 이어지며 영원한 안식을 노래한 모차르트 진혼곡의 감동과 진수를 유감없이 전달, 기립박수를 받았다.
합창단은 까다로운 라틴어 가사를 매끄럽게 소화해 땀흘려 연습한 성가를 빛냈으며, 김 지휘자는 모차르트 곡‘Ave Verum Corpus’와 ‘Lacrymosa’(슬프도다 애통의 날’을 연주해 청중의 환호에 보답했다.


한편 한인합창단과 쌍벽을 이루는 예멜합창단의 유인 이사장이 이날 이례적으로 연주회를 감상하고 격찬해 눈길을 모았다. 과거 20여년 한인합창단에 몸 담았기에 감회가 깊다는 유 이사장은 “성숙한 연주로 가슴 설레는 영적 감동과 황홀함의 벅찬 기쁨을 누리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훌륭한 4명의 독창자와 Orchestra 열연으로 연주가 한층 돋보였다. 특히 섬세한 표현의 해석과 정확히 돋보이는 지휘(Cuing)와 아름다운 드레스는 연주회를 더욱 빛내주었다.”고 최상의 칭송을 했다.


< 문의: 416-986-2771 >



“소련× 속지 마라. 미국× 믿지 마라. 일본× 일어난다. 조선× 조심하라.”
1960년대 초까지 어른들한테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던 말이다. 이건 2차대전 패전 후 철수하는 조선총독부가 심리전 차원에서 퍼뜨린 말이다. 일본인들에 대한 조선인들의 보복을 막기 위해서. 그런데 광복 70년이 되는 시점에 아베 일본을 보면서 70년 전 총독부가 퍼뜨리고 간 말이 씨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작년 7월 초 일본은 헌법 9조(전쟁 포기)에 대한 ‘해석적 개헌’ 방식으로 일본의 해외출병을 합법화했다. 오는 4월 말 아베의 미국 방문 때 ‘미-일 방위협력지침’이 개정되면, 앞으로 일본은 동맹국 미국의 후방지원 명분하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 차원에서 어디에나 출병할 수 있게 된다. 패전 일본이 70년 동안 꿇었던 무릎을 펴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난 4월 셋째 주말 워싱턴에서 미·일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시 한국의 주권을 존중한다”고 합의했다. 그러나 4월 말 개정될 미-일 방위협력지침에는 그걸 명문화하지는 않기로 했다고 한다. ‘한국의 주권 존중’을 미-일 간에 말로만 합의하고 문서화는 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일본군의 한반도 출병을 미-일 간에는 사전합의 해놓고 우리에게는 출병 직전에 ‘주권 존중’ 형식만 갖춰 통보(사실상 사후통보)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어찌하랴? 2012년 4월17일 찾아오게 돼 있던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에 다시 맡겨놨으니 미국이 결정하면 일본군의 한반도 출병도 감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을.
한편, 지난 22일 자카르타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연설에서 아베는 “지난 전쟁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무라야마 담화(1995)나 고이즈미 담화(2005)에 쓰였던 ‘침략’ ‘식민지 지배’ ‘통절한 사죄’ 같은 표현은 쓰지 않았다. 미국 하원 의원 25명이 연명 서한을 보냈지만, 4월29일 아베의 미 상·하원 합동연설 논조 자체가 바뀔 가능성은 적다. 어희(말장난) 수준의 표현 변화는 약간 있을지 몰라도. 전범 후손으로서 아베의 정체성과 최근 우경화돼온 일본 대외정책의 방향성 때문에 8월로 예정된 ‘아베 담화’에서도 아베는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8월)을 계기로, 일본도 (원폭)피해국임을 부각시키면서, “이제 미래를 위해 손잡고 나가자”는 식으로 과거사를 매듭지어 버리려 할 것 같다.


그러면 일본이 해외출병을 합법화할 수 있게 된 국제정치적 배경, 과거사에 대해 후안무치하게 버티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일본의 이런 정책에 대해서 미국은 왜 슬그머니 일본 편을 들고 있는가?
나는 미국의 대중정책이 바뀌면서 우리나라에 불리한 외교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본다. 경제력과 군사력이 빠른 속도로 커지면서, 중국은 ‘중화부흥-중국몽’ 실현을 국가목표로 설정해놓고 미국에 ‘신형 대국관계’를 요구했다. 사실상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에 도전하는 셈이다. 이런 중국을 미국이 ‘아시아 회귀-아시아 재균형’ 정책으로 견제하려 하지만 힘이 부친다. 앞으로 10년간 국방비를 매년 500억달러씩 삭감해 나가야 할 정도니까. 이 때문에 미국은 자기 돈으로 군사력을 키워 중국을 견제해줄 동맹국이 필요해졌다. 이에 일본이 적임자로 뽑힌 것이다.
미국이 이이제이로 중국을 견제하는 셈인데, 아베는 이걸 일본이 정상국가로 되고 나아가 동아시아 패권국가로 부활하는 디딤돌로 삼으려 할 것이다. 중국에 ‘중화부흥-중국몽’이 있듯이, 일본도 2차대전 패전으로 좌절된 ‘대동아공영-일본몽’을 아직 꾸고 있을 수 있다. 이런 야망이 없다면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시인·사과를 악착같이 안 할 이유가 없다. 그런 점에서 우경화돼 가는 일본의 움직임 속에는 ‘일본몽’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우리의 광복 70년에 패전 일본은 다시 일어서고 우리 외교의 앞날은 점점 더 험난해져 가는 것 같다.
< 정세현 - 전 통일부 장관 >



뉴욕, 퍼거슨, 볼티모어. 지난해 7월 이후 미국에서 흑인 소요의 진원지가 된 도시다. 양상도 비슷하다. 흑인 젊은이가 경찰에 의해 숨진 뒤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소요·폭동으로 비화하고 전국 주요 도시로 확산된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은 미국 사회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준다.


2주일가량 이어진 볼티모어 사태는 1일 주 검찰의 신속한 행동으로 전기를 맞았다. 관련 경찰관 6명이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물론 불씨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법적·사회경제적 측면에서 흑인들의 불만이 그대로다. 앞서 뉴욕과 퍼거슨 사건과 관련된 경찰관들은 대배심의 지루한 공방 끝에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소요의 상처도 작지 않다. 가장 격렬했던 4월27일 시위는 폭동으로 돌변해 차량 140여대와 건물 15채가 불에 탔다. 이번 사태에서 약탈 등의 피해를 당한 한인 업소만 해도 100곳이 넘는다.
소요가 쉽게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은 주요 도시 흑인들의 사정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볼티모어에서는 흑인과 백인 거주지가 엄격하게 분리돼 있다. 숨진 흑인 청년의 거주지인 샌드타운에서는 노동가능연령(15~64살)의 실업률이 51.8%나 된다. 미국에서는 볼티모어보다 인종간 거주지 분리 현상이 심각한 도시가 시카고, 애틀랜타 등 여러 곳 있다. 경찰의 업무 중 총격에 의한 사망 사건도 지난 10년 동안 수천건에 이르지만 기소된 경찰은 수십명에 그친다. 피해자의 절대다수는 흑인이다.


흑인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기간에 흑인 소요가 빈발하는 것은 역설적이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인종문제가 더 심각해졌을 수도 있고, 오바마 정부에 대한 흑인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 흑인 소요를 대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태도도 일관돼 있지 않다. 인종문제에는 미국의 정치·사회·경제적 모순이 집약돼 있다. 미국이 이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다인종 국가로서 정체성과 통합 역량도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다문화·다인종과 관련된 갈등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런 문제에서 미국보다 훨씬 경험이 적다. 흑인 소요 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한국 외교가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 외교 전략을 주도적으로 펼치기는커녕 한반도 관련국들에 대한 우리 입지마저 좁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기존 진용과 접근방식으로는 더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외교 전략과 체제, 사람 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다.


무력한 한국 외교를 실감케 한 최근 사례는 미-일 신밀월 체제의 구체화다.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은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과거사 문제에서 역주행한다. 미국은 은근히 ‘과거사 묻어두기’를 우리나라에 요구하면서 중국을 겨냥한 일본의 군사역할 및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밀어붙인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문제는 미-중 사이에 낀 우리 처지를 잘 보여준다. 이런 문제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게다가 박근혜 정권 3년차를 맞았지만 핵심 외교전략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은 전혀 진전되지 않고 있다. 북한 핵 문제와 남북관계도 개선될 조짐이 없다.
외교 위기가 이렇게 심화하는데도 정부는 무신경하다. 4일 국회에 나온 윤병세 장관은 반성하는 모습 대신 ‘잘하고 있는데 왜 그러나’라는 식의 태도를 나타냈다. 박 대통령이 이날 한-미 관계와 관련해 전작권 환수 재연기, 방위비 분담 협상, 원자력협정 개정 등을 성과로 꼽은 것도 급변하는 현실과 동떨어진다. 박 대통령이 중-일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열린 반둥회의 60돌 기념 아시아·아프리카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남미 순방에 나선 것은 우리 외교 전략이 얼마나 겉도는지 잘 보여준다. 이렇게 가다간 한반도 관련 사안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력조차 잃어버리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우선 인적 쇄신이 절실하다. ‘자화자찬 외교’의 진원지인 윤병세 장관은 이미 외교의 구심점이 될 역량을 잃었다. 외교안보 전략의 가온머리(컨트롤타워)가 돼야 할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제구실을 못하는 것도 큰 문제다. 책임자 교체까지 염두에 두고 어떤 식으로든 정비가 요구된다. 외교 전략을 전체적으로 점검해 다시 설정하고 적절한 실행 방안과 체제를 갖추는 것은 더 중요한 과제다. ‘미·일 대 중국’이라는 대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동북아 평화협력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균형외교가 필수다. 한-미-일 안보협력을 꼭 필요한 수준에서 제어하면서 일본이 과거사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북한 핵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이 외교 재정립에 핵심이 돼야 함은 물론이다. 한반도 관련 현안을 방치한 채 주변국들의 움직임에 사안별로 대처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외교 주도력이 생길 수가 없다. 정부는 사태의 급박성부터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임기는 곧 내리막길을 걷게 되며 내년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다. 외교를 재정립해 실행할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