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신앙은 올바른 생활태도에 이바지하는 실천적 믿음이다. 구원받은 특권에서 우리의 임무를 제거해도 안되고 크리스천의 임무에서 특권을 제거해도 안 되는 것이다. 이 특권과 임무가 병행할 때만이 상호간에 크게 이바지하고 조화를 이루기 마련이다. 기독교 실천의 기초는 기독교 진리와 신앙에 근거해야만 한다.
우리는 복음을 통하여 주 예수님께서 뭘 요구하고 계시는가 하는, 복음에 어울리는 우리의 올바른 행동지침이 멋있게 담겨 있는 보물을 터득 해야 된다. 복음 전파의 생명(핵심)은 교리적 진리의 실제적 적용에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의롭게 하는 신앙이란 ‘사랑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신앙이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에 이르는 길은 성결과 순종의 길밖에 따로 없다고 본다. 주 하나님의 은혜는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경건하고(godly), 온건하며(soberly), 의롭게(righteously)’살고 이것에 반대되는 것은 모두를 부정하라고 성경은 말씀 하신다.


크리스천들의 공동체에서 그 구성원들의 분쟁과 의견 충돌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없다. 여기서 입는 상처로 인하여 신앙의 진수(眞髓) 가 사라져 가고만다. 우리는 성도들간의 덕을 위해 힘써야 한다. 우리가 서로 물고 뜯으며 싸우는 동안에는 서로 덕을 세울 수 없다. 우리가 진정한 신앙 안에서 곰곰히 그걸 생각하고, 충고하며, 견책하며, 교훈하며, 모범을 보이며 자기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세우도록 하면, 서로 덕을 세울 수 있는 길은 많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건물이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서로 붙들어 세워 줄 필요가 있으며 서로의 영적 성장을 위해 힘쓸 필요가 있다. <부축>을 받지 않을 정도로 강한 자도 없고, <덕>을 세울 수 없을 정도로 약한 자도 없다. 따라서 우리는 남을 붙들어 세워줌으로 우리 자신에게 혜택을 가져오고 복된 열매 맺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다.


평화의 복음을 전파(전도)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발(언어 행동)이 아름다와야 한다. 사역자들의 성결한 생활이야 말로 그들의 발의 아름다움이 된다. 그들의 말을 듣는 자들의 눈에 “아름답구나”! 하는 걸 보여 주어야 하는 것이다. 메시지(message)를 환영하는 자들이 그 메시지를 가져오는 자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살전5:12-13). <복음>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복음을 알고 믿을 뿐 아니라 <순종>하라는 의미이다. 즉 실천준칙 이라는 얘기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즉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의 말씀’ 이시다. 우리 성도들은 사역자들을 늘 사랑안에서 높이 존경해야만 하고, 목자가 자기 양떼들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양떼들도 자기의 목자를 알아야만 한다. 성도들은 사역자(교역자)의 인품을 알고 그의 말을 청종하고 그를 그들의 목사로 존중하며 그의 가르침과 다스림과 권계에 대하여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항상 정직하고, 신실하고, 근면한 사역자들에게는 영예가 주어져야 됨을 믿는다. 우리 성도들은 늘 사랑으로 다스림 받아야 된다. 즉 좋은 상담자가 되고 잘못됨을 교정받고 계도(enlightenment) 받는 것이 우리성도의 의무이다.


<복음>은 모두가 지혜롭고 선하며 우리를 지혜로운 자로, 선한자로 만드는 길이요, 생명이며, 우리가 종말이 올때 주 여호와의 구원을 볼 수 있도록 언행심사를 올바르게 실천하고 살아가야 될 줄 믿는다. 우리는 악인들의 악을 끊기 위해 우리가 할수있는 최선의 일을 하도록 하자! 모든 일에 있어서 엄정하고 떳떳한 그리스도의<복음>이 될 수 있게끔 행동하자! 의를 세우고 선을 확신시키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 해보자! <복음>을 두려워하고 멀리하는 자들을 서로서로 가르치고 북돋아 주고 격려해 주자! 주 하나님 안에서 용기를 가지고 소망을 갖도록 하나님께 우리자신을 맡기고, 하나님안에서 내 자신을 강하게 하며 즐겁고 만족하게 그날을 기다리자. 현재의 내 자신을 살펴보고 내가 무엇때문에 태어났는지, 언제까지 생명이 존속될 것인지, 나의 영혼이 바로 내자신 이라는 점을 곰곰히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땅에 보물을 쌓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닫게 된다.


<주 하나님께>로 부터 인정을 받는 일이야 말로 썩지도 않고 도둑맞지 않는 천국의 보물이 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과 더불어 보물을 쌓는다면 나의 마음은 하나님과 더불어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과일이 익기도 전에 먹지도 못할 걸 달라고 졸라 대는 어린애와 같이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자. 성령은 하나님께 향한 우리의 모든 바램과 호흡의 원천이다. 우리 성도들의 특권은 곧 “모든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 김진규 - 밀알교회 장로 >



빌라델비아 부모세미나에서 강의하는 송남순 교수.


빌라델비아장로교회 세미나서 송남순 교수 강연
부모세미나 ‘힐링과 변화’… “자녀는 하나님 것, 투자 아닌 헌신해야”

“자녀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투자’가 아닌 ‘헌신’을 하게된다. 자녀를 위해 사랑과 인내로 헌신하라”
빌라델비아장로교회(담임 김경진 목사)가 가정의 달을 맞아 어버이 날인 5월8일 ‘부모와 자녀의 힐링과 변화’를 주제로 마련한 세미나를 인도한 송남순 교수(낙스 칼리지 기독교교육학)는 “자녀는 내 것이니 내 욕심대로 라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이 만드신 모습 그대로 살게 도와주면 행복할 것”이라고 자녀문제로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조언했다.
‘어린 왕자’(생 텍쥐페리)의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으로 자녀의 내면세계를 알지 못하는 부모들의 현주소를 예시하며 강의를 시작한 송 교수는 “힐링(치유)이 필요한 것은 인관관계에서의 상처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상처의 원인으로 경쟁과 비교, 자연을 잃어버린 인공과 가공만능, 그리고 바쁜 일상의 기계적인 리듬상실의 삶에서 사람과 사람의 대면이 힘들어진 탓이라고 전한 그는 “자녀와 얼마나 대면하는지 돌아보라”고 질문을 던졌다.


송 교수는 “누구나 정도의 차이일 뿐 상처를 안고 살아가지만, 특히 아이들은 5~6세 이전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가 무의식에 가장 깊이 오래 남는다”면서 “부모와 자녀는 절대권력과 절대의존자여서 부모의 무의식적인 언행이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송 교수는 무의식적인 상처 요인들로 자녀들에 대한 편애와 차별 및 무관심, 언어 혹은 신체적 폭력 등을 들고, “그 치유를 위해 먼저는 본인과 부모와의 관계가 자녀에게 투사된다는 사실을 깨달아, 나 자신과 부모와의 관계부터 용서와 화해의 힐링으로 해결하는 것이 자녀와의 힐링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자녀를 보는 관점을 바꾸어 ‘내 것이 아닌 하나님 것’이라는 의식변화로 ‘내 욕심’을 버리고 자녀에게 주어진 생명력과 창조력을 펼쳐나가게 해야 하며, 아이들을 온전하게 자라도록 지성과 감성 못지않게 영성을 키워주어 셋이 조화를 이룰 때 건강한 자녀로 상처를 딛고 일어설 것”이라고 역설했다.


힐링이 이뤄지는 단계를 네 단계로 구분해 설명한 송 교수는 먼저 ‘반성의 단계’로 아이의 보이지 않는 상처가 무엇이며 왜 생겼는지 반성적인 질문을 많이 해보라고 권했다. 두 번째 ‘마주보기’단계에서 대면과 만남으로 아이들의 내면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상처를 발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밝힌 송 교수는 ‘사과의 단계’에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용기있고 진실되게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며, 4단계는 사과 후의 ‘변화’로, 결단과 각오의 변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불신을 주고 결국은 더 깊은 상처를 안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송 교수는 이어 힐링을 위한 부모의 자세와 각오에 대해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와 탕자의 역할을 바꿔 생각해보기를 제안, ‘자녀에게서 빼앗은 게 무엇인가’‘어떻게 용서 받아야 하는가’‘큰 아들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나’등 부모 된 우리 누구나 실수하는 문제들을 짚어보며 ‘부모로 불릴 자격도 없는 데 불리우는 게 감사하다’는 관점으로의 변화, 나아가 ‘자녀는 자녀의 삶을 살도록 하는 게 더 행복하다’는 변화를 통한 행복을 강조했다. 송 교수는 또 “자녀교육을 ‘투자와 헌신’의 개념으로 볼 때 아이가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으로 헌신에 만족할 때 행복하다”면서 “그러기 위해 가정에 기독교적인 분위기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사랑과 인내로 받아주며, 신뢰 가운데 기대와 꿈과 소망을 심어주면서 끊임없는 힐링의 노력과 훈련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부모들에게 권면했다.


< 문의: 416-444-1716 >



[기쁨과 소망] 진실된 기도

● 교회소식 2015. 5. 15. 17:13 Posted by SisaHan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기도에 관한 것이다. 제자들이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물었을 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다 (마 6:9-15). 그래서 크리스천들은 주기도문을 기본적으로 다 외우고 있고, 종종 함께 외운다. 이 기도문을 가르쳐 주시기 전에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 가지 진실된 기도자의 마음 자세를 강조하셨다.

첫째, 외식하는 자가 되지 말 것 (마6:5). 그 당시 외식하는 사람들은 회당이나 길거리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했다. 기도 자체 보다는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과시욕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은 그런 기도보다는 골방에 들어가 은밀하게 드리는 ‘골방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여기서 진실성을 강조하셨다. 기도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나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진실성이 없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기도는 나와 하나님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지 타인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도가 나의 영성을 알리는 광고수단이 된다면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영성은 썩은 영성이고 파탄한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진실성이 결여된 삶을 계속 살면, 결국 외식자가 된다. 그래서 진실된 기도자라면 반드시 ‘골방’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골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믿음의 비밀’이 되는 것이다.

둘째, 중언부언하지 말 것 (마6:7). 이방인들은 말을 많이 해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착각 속에 살았다. 그래서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며 지속적인 반복을 했다. 그런데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할 바를 이미 다 알고 계시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접근 방법이 달라야 한다. 하나님은 귀머거리가 아니시다. 우리의 기도는 좀 더 간결해야 하고, 그 대신 하나님의 뜻을 더 깨닫기 위한 ‘듣는 시간’이 늘어나야 한다. 우리의 기도를 살펴보면 너무나 일방적일 때가 많다. ‘주시옵소서’ 하며 너무나 일방적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진심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듣는 기도다. 복잡한 심경을 내려놓고,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묻는 기도를 더 많이 드려야 한다.
 
주기도문을 살펴보면 그 간결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군더더기가 없는 아주 짧은 기도이면서 참된 기도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에 대한 것으로 시작하고, 일용할 양식, 죄 사함의 은총, 그리고 악에서의 보호를 구하고 난 다음, 다시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구하며 끝을 맺는다. 그러므로 기도란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 안에 녹아지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이런 마음 자세를 잘 유지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기도를 드릴 수 있다.

< 송민호 목사 - 토론토 영락교회 담임목사 >



리노베이션된 집을 살 때

대체로, 지은지 30년이 넘는 주택들은 Open Concept개념이 없이 뭔가 답답하고, 시원한 느낌이 들지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집 구조를 바꾸기위해 Modern Style로 전체적인 리노베이션을 하는데, 이때 건드려선 안될 부분인 지지벽(Supporting Wall)을 허물어 버렸을 때에 당장은 느끼지 못한다해도 서서히 시간이 지나며 안전문제에 비상이 걸리게 된다. 또한 이런 집을 모르고 샀을 경우에 그 피해에 대한 보상은 누구에게서 받을 수 있는 것인가?


사례) Katherine씨 부부는 2년 전 미시사가에 있는 아름다운 주택을 구입했다. 중개인 말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15만불 이상을 들여 리노베이션을 한, 현대적 감각의 탁 트인 구조였으므로 Katherine씨 부부의 매우 흡족해 했던 구매였다 한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작년 여름부터 1층의 천장이 조금씩 경사가 지듯이, 휘어짐(Sag)이 관찰되기 시작하였으며, 구조물 전문가( Structural Engineer)에게 검사를 받아 본 결과, 전 주인에 의해 리빙룸과 다이닝룸 사이의 지지벽(Supporting Wall)이 제거되어 있음이 확인되었으며 임시로라도 Construction Jack을 설치하지 않는다면 안전문제로 인하여 그 집에서의 거주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충격 속에서 변호사를 찿은 Katherine 씨 부부는 전 주인에게 배상 청구는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는다. 전 주인이 일부러 감추려 했던 Hidden Defect(숨긴 결함)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결국 그의 Title Insurance Company인 Stewart Title 사에 배상을 청구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Insurance Policy(보험 약관) 에는 매우 애매한 규정이 있어 배상이 이루어 질 수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는 법정 다툼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었다. Insurance Policy 에 의하면, 주택 구조물 중의 일부가 Building Permit(건축허가) 이 없이 지어지거나 개조되었고, 시당국이 이를 알고 시정을 명령하였다면 보험사는 이를 배상해 주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만일 주택이 Building Code(건축법규)에 맞지 않게 지어지거나 개조되었다 하더라도 시당국이 이를 모르고 있거나 시정명령을 발동하지 않았다면 보험처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그렇다고 시당국이 사후에 시정명령을 발동하여 주지는 않는다)


2011 년도에는 서드버리 지역에서 전 주인이 Building Permit이 없이 리노베이션을 하였다가 Foundation(기초) 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던 집을 $110,100 에 구매하였던 집주인에게 시당국은 집 구매 후 바로 시정명령을 발동하였고 집주인은 Title Insurance 로부터 $105,000 의 배상을 받은 일도 있다.
Katherine 씨 부부는 현재 배상청구 후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지만 어떠한 낙관적인 기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현재 온타리오주에서는 이런 사례에 대한 확실한 배상 기준이 없이 그때 그때의 사안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이 되기 때문이란다.


결론) 1.주택 구매시 괄목할만한 리노베이션의 흔적을 찿아 볼 수 있다면 반드시 Building Permit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
2. 요즘과 같은 복수 오퍼 상황에서는 건물검사의 컨디션을 가지고 집을 구매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위와같은 심각한 문제를 가진 집을 구매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고 항상 경계심을 늦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 김종욱 - 부동산 리얼터, Golden Ridge Realty Inc. >
문의: 416-409-9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