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소망] 영혼 없는 사람들

● 교회소식 2016. 12. 6. 20:1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온 날 아침, 딸 아이가 물었다. “아빠, 트럼프가 훨씬 더 비성경적이고 비기독교적인 것 같은데,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왜 트럼프를 지지하죠? 그러면 그들의 신앙은 도대체 뭐지요?” 자기도 답답했던 모양이다.
이는 2012년 한국의 대선이 끝나고 가슴 먹먹한 가운데 나 스스로 고민했던 질문을 내 아이가 다시 던진 것이다. 뭐라 답할 수 있을 것인가?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도는 듯한 이 말도 안되는 현실 세계를 말이다. 요즘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로 “영혼 없는 기독교인들” 아니면 “행함이 없는 귀신같은 기독교인들” (야고보서 2: 19)이 한 짓이라 할 밖에.
그러고 보니 말이 되는 것 같다. 워싱턴 포스트에 의하면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81% 가까이가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대표적인 기독교 사회정의 구현 단체 <소저너스>(Sojouners) 창립자인 짐 월리스(Jim Wallis)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 <소저너스>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백인 복음주의자 대부분은 자신의 영혼을 한 사람에게 파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았다. 트럼프는 공인 중에 미국 문화에서 가장 나쁜 가치인 돈·섹스·권력을 부끄러운 방법으로 찬양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이번 선거처럼 종교적인 위선을 목격한 적이 없다.”
짐 윌리스는 백인 기독교인들을 향하여 “영혼을 팔아 트럼프를 택한 종교적 위선자”라 고발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피값을 주고 산 그 귀한 영혼을 자신들의 이익과 거짓된 신념을 위해 내다 판 꼴이 되었으니 , 이들은 이미 은혜와 진리를 잃어버린 영혼 없는 사람들이 된 셈이다.
이런 부류의 위인들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빌라도 총독 앞에서 , 당장 눈 앞의 이득과 자기 안일을 위해 진리이신 예수를 버리고 바나바를 택한 이들이 그들이다. 바로 신앙 양심과 영혼을 판, 영혼 없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마음이 아픈 것은 예나 지금이나, 2012년 한국 대선에서도 , 2016년 미국 대선에서도 이런 영혼 없는 사람들이 ‘복음주의자’라는 이름으로 그 세를 과시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부정과 부패에 맞선 촛불이 강물처럼 밀려오는 지금이 순간에도 “세월호의 어린 생명들보다 박근혜를, 한반도의 평화와 민중들의 안녕보다 박근혜를!“ 외치는 고국의 여당 대표 또한 소위 ‘신실한’ 기독교인이라니 참으로 절망스러울 뿐이다. 아, 정말 영혼이 없는 사람들인가보다!


그러니 오늘의 한국이 우수꽝 스러운 나라가 된 것이 이상하지 않고 교회가 놀림감이 된 것이 새롭지 않다.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안타까운 건, 세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미국도 머지않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래서 더 큰 일이다.
그래서 강물 같은 촛불 행진에 작은 촛불 하나 더 보태며 간구해 본다. ”더이상 자기의 유익을 위해 신앙 양심과 영혼을 팔아버린 영혼 없는 기독교인들이 나오지 않기를….”

< 김진식 목사 - 몬트리올 한인연합교회 담임목사 >


“대통령 법적·도의적 책임져야”

● 교회소식 2016. 12. 6. 20:1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 목사들이 미스바대각성 구국기도회에서 기도하고 있다.

교계단체·교단 등 박 대통령 3차 담화 비판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에 대해 교계 연합단체들은 29일 ‘실망스럽다’는 논평을 내놨다.
진보 성향 교단협의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비상시국대책회의(이하 시국회의)는 이날 논평에서 박 대통령이 절차적 권력 이양의 뜻을 밝힌 데 대해 “국민의 요구는 여전히 즉각 퇴진”이라며 “국회의 뜻을 따르겠다는 것은 현실정치를 고려하지 않은 꼼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시국회의는 이어 “박 대통령은 여전히 피의자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국민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길은 즉각 퇴진 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들은 “국회는 자신들의 임무가 조속한 탄핵절차를 밟는 것임을 주지하고 속히 임해주기를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교회연합 “권력 미련 버려야”
보수 성향 교단협의체인 한국교회연합(한교연) 역시 박 대통령의 담화 내용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한교연은 논평에서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은 최순실 개인이 아닌 대통령의 책임이며, 이는 대한민국의 국격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며 “대통령이 오늘까지 침묵으로 일관해 오다가 국민 앞에서 ‘나는 사익을 추구하거나 사심을 품지 않았다’고 항변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또 “대통령은 모든 것이 내 책임이며, 내가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특권을 내려놓고 법이든 도의적 책임이든 응당한 처벌을 받겠노라고 선언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교연은 “본인 입으로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어긴 대통령이 오늘 스스로 밝힌 퇴진 의지가 아직도 권력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것으로 국민 앞에 비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예장통합 “검찰조사 성실 응해야”
대한 예수교장로회 총회(예장 통합: 총회장 이성희 목사) 인권위원회는 12월 첫째주 인권주일을 맞아 담화문을 발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비판하고 박 대통령의 책임을 촉구했다. 담화는 ‘대통령의 헌법유린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이라고 지적, “선조들의 피와 희생으로 이루어낸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며 개탄했다. 또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 1조 2항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정부가 국민의 인권과 주권을 보호하기를 촉구”해 현 정권 하에서 비선실세를 통해 권력이 나온 비상식적이고 반인권적인 행태를 에둘러 비판하고, “대통령은 2차 담화문에서 약속한 것처럼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시위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은 후 의식불명에 빠졌다가 지난 9월에 사망한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국가권력의 무자비함은 한 생명을 앗아갔다”는 표현으로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유린을 비판했다. 담화문에서는 그가 요구한 농민의 생존권적 기본권을 정부가 보호할 것을 촉구했다.


담화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우리 정부가 일본정부에 대해 진정한 사과,법적 책임,진상규명과 올바른 역사교육을 주장할 것과 다문화가정,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정책을 보완할 것을 촉구했다. 담화는 또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인권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인권이 침해받아 고통당하는 이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위로하고 함께하는 일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1500자 칼럼] 그랜드 벨리 통신 2

● 칼럼 2016. 12. 6. 20:0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저들을 어찌할꼬

이른 아침 커튼을 젖히니 검붉은 아침 해가 가까운 편백나무 숲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흐린 날씨가 연일 계속되는 요즘이라 탐스러운 해돋이는 반가움을 넘어 감동이었다. 나는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며 일출 광경을 음미하다 아랫동네로 시선을 돌렸다. 된서리가 내려 희뿌옇던 동네가 아침 햇살이 닿자 말갛게 깨어나 신선함을 더한다. 싱그러운 나의 아침은 이렇게 찬란한데, 고국소식은 눈만 뜨면 해외 톱뉴스거리이니, 소시민의 출근길이 천근만근 무겁다.
 
나는 서둘러 채비를 차리고 근거리에 있는 사업장에 바쁜 듯 들어선다. 특별히 바쁜 일도 없건만 주위 시선을 의식하며 괜히 과장된 움직임을 하는 것이다. 그리곤 직원들이나 손님들에게 다소 과한 아침인사를 보낸다. 속에선 더 크게 더 신바람 나게 외치라고 하지만 생각 뿐 자격지심으로 움츠려드는 행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나에게 누군가 말이라도 걸어오면 한 두 마디 단 답으로 끝내고 종종걸음 치기 일쑤다. 얼굴 맞대고 몇 마디 더 걸쳤다간 작금의 고국 사태로 이어지기 십상이라 나름대로 연막을 치는 것이다. 평소 활기 넘치는 나의 생활태도가 이렇게 위축되다보면 얼마 안가서 대인공포증까지 오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는 일상이다.

지금의 황망한 고국 상황은 내 개인의 잘못이 아니기에 자존심을 조금 굽히면 되련만 이곳 공직자들의 올곧은 집무 과정을 간접 경험하곤 더 안으로 숨고 싶은 심정이다. 그 올곧은 공직자들이 내 가까운 이웃이자 우리의 고객이기에 더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우리 가족이 터를 잡은 곳은 그랜드 밸리의 신흥주택지이다. 오래 전 주택단지가 완공되어 주민들의 입주가 끝났건만 외부공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어느 날 잘 조성된 인도를 느닷없이 파헤치는가 하면, 또 어느 날은 잘 마무리된 도로의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다시 까는 작업을 반복하고, 많은 비가 내린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공사 차량이 몇 대와서 맨홀 깊숙이 안전 점검을 한다. 그리곤 부족하다 싶으면 하수관을 교체하랴 부분 땜질을 하랴 며칠을 보낸다.
도로 곳곳에 빨간 깃발이 꽂히거나 주황색선이 그어지면 그 주변은 반드시 대형 공사로 이어진다. 주민의 입장에선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지만 책임자는 이에 아랑곳 않고 파고 묻기를 밥 먹듯이 한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개보수 작업은 주택 시공자와 관계 공무원의 끝없는 줄다리기였다.
정해진 규격이나 함량에서 조금이라도 미달되거나 오차가 생기면, 그 작업이 아무리 돈이 많이 들었던들 두 번 세 번 혹은 될 때까지 가야 완공 판정을 받는다. 오죽하면 시공업자를 측은하게 여겼을까.


구시가에서는 건물을 지은 지 십 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완공 판정을 못 받은 사례가 있다. 처음엔 설마 했는데 이런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이해가 되었다.
주택 시공업자나 건물주 인들 부족한 부분을 금전으로 해결 보려는 마음이 왜 없었을까, 아니 시도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끝까지 원칙을 고수하는 투철한 공인 정신을 가진 지방 공무원들이 한국의 현재 상황을 얼마나 어이없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한국 사람이라곤 유일한 우리 가족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 너무 커서 괴로운 것이다.
열심히 사는 소시민들에게 극도의 수치심을 안기는 저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국의 앞날이 심히 걱정되는 날이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


[칼럼] ‘히로뽕 시대’와 결별하기

● 칼럼 2016. 12. 6. 20:05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올해는 참 수상한 해다. 합리적 예측이나 상상력을 무색하게 하는 사건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벌어지는 일은 드물다. 지난 6월 영국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결정이 나오더니, 급기야 지난 8일 미국 대선에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돼버렸다. 하나하나 경악할 만한 일이지만, 올해 벌어진 기상천외한 사건들은 한국에서 정점을 찍은 듯하다. ‘박근혜 게이트’에 견주면, 브렉시트나 트럼프의 당선은 그야말로 ‘새 발의 피’다. ‘사우스코리아’를 국제 뉴스의 주요 무대로 만든 것은 순전히 박근혜와 최순실의 공이다.
한파가 닥친 지난 26일 서울 광화문 촛불시위 때도 아이를 목말태운 아빠,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자녀의 손을 꼭 붙잡고 행진하는 부모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왜 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섰는가? 박근혜에 대한 분노인가, 농락당한 법치주의·정의를 되살리기 위해서인가? 나는 왜 이 거리에 서 있나?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촛불을 든 건 ‘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잘 살아야 한다”는 7년 전 봄 돌아가신 어머니가 유언처럼 내게 남긴 말이다. 나는 평생 궁핍했던 어머니가 남긴 그 말의 의미를 잘 안다. 아니, 직감한다. 그건 박정희가 한국 사회에 깊이 심어 놓은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와 ‘잘살아야 한다’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은 1988년 8월2일 일기에서 박정희 시대를 이렇게 평했다. “박정희가 권력을 잡은 이후부터, 단 하나의 담론이 모든 것의 우위에 있었다: 우리는 잘살아야 하고, 잘살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가 붙는다. 물질적으로 잘산다는 것을, 그는, 그냥 잘산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조금 부유해졌다고, 과연 잘사는 것일까? 그는 물질을 올리고, 정신·신앙·문화를 낮춘다. 정신적인 가치는 물질적 가치에 종속된다. 언제까지? 다 피폐해져서, 물질적 쾌락만 남을 때까지! 그는 상징적인 히로뽕 판매자였다!”(<행복한 책읽기: 김현 일기 1986~1989>)


박정희는 상징을 팔았다지만 그의 아들은 직접 히로뽕을 맞고 감옥을 들락거렸다.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대통령이 된 딸은 ‘뽕을 맞은 영혼’의 소유자임이 뒤늦게 발각됐다. 박정희가 키워낸 재벌들은 그의 담론을 가장 충실히 따랐다. 청와대의 ‘강요’에 못 이겨 돈을 냈다고 우기지만, 재벌들이 돈을 뜯겼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은 많지 않다. 그들은 장사꾼이다. 적게 주고 오히려 많이 챙겼을 것이다. 박근혜 게이트는 정치권력과 재벌이 서로 주고받으며 배를 불리는 박정희식 모델의 타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공화국의 적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보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재산의 적정한 분배가 이상적인 정치체제를 뒷받침한다고 봤다. 그래야 서로에게 ‘쫄지’ 않는 자유민이 되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1469~1527)는 로마가 점령한 식민지의 부가 로마로 유입되면서 로마인들이 물욕과 탐욕에 물든 것을 공화정 몰락의 원인으로 꼽았다. 박정희가 퍼뜨린 ‘히로뽕’에 중독된 사회, 사회의 부가 소수에 집중된 사회에서 민주공화국의 가치는 설 자리가 없다.


‘다 피폐해져서, 물질적 쾌락만 남은’ 박정희식 인간의 전형을 최순실한테서 본다. 그건 일그러진 우리 욕망의 자화상일 수 있다. 박근혜를 대통령에서 쫓아내는 것만으로 민주공화국을 바로 세울 수는 없다. 잘 살려면 박정희가 퍼뜨린 ‘히로뽕’을 끊어야 한다.
< 황상철 - 한겨레신문 국제뉴스 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