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시 조례 확정
주거·아파트·문화재 지역 등은 허용

교회 입지(立地) 및 건축 등의 규제를 내용으로 한 토론토시의 새 도시계획 조례안(Zoning by-law)이 지난 3일 시의회 표결에서 통과됐다. 이 조례에 따라 앞으로 교회는 공업지역에 들어설 수 없으며, 리노베이션 할 때는 주차공간을 늘리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그러나 주거지역은 물론 일부 상·공업지역, 문화재관리 지역 등은 당초 규제대상에서 후퇴해 허용토록 했다. 하지만 교계가 막바지 추가수정을 원했던 3개항, 즉 △표준 주차공간 기준 하향조정 △경(輕)공업지구의 입지허용 문제, △커뮤니티센터 등에 교회가 들어설 수 있음을 명기하는 것 등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따라 조례안 변경을 추진해온 교계‘Toronto Faith Coalition’(=TFC)은 이달 25일 오전 11시 Polish Alliance Hall(2282 Lake Shore Blvd. Etobicoke)에서 모임을 갖고 향후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토론토 시의회는 3일 새 Zoning by-law의 표결에 앞서 2시간여 동안 찬반논란을 벌인 끝에 표결에 부쳐 22대16으로 통과시켜 이같은 내용의 새 조례를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토론토시는 종교시설의 소음과 주차 등 문제로 인근 상업·산업체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주변에 신규 입주를 꺼려 결과적으로 산업활성화를 저해는 물론 세수감소에 연결된다는 등을 이유로 상업·공업지역에 교회가 위치할 수 없게 하고 용도변경도 불허토록 규제를 추진해왔다. 이에 교계는 1200여 곳의 교회 가운데 약 22%가량이 이에 저촉돼 교세 확장에 큰 지장을 줄 것이라는 공감대로 결집, TFC를 통해 조례안 저지에 나서 다수 조항이 수정되도록 했다. 그러나 최종 조례안은 교회의 예배당 점유율과 주차문제 연계, 경공업지구 입지불허 등으로 규제를 완전 백지화하지는 않은 셈이다. 이에따라 앞으로 경공업지구에도 교회가 들어설 수 없게 됐으며, 현재 입주해 있는 경우 매매나 용도변경 등에도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TFC의 한인교계 대표로 활동해 온 주권태 목사(수정교회 담임)는 “확정된 조례는 교계 의견이 상당부분 반영됐으나, 남은 중요 3개항이 실현되지 못해 ‘절반의 성공’에 그친 감이 있다”면서 “앞으로 TFC 전체 의견을 모아 대책을 강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에서 조례가 확정됨에 따라 조항을 다시 개정 혹은 시행을 막으려면 주정부 차원에서 조치가 필요해 TFC는 이달 중 모임에서 이 문제를 협의, 교계방침을 정할 예정이라고 주 목사는 덧붙였다. 그러나 주정부-의회에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변호사 비용만도 50만여 달러가 소요되는 등 난관이 많아 현재로서는 전망이 불투명하다. TFC는 그동안 시 조례안 대응에 12만5천 달러 정도의 변호사 비용을 들어간 것으로 밝힌 바 있다.
 
확정된 시 조례의 ‘Places of Worship’은 교계 요구에 의해 △Residential Zones △Apartment Zones △Some Commercial Zones △Some Institutional Zone △Heritage Properties △ Favourable Architectural issues 등에 교회입지를 허용토록 했다. 반면 반영되지 못한 3개항은 △유사건물에 비해 차별적인 표준 주차공간 기준(Parking Standard) 하향조정과 주차공간 계산에 영향을 주는 강당(예배당) 사용률 65-70%인정, △경(輕)공업지구(Light Industrial Zone)에서의 주민 동의문제, 그리고 △커뮤니티센터와 학교강당, 도서관 등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교회가 들어설 수 있음을 명기토록 하는 것 등이다.
< 문의: 647-393-7705, 416-392-1147 >


임수택 목사 8강좌 … 스포츠 선교 활용 자료로 제공

교회 스포츠 선교의 실용 지침서인 <교회스포츠>를 펴낸 임수택 목사(갈릴리장로교회 담임)가 스포츠선교에 대해 강의한 8개의 강좌를 유튜브에 올려 각 교회 스포츠선교 담당 사역자들에게 좋은 활용자료가 되고 있다.
임 목사가 지난 2010년 4월 출간한 <교회스포츠>는 교회와 성도들의 스포츠활동에 대한 전반적 고찰은 물론 스포츠선교와 그 미래에 이르기까지 교회스포츠의 모든 것을 처음으로 집대성한 역작으로, ’스포츠를 영적인 영역으로 확장시킨 비범한 걸작‘이라는 평을 들은 바 있다. 이번에 유튜브에 올린 임 목사의 강의는 그 연장선에서 스포츠선교에 대해 한 강연들을 모아 교회들의 스포츠선교에 도움이 되도록 영상으로 만든 것이다.
 
유튜브 주소는 http://www.youtube.com/watch?v=mGKKjj8mXLg 이다.
임 목사는 영남대 철학과와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International Theological Seminary 목회학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교회스포츠 선교회장도 맡고있다.
< 문의: 647-824-8870 >


1391년 리베리아 반도(에스파니아) 에서는 반 유대인 폭동이 일어나 수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고 유대교로부터 기독교로의 개종을 강요 당했으며 이후 레콘키스타(이슬람 통치로 부터 리베리아 반도를 기독교 국가로 재 탈환하려던 정복운동)가 완성된 1492년에는 기독교로 개종하기를 거부하는 약 사십여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재산을 빼앗긴 채 국외로 강제 추방을 당하였다. 또한 1880년 러시아의 페테르부르그에서는 한 정신병자에 의하여 황제가 폭사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그를 심문하던중 몸에 할례(유대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상징하는 신체에 행하는 표시)흔적이 있다는 이유로 사건 배후에 유대인의 음모가 있었다고 조작한 후 그 이듬해에 법을 제정하여 러시아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을 삼등분하여 삼분의 일은 학살, 삼분의 일은 강제 추방, 나머지는 노예로 전락시키는 가혹한 조치를 취하였다.
2차 대전이 종료되어가던 1945년 1월 폴란드의 유대인 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로 진격해 들어가던 소련군은 수용소 내에서 비참하게 학살당한 유대인들이 남긴 118만벌의 의복, 7.7톤의 머리카락, 산 더미처럼 쌓인 가방과 신발, 그리고 미처 처리하지 못한 600여구의 학살된 시체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동안 수 많은 지역에서 고난과 박해를 당해왔으며 특히 기독교 문명권인 유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민족이라는 반 유대적 정서와 특이한 민족적 편견으로 인하여 끊임없이 시련을 당해오고있다. 오늘날에도 민족혐오 범죄에는 언제나 유대인이 개입되어 있음을 보게된다.
 종교 개혁자 M.루터는 그의 악마론에서 “악마를 제외하고 가장 흉측하고 광포한 인류의 적은 유대인이다”라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우수한 민족, 스스로를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라 자부하는 그들이 왜 이처럼 민족적 차별과 박해를 당하고 있을까?
오늘날에도 인류사회에 뛰어난 역할로 공헌하고있는 그들이 아닌가. 그들은 과연 세계인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단 말인가? 여기에 중요한 단서가 있음을 성경에서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신약성경인 마태복음 27장에는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던 유대인들이 당시 유대지역을 관할하던 로마총독 빌라도(AD 26-36년)에게 고소하는 장면을 기록하고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여야 한다는 고소를 접한 빌라도는 심문결과 그에게서 사형시킬 만한 어떠한 혐의도 없음을 발견하고 석방하려 하였으나 성난 유대인들이 폭도로 변할 것을 우려하여 그들의 요구대로 십자가에 처형할 것을 허락하면서 “나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다”고 선언하는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이에 대하여 그를 고소했던 많은 유대인들은 “그 피값(죄 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외쳤다.(마태복음 27장25절)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인 그 책임을 자기들과 후손들이 감당 하겠다고 선언하는 무서운 행동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선언이요 자신과 후손들에 대한 혹독한 저주였다. 이와같은 저주가 자신과 후손들에게 족쇄가 되어 현실에서 생생하게 되돌아 올 줄을 그들은 꿈엔들 생각했을까?
 19세기 독일의 역사학자 L.V. 랑케 (1795-1886)는 확실한 자료비판에 기초한 객관적이고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역사가 새롭게 서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초자연적인 기적, 영적인 내용, 비 과학적인 사실은 역사의 기록에서 제거 되어야 한다고 말함으로 새로운 역사 해석의 지평을 열어놓았다. 이에 따라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생애를 역사 비평학적인 관점에서 난도질하여 새로운 각도로 해석하는 소위 ‘고등비평’이 시작되었다.
 
그와 같은 논리에 근거하여 그들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그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기적 등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화적인 것으로 왜곡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극히 일부 신학자와 목회자 (목사)들 가운데에도 해괴한 논리를 이용하여 복음서는 많은 신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신화는 때로는 역사적 사실보다 가치가 있다는 웃지 못할 궤변을 늘어 놓는 사람들도 있기도 하다. 2천년 전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할 것을 주장했던 유대인들과 다를 것 없는, 예수를 두 번 십자가에 못박는 자기저주 행위인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당면한 최대의 적은 타락한 인간의 이성이다. 피조물인 인간의 자아, 죄로 오염된 인간의 이성과 지성이 조물주를 향하여 도전하며 저항하고 있는것이다. 18세기 프랑스의 이성주의자 볼테르(1694-1778)는 아침에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보고 “오, 하나님 나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이 거짓인 것을” 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사실을 보면서 시편기자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하나님이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편 19:1)
타락한 문명과 사회, 죄로 오염된 이성이 절대 선을 향하여 도전하는 시대, 불의가 진리를 오도하고 피조물이 조물주를 향하여 항거하는 왜곡된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 신성균 장로 -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


[1500자 칼럼] 경험이 없을 때는,

● 칼럼 2013. 4. 16. 14:08 Posted by SisaHan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서 가끔 연락이 온다. 잘 키운 두 자녀 결혼을 앞두고 일어나는 일들도 큰 화제거리의 하나이다. 이제는 적령기가 훌쩍 넘은 딸이 사람을 만나 서둘러 결혼을 한다고 하고, 또 연달아 아들까지 사귀어 오던 아가씨와 결혼식을 추진 중인데, 친구 부부에게는 둘 다 자신의 아이들의 배우자로 적당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 된다고 했다. 부부는 아이들의 마음을 돌려보려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하고, 타일러 보기도 했지만 두 아이 모두 설득할 수 없을 것 같다며 크게 염려한다. 긴 통화 끝에 친구가 덧붙이는 말은 “아이들은 본인들의 의사대로 결혼을 할 것 같은데, 이런 경험을 해보지 못해서 어떻게 맘에 썩 내키지 않는 예비 사위와 며느리를 대하여야 할 지 모르겠다” 였다.
 
전화를 끊고 계속 친구의 마음을 되뇌이며, 사람의 만남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아마 수시로 우리 마음으로 스며드는 불확신과 두려움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맺는 인연들을 돌이켜 보면, 미리 준비하고 상대방을 선택하는 일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알지 못하는 미래를 두려워하고 상대방과의 관계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 너무 베풀면 공정한 관계가 성립하지 않을 것 같고, 간혹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도 한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조차도 얼만큼의 보호와 사랑의 표현이 아이를 강건히 자라게 할 것인지 전전긍긍한다. 마음으로부터 솟는 자연스런 감정의 표현보다는, 정해진 법도에 따라 행동하기도 하고, 견제하고 또 조심스레 마음을 열어 보이며 관계를 성립해 간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이런 우리의 모습은 직장의 동료는 물론, 친구, 배우자 하물며 부모 자식 간에도 이어지는 인간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렇게 밀고 당기던 인연도 그것이 끝나는 순간이 오면 여태까지의 염려와 주저함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이었는지 사무치게 느끼게 된다, 아버지께서 오랜 세월 치매로 고생을 하셨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력만 잃으시는 게 아니라 성품도 달라지셔서 갈수록 옛 아버지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린아이처럼 남에게 의존하며 순간순간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결국 그렇게 의지하시던 어머니가 옆에 계시는데도, 불안하게 아내를 찾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그만 세상을 떠나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하지만 긴 투병 생활 끝에 아버지가 세상을 뜨신 순간 모든 것이 절벽 밑으로 떨어져 일말의 가능성도 남아있지 않다는 절망감이 들었다. 그것은 아버지 삶이 이어지는 가능성이 아니라, 내가 그 분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는 막막함이었다. 그 때까지 아버지가 무엇을 얼마만큼 기억하실 수 있는가 왜 그리 걱정을 했는가 싶었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일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였는지 생각 못했다는 후회였다.
 
이제는 성인이 된 아이들, 옆에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조카들, 먼저 보낸 친구들, 모든 헤어짐 후에는 아쉬움이 더 크다. 그나마 작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들과 만들어낸 반짝이는 따뜻한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삶 속에 거듭되는 확신없는 시작과, 후회스런 끝 마침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 이제 삶의 연륜이 깊어, 우리가 맺어가는 긴 여로의 끝을 가늠하면서, 살아가는 순간들에 필요한 용기와 지혜를 얻을 때도 되었다. 끝을 보면서 시작을 준비해 보는 연역적인 가르침이 아닌가 생각된다.
며칠 후 다시 친구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훨씬 차분해진 목소리로 ‘어차피 이제는 한 식구가 될 사람들이니, 어른이 두 팔 벌려 보듬어 주어야겠지’ 라고 말한다. 경험도 없고, 만족스럽지 못한 발 걸음을 내 딛으며, 그 여정의 끝을 이해하는 현명한 친구의 마음 다짐이 보인다.

< 김인숙 - ‘에세이 21’로 등단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심코 가톨릭교육청 언어치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