퀘벡 총선 PQ 승리 축제에 총격

● CANADA 2012. 9. 7. 16:56 Posted by SisaHan


마로이스 당수 자축연설 현장서 1명 피격 사망
피로물든 자축행사

9월4일 실시된 퀘벡 주의원 선거에서 의석을 늘리며 승리한 퀘벡당(Parti Québécois)의 폴린 마로이스 (Pauline Marois)당수가 당 본부에서 승리를 자축하는 연설을 하는 도중 괴한이 총을 쏴 한명이 숨졌다. 사진은 경호원이 마로이스를 급히 피신시키는 모습. 이번 선거에서 PQ는 54석, LIB(자유당) 50석, CAQ(퀘벡 미래연합)는 19석 등을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PQ는 퀘벡의 분리독립을 요구해와 향후 퀘벡의 진로에 영향을 줄 전망이다.

< 사진: CBC 화면 캡처 >


[1500자 칼럼] 김기덕과 TIFF

● 칼럼 2012. 9. 3. 19:11 Posted by SisaHan
이번 토론토 국제 영화제(TIFF)에 또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초대 받았다고 한다. 내가 이 영화제에서 처음 본 그의 영화는 십여년 전에 본 <섬>이었다. 그 해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됐던 이 영화는 나에게는 실로 충격적이 었고 감동적인 영화였다. 그 때까지 가끔 토론토영화제에 초대 됐던 한국영화와는 크게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영상미학이 뛰어났고, 내용도 절박한 상황에 부닥친 개인의 모습을 너무 잘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람들은 누군가를 붙잡으려 몸부림치지만 저마다 섬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영화 이후에도 <수취인 불명>, <나쁜 남자>,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사마리아>, <빈집>, <시간>을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보았다. 그가 영화를 만들 때마다 거의 매번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 초대를 받는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그처럼 자주 초대 받는 감독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토론토 국제영화제는 다른 유명 영화제에 비해 비교적 늦게 시작한 편인데, 짧은 시간에 세계적인 영화제로 발전했다. 그 이유는 미국과 가까워 미국에 진출하기 전의 쇼케이스 역할을 하기 때문에다가, 세계적인 유명 배우들조차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비교적 오기 편리한 토론토로 자주 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연히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영화제와 상관없이 토론토의 극장에서 상영되었을 때, 이곳 영화전문 기자가 쓴 글을 읽었다. 토론토 스타지 문화면 한 면에 크게 난 기사였다. 기사는 여지껏 북미에서 상영한 한국영화 중에 최대의 관중을 동원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훌룡한 감독이 정작 자신의 나라에선 왜 철저하게 무시 당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김기덕 감독은 이번에 칸느 영화제에서 <아리랑>으로 수상했다. 그는 이미 <빈집>으로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 <사마리아>로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음은 물론 각종 영화제에 끊임없이 초대를 받고 있다. 어떻게 보면 영화를 만들기만 하면 초대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은 상황이 나아졌는지 모르지만 그런 그가 한국에서는 그의 영화에 투자하는 투자자가 없고, 영화를 만들어도 상영할 극장을 구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역시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 초대받아 내가 보았던, <시간>이라는 영화가 한국에서 상영 될 수 있느냐 없느냐로 논란이 있었던 일은, 이유야 어쨌든 나로서는 참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돈을 적게 들이고 영화를 만들기로 유명하다. 작년에 만든 <풍산개>는 2억이 들었다고 한다. 요즘 대작이라고 만드는 영화들이 100억, 200억, 또는 300억을 들여 만드는 것에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는 또 영화를 빨리 만들기로 유명하다. 한 마디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주위의 천대를 무릅쓰고 악조건 속에서 영화를 만드는데, 이는 세계 어느 영화 감독도 흉내낼 수 없는 일이다. 해외 영화계에서의 지지와 격려가 없었다면, 그는 이미 오래 전에 영화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가 제자의 배신으로 인해 거의 폐인이 되었다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영화를 한국에서는 보지도 못할 날이 올지 모른다는 극한적인 발언을 하는 것도 보았다. 다행히 작년에 개봉된 <풍산개>가 한국내에서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다. 아울러 금년에 칸느 영화제에서 수상했다는 소식도... 내가 김기덕 감독이 걱정되는 것은, 한국에서 그와 그의 영화를 외면하고 무시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지연, 혈연, 학연 등으로 꽉 짜여진 한국이라는 유기체적인 조직사회에서 그는 아무 데도 속하지 않는 이단아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는 흔한 대학교의 연극영화과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충무로라는 특수사회 출신도 아니다. 특별한 연줄도 배경도 없기에 겪어야 하는 일일까?
 
그가 아무리 해외에서 상을 받고 유명 영화제에 초청을 밭아도 국내에서는 무시를 당하고 외면을 당해야 한다면..…한국 영화와 나아가서는 한국 사회가 실력이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냥 밖에서 모르면서 하는, 혼자하는 걱정일까?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칼럼] 여성 대통령을 보고 싶다

● 칼럼 2012. 9. 3. 19:09 Posted by SisaHan
시간의 흐름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눌 때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단연 미래입니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의 확실성에 비해 미래는 불확실하니 어떤 사람의 미래를 점치는 근거는 그의 과거와 현재입니다. 
사람은 변하는 것 아니냐, 어제까지 악행을 저지르다가도 내일부터 선하게 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스스로 과거의 자신과 결별하고 참으로 변하겠다고 마음먹고 노력하는 사람만 변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지난 월요일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박근혜 의원 때문입니다.
 
박 의원은 그날 기자회견에서 5.16 쿠데타와 유신과 관련해 “과거로 자꾸 가려고 하면 한이 없다”고 말하고, 장준하 선생 타살 조사에 대해서는 “조사할 게 더 있다고 하면 해야 되겠지만 저는 우리 정치권이 미래로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박 의원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사람이 저 하나는 아닐 겁니다. 지금 우리나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정치인 중 가장 과거지향적인 분이 “과거로 가려면 한이 없다, 미래로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니 말입니다. 
박 의원의 말에서 일본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도 저 하나가 아닐 겁니다. 지난 세기 초 한국인을 상대로 저지른 잔인무도한 식민지배에 대해 진실하게 사죄하고 보상하라고 하면, 일본 정부는 또 과거 타령이냐고, 이제 과거 얘기 그만하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과거를 잊고 미래로 가자는 말은 가해자가 하면 안 되는 말입니다. 그건 가해자가 진심으로 뉘우치며 사죄할 때 피해자가 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5.16 쿠데타, 유신, 장준하 선생 얘기 같은 과거사를 자꾸 들먹이는 건 박 의원이 자기 아버지가 저지른 과오에 대해 아버지 편을 들기 때문입니다. 
박 의원은 지난달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5.16은 당시 상황에서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하여 5년 전 ‘구국의 혁명’이라 했던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그 발언으로 지지율이 하락하자 5.16은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말을 바꾸었지만 그의 속내를 모르는 국민은 없습니다. 12월 대통령 선거가 임박해서 그가 이 문제에 대해 뭐라고 하든, 그가 아버지 박정희씨의 정신적 아바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박 의원이 대통령 후보가 되니 그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 것인지를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으로 출범한 후 줄곧 남성 대통령만 나왔으니 이제 여성 대통령이 나올 때도 되었다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여성 대통령을 바랍니다. 아무개의 딸이라는 최초의 정체에 갇혀 나이가 들어서도 ‘딸’로만 살려는 여성이나 권력가 집안에 태어나 권력 없는 삶의 비애를 짐작도 못하는 여성 말고, 남성과 동등하게 이지적이며 어떤 남성에게도 뒤지지 않는 경험을 쌓은, 미래지향적인 여성, 아니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미래는 과거에 출발한 기차의 목적지입니다. 엉뚱한 길로 간 기차가 제 목적지로 가려면 잘못 갔던 곳으로 돌아가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박근혜 의원이 자신이 원하는 미래로 나아가는 길은 ‘독재자의 딸’이라는 과거를 인정하고 아버지의 잘못을 막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며, 고통받았던 사람들의 해원을 돕는 데서 출발합니다. 
여성 대통령을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올해엔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 김흥숙 - 시인 >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치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구 일본군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종군위안부로서 무수한 고통을 경험하고 몸과 마음에 걸쳐서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를 진 모든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전한다.”
국가 차원의 일본군 위안부(이하 성노예) 동원 책임을 인정한 1993년 고노 담화의 일부다. 당시 일본 정부는 1년8개월간의 조사를 통해 성노예 모집 등에 국가가 관여한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당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담화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일본 쪽은 말로는 마지못해 이 담화를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훼손하는 언동을 해왔다. 2007년 아베 신조 자민당 정권 때 미국 의회에서 성노예 결의안을 채택하려 하자 정권 차원에서 이를 무마하려다 망신을 당한 게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번엔 노다 요시히코 총리와 내각의 각료들이 한꺼번에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나섰다. 노다 총리는 그제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이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해결됐다”고 말했다. 마쓰바라 진 국가공안위원장은 한발 더 나아가 “각료들이 고노 담화에 대해 (존폐 여부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극우파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나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시장, 자민당 정권이라면 모를까, 야당 시절 정부 차원의 법적 책임을 촉구하는 ‘전시 성적 강제 피해자 문제해결 촉진법안’을 냈던 민주당 정권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건 모순이다. 더구나 성노예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은 유엔이나 미국·유럽의회에서도 이미 수차례 확인된 국제사회의 상식이다.
 
정부는 더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1년 전 헌법재판소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대일배상 청구권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을 당시 생존 할머니는 235명 중 69명이었다. 그로부터 8명이 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일본은 헌재 결정 이후 이 문제를 다루자는 우리 정부의 요청을 “이미 한일협정으로 해결된 문제”라며 거부하면서 정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형태의 정치 타결을 꾀해왔다.
고노 담화의 내용과 정신을 부인하는 노다 정권의 민낯이 백일하에 드러난 이상 정부가 할 일은 자명하다. 한일협정 3조에 규정된 대로 일본에 중재위원회 구성을 통한 분쟁 해결을 제안하는 것이다. 일본 쪽이 응하지 않겠지만 그럴수록 정공법으로 대응해 그들의 몰역사적이고 비인도적인 모습을 국제사회에 적극 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