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대통령의 쿠데타' 같지만 그 이후는 천지차


페루에선 국회 해산 발표 당일, 예정된 탄핵안 가결
내각 대부분 즉각 사표, 부통령도 '불법 쿠데타' 비난

여당 의원 대부분 탄핵에 찬성한 페루, 반대한 한국
페루 검찰, 대통령 관저 문 해머로 부수고 영장 집행

 

지구 반대편 페루에서 대통령 윤석열(이하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가 새삼 조명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의 12.3 비상계엄을 거울로 2년 전 페루 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셀프 쿠데타를 새삼 들여다보고 있는 정도다.

 

페루의 인터넷 독립언론 라엔셀로나가 지난 달 4일 한국의 친위 쿠데타 소식을 전하면서 물린 윤석열 대통령과 페드로 카스티요 전 페루 대통령 사진. 2024.12.4. [라엔셀로나 동영상 캡처] 시민언론 민들레 
페루 독립언론 라엔셀로나가 동영상 뉴스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머리에 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이 즐겨 쓰던 밀집모자를 씌웠다. 2024.12.4. [라엔셀로나 동영상 캡처] 시민언론 민들레 
 

페루 언론은 3일 의외로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의 윤석열 체포 및 압수수색 영장 집행이 실패한 소식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일부 언론이 외신을 인용해 소개했을 뿐이다. 페루에선 그다지 주목할 만한 소식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중 인터넷 독립언론 라엔셀로나(La Encerrona)가 지난달 4일 '쿠데타의 데자뷔(다시 보는 쿠데타)'라는 자막으로 소개한 동영상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한국 덕분에 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이 다시 유행하고 있다'라는 자막이 달렸다. 궁지에 몰린 끝에 2022년 12월 7일 국회 장악을 시도하다가 결국 탄핵, 축출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이 새삼 입소문을 타고 있다는 것.

 

한국을 '거울'로 본 페루의 쿠데타 이후

친위 쿠데타 1달이 넘도록 아직 내란 수괴의 신병조차 확보하지 못한 답답한 상황. 페루를 거울로 삼아 한국의 정치적 혼란을 비쳐본다. 윤석열과 카스티요의 비교는 국회 장악 시도와 탄핵안 가결이라는 점에서만 유효하다. 두 사람의 정치적 입장과 이후 사법처리 과정은 비교할 만한 점이 거의 없다. 공통점은 2021년 7월 취임 뒤 여소야대 정국을 운영했다는 점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21대 국회에 이어 지난해 4.13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에 밀려 원내 제2정당에 머무르고 있다. 페루의 집권 여당인 '자유 페루(Free Peru)'는 카스티요의 취임 당시 130석 중 37석으로 원내 제1당이었지만 과반수에는 크게 못 미쳤다.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딸, 게이코가 이끄는 인민의힘(24석)과 인민부활(16), 고온컨튜리(7석) 등 보수야당의 위세에 밀렸다.

 

30일 새벽 검경의 압수수색이 벌어진 페루 수도 리마의 대통령 관저 밖에서 경찰이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다. 2024.3.30. AP 연합
공수처 수사관들이 한남동 대통령 관저 경내에서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하고 내려오고 있다. 2025.1.3.연합
 

게이코의 인민의힘은 카스티요 취임 4개월 만에 '도덕적으로 대통령직에 부접하다'는 이유로 첫 탄핵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2022년 2월 인민행동당 출신 마리카르멘 알바 국회의장이 후지모리주의자들과 연합해 시도한 두 번째 탄핵도 무위에 그쳤다. 세 번째 탄핵소추안이 상정된 건 운명의 12월 7일.

 

카스티요는 '셀프 쿠데타'라는 악수를 두었다.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와 맥락이 비슷하다. 카스티요는 국회의 국정 방해를 빌미로 국회 해산과 전국적인 통행금지, 비상사태 정부 설립을 발표했다. 이 시점부터 그의 셀프 쿠데타와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는 극명하게 갈린다.

국회 해산 발표 직후 카스티요 정부의 장관들이 대부분 사퇴했다. 제1부통령 디나 볼루아르테도 대통령과 결별했다. 헌법재판소와 함께 카스티요의 포고령을 대통령 탄핵 과정을 방해하려는 '쿠데타'로 규정, 발표했다. 같은 날 페루 국회는 대통령 탄핵 소추안 표결을 예정대로 강행, 101 대 6으로 가결했다. 놀랍게도 집권 자유 페루당 의원들도 대부분 찬성, 가결 기준(87석)을 훨씬 넘겼다.

 

페루를 '거울'로 본 한국의 쿠데타 이후

윤석열 정부 각료들은 1달이 넘도록 아무도 사퇴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실 고위공무원들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빈 대통령실을 지키고 있다. 페루의 부통령 격인 국정 2인자, 한덕수 국무총리는 비상계엄를 저지하기는커녕 들러리를 섰다. 집권여당 의원들이 위법적 비상조치를 선언한 대통령과 단호하게 결별한 것도 여전히 대통령을 두둔하는 국민의힘과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한덕수 총리는 헌법상 어떤 근거도 없이 여당과 공동 국정운영 구상을 발표하는 막간극을 벌였다. 비상계엄 11일 만인 지난달 14일 국회의 윤석열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 권한대행에 임명됐지만, 국회의 탄핵안 가결로 13일 만에 역시 직무정지에 들어갔다. 페루에선 탄핵안 가결 뒤 볼루아르테가 대통령직을 승계했고, 카스티요는 곧바로 축출됐다. 7일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이다.

 

페루-에콰도르 대통령 간 회담이 열린 지난 4일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이 리마의 대통령궁에서 발언하고 있다. 롤렉스게이트 폭로 보도 뒤 명품시계를 착용하지 않고 있다. 2024.7.4. 로이터 연합
 

보다 근본적인 차이는 카스티요가 '국민의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셀프 쿠데타 뒤 25개월째 구금돼 있다. 국회 해산과 포고령 통치를 시도한 반란 및 음모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 카스티요의 셀프 쿠데타는 추진 의도가 비슷할 뿐 형식과 내용에서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와 비교 대상이 못 된다.

 

카스티요처럼 야당의 대통령 탄핵 시도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4.13총선이 부정선거였다면서 중앙선관위에까지 계엄군을 보낸 윤석열에 비해 카스티요의 죄질은 외려 가볍다. 정치적 배경도 극과 극이다. "학생들이 굶은 채 학교에 오는 것을 보고 정치를 시작하게 됐다"는 교사노조 위원장 출신 카스티요와 검찰총장 출신으로 신데렐라처럼 정치에 등장한 윤석열을 같은 반열에 올려놓기 어렵기 때문이다.

 

볼루아르테는 민첩하게 기득권 계층과 기성언론, 군부의 지지를 얻어 집권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국회에선 소속 자유 페루와 결별하고 보수정당들과 연계하고 있다. 카스티요 지지자들의 항의 시위에 군경을 투입해 수십 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한국은 어쨌든 헌법재판소의 탄핵안 처리와 내란혐의 수사가 두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3일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이 무산된 한국 상황에 비춰보면 적어도 카스티요 체포 및 구금, 수사 과정에서 "내란 수사가 내란(윤석열)"이라는 황당한 말은 나오지 않았다. 페루 대통령궁에는 '경호처장 박종준'이 없었다. 체포 과정에 대통령 경호원들이 결사 저항했다는 말도 없다.

 

27일 MBC 장인수 기자가 서울의 소리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는 지난해 9월 13일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지하에 위치한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300만 원 상당의 디올(Dior) 명품 파우치를 선물 받았다. 김 씨가 받은 쇼핑백에 디올 글자가 보인다. 2023.11.28. 서울의 소리 유튜브 채널 갈무리
 

페루 대통령궁엔 그때나 지금이나 '박종준'이 없다 

'탄핵 이후'의 페루와 한국은 섣부르게 비교하기 어렵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태도도 단호하다. 지난해 3월 페루 검찰이 전광석화처럼 실행한 대통령 관저 및 집무실 압수수색과 현직 대통령 소환 조사가 대통령 부인 김건희의 디올백 사건과 극명하게 대비돼 소개된 바 있다.

 

작년 3월 14일 대통령 볼루아르테의 명품 롤렉스 시계 구입에 의혹을 제기한 라엔셀로나의 보도 뒤 페루 검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 같은 달 30일 자택과 집무실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4월 5일 대통령 소환 조사까지 22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페루 독립언론과 정부로부터 독립된 검찰의 협업이 빛났다.

 

윤석열은 비상계엄 선포 뒤 "총을 쏘거나, 도끼로 (국회 본회의장)문을 부수고 들어가 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 대통령 관저에 자정 무렵 들이닥친 페루 검찰은 현관문을 열지 않자 곧바로 해머로 부순 뒤 진입했다. 대통령 가족은 채 잠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영장 집행을 지켜봤다. 페루 대통령이라고 왜 경호 무력이 없었겠나. 그러나 "영장 집행을 방해하면 반역행위다"라는 검찰의 일갈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일개 경호처장이 사법당국의 수차례 압수수색 영장에 이어 체포 영장 집행까지 막고 있는 한국과 천지 차이다.

 

페루를 공식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수도 리마의 대통령궁에서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과 훈장을 맞교환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왼쪽에서 크게 웃는 이가 현재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다. 2024.11.16. [대통령실 누리집] 시민언론 민들레 
 

세계 주요 언론이 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대통령 관저에서 경호처와 3시간 30분 동안 철수했다는 소식을 전한 것과 달리 페루 언론은 거의 침묵했다. 지구촌 '천태만상' 정도로 보았을까? 실제 라엔셀로나는 여러 뉴스의 하나로 다뤘다.

볼루아르테의 페루는 지난해 11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의장국으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브라질과 함께 친위 쿠데타를 앞둔 윤석열의 마지막 순방국이었다.    < 민들레 김진호 기자 >

 

BBC 기사는 의문문 "실권 잃은 윤, 왜 체포 못하나?"

'버팀목' 박종준·최상목·우익세력 거론

경호처, 적법한 체포영장 무력 저지
"최상목 대행, 물러나라 지시했어야"
한국 정치, 미지의 영역으로 진입"

 

"탄핵 소추된 한국 대통령에 대한 체포가 왜 그토록 힘든가?" 영국 BBC는 3일 한국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로 윤석열 체포에 나섰다가 한남동 대통령관저에서 경호처 요원들과 장시간 대치하다가 '철수'한 사실을 전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이 불발된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탄핵 지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대통령 체포 및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2025.1.3 연합
 

"윤석열 체포는 왜 그토록 힘든가"

'버팀목'은 박종준·최상목·우익세력

BBC는 기사에서 이날 아침부터 한남동 관저 인근에서 진행됐던 윤석열 체포 반대 집회를 소개한 뒤 "그 우익 지도자에겐 여전히 강한 지지 기반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BBC의 질문은 따로 있다. 윤석열이 국회의 탄핵소추로 직무 정지됐고 헌법재판소의 대통령직 파면 여부 결정을 기다리는 "이제 실권을 잃은 지도자"인데도, 무슨 연유로 한국 수사당국이 적법한 영장들을 갖고도 그를 체포하지 못하느냐는 게 질문의 초점이다.

먼저 대통령경호처와 박종준 경호처장의 역할에 주목했다. BBC는 "윤석열이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 이후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권한을 빼앗겼을지라도 그는 여전히 경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3일 체포를 저지하는 데 그 사람들이 핵심 역할을 했다"라고 보도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경내에서 대통령 경호처 인원들이 철문 앞을 차량으로 막고 있다. 2025.1.3
 

경호처, 적법한 체포영장 무력 저지

"최상목 대행, 물러나라 지시했어야"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대통령경호처가 강력하게 저지하고 나선 배경을 두고 메이슨 리치 한국 외대 부교수는 BBC에 두 가지 가능성을 거론했다. 경호처가 윤석열에 대한 "충성심의 발로에서"였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법적, 헌법적 역할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봤다.

 

리치 부교수가 보기에, 대통령으로서 윤석열의 직무가 정지된 상황에서, 경호처는 최상목 권한대행으로부터 지시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3일 적법한 체포영장 집행을 막아선 것을 보면 경호처가 "최 대행에게서 물러나라는 지시를 못 받았거나, 아니면 물러나라는 최 대행의 지시를 거부하고 있다"라는 게 그의 견해다.

 

BBC는 "몇몇 전문가는 경호처 요원들이 대통령실 자체보다 윤석열에 무조건 충성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윤석열이 지난해 9월 박종준을 경호처장에 임명한 점을 주목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전임 경호처장이 12·3 계엄령 선포를 윤석열에게 조언한 혐의를 받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며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기소돼 있다는 점도 설명했다. 이를 두고 미국 변호사이자 한국 전문가인 크리스토퍼 주민 리는 "윤석열이 바로 이런 사태에 대비해 경호처에 강성 충성파들을 심어 놓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2025.1.3 연합
 

"실권 잃었는데 왜 못 체포?" 의문

"최상목 지시, 가장 간단한 해결책"

체포 및 수색 영장 기한인 6일까지 공수처가 대규모 경찰력을 동원해 물리적 집행에 나설 가능성이 크지만, 경호처 요원들 역시 무장하고 있는 만큼 '충돌 위험성'이 있는 만큼 경호처 요원들을 체포하는 것도 추가적 상황 악화를 막는 방법이란 견해도 있다. 그러나 리 변호사는 "경찰이 경호처 요원을 체포하고자 추가적 영장을 지니고 나타나고, (경호처는) 그 영장들을 역시 거부한 다음 총기를 휘두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면서 우려를 나타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리 변호사가 보는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 때 최상목 권한대행이 경호처에 물러나라고 지시하는 것이다. 리 변호사는 "최 대행이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국회의 탄핵 사유가 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로 박종준 경호처장과 김성훈 경호처 차장을 입건한 상태다. 이들은 출석요구에 불응했으며, 4일 경찰 특별수사단은 각각 7일과 8일 출석하라는 2차 요구서를 발송했다.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이 개최한 5차 시민대행진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1.4 연합
 

BBC "윤석열 책임 두고 의견 갈려

한국 정치, 미지의 영역으로 진입"

BBC는 "이런 정치적 교착 상태는 또한 윤석열과 그의 계엄령 선포 결정을 지지하는 세력과 그것을 반대하는 세력 사이에 존재하는 한국 정치의 양극화를 반영한다"라 풀이했다.

 

신미국안보센터의 김두연 선임연구원이 보기에 한국인 절대다수는 계엄령 선포는 잘못됐고 윤석열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는 이견이 있다. 김 연구원은 "관련된 행위자들은 과정과 절차, 그리고 그 법적 근거를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고, 이것이 현재의 정치적 불확실성을 더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BBC는 "그 불확실성은 또한 3일 윤석열의 대통령관저 안팎에서 전개된 것과 같은 긴장된 대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 여기선 그의 지지자들이 며칠간 진을 지치고 있었으며, 격렬한 발언과 심지어 경찰과 충돌로 이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현재 미지의 영역으로 얼마나 멀리 진입했는지를 감안할 때 불확실성은 계속될 것 같다"라고 예상했다.  < 민들레 이유 기자 >

 

경호처장과 차장, 출석요구도 불응 무법천지


"대통령 경호 위해 자리 못 비워" 공조본 농락
"관저 무단 침입에 법적 조치할 것" 엄포까지
쿠데타 수괴 사병 지휘 박종준, 내란 가담 정황도
공수처 행보는 뜨뜻미지근…박종준 체포 안 해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박종준 대통령 경호처장에게 임명장 수여 및 기념촬영을 마친 뒤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2024.9.9. 연합

법 위에 서 있는 대통령 경호처의 기고만장한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친위 쿠데타를 벌인 내란수괴의 사병(私兵)으로 복무하며 경찰의 대통령실 압수수색도 거부하더니 이번엔 법원이 발부한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까지 물리력으로 저지하곤 도리어 공수처와 경찰이 법적 근거도 없이 관저에 무단 침입했다며 큰소리를 치고 있다. 위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중심에는 박종준 경호처장이 존재한다. '제2의 차지철'로 등장한 박 처장은 경호처 직원들이 무더기로 특수공무집행방해죄를 범하도록 지휘한 뒤 공조수사본부의 출석요구도 거부했다. 안하무인에 무법천지다.

 

과거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 당적으로 두 차례나 총선에 출마했던 그는 윤석열의 부활을 곧 자신의 정치적 재기와 동일시하며 내란 동조 세력인 정부‧여당을 뒷배로 끝까지 되치기를 시도하겠다는 작정인 것으로 보인다. 12·3 비상계엄 당시 내란에 일정 부분 직접 가담했기 때문에 본인이 살기 위해 그토록 필사적이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그 속내가 무엇이든 국민적 불안감의 원천 중 하나인 박 처장부터 하루속히 체포하고 경호처 직원들도 사법처리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공수처가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행보를 보여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박 처장은 형법상 특수공무집행방해, 범인도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공조본은 박 처장과 김성훈 경호처 차장에게 4일까지 출석해서 조사받으라고 통보했다. 그러나 경호처는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현재는 대통령 경호 업무와 관련해 엄중한 시기로, 경호처장과 차장은 한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 경호를 빙자한 위법 행위를 조사하기 위해 출석하라고 했는데 바로 그 이유로 거부하며 수사기관을 또 다시 농락한 것이다.

 

경호처는 다른 공지에서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가 법적 근거도 없이 경찰 기동대를 동원해 경호 구역과 군사 기밀 시설을 시설장(長)의 허가 없이 출입문을 부수고, 심지어 근무자에 부상을 일으키며 무단으로 침입한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불법 행위를 자행한 책임자와 관련자에 대해 법적 조치를 통해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적반하장의 극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에 나선 3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경내에서 대통령 경호처 인원들이 철문 앞을 차량으로 막고 있다. 2025.1.3. 연합

 

박 처장과 김 차장은 전날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공조본이 체포영장을 집행할 때 직접 앞에 나와 경호법과 경호구역을 들먹이며 수색 자체를 불허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는 군사상·공무상 비밀을 이유로 수색을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한 형사소송법 제110·111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는데도 그랬다.

 

두 사람의 지시에 따라 대통령 관저 200m 앞에서 경호처 직원과 군인 200여 명이 팔짱을 끼고 '인간 벽'을 만들어 공수처 검사 및 수사관,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인원들의 진입을 차단했다. 경호처 직원들은 크고 작은 몸싸움도 불사했으며 일부는 개인 화기(火器)까지 소지했다. 1, 2차 저지선을 형성하고 인간 벽에도 동원된 것으로 알려진 55경비단 병력은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소속이긴 하지만 경호처장의 지휘‧통제를 받는다.

 

이처럼 박 처장과 김 차장이 입건된 사유는 차고 넘치지만 두 사람은 앞으로도 공조본 조사에 응하지 않으며 윤 대통령 체포를 어떻게든 막으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체포 방해를 경호의 영역으로 보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면서 두 사람과 함께 이광우 경호처 경호본부장, 성명불상의 경호처 공무원과 군인들을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했다. 민주당은 박 처장의 경우 12·3 비상계엄 선포 약 3시간 전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대통령 안가(安家)로 데리고 왔으며, 김 청장에게 비화폰을 전달해 김용현 국방장관과 연락을 하도록 협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며 내란 혐의로도 따로 고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에 나섰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관들이 3일 오후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돌아오고 있다. 2025.1.3. 연합
 

그러나 공수처의 행보는 뜨뜻미지근하기만 해 미덥지가 못하다. 관저에서 패잔병처럼 발길을 돌린 뒤 사실상 윤 대통령 체포를 포기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체포영장 집행 당시 경찰 측에서 박 처장과 경호처 직원들을 공무집행방해 현행범으로 체포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지만 공수처가 거부했다고 한다. 현장에서의 불상사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경호처 직원들을 제압하려면 일정한 강제력 동원과 충돌이 불가피한데 불상사만 걱정하면 언제까지고 영장을 집행할 수 없다. 2차 집행에 나서더라도 또 불발될 게 불 보듯 뻔하다. 공수처는 출입기자단 공지를 통해 "현재 현장 상황을 고려하면 경호처 공무원들의 경호가 지속되는 한 영장 집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실토했다.

 

공수처는 차선책이라도 되는 듯 경호처에 대한 지휘감독자인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에게 경호처가 체포영장 집행에 응하도록 명령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부질없는 기대다. 내란 세력 눈치를 보며 줄타기로 일관하는 최 대행이 그 같은 용단을 내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공수처는 지난 1일에도 최 대행과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에게 '경호처 등이 집행 절차에 협조할 수 있도록 지휘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지만 최 대행은 실행은커녕 일언반구도 없었다.

 

체포‧수색영장의 유효기간은 오는 6일까지라 이제 이틀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다. 몸을 사리는 공수처가 체포영장 집행을 재시도하기보다 곧바로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윤 대통령은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야 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행각을 벌이는 윤 대통령이 이조차 거부하고 관저에서 안 나올 가능성도 있다. 구속영장이 발부돼도 경호처가 막으면 윤 대통령 신병 확보는 물 건너가고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인 석동현 변호사는 이날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공수처는 역사도 짧고 직원 수도 적고 수사 사례나 경험도 정말 빈약하다. 홍위병식으로 현직 대통령을 휴일 아침에 나오라고 찍찍 불러대다가 안 온다고 체포하겠다는 식"이라며 "뭐가 뭔지 잘 모를 때는 모르니까, 또 몰라서 큰일에도 마구 덤빈다. 무식하면 용감해진다는 말은 그런 표현일 것"이라고 공수처를 마음껏 조롱했다.  < 민들레 김호경 기자  >

 

방첩사,새벽 1시5분까지 국회로 출동한 체포조는 10개팀, 49명

 

 
지난달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
 

비상계엄 당시 국군방첩사령부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조를 가장 먼저 국회로 출동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4일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공소장을 보면 김대우 방첩사 수사단장 등은 지난달 3일 비상계엄 선포 직후 부하들에게 삼단봉, 수갑, 포승줄, 결속벨트를 넣은 백팩을 준비시켰다. 이어 지난달 4일 새벽 0시25분께 5명의 방첩사 수사관으로 구성된 팀을 이재명 체포조로 지명한 뒤 ‘국회로 가서 경찰과 합류하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들은 백팩에 담긴 장비를 휴대해 국회로 출동했다. 이재명 체포조를 시작으로 같은날 새벽 1시5분까지 국회로 출동한 체포조는 10개팀, 49명이었다.

 

이보다 앞선 비상계엄 선포 당일인 지난달 3일 밤 11시4분께, 김 수사단장은 방첩사 간부들에게 ‘경찰 100명, (국방부) 조사본부 100명이 오기로 했다. 어떻게 오는지 확인해라’ ‘우리 부대 수사관 5명, 군사경찰 5명, 경찰 5명, 경호대 10명 등 총 25명으로 팀을 꾸려라’ 등의 지시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송 및 구금명단은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조국, 김민석, 박찬대, 김민웅, 김명수, 김어준 등이다. 인원들은 인수받아 호송 후 구금시설로 이동한다. 방첩사 혼자 할 수 없고 경찰청, 국방부 조사본부 인원과 같이해야 한다’라고도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 한겨레 강재구 기자 >

 

막대한 양의 실탄 준비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출동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지난달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무장한 계엄군이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연합
 

비상계엄 당시 육군특수전사령부, 수도방위사령부, 정보사령부 등이 실탄을 최소 5만7천여발 동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동원된 무기에는 저격총, 섬광폭음수류탄 등도 포함됐다.

 

4일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공소장을 보면 비상계엄에 동원된 군부대들은 막대한 양의 실탄을 준비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출동했다.

 

가장 많은 실탄을 동원한 것은 특수전사령부 예하 부대였다. 제1공수특전여단장은 지휘차량에 소총용 5.56㎜ 실탄 550발, 권총용 9㎜ 실탄 12발을 적재했다. 이와 별도로 예하 1대대 몫의 소총용 실탄 2만3520발, 2대대 몫의 실탄 2만6880발을 탄약수송차량에 적재했다. 특수전사령부 예하 707특수임무단 역시 소총용 실탄 960발, 권총용 실탄 960발을 준비해 국회로 출동했다.

 

제3공수특전여단 제11대대장은 개인 소총과 공포탄 10발을 휴대해 선관위 과천청사로 출동할 것을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다만 실탄은 대대장 지휘 차량에 박스째 봉인해 보관했다. 제9공수특전여단은 선관위 관악청사로 118명을 개인화기 등으로 무장시켜 출발시킨 뒤 후발대 병력 22명에게 공포탄과 실탄, 연막탄 등 탄약을 2.5톤 트럭에 싣고 따르도록 했다. 다만 제9공수특전여단이 지참한 구체적인 실탄 수량은 공소장에 나오지 않았다.

 

수방사 역시 계엄 때 실탄을 소지했다. 제35특수임무대대 선발대는 지난달 3일 밤 11시10분께 소총 15정, 권총 15정, 저격소총 1정 및 5.56㎜ 보통탄 1920발, 9㎜ 보통탄 540발 등을 중형버스 등에 적재해 국회로 출동했다. 이들이 지참한 무기 중에는 예광탄 320발, 슬러그탄 30발, 엽총용 산탄 30발, 공포탄 360발, 섬광폭음수류탄 10개도 포함됐다. 수방사 제2특수임무대대 예하 부대 역시 소총 11정, 권총 9정, 드론재밍건 1정 및 5.56㎜ 보통탄 975발, 9㎜ 보통탄 330발 등을 지참해 국회로 출동했다.

 

수방사 군사경찰단 선발대 역시 소총 9정, 권총 9정, 저격총 1정, 테이저건 10정을 포함해 5.56㎜ 보통탄 525발, 9㎜ 보통탄 363발, 저격탄 40발 등을 소지한 채 국회로 향했다. 정보사령부 역시 1인 당 10발씩 총 100발의 실탄을 준비해 선관위로 출동했다.

 

이들이 소지한 실탄을 모두 합치면 5만7천발이 훌쩍 넘는다. 다만 공소장에 구체적인 실탄 수량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어 실제 계엄 때 동원된 실탄 수량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 한겨레 강재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