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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권위의 노벨상도 경제위기 틈바구니에서 몸을 낮췄다. 상금을 20%나 삭감하기로 한 것이다. 노벨재단은 11일 성명을 내고 “올해 전체 6개 부문 수상자별 상금을 800만 스웨덴크로나(약 13억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의학·물리학·화학·문학·경제학·평화 부분에 수여되는 이 상의 상금이 깎인 것은 63년 만의 일로, 지난해는 1천만 크로나였다.
 
재단 쪽은 상금과 시상에 따른 비용이 출연금 이자와 투자 수익을 초과하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자본 잠식을 피하기 위한 조처로 상금을 내렸다. 또 집행부 비용과 매년 12월 스톡홀름과 오슬로에서 열리는 시상식 비용도 줄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노벨재단이 전통적으로 자산을 집중 투자했던 주식시장의 불안정성에 대응하기 위해 이 같은 조처를 취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라르스 하이켄스텐 재단 이사장은 “금융시장 동요와 위기 등을 고려하면 앞으로 몇 년간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너무 늦기 전에 행동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대선 발걸음 ‘가속’

● COREA 2012. 6. 16. 16:01 Posted by SisaHan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 등 지도부가 13일 광주 국립 5.18민주묘역을 참배했다.


여당 경선위 출범‥ 야당 주자들 잇단 출마선언


올해 한국에 있어 국내외를 불문하고 초미 관심사인 오는 12월19일 제18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행보가 본격화 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11일 최고위원회에서 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관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경선관리위원장은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맡았다. 김영우 대변인은 “다른 예비주자들의 경선 관련 의견은 추후에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경선 규칙 변경을 논의할 경선준비위원회를 먼저 만들자고 요구해온 정몽준·김문수·이재오 비박 대선주자 3명은 즉각 반발했다. 이들은 대의원:당원:일반국민:여론조사를 2:3:3:2 비율로 반영하는 현재의 ‘박근혜 단일후보 추대’식 대선후보 경선 규칙을 완전 국민경선제로 바꾸지 않으면 경선에 불참하겠다고 배수진을 친 상태다. 이같은 경선 논란으로 박 후보의 대선 출마선언도 월말께로 늦춰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하지만 비박 주자들이 당장 행동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황우여 대표 등 당 지도부도 경선후보 등록 기간인 7월 초까지 이들을 설득하고, 의원총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한편 민주통합당은 이해찬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서 당내 대선주자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의원들의 움직임이 부쩍 빨라지고 있다.
11일 가장 먼저 조경태(부산 사하을) 의원이 대선출마 선언을 했다. 영남의 유일한 민주당 3선인 조 의원은 이날  “민생 제일주의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14일에는 손학규 고문이 서울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다. 손 고문 쪽은 “소통의 리더십을 상징하며 우리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세종대왕의 동상 앞에서 포부를 밝히면서 지속 가능한 진보와 복지, 안정감 있는 리더십을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야권의 선두주자인 문재인 고문은 17일 출마를 선언할 예정이다. 문 고문은 12일 민주당 ‘정치개혁모임’ 초청강연에서 “제가 후보가 돼야 박근혜 후보를 이기고 정권교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를 반대하는 국민들은 정권교체에 대한 갈망과,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정치 변화에 대한 열망이 크기 때문”이라며 “정권교체와 정치교체, 그 둘을 함께 이룰 수 있는, 민주당 내에서 유일한 후보가 바로 저”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유력주자로 거론되는 김두관 경남지사는 7월쯤 출마선언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 지사는 12일 경남 창원에서 자서전 ‘아래에서부터‘출판기념회에서 “6월30일이 제 민선 임기 4년의 절반이 마무리되는 만큼, 7월에 접어들면 도정을 계속할지, 아니면 야권의 승리를 위해 대선 참여를 선언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당] 부끄러움을 찾아서

● 칼럼 2012. 6. 16. 15:51 Posted by SisaHan
대학생들이 전공을 선택할 때 일부러 법대를 기피하던 시절이 있었다. 법대에 가면 꼭 고등고시를 봐야 할 것 같은 엉뚱한 강박감 때문이었다. 
고시에 합격한다고 반드시 권력 편에 서야 하는 것도 아니건만 그때만 해도 고시를 보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여긴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굳이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당시는 서슬 퍼런 박정희 군사독재가 마지막 발악을 하던 유신 말기였다.
잠시 숨쉴 여유가 있었던 ‘서울의 봄’이 지나자 대학은 더욱 살벌해졌다. 광주 시민을 학살하고 들어선 전두환 군사독재는 유신 독재 못지않게 폭력적이었다. 꽃다운 젊은이들이 몸을 불사르고 내던지며 독재 타도를 외쳤다. 학교 옥상에서 분신한 뒤 바로 눈앞에서 떨어져 불타던 후배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런 암울한 시대에도 대학도서관은 고시 공부하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유신 독재가 극성을 부리던 1970년대 중반부터 6월 항쟁이 일어난 1987년 사이에 대학 시절을 보낸 세대가 어느덧 40대 중반~50대 중후반의 나이가 되었다. 그 세대 중 시대의 부름을 외면하고 출세의 길로 들어섰던 이들은 이제 우리 사회의 강고한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다. 권력 핵심부도 대부분 이들이 장악하고 있다.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건 그들이 동세대의 희생을 완전히 잊고 지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다. 그들은 과연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포기한 동세대들을 얼마나 기억하고, 또 한 줌의 부채의식이라도 가지고 있을까.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기는커녕 일말의 부끄러움조차 없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향유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어찌 보면 그들은 동세대의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안락한 무대 위에서 여전히 끊임없는 권력 추구에 몰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검찰의 경우는 유독 심하다. 현재 검찰 수뇌부는 대부분 박정희·전두환 독재 시절에 대학에 다녔던 세대로 구성돼 있다. 한상대 검찰총장과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 국민수 법무부 검찰국장, 임정혁 대검 공안부장 등 검찰 핵심 실세들은 모두 전두환 독재의 폭압이 기승을 부리던 1981~85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들이다.
동료나 선후배들이 바로 곁에서 분신하고, 경찰에 두들겨 맞으며 끌려가고, 학교에서 쫓겨날 때 그들은 이들을 애써 외면한 채 미래의 안정된 삶을 위한 고시 공부에 매달렸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랬다면 조금이라도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부채의식을 갖는 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이마저도 힘들다면 적어도 그들의 희생으로 이룩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일만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일부 ‘정치검사’들은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권력의 뒤를 좇아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게 오늘의 모습이다.
 
6.10 항쟁 25돌이었던 엊그제, 검찰은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매입 의혹 사건 관련자를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눈치 보기가 아니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이명박 정권이 어떤 정권인가. 6월 항쟁으로 이룩한 민주주의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다는 호된 비판을 받고 있는 반민주적인 정부다.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군사독재에 맞서 싸웠던 동료를 외면하고 출세 가도를 달렸던 이들이, 동료의 희생으로 이룩된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공자는 일찍이 “나라에 도(道)가 없는데도 (관리가 되어)녹봉을 받아먹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맹자는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수오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지금이야 직업관료제가 확립된 시대라 비록 부도덕한 정권이라도 그 아래서 검사 노릇 하는 자체를 탓할 수는 없지만 검찰권을 행사하면서 최소한 부끄러움이 뭔지는 알고서 해야 하지 않겠는가. 무슨 말을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그들에게 이런 글이나 쓰고 있는 필자 자신이 더 부끄러워지는 6월이다.

<정석구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실장>


[1500자 칼럼] 자전거

● 칼럼 2012. 6. 9. 16:52 Posted by SisaHan
지난 주말(6월2일)에는 볼일이 있어 퀸스 파크(Queen’s Park) 앞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모여 있었다. 나는 또 무슨 단체에서 데모를 하는 줄 알고 당연히 그 앞을 지나 지하철을 향해 갔다. 갑자기 수 십대 아니 수백 대는 아니지만 엄청난 숫자의 자전거가 나타났다. 당연히 자전거 경주는 아니었다. 떼를 지어 나타난 무리들 중에는 어린 아이들의 작은 자전거도 보였다. 그러자 미리 와있던 이들이 일제히 자전거 벨소리를 울렸다. 왠지 장엄한 풍경이었다. 수백 대의 자전거 바퀴와 그리고 일제히 울리는 벨소리…

마침 볼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으므로 호기심에 그들을 따라 퀸스 파크에 갔다. 그들은 블루어(Bloor St)와 그 연장선이나 다름 없는 댄포스(Danforth St) 거리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어달라는 모임이었다.  다운타운이나 다름없는 교통량이 많은 그 좁은 거리에 어떻게 자전거 전용도로를 따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공간을 이용할 수 있지만, 시로서는 엄청난 수입을 포기해야 하는 희생이고, 주변 상인들의 반발도 무시 못할 일이었다.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마이크를 이용해 외쳐대는 여느 항의 데모와는 달리 조용한 모임이었다. 그리고 정말 문자 그대로 남녀노소가 모인 모임이었다. 한 가족 정도가 아니라 온 세대가 참여한 집도 있었다. 자전거 한 대에 9명이 탄 자전거를 보았다.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아이들 넷, 그리고 맨 뒤에 캐리어에 어린 아이. 8명이 호흡을 맞춘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초대형 자전거는 따로 주문해서 만들었을 것 같았다.

한 명씩 앞으로 나와 왜 자전거 전용도로를 그 거리에 만들어야 하는지,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야하는지, 그리고 친환경적인지를 앞에 나와서 말을 했다.

자전거!  사실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말이었다. 물론 누구나 그러하듯 어렸을 때는 나도 세발 자전거를 탔다. 친구를 통해 자전거를 배우기는 했지만 서울 도심지에 살았고, 유독 겁이 많았던 나는 차들이 무섭게 달리는 차도로 나가기 무서워 일찌감치 자전거 타기를 포기했다. 모임이 인상적인 것은 거의 70이 넘은 할머니가 자전거 헬멧을 쓰고 나와 왜 사람들이 차대신 자전거를 타야하는 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나는 친환경이라든지, 공해방지, 그리고 인간적이라는 그리고 건강과 의료보험의 절약이란 단어를 자전거와 결부시켜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시내를 다닐 때, 차 대신 자전거를 타야한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한 할머니는 휘발유세를 올려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횟수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주유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나에게는 운전자들이 들으면 큰 일 날 소리였다. 그렇지 않아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기름값 때문에 운전자들은 여간 불만이 아니었다.

북미문화 또는 생활이라는 것이 사실상 차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누라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차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사랄들은 말하기도 했다. 젊었을 때, 모든 역사는 차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일 년에 몇 명의 사람이 차에 치어 죽는지 아느냐고 수치를 말하기도 했다. 내게 가장 감동적인 연설은 6살쯤 되는 꼬마애가 한 말이었다. 그 애는 자기들이 마음 놓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게 해달라고 했다. 연설이 진행되는 중, 한 할아버지가 박스에 사과를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사과는 참 맛있었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나온 경찰들도 시위대처럼 자전거를 타고 나온 자전거 경찰이었다. 그들은 시위대와 함께 사진을 찍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보통 이런 경우 위압감을 주기 위해 말을 탄 기마경찰들이 출동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다.

모임은 별다른 사고없이, 참석자들이 조용히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것으로 끝났다. 혼자 지하철을 향해 걸으며 나도 자전거가 타고 싶어졌다. 그리고 오래 전에 잊어버린 노래가 생각났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릉….”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