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오후 서울역에 사전투표소 설치가 진행 중이다. 사전투표는 3월4일부터 5일까지 이틀간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연합뉴스
여야가 오는 4∼5일 실시되는 20대 대선 ‘사전투표 독려’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선거 막판까지 양강 후보들의 지지율이 팽팽하게 맞붙으면서, 지지층을 한 명이라도 더 투표장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지세가 강한 4050 세대가 사전투표에 대거 나서며 본 투표까지 상승 분위기를 주도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국민의힘은 ‘사전투표=부정선거’라는 지지층 내부의 음모론을 잠재우고 혹시 모를 코로나19 확진 등 돌발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사전투표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독려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1일 서울 명동 유세에서 “9일 뿐 아니라 4~5일 사전투표도 있다. 저도 사전투표를 할 것인데, 전국 어디서나, 아무 때나 할 수 있으니 사전투표해 주시고 안 하신 분들에게 전화·카톡 넣어서 투표를 권유해달라”고 표심을 모아줄 것을 호소했다. 정철 선대위 메시지 총괄은 전자우편으로 사진을 보내면 이 후보의 기호인 숫자 ‘1’ 모양에 사진을 넣어 사전투표를 독려하는 내용의 포스터를 만들어 회신하는 온라인 캠페인도 시작했다.
민주당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경제활동 인구 가운데 주민등록지와 다른 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꽤 있다. 이들은 (3월9일에) 투표를 하기 힘들다”며 “현재 경제활동 인구인 4050세대에서는 이 후보의 지지세가 높기 때문에 이런 분들을 포괄하는 사전투표율이 높으면 상대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도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자들이 사전투표를 많이 했고 3050세대는 특히 그렇다”며 “사전투표 독려가 이 후보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 효과적이라는 판단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이날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앞 유세에서 “투표해야 부패 세력을 축출할 수 있다”며 “당일만 (투표)해서는 우리가 이기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도 이날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사흘 동안 투표하는 정당과 하루 투표하는 정당, 누가 이기겠느냐”고 말했다. 본선거 하루, 사전선거 이틀을 합친 3일의 투표일에 지지층을 최대한 투표장으로 끌어내겠다는 얘기다. 국민의힘은 국회 회의장 벽면에 “윤석열도 사전투표하겠습니다”라고 적힌 펼침막을 내걸었다. ‘호남 30% 득표’를 공언한 이준석 대표는 오는 4일 광주에서 사전투표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2020년 총선 이후 사전투표 용지·투표함 관련된 부정선거 음모론이 불거졌다. 사전투표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지만 오미크론 변이가 정점을 향하는 상황에서 노년·장년층이 최대한 빨리 투표하는 게 유리하다는 게 국민의힘의 판단이다. 이철규 국민의힘 전략기획부총장은 “지지층에게 ‘투표를 하지 않으면 못 이긴다’, ‘투표소에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공개한 ‘사전투표 독려 영상’에서도 “지난해 4·7 재보궐 선거 때 역대 재보궐선거에서 가장 높은 사전투표율을 기록했고, 그 결과 압도적인 차이로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다. 높은 사전투표율이 압도적 승리로, 압도적 승리가 향후 국정 운영의 힘으로 이어진다”며 지지층의 사전투표 거부감을 해소하는 데 집중했다.
다만 사전투표 열기가 어느 정당에 유리한지 단정할 순 없는 상황이다. 우상호 민주당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2012년 대선 때부터 투표율이 높으면 민주 진영이 유리하다는 공식이 깨졌다”며 “투표율보다는 어느 진영이 더 결집하느냐가 과제다. 투표율 자체가 높다고 유리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관계자도 “사전투표를 많이 해야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중요한 것은 지지층의 투표율을 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에 180석을 몰아준 2020년 총선 당시 사전투표율은 26.7%였다. 연령대별 전체 투표 중 사전투표 비율은 60대가 33.4%로 가장 높았고, 70대 (30 .5 %), 50대 (29 .8%) 차례였다. 국민의힘 후보가 압승한 지난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경우, 사전투표율은 21.9%였다. 이때도 60대(29.9%), 70대(27%), 50대(26.1%) 차례였다. 최근 선거의 사전투표율을 보면, 60대 이상 고령층이 더 적극적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코로나19 변수로 투표율 자체가 이전보다 높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며 “야당은 ‘정권교체’를 지지하고 있는 부동층이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투표를 포기할까봐, 여당은 지지층이 투표장에 나오지 못할까봐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김미나 송채경화 기자
윤여준 · 법륜 등 사회·종교계 원로들 “대선 후보들 ‘통합정부’ 약속해라”
‘국민통합을 위한 연합정부 추진위원회’ 기자회견
“당선인, 인수위부터 초당적 내각 구성 준비” 제안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법륜 평화재단 이사장 등 사회·종교계 원로 인사 20명은 1일 다음 정부를 이끌 대선 후보들에게 당선증을 받는 즉시 ‘국민통합을 위한 연합정부’ 준비 기구와 초당적 내각 구성을 약속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이 의원총회를 열어 이재명 대선 후보가 제안한 ‘통합정부 정치개혁’ 방안을 당론으로 채택한 직후에 나온 요구여서 대선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눈길이 쏠린다. 민주당은 즉각 이런 제안을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국민통합을 위한 연합정부 추진위원회’(추진위)는 이날 낮 12시 서울 중구 콘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들에게 보내는 대한민국 종교사회 원로들의 긴급 제안’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밝혔다.
추진위는 제안서에서 “20대 대선 선거 운동이 가열될수록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비전과 정책이 제시되기보다, 서로 갈등과 증오를 부추기고 있다. 이 때문에 선거를 기권하려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며 “국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의 본질은, 만일 여당 후보가 당선되면 의회의 다수 의석을 배경으로 정치적 독주를 계속 할지 모르고, 야당 후보가 당선되면 다수 의석을 보유한 여당의 협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추진위는 이어 “단언컨대 통합의 정치, 협력의 정치를 하지 않으면 ‘성공한 대통령’, ‘성공한 정부’는 어렵다”며 “그것은 1987년 직선제 이래 우리 정치의 반복된 불행에서 이미 입증된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추진위는 이에 “우리는 20대 대선에 출마한 주요 후보자들에게 ‘국민통합을 위한 연합정부’ 구성에 참여하는 다짐을 (2일 저녁 8시에 열리는) 티브이(TV) 토론회에서 국민 앞에 약속해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며 “제20대 대통령 후보자가 당선인이 되면 △인수위원회를 중심으로 ‘국민통합을 위한 연합정부’ 준비 기구 발족 및 초당적 내각을 구성할 것 △국민통합의 제도 보장을 위해 헌법과 선거법 개정을 국민 앞에 약속하는 다짐을 받고자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추진위는 “우리 추진위원들은 각자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더라도 ‘국민통합의 정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대선 이후에도 더 많은 사회 원로들이 참여하는 국민통합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제안에는 김명혁 강변교회 원로목사, 김대선 원불교 교무, 김홍진 천주교 신부, 도법 조계종 전 화쟁위원장, 박경조 성공회 주교, 박남수 천도교 전 교령, 박종화 경동교회 원로목사, 법륜 평화재단 이사장, 이성택 원불교 전 교정원 원장,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손봉호 동덕여대 전 총장, 신낙균 전 문화관광부 장관, 신인령 이화여대 전 총장, 이우재 전 국회의원,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윤경로 한성대 전 총장,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정성헌 전 새마을운동중앙회장, 최상용 전 주일대사 등이 참여했다.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는 이후 자신의 이름을 철회했다.
이들 외에도 다른 여야 정치권 원로들도 참여를 고민하다가 정치적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막판에 참여를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이 정권교체 프레임에 맞서 지난 27일 밤 의원총회를 열어 통합정부 정치개혁 방안을 채택한 직후인 만큼, 원로들의 이런 행보가 자칫 민주당 편들기로 비쳐질 수도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민주당은 이날 추진위의 제안을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조승래 민주당 선대위 수석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원로분들은 대한민국이 ‘세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지, 소모적인 국론분열로 절호의 기회를 놓칠지 중대한 분기점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깊이 공감한다”며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은 ‘국민통합을 위한 연합정부 추진위원회’의 뜻을 존중하여 정치 대개혁을 이뤄나가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이재훈 송채경화 김미나 기자
“이번 대선 나만 답답해?”…시민들 거리로 나섰다
“네거티브·막말 난무, 진흙탕 대선에 분노”
노동·여성·청년·기후·장애인·성소수자 등
주요 의제 사라져…스스로 목소리 내기
노동·여성·대학생·기후 등 각계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2022 대선공동행동’이 연 ‘이번 대선 나만 답답해?’ 정치파티가 1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들머리 광장마당에서 열려, 참가자들이 성차별, 집값, 청년실업 등에 분노하며 이를 무너뜨리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1일 오후 3시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광장마당에 모인 시민 60여명이 노래 ‘대선의 재개발’을 부르며 율동을 췄다. 이들은 우리 사회 주요 의제들은 사라지고 네거티브와 막말로 얼룩진 대선 정국이 “너무 답답하다”며 “촛불의 열망과 사라진 시민들의 목소리를 되살리자”고 호소했다.
노동·여성·청년·기후 등 각계각층의 시민사회 단체들이 참여한 ‘2022 대선공동행동(공동행동)’은 이날 ‘이번 대선 나만 답답해? 3.1 정치파티’를 열고 이번 대선에서 잘 드러나지 않고 있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발언에 나선 박주희 서울여성회 회장은 “오늘은 우리에게 모든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 스스로 떨쳐 일어나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3.1운동 103주년”이라며 “하지만 103년이 지난 이 시간 우리의 대선 정치판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시대정신은 사라져 버렸고, 네거티브와 막말만 난무하고 있다. 정치가 시민의 삶을 책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선에서 지워지고 사라진 노동자, 농민, 여성, 청년, 장애인,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되살리고, 불평등과 기후위기 그리고 차별의 세상에서 그래도 우리가 만들어 갈 희망찬 미래는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 광장마당에서 5대 권리찾기 실천단 ‘우주인’ 소속 대학생들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대선에서 ‘캐스팅보터’로 주목받는 청년들은 자신들을 ‘표’로만 바라보는 정치권을 비판했다. ‘5대 권리찾기’ 남상혁 대학생 실천단장은 “정치권은 청년을 그저 ‘정치팔이 소모품’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며 “진짜 청년들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씨는 “우리 청년들은 일하다 죽지 않고, 평등하게 교육받고, 아무 걱정 없이 집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정치권에 요구한다”고 호소했다.
이들이 말하는 ‘5대 권리’는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권리 △성과 장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기후위기시대 무사히 늙어죽을 권리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 △주거만큼은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권리 등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영등포시민연대 피플 기후정의실천단에서 활동하는 배기남씨는 “이번 대선을 보면 ‘기후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며 “대선 후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후위기에 관한 인식도, 관심도 없는 상태다. 기후위기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뽑을 대통령은 앞으로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마지막 대통령이다. 모든 대선 후보들은 기후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2월 28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하르키우의 긴급 구조대가 미사일 공격을 당한 주거용 건물 앞에서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르키우/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한 러시아군이 더욱 잔인한 공격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1일(현지시각)로 전쟁이 6일째로 접어들면서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AP> 통신은 28일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리코프(하르키우)에서 미사일이 주거 지역에 떨어지면서 적어도 11명이 사망했다고 하르키우 당국자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호르 테레호우 하르키우 시장은 소셜미디어 텔레그램을 통해 “주거 건물들이 미사일 공격을 받아 많은 민간인이 다치고 숨졌다”고 전했다. 그는 4명의 시민은 물을 구하려고 밖으로 나왔다가 사망했다며 “오늘은 아주 힘든 날이었다. 단지 전쟁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사람들에 대한 학살이다”라고 주장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밤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연설에서 러시아가 하르키우에서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속속 들어오는 목격담으로 볼 때 한번의 오폭이 아니라 의도적인 주민 살상”이라고 말했다.
수도 키예프에서도 러시아군이 민간인 거주 지역에 미사일 공격을 벌였다고 우크라이나 내무부가 밝혔다. 내무부는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을 통해 이날 밤 10시께 5층 짜리 주거용 건물이 폭격을 당했다고 전했다. 긴급 구조대는 매몰된 주민 2명에 대한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키예프가 28일 밤으로 접어들면서 폭발음이 들리기 시작했다며 러시아 침공 이후 처음으로 건물들이 흔들리는 충격을 느꼈다고 전했다. 1일 아침에도 키예프와 서부 지역 테르노필, 중부 체르카시 등지에서 공습 경보가 울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벨라루스에서 협상을 벌이던 중에도 계속된 러시아의 공격이 더욱 강화되는 양상이다.
우크라이나 군은 1일 오전 “키예프 주변 지역은 여전히 긴장이 고조된 상태”라며 “적군은 군 시설과 민간 건물에 대한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군은 또 러시아가 고도로 훈련된 벨라루스군 부대와 함께 공격을 가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28일 하르키우에서는 집속탄(하나의 폭탄 안에 많은 폭탄이 든 것)으로 의심되는 폭발이 발생했다고 <비비시>가 전했다. 북동부 국경 도시 체르히우에서는 러시아군이 포위 뒤 공략 전술(공성전)을 전개하고 있다.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러시아가 제네바협약이 금지하는 진공폭탄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에 점령당한 동부 항구도시 베르댠스크에서는 주민들이 러시아군 탱크 앞에 모여 우크라이나 국가를 부르는 등 점령군에 저항했다. 이 도시 주민 니나(가명)는 <비비시>에 “러시아 군인들이 순식간에 시내로 밀려 들어왔다”며 “그들이 내일(1일)은 인근 도시 마리우폴로 진격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반군이 장악한 동부 도네츠크에서도 건물들이 폭격으로 불타고 일부 지역은 전기가 끊겼다고 러시아 <리아 노보스티> 통신이 보도했다.
유엔은 28일까지 적어도 102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406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마틴 그리피스 인권 담당 유엔 사무차장은 “아직 공식 확인되지 않은 피해 보고가 많아, 실제 사상자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웃 국가도 탈출한 우크라이나인이 52만명에 달하며 피란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의 키예프 주변 결집이 계속되는 가운데 미국 위성통신 업체 ‘맥사 테크놀로지’는 28일 새로운 위성 사진을 공개하고 키예프로 향하는 러시아군 행렬 길이가 60㎞를 넘는다고 분석했다. 이 회사는 러시아군 행렬이 키예프 북부 27㎞ 지점인 호스토멜 공항까지 접근했다며 수백대의 무장 차량, 탱크, 견인포 등이 목격됐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1일부터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들어오는 외국인 전사들에게 사증(비자)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한편, 러시아 관영 매체들은 세뇌당하지 않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러시아군을 환영하고 있다는 등의 침공 미화 선전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고 영국 경제 주간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했다. 신기섭 기자
“러, 우크라에서 진공폭탄·집속탄 사용”…ICC “전쟁범죄 조사”
주미 우크라대사 “제네바협약 위반 진공폭탄 사용”
국제앰네스티 “러시아군 집속탄 사용 민간인 살상”
국제형사재판소 “전쟁범죄·반인도범죄 조사하겠다”
우크라이나 산모가 지난 28일 아기를 안고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는 도시 마리우폴의 조산원 지하에 대피해 있다. 마리우폴/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이 제네바협약이 금지하는 진공폭탄을 사용했다고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대사가 주장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전쟁범죄를 조사하겠다고 밝혀, 러시아의 전쟁 수행 방식에 대한 압박도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옥사나 마르카로바 주미 우크라이나대사는 28일 러시아의 “잔혹한 전쟁”에 대응하는 협조를 구하려고 미국 의회를 방문한 뒤 “러시아군이 오늘 제네바협약이 사용을 금지한 진공폭탄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엄청난 파괴를 안기고 있다”며 “그들은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진공폭탄은 폭발 때 주변의 산소를 빨아들여 강력한 초고온 폭발을 일으키는 폭탄이다. 일반 폭탄보다 폭발 파장의 지속 시간도 길어 파괴력이 크다.
러시아군이 많은 국가들이 사용을 금지한 집속탄을 사용했다는 발표도 나왔다. 국제앰네스티는 러시아군의 집속탄이 지난 25일 우크라이나 북동부의 유치원과 민간인 대피 시설을 타격해 어린이 1명을 비롯해 3명이 숨졌다고 28일 밝혔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를 “전쟁범죄”로 규정했다.
집속탄은 하나의 폭탄 안에 여러 개의 폭탄을 넣어 살상력을 높인 것으로, 민간인 피해 우려 때문에 2008년 100여개국이 사용 금지를 약속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이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카림 칸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장이 “신속하게 우크라이나 내 전쟁 범죄와 반인류 범죄에 대한 조사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낸 성명에서 “전쟁범죄와 반인도범죄가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했다.
한편 마르카로바 대사와의 면담에 참여한 미국 민주당의 브래드 셔먼 하원의원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자국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이를 강제하려고 할 경우 미국과 러시아의 직접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미국과 서방은 28일 러시아 중앙은행과 국부펀드, 러시아 재무부와의 거래를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해외 은행에 보유한 달러 등 외환에 손을 못 대게 하겠다는 것이다. 사진은 러시아 루블화.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미국과 유럽 등이 지난 28일 꺼내든 ‘러시아 중앙은행과의 거래 중단’이라는 카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핵 위협에 맞먹는 ‘경제 핵폭탄’이라고 할 수 있다. 루블화 폭락과 인플레이션을 심화시켜 러시아 경제를 초토화하고 푸틴 대통령의 전쟁 금고를 타격하는 효과가 예상된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28일 러시아의 중앙은행, 국부펀드, 재무부와의 거래를 전면 차단한다고 밝혔다. 이에 영국·일본도 동참하겠다고 밝혔고,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연합(EU) 국가들도 가세할 예정이라고 미국 당국자들이 말했다. 미국은 이란·베네수엘라·시리아 등에 중앙은행 규제를 가한 적 있으나, 러시아라는 대국을 상대로 그것도 서구 국가들이 똘똘 뭉쳐 이 조처에 나선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이번 조처의 핵심 목표는 러시아가 원유·가스 등을 팔아서 쌓아둔 외환보유고에 손을 못 대도록 묶는 것이다. 마이클 번스탬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원은 러시아의 전체 외환보유고는 약 6400억달러(약 770조원)이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4000억달러는 뉴욕·런던·베를린·파리·도쿄 등 외국의 중앙은행이나 상업 은행에 예치돼 있다고 분석한다. 러시아 안에 보유한 규모는 120억달러에 그치며, 나머지 약 1390억달러는 금, 840억달러는 중국 채권이라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러시아가 자기 돈인 4000억달러의 외환보유고에 손을 못 대면, 우크라이나 침공 개시 이후 30% 폭락한 자국 통화 루블화의 추가 하락을 막기 어려워진다. 달러로 시장의 루블화를 매입해서 루블화 가치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게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전쟁 이전인 2월 중순 1루블은 미화 1.3센트 수준이었으나, 지난달 24일 개전 직후 떨어지기 시작해 27일 서방의 러시아 은행들에 대한 국제은행간결제망(SWIFT) 퇴출 결정을 거치면서 추락을 거듭했다. 구글 파이낸스 자료를 보면, 미국의 러시아 중앙은행과의 거래 중단 발표 이후 1일 한때 1루블은 0.96센트로, 1센트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러시아는 국제은행간결제망 퇴출 제재 이후 루블화 폭락을 막기 위해 금리를 20%로 올렸고, 외환 확보를 위해 수출기업들에 보유 외환의 80%를 매각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이번 중앙은행 제재로 러시아는 거시경제 관리를 위한 주요 수단을 잃게 됐다. 루블화의 구매력이 약화되면, 수입품 가격이 올라 물가는 더 폭등하게 돼 있다. 루블화 추가 폭락, 인플레이션, 경기 침체 등 악순환이 예상된다. 그 직접적인 여파를 감내해야 하는 러시아 시민들은 이미 믿을 수 있는 ‘달러’ 확보를 위해 현금인출기에 줄을 서고 있다. 셸·비피(BP) 등 글로벌 기업들은 러시아에서 철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처가 그동안 언론이 주목해온 국제은행간결제망 퇴출 조처보다 훨씬 파장이 크다고 말한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조시 립스키 국장은 4000억달러 외환보유고를 묶는 것은 “하룻밤 사이 오스트리아 국내총생산(GDP) 전체를 날리는 것”이라며 이번 조처는 “러시아라는 요새”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폴리티코>에 말했다.
이 조처로 푸틴 대통령은 전쟁 수행에 필요한 자금력이 약해지게 됐다. 루블화 폭락에 따른 국민들의 불만이 치솟아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극단적 압박 속에 엄청난 비극을 불러올 극단적 총공세에 나설지, 우크라이나 정부와 적정선에서 타협할지는 푸틴 대통령의 선택에 달렸다. 황준범 기자
[금융제재] 한국, 러 7개 은행 거래중단…러 국고채 거래도 중단 권고
“불요불급한 금융거래는 유예기간 중 조속히 완료” 당부
28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러시아 화폐인 루블화를 정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금융 제재가 발표되고 러시아가 핵 위협 카드를 꺼내면서 러시아 화폐 가치가 30% 가까이 폭락했다. 이날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역외 시장에서 1달러당 루블화 환율은 장중 117.817루블을 기록하며 전 거래일 종가 대비 약 28% 하락했다. 미국과 유럽은 전날 러시아 중앙은행을 제재하고 일부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퇴출하기로 합의했다. 연합뉴스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러시아를 겨냥한 금융 제재에 동참 의사를 밝힌 지 하루만에 공공기관의 러시아 국고채 투자 중단 권고, 거래 중단 대상 러시아 은행의 내역과 시기와 같은 세부 지침을 발표했다.
기획재정부가 1일 내놓은 ‘국제사회의 대러 금융제재 동참을 위한 세부 후속조치’란 제목의 자료를 보면, 우선 우리 정부는 미국이 꼽은 Sberbank, VEB, PSB, VTB, Otkritie, Sovcom, Novikom 등 7개 러시아 은행과 그 자회사와의 금융거래 중단한다. 거래 중단은 미국이 각 은행별로 설정한 유예기간이 끝나는 대로 시작된다.
이에 기존 계약에 따른 거래 등 제재 대상 은행과의 불가피한 거래는 유예 기간 내에 마무리해야 하다. 다만 농산물 및 코로나19 의료지원, 에너지 관련 금융 거래는 허용된다. 정부는 “각 금융기관은 금융거래 모니터링 등 내부 통제절차를 준수하고 고객 사전 안내 등을 통해 제재 대상 은행들과의 거래 중단이 철저히 집행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정부는 러시아 발행 국고채에 대한 투자 중단을 국내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에 권고했다. 투자는 유통, 발행시장 모두에서 금지된다. 지난 1일부터 발행하는 러시아 국고채에 대한 미국 금융기관의 거래를 금지한 미국의 조처를 본 딴 것이다. 정부는 러시아 은행과의 거래 규모나 국내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의 러시아 국고채 거래 현황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정부는 러시아 은행에 대한 국제금융결제망(스위프트) 배제의 구체적 절차도 설명했다. 우선 스위프트 배제는 유럽연합의 제재 조치가 내려진 뒤 스위프트 본사가 위치한 벨기에 금융당국이 배제 명령을 내리면 본격화된다. 정부는 “전례가 많지 않은 이례적 조처인 만큼 금융기관들은 기업·교민 등 고객과의 거래에 있어 혼선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외교제재] 세계 각국 외교관들, 러시아 외무장관 발언하자 ‘퇴장 시위’
‘하늘 길’ 막힌 라브로프 화상 발언했으나
유엔 회의장에서 외교관들 등 돌려 퇴장
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군축회의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화상을 통해 발언하자, 각국 외교관들이 등을 돌려 퇴장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러시아 외무장관이 유엔(UN) 회의에서 발언하자 세계 각국 외교관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항의 표시로 잇따라 퇴장하는 시위를 벌였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이 1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 화상으로 발언을 시작하자 각국 외교관들이 회의장에서 나가버렸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퇴장 시위를 주도한 예브헤니이아 필리펜코 주 제네바 우크라이나 대사는 회의장 밖에서 대형 국기를 들고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놀라운 지지를 보여준 여러분께 매우 감사하다”고 말했다. ‘퇴장 시위’에 동참한 독일 대사인인 카타리나 스타쉬는 “유엔 인권이사회가 거짓 정보를 유포하는 장으로 악용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고 독일 <데페아>(DPA) 통신은 전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계 주민을 오랫동안 박해해왔으며 서방이 이를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유엔 인권이사회보다 1시간여 전 열린 유엔 군축회의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벌어졌다. 라브로프 장관이 화상으로 연설을 시작하자 각국 외교관들이 등을 돌려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회의장에서 빠져나간 외교관들은 우크라이나 국기 앞에 모여 크게 박수를 쳤고, 박수 소리는 라브로프가 화상 연설을 하고 있는 회의장에도 들릴 정도였다고 <아에프페>는 전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우크라니아가 핵무기를 보유하려 한다고 비난하는 연설을 했으나, 회의장에 이 연설을 들은 나라 외교관은 예멘, 베네수엘라, 시리아, 튀니지 등 손에 꼽힐 정도에 불과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원래 제네바에 와서 직접 연설을 할 예정이었으나, 유럽 여러 나라가 대 러시아 제재 조처로 하늘 길을 막으면서 참석이 취소됐다. 대신 그는 사전에 녹화한 영상을 통해 발언했다. 조기원 기자
[외교제재] 유엔 25년 만에 긴급특별총회…러시아 철군 결의안 채택 추진
“러시아의 침략, 정당화될 수 없어”
즉각적인 전쟁 중단 요구하며 성토
2일쯤 총회 표결에 부칠 듯
세르기 키슬리쨔 우크라이나 대사가 28일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욕/신화 연합뉴스
28일 열린 유엔 긴급특별총회는 러시아를 규탄하는 성토장이 됐다. 세계 각국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러시아의 군사 행동에 대해 “정당화될 수 없는 주권 침해”라며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지난해 9월부터 총회 의장을 맡고 있는 압둘라 샤이드(몰디브 외교장관)는 회의 시작과 함께 모든 참석자에게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제의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세르기 키슬리쨔 우크라이나 대사는 ”우크라이나가 살아남지 못한다면 세계 평화도 살아남지 못한다”며 국제 사회의 흔들림 없는 지지를 호소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사망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대화의 길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바버라 우드워드 영국 대사는 “우리가 그들(우크라이나)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모든 나라의 국경 안전과 독립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 지지를 선언했다. 알렉산더 마르쉬크 오스트리아 대사도 러시아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나라들을 향해 “좋은 친구, 정직한 친구는 친구가 잘못을 저지를 때 해야 할 말을 해야 한다”고 러시아 설득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예상대로 러시아는 굴하지 않았다. 바실리 네벤지아 러시아 대사는 “러시아의 행동이 왜곡되고 있다”며 “러시아가 적대행위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가 먼저 우리 러시아계 주민에 적대행위를 했다”고 항변했다.
이번 총회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27일 의결에 따라 열린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은 안보리에서 러시아 침공을 비판하는 결의안이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채택되지 않자, 이번 특별총회의 소집을 추진했다. 유엔 긴급특별총회는 1945년 10월 유엔 창설 이래 11번째이며, 지난 1997년 이래 처음이다.
총회에선 거부권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2일쯤 총회 표결에 부쳐질 결의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연합(EU)이 주도하는 결의안 초안에는 러시아군의 전투 중단과 철군,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 등이 담겨 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한편, 유엔 안보리는 이날 비공개회의를 열어 북한의 최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안건으로 다룬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미국·일본·영국 등 11개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를 “불법적이고 역내 긴장을 고조시키는” 도발로 규정하고 유엔 회원국에 대북제재의 철저한 이행을 요청했다. 박병수 기자
[외교 경제제재]
‘중립국’ 스위스 · 스웨덴 국제연대 동참…푸틴 독주에 ‘금기’ 깨
스위스, 푸틴 등 자산동결 제재
스웨덴, 80년 금기 깨고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중립국인 스위스의 이냐치오 카시스 대통령은 28일 기자회견에서 “유럽연합이 러시아에 부과한 제재에 스위스도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AP 연합뉴스
러시아를 옥죄는 국제 연대에 스위스·스웨덴 등 전통적인 중립국들도 오랜 전통을 깨고 함께 나서기로 했다.
이냐치오 카시스 스위스 대통령은 28일 기자회견에서 “유럽연합(EU)이 러시아에 대해 부과한 제재에 스위스도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스위스의 입장을 바꾸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국제법 존중은 스위스가 지지하는 중요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스위스는 유럽연합이 결정한 대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포함한 러시아 인사들의 자산을 동결하고 입국도 금지한다. 스위스 중앙은행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스위스에서 러시아인이 보유한 자산은 약 104억스위스프랑(약 13조5000억원)에 이른다. 또, 러시아 항공기의 영내 진입을 금지하기로 했으며 우크라이나 난민이 증가하고 있는 폴란드에 약 25t의 구호물자를 보낼 방침이다.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닌 스위스는 푸틴 대통령이 지난 2월21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독립을 승인했을 때는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다며 미온적 입장을 유지했다.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때도 스위스는 제재에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월24일 침공이 시작된 뒤, 수도 베른에서 2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등 ‘반러 여론’이 고조됐다. 그와 함께 제재에 나서지 않는 스위스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는 지난 27일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이 스웨덴 안보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그동안의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대표 중립국인 스웨덴도 국제분쟁에 무기를 공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는 지난 27일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이 스웨덴 안보에 기여하는 것이다. 기존의 원칙을 뛰어넘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웨덴은 ‘AT-4’라고 불리는 휴대가 가능한 대전차 로켓 5000개와 함께 전투식량(13만5000끼), 헬멧 5000개, 방호복 5000벌을 우크라이나에 보내기로 했다. 스웨덴은 1939년 당시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했을 때를 제외하고 80년 넘게 국제분쟁 지역에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푸틴의 폭주가 독일에 이어 스웨덴의 금기도 깨뜨린 셈이다. 김소연 기자
[경제제재]
러시아 ‘핵심’ 산업 손절하는 글로벌 ‘큰손’…자동차 업체 등 동참
에너지기업 셸 “우크라이나 인명피해 충격”
다임러 트럭, 볼보 등도 러시아 판매 중단
월트 디즈니도 러시아에 영화 개봉 안해
러시아 외국인 자산 회수 일시 제한 조처 꺼내
영국과 네덜란드가 합작해 만든 세계적 에너지기업인 ‘셸’은 28일 러시아 국영 가스업체 가즈프롬과 합작 프로젝트를 포함해 러시아의 모든 사업에서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AP 연합뉴스
세계 굴지에 기업들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서 잇따라 철수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외국인 투자자의 러시아내 자산 회수를 제한하는 조처를 꺼내들었다.
영국과 네덜란드가 합작해 만든 세계적 에너지기업인 ‘셸’은 28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영 가스업체 가즈프롬과 합작 프로젝트를 포함해 러시아의 모든 사업에서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셸은 이날 자료를 내고 세계 최대규모의 석유·가스 개발사업인 ‘사할린2’ 프로젝트에서 빠지겠다고 밝혔다. 이 사업엔 러시아의 가즈프롬(지분 50%)·셸(27.5%)·미쓰이물산(12.5%)·미쓰비시상사(10%)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벤 반 뷰든 셸 최고경영자(CEO)는 “우크라이나의 인명피해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는 유럽 안보를 위협하는 무분별한 러시아의 군사적 침략 행위로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세계 각국 정부와 협의하면서 관련 제재를 준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셸은 사할인2 이외에도 러시아에서 진행 중인 석유개발, 파이프라인 공급, 에너지 개발 등 다른 사업도 모두 중단한다고 덧붙였다.
노르웨이 국영 에너지기업인 에퀴노르도 이날 러시아 사업에 신규 투자를 중단하고 기존 합작회사도 매각한다고 밝혔다. 안데르스 오페달 에퀴노르 최고경영자는 자료를 내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상황에서 러시아 사업을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국 에너지 개발 대기업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도 27일 러시아 국영 석유개발업체 로스네프트의 지분(19.75%)을 전량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시장가치로 140억 달러(약 17조원)에 달한다. 30여년 동안 러시아에서 사업을 해온 비피는 러시아 최대 외국 투자자로 꼽힌다.
자동차 업계도 러시아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독일 다임러 트럭은 러시아 최대 장갑차 업체인 ‘카마즈’와 협력을 중단하기로 했다. 트럭 생산이나 부품 공급을 하지 않을 방침이다. 스웨덴 볼보, 독일 폭스바겐과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등도 러시아에서 자동차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월트 디즈니는 28일 성명을 내고 러시아에서 영화 개봉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러시아는 자원 이외 뚜렷한 산업이 없다. 강력한 제재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러시아와 가까운 중국의 태도에 달렸다”고 짚었다.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는 1일 외국 기업들의 러시아 사업 철수가 “정치적 압력” 때문이라며 “(외국 기업) 러시아 자산 이탈을 일시적으로 제한할 대통령령이 준비됐다다”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 방법은 거론하지 밝히지 않았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스포츠 제재] 한국 팀 킴, 여자컬링 세계선수권 러시아전 보이콧
컬링연맹, 러시아전 모든 경기 보이콧 발표
팀 킴 선수들이 지난 2월12일 중국 베이징 국립아쿠아틱센터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컬링 여자 단체전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에서 승리한 뒤 상대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팀 킴’이 세계선수권 러시아전을 보이콧한다.
대한컬링연맹은 1일 보도자료를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면서 “대한컬링연맹 소속 모든 팀과 선수들은 러시아와 모든 경기를 보이콧하기로 했다. 이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세계컬링연맹(WCF) 등 국제 스포츠 기구와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남녀 컬링 대표팀은 러시아와 친선전, 연습경기도 치르지 않기로 했다.
일단 컬링 여자 대표팀 팀 킴은 20일 캐나다 프린스 조지에서 열리는 여자컬링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러시아전을 보이콧한다. 팀 킴은 베이징겨울올림픽 때 러시아(당시 러시아올림픽위원회로 참가)를 예선에서 만나 승리한 바 있다. 팀 킴에 이어 남자 대표팀 경북체육회가 4월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남자컬링 세계선수권대회 러시아전을 포기한다. 더불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혼성 세계선수권대회(4월23일~30일) 때도 러시아와 맞붙을 경우 경기를 치르지 않기로 했다.
앞서 국제올림픽위원회 집행위원회는 2월28일(현지시각) 종목별 국제연맹(IF)과 각종 대회 조직위원회에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관계자들의 국제대회 초청 또는 참가를 불허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4일 개막하는 2022 베이징겨울패럴림픽에 러시아 대표팀이 참가하는 가운데 일부 선수들은 러시아와 경기를 보이콧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양희 기자
[스포츠 제재] 발리예바 등 러시아 피겨선수, 세계선수권 출전 못한다
ISU, 러시아·벨라루스 선수 국제대회 출전 금지 발표
러시아 피겨 선수 카밀라 발리예바. 연합뉴스
카밀라 발리예바(15) 등 러시아 피겨 선수들의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이 금지됐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1일(한국시각)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의 국제대회 출전을 금지하는 징계안을 전격 발표했다. 이로써 러시아, 벨라루스 선수들은 당장 이달에 열리는 피겨스케이팅,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수 없게 됐다.
전날까지만 해도 러시아 피겨 선수들의 세계선수권 출전에는 문제가 없을 듯 보였다. 그러나 스포츠 국제기구들의 러시아 선수들에 대한 출전 제한 조치가 이어지면서 국제빙상경기연맹도 동참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로써 발리예바를 비롯해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때 금, 은메달을 따냈던 안나 쉐르바코바와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등도 올해 세계선수권(프랑스 몽펠리에·3월21일~27일) 무대를 밟지 못하게 됐다. 도핑 양성 반응에도 올림픽에 출전해 물의를 빚은 발리예바는 최근 러시아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받고 세계선수권에서 반등을 노렸지만 물거품이 됐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쉐르바코바의 경우 지난해 세계선수권 우승자였다.
국제빙상경기연맹에 앞서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국제럭비연맹, 유럽핸드볼연맹 등이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에 대한 국제 대회 출전 금지를 발표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러시아 대표팀의 2022 카타르월드컵 출전을 금지했고 세계태권도연맹(WT)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태권도 명예 단증을 철회했다. 국제배구연맹(FIVB) 또한 러시아의 2022 남자 배구세계선수권대회 개최권을 박탈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회는 2월28일(현지시각) 종목별 국제연맹(IF)과 각종 대회 조직위원회에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관계자들의 국제대회 초청 또는 참가를 불허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김양희 기자
[스포츠 제재]
축구에 미친 독일도 “평화”…축제·경기 다 뒤로 하고 ‘우크라 연대’
[마쿠스 한의 분데스리가 리포트]
분데스리가 24라운드 수놓은 반전 메시지
FIFA · UEFA도 국제대회에서 러시아 퇴출
바이에른 뮌헨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가 지난 26일(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 코메르츠방크에서 열린 2021∼2022 분데스리가 24라운드 프랑크푸르트전에서 왼팔에 우크라이나와 연대를 상징하는 밴드를 착용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주말 열린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24라운드. 선수를 비롯해 팀 관계자, 그리고 팬들까지 경기장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은 이날 우크라이나와 연대를 표했다. 형태는 다양했다. 전광판에 비둘기를 띄우고 경기 시작 전 1분간 묵념을 하거나, 우크라이나 국기와 함께 ‘전쟁을 멈춰라(STOP WAR)’, ‘우리는 전쟁에 반대한다(WIR GEGEN KRIEG)’, ‘그만해, 푸틴!(STOP IT, PUTIN!)’ 등 반전 메시지가 담긴 펼침막을 내걸었다.
전세계 스포츠가 러시아의 침공에 분노하고 있지만 독일 축구계의 움직임이 제일 적극적이다. 독일프로축구연맹(DFL)은 에스엔에스(SNS)를 통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을 분명하게 규탄했다. “어떤 형태의 전쟁도 용납할 수 없으며, 스포츠의 가치와도 양립할 수 없다”며 독일 국민들의 마음을 대신 전했다. 현재 공석인 독일축구협회(DFB) 회장 후보 페터 페터스는 독일 방송에 나와 “지금은 러시아 팀과 축구 경기를 하는 걸 상상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27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열린 2021∼2022 분데스리가 24라운드 아우크스부르크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이 “평화를 위해 함께 한다”는 내용을 담은 우크라이나 지지 펼침막을 들고 서 있다. 아우크스부르크/EPA 연합뉴스
이동경의 소속팀 샬케04는 16년 만에 자신들의 스폰서인 러시아 에너지 대기업 가즈프롬의 로고를 유니폼에서 지웠다. 2006년에 이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전 독일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러시아의 반(半)국영 에너지 공급업체 가즈프롬과 샬케04 사이 수백만유로에 달하는 거래를 성사시켰다. 그 이후로 연간 최소 1500만유로(한화 약 200억원)를 지원받아온 샬케가 이번에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하며 계약을 일방적으로 종료했다.
샬케04의 한 시즌 예산은 약 1억1천만유로(약 1400억원)다. 코로나19 때문에 관중수입도 많이 줄어든 상황에서 메인 스폰서가 떨어져 나가면 10% 이상의 손실이 불가피하지만 돈보다 인류애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인류애를 짓밟은 러시아의 가즈프롬과 파트너십을 계속 유지할 수 없었다고 샬케04 구단은 밝혔다.
독일 상위 2개 리그를 통틀어 유일한 우크라이나 출신인 다닐로 시칸(21)이 속한 FC한자 로스토크도 적극적인 반전 움직임을 보였다. 로스토크는 경기 직전 공식 채널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 트윗을 게재했는데 그 내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리 모두를 뒤흔들었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전쟁을 규탄한다. 스포츠는 통합, 페어플레이, 연대를 상징한다. 우리는 무고한-다닐로 시칸을 비롯한-사람들을 지지한다”였다.
지난 26일 FC한자 로스토크가 우크라이나 출신 선수 다닐로 시칸을 위해 트위터에 올린 문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리 모두를 뒤흔들었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전쟁을 규탄한다. 스포츠는 통합, 페어플레이, 연대를 상징한다. 우리는 무고한-다닐로 시칸을 비롯한-사람들을 지지한다”라고 쓰여 있다. FC한자 로스토크 트위터 캡처.
유럽 축구 전체가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를 보여주고 있다. 잉글랜드와 스위스, 폴란드, 스웨덴, 체코가 이미 러시아와 더 이상 경기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앞서 러시아 대표팀의 국가 명칭 사용 금지 징계를 내렸다가 너무 소극적 조치라는 반발을 산 지 하루 만에 러시아를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퇴출했다. 유럽축구연맹(UEFA)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축구 대표팀과 클럽팀은 이제 국제대회에 나갈 수 없다.
스포츠는 종종 정치적으로 남용된다. 베이징겨울올림픽처럼 국가 원수를 위한 이벤트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독일 축구계가 보여주듯 전쟁 반대와 같은 정치적 의견을 투영하는 플랫폼으로도 쓰인다. 더군다나 독일은 남다른 역사적 배경이 있다. “실수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2차 세계대전의 교훈이 강하게 남아 있어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한 분노와 동정 여론이 여느 나라보다 더 높다. 지난 27일 베를린에서는 최소 10만명의 군중이 운집해 “제3차 세계대전은 없다”라는 반전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독일은 축구에 미친 나라다. 하지만 이제 축구는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지난 목요일(2월24일)부터 화요일(3월1일)까지 일부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지친 이들을 위한 축제가 계획돼 있었지만 취소가 이어졌다. 축구도 축제도 세계를 뒤흔든 전쟁 앞에 뒷일이 됐다. 무의미한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 독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다시 축구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