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목사회, 영락교회서 신년하례식 가져

● 교회소식 2023. 2. 28. 00:32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온타리오 한인목사회(회장 지근우 런던안디옥교회 담임목사)가 마련한 2023년 신년 예배와 하례식이 1월9일 오전 11시부터 토론토 영락교회(담임 송민호 목사)에서 1백30여명의 목사회원 부부와 축하객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려, 목회자들이 새해 덕담과 격려를 주고 받으면서 힘찬 출발로 회복과 부흥의 해를 다짐했다.

이날 행사는 3부로 나누어 1부에 예배를 드리고 2부에 하례식을 가진 뒤 3부 순서로 영락교회가 준비한 점심식사를 함께 한 후 선물 추첨 등 친교시간을 가졌다.

목사회 부회장인 김영선 목사(충현교회 담임) 사회로 드린 예배는 김지연 목사(커넥트교회 담임: 유학생선교회 대표)가 인도한 찬양을 함께 하는 것으로 시작해 묵도를 하고 찬송가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550장)을 다함께 불렀다. 이어 교협 부회장인 김주엽 목사(강림감리교회 담임)가 영적 부흥을 간구하는 대표 기도를 했다.

특송은 지난해 말 창단된 ‘목사사모 합창단’(단장 하영기 목사,지휘 김성숙 권사)이 공식행사에 첫 데뷔,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찬양곡을 불러 박수를 받았다.

김영선 목사가 성경본문인 사무엘상 7장 3절~14절을 봉독하고 목사회장인 지근우 목사가 ‘미스바 & 에벤에셀’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지 목사는 “오늘 하례식을 통해 2023년을 특별히 영적 회복과 부흥의 해가 되도록 새롭게 출발하며 하나님 영광 드러내고 귀하게 쓰임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한다”면서 설교를 시작했다. 지 목사는 사무엘서의 기록을 부연, “영적 타락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엘리 제사장 시절은 하나님의 법궤를 내세웠음에도 블레셋과 전쟁에서 연패했으나 사무엘 시대에는 은혜를 갈망하며 쉬지않고 기도한 미스바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를 거두었다”고 전하면서 “올 한해 하나님의 에벤에셀 은혜를 간구하자”고 역설했다. 지 목사는 “영적 지도자들인 우리가 힘든 세상 영적 전쟁에서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의 ‘쉬지말고 기도해 달라’는 소리를 들으며 하나님께 쉬지 않고 기도하고 부르짖어 도우심의 응답을 받고, 회복과 부흥의 꿈을 이루어 하나님 목적에 쓰임받는 한 해를 열어가기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지 목사는 영적 회복과 기도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자고 제창, ‘주여!’ 삼창과 함께 참석자들이 합심 기도하고 이어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기도했다.

예배는 445장(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찬송과 구제헌금, 목사회 회계 권영정 목사(세계로교회 담임)의 헌금기도와 총무인 김석재 목사(순복음 영성교회 담임)의 광고에 이어 다함께 492장(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찬송을 부른 뒤 송민호 목사의 축도로 마쳤다.

2부는 부총무 최혁 목사(새 사랑교회 담임) 사회로 진행, 김득환 토론토총영사의“온타리오 13만 한인의 영적 정신적 뒷받침에 수고하시는 목회자 분들께 감사드린다”는 인사말을 듣고 참석자들이 예배당 앞쪽에 차례로 줄을 서서 하례를 가졌다.

3부 행사는 은퇴목사회 박준하 회장의 식사기도와 함께 영락교회 여전도회가 정성으로 장만해 제공한 점심을 나눈 뒤 정영은 목사(세계로 교회) 등의 재기 넘친 사회로 친교순서가 이어졌다. 목사사모합창단이 다시 출연해 ‘감사’를 불러 분위기를 돋운 가운데 퀴즈게임과 선물추첨 등 기쁨을 나누고 지근우 회장 기도로 행사를 마무리 했다. 이날 목사회 임원들과 교회, 기업 등이 각종 선물을 제공, 참석자들은 쌀 한포씩과 선물을 안고 헤어졌다.< 문의: 647-994-7669 >

 

[편집인 칼럼] 정적 제거의 흑역사

● 칼럼 2023. 2. 28. 00:27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영국작가 조지 오웰이 쓴 유명한 디스토피아 소설 ‘1984년’은 소련의 스탈린 공포정치 시대를 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탈린의 공산 독재와 나치, 파시즘을 비판한 이 소설 속의 빅 브라더가 바로 스탈린이고 임마누엘 골드슈타인은 트로츠키를 모델로 했다는 것이다.

스탈린 독재치하 소련인들은 비밀경찰의 감시하에 살았다. 혐의자 한 명이 체포되면 그 주변인들이 줄줄이 끌려가 고문과 살해를 당했다. 친구나 친지도 의심하며 상호 고발이 장려됐다. 부부, 연인이 증오로 변하고, 상대방 고발 전에 먼저 고발해야 목숨을 부지했기에 의도적인 무고도 횡행했다. 냉혈한 스탈린의 반대파 숙청은 간첩·모반죄를 씌우면 그만이었다. 트로츠키를 내쫓고 삼두체제를 구성했던 혁명동지 카메네프와 지노비예프를 연루자 160명과 함께 처형했다. 당시 비밀경찰 수장 겐리흐 야고다의 손을 빌려 25만명의 당원을 내쫓거나 처벌했는데, 그가 불안해하자 총살시키고 니콜라이 예조프를 앉혀 대숙청을 벌였다. 예조프도 스탈린의 사냥개가 되어 날뛰었지만, 역시 총살당해 팽(烹) 신세를 면치 못했다. 1937~1938년 대숙청 기간에만 100만명 안팎이 처형됐다고 한다. 하루평균 1500명을 총살했다니 스탈린은 ‘인간 백정’소리를 들으며 피로 지탱한 권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한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도 빼놓을 수 없다. 총리 취임 이후 6개월 만에 전권을 쥔 그는 자신의 경호조직인 SA(Sturmabteilung:돌격대)가 세력이 커지자 게쉬타포와 군대를 동원해 ‘장검의 밤’(Night of the Long Knives) 사건을 일으켰다. SA 대장 에른스트 룀과 그의 부관 하이네스 등을 처형하고, ‘떡 본 김에 제사’격으로 최대 정적 폰 슐라이허 전 총리와 반대파 클라우제너, 나치당내 거물 슈트라서, 자신의 반란 미수 사건인 ‘뮌헨 폭동’을 진압했던 폰 카르도 등을 일거에 제거한다.

 

중국의 정적 제거 고사는 셀 수가 없다.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왕 구천(句踐)이 천하의 패권을 차지한 뒤 가장 큰 공을 세운 범려를 상장군, 문종을 승상으로 임명하지만, 범려는 “고난은 함께 할 수 있으나 영화를 함께 할 수 없는 인물”이라며 구천을 떠난다. 그는 문종에게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고,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蜚鳥盡良弓藏 狡兔死走狗烹)"는 편지를 보내 피신하라 충고했지만, 문종은 주저하다가 반역의 의심을 받아 자결하고 만다. 원조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연원이다. 명장 한신이 유방을 도와 전국을 통일하고 황제에 오르게 하지만 반역을 염려한 유방에게 참수당하고 삼족 멸문지화를 입는 비운의 고사도 유명하다.

 

원래 정적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독재권력의 속성이다. 왕조시대 전권을 휘두른 군왕들 조차 비판적인 신하와 반대파, 공신들까지 가차없이 제거하고 숙청을 일삼았다. 이는 정적의 쓴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권력에 도전하는 불안요소로 여긴 포용력의 한계와 추종자들간의 다툼, 이간질에 기인한 바가 컸다.

한국사에도 여러 사화를 비롯해 사례(史例)는 부지기수다. 조선 초 벌어진 정적 제거전은 어지럽고도 잔혹한 피의 난무였다. 태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지지했던 정몽주는 이성계의 아들 태종 이방원에게 암살당했다.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복동생들과 개국공신 정도전 등을 살해한다. 1차 왕자의 난에 방원과 합세했던 형 방간은 2차 왕자의 난으로 방원을 죽이려다 패해 유배조치를 당했다. 역성혁명의 주역인 태조가 피튀긴 권력쟁탈에 얼마나 상심했으면 왕위를 던지고 함흥으로 떠나버렸을까. 그후 세조가 사육신을 필두로 수백명을 학살하고 단종을 죽인 사실도 널리 회자된다.

근현대에 들어 이승만이 김구 암살을 사주한 사실, 조봉암을 사법살인한 것도 독재권력의 잔인한 만행이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야권의 거두 김대중을, 이명박이 노무현을 죽이려고 안달했던 사실은 국민들 뇌리에 새겨져 있다.

북한 세습정권도 반대파 숙청의 많은 기록들이 있다. 김일성 시절 남로당의 거물 박헌영과 이승엽 등 13명을 간첩과 정권 전복음모 등 혐의로 처형한 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김정은 정권 초기 실세였던 고모부 장성택과 그 일파를 처형한 사건도 정적을 두고보지 못하는 독재권력의 속성 그대로다.

 

나중에 자업자득의 비참한 말로로 귀결되기 일쑤지만, 전제군주나 독재자들이 정적 말살을 꾀하는 것은 정통성이 결여된 무소불위 권력의 취약과 불안감에 위기와 도전이 두렵기 때문이다. 서로 비판하고 견제하며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정치 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다수 제1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모자라, 야당대표를 범죄자로 간주한 검찰권의 총동원 수사가 끝도없이 이어지고 있다. 바로 ‘검찰독재’의 실증일 뿐만 아니라. 명백한 정적제거 공작이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며 엄청난 국력 낭비가 아닐 수 없다.

 

 

[편집인 칼럼] 새해 고진감래(苦盡甘來) 건강법

● 칼럼 2023. 2. 28. 00:22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새해의 가장 큰 소망은 무엇인가. 나는 우리 모두의 제일의 소망은 건강이라고 믿는다. 건강이 무너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건강은 신체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건강, 심령의 평안함이 중요하다. 마음이 편치 않아 임계선을 넘으면 육신의 병으로 도진다. 스트레스가 암을 유발한다는 경고는 괜한 말이 아니다.

그런데, 마음 평안하기, 넓게 보아 정신건강 지키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우리를 감싸고 평생을 붙어다니는 걱정과 불안, 공포와 분노, 강박 스트레스 등의 ‘평안을 해치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 넓게는 우주적-지구적인 문제들에서부터 우리 모국의 갈등 양상들, 작게는 가정과 개인의 사소한 고민들까지, 때로는 걱정을 안해도 될 뿐더러 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는 기우(杞憂)성 염려들까지 끼어들어 머리 주변을 맴돈다.

그렇게 누구나의 일상에 필요악(必要惡, 숙명의 악)같은 존재라면, 공존하거나 혁파의 지혜가 필요하다. 슬기롭게 평정과 평안을 찾아 곧은 심지(心志)와 건강을 지키며 살아갈 수만 있다면 틀림없이 성공한 인생일 것이다. 우리는 올 한해 건강한 삶을 위해 매일 부딪히는 외부적 충격파, 심리적 강박 요소들에 대처하고 다스릴 단단한 채비를 해야한다.

새해는 특히 여러모로 불안과 위기가 예고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아무리 험하고 속상해도 평정심을 잃지말되, 임계선까지는 지혜롭게 참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의 덕목과 인내의 철학으로 심신의 평안과 건강을 지켜냈으면 하는 소망이다.

 

지구촌의 거대한 불안들은 우리 삶과 마음들에 찬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동시간대를 살기에 전 지구적 문제들도 이제 개인적 심리의 영역에까지 큰 파장이 미치는 공통의 불안요소로 작용한다. 개개인의 내밀한 고민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삶을 압도하기도 한다.

2년째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기름값과 물가고, 고금리 등으로 직결되면서 올해는 더 쪼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커진다. 팬데믹에 멍든 비즈니스가 한층 더 힘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일상이 팍팍해지면 공연한 화풀이도 늘어날텐데, 재수없이 동양인 표적범죄에 휩쓸리는 일은 없을지, 기후위기에 기상이변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폭설과 홍수, 허리케인, 정전 등의 재난이 언제든 덮쳐올 수 있으니 그 또한 안심할 수 없다. 3년이 넘도록 우리 곁을 맴돌며 파상공세를 펴고있는 코로나 위협에서도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글로벌 분석가들의 올해 어두운 전망 가운데는 전쟁불안이 번지고 있는 한반도 상황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자칫 화약고가 되는 것은 아닌지, 그러니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사람들은 날로 대결이 심화되고 있는 조국의 안위에 더 신경이 곤두설 수 밖에 없다. 핵 문제와 미사일 공방에서부터 드론 사태까지 긴장과 대결이 날로 격화되는데, 진정성 있는 대화노력은 없고 외교는 난맥에 빠져 ‘참사’니 ‘굴종외교’니 ‘국격추락’ 등 소식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외치의 연장선에서 ‘눈 떠보니 후진국’이라 자조하는 내정과 리더십의 난맥은 스트레스를 더한다. 국제기구가 한국은 공식적 선진국이라고 칭할 때 동포들 가슴이 뿌듯했었는데,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찬밥 신세인 걸 보고도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는다면 이상하다. 한국의 군사력이 세계 6위라고 든든해 하다가, 북의 드론이 서울상공을 헤집고 다녔다는 소식에 탄식한 연유도 그렇다. 경제와 사회는 어려워지는데, 가진 자 위주의 역주행과 무능, 검찰통치의 독선을 우려하는 소리가 갈수록 거세진다. 갈등을 조정하고 국정의 방향을 짚어 줄 정치와 국회가 실종과 표류상태를 맴도는 것도 한심하다. 홍콩과 미얀마 시위대들이 5.18을 선망이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때, 아 우리 조국이 민주주의 선진국이구나 자부했는데, 교과서에서 5.18을 지운단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모르는지, ‘반헌법 세력’이라고 비판집회를 매도하는 대통령, 노조를 ‘북한핵’에 비유하며 적 무찌르듯 제압해 국제노동기구의 반감을 사고도 이긴 줄로만 아는 무도한 정권을 보며 분노지수는 높아진다. 비판언론을 쫓아내고 소송과 압수수색 반복으로 겁박하는 독재적 언론관 역시 국제 망신거리여서 창피한 까닭이다. 언론마저 제 갈 길을 잃으며 국민의 눈과 귀가 통제받는 40여년 전 암흑시대로의 역행을 개탄하는 외침이 들린다.

 

국제사회의 불안 요소들은 세계인 공통의 고민이어서 글로벌 공동체적인 집단지성과 해결의지가 작동하면서 일정한 방어선 형성이 기대된다.

하지만, 단일 정치-사회 공동체인 모국의 이슈들은 외력의 영향 보다는 거의 자력 해결해야 한다. 우리들과 후손들까지 직결된 세대불문의 상수(常數)이기에 관심이 커질 수 밖에 없는 문제다. 더구나 보편적인 국제기준과 역사적 연원, 상식과 양심의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는 걱정과 불안, 분노 등의 지수가 높아져 맥박이 빨라지는 게 일말의 정의감이라도 있는 동포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자기가 처단한 국정농단 부패사범을 풀어주는 어이없음과 제편만 챙긴 뻔뻔한 사면 복권, 야당대표와 전 정권은 검사 150여명을 동원해 물고 늘어지면서 ‘증거가 차고넘치는’ 대통령 부인·장모 범죄는 모른 척 외면하는 내로남불의 극치, 아예 대놓고 뭉개고 덮어버리는 몰상식 사례들을 보고도 무감각하다면 정상인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줄 알았던 수십년 전의 퇴행, 아니 그것을 능가한다는 권력의 오만불손이 국민 정신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치는 상황이다.

 

비정상과 몰상식을 보고도 아무런 감정이 없다면 비정상이고 몰상식한 것이다. 부정과 불법, 불의에 무반응인 것 역시 부정하고 불법이며 불의한 것에 다름 아니다. 불공정과 불평등에도 불만이 없다면, 차별에 무감각하거나 공정과 평등의 의미를 모르는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정상적인 상식과 균형감각을 지닌 이성과 감성의 소유자라면 불안과 분노지수가 높아지는 게 자연스런 현상이다.

정상이 아닌 상황을 접하고 솟구치는 분노와 마음의 격동을 달래고 평안을 찾기는 쉽지 않다. 어떤 이들은 모른 체, 회피해 버리거나 “누군 털어서 먼지 안나나” 하고 체념과 용인의 비겁을 택한다. 또 한 부류는 “꼴불견도 지나가려니”하고 삭이며 감내한다. 하지만 ‘벽에다 주먹질이라도’ 하는 열혈족들은 뛰는 심장의 에너지를 안고 광장을 향한다. 그들은 그래야만 분이 풀리고 속이 시원해지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힘들고 험한 세상을 살아오며 참고 또 참았다. 그래서 가슴에 응어리가 지고 한이 서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인내의 비등점을 넘어설 때는 무도하고 뻔뻔한 자들에게 침을 뱉고 주먹을 날렸다. 민심의 폭발과 정의로운 항거로 쌓이고 담아둔 한을 쏟아냈다. 수난의 민족사는 위기를 넘나든 백성들의 심적 울분 해소와 정신건강 해법을 말해준다. 아울러 민초들의 가슴에 응어리를 만들고 분노지수를 촉발시킨 자들의 인과응보 결말도 보여준다.

열등감을 포악으로 보상한 고부군수 조병갑이 상징하는 사이코패스적 학정과 착취, 끝없는 재물욕에 견디다 못해 동학농민 혁명이 일어났다. 이완용 등 매국 역적들의 변신에 폭발한 민중의 분노는 마침내 삼일혁명으로 분출했다. 반민특위를 친일 경찰로 무참히 해체시켜 일제 잔재 청산을 무산시킨 이승만은 김구 암살과 사사오입 개헌, 3.15부정선거 등 민심을 무시한 독재로 치닫다가 참다못한 4.19 학생의거로 쫓겨났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무소불위 독재가 5.18 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 등 수많은 시민들의 피와 눈물을 흘리게 한 현대사 역시 후안무치를 참다 못한 국민의 울분이 터져나온 것임은 역사가 말해준다.

 

하찮은 강아지도 제 잘못은 알고 머리를 쳐박거나 구석에 숨는다. 그런데 후안무치 권력은 부끄러운 줄도, 미안함도, 책임도 모르고 상대멸시, 국민무시로 일관해 소시오패스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쉬후이라는 역사가는 ‘뻔뻔하고 독한 자들 전성시대’라는 책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인의 고통은 철저히 무시하고, 간악한 술책을 부려 남을 모함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며 살인과 나라를 버리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고 몰양심 권력자들을 서술했다. 철학자 애런 제임스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빗대 3대 ‘철면피 자질’을 거론했다. "철저히 자기가 유리한 쪽으로 처신하면서, (공복인 주제에) 자신에게 그럴 만한 권한과 자격이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다른 사람이 불만을 표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했다. 1920년대 마피아 수장 알 카포네 조차 “(권력층은) 사회적 지위를 잃지 않고 이익을 만끽하려는 뻔뻔스러운 놈들로 이 사람들은 합법적인 공갈을 일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폭 두목이 언급한 묘사까지 너무 생생하고 사실적이어서 당황스러울 정도다.

문제는 조폭적 소시오패스 행태는 하루 아침에 개선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성경에도 ‘악인들의 형통’에 대한 의구심을 곳곳에서 지적하고 있다.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자들이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렘 12:1). 하나님은 이에 대해 선한 자들을 연단시키기 위함이라면서 때가 이르면 반드시 심판하여 공의를 세울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고진감래의 가르침이다.

우리가 심판의 때를 안다면 참을 만하다 하겠으나, 끝없이 설치는 악인들의 작태를 감내하는 고통이 범인(凡人)들에게는 곧 응어리와 한이 되어 비등점을 향하는 것일 게다.

그래서 새해 건강의 화두는 우리에게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뻔뻔하고 독한 ‘머슴’들의 행태를 견디며 최대한 제어해 나가야 하니 보통 힘든 일인가, 비등점-임계점을 눈 앞에 두고 마음과 정신줄을 힘껏 붙들어 다잡아야 하는 현실, 무시당하는 주인들 처지가 된 우리 모두가 직면한 시대적 고민이다. 올 한해 ‘고진감래’의 지혜를 되씹으며 단단히 각오할 일이다. 사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연대와 심신의 건강을 다짐하며.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