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미 매체 인터뷰서 언급

지금 7미 대선 전 정상회담 열리지 않을 듯

완전한 비핵화 이뤄야북한 마음 바꾸기를압박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15일 북한 비핵화에 진정한 진전 가능성이 있어야만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미 정치전문매체 <더 힐>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올해 안에 북-3차 정상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글쎄. 우리는 선거(113일 미 대선)에 상당히 가까워지고 있다북한은 뒤섞인 신호를 보내왔다고 말했다.

이어 진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20186) 싱가포르에서 제시한 결과들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진정한 진전을 만들 수 있다는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을 경우에만 정상회담에 관여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첫 북-미 정상회담에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노력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노력 한국전쟁 전쟁포로·행방불명자 유해 발굴·송환에 합의한 바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이 가운데 완전한 비핵화에서 실질적 성과가 담보돼야만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의미다.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는 북한 사람들과 깊이 있는 논의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우리는 한반도의 비핵화, 그리고 궁극적으로 그곳에서의 충돌 해결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한반도에서의 안정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이 비핵화 대화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며,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대화할) 의향이 있는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북한은 이 시점에서 잠재적인 해결로 이어질 수 있는 방식으로 관여하지 않기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그들이 마음을 바꾸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피해왔고, 핵실험도 피해왔다. 이제는 미국인 뿐 아니라 북한 사람들의 안보를 위해 더 어려운 문제들에 착수해 더 나은 결과를 확보해야할 때라며 완전하게 검증가능한 비핵화를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뉴욕이코노믹클럽과의 대담에서는 11월 미 대선 전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지금 7월이다. 그렇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지난 10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 뒤에 나온 것이다. 김 부부장은 당시 북-미 정상회담이 연내에는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두 수뇌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어떤 일이 돌연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미(-) 협상의 기본주제가 이제는 적대시 철회 대 조미협상 재개의 틀로 고쳐져야 한다며 미국으로 공을 넘겼다. 미국이 먼저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이나 연기 등 성의를 보이라는 의미로 풀이됐다. 하지만 이날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북한부터 실질적 진전 쪽으로 태도를 바꾸라고 다시 공을 되받아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조야에서는 ‘10월 깜짝쇼’(October Surprise)도 거론되지만, 양쪽의 태도 변화 없이는 미 대선 전 3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


서울고법, 피해자 3명에 배상 판결, 김명수 대법 새 판례낼지 주목

 

유신정권의 긴급조치가 통치행위라는 이유로 국가의 배상 책임 범위를 크게 좁힌 양승태 대법원의 판단을 정면으로 반박한 첫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상고심 심리 과정에서 대법원이 새로운 판례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서울고법 민사5(재판장 김형두)긴급조치 선포와 그에 따른 수사 및 재판, 형의 집행 등에서 불법성의 핵심은 긴급조치 자체라며 수사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입증되지 않더라도 국가는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한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유신헌법 철폐 시위 등에 참가해 긴급조치 1·9호를 위반한 혐의로 구금된 피해자 김아무개씨 등 3명이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다.

재판부는 긴급조치는 그 발령 당시부터 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한 것이어서 국민 통제의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서 위법하다고 평가돼야 한다고 밝혔다. 긴급조치 발령과 그에 따른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후속조처는 모두 위법하다는 취지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긴급조치가 위헌일지라도 이를 선포한 대통령의 행위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한 통치행위라며 긴급조치 적용으로 인한 고문, 불법구금 등 형사절차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됐을 경우에만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또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이 긴급조치를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제외한 점 등을 들어, 긴급조치 위반에 따른 공무원의 수사·재판 등 직무행위를 고의·과실에 의한 불법행위로도 보지 않았다.

피해자가 체포나 구금 과정에서 겪은 고문, 가혹행위 등 피해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대부분 배상이 막혔던 이유다. 당시 작성된 법원행정처 문건에는 긴급조치 사건이 정부 협조사례중 하나로 제시돼 사법농단 사태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항소심 재판부는 개별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을 엄격하게 요구한다면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한 조직적인 불법행위에 대해 오히려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줄어드는 부당한 결론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불법행위를 수행한 공무원을 교체 가능한 부품으로 볼 수 있다고도 했다. “긴급조치에 따른 수사와 재판은 법률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측면이 크고 국가작용의 최하단에 있는 수사기관의 고문 등 가혹행위에 대해서만 불법성을 인정하는 것은 그러한 불법의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지시한 기관에 대한 면책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공무원 과실의 인정 범위를 넓혀 국가배상청구권을 확대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항소심에서 긴급조치의 불법성을 인정함에 따라 정부가 상고하면 대법원에서도 양승태 판례를 다시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2015년 대법원 판례가 나온 뒤에도 긴급조치 발령 자체를 불법으로 본 1심 판결이 종종 나왔지만 2심에서 기존 판례대로 뒤집히는 경우가 많았다. 대법원까지 올라간 사건도 피해자들이 패소했거나 긴급조치 위반으로 입건된 뒤 수사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등의 이유로 다투는 사건이 대부분이라 기존 판례를 정면으로 뒤집는 논리는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과거사 문제에서 국가 책임을 제한하는 대법원 판례는 대부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생산됐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정부기관은 기존 판례에 의지해 상소를 남발했다. 최근에도 긴급조치 피해를 입은 고 장준하 선생의 유족들이 일부 승소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정부는 대법 판례에 반한다며 항소했다. 인혁당 사건 피해자 이창복씨도 재심 무죄 판결을 받은 뒤 국가배상금을 가지급받았지만 대법원이 배상액을 대폭 줄여 수억원을 반납해야 할 처지에 몰렸고, 법원이 조정을 권고했지만 국가정보원은 응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과거사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전향적인 하급심 판결이 나오는 만큼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를 통해 판례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대법에서 긴급조치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안다법조계와 학계에서 법리적으로도 심층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기존 판례에 대한 반박 근거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사건을 대리한 김형태 변호사도 사법농단 사태 이후에도 양승태 대법원 체제 하에서 나온 판결에 대한 논의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과거의 자잘못된 판결을 바로잡는 것이 김명수 대법원장이 있는 현 대법원의 과제일 것 같다고 말했다. < 장예지 기자 >

 

 


아들명의 소유.. 백인엽과 백희엽까지, 백씨 집안 치부사

 

2018년 국방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생일파티 도중 생각에 잠긴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

 

전쟁영웅친일파라는 상반된 평가 속에 백수를 넘기고 숨진 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이 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일제강점기 독립군 토벌 전문부대였던 간도특설대 출신이라는 비판에 보수세력들은 전쟁영웅인 백씨가 평생 군인으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백씨 삶의 다른 면모들도 있다. 그는 서울 강남역 앞에 2천억원대의 건물을 가족 명의로 소유했던 자산가였지만, 수년에 걸쳐 가족 사이 송사가 벌어지기도 했던 게 대표적이다.

현재 백씨 장남은 서울 강남역 5번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한 덕흥빌딩 소유주다. 지하 5층 지상 16층 규모의 대형 빌딩으로 대지가 853(258), 건평만 11381(3443)에 이른다. 빌딩 전문 부동산업체 관계자는 삼성타운이 들어오면서 여긴 부르는 게 값인데 해당 건물은 초역세권이라 평당 5억원은 될 것이라며 땅값(2020년 공시지가 683억원) 말고도 건물은 시가로 최소한 2천억~3천억원 정도 될 것이라고 했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백씨는 장남 명의로 돼 있던 땅에 건물을 올려 199412월 역시 장남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를 마쳤다. 당시 장남 나이는 41살이었다. 백씨의 재산 형성 과정을 추적한 전필건 전 교육부 사학혁신위원은 “40대 초반 나이에 강남 한복판에 대형 건물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명의신탁에 의한 차명소유로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5·16 쿠데타 당시 미대사관의 필립 하비브 정치담당 참사관은 본국에 보낸 장문의 기밀문서에서 백 장군은 다른 참모총장들보다도 더욱 부패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기술한 바 있다. 이승만 대통령과 악수하는 백선엽.

차명 소유는 백씨 가족이 2007~2010년 사이 벌인 재산다툼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20074월 백씨 장녀, 둘째 딸, 둘째 아들 3남매는 장남을 상대로 부동산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 인용 결정을 받았다. 장남이 자신 명의의 건물의 매매, 증여, 전세권, 저당권 등의 권리 행사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3남매는 이어 진정명의회복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등기부상 주인은 실제 주인이 아니니, 실제 주인 명의로 소유권을 이전해달라는 주장이었다.

20088월 서울중앙지법이 3남매의 손을 들어주자 장남은 서울고법에 항소했고, 20101월 다시 3남매가 일부 승소했다. 대법원까지 간 재산다툼 결과, 해당 건물은 장남과 백씨 부인이 절반씩 소유하게 됐다가, 2012년 백씨 부인이 지분을 350억원에 장남에게 매각하면서 지금은 온전히 장남 소유가 됐다. 재산을 장남 명의로 해놓았던 게 사달이 난 셈이다. 장남을 뺀 3남매는 미국 시민권자로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송과정에서 장남과 척을 진 백선엽은 말년에 아내 노씨와 둘이서 지냈다고 한다.

형제끼리의 재산다툼 외에도 백씨 일가에는 유독 돈과 관련해 입길에 오른 인물들이 여럿이다. 백씨의 동생인 백인엽(1923~2013) 전 예비역 중장과 사촌누이인 증권가 큰 손 백희엽씨다. 일본 육군 항공소위 출신인 백인엽은 19566군단장 등을 지낼 때 군수비리를 저지른 혐의로 5·16쿠데타 당시 부정축재자 1호로 검거돼 무기형을 선고받은 인물이다. 사실 여기엔 백인엽의 비리와 함께 박정희와의 구원도 일정정도 작용했다. 6군단장 시절, 백인엽은 장병들을 완전 군장으로 연병장에 집합시킨 뒤 당시 부군단장이었던 박정희의 철모를 지휘봉으로 톡톡 치며 빨갱이 XX”라는 등의 모욕을 준 일이 있었다. 백인엽으로부터의 수모를 참다못한 박정희가 그의 군수비리를 문제제기했고, 이 일로 박정희는 이듬해인 19579월 제7사단장으로 전보조치된다.

서울 강남역 5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덕흥빌딩. 시가로 2천억원이 넘는다.

이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는 부패군인의 대명사였던 백인엽을 처단하고 싶었으나, 1948년 여순사건 뒤 숙군과정에서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백인엽의 형 백선엽을 생각해 선처했다고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자신의 책(<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 적었다. 숙군 당시 육군본부 정보국장이었던 백선엽이 남로당 활동으로 위기에 처한 박정희를 구해준 일화는 유명하다.

한편, 194810월 여순사건 당시 12연대 연대장으로 진압작전에 참가한 백인엽은 구례지역 부역자 색출과정에서 민간인들을 고문하고 학살하는 과정의 최고책임자였다. 2008년 진실화해위는 백인엽을 직접 조사해, 그가 구례지역 민간인학살사건의 가해책임이 있다고 진실규명한 바 있다.

죽다 살아난 백인엽은 교육자로 변신, 이후 인천지역에 선인학원이라는 학교법인을 설립한다. 형과 자신의 이름을 더해 만든 그 사학재단에서 백인엽이 벌인 비리는 상상을 초월했다. 5700명의 학생을 정원 외로 부정입학 또는 편입시키고, 졸업장을 팔아 61억원을 받아 챙겼다. 지금 20억원(31)에 거래되는 서울 강남 은마아파트가 18475천원에 분양되던 시절이었다. 학교를 짓는다며 월남 피란민 판자촌을 철거해 원성을 샀고 확장을 이유로 중국인 공동묘지를 불도저로 밀어 외교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교직원들을 무조건 해고하고, 교사들에게 예비군 군복을 입혀서 보초를 서게 하고 순찰을 돌게 했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총 14, 학생 수만 36400여명에 이르던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사학에서 벌어진 비리는 동양 최대였다. 당시 신문은 백인엽을 두고 인천의 무법자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선인학원 사학비리로 악명을 떨친 백선엽의 동생 백인엽의 육군 중장시절 사진(1956).

전두환 정권 초기인 19813, 업무상 횡령, 배임수재, 건축법과 중기관리법 위반으로 또다시 백인엽이 구속된 이유다. 이후 선인학원에 관선이사로 내려온 이는 형 백선엽이었다. 동생이 단군 이래 최대 사학비리를 저지른 곳에 형이 이사로 온 것이다. 앞서 형 백선엽이 강남대로에 건물을 올린 1994년은 선인학원 소유의 인천대 등이 논란 끝에 국공립화되던 때였다. 두 형제가 관여한 천문학적인 사학비리의 뒷감당을 국가가 나서서 하고 있는 사이, 백선엽은 강남에 대형빌딩을 세운 셈이다.

백선엽의 사촌누이인 증권가의 큰손 백희엽씨도 돈으로 한국사회를 주름 잡았던 인물이다. 1975년 중동건설붐을 타고 건설주가 폭등하면서 증권가에 이름을 날리게 된 백씨는 동아건설을 비롯, 해외 건설주를 대량매집해 거액을 벌었다. 백씨가 한창 명성을 날릴 때에는 단순히 어떤 주식에 관심이 있다는 소문만 나도 관련 주식이 폭등할 정도였다고 한다. 1995년 사망한 백씨는 40년대 후반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한 고 박용학씨의 부인이기도 했다.

천수를 누린 백선엽씨를 마지막으로 치부(致富)의 한 획을 그은 백씨 집안 내력도 한 대가 마무리됐다. 여전히 백씨가 청빈하다고 주장하는 보수세력들은, 미군도 그를 극진히 예우한다며 전쟁영웅으로 칭송한다. 그러나 백씨가 군인이었을 때, 미국의 평가는 정반대였던 것 같다. 5·16 쿠데타 당시 주한미국대사관의 필립 하비브 정치담당 참사관은 본국에 보낸 장문의 기밀문서에서 “(백선엽은) 혜택과 진급, 적절한 사면 등의 방법을 통해 자신의 파벌적 역량을 축적했다백 장군은 다른 참모총장들보다도 더욱 부패한 것으로 유명했다고 기술한 바 있다. < 오승훈 기자 >

백선엽 묻힌 현충원 홈피에 '국가공인 친일파' 명시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2009)"

대전현충원 홈페이지의 현충원 안장자 정보에 기재된 고 백선엽 육군 대장의 비고 정보다.

논란 끝에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백 장군에 대해 보훈처가 홈페이지 현충원 안장자 정보에 국가기관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됐다는 정보를 16일 등재했다.

이 정보는 최소한 하루 늦게 올라간 것으로 추정된다. 백 장군의 안장식이 마무리된 15일 오후 확인했을 때에는 백 장군의 안장자에는 성명과 계급, 군번, 신분, 사망일자 등만이 올라가 있었다. 백 장군 이전 현충원에 묻힌 국가공인 친일파 11(김백일, 신응균, 신태영, 이응준, 이종찬, 김홍준, 신현준, 김석범, 송석하, 백홍석)의 안장 정보에는 모두 '친일반민족행위자'가 기재된 상태였다.

하루가 지난 16일 오전 보훈처에 백 장군의 안장자 정보에 '친일반민족행위' 정보가 누락된 이유를 문의한 뒤, 이날 오후 해당 문구가 추가됐다.

보훈처 관계자는 "(안장 정보 입력 때) 의도적으로 백 장군의 (친일 관련) 내용을 누락한 것은 아니었다"면서 "관련 부서에서 보통 하루 한 번 안장자에 관해 정보를 수동으로 등록하는데 특이사항이 있으면 확인 후 등록하다 보니 시차가 생긴 것"이라고 답했다.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1941년부터 1945년 일본 패전 시까지 일제의 실질적 식민지였던 만주국군 장교로서 침략전쟁에 협력했고, 특히 1943년부터 1945년까지 항일세력을 무력 탄압하는 조선인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 장교로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했다"면서 백 장군의 친일행적과 관련해 A4용지 16페이지 분량의 공식 보고서를 2009년에 남긴 바 있다.

백 장군 역시 1983년 일본에서 출간한 '() 게릴라전-미국은 왜 졌는가'라는 제목의 책에서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면서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다"라고 간도특설대 활동을 인정했다.

15일 백 장군의 안장식에는 유가족을 비롯해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와 육군참모총장, 육군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이 정부를 대표해 자리했다. 이날 오전 서울 아산병원에서 진행된 영결식에서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역대 육참총장 등 참석해 최고 예우를 보였다.

16<조선일보>는 백 장군의 빈소에 문재인 대통령이 조문하지 않은 것을 지적하며 '대한민국 대통령의 배웅 없이 백선엽 장군을 보내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기도 했다. 이 신문은 14일에도 한국전쟁 당시 백 장군의 행적을 부각하며 '백선엽은 '이순신'의 대한민국 버전이다' 라는 시론을 실어 친일행적 미화에 도가 지나쳤다는 지적을 받았다.

      

[사설] 조중동의 도 넘은 백선엽 신격화’, 위험하다

            

백선엽 예비역 육군 대장이 지난 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고인이 된 백선엽에 대해 민족반역자라는 비판과 전쟁영웅이라는 찬양이 극과 극으로 갈렸다.

그런데 확연히 달라진 점이 있다. 이전에는 진보 쪽에서 백선엽이 독립운동을 탄압했다고 비판하면, 보수 쪽은 한국전쟁에서 세운 공이 잘못을 덮고도 남는다고 반론했다. 이번에 보수 쪽은 백선엽의 친일 행적자체를 아예 부인하거나 무시했다.

<조선일보>는 백선엽의 친일 행적을 두고 팩트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백선엽의 만주군 경력에 친일 굴레를 씌운다면 일본 통치하 수도·전기·토목 등에서 일본의 역량을 배워 오늘의 대한민국 정체성을 이룬 대다수 한국인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했다.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간도특설대 장교로 근무했던 백선엽의 친일 행적은 이명박 정부도 인정한 팩트.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백선엽이 포함됐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심지어 백선엽은 이순신의 대한민국 버전이라고까지 했다. 어이가 없다.

<중앙일보>백선엽에 대한 광복회장의 해괴망측한 발언, 참담하다고 주장했다. ‘백선엽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을 학살했다를 망언이라고 문제 삼았지만, 김원웅 광복회장의 전체 발언 취지와 거리가 있다. 발언 요지는 민감한 국내 이슈인 친일잔재 청산에 외국군 사령관이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였다. 주한미군사령관이 백선엽을 영웅이자 보물이라고 했으니, 독립운동가 단체인 광복회가 할 법한 항의였다.

조중동은 백선엽을 대전현충원이 아닌 서울현충원에 안장해야 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조문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백선엽의 대전현충원 안장에 대해서조차 반대 여론이 만만찮았다. 빈소에 대통령이 조화를 보내고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조문했으니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오른 국군 원로에게 예우를 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의 조문 문제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백선엽에 대한 도를 넘은 신격화시도야말로 대한민국을 분열시키는 일이다. 보수세력이 친일파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고, 북한과의 화해를 반대하며, -미 동맹을 절대화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백선엽 신격화를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과도한 미화는 도리어 고인에게 누가 될 수 있다. 그럴수록 친일 행적, 한국전쟁 전공 독식, 부정부패 의혹 등 그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진다. 그의 공과 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자.